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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투쟁] 세종호텔 정리해고 철회투쟁 2주년, 복직없이 투쟁은 끝나지 않는다! 세종호텔은 정리해고 철회하라!Instagram에서 이 게시물 보기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marchtosocialism)님의 공유 게시물 Instagram에서 이 게시물 보기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marchtosocialism)님의 공유 게시물 -
[번역] 혁명 시기 러시아에서의 여성 해방(편집자 주) 2023년 10월 1일 자로 레프트 보이스에 실린 웬디 Z. 골드만의 글을 번역해 소개한다. 웬디 Z. 골드만은 러시아 역사 전공 역사학 교수로 혁명 시기 러시아의 여성 해방에 관해 연구했다. 그의 연구서 《여성, 국가 그리고 혁명》은 1993년에 재출판되었다. 이 글은 웬디 골드만이 9월 12일과 15일에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에서 이 책에 대해 강연한 내용을 레프트 보이스 지면에 게재한 것이다. 오늘날, 여성들은 100년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많은 투쟁이 승리해왔기 때문이다. 오늘날 여성들이 직면하고 있는 수많은 조건, 문제, 의제는 클라라 체트킨,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이네사 아르망, 알렉산드라 알츄키나 같은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처음으로 해방을 위한 강령을 만들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에 여성들이 직면했던 것과는 다르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여성들은 임금노동에 진입했고, 투표할 권리와 공직에 참여할 권리를 얻었으며, 고등교육, 전문직과 스포츠 분야에 접근할 권리를 얻었다. 우리는 피임의 권리와 성적 실천을 직접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우리는 성희롱과 추행에 맞서 싸웠고 이를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우리는 억압적인 성역할과 고정관념에 도전했고, 집과 직장에서 남성과의 평등을 신장시켰다. 많은 국가에서 성소수자들은 새로운 자유, 사회적 인정, 법적인 권리를 얻었다. 내 일생 동안 일어난 변화는 정말 막대했다. 동시에, 전 세계 많은 나라에서 가부장제의 격렬한 반동이 있었다. 주로 조직된 종교단체, 남성 백래시, 권위주의 국가가 주도했다. 이러한 반동은 우리가 만들어 낸 여성의 진보와 우리가 얻은 자유를 강탈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오늘날 미국의 경우, 많은 주에서 여성들이 임신중절의 권리를 잃었고, 이미 끝났다고 생각한 투쟁을 다시 하고 있다. 어머니들은 불법적인 임신중절의 공포와 두려움을 기억해내고, 딸들은 그들의 몸에 대한 새롭고 강압적인 통제를 경험하면서 함께 재생산 자유를 요구하는 시위에 나서고 있다. 오늘, 나는 페미니스트와 사회주의자의 오랜 투쟁에서 중요한 일부지만 잊혀진 소비에트 역사의 한 시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나는 노동자, 농민, 여성 그리고 혁명가들이 권력을 잡았으며 사회의 모든 측면을 재조직하는 것이 가능해 보였던 위대한 역사적 순간으로 시간을 돌리려고 한다. 이 순간은 1917년 10월 러시아의 혁명 시기다. 1917년 10월, 소비에트가 권력을 잡았을 때, 혁명가들은 여성 해방에 대한 매우 급진적인 시각을 가졌다. 이는 가족의 완전한 변화, 사회에서 여성의 평등을 위한 진정한 조건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러한 시각은 많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이유로 부분적으로만 실행되었다. 하지만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 여전히 많은 교훈을 준다. 러시아 혁명가들은 네 가지 원칙에 기반한 여성 해방의 시각을 가졌다. 첫째로 “자유로운 사랑” 또는 “자유로운 결합”이다. 둘째로, 경제적 독립에 의한 여성의 해방이다. 셋째로, 가사노동의 사회화이다. 넷째로, 교회와 국가에 의해 통제되는 결합체로서 가족의 점진적이고 피할 수 없는 소멸이다. “자유로운 결합” 또는 “자유로운 사랑”은 19세기에 광범위하게 유행하는 단어였다. 이것은 상호 간의 끌림과 존중에 기반하는 관계와 결혼을 의미했다. 관계는 경제적 구속, 부성 통제, 의존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했다. 또한 종교적 권위 또는 국가에 의한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했다. 사람들은 누구를 사랑할지에 대해서 그들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했다. 더 이상 사랑하지 않거나 폭력을 당했을 때 이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어야 했다. 자유의지에 반해서 결혼을 하도록 또는 유지하도록 강요하는 외부의 힘도 없어야 했다. 사람들은 혁명 시기의 새로운 소비에트 사회에서 이렇게 토론했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그와 같은 “자유로운 결합”은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 평생, 몇 년, 며칠, 또는 아마 단지 몇 시간 동안일까?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결합의 기간에 대해 어떠한 수치심이나 가치도 부여해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이 기간은 오로지 두 사람이 동의하는 만큼일 것이었다. 그 당시 한 소비에트 사회학자는 이렇게 적었다. “결혼 유지 기간은 오로지 배우자에 대한 서로의 끌림에 달려있을 것이다.” 결합이 진정으로 “자유”롭기 위해서는, 사람들은 이혼할 권리(혁명 전에는 없었던)가 필요했고,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그들 자신을 부양할 수 있어야 했다. 특히나 여성들은 자신 또는 가족을 부양하거나 남성들로부터 독립할 수 있도록 동등하고 독립적인 임금에 접근할 수 있어야 했다. 볼셰비키는 여성의 노동 참여가 남성으로부터 경제적인 독립뿐만 아니라 부엌과 집 밖의 더 큰 세상을 만나게 하는 또 다른 혜택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었다. 여성들은 새로운 사회에서 전면적이고 동등한 참여자가 되면서, 집, 가사노동, 가족이라는 좁은 세상에 더 이상 속박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여성들이 남성과 동등한 조건으로 임금 노동에 진입한다면, 이전에 여성이 집에서 무료로 해왔던 가사 노동은 누가 할 것인가? 가사 노동(또는 마르크스주의자의 용어로 재생산 노동), 다시 말해 아동 돌봄, 세탁, 청소, 요리, 노약자 돌봄은 사회에 필수적이다. 여성들이 임금 노동과 더 큰 세상에 참여하기 위해 공적 영역으로 진출하자, 새로운 소비에트 국가는 대부분의 재생산 노동을 사회화하고자 계획했다. 재생산 노동은 더 큰 경제단위로 이전되어, 남성과 여성이 좋은 임금을 받으며 수행하는 존중받는 노동으로 전환될 것이었다. 사람들은 지역단위 공동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세탁소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돌봄 센터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었다. 게다가, 소비에트 국가는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한 강력한 모성보호 법률을 통과시켰고, 출산 전후 유급휴가를 제공했으며, 출산 이후 여성의 원직복귀를 보장했고, 모유를 수유하는 어머니들을 위한 보호도 제공했다. 그 당시에 이러한 법안들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했다. 재생산 노동의 사회화를 강조하는 이러한 시각은 여성과 남성이 가사노동을 동등하게 분담해야 한다는 현대의 페미니스트 요구와 달랐다. 혁명의 아이디어는 가사노동을 사회화하는 것이었지 가사노동을 둘러싸고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이는 또한 1970년대 여성들이 “가사노동에 임금을”이라는 슬로건 아래 국가가 여성들이 수행하는 가사노동에 임금을 지급하라고 했던 더 현대적인 요구와도 달랐다. 모든 사람이 아이 돌봄과 가사노동에 더 많은 시간을 쓰기 위해 더 짧은 시간 동안 일해야 한다는 현재의 생각과도 다르다. 새로운 소비에트 정부는 가사노동을 수행하는 공동체 기관들을 설립함으로써 전통적인 성역할을 완전히 해소하는 것을 추구했다. 소비에트 정부는 가사노동을 (임금을 받든 안 받든) 전통적인 가족 안에서 여성이 수행하도록 놔두는 것을 계획하지 않았다. 혁명적 소비에트 시각의 네 번째 요소는, 아마도 제일 급진적인 것으로서, 가족의 “소멸(러시아어로는 otmiranie)”이다. 마르크스주의자로서, 많은 소비에트 혁명가들은 가족이란 다양한 시대에 서로 다른 형태를 취한 가변적인 제도라고 믿었다. 가족의 형태는 생산양식에 결부되었다. 예를 들어, 봉건제도 하에서 농민의 가족은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자의 핵가족과는 다른 형태였다. 모든 가족 형태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 고유한 사회적 관계를 갖고 있었으며, 고유한 양육방식, 풍습, 전통, 습관을 갖고 있었다. 그 형태는 고정되거나 영원한 것이 아니었고 변화했다. 또한 자본주의 하의 가족 형태가 봉건제 또는 부족 사회의 형태와 다르듯이, 사회주의 하의 가족 형태는 그 이전 시대의 형태와 다를 것이었다. 사회주의에서 가족은 경제적 기능을 상실하게 될 것이었다. 가족은 더 이상 재산을 상속하는 조직이 아니고, 여성은 더 이상 남성에 의해 통제되지 않으며, 아이들은 더 이상 권리 측면에서 “적출”과 “서출”로 구분되지 않을 것이었다. 가족을 법으로 규제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었다. 사람들은 원하는 대로 결합하거나 헤어질 것이었다. 결혼할 필요가 없을 것이었다. 어린이는 부모의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지원과 돌봄을 받을 것이었다. 경제적 의존이 제거되면 경제 단위로서의 가족은 최종적으로 “소멸”할 것이었다. 부모와 어린이, 파트너 간의 사랑하는 관계는 계속해서 존재하겠지만, 국가나 종교에 의해 강제되는 형태는 아닐 것이었다. 가족에 대한 이러한 생각들은 법에 대한 혁명적인 생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볼셰비키와 당시 많은 혁명가들은 짧은 시간 내 국가와 법도 최종적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법학자들은 법의 본질을 둘러싸고 흥미로운 논쟁을 벌였다. 법은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지배하는 명시된 권력을 표현하는가? 아니면 법은 계급 갈등의 결과인가? 사회주의에서 법은 얼마나 빨리 새로운 형태를 취할 것인가? 그들은 빈곤과 계급착취가 없는 사회에서 범죄가 대부분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궁극적으로 형법과 강압적인 국가권력은 불필요해질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회사와 사기업이 없어진다면, 회사의 권리를 규제하는 민법 또한 불필요하게 될 것이었다. 사회주의 법학자들은 얼마나 빨리 형법, 가족법, 시민법이 시대에 뒤떨어지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달랐지만, 사회주의에서 법에 관한 완전히 새로운 관계들이 발전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했다. 1918년 가족법 초안을 작성하는 데 기여한 청년 혁명가인 알렉산더 고이크바르크(Alexander Goikhbarg)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프롤레타리아 권력은 이러한 법전을 펴내는 데 있어서, 이에 아주 오래 의지하고자 하지는 않는다. 프롤레타리아 권력은 이 법들을 변증법적으로 구성하여, 하루하루 이 법들은 자기 존재의 필요성을 약화한다.” 즉, 법의 목적은 법 자체를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여성을 위한 이 새로운 삶의 비전에 가장 헌신적인 집단은 공산당 내 여성 부서인 ‘제노텔’이었다. 제노텔은 여성 당원들의 강력한 압박에 부응하여 만들어졌으며, 여성의 일상생활을 개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여성들의 고유한 이익을 위해 여성을 조직하는 데 헌신하는 별도의 조직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았다. 많은 당원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여성 ‘분리주의’ 개념이 부르주아 페미니즘과 관련이 있다고 보아 반대했다. 그들은 여성들이 당이나 노조와 같은 조직에 가입해야지 스스로를 특별한 집단으로 분리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노텔의 설립은 당 내 남성과 여성 공산주의자들 간의 치열한 싸움의 결과였다. 제노텔은 대의원회의와 지방위원회로 구성되었다. 대의원회의는 노동계급 여성과 농민 여성 가운데서 ‘대표자(delegatki)’를 선출하여 짧은 기간 동안 다양한 정부 부처에 배치함으로써 관리(govern)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게 만들었다. 많은 ‘대표자’는 정부와 당에서 주도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제노텔의 지방위원회들은 아동 돌봄 센터, 세탁소 및 식당을 설립하는 데 기여했다. 제노텔은 소련 전역에서 수십만 명의 여성을 조직했다. 그들은 여성 실업에 맞서 싸웠고, 성매매 근절을 위해 노력했으며, 노동하는 여성과 주부에게 교육을 제공했다. 1920년대에는 ‘비토비키(bytoviki)’라 불리던 제노텔 활동가들이 높은 장벽에 직면했다. 사회복지 서비스를 위한 국가 자금이 부족하고 여성 실업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수백만 명의 어린이가 제1차 세계대전, 내전 및 1921년의 심각한 기근으로 고아가 되었다. 또한 공산당 하층과 노조에서는 많은 남성이 여성 문제에 대해 그리고 여성을 조직하는 여성에 대해 여전히 적대적이었다. 법적 측면에서도 새로운 소비에트 국가는 급진적인 조치를 취했다. 소비에트 정부는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혁명적 비전을 법으로 담아 낸 ‘가족법’을 도입했다. 1918년 가족법은 수 세기를 군림해 온 가부장 권력과 교회 권력을 일소했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진보된 가족법이었다. 이 법은 세계 최초로 여성에게 완전한 법률적 평등을 부여했다. 종교적 결혼 대신 (전제적 러시아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시민 결혼 제도를 수립했다. 사람들은 원한다면 여전히 교회에서 결혼할 수 있었지만, 국가는 더 이상 종교적 의식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법은 어느 쪽의 배우자든 요청이 있으면 이혼을 허용했으며 여기에는 어떤 근거도 불필요했다. 남녀 모두에게 장애 및 가난에 대한 수당에 평등한 권리를 부여했다. 또한 사생(私生)이란 개념을 없애고 모든 아이들에게 결혼관계 안에서 태어났는가와 상관없이 부모의 지원을 받을 자격을 부여했다. 1920년, 소비에트는 세계에서 최초로 임신중지를 합법화하고 무료로 안전하게 병원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1927년에는 전국적인 격렬한 논쟁을 거쳐 법안이 더욱 급진적으로 바뀌었다. 새로운 형태의 파트너십을 권장하고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법적 보호를 제공하려는 노력으로 사실혼과 동거 관계를 결혼과 법적으로 동등하게 인정했다. 동거 관계는 결혼과 동일한 법적 권리를 부여받았으며, 따라서 사람들이 결혼할 필요를 줄였다. 이 법은 이혼 절차를 더욱 간소화시켰으며, 처리기관도 법정에서 등록 사무소로 옮겨졌다. 어느 배우자든 등록 사무소에 가서 간단한 양식을 작성하면 이혼이 성립했다. 만일 상대 배우자가 함께 출석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엽서로 이혼을 통지받았다! 이 규정은 유명한 소비에트의 “엽서 이혼”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급진적인 입법과 함께 개인적 태도와 도덕에서 급격한 변화는 여성에게 해방적인 영향보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심각한 사회 문제들을 일으켰다. 이혼이 너무 간단해서 많은 남성이 여러 번 결혼하고 이혼하며 각각의 여성에게 아이를 남기는 일이 흔해졌다. 1920년대 여성들의 높은 실업률 때문에 이혼은 특히 고통스러웠다. 많은 여성은 남편에게 의존하여 생계를 유지했다. 이혼한 여성들은 자신을 부양할 능력이 없었고 수당과 양육비를 받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상황이 어려운 여성들은 수당과 양육비를 청원하려고 필사적으로 법원에 몰려들었다. 대부분의 성매매 여성은 돌아온 참전 군인에게 직장을 뺏긴 뒤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노동자들이었다. 그들 중 대다수는 부양해야 할 자녀나 노인 부모가 있었고, 돈을 벌기 위해 길거리에서 자신을 팔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여성이 직장이 있더라도 공동식당, 세탁소, 보육 시설이 거의 없었다. 1920년대 정부는 제1차 세계대전과 내전 기간 동안 파괴된 경제를 회복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재건 시기에는 사회 서비스를 위해 투입할 수 있는 자원이 매우 적었다.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들도 새로운 법에 어려움을 겪었다. 농촌 가정은 여러 세대의 부계 가족이 함께 살았으며, 가부장적이었다. 그 가정의 재산 - 땅, 동물, 도구 - 은 확장된 가족에 의해 공동으로 보유되어 나눌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소는 절반으로 나눌 수 없었다. 농촌 여성은 마을에서 독립적으로 살 수 없었고 이것이 이혼을 매우 어렵게 했다. 마지막으로, 1920년에 임신중지가 합법화됐을 때, 대부분의 남성 법학자와 의학 전문가들은 물질적 조건이 개선되면 여성들이 임신중지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 생각은 허구로 판명되었다. 많은 여성이 임신중지를 했는데, 아이를 부양할 능력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특정 시기에 아이를 가지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공부를 원하는 학생, 일하고 싶은 여성, 여러 자녀를 키우는 어머니 등 많은 이가 가난하거나 물질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근거하지 않는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임신중지를 선택했다. 피임 수단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여성들은 임신중지를 통해 자신의 출산을 통제하고 싶었다. 임신중지 비율이 증가함에 따라 국가는 출생률 감소를 점점 더 우려하게 됐다. 1930년, 좌익 반대파와 우익 반대파에 맞서 치열한 싸움을 치른 끝에 스탈린은 당 내에서 절대적인 지도자로 등극하고 빠른 산업화와 농업집단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여성들은 기록적인 수치로 산업 노동에 참여하였고 대도시와 산업 도시가 급속히 성장했다. 수백만 명의 농민이 시골을 떠났다. 1928년부터 1937년까지 660만 여성이 노동 시장에 진입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여성이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노동계급의 상당한 부분을 형성한 경우는 없었다. 당은 “생산에 집중하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내세웠다. 이는 생활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끼쳤다. 모든 조직, 목표, 이상은 “생산주의”로 불리는 1차 5개년 계획을 달성하는 데 종속되었다. 같은 해, 중앙위는 다른 기관의 활동과 중복된다며 제노텔을 폐지했다. 여성 활동가들의 강력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당 지도자들은 그들에게 일상이나 존재(byt)에 관한 의제를 중심으로 조직하는 것을 그만두라고 지시했고, 대신 공장과 신규 집단농장의 생산량 증가에 집중하라고 지시했다. 여성들이 독립된 임금에 접근하게 된 시점에 자신들의 요구를 명확히 표현하고 일상생활을 새롭게 만들 수 있는 바로 그 조직을 상실한 것은 큰 모순이었다. 스탈린 시기에는 가족에 대한 국가의 태도에서 강력한 이념적 변화가 있었다. 산업화와 집산화는 전국적으로 대규모 동요와 사회적 혼란을 만들었다. 판사, 교육자, 사회복지사, 민병대는 길거리에서 발견되는 고아와 유기된 어린이들의 수에 점점 더 우려를 표했다. 국가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새로운 해결책을 찾기 시작하며, 초기 진보적인 시각을 버리고 더 억압적인 대안을 선호했다. 예전에는 청소년 범죄를 사회적 및 물질적 조건의 결과로 접근했던 법학자들은 이제 그것이 부모의 무책임으로 인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여성들은 본인의 자녀를 부양하지 않는 남성들을 찾아서 기소하도록 법원을 압박했다. 어떤 작가는 여성을 버리거나 그들을 “침대 파트너”로만 대우하는 남성들에 대해 “성폭력”으로 기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는 안정적인 가족을 옹호하고 남성의 무책임에 반대하는 대규모 선전 캠페인을 시작했다. 국가는 양육비 미지급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이혼 절차를 더 까다롭게 하는 새로운 법을 통과시켰다. “엽서 이혼”의 관행이 종료되었고, 법은 연속적인 이혼에 대해 점차 증가하는 수수료를 부과했다. 1936년에는 임신중지를 금지하고 임신중지 제공자를 처벌하는 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에는 여성들에게 더 많은 자녀를 낳도록 유도하는 강력한 물질적 인센티브가 포함됐다. 공식적인 국가 이데올로기는 이제 사회주의에서 가족이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거부했다. 선전은 이제 “강력한 사회주의 가족”을 강조했다. 공포통치 동안, 초기 혁명적 법학자 중 많은 사람이 “법적 허무주의” 또는 사회주의 아래서 국가, 법, 가족이 결국 사라진다는 사상을 퍼뜨렸다는 이유로 체포되고 처형되었다. 1930년대 말에는 스탈린과 당 지도자들이 혁명 초기의 사회적, 정치적 사상 가운데 많은 부분을 거부하고 되돌렸다. 거대한 역진은 부분적으로 전통적인 가족 유대와 책임을 부활시킴으로써 사회를 안정시키고자 하는 아래로부터 사회적 압력이 낳은 결과였다. 하지만, 당 지도자들 또한 가족과 안정된 결합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이데올로기적 선택을 하면서 초기 혁명적인 시각을 거부했다. 압도적으로 여성 대다수는 임신중지 범죄화를 지지하지 않았다. 여성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생식력을 통제하려고 노력했고, 음지로 밀려들었다. 출생률이 일시적으로 증가했지만, 여성들이 위험한 불법 임신중지에 의존하면서 곧 다시 감소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국가는 초기 해방적인 시각의 모든 요소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여성들은 기록적인 수치로 노동에 참여했다. 그들은 이전에 남성들에게 맡겨졌던 산업과 전문직에서 숙련직 일자리를 얻었다. 국가는 보육 시설, 공동식당, 세탁소를 만들었다. 이러한 서비스는 소련 생활의 고정된 특징이 되었고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많은 사람은 직장이나 학교 내에 있는 비싼, 보조금을 받는 식당에서 주로 밥을 먹었고, 이는 여성들의 요리 부담을 일부 완화했다. 그러나 여성들은 여전히 대부분의 가사노동에 대한 책임을 졌다. 성역할에 대한 문화적 태도는 느리게 변했다. 여성들은 오늘날 “이중 부담”이라고 부르는 것을 담당했다. 바로 임금노동을 하고 또 대부분의 가사노동을 수행하는 것 말이다. 소비에트가 처음으로 권력을 잡은 지 100년이 넘은 지금, 혁명적 비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이중 부담”의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임금 노동을 하면서 가족도 돌보는 여성들은 스트레스를 받고, 지쳤으며, 분노하고 있다. 자본주의 아래서 국가도 민간 기관도 양질이면서 저렴한 보육을 원하는 수요에 보조를 맞추지 못했다. 가사노동은 사회화되지 않았으며, 여전히 여성들이 주로 수행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두 가지 해결책을 제공하지만, 그 어느 것도 문제 해결에 충분하지 않으며 부유한 사람들에게만 효과적이다. 첫 번째는 부유한 가족이 가난한 여성, 이민자, 또는 저임금 노동자를 고용하여 가사노동을 맡기는 것이다. 두 번째는 가사노동이 레스토랑, 보육 시설, 세탁소, 가정부 및 노인 보호소를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비즈니스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 서비스들은 어느 정도 모든 가족이 의존하는데, 비용이 클수록 더 나은 질을 제공한다. 직장을 다니는 어머니의 어린 자녀들은 가족이 가진 자원에 비례한 돌봄을 받는다. 가사노동의 문제는 세계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수백만 명의 남성과 여성이 경제적 필요로 인해 자국과 가족을 떠나 다른 곳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다. 가사노동자, 보육노동자, 그리고 노인 돌봄 노동자들은 이제 자국에서 멀리 떨어진 국가의 서비스 부문에서 일하기 위해 국경을 넘는다.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가정부들은 파키스탄과 인도에서 왔다. 미국에서는 필리핀, 라틴 아메리카 및 카리브해의 여성들이 서비스 및 가사노동을 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법적인 서류나 보호 없이 불법으로 생활하고 있다. 그들은 자녀를 두고 가족을 떠나야만 한다. 이는 더 이상 해결책이 아니다. 100년 전 볼셰비키들은 여성해방이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하나의 전망을 가졌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는 이런 것이다: 어떤 종류의 체제가 소수의 엘리트뿐만 아니라 모든 여성을 해방시킬 수 있을까? 오래된 미국의 투쟁가 “Pass it On”의 가사로 말하자면: 자유는 날개 달린 새처럼 오지 않아 여름 비처럼 내려오지 않아 자유, 자유는 얻기 어려운 것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 해 그것을 위해 싸워야 해 밤낮으로 싸워야 해 그리고 모든 세대는 그것을 다시 얻어야만 해. [원문] https://www.leftvoice.org/womens-liberation-in-revolutionary-russia/ -
[성명] 김용균 5주기, 죽음으로 이윤을 만드는 자본주의체제에 맞선 투쟁을 결의한다‘서부발전과 고 김용균 노동자 사이에 실질적인 고용관계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서부발전은 산업안전보건법상 김용균의 사업주가 아니며, 산업안전보건법상 가중처벌 조항을 위반한 것이 아니다.’ 오늘, 사법부는 고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전 서부발전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1·2심 판결을 확정함으로써 원청 서부발전을 면죄했다. 김용균은 서부발전 소속 노동자가 아니기에, 서부발전은 김용균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는 취지다. 비정규직은 죽고 다친다. 김용균의 죽음 이전 5년간, 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죽고 다친 59명 중 57명이 비정규직이었다. 김용균과 동료들이 시설개선을 요구하고 또 요구했으나, 원청 서부발전은 그 어떤 조치도 없이 묵살했다. 이렇듯 원청 자본의 책임을 묻고 명문화하지 않는 한 죽음을 막을 수 없음이 명백함에도, 국가는 더 많은 죽음으로 이윤을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또 선언했다. 2023년 4월 말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산업재해 사망자는 2,223명으로 여전히 6명 이상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는 50인 이상 사업장 사고사망자는 오히려 늘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대폭 강화하고, 비정규직을 철폐하고, 중대재해 8할 이상이 발생하는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법 적용을 확대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원청책임 명문화와 손배가압류 철폐 요구를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짓밟았고, 이도 모자라 50인 미만 기업 중대재해처벌법 적용도 2년 연기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원내대표를 통해 조건부 동의 입장을 밝힘으로써 국민의힘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자본가 정당의 본질을 드러냈다. 2018년 12월 10일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 이후 5년이 흘렀지만, 자본은 여전히 저임금 불안정노동자들의 목숨으로 이윤을 쌓는다. 중대재해처벌법 개악을 막아내고, 노동자의 손으로 노조법 2‧3조를 다시 쓰자. 모든 산업현장에서 비정규직을 철폐하자. 죽음으로 이윤을 쌓는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에 맞선 투쟁을 다짐하자. 2023년 12월 7일 사회주의를향한전진 -
[우리의 투쟁] 3.8 여성파업 첫발떼기 토론회, “여성이 멈추면, 세상도 멈춘다”Instagram에서 이 게시물 보기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marchtosocialism)님의 공유 게시물 -
[충남지역위원회 성명] 김용균 5주기, 모든 '김용균들'의 투쟁을 충남지역에서 시작하자故김용균 노동자가 세상을 떠난 지 5년이다. 죽음 이후, 많은 이들의 투쟁이 있었다. 이는 발전 비정규직노동자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 발전산업 민영화 중단과 노동자 민중의 전력산업 통제, 모든 비정규직 철폐를 촉구하는 사회적 목소리였다. 그 결과 부족하나마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면 개정되었고, 당시 정부·여당은 발전소 연료·환경·설비·운전분야부터 직접고용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5년이 흐른 지금 민영화와 외주화, 비정규직화라는 죽음의 주범은 여전히 발전소 곳곳에, 또한 모든 일터에 있다. 발전산업 비정규직 노동자 직접고용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2023년 2월, 한국서부발전 원청 사장은 2심에서도 ‘김용균 노동자와 직접적인 고용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외주, 하청, 비정규직 제도를 유지함으로써, 국가와 자본은 오늘도 김용균들을 죽음으로 몬다. 발전노동자를 위협하는 것은 외주화, 민영화뿐만이 아니다. 심각한 기후위기로 석탄발전소를 폐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나, 국가는 그 어떤 고용대책도 내놓지 않는다. 2021년, 산자부가 작성한 '정의로운에너지전환을 위한 폐지 석탄발전소 활용방안 연구' 용역보고서는 2034년까지 최대 7,935명의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고 발표했다. 보령 1·2호기, 삼천포 1·2호기, 호남 1·2호기 등 석탄발전소 6기가 이미 폐쇄됐다. 석탄화력발전소 59기 중 28기가 2036년까지 폐쇄될 예정이다. 폐쇄 석탄발전소 30기 중 24기를 LNG발전으로 전환하더라도 4,911명이 해고위협에 놓인다. 이러한 위기는 비정규직, 그중에서도 2차 하청노동자들에게 가장 먼저 찾아온다. 석탄발전소 폐쇄 1막에서 해고된 노동자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였으며, 고용이 유지된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임금과 노동조건 모두가 더 나쁜 일자리로 이전했다. 2021년에는 발전소 폐쇄를 앞두고 고용불안에 시달리던 삼천포발전소 노동자가 자결하기도 했다. 또 다른 이름의 김용균이었다. 지금, 윤석열 정부는 죽음을 막자는 염원을 짓밟고 있다. 2024년 1월 28일 적용을 앞둔 50인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처벌법을 '대비가 부족하다'는 명분으로 또다시 2년 미루는 개악을 추진하고 있으며, 손배가압류 철폐와 진짜사장 책임을 요구하는 노동자 민중의 목소리를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짓밟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개악을 막아내고, 대통령 거부권에 맞서 노동자의 손으로 노조법 2‧3조를 온전히 개정하기 위해 싸우자. 단 한 명의 해고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결의로, 자본가 정부에 맞서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쟁취하자. 외주화와 민영화를 끝장내는 투쟁을 시작하자. 비정규직 철폐하고 발전산업 국유화 투쟁으로 나아가자.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충남지역위원회는 그 투쟁을 바로 충남지역에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정의로운전환을 위한 충남노동자행진’이 준비되고 있다. 부품처럼 쓰고 버려지는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위협에 놓인 발전소 노동자, 자본을 위한 산업전환으로 고용불안에 처한 금속산업 노동자,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손배가압류에 고통받는 노동자, 모든 '김용균들'의 투쟁을 시작하자. 그 길에, 충남지역위원회도 함께할 것이다. 2023년 12월 6일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충남지역위원회 -
[우리의 투쟁] 어린이 공공돌봄 파괴하는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어린이집 위수탁 해지 철회하라!Instagram에서 이 게시물 보기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marchtosocialism)님의 공유 게시물 -
[우리의 투쟁] 철도공사 자회사 노동자들 서울역 농성 돌입! 진짜사장 코레일이 자회사 차별 해결하라!Instagram에서 이 게시물 보기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marchtosocialism)님의 공유 게시물 -
9번째 책읽기모임 "아! 팔레스타인" 발제문 -
[주간 여성뉴스 브리핑] '여대 이력서는 읽지도 않고 거른다'1. ‘집게손가락’ 억지 논란에 편승한 넥슨 게임업계가 일부 남성 유저들의 페미니즘 혐오 정서에 편승해 사상검열을 계속하고 있다. 넥슨의 메이플스토리 홍보영상에서 ‘집게손가락’ 포즈 장면이 남성 혐오를 의미한다는 일부 유저들의 항의가 있었다. 단순 항의를 넘어 영상을 제작한 외주업체 여성 애니메이터를 향한 신상털기와 공격이 이어졌다. 넥슨의 또 다른 게임인 ‘던전앤파이터’ 오프라인 행사를 앞두고는 일부 유저들이 행사 참가자들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필수로 요구했다. 실제 이런 안내가 나온 뒤 특정 게임 유저들이 참가자의 페미니스트 성향을 파악한다며 SNS 글을 뒤져 온라인상에서 공격하기도 했다. 넥슨은 말도 안 되는 억지 논란에 곧바로 굴복하여 새벽 시간 사과문을 올리고 해당 영상을 비공개 처리했다. 넥슨의 이러한 반페미니즘 행보는 2016년 페미니즘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여성 성우 교체를 비롯해 올해 7월 프로젝트문 여성 작가 배제 사건 등 여성 혐오 세력에 편승한 것이다. 11월 28일 넥슨 본사 앞에서는 게임계 페미니즘 혐오몰이를 규탄하는 수십 개의 단체와 25,511명의 명의로 항의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기자회견에서 ‘집게손’ 모양이 ‘남성 혐오’를 상징하며, ‘페미’라는 반사회적인 여성 세력이 이러한 상징을 사용하고 있다는 음모론은 일부 ‘남초’ 커뮤니티가 날조해 낸 허황된 착각이라고 했다. 또한 이러한 혐오 몰이는 모든 페미니스트/여성을 위협하며, 이들에 대한 실제적인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더없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이러한 반사회적 여성 공격 ‘놀이’가 반복되는 이유는 오직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주체인 기업이 이들을 소비자로서 승인하고 힘을 키워주었기 때문이라고 비판하며, 집단적인 폭력과 ‘밥줄 끊기’를 통해 여성과 페미니스트를 침묵시키려는 반페미니즘적 공모에 맞서 페미니스트와 노동·시민사회는 투쟁을 이어갈 것임을 밝혔다. <기자회견문 및 참조 기사> https://www.womenlink.or.kr/statements/25349 https://www.newsclaim.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24839 2. “(페미 때문에) 여대 이력서 거른다” 채용 성차별 최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채용 실무자라고 하는 사용자의 노골적인 채용 성차별 글이 올라와 노동부가 실태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블라인드는 특정 회사 소속 여부를 이메일 주소로 확인하여 가입, 이용할 수 있는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다. 한 부동산 신탁회사 소속으로 표기된 익명의 사용자가 "우리 부서만 해도 이력서 올라오면 여대는 다 걸러버린다", "내가 실무자라 서류평가 하는데 여자라고 무조건 떨구진 않는데 여대 나왔으면 그냥 자소서(자기소개서) 안 읽고 불합(격) 처리"한다고 올렸다. 해당 글의 댓글에도 대기업 물류 업무를 전담하는 계열사 소속 이용자가 “안타깝지만 우리 회사도 그렇고 아는 애들 회사도 여대면 거르는 팀 많다"고 적어 실제 채용 성차별이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근로자를 모집하거나 채용할 때 남녀를 차별해선 안 된다”고 명시돼 있고 위반할 경우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여성들은 채용과정에서부터 일할 기회조차 갖지 못할뿐더러, 채용이 되더라도 임금격차와 승진배제를 당한다. 또한 직장 내 괴롭힘과 젠더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참조 기사> https://www.segye.com/newsView/20231130502541?OutUrl=naver 3. 케냐, 모호한 법과 제도로 위험한 임신중지에 내몰리는 여성들 케냐에선 모호한 법과 제도로 인해 매년 수천 명의 여성이 불법 임신중지 수술을 강요당한다. 임신중지는 식민지 시절 제정된 법 체계에서부터 불법이었다가 2010년 헌법을 통해 모체의 건강이 위험하거나 강간, 근친상간으로 임신한 경우에 한해 허용했다. 그러다가 2012년에 정한 합법적 임신중지에 대한 보건 종사자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졌지만, 1년 만에 취소되었고 보건의료 교육에 안전한 임신중지 훈련과정도 중단되었다. 암레프 국제대학교에서 생식 및 성 건강 전문가로 일하는 요아킴 오수르 교수에 따르면 지난 몇 년간 의료진이 임신중지 의료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체포를 당한 사례가 알려지면서 “보건 종사자들이 위험에” 빠졌다고 한다. 2004년에는 케냐 정부가 존 니야무 박사와 간호사 2명이 임신중지 수술을 한 것에 대해 태아 명을 살해한 죄로 사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12개월간 수감된 뒤에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난 니야무 박사는 “케냐에선 안전하지 않은 낙태 시술이 만연하다”며 여전히 법적 모호성과 가이드라인 부족으로 공공병원에서 안전한 임신중지 수술을 제공하지 않아 저소득층 여성이 가장 많은 피해를 본다고 지적했다. 에스더 파사리스 하원의원은 “부자들은 자녀들을 5성급 병원에도 데려갈 수 있고, 아무도 모르게 안전한 임신중지 수술을 받을 기회도 있다. 그러나 가난한 이들은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 아이의 엄마 이디스가 4,000케냐실링을 내고 불법 시술소에서 받은 임신중지 시술이다. 시술자는 그의 몸 안에 임신중지 유도약을 넣었고, 그게 끝이었다. “혼자였고, 고통이 심해서 일부러 벽에 몸을 부딪히곤 했다. 마치 출산 같았다.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현재 제 삶을 생각한다면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적 인권단체 ‘재생산권센터’에 따르면, 케냐에선 안전하지 않은 임신중지로 인해 매일 여성과 소녀 약 7명이 사망한다. <참조 기사> https://www.bbc.com/korean/articles/cjqp1q3q7gxo 4. “트랜스젠더는 병원 이용할 자격도 없나?” 보건복지부, 인권위 권고 불수용 결정 국가인권위원회는 트랜스젠더의 입원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라는 권고를 보건복지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2023년 1월 13일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현행법은 입원실을 남녀로 구별해 운영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트랜스젠더는 의료서비스에서 배제되거나 다른 환자에 비해 필요 이상의 비용을 지불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모든 사정을 사전에 예측해 트랜스젠더 입원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전국의 모든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일률적으로 권고하는 것은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회신했다. 다만 “법원의 성별정정 결정 여부, 환자가 느끼는 성 귀속감, 성전환 수술 여부 등 다양한 사항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입원실에 배정하도록 안내했다”고 복지부는 덧붙였다. 인권위는 이 같은 복지부의 소명에 대해 “복지부가 안내한 고려 사항이 주관적이고 포괄적이어서 병원마다 다르게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일선 병원에서 트랜스젠더가 의료서비스 이용 시 불이익을 당할 여지가 있다”고 지적하며 “보건당국이 트랜스젠더 대상의 의료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트랜스젠더가 겪고 있는 차별에 대한 이해와 개선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불수용 판단을 공표한 이유를 밝혔다. 국가는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에 상관없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합리적 지침을 마련할 의무가 있다. 복지부의 인권위 권고 거부는 ‘모든 사람이 병원 등 의료기관에서 안전하게 치료받을 권리’를 성별이분법으로 나누어 갈라놓는 현실을 앞으로도 계속 방치하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참조 기사> http://www.bos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11132 5. 영국에서 일하는 이주 돌봄노동자, 대규모 착취 상태에 놓여 영국 로버트 젠릭 이민부 장관이 이주 노동자의 부양가족 동반 금지 등 이주민 억제방안을 마련하자 공공서비스노조 유니슨(Unison)은 영국이 만성적 돌봄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도입한 이주 돌봄노동자들이 “대규모로 착취당하고 있다”고 밝히며 이주 돌봄 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요구했다. 노조는 간병 업무를 하는 돌봄노동자 중 일부가 최저임금의 절반도 안 되는 시간당 5파운드의 적은 임금을 받거나 수천 파운드의 부당한 수수료를 강요받고 추방 위협에도 놓인다고 했다. 아픈 이들을 돌보는 이주 돌봄노동자들의 임금에는 고객과의 약속을 기다리거나, 고객들의 집을 이동하는 시간이 포함되지 않는다. 한 노동자는 15시간을 일했지만 시급을 받은 시간은 약 6시간뿐이었다. 보츠와나에서 온 노동자는 주 6일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가정에서 간병 돌봄을 했지만 법정 최저임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았다. 이주 노동자들이 받는 부당한 대우는 임금 후려치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한 이주 노동자는 민간 돌봄 회사가 폐업하는 바람에 추방당할까 봐 걱정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직장을 잃은 이주 노동자는 60일 내에 다시 취업해야 추방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다른 노동자들의 경우엔 민간부문에서 NHS(national helth service 영국의 공공보건의료체계)로 이직하려고 하자 고용주가 ‘교육비’로 4,000파운드를 요구했고, 다른 노동자는 ‘문화소개비’로 395파운드를 요구받기도 했다. 영국 내무부가 간병 돌봄을 인력 부족 직종에 추가한 후 현재 영국 내 간병 돌봄노동자의 14%는 영국을 제외한 비유럽연합 국가 출신이며, 7%는 유럽연합 출신이다. 유니슨 사무총장은 “이주 간병 돌봄노동자가 없으면 시스템이 붕괴할 것이다, 노동자를 악마화하는 것은 사회적 돌봄 위기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노동권 보장을 요구했다. <참조 기사> https://www.theguardian.com/society/2023/nov/28/foreign-care-workers-invited-to-uk-exploited-on-grand-scale-says-union 6. 일본, 혼자 사는 노인 여성의 빈곤율 심화 최근 도교대학교 아베 아야 교수팀이 2018년 65세 이상의 1인 가구 여성 중 32%가 빈곤층에 속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빈곤층 : 가구 1인당 소득이 중위값의 절반 미만인 경우) 이는 30년 전보다 8%p 증가한 수치며 같은 연령대 1인 가구 남성의 빈곤율 23%보다 높다. 노인 여성 1인 가구는 주로 생계비에 못 미치는 유족연금으로 생활하는 반면 전통적 가족문화대로 자녀와 같이 사는 비율은 2022년 34%로 점점 줄고 있어 앞으로 일본의 노인 여성 1인 가구의 빈곤화는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남편이 사망한 후 유족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는 70대 여성은 “한 달 식비가 2만 엔(135달러)도 안 돼서 점심에는 값싼 파스타만 먹는다. 그래도 집과 옷장이 있어서 가난해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금으로 생활하는 많은 여성의 한 달 수입은 사회복지 수급자보다 낮은 경우가 많다. 저축도 부족하다.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75세 이상 1인 가구의 저축액은 대부분 500만 엔 미만이었다. 미국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NIPSSR)는 2030년에 75세 이상의 여성 1인 가구가 10년 전보다 130만 명 증가한 817만 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보 미오코 NLI 부연구위원은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일본의 노인 여성 빈곤화를 해결하려면 “40대 중반에서 50대 사이의 성별 임금 격차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2년 일본의 여성 노동자 평균 임금은 남성보다 21.3% 낮다. 지난 25년 동안 15% 정도 좁혀진 격차지만, 여전히 OECD 평균의 약 2배로 여성 노동자의 저임금이 심각하다. 일본에서는 시간제 등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고, 정규직이라 해도 여성의 근속기간이 남성보다 짧고 관리직 비율은 낮다. <참조 기사> https://asia.nikkei.com/Spotlight/Datawatch/Older-single-women-face-growing-risk-of-poverty-in-Japan 7. 스토킹 피해자 긴급 주거지원 내년부터 전국 확대 스토킹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맞춤형 지원책 중 하나인 긴급 주거지원 사업이 내년부터 전국 17개 시·도로 확대된다. 여성가족부는 「스토킹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시행(’23. 7월)에 발맞춰 상담‧긴급보호, 주거지원(긴급임시숙소, 임대주택), 치료회복 프로그램 등 스토킹 피해자 지원 시범사업을 연중 시행해 왔다. 스토킹 피해자에게 원룸·오피스텔 등 임시숙소를 지원하는 긴급주거지원 사업의 경우 현재 서울, 부산, 인천 등 전국 6개 시·도가 선정되어 운영 중이다. 여가부는 스토킹 피해자 맞춤형 지원 강화 방안을 이번에 발표하면서, 교대근무인력을 증원(기관당 3→4명)하여 야간·휴일 등 지원 공백이 없게 운영하는 등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편성했다고 밝혔다. 앞서 여가부는 ‘여성폭력 추방주간’(11월25일~12월1일)을 맞아 스토킹을 포함한 디지털성범죄, 교제폭력 등 신종범죄 대응에도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여가부의 스토킹 피해자 지원 예산은 올해 14억2,000만 원에서 내년도 23억7,600만 원으로 늘었다. 반면 디지털성범죄 예방교육, 성인권 교육, 성범죄자 재범 방지 교육, 가정폭력 가해자 교정치료 예산은 전액 삭감됐다. 뿐만 아니라 가정폭력상담소 운영 예산 역시 큰 폭으로 삭감됐다. 이처럼 정부는 피해자 맞춤형 지원을 하겠다면서도 여성 정책 전반에서 예산감축, 인력감원을 예고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갈등만 문제시할 뿐 폭력과 혐오가 발생하는 구조적 맥락은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발생하는 젠더폭력,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사후지원을 넘어 위계와 차별을 양산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피해자로 ‘드러난’ 이들만을 지원 대상으로 삼는 협소하고 불충분한 현재의 대책을 넘어서야 한다. <참조 기사> https://www.newspim.com/news/view/20231129000985 -
[번역] 전미자동차노조의 큰 승리: 미국 노동운동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편집자 주) 2023년 11월 12일 자로 레프트보이스에 실린 제임스 데니스 호프의 글을 번역해 소개한다. 원문: https://www.leftvoice.org/the-uaw-won-big-what-does-it-mean-for-the-u-s-labor-movement/ 완성차업체 빅쓰리(지엠·포드·스텔란티스)에 맞선 전미자동차노조(이하 UAW) 파업은 자동차 노동자들만의 승리가 아니었다. 전체 노동자계급의 승리였다. 10월 25일, UAW는 41일간의 피켓 시위 끝에 포드와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나흘 뒤에 GM과 스텔란티스도 거의 동일한 임금인상, 보너스, 복리후생 패키지에 합의함으로써 수십 년 만에 가장 중요하고 역동적이며 주목받았던 자동차 파업이 사실상 종결되었다. UAW 조합원들은 여전히 잠정합의안에 대해 토론하고 투표하고 있으며, 목표했던 모든 것을 얻지는 못했지만(실제로 미시간주 플린트 지엠공장의 잠정합의 부결이 보여주었듯이, 평조합원들이 주도권을 잡았다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잠정합의는 자동차 노동자들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실질적인 성과를 따낸 이번 잠정합의는 지난 15년 동안 빅쓰리에 양보한 임금과 복리후생의 상당한 회복을 의미한다. 노조는 4년 6개월의 계약 기간 동안 25%의 임금 인상(첫해 11%)과 타결 성과금 5,000달러를 확보했고, 향후 인플레이션으로부터 임금을 보호할 수 있는 생활비 조정제도(물가임금연동제)를 되찾았으며, 자동차 3사 모두에서 이중임금제 폐지를 향해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이처럼 임금 문제에서 승리한 것 외에도, 노조는 파업을 통해 세 자동차 회사 모두 대규모 투자로 생산시설을 확충하고 전기차·배터리 공장을 노조로 조직할 경로를 보장하게 함으로써, 자동차 산업이 전기차 생산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일자리와 임금을 보호할 안전장치를 확보했다. 여기에는 일리노이주 벨비디어 조립 공장의 재가동과 오하이오주 워런에 있는 울티움 셀 배터리 공장에서 기본 협약에 따라 약 1,000명의 노동자가 추가로 노조에 가입하는 것이 포함된다. 그러나 이번 잠정합의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성과는 공장폐쇄에 맞선 파업권을 포함시킨 것이다. 향후 정리해고가 현실화할 경우 파업으로 맞설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중대한 승리라 할 수 있다. UAW 파업은 단지 자동차 노동자들만의 승리가 아니다. 이 파업을 예의주시하고 주목해 온 전체 노동자계급의 승리이기도 하다. 파업에 나선 5만 명 이상의 UAW 조합원과 이들을 지지한 다른 모든 사람이 이루어낸 이번 합의의 성과는 노동자들이 조직하고 연대할 때 발휘할 수 있는 힘을 보여준다. 이번 파업은 모든 노동자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 가운데 많은 노동자들이 피켓 시위에 나와 UAW 편에 섰으며, 미국에서 한창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노동운동에 상당한 열기를 더했다. 이번 파업의 교훈을 배움으로써 노조들의 (나아가 새로운 노동운동 전반의) 힘과 전투성을 강화하는 것은 특히 정치적, 경제적, 생태적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이 시점에 조직된 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 모두에게 중요한 과제이다. 경찰이 면책특권을 갖고 살인을 계속하고, 성전환자와 여성들이 민주적 권리를 계속 박탈당하며, 미국이 자신의 힘을 해외에 강제하기 위해 수천억 달러의 세금과 수많은 생명을 낭비하고, 미국이 지원하는 폭탄이 가자지구에 계속 떨어지고 있는 지금, 착취만이 아니라 억압과 제국주의에 맞설 수 있는 노조를 건설하는 건 관건적인 과제다. 전체 계급을 위한 역사적인 파업 UAW 파업은 의심할 여지없이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에서 벌어진 가장 중요한 노동자투쟁들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이 파업은 진공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지난 몇 년 동안 노동자계급의 의식과 노동자투쟁에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2018년에 시작된 교사파업 물결부터 경찰폭력에 맞선 2020년 봉기, 팬데믹 이후 신규 노동자 조직화의 폭발적 증가, 2023년의 대규모 파업들(약 20만 명의 배우와 작가 포함)에 이르기까지 미국 노동자계급은 지난 40년간 반동적인 신자유주의 공세에 빼앗겼던 전투성을 서서히 재건해 왔다. 이러한 새로운 전투성과 계급의식 상승은 UAW 파업의 길을 열었고, 이 파업은 다시 새로운 노동운동의 성장을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는 파업 초기에 포드, 스텔란티스, 지엠에서 12,000명 이상의 UAW 노동자들이 작업장을 나섰을 때, 수천 명의 열렬한 지지자들이 합류하고, 곳곳에서 여러분의 투쟁이 곧 우리의 투쟁이라고 행동으로 말하는 노동조합, 조합원, 노동자들의 연대가 넘쳐나면서부터 분명해졌다. 실제로 파업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78%가 빅쓰리에 맞선 UAW를 지지한다는 걸 볼 수 있었는데, 이는 트럼프나 바이든의 지지율보다 훨씬 더 높은 것이었다. 그 후 UAW와 동맹세력들은 몇 주에 걸쳐 투쟁을 전개했고, 결국 UAW 조합원 3명 가운데 1명이 파업에 참여할 정도로 파업 규모가 커졌다. 다른 조합원들이 일을 계속하며 정규 임금을 받는 동안에도, 이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의 부름에 호응하여 자신의 생계를 희생하며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 용감하게 파업에 나섰다. 이들은 추위와 비를 무릅쓰고 정문 앞에서 행진을 벌임으로써 트럭과 배달 차량을 막아섰으며, 파업을 깨뜨리려는 관리자와 대체인력에 맞서 강고하게 피켓라인을 유지했다. 파업 참가자들이 사업장 입구를 막는 것을 금지하는 반노조법을 무시함으로써, 피켓라인은 노동자들이 사장의 권력뿐만 아니라 국가의 권력과도 맞서는 전쟁의 학교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전투 정신과 하루라도 더 싸우겠다는 헌신이 있었기에 UAW는 처음에는 바이든이, 다음에는 트럼프가, 그리고 나중에는 업계 전체가 이번에는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게 만들 수 있었다. 2007년 이후 고용된 노동자들에 대한 연금 제공이 빠졌다는 이유로 잠정합의를 부결시킨 미시간주 플린트 지엠 공장 노동자들의 조직적인 노력 또한 UAW 평조합원들의 전투성과 계속 투쟁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평조합원들의 전투성과 힘, 그리고 UAW의 새 지도자 숀 페인의 전투적인 수사는 이번 파업이 공격적인 파업이라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사실 이번 잠정합의는 이전 합의들에서 빼앗긴 것들을 되찾아오는 성격을 가졌다. 이번 파업에 돌입하기 전까지 UAW는 거의 20년 동안 뒷걸음질을 거듭했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정부의 구제금융 덕분에 간신히 명맥을 유지했을 때, UAW 지도부는 회사에 좋은 것이 곧 노동자에게도 좋다는 잘못된 믿음으로 일련의 거대한 양보에 동의했다. 이러한 노사협조주의(business union approach)는 2023년 초 페인이 집권할 때까지 UAW의 지배적인 활동 원칙이었으며, 수십 년 동안 전투성과 힘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당연히 빅쓰리는 이 기회와 연방정부로부터 받은 수십억 달러를 이용해 기록적인 이익을 축적했지만, 그 중 어느 것도 노동자들에게 돌려주지 않았다. 2019년 마침내 UAW가 파업에 돌입했지만, 한 회사에서 파업을 벌여 전형을 만들려는 구태의연한 모델을 따랐다. 이는 앞서 11년간의 손실을 되돌리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수준의 저조한 임금 인상만을 따냈을 뿐만 아니라 공장폐쇄와 대량 정리해고로 이어져 조합원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상처를 남긴 실패작이 되었다. UAW의 새 지도부는, 양보한 것들을 되찾고 정리해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파업을 조직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조합원들의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영감을 줄 수 있는 대담한 요구를 제시하고, 세 완성차업체를 동시에 공격하며, 무엇보다도 전체 노동자계급의 연대를 구축해야 했다. 그리고 바로 이게 지도부가 한 일이었다. 계급투쟁과 연대의 수사가 동반된 전례 없는 대담한 요구들을 공격적으로 제시함으로써 UAW는 미국 전역에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투쟁으로 간주하면서 주목하는 파업을 건설할 수 있었다. 페인과 UAW는, 빅쓰리의 CEO와 경영진을 포함한 슈퍼리치에 대한 정기적이고 일관된 비난을 통해, 자동차 노동자들의 생활수준과 복지에 대한 공격이 전체 노동자에 대한 더 큰 공격의 일부라는 점을 주목하게 할 수 있었다. 또한 모든 노조 지지자가 알고 있는 사실, 즉 노조원들이 거두는 성과는 모든 노동자의 생활수준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로 포드가 제시안을 낸 지 며칠 후, 도요타와 혼다는 UAW의 조직화 시도를 막고 여전히 타이트한 노동시장에서 빅쓰리와 경쟁하기 위해 생산직 노동자 임금을 각각 9%와 11% 인상했다. 페인은 연설할 때마다 파업에 대한 언론의 관심을 이용해 조합원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자계급을 대상으로 불평등, 착취, 노동의 존엄성, 연대의 힘과 파업이라는 무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6만 명 이상의 청중이 실시간으로 참여하는 정기적인 페이스북 이벤트를 통해 기업들이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방식에 대해, 미국 안에서나 국제적으로나 노동조합 간 연대와 노동조합과 미조직 노동자 간 연대의 중요성에 대해 말했다. 또한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노동자들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11월 9일 일리노이주 벨비디어에서 열린 집회에서 페인은 일터로 돌아갈 UAW 조합원들에게 다시 한 번 이 점을 강조했다: “노동자들이 경제를 운영한다. 그리고 만일 경제가 노동자계급을 위해 작동하지 않는다면, 우리 노동자들은 경제를 중단시킬 힘이 있다.” 이러한 계급적 분노와 연대의 표출은 외국의 노동자들, 때로는 심지어 다른 기업의 노동자들까지 경쟁자로 간주하는 미국 노동조합운동 내 노사협조주의와 노동국수주의 정치와 정면으로 상충한다. 실제로 페인은 다른 자동차 회사의 미조직 노동자들을 경쟁자가 아니라 미래의 UAW 조합원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직접 말하며,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려는 사측의 시도를 약화시켰다. 또한 그는 극심한 착취에 맞선 멕시코 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을 자주 언급하며, 사측이 공장 폐쇄와 해외 이전 위협을 사용하지 못하게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노동자들이 국제적으로 서로 경쟁하는 대신 전 세계 노동자계급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좋은 합의를 따내거나 빅쓰리로부터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전략이 아니었다. 여러모로 이 파업은 활력을 되찾고 투쟁하는 UAW의 시작점이 될 수 있는 첫 번째 전투였다. 페인을 비롯한 새로운 지도부는 UAW를 지속적으로 성장시키고 뻗어가는 새로운 노동운동에 힘을 불어넣기 위해 이번 파업의 모멘텀을 활용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보인다. UAW는 도요타, 현대자동차, 테슬라 등 다른 자동차 회사에서도 적극적으로 조직화에 나설 계획임을 분명히 밝혔으며, 이미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 테슬라 공장의 노동자들은 UAW와 함께 조직위원회를 구성했다. 불과 4년 전만 해도 불가능해 보였던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UAW는 빅쓰리와의 단체협약 만료일을 모두 4월 30일로 설정하여, 향후 파업이 5월 1일 메이데이에 맞춰 시작될 수 있도록 했으며, 전국의 다른 모든 노조에도 동일한 조치를 취하여 함께 파업에 들어갈 수 있게 하자고 촉구했다. 이러한 움직임이 현실화한다면 연대파업을 금지한 태프트-하틀리 법에 대한 도전이며 이를 크게 약화시킴으로써 노조의 정치적 힘을 상당히 증가시킬 것이다. 진정한 계급투쟁 노동운동을 구축하려면 자기 조직화가 필요하다. 이번 파업과 이를 통해 얻은 상당한 성과는 이전 UAW 지도자들의 실패한 노사협조주의 전략에서 벗어난 전환의 결과를 분명히 보여준다. 하지만 거의 40만 명의 조합원을 가진 UAW 같은 거대한 조직을 변화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위로부터 내려오는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페인의 큰 야망과 계급투쟁적 수사, 전투적인 전 위원장 월터 루써에 대한 존경에도 불구하고, UAW는 여전히 관료적 지도부에 의해 통제당하고 제한돼 있으며, 그 결과 조합원들의 자기조직화가 계속 방해받을 뿐 아니라 제국주의 민주당에 여전히 묶인 상태로 있다. 예를 들어, “억만장자 계급”에 대한 페인의 비판은 대부분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2020년 예비 선거 캠페인 때 했던 수사에서 가져온 것이다. 또한 페인이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당 정치인들과 점점 더 친밀한 관계를 가져가는 것은 하향식 관료주의 노조 모델에 내재된 모순을 보여준다. 최근 페인이 바이든을 비공식적으로 지지하면서 절정에 달한 민주당과의 관계는 UAW와 노조 운동에 치명적인 위험요소를 제기한다. 민주당은 노조가 자신의 힘을 완전히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노조 지도부를 더 가깝게 묶어 내려고 국가가 사용하는 도구다. 이번 파업에서도 우리는 바이든이 어떻게 파업에 대한 “지지”를 활용하여 빠른 합의를 압박하려고 시도하는지, 또한 어떻게 자신을 노동자계급의 관심사에 신경 쓰는 진보적 인사로 이미지 개선하려고 시도하는지를 보았다. 이러한 모순은 파업 캠페인 내내 고스란히 드러났다. 파업 전술로서 스탠드업 파업(노조가 지정하는 공장만 파업에 돌입하는 전술 -옮긴이)은 사측이 매번 우왕좌왕하게 만들고 종종 서로 경쟁하게 만드는 혁신적인 교란 방법이었다. UAW는 매주 새로 파업에 추가되는 공장을 발표함으로써 언론의 관심을 계속 유지하고 파업을 주요한 화젯거리로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전술은 파업에 참여할 수 있는 UAW 조합원의 수를 제한하기도 했다. 엔진, 차축, 변속기 공장 등 가장 중요한 생산현장 대부분은 계속 가동되었기 때문에, 빅쓰리 기업들은 대부분의 생산을 중단 없이 계속할 수 있었다. 이는 파업의 모든 힘이 발휘되지 않았음을 의미하며, GM에서의 전면적인 연금 원상회복 등 노조가 더 많은 요구를 쟁취하지 못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또한 파업이 대부분 위로부터 억제되고 통제되었기 때문에 많은 노동자들이 투쟁과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로 UAW 조합원들은 파업 시작 시기와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 또한 잠정합의들이 논의되는 동안 업무에 복귀하는 것도 사전에 평조합원들 사이에서 어떤 논의나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되었다. 좋은 단체협약을 따내는 것도 중요하고 노조에는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지만, 노동운동과 평조합원의 자기조직화는 사측과 자본의 횡포에, 즉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윤을 목적으로 한 줌 소수가 생산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방식에, 실제로 도전하기 위해 필요한 힘을 구축하는 데서 핵심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파업이 각 사업장의 파업위원회에 의해 아래로부터 주도되어야 한다. 어디서 언제 어떻게 파업을 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조합원들의 공개적인 토론과 논의를 통해 내려져야 한다. 교섭 과정 내내 모든 협상이 조합원들에게 공지되고 공개돼야 한다. 이를 루이지 모리스와 나는 작년에 이렇게 설명했다. 진정으로 민주적인 노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평조합원들에게 최대한 많은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노조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업장의 모든 조합원들이 정기적으로 토론하고 논쟁하며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회의체를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공개적이고 투명한 교섭을 의미하며, 현장대표자 및 교섭위원을 조합원들이 직접 선출하고 언제든 소환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고, 언제든 소환될 수 있으며, 평균임금 이하를 받는 지역 및 전국 단위 노조 지도자들을 현장으로부터 직접 선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중요한 것은 언제 파업을 접고 업무에 복귀할 것인지는 단지 지도부와 교섭팀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자의 권리라는 점이다. 페인은 포드에서의 업무 복귀가 아직 잠정합의에 이르지 않은 다른 자동차 회사에 압력을 가하기 위한 전술적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사실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더 많은 것을 위해 계속 싸울 수도 있었던 노조의 입지를 약화시켰으며, 또한 전체 노동자가 결정했어야 하는 문제였다. UAW는 억압과 제국주의에 맞서 싸워야 한다 UAW와 미국 노동운동의 가장 큰 맹점은 아마도 국가 억압에 대한 지속적인 침묵과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지지, 그리고 때로는 공모일 것이다. 스타벅스 노동자들의 트랜스젠더 권리 옹호나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항만노조(ILWU)의 지속적인 옹호 활동 같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대다수 노조는 임금, 복리후생, 노동조건 등 소위 먹고사는 투쟁에만 집중하면서 정치 문제를 둘러싼 국가와의 대립을 피해 왔다. 노동조합이 정치에 개입하는 경우는 대개 노동자 권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법안에 관한 것이고, 아니면 단순히 선언문만 내는 수준이다. 이러한 소심함은 부분적으로 국가와 민주당이 노동조합을 역사적으로 포섭한 산물이다. 노동조합이 평화를 유지하고 이념적으로 순응하는 대가로 국가와 민주당은 노동조합에 합법성을 부여하고 제한된 보호를 제공했다. 그 결과 노동운동은 상당히 위축되었고, 남은 노동운동 또한 점점 더 관료화되고 정치적으로 약화되었다. 더 이상 모든 노동자의 정치적 이익을 대변하지 않게 된 노동조합은 반세기 이상 계급투쟁 전략에서 계급화해 전략으로 후퇴해 왔다. 노동을 국가의 이해관계와 화해시키려는 이 프로젝트는 노동조합, 특히 미국 노동조합의 이해관계가 국가의 성쇠와는 직결돼 있지만 국내외의 광범위한 억압과 착취 문제와는 별개인 것으로 보는 이데올로기적 관점을 낳았으며, 또한 이 관점에 의해 계속해서 강화되고 있다. “억만장자 계급”을 비판하는 페인과 같은 진보적인 지도자들이 성조기로 장식된 무대에 당당히 서서 전미자동차노조(UAW)가 “민주주의의 무기고”를 채우기 위해 어떻게 무기 제작에 기여했는지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거나 미국 대통령과 함께 행복한 셀카 동영상을 찍을 때, 그들은 광범위한 노동자계급 투쟁에 대한 국가의 탄압을 감추고 미국 노동자들과 미 제국주의 폭력의 피해자인 노동자들 사이에 쐐기를 박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 점령 확대와 가자지구에서 미국과 그 동맹국이 제공한 무기로 자행된 11,000명 이상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 UAW가 계속 침묵하고 있는 것을 통해 가장 잘 드러난다. 이러한 사건에서 어느 한쪽 편을 들거나 노동의 힘을 이용해 잔학 행위의 가해자들과 맞서 싸우는 것은 노동조합의 영역 밖이라는 주장은 노동자계급이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곳, 즉 이미 잘 조직되어 있고 정의를 위해 엄청난 혼란을 야기할 잠재력을 가진 작업장에서 노동자계급을 더욱 분열시킬 뿐이다. 전 세계 노동자들의 안녕과 삶을 위협하는 위기와 전쟁의 시기에, 노조가 민주당과 국가의 이념적, 구조적 사슬에서 벗어나 노동의 힘을 이용해 전체 계급을 위한 정치투쟁을 벌이는 방법을 다시 배우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UAW 파업이 거둔 의미 있는 승리와 그 덕분에도 점점 더 힘을 얻고 있는 노동운동은 민주당에 대항하는 독립적인 노동자계급 대안을 구축할 수 있는 조건이 무르익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는 구세주가 우리를 위해 이 일을 해줄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 투쟁과 자기조직화를 통해 우리 스스로 해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