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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여성파업 1] 아이슬란드 - 여성이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편집자 주] 지난 12월 6일 열린 “여성파업 첫발떼기 토론회”를 비롯해, 2024년 3월 8일 여성파업을 조직하기 위한 활동이 여성파업조직위원회 주도로 진행되고 있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노동자계급의 여성해방 운동을 건설하기 위한 여성파업 시도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며, 이 운동의 현황과 과제, 전망을 짚어 보기 위해 세계 여러 나라 여성파업 사례를 돌아보고자 한다. 1975년 아이슬란드 여성파업에서 시작해 지난 십수 년 사이에 폴란드, 스페인, 아일랜드, 스위스, 아르헨티나 등 곳곳에서 여성파업이 일어났다. 각각의 사례는 그 자체로 세계 여성 노동자의 현실과 투쟁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넓혀 주기에 충분하다. 또한 여성파업의 양상과 결과, 다양한 쟁점을 훑어보면 우리의 과제에 대한 인식도 더 풍부하게 채워 갈 수 있을 것이다. 오로라와 화산, 빙하의 나라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에 여행을 간 사람들은 ‘마치 다른 행성에 온 듯한 기분’을 느낀다고 한다. 한국과 비슷한 면적의 아이슬란드는 천혜의 자연이 있고 1인당 GDP가 세계 8위인 부유한 나라다. 이보다 더 유명한 점은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나라’라는 것이다. 2006년부터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글로벌 젠더 격차 보고서’를 보면 아이슬란드는 2023년까지 14년 연속 성평등 국가 세계 1위1)를 차지했다. 그런가 하면 여성과 관련해 아이슬란드에 붙는 ‘세계 최초’의 수식어가 한둘이 아니다. ‘세계 최초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여성 대통령(1980년)’, ‘세계 최초로 의석을 얻은 여성정당(1983년)’, ‘세계 최초로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대통령(2009년)’ 등이 있다. 한국이 OECD 국가 중 27년째 여성의 저임금으로 성별 임금 격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과 견주어 보면 아이슬란드는 마치 다른 행성인 듯하다. 1) Global Gender Gap Report. 남성과 여성의 권익을 비교하는 통계로 임금, 교육, 의료 등 분야를 기준으로 남성의 권익을 1로 두고 여성의 권익을 계산한 지수. 조사대상 146개국 중 0.9를 넘는 나라는 0.912를 기록한 아이슬란드 하나뿐이었다. 한국은 105위로 0.680. 이러한 나라에서 최근 국제적으로 떠들썩한 사건이 있었다. 2023년 10월 24일, 성인 여성의 90%가 온종일 ‘여성파업’을 벌인 일이다. 성평등 모범 국가로 국제적 부러움을 사는 아이슬란드에서 거의 모든 여성이 파업했다니 놀라운 뉴스다. 무엇 때문일까? 아이슬란드는 여성의 파라다이스라 불리지 않는가? 파업 참가 여성들은 19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여성파업의 역사를 이야기했다. 아이슬란드 여성의 차별과 억압, 저항의 역사를 살펴보자. 사회를 뒤흔든 1975년 10월 24일 여성이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 2023년 현재 인구 약 39만 명인 섬나라 아이슬란드는 무인도였던 시기를 지나 870년경 바이킹이 세운 나라다. 과거부터 남성이 바다에 한참 동안 나가 고기를 잡고 여성은 사냥부터 농사일, 모든 집안 살림과 육아를 도맡아 하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오늘날 정치적으로는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다른 북유럽 국가들과 달리 보수 우파(우파 연정)가 정권을 잡아 왔다. 경제는 척박한 환경 탓에 비교적 더디게 성장했다. 여성들이 다닐 수 있는 일터는 생선 공장 정도였다. 아이슬란드에서는 1915년부터 여성의 참정권이 보장되었고, 1931년에는 강간, 근친상간, 산모의 건강에 위협이 되는 경우에 임신중지가 합법화됐다. 국제노동기구(ILO)의 8대 기본협약 중 하나인 ‘동일 가치 노동에 대한 남녀근로자의 동일보수에 관한 협약(1951년)’을 비교적 빠른 시기인 1958년에 비준했다. 1961년에는 평등임금법(Equal Pay Act)을 제정했다. 겉으로 보면 여성의 권리가 점진적으로 확대되었고 그만큼 차별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1915년부터 여성 참정권이 보장되었지만 60년간 의회에 진출한 여성은 단 9명에 불과했다2). 무엇보다 생산과 재생산 노동영역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했다. 1960년대 여성 노동자의 임금은 남성 노동자 대비 60% 미만으로 많은 여성들이 저임금에 시달렸다. 특히 여성이 많은 직종의 임금이 낮고 고용이 불안정했다. 가사와 돌봄 노동은 순전히 여성의 몫이었다.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34%에 수준에 그쳤다. 여성은 집 안에서 온갖 무급 재생산 노동을 하느라 직장에서 일할 수 없었고, 일해도 남성보다 적은 임금과 나쁜 노동조건에서 차별당하며 일하다 퇴근해서 다시 가사돌봄 노동에 시달리는 게 대부분 여성의 일상이었다. 여성은 법과 다른 현실에서 살아갔다. 2) 1975년 기준 여성 하원의원은 전체 의석의 5%인 3명이었다. 그러다 68혁명으로 대표되는 1960년대 국제적 저항 운동의 물결이 아이슬란드의 여성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여성들은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거대한 노동자 투쟁, 학생운동, 사회운동과 더불어 여성운동의 성장과 여성해방 사상 등에 영향을 받으며 여성운동을 성장시켜 갔다. 여성 차별과 억압의 현실로 인해 점점 더 많은 여성이 문제의식을 갖고 저항을 통한 변화를 꾀했다. 1970년대가 되자 5대 여성단체의 회원 수가 전체 여성의 3분의 1에 이르렀다. ‘레드스타킹스(Redstockings)’는 여성단체 중 하나였다. 레드스타킹스는 1970년에 결성된 페미니스트 단체로 노동절인 5월 1일 빨간 스타킹을 신고 ‘인간이다! 상품이 아니다!’라는 슬로건으로 행진하며 대중 앞에 등장했다. 레드스타킹스는 20~30대 여성 사회주의자들이 주축이었으며 자본주의에 맞서는 계급투쟁과 여성해방의 과제가 연결되어 있다는 정치적 입장을 채택하고 있었다. 이들은 성별 임금 격차 해소, 직장 내 젠더평등 등 노동의 권리와 임신중지권, 유치원 돌봄의 확장 등 재생산권을 위해 투쟁했다. 1970년 첫 총회에서부터 ‘아이슬란드 여성 총파업’을 안건으로 제출했는데 이는 자본주의에서 벌어지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여성의 주체적 파업투쟁으로 깨뜨리자는 정치적 표현이었다. 그리고 5년 후 그 목표는 현실이 되었다. UN은 1975년을 세계 여성의 해(International Women’s Year)3)로 지정했다. 이를 준비하는 1974년 6월 여성단체 간담회에 초대받은 레드스타킹스는 그 자리에서 ‘여성파업’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 제안은 거절당했고 그 후 이들은 노동자에게 다가갔다. 1975년 1월에 최저임금을 받는 여성 노동자들이 가입한 노동조합을 찾았다. “여성이 일터에서의 노동력과 가정에서의 재생산 노동의 힘을 세상에 보여 주기 위해 1년에 하루, 모든 여성이 파업을 벌이자!” 레드스타킹스의 제안에 여성 노동자들이 열광했다. 3) 유엔은 1975년 '세계 여성의 해' 기간의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로 기념하기 시작했다. 레드스타킹스와 노동조합은 더 많은 여성 노동자를 만나며 여성파업을 조직했고 아래로부터 긍정적이고 상당한 여론과 지지를 만들어 갔다. 5월 총리실 주관으로 열린 세계 여성의 해 운영위원회는 그 구성에 노동조합과 레드스타킹스를 포함시켰다. 이 기구는 다양한 계급과 계층, 정치적 입장의 참여와 합의를 우선해 여성파업 제안을 수용하면서 그룹별 대표자, 교사 노동자, 미혼모 등 8명의 이름으로 여성파업을 정식 상정했다. 노동자는 일터에서 일손을 놓거나 휴가를 쓰고, 자영업자는 문을 닫거나 가게에서 나서고, 전업주부는 집안일에 손을 떼기로 했다. 그러자 일부 우파 여성과 여성단체가 반발했다. 이들은 여성 노동자들이 파업 행동으로 사업주에게 해고될까 봐 걱정된다는 핑계를 대며 ‘파업’의 급진성에 반대했고 결국 위원회는 ‘파업(Strike)’ 대신 ‘휴일(Day Off)’로 변경해 합의에 이르렀다. 모든 노동조합이 협력해 날짜를 10월 24일로 정했다. 6월 20일과 21일 레이캬비크(Reykjavik)에서 열린 여성회의에서 아이슬란드 말로 '크베나프리(Kvennafri)'라고 부르는 10월 24일의 선언문4)을 채택하며 아이슬란드의 첫 여성파업이 결정됐다. 이날을 주도한 세력이 모두 페미니스트도 아니고 급진적이지도 않았지만, 모든 세력이 결집하면서 더 많은 여성이 이날을 기다렸다. 사람들은 홍보물에 실린 ‘여성 휴일(Women's Day Off)’을 ‘여성파업(Women's Strike)’이라고 불렀다. 4) [전문] 1975년 10월 24일 선언문 1975년 6월 20일과 21일 레이캬비크에서 열린 여성 회의(Women's Congress)는 여성이 해온 일의 중요함을 보여주기 위해, 다가오는 유엔의 날인 10월 24일 하루 '데이 오프'를 실시할 것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왜 이러한 제안이 모든 연령의 여성들과 정당들이 모인 의회에서 발의되고 가결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많지만 여기에 먼저 몇 가지를 말하겠습니다. · 누군가가 형편없을 정도로 보수가 적은 직업을 필요로 할 때, 그 구직 광고는 여성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통상과 무역에서 여성의 평균 임금은 같은 직종의 일을 하는 남성의 평균 임금의 75%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아이슬란드 노총(Icelandic Trades Union Congress) 산하의 주요 노동조합에는 여성 대표가 없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의 월평균 소득 차이가 아이슬란드 크로나로 30,000(한화 약 270,000원)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농부의 아내들은 농부 노조의 정식 회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주부인 여성들에게 흔히 "가사노동은 일이 아니라 그저 하우스키핑(가사유지)에 불과"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보육원이 현대사회에서 필수적인 부분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거나 이해하지 않으려는 권위 있는 남성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농장에서 농부 부인의 노동 기여도는 아이슬란드 크로나로 1년에 175,000(한화 약 1,600,000원) 이상으로는 인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취업지원자가 남성인지 여성인지가 개인의 교육 수준이나 역량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주부의 가사노동 경력은 노동 시장에서 그 어떠한 가치로도 고려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지역사회에 대한 여성의 기여도가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가오는 10월 24일에 '데이 오프'함으로써 여성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사회에서 우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자는 것입니다. 국제 여성의 해에 이 '데이 오프'의 날을 기념할 만한 날로 만들기 위해 함께 연대합시다. 평등, 발전, 평화 1975년 10월 24일, 직장에서 집에서 여성들이 일제히 일손을 놓았다. 여성의 90%가 파업에 참여했다. 여성이 멈추자 사회가 멈췄다. 거의 모든 교사가 여성인 보육원이 문을 닫았다. 마찬가지로 교사의 65%가 여성인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휴교했다. 주로 아이들이 이용하는 기관도 문을 닫았다. 각종 상점과 가게가 문을 닫았다. 생산가공 공장이 멈췄다. 전화 서비스가 중단됐다. 우체국 업무가 멈췄다. 남성 항공기 조종사는 있었지만, 승무원이 없어 항공사 여객기 운항이 중단됐다. 은행원이 없어 임원들이 커피를 직접 끓이고 창구업무를 봤다. 조판공이 대부분 여성이라 신문이 발행되지 않았다. 방송국에서는 남성 아나운서와 스태프가 남아 여성파업을 보도했다. 남성 디제이가 진행하는 라디오에서는 여성이 작곡했거나 여성을 위한 음악 사이로 어린아이가 노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농촌의 여성파업 상황을 묻기 위해 디제이가 시골 마을 청취자의 집에 전화를 걸자 아이를 돌보던 남성들이 전화를 받았다. 여성 공연자가 없어 공연도 줄줄이 취소됐다. 여성이 멈추자 세상이 멈췄다. [사진: 1975년 아이슬란드 여성파업] 집에서도 여성이 일을 멈추니 남성들이 집안일과 육아, 가족 돌보기를 해야 했다. 남성 노동자들은 아이를 데리고 출근하거나 아예 직장에 나가지 못했다. 고용주들은 아이들에게 제공할 과자와 사탕, 연필과 종이를 사다 날랐다.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남성들은 문을 연 가게를 찾아다녔다. 마트에는 조리가 편리한 소시지와 과자가 일찌감치 품절됐다. 저녁이 되자 주택가 거리마다 연기와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남성들이 식사를 준비하며 음식을 태운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첫 여성파업 집회는 오후 2시 5분에 시작됐다. 2시 5분은 당시 일터에서 남성과의 임금 격차를 비교해 여성 노동자의 유급노동이 끝나는 시간을 계산한 것이었다. 여성들은 광장으로 뛰쳐나왔다. 수도 레이캬비크에 있는 렉자르토르그 광장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여성 인파로 가득 찼다. 광장 인근 거리와 골목까지 여성들이 가득 메웠다. 처음 열린 여성파업 집회에 참여한 인원은 2만 5,000명에서 3만 명으로 당시 인구의 무려 10%가 넘는 규모였다. 다른 주요 도시에서도 많은 여성이 같은 시간에 여성파업 집회를 열었다. “여성이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 “유치원을 늘려라”, “임금을 평등하게 지급하라”, “성폭력을 멈춰라” 등 여성들은 사회를 향해 누구보다도 힘차게 구호를 외치고 피켓을 들어 올렸다. 여성단체 활동가, 여성 노동자, 전업주부 등이 마이크를 잡고 그동안 억눌려 온 현실과 권리를 주장했다. 마지막 연사는 54세의 비정규직 가사 노동자 아달헤이두르 비얀프레드스도티르(Aðalheiður Bjarnfreðsdóttir)였다. 그는“여성들이 깨어나고 있다. 여성은 먼 옛날부터 남성이 세상을 지배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세상은 어땠을까?”라고 말문을 열었다. “우리는 여성과 남성이 긴밀하게 협력해 여성 차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걸 명확히 알고 있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요구할 때 세상은 바뀔 것이다5)”라는 연설에 수많은 사람이 감명받았다. 참가자들은 여성 노동의 거대한 힘을 공감하며 여성 차별과 억압을 없애기 위한 평등과 권리를 당당히 외쳤다. 파업은 자정까지 이어졌다. 남성들은 이날이 하도 길게 느껴져 ‘긴 금요일’이라고 불렀다. 5) https://kvennasogusafn.is/ 아이슬란드 여성파업 역사기록보관소 여성파업이 일으킨 물결 단 하루였지만 여성파업은 여성 노동이 얼마나 크고 강력한 것인지를 사회에 선명히 각인시켰다. 남성의 눈을 뜨게 했다. 특히 여성파업의 조직 과정에서부터 여성 노동자가 중심 역할을 하며 힘을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에 기업의 자본가들이 휴가나 파업을 이유로 여성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임금을 삭감할 수 없었다. 사회 구성원의 절반인 여성이 노동을 멈추자 사회가 덜커덕 멈추는 장면을 보면서 아이슬란드 여성들이 느꼈을 감격과 자신감은 실로 엄청났을 것이다. 여성들은 파업을 통해 자신이 수행하는 노동의 가치와 힘을 스스로 발견했고 여성이 직접 나서서 차별과 억압에 맞서 저항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여성파업의 대오를 함께 이룬 세력들은 정치적 성향이 달라도 연대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같이 싸워 갈 힘을 얻었다. 사회는 여성파업에 응답해야만 했다. 여성파업이 있기 전 정치인들은 여성 노동자가 요구하는 하루 8시간 공공보육 시스템에 대해 ‘어리석은 일’이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여성파업의 힘을 경험한 후 정부는 2세부터 미취학 아동의 보육을 8시간 담당하는 유치원법을 제정했다. 1976년에는 직장과 학교에서 성차별을 금지하는 최초의 성평등법(Gender Equality Act)6)이 제정됐고 성평등위원회가 구성됐다. 법 조항 중 하나에는 남성과 여성이 동일 가치의 노동에 대해 동일 임금을 받는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유급 출산휴가가 보장되고, 제한적이던 임신중지권이 확대됐다. 6) 아이슬란드정부 자료 https://www.government.is/ 8시간 공공보육이 시작되자 육아를 떠맡던 여성이 유치원에 아이를 맡길 수 있었고 가사도 남성과 함께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여성이 집안에서 벗어나 노동자로 일하는 경우가 조금씩 늘어났고 다양한 사회진출이 가능했다. 단 하루 파업으로 여성 차별과 억압으로 가득 찬 사회를 한꺼번에 바꿀 수는 없었지만, 젠더평등으로 나아가는 ‘분수령’이 된 것임은 틀림없었다. 여성파업의 파장은 아이슬란드 국경 밖으로도 퍼져 나갔다. 북미와 유럽의 언론들은 스포츠 중계를 하듯 10월 24일 여성파업을 보도했는데 수많은 여성이 이 소식에 감격했다. 아이슬란드 여성파업은 여성이 겪는 억압과 차별의 문제를 파업이라는 방식으로 폭로하고 저항한 운동이라는 점에서 국제 여성운동에 큰 영감을 주었다. 미국에서 1975년 10월 29일, 전미여성기구가 주도한 미국 여성파업이 벌어졌다. 일본에서도 1975년 11월 3일, 여성들이 파업위원회를 조직했다. 1991년 6월 14일, 스위스에서는 여성들이 불평등에 항의하며 첫 여성파업을 벌였다. 폴란드에서 2016년 10월 3일, 여성들이 임신중지를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막기 위해 ‘검은 월요일’이란 이름으로 파업에 나섰고 노동조합과 남성들도 파업에 동참했다. 아르헨티나에서 10월 19일 임신중지권 보장과 페미사이드에 맞서는 여성파업이 벌어졌다. 2017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에는 한국을 포함한 세계 약 50개 국가 여성들이 아이슬란드 여성 총파업에 영감을 얻은 국제 여성파업을 개최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아이슬란드는 가부장적이고 보수적 분위기가 강했던 탓에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도 심했다. 유명한 가수가 커밍아웃한 후에 이민을 떠나야 했을 정도다. 하지만 여성파업 운동 이후 변화한 젠더평등 인식을 따라 성소수자 운동도 성장했다. 사회적으로 점차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 대신 인권과 평등의 가치가 더 크게 여겨졌다. 사회 제도적 변화도 가져왔다. 1996년 동성 간 결혼과 권리에 대한 법이 제정되어 동성 파트너의 제반 권리가 인정됐고 2006년 자녀양육 등에 이성결혼과 동일한 권리를 부여했다. 2010년 6월 27일에는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며 모든 결혼법에 성 중립성을 확대했다. 2009년에는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를 총리로 선출하기도 했으며 아이슬란드 도시 곳곳에 성소수자의 인권 존중과 평등을 의미하는 무지개 거리가 조성됐다. 2019년에는 ‘성적자율성법’을 제정해 제3의 성으로 ‘간성’을 인정했고,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 절차를 간소화했다. 하나씩 오르는 ‘젠더평등’의 계단과 정체된 일터 여성파업은 여성의 시선을 정치로 이끌었다. 여성 차별을 없애기 위한 여성의 발언권이 높아지고 여성이 정치 참여의 평등한 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인식이 강화되면서 1980년에는 비그디스 핀보가도티르(Vigdís Finnbogadóttir)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여성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직접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이었다. 1981년 창당한 우먼스리스트당(여성의당)은 1983년 선거에서 지지율 5.5%를 기록하고 국회의원 의석 3석을 차지하며 여성정당으로 의회에 처음 진출할 수 있게 했다. 1980년대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65.2%로 1960년대 34.3%이었던 것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어났다. 돌봄 노동 사회화의 일부로서 공공 유치원이 확대하면서 만들어진 급진적 효과였다. 그러나 노동 현장에서 여성의 임금 차별은 나아진 게 없었다. 오일쇼크 영향으로 발생한 심각한 인플레이션7)으로 노동자의 실질임금도 하락한 상태여서 아이슬란드 여성들은 첫 여성파업이 10년째를 맞았던 1985년 10월 24일, 다시 파업을 벌여야 했다. 7) 오일쇼크 등의 영향으로 주요 소비재와 산업재를 수입에 의존하는 아이슬란드의 인플레이션이 심화됨. 1983년 84%를 기록 성별 임금 격차를 나타내는 파업 돌입 시간은 2시 5분으로 10년 전과 같았다. 1983년 기준으로 여성의 연간 평균임금은 전체 평균 임금의 65%에 그쳤다. 다시 광장을 가득 메운 여성들은 성별 임금 격차와 성차별 해소를 강력히 요구했다. 정부는 10년 만에 다시 거대한 여성파업에 직면하면서 1985년부터 5년 단위의 ‘젠더평등실행계획’을 세워 집행했다. 정부는 아이슬란드 자본주의를 안정적으로 관리, 성장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젠더평등’노선을 실행해 갔다. [이미지: 여성파업 연도별 임금 격차]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육아휴직 사용이 여전히 여성 노동자에게 편중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고민이 일었다.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75%대로 높아진 가운데 여성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일하고 집에 돌아와 다시 가사·돌봄 노동을 해야 했다. 특히 0세부터 1세의 자녀를 돌보는 육아휴직은 대부분 여성이 사용하고 있었다. 1997년부터 남성에게 유급 육아휴직 2주간의 사용 권리가 생겼지만 2000년대 초까지 남성의 실제 육아휴직 사용은 3%대에 불과했다. 1999년 국회의원의 3분의 1 이상이 여성이었는데, 이들이 여성 대중의 요구를 대변했다. 그로 인해 2000년에는 아이 돌봄 노동의 성별 편중을 해결하기 위해 양육자 남성에 대해서도 육아휴직 사용을 의무화하는 유급 육아휴직 할당제가 도입됐다. 단계적으로 범위를 늘리다 2003년에는 전면화됐다. 총 9개월의 육아휴직 기간 중 남녀가 3개월씩을 의무적으로 사용하고 남은 3개월은 서로가 자유롭게 나눠서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임금은 80%의 평균임금이 보장됐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서 큰 변화가 생겼다. 남성의 90%가 육아휴직을 사용하기에 이르렀고 전체 육아휴직자 중 남성의 비율이 약 45%까지 높아졌다. 남성의 가사 분담률도 동반 상승했다. 남성의 가사·돌봄 노동에 대한 참여와 책임감이 커지면서 아이와의 유대감도 전보다 커졌다. 기업에서의 자본의 통제와 가부장적 문화로 인해 남성의 육아휴직이 쉽지 않았던 현실에 맞서, 투쟁으로 사회적 압력을 조성하고 제도 변화를 강제함으로써 바꿔 낸 결과였다. 여성의 독박육아 해소는 기업 자본가들에게 결코 손해가 아니었다. 노동시장에서 여성 노동의 착취량이 증가하고 경력단절 없이 높아진 여성 노동의 생산성 또한 자본이 착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아이슬란드 경제는 자본의 성장과 거품, 노동조합의 양보로 표현할 수 있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 초반,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물결 속에서 아이슬란드 정부와 자본은 시장 자유화 정책과 각종 규제 완화, 민영화, 구조조정, 부유층 감세 등을 빠르게 시행했다. 금융업이 크게 활성화됐고 2006년 1인당 GDP가 세계 5위를 차지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금융 부문을 포함해 자본가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10년간 전례 없는 성장과 이윤 축적을 누렸다. 여기에 노동조합은 1990년대 초부터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전제로 낮은 임금인상을 수용했다. 생활비보다 높은 임금이 유지되면 기꺼이 만족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예를 들면 전기기술 노동자의 임금은 실질임금 수준이 물가상승에 비례해 충분하다는 이유로 1990년부터 2000년까지 연간 1.4%씩만 증가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더 차별받는 여성 노동자의 입장은 달랐다. 최초의 여성파업에서 30년이 지난 2005년 10월 24일, 여성들은 세 번째 여성파업에 나서야 했다. 신자유주의 공세가 강화되면서 여성파업을 시작한 시간은 2시 8분. 30년간 임금 차별은 단 3분밖에 단축되지 않았다. 2시 8분 이후 여성 노동자가 일하는 시간은 여전히 공짜였다. 여성들은 임금 격차 폐지를 강력히 요구했다. 이후 인플레이션이 점차 상승하며 노동조합은 물가를 따라잡기 위해 더 높은 임금인상을 요구해야 했다. [사진: 2005년 아이슬란드 여성파업] 2008년 금융위기에 따른 항쟁, 사회를 바꾼 두 번째 계기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치며 금융과 부동산 거품으로 아이슬란드 경제가 일시 호황을 누렸지만,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해외투자자들이 자본금을 회수하면서 금융거품이 붕괴하고 말았다. 아이슬란드는 2008년 10월 6일 국가 부도를 선언하고 IMF 구제금융 시기를 맞이했다. 70%에 이르는 기업이 법적 파산 상태에 처하고 실업률이 10%로 껑충 뛰어올랐다. 국민 1인당 갚아야 할 채무가 약 5억 원 규모나 됐다. 정부와 자본은 경제위기 책임을 스스럼없이 노동자에게 전가했고, 성난 노동자 민중은 가만있지 않았다. 16주간의 ‘프라이팬혁명’이라고도 불리는 항쟁이 일어났다. 항쟁은 매주 토요일 국회 앞에서 연속 16주간 최대규모의 시위를 벌이는 방식이었다. 노동자의 90%가 노동조합에 가입해 있었는데, 이들은 적극적으로 항쟁에 참여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성난 노동자 민중은 국회를 포위하고 요구르트 통과 돌을 던졌으며 냄비와 프라이팬을 들고 나와 큰 소리로 두들겼다. 경찰은 처음으로 시위 진압용 최루탄과 최루액을 사용하며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연행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연행자가 속출해도 계속 싸웠다. 노동자 민중은 자본가들이 자신의 탐욕을 위해 투기를 벌여서 만든 부채를 우리가 대신 갚을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미래세대를 제물로 삼지 마라”고 외쳤다. 이들은 파산 기업에 대한 공적 자금 투여 금지, 정부 총리 사임과 새로운 총선, 모든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타협하지 않고 싸웠다. 그리고 마침내 승리했다. 아이슬란드 사회는 투기 자본가들이 스스로 위기의 책임을 지도록 결정했고 대중 투쟁으로 정부를 몰아내고 자본가들을 구속시켰다. 철저한 수사를 통해 구속된 자본가와 총리 등 경제위기 책임자는 총 90명에 이르렀다. 이후 출범한 중도좌파 연정은 항쟁의 압력에 밀려 대중의 요구를 이행하는 역할을 맡았다. 정부는 저소득층 복지와 사회안전망 강화에 예산을 전년 대비 36%를 더 사용하고 청년 일자리 제공과 직장 내 성평등 정책을 강화했다. 민영화했던 모든 은행과 공기업을 다시 국유화했다. 주택 가격의 110%가 넘는 가계부채는 모두 탕감했다. 부유세가 인상됐다. 국회 특별조사위원회를 가동해 금융위기의 원인 진단과 해법을 도출했다. “당시 금융위기의 주체는 남성이었고 이 기간 동안 특정 성에 기반한 사회문화적 담론과 고정관념이 지배적이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당시 금융위기를 초래했던 큰 규모의 경제 관련 프로젝트 중에서 산업 프로젝트, 감세 정책, 그리고 주택 단지 개발 등은 여성보다 남성에게 고용 기회를 제공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애초에 금융 부문이 소수의 남성에 의해 운영됐고, 성 고정관념과 남성들의 문화에 기반한 사업 계획과 운영이 진행됐다는 것이다. 정부는 소수 집단이 너무 많은 권력을 갖지 못하도록 주요 기업들을 체계적으로 감시해야 하고, 성인지 예산과 성인지 조세정책(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반영하여 국가 예산을 배분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 노동 및 지역 정책을 개발할 때 성 주류화8) 원칙을 사용해야 한다.(2012년 국회 특별조사위원회)” 8) 성주류화는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함에 있어 성인지 관점을 통합하여 정책을 재구조화하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 아이슬란드 정부는 경제위기 원인 중 하나로 ‘남성 중심 경영’을 지목했다. 소수 상층 남성들의 이윤 추구와 그들 사이의 부정부패, 정경유착이라는 권력자 남성의 카르텔이 문제라 지적하고 이를 깨뜨리기 위한 경제, 노동시장 분야의 ‘젠더평등’을 해법으로 제출했다. 1975년 여성파업이 정치 분야에서 여성을 평등한 참여자로 만들었다면, 2008년 금융위기에 따른 항쟁은 경제 분야에서 여성 참여를 강화하는 발판을 만들었다. 50인 이상 기업임원 40% 여성할당제(2013년 시행)와 같이 여성이 유리천장을 깨고 경제, 정치적 측면에서 지도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전환을 주되게 시행했다. 이렇게 2008년 항쟁은 1975년 여성파업 이후 아이슬란드 사회를 다시 한 번 뒤흔든 두 번째 계기가 됐다. 이 계기를 거치며 ‘젠더평등’이 더욱 강력한 국가 정책으로 등장했는데, 사실 이는 아이슬란드 자본주의의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에 불과했다. 2010년대 이후 여성파업 2시 25분, 38분, 55분 2009년부터 아이슬란드는 세계경제포럼의 글로벌 젠더 격차 지수(Global Gender Gap Index) 순위에서 젠더평등 수준 1위를 차지했다. 금융위기에 맞선 항쟁 이후 복지와 조세제도가 노동자에게 좀 더 나은 방식으로 바뀌면서 성별 임금 격차의 완충 역할도 했다. 의회가 2008년 통과시킨 법에는 남성과 여성이 동일 노동에 대하여 동일 임금을 받는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항쟁 이후 첫 선거에서는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42.9%로 급증했다. 하지만 여전히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고 있었고 사회의 불평등은 해소되지 않았다. 2010년 10월 24일, 여성의 절반이 모여 공짜 노동이 시작되는 2시 25분 여성파업에 참여해야 했다. 2010년을 기준으로 공식 노동자의 45.5%가 여성이었고, 동일 수준의 남녀 노동자를 비교한 성별 임금 격차는 17.5%였다. 그러나 노동시간, 고용형태, 산업과 학력 등의 요인을 고려하지 않은 남성과 여성의 임금을 비교해 보면 그 격차는 32.9%9)나 됐다. 2008년을 기준으로 정규직 일자리에서 일하는 남성은 90%인데 반해 여성은 65%에 그쳤다. 여성 노동자는 더 유연하고, 더 불안정하고, 더 임금이 낮은 노동조건에 처해 있었다. 9) 아이슬란드 통계청 https://www.statice.is/ [사진: 2010년 아이슬란드 여성파업] 2015년은 계급투쟁의 해라고 불릴 만큼 수많은 노동조합이 임금인상과 인력 충원 등을 위한 투쟁에 나서 곳곳에서 파업이 벌어졌다. 금융위기 이후에도 커다란 빈부격차, 그리고 낮은 임금인상률로 노동자의 삶이 제대로 나아지지 않은 채 노동조합 지도부는 낮은 임금인상률 합의서에 도장을 찍어 왔다. 아래로부터 분노가 커지면서 공공 부문과 민간 부분 노동조합은 실질최저임금 50% 인상을 요구하는 총파업을 준비했다. 4월 말에 실시된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이슬란드 국민의 90% 이상이 노동조합의 요구를 지지했다. 당시 아이슬란드에서는 여성 인구의 73%가 노동자로 일했는데, 여성 노동자가 많은 의료, 교육, 청소 등 직종이 속한 노동조합이나 여러 산업 부문의 여성 노동자도 주요한 파업 대오였다. 총파업을 거치며 여성운동 진영과 노동운동 진영이 함께 다시 여성파업을 준비했다. 2016년 의무할당제를 적용받는 상장기업 이사회의 거의 절반이 여성이고, 국회의원 41%가 여성이었는데 일부 여성이 유리천장을 깨고 정치와 경제의 상층 요직에 올라가는 것으로 줄인 성별 임금 격차는 시간으로 계산할 때 6년간 단 13분이었다. 성별 임금 격차 27.5%, 자본의 통치가 강력한 기업 안에서 여성 노동자에 대한 상대적 차별은 굳건했다. 2016년 10월 24일 2시 38분, 여성들은 다섯 번째 여성파업을 힘차게 펼쳤다. 정부는 앞으로 2022년까지 성별 임금 격차를 해소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듬해 2017년 6월 1일 임금 차별을 금지하는 동일임금인증제를 세계 최초로 도입하는 새로운 법을 제정했다. 1961년 처음으로 제정한 평등임금법이 남녀 임금 차별 금지를 ‘권고’하는 내용이었고, 1976년 성평등법 도입, 2008년 남녀평등지위권익법은 노동자가 성별로 인한 부당한 대우를 받았음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것이었다면 이번에 도입한 법은 기업이 성별 임금 격차가 없음을 입증해야 하고 이를 정부가 관리하는 내용이었다. 이유 없는 임금 차별이 있을 경우에는 약 50만 원씩 시정될 때까지 누적되는 벌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사실 이러한 내용의 임금평등법 개정안이 제출된 것은 2010년이었는데 사회적 합의에 이르고 적용 기준을 정해 2018년 본격적 시행에 이르기까지 무려 8년이 넘게 소요됐다. 이제까지 자본가들은 줄곧 여성의 저임금에 대하여 법 위반이나 초과 착취를 반성하기는커녕 ‘노동자들이 임금협상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라면서 노동자에게 책임을 돌려 왔다. 그런 상황에서 동일임금제가 시행되면 ‘남성들의 임금이 깎일 것’이라는 가짜뉴스가 돌며 백래시 분위기가 생기기도 했다. 자본가연합단체와 노동조합연합단체가 합의에 이르기 위해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유럽 전반에서는 노동자들이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며 관철해 왔는데 아이슬란드의 경우 2018년 기준 정규직 노동자의 평균 노동시간은 주 44.4시간으로 유럽에서는 긴 편이었다. 노동조합은 오랜 요구인 노동시간 단축을 전면에 내세우며 2015년부터 주4일제 도입 실험을 시작했다. 변화된 상황에서 2018년 10월 24일 여성들은 여섯 번째 여성파업에 나섰다. 불평등을 양산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그대로 둔 채 법과 제도의 변화만으로 노동 착취, 여성 노동에 가중된 초과 착취가 사라질 리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들은 상대적 고용불안, 성별 직종 분리, 여성 노동자의 저임금, 가사돌봄 노동의 차별에 분노했다. 여성 노동자가 남성 노동자보다 28% 낮은 임금을 받고 있었다. 그에 따라 2시 55분에 다시 파업의 광장에 모인 여성들은 “여성을 바꾸려 하지 말고 세상을 바꿔라”, “모든 여성이 직장에서의 정의와 평등한 권리를 위해 함께 싸워야 한다”고 외쳤다. 2023년까지 여성파업이 만들어 낸 성과 2023년 국제 사회의 시선이 다시 아이슬란드의 여성에게 향했다. 글로벌 젠더 격차 지수가 91.2%인 아이슬란드에서 다시 48년 만에 여성의 90%가 참여하는 24시간 여성파업이 일어난 것이다. 성별이분법에 따른 여성만이 아니라 성소수자(non-binary)가 함께 참여했다. 여성파업이 진행된 하루 동안 사람들은 남성들만 보도하는 뉴스를 들으면서 잠을 깼고 대중교통이 지연되는 하루를 맞았다. 유치원과 학교가 문을 닫았다. 공공시설과 많은 상점, 식당이 문을 닫았다. 은행은 한 곳만 문을 열었고, 병원은 응급실만 열렸다. 방송사들은 프로그램을 줄였다. 국영항공사는 항공편을 취소했다. 사무실과 호텔 객실 등은 청소되지 않았다. 총리인 카트린 야콥스도티르도 여성 공무원 노동자들과 함께 파업에 참여했다. [사진: 2023년 아이슬란드 여성파업] 이날 여성파업은 성별 임금 격차와 여성 직종 저임금, 성에 기반한 젠더폭력의 현실을 규탄하며 평등을 요구했다. 역사상 최대 규모인 10만 명이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열린 집회에 모였다. 후사비크, 아쿠레이리, 사우다르크로쿠르 등 10개의 도시에서 파업 집회가 개최됐다. 친구, 가족, 동료들과 함께 참석한 여성과 성소수자들은 ‘여성의 임금은 여전히 남성보다 21%나 낮다! 이게 평등이라고?’, ‘1975년부터 2023년 여성의 투쟁’ 등이 쓰인 피켓, 플래카드 등을 들고 파업의 요구를 힘껏 소리쳤다. 레드스타킹스가 불러 1975년부터 여성파업의 노래가 된 ‘여성이여, 앞으로!(Onward Girls, 아이슬란드어로 Áfram Stelpur)’, 칠레의 여성투쟁가 ‘강간범은 바로 너다! (A Rapist in your Path, Un Violador en Tu Camino)’ 등을 힘차게 불렀다. 발언자들은 경제적 불평등과 젠더폭력의 현실을 규탄하며 물었다. “이것을 평등이라고 부를 것인가?” 참가자들은 “아니다”라고 외치며 집회를 마무리했다. 이번 파업은 노동조합이 최대의 조직자였는데 공공노조의 프레야 스테인그림스도티르(Freyja Steingrimsdottir)는 “우리는 평등의 파라다이스라 불리는 아이슬란드에 여전히 성별 격차가 존재하고 시급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의료 서비스나 보육과 같이 여성이 주도하는 직업은 여전히 저평가되어 있고 임금도 훨씬 낮다”고 말했다. 파업에 참여한 유치원 노동자 스타눈 시구르게르스도티르는 “아이슬란드에는 여성에게 여성이 최고라는 속담이 있다”며 “여성이 함께 뭉치는 것이 중요하다. 유치원 노동자의 임금은 낮아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싸우고 있다”고 했다. 여성파업집회에 참가한 호피(Hófí)는“ 나는 아이슬란드 여성이기 때문에 여기에 있다. 아이슬란드는 천국처럼 이야기되지만 아직은 그렇지 않다. 노동시장에는 여성만 일하고, 임금이 낮은 일자리가 많이 있다. 이 나라는 충분히 부유한 나라이고, 더 낫게 분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파업 참가자들은 여성이 주로 하는 무급 재생산 노동도 강조했다. 주최 측은 캠페인을 통해 미리 남성들에게 ‘하루 동안 남편, 아버지, 형제, 삼촌들이 아침과 점심 도시락 준비, 친척 생일 기억하기, 시어머니 선물 사드리기, 자녀 치과 예약하기 등 가족과 가정에 관련된 일을 책임감을 갖고 맡아달라’고 전했다. 수많은 여성이 유급 휴가를 얻으며 파업에 참여했지만, 응급 구조와 의료 업무 그리고 이주노동자가 많은 직종, 저임금 직종의 여성 노동자는 이번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 자본가들은 빼먹지 않고 2023년 여성파업에 특별한 메시지를 보냈다. 아이슬란드기업연합(SA)을 이끄는 최초의 여성인 시그리두르 마그레트 오드스도티르는 말로는 여성파업의 대의를 지지한다면서 여성파업에 대한 반대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 “여성들이 사용자와 합의 없이 모든 일터에서 파업하면 아이슬란드 사회에 큰 악영향을 미친다.” 그는 여성CEO로서 여성파업 대신 사용자와 대화로 해결하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파업 이후 11월에 열린 ‘레이캬비크 글로벌 포럼’에서 외교부 장관 비야르니 베네딕손은 “의사 결정 위치에 있는 남성들이 젠더평등을 실현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고 말했다. 1975년부터 2023년까지 무려 48년간의 오랜 여성파업의 역사는 여성 차별과 억압을 거대한 대중적 운동으로 돌파하며 큰 변화를 만들어 냈다. 첫째, 사회 전체와 모든 이들에게 세상의 절반을 떠받치는 여성 노동의 힘을 보여주는 계기를 거듭 제공함으로써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인식에 경종을 울리고 변화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동시에 여성 노동자 민중 사이에서 페미니즘운동을 부상시켰고 성별 임금 격차에 대한 인식을 높였다. 둘째, 1975년 여성파업에서부터 유치원을 늘리라는 공공 돌봄 요구를 이뤄냈다. 돌봄 비용의 85% 정부 지원, 교사 1명당 아동 5명 보육 등으로 안전한 공공 돌봄을 강화시키며 여성이 무급 재생산 노동에서 점차 벗어나 사회적 생산 노동의 주체로 정체성을 확립하게 했다. 남성이 돈 버는 일을 하고 여성이 집안일을 한다는 근본적 성별 역할 구분을 깨뜨리며 여성이 과거보다 사회를 향해 더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만들었다. 셋째, 노동자의 대부분이 노동조합에 가입10)하는 분위기 속에서 여성의 사회진출, 노동인구 증가가 여성 노동자의 노동조합 가입 증가로 이어졌다. 여성 노동자도 노동조합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활동함으로써 사용자와 정부를 상대로 저항하고, 노동조합의 경제적 요구와 젠더적 요구를 결합하면서 노동조건을 향상해 나가게 됐다. 국제노총(ITUC)이 평가하는 글로벌 권리 지수(Global Right Index)에서 아이슬란드는 1등급인데 여성 노동자의 노동권에 대한 확장된 보장이 없다면 최고 등급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10) 1938년 노동법이 발효된 이래 노동조합 가입은 공식적으로는 아니지만 사실상 의무화됐다. 1980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에 따라 모든 단체협약은 조합원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일반적으로 적용되도록 하는 '에르고 옴니스 원칙(모든 사람을 향하여, 모든 사람에게 적용 원칙)'이 적용되어 노동시장에서 모든 사람에게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게 됐다. 넷째, 여성파업은 사회의 다양한 차별을 걷어 내야 한다는 정치의식을 성장시켰다. 여성 총리와 여성 의원의 등장, 여성의 높은 투표율 등이 그 자체로 자본주의 사회 작동 원리에서 벗어난 게 아니지만 그러한 표현의 하나다. 여성의 90%가 파업으로 사회를 멈추며 주체적 정치 행동을 한다는 것만으로 높이 발전한 정치 인식을 보여 준다. 다섯째, 여성파업은 사회의 정세 변화에 조응하며 노동권을 중심으로 여성의 생존권과 다양한 삶의 권리를 위한 요구와 저항력을 확장했다. 이는 여성의 권리뿐만 아니라 동성결혼 합법화, 개인이 결정할 수 있는 성별 정정 등 성소수자의 권리를 포함해 소수자 인권을 신장시켰다. 여섯째, 여성에게 맡겨진 독박 가사·돌봄 역할에 순응하지 않고 투쟁함으로써 돌봄을 중심으로 사회 재생산 노동의 사회화 정도를 증가시켰다. 보육, 의료 서비스 등 공적 돌봄이 강화됐다. 2000년부터 시행한 육아휴직 의무할당제와 같이 보육 돌봄에 관한 기업의 휴가나 휴직제도의 변화를 촉진하면서 정부와 자본이 책임져야 할 몫을 명확히 했으며, 가정 내의 무급 재생산 노동을 배분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일곱째, 성과 재생산 영역에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강화됐다. 여성과 연인들에게 결혼, 임신, 출산이 사회적 통제와 압력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권리로 변모했다. 전체 출산 아동 10명 중 약 7명(69.4%)이 비혼 출산 아동일 정도로 여성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아이를 낳지 않거나 낳을 수 있게 됐다. 여덟째, 국제 여성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노동자계급의 파업과 같이 사회적 생산과 재생산 영역을 마비시키는 여성 노동의 파업이 여성의 요구와 투쟁의 힘을 드러내는 효과적이고 높은 수준의 저항 방법임을 각인시켰다. 이 밖에도 여성파업은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아이슬란드 여성에게는 여전히 여성 차별과 억압을 없애기 위해 싸워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여성의 눈물 저항이 만든 사회적 변화에도 자본이 통제하는 기업에서는 여성 차별이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대표적 문제가 바로 임금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굴러가는 기본 동력인 임노동관계에서 성별 임금 차별이 발생한다는 것은 일터는 물론 사회 곳곳에서 여성 차별과 억압이 존재한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된다. 아이슬란드 남성과 여성의 노동소득에서 노동시간, 고용형태, 산업과 교육 수준 등 요인을 고려하지 않고 비교해 보면 그 격차는 2010년 32.9%, 2019년에는 25.5%로 여성이 더 낮다. 그 이유는 시간제 노동, 비정규직 노동에 여성의 비중이 높고, 여성이 다수인 직종의 임금이 남성 노동자에 비해 낮기 때문이다. 실제로 임금이 낮은 직종의 75%는 여성의 비중이 월등히 높은 교육, 보건, 돌봄, 청소와 식당, 마트 등 서비스와 관광 분야 등이다. 여성 노동자는 보건의료와 사회복지사의 75%, 교육 분야의 73%, 서비스와 판매의 57%를 차지한다. 여성의 노동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면서 소득과 연동되는 노후 연금도 여성이 더 낮을 수밖에 없어 여성의 상대적 빈곤은 일생에 영향을 미친다. 그뿐 아니라 집에서 이뤄지는 무급 재생산 노동 역시도 아직은 여성이 더 많이 부담해 더 나은 일자리로 진입할 수 있는 물리적 조건에 장해물로 작용한다. 여성이 절반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지만, 불안정한 노동조건을 강요당하며 생산 영역에서의 착취와 재생산 영역에서 무급 가사노동이라는 이중 굴레에 고통받는 현실은 다른 자본주의 사회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여성의 저임금에 ‘이주노동자’라는 이름이 하나 더 붙으면 임금이 더 하락해 버린다. 이주노동자는 사실상 이중임금제를 적용받고, 노동권을 침해받는 경우11)도 많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관광업 등에 이주노동자 취업이 증가했고 정부가 노동력 부족을 적극적 이주노동자 수용으로 보완하면서 2023년에는 이주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16.2% 규모가 될 만큼 증가했다. 전체 여성 노동인구의 약 22%가 이주노동자다. 그런데 이주노동자에 대한 노동권 보장은 그 수를 따라가지 못한다. 2018년 아쿠레이리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정규직 노동자의 월 평균 임금은 72만 1,000ISK(크로나)였는데 이주노동자의 60%는 40만 ISK 이하였다. 이주 여성 노동자의 임금은 아이슬란드 여성 노동자보다 훨씬 더 낮고 이주 남성 노동자보다 낮았다. 한부모 이주노동자는 노동시장에서 더 취약한 처지에 있다. 아이슬란드에서도 ‘정주 남성 노동자 > 정주 여성 노동자 > 이주 남성 노동자 > 이주 여성 노동자’의 서열화된 임금 차별을 확인하기가 어렵지 않다. 11) 에플링노동조합(Efling union)은 2017년에 발생한 부당노동행위의 60%가 이주노동자를 상대로 벌어졌다고 보고했다. 2023년 여성파업이 제기한 중요 사항 중 하나는 여성에게 가하는 성에 기반한 폭력이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살인 사건이 적은 편이지만 젠더폭력 사건만큼은 그렇지 않다. 전체 여성의 40%가 신체적 또는 성적 폭력을 당한 적이 있고, 전체 여성의 4분의 1은 강간 또는 강간 미수 등의 심각한 젠더폭력을 경험했다.12) 2022년에는 여성 노동자의 3분의 1이 직장 내 성희롱이나 성에 기반한 폭력13)을 당했다고 보고했다. 젠더폭력은 공연예술이나 언론 등에서 알려진 여성인 경우나 관광, 법조, 보안, 제조, 수리업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에게 가장 높았고, 교대근무나 불규칙적이고 장시간 일하는 직종에서 흔하게 발생했다. 12) 2018년 아이슬란드대학교의 연구, 공중보건전문가이자 역학자인 우누르 안나 발디마르스도티르와 아르나 훅스도티르의 연구팀 13) Risk factors for workplace sexual harassment and violence among a national cohort of women in Iceland: a cross-sectional study, The Lancet Public Health, volume7, september 2022. 2022년 다른 통계는 젠더폭력 피해자의 62% 이상이 18세 미만이고, 92% 이상이 여성이라고 보고했다. 수도 레이캬비크의 여성 쉼터는 정원이 꽉 찬 경우가 많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정폭력 범죄도 급증했다. 이주민 여성은 젠더와 인종문제가 겹치며 젠더폭력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고 있으며 트랜스젠더 여성을 포함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에서 비롯된 젠더폭력 사건도 끊이지 않는다. 디지털 젠더폭력의 피해자도 늘고 있다. 이러한 폭력 가해자의 절대적 다수는 남성이며, 95.6%가 18세부터 29세 사이의 청년 남성이다. 아이슬란드는 여성파업에 힘입은 젠더평등의 문화가 있고, 2011년부터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이르는 모든 교육기관에서 젠더평등 수업을 시행하는 나라다. 여성에게 동등한 정치적, 경제적 권리가 있고 국회의원과 기업 이사회 임원의 절반이 여성인 나라에서 여성과 소수자에게 가해지는 젠더폭력이 매우 심각한 실상은 ‘북유럽(노르딕)의 역설’이라고 불릴 정도다. 젠더폭력의 참상 앞에서 여성들은 2017년 10월부터 #미투(#MeToo)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정치권, 온갖 산업의 재계 고위직, 미디어와 스포츠, 예술계 등 여러 사회 분야에서 일어난 추악한 폭력이 끊임없이 폭로됐다. 미투운동이 확산하며 장애 여성, 이주노동자, 돌봄 노동자, 가사 노동자와 노동조합 조합원이 아닌 저임금 불안정 고용상태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의 증언도 페이스북 등 온라인 공간에서 잇따랐다. 서비스 분야 일터에서의 젠더폭력 가해자는 사업장 내 남성이나 남성 고객이었는데 노동조합 간부인 드리파 스내달은 “남성 고객은 여성 노동자에게 젠더폭력을 행사할 비용도 지불했다고 여긴다. 젊은 여성이 위계적 계층구조의 맨 아래 있다”는 현실을 전하기도 했다. 미투운동은 2022년까지도 이어졌다. 미투운동이 가시화되면서 피해생존자와 페미니스트에 대한 혐오와 백래시14)가 심각하게 벌어지기도 했다. 이전에도 백래시는 젠더 차별을 줄이는 진보한 정책이 생길 때마다 퍼져나간 바 있다. 젠더폭력 사건의 미투운동에서는 페미니스트들에게 살해 협박이 가해지는 경우마저 종종 일어났다. 피해생존자를 향한 그나마 낮은 수준의 혐오인 ‘그걸 왜 지금 와서 말하냐’는 광범위한 백래시는 오히려 여성들이 꾸준히 비판해 온 경찰과 사법부의 문제점을 가시화하기도 했다. 2021년 조사에 따르면 성폭력을 당한 여성의 10%만이 경찰에 사건을 신고했는데 그 이유는 사법부와 경찰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아이슬란드 역시 경찰에 신고된 성폭력 사건 대다수가 재판에 넘겨지지 않았고 재판에서 유죄판결도 드물었다.15) 2018년부터 3년간 성폭행 사건 항소심 중에서 형량을 줄이거나 무죄를 선고한 경우는 40%나 됐다. 14) '세계 최고의 남성 페미니스트' 중 1명으로 뽑힌 적이 있는 시그뮌 뒤르 다비드 귄로이그손 전 총리가 술집에서 정치인들과 함께 미투운동을 비난하고 여성 혐오를 쏟아낸 일도 있었다. 15) 2022년 랜싯 공중보건(The Lancet Public Health)에 실린 연구 전문가들은 사법 시스템에서 남성 중심적 사고가 지배적16)이라 지적하며, 성별 격차 해소만으로 젠더폭력 범죄를 줄일 수 없어 사법 체계를 개혁17)해야 한다고 했다. 어떤 연구자들은 젠더평등으로의 발전이 남성의 분노를 자극하는 기제가 되어 남성이 여성을 향한 폭력으로 자신의 우월성을 증명하려고 한다며 원인을 분석하기도 했다. 젠더 교육이 열악한 탓에 권력 구조를 함께 가르치는 젠더 교육이 대안18)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16)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17) 성폭행 생존자들과 함께 일해 온 변호사이자 사회민주당 의원인 헬가 발라 헬가도티르(Helga Vala Helgadóttir) 18) 아이슬란드대학교 교육대학의 역사학자이자 조교수인 이리스 엘렌버거 여성들은 사회가 젠더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인권법원에 아이슬란드 정부를 집단 제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게 없다. 2023년 여성파업의 광장에서 여성들은 “사법부도 공범이다”라고 외치고 ‘강간범은 바로 너!(A Rapist in your Path, 원제 Un Violador en Tu Camino)’라는 노래를 불러야 했다. 여성에게 파라다이스는 없다 가부장적 자본주의 세상을 바꾸기 전까지 브루클린대학 정치학과 교수 재닛 존슨은 아이슬란드 사회가 여성운동이 강하고 표면상으로 훌륭한 변화와 공식적 평등의 수준이 높지만, 비공식 석상에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여전히 남성이라며 그것이 공식적 젠더평등을 상쇄한다고 비판했다. 가부장적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여성에게 파라다이스인 사회가 가능할까? 2021년 9월 아이슬란드 총리실 산하 성별 임금 격차 TF는 2년여에 걸친 조사를 통해 ‘여성의 일 가치 재평가(Verðmætamat kvennastarfa)’ 권고안을 낸 바 있다. 정부는 성별 고정관념에 따라 ‘남성적 직업’과 ‘여성적 직업’을 나누는 것은 ‘과학적이지 않’다고 전제하며 지난 10년 동안 관련 교육을 진행했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없다고 평가했다. 결론으로는 법과 제도로 차이를 좁혀야 한다고 제시했다. 2023년 여성파업에 참여한 총리는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젠더평등에 도달하는 데 300년이 걸린다고 말했다. 정부는 법과 제도가 있다면 성에 기반한 차별과 억압을 모두 없앨 수 있다고 기대한다. 마치 그동안 법과 제도가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이슬란드 정부가 누누이 강조하는 ‘젠더평등이 경제 발전에 이롭다’는 입장은 분명한 자본주의 논리다. 페미니즘으로 표현하면 매우 익숙한 자유주의 페미니즘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아이슬란드 사회가 젠더평등 가치를 추구하게 만든 것은 정치인이나 기업가가 아니라 여성운동과 노동조합운동이다. 여성운동 세력들은 1975년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계급 여성에게 달려가 파업의 전망을 제시한 레드스타킹스와 가장 열악한 처지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운동에 힘입어 여성파업을 성사함으로써 주요한 사회세력으로 자리를 잡았고 꾸준히 여성의 차별을 없애기 위한 활동을 해 나갔다. 지금도 수많은 여성과 함께한다. 노동조합운동 역시 여성파업의 주요한 주체로 역할을 해 왔다. 1975년부터 여성파업을 현실로 만들어 냈다. 이후 2023년까지 노동조합은 여성파업의 준비부터 참가자 대다수를 조직하는 일까지 꾸준히 활동해 왔다. 사업장과 각 산업 부문에서 여성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투쟁해 오고 있다. 그런데 이 두 운동은 아이슬란드 정부와 지배계급을 향해 가부장적 자본주의를 그대로 둔 채 성별 역할 분리, 성별 임금 격차, 성에 기반한 차별과 억압을 없앨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지 않는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말이다. 북유럽식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강한 가운데 이들 운동 역시 자본주의 경제성장을 목표로 평등하고 공정한 분배를 추구한다.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력 중 하나인 노동조합운동은 노사 윈윈(win-win)을 우선하는 조합주의, 노사협조주의 노선을 취한다. 청년-중년층 여성은 ‘선택에 자유가 있고,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스며든 신념으로 젠더평등을 요구한다. 최근 10월 24일 여성파업 기념 시위들과 2023년 여성파업에 참여한 여성들의 인터뷰에서도 정부를 신뢰한다는 표현이나 분배의 평등을 제기하는 목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다. 반면 여성 노동자 민중의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직장 내를 포함한 심각한 젠더폭력 수치는 가부장적 여성 혐오 정서의 민낯을 보여 주고 있다. 동일 임금인증제가 시행된 후에도 성별 임금 격차는 2019년 25.5%에서 2022년 21%로 4.5%를 좁혔을 뿐이다. 첫 여성파업 이후 거의 반세기가 지났어도 전통적 여성 노동은 여전히 저평가되고 있다. 또 이전에는 모든 계급 여성이 무급으로 수행하던 많은 일이 이제 중산층 이상의 고소득 가정에서는 가난한 노동자계급 여성과 이주 여성 노동자에게 아웃소싱되고 있다. 게다가 이주 여성 노동자들은 모든 일자리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다. 무엇보다 요동치는 국제정세와 경제위기가 있다. 2023년 2월 인플레이션은 10.2%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고점을 찍은 2009년 9월 인플레이션 10.8% 이후 최고점을 기록했다. 이후 낮아지긴 했지만 세계 경제의 대불황과 기후위기, 전쟁 속에서 언제든 경제위기가 닥칠 위험성이 높다. 가부장적 자본주의가 여성과 노동자가 일군 지금의 권리를 언제 걷어찰지 모른다. 그래도 아이슬란드 여성 노동자 민중에게는 1975년부터 여성파업으로 저항해 온 소중한 역사와 저력이 있지 않은가. 저임금 일자리의 여성 노동자와 이주노동자, 모든 성을 넘어서 단결한 노동자 투쟁이 국제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변혁적 여성운동과 노동자계급 운동을 만난다면 아마도 1975년보다 훨씬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이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 -
[주간 여성뉴스 브리핑] 합계출산율 0.6명대로 내려앉는다는데 … 정부 정책효과는 미미1. 합계출산율 0.6명대로 내려앉는다는데 … 정부 정책효과는 미미 내년 합계출산율이 0.6명대로 내려앉을 것이라는 정부 전망이 나왔다. 통계청이 14일 내놓은 ‘장래인구추계: 2022∼2072년’을 보면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뜻하는 합계출산율은 올해 0.72명에서 내년 0.68명으로 떨어진다. 현 정부가 내놓은 대표적인 저출생 대응 정책으로는 부모급여가 있다. 부모급여는 직업이나 소득, 재산과 무관하게 자녀를 낳으면 매월 현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말한다. 올해 만 0세를 둔 부모는 월 70만 원, 만 1세는 35만 원을 받는다. 내년에는 급여액이 각각 100만 원과 50만 원으로 인상된다. 이 밖에도 정부는 내년부터 돌봄과 교육 지원 1조3,000억 원, 일·육아 병행 지원 2조2,000억 원, 주거지원 9조 원, 양육비용 부담 경감 2조9,000억 원, 임신·출산 지원 504억 원을 편성하는 등 저출생 대응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정책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그러나 특단의 조치라 평가할 만한 정책도, 체감되는 변화는 보이지 않고 있다. 육아휴직·육아기 단축근무 제도 등 ‘일·육아 병행 지원제도’는 그나마 정책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되는 제도이지만, 기업 규모, 노동자의 지위, 조직 문화 등 현실적인 걸림돌이 많아 이용률이 낮다. 이에 임신·출산·양육 지원 등 개별 정책을 추진하는 것과 더불어 사회·경제적 제반 환경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참조 기사> https://www.khan.co.kr/national/health-welfare/article/202312141550001 2. 육아휴직자 불이익 줘도 기소율은 9%에 불과 최근 5년간 육아휴직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등 모성보호제도 위반 행위가 2,000건 가까이 신고됐지만, 기소율은 9%에 불과했다. 13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최근 5년 모·부성 보호제도 위반 사건 처리현황’을 보면, 2019년부터 지난 8월까지 모성보호 관련 사건 1,857건 가운데 노동청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사건은 168건(9.0%)에 그쳤다. 이 중 시정조치는 146건(7.9%), 과태료 부과는 8건(0.4%), 기타 종결이 532건(28.7%)으로 가장 많았다. 취하 등으로 종결한 사건은 486건(26.2%), 법 위반 없음 등으로 끝난 사건은 481건(25.9%)으로 나타났다. 취하의 경우 사업주가 취하를 종용하거나 압박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을 고려하면, 법을 위반하고도 처벌받지 않는 사업장이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유형별로 보면 육아휴직을 허가하지 않거나, 육아휴직을 이유로 해고와 같은 불리한 처우를 하는 등 육아휴직 제도 위반이 965건(52.0%)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임신부·여성에 대한 야간·휴일·시간외노동·유해 위험작업 금지 관련 위반이 359건(19.3%)으로 나타났다. 출산 전후 휴가 제도 위반 183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위반 158건, 배우자출산휴가제도 위반 70건, 생리휴가제도 위반 56건 순이었다. 이러한 결과는 지난 3월 직장갑질119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직장인 45.2%가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없다고 답한 부분과 일치한다. 노동부는 "모성보호제도 사용에 따른 피해자를 신속히 구제할 수 있도록 노동위원회와 계속 협의하고, 모성보호제도를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해 근로감독을 강화하겠다"라고 밝히고 있지만 현실적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참조 기사>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12130730001 3.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출산을 미루는 이탈리아 여성들 이탈리아에서는 여성 노동자들이 저임금, 고용불안, 열악한 공공 보육 여건으로 부득이하게 출산을 미루고 있다. 무급 인턴십을 거쳐 올해 겨우 1년짜리 시간제 일자리를 구한 30세 과학 작가 지아다는 월 800유로를 번다. 고용계약 갱신 예정이라지만 정해진 건 없어 출산을 미루고 있다. 그는 “우리는 아이를 갖고 싶지만 불안정한 상황 때문에 부모가 될 수 없다. 우리는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아이가 있다고 상상해 보라”라고 말했다. 남자친구와 사는 26세 소셜미디어 전략가인 키아라는 직장에서 월 약 1,200유로의 수습 노동자 계약을 맺고 일하는데 앞으로도 임금이 많이 오를 것이라 예상하지 않는다. 그는 “식료품비, 집세, 공과금은 오르는데 임금은 그대로다. 우리의 재정 상황은 앞으로도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려워하고 있다.” 최근 이탈리아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의 첫 출산 나이는 평균 31세, 여성 1인당 평균 자녀 수는 1.24명으로 유럽에서 가장 낮았다. 정부는 저출생 원인 중 하나로 ‘자녀를 낳으려는 성향의 감소’를 지적했는데 출산에 가장 큰 걸림돌은 경제적 문제다. 그리고 2021년 사직한 노동자의 72%는 여성이었는데 이들은 그 이유를 일과 돌봄을 병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토리노대학교 프로자토 교수는 “맞벌이라도 돌봄노동은 여전히 여성의 몫”이라고 말하며, 양질의 저렴한 공공 보육이 부족한 문제를 함께 지적했다. <참조 기사> https://www.aljazeera.com/features/2023/12/15/127 4. 노동유연화가 성별 격차 해법? 석연찮은 답 내놓은 IMF 총재 한국을 처음 방문한 IMF 총재가 한국의 경제적 성별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 유연한 노동시장, 성별 고정관념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14일 열린 세계여성이사협회 특별포럼에 참석해 “한국이 근로시간 성별 격차를 주요국 평균 수준으로 줄이면 1인당 소득이 18% 늘어날 것”이라고 발언했다. 그는 한국과 같은 나라가 한 단계 나아가기 위해서는 “여성의 일과 가정의 양립을 돕기 위한 직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보육 지원 확대, 1년 유급 육아휴직, 경력단절 여성 직업 전환 지원이 여성의 일로 간주하는 비정규직, 자영업자에게도 확대돼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유연근무제 도입 등 노동유연화도 성별 격차 해소를 위한 방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IMF 연구에 따르면 퇴직금을 30% 줄이면 여성 고용이 1% 늘어난다”라고도 말했다. 과연 초국적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국제기구의 수장다운 발언이다. 고용 경직성을 완화해 정규직 일자리는 없애는 대신 저임금의 단시간 일자리를 대폭 늘리자는 것이다. 이는 앞서 인용한 IMF 총재 발언에서 남녀 ‘임금 격차’가 아니라 ‘근로시간 격차’에 주목한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확대되려면 노동유연화가 아닌 질 좋은 일자리의 보장이 이뤄져야 한다. <참조 기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21415080002661?did=NA 5. 인도 13세 가사노동자, 고용주로부터 학대당하다가 구출돼 최근 인도에서 13세 미성년자를 가사노동자로 고용한 고용주가 잔혹하게 감금·학대한 사건이 드러나 인도가 충격에 휩싸였다. 일해도 가난한 부모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어린 딸에게 일자리를 수소문해 주었다. 지난 6월 델리 시내의 고급주택에 가사노동자로 고용된 딸은 하루 24시간 주 7일을 일하는 조건으로 첫 2개월만 9,000루피의 월급을 받았다. 그리고 5개월간 고용주는 48시간에 1번씩만 음식을 주면서 매일 쇠막대, 망치, 칼, 둔기 등을 이용해 구타하고, 염산 테러, 성폭력, 불법 촬영, 학대, 감시와 고문, 부모살해 협박, 노동착취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폭력을 가했다. 소녀의 어머니가 이전 고용주의 도움으로 집을 찾아가 12월 8일 극적으로 구조하면서 사건이 알려졌다. 그런데 가사노동자가 고용주로부터 착취와 학대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은 지난 1년간 델리-NCR에서만 벌써 여덟 번째다. 고용주가 경찰에 체포된 사례는 아직 없다. 구르가온에서만 가사노동자의 60%가 정부의 시스템에 신고되지 않은 상태다. 가사노동자의 노동조합인 가렐루캄가르노동조합(GKU)은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며 정부에 가사노동자 권리 보장에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고용주의 명령에 따라 일해야 하고 개인 주택에 묶여 있는 전일제 가사노동은 높은 수준의 착취를 낳는다. 정부는 24×7(하루 24시간, 주7일 노동) 연중무휴 불법 계약의 가사노동을 규제하지 않는다.” 또한 이러한 계약이 만연하기 때문에 “고용주로부터 폭력, 성 착취를 겪는 노동자가 매우 많을 것이다”라며 이런 계약은 “빈곤한 여성과 아동을 고용주의 신체적 통제에 놓이는 노예 상태로 내몰기에 반드시 금지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노동조합은 가사노동자의 실질적 권리 보장을 위한 24시간 연중무휴 가사노동 계약 금지를 포함해 실노동시간, 최저임금, 식사, 휴무일, 의료비 등 노동조건에 대한 지침, 가사노동자 실태조사, 경찰의 불만 사항 등록 의무화 등을 정부에 촉구했다. 정부는 이제야 노동조합과 대화에 나서며 ‘가사노동자 권리 헌장’을 마련하기로 약속했다. 자신도 가사노동자로 일하는 피해노동자의 어머니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을 다시는 그 누구도 겪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참조 기사> https://www.tribuneindia.com/news/haryana/over-60-domestic-help-in-gurugram-not-registered-570743 https://indianexpress.com/article/cities/delhi/ban-work-agreements-domestic-workers-union-gurgaon-dc-9066770/ 6. 여성이 남성보다 노동시간, 성평등, 산재, 4대 보험 상담 높아…. 민주노총 23년도 상담통계 분석 발표 민주노총이 2023년도 노동 상담통계 분석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올해 1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6천여 건의 상담내용 분석 결과를 담았고, 이는 복수 응답이 가능한 유형별 상담 건수로 보면 9,700여 건에 달한다. 전체 상담 중 가장 높은 비율은 임금(29.2%) 상담이었고, 그 뒤를 이어 해고‧징계‧인사이동(11.7%), 노동3권(11.6%), 산업재해‧노동안전(10%)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올해는 산업재해 및 노동안전 상담이 눈에 띄게 상승했다. 30인 미만 사업장의 산안‧산재 상담 건수가 지속적인 증가 추세인데 상담 비중도 절반 가까이나 된다. 이렇게 소규모 사업장의 산안‧산재 상담이 증가하고 있고 노동부의 연도별 산재 현황도 중대재해의 80%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에 정부는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유예하려 하고 있다. 노동상담 유형을 성별로 비교해보면 여성은 남성보다 노동시간, 성평등, 산재, 4대 보험 관련 상담 비중이 높고 노동3권에 대한 상담비중이 낮았다. 보고서는 이를 토대로 여성은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노동조건에 처해있을 뿐 아니라 불안전한 직장에서 일하고 있으며,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참조 기사> https://nodong.org/statement/7844293 -
자본주의가 강요한 정신질환, 각자도생 대신 집단적 변혁을!얼마 전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가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종합병원 정신병동에서 일하는 의료인들의 이야기인데,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냈던 것은 정신질환으로 입원한 환자들의 사연이다. 한때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누군가였을 그들을 아프게 한 것은 비인간적 자본주의 체제다. 장시간 노동과 과중한 업무 부담으로 공황장애를 앓는 청년 노동자, 직장 상사의 폭언‧갑질에 불안장애가 생긴 중년 노동자, 취업난에 수년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실패하고 망상 증세를 보이는 청년, 평생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며 강요된 삶을 버티다 조울증에 빠진 중년 여성 등의 이야기는 그렇게 낯설지 않은 소재다. 드라마는 각자도생의 자본주의로 극심히 고통받는 사람들을 섬세히 묘사하고, 이를 극복하는 인간의 따뜻한 연대를 낭만적으로 그려낸다. 그러나 공허하다. 남의 처지를 헤아리고 도움의 손길을 보낼 여유가 있는 사람들 자체가 드문 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도 통장 잔고가 아홉 자리이고 당연하듯 수입차를 끌고 다니는 의사들이나 그런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노동자 대중투쟁의 퇴조는 가장 억압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한데 뭉쳐 비인간적 경쟁체제라는 거악(巨惡)을 뒤엎을 수 있다는 낙관적 열망까지도 함께 앗아가 버렸다.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나을 것이라는 소박한 희망조차 사라진 시대, 그것이 오늘날의 자본주의다. 집단적 자살, 저출산 11월 30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경제전망보고서에는 <초저출산 및 초고령사회: 극단적 인구구조의 원인, 영향, 대책>이라는 제목의 중장기 심층연구 결과가 수록돼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초저출생의 원인은 “청년들이 느끼는 ‘경쟁압력’과 고용·주거·양육 측면의 ‘불안’” 때문으로 분석되었다.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고 취업 경쟁이 심화된 상태에서, 경쟁압력 체감도가 높은 청년들일수록 희망 자녀수가 유의하게 낮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취업을 못하거나 취업을 했더라도 비정규직 노동자인 청년들은 결혼 의향이 낮았지만, 공공기관에 취업하거나 공무원인 경우에는 결혼 의향이 높았다. 미혼 사유, 무자녀인 사유를 당사자에게 물어본 결과, ‘취업, 생활안정, 집 문제’ 등 “결혼하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라고 응답한 비율이 가장 높았다. 전국 20~39세 청년 2천 명을 상대로 온라인 설문을 실시한 결과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 청년 세대의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다. 설문 응답자의 84.9%는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의 불평등이 더욱 심각해졌다고 평가했으며, 87.4%는 향후 10년간 불평등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 전망했다. 개인 노력에 의한 계층 이동의 가능성이 낮다고 응답한 비율은 67.8%, 자신의 세대보다 자녀 세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낮다고 응답한 비율은 61.6%에 이르렀다. 국제 금융자본의 두목 가운데 하나인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가 몇 년 전 한국의 재앙적 저출생을 두고 “한국은 마치 집단적 자살사회와 같다”고 표현한 건 잘 알려진 일이다. 그나마 출산율이 1명을 넘었던 때의 발언이니, 합계출산율이 0.7명(2023년 3분기)까지 떨어진 지금에는 그 표현의 적절성을 더욱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자본주의에서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 한국의 저출생이 미래의 희망을 잃은 사람들의 소극적 자살이라는 점은, 실제 자살자 수 통계를 통해서도 다시 확인된다. 2022년 한국의 자살 사망자 수는 12,906명으로, 인구 10만 명당 자살사망률은 25.2명에 이른다. 10대부터 30대까지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점, 한국의 자살률이 OECD에서 단연 1위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국제 비교를 위해 OECD 기준인구로 연령 구조 차이를 제거한 표준화 사망률을 따졌을 때, OECD 평균은 10.6명, 한국은 22.6명이다.) 인간은 공동체 속에서 협력하고 연대하며 자신의 장점을 발휘할 때 행복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비인간적 줄 세우기가 유일한 사회 구성 원리로 받아들여지는 시대, 경쟁의 승자에게는 넘치는 보상이 주어지지만 경쟁의 패자에게는 기초적 권리조차 박탈하는 것이 ‘공정과 정의’로 옹호되는 시대에, 제정신을 부여잡고 살라는 것 자체가 너무도 가혹한 요구일지 모른다. 보건복지부의 ‘2023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에 1만 2,105명의 고립·은둔 청년(19세~39세)이 확인된다고 한다. 이 중 504명은 아예 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 고위험군이다. 고립·은둔 청년의 81%는 대학 이상의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들이 고립·은둔을 선택하는 첫 번째 이유는 취업 등 직업 관련 어려움(24.1%)이었다. 임금 노동자의 54.7%(2023년 상반기 기준)가 300만 원 미만의 임금을 받는데도 ‘삼백충’이란 비하 표현이 버젓이 통용되는 시대에 청년들이 아프지 않을 도리가 없다. 윤석열 정부의 구역질 나는 ‘정신건강정책’ 심각성은 자본가 정부조차 외면할 수 없는 지경이다. 윤석열은 지난 12월 5일 ‘정신건강정책 비전선포대회’라는 것을 주재했다. 윤석열은 “급속한 산업 발전, 1인 가구의 증가, 가족을 비롯한 공동체의 붕괴, 과도한 경쟁 등으로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해졌지만 국가 차원의 본격적인 투자가 거의 없었다”며, “정신건강 문제를 중요한 국가 아젠다로 삼고 적극 해결책을 강구”하겠다고 떠벌렸다. 구역질 나는 수작이다. 저들이 저출생의 심각성이나 정신건강 대책의 시급성을 떠드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본 축적의 전제가 되는 노동력 인구의 양적·질적 저하를 걱정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정신건강정책 비전선포대회’에서 한 참석자가 “직장생활 스트레스가 정신건강을 넘어 생산성에도 문제를 야기하며, 개인의 정신건강은 기업의 경쟁력을 넘어 국가의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발언한 것, 윤석열이 “정신건강 문제는 ‘사회안보’에 해당하는 문제”라고 지껄인 것은 이런 맥락이다. 자본의 이윤을 철두철미하게 수호하는 자본가 정부는 정작 수많은 사람을 병들게 하는 자본의 이윤 질서에 대해서는 털끝만큼도 건드릴 생각이 없다. 오히려 무한경쟁과 부당한 차별을 ‘정의와 공정’으로 포장하며, 성평등의 절박한 요구는 ‘더 이상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말로 뭉개버리고,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 대신 장시간 유연 노동시스템을 강제하는 것이 현 자본가 정부다. 그런 자들이 “일상적 마음돌봄 체계”를 구축해 “예방부터 치료, 회복에 걸친 전 과정의 지원체계를 획기적으로 전환”하겠다고 떠드는 것은 꼴불견이다. 죽지 말고 함께 살자 누군가 아직 이 세상이 살만하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자신의 계급적 지위 또는 계급 ‘내’에서의 위치를 객관화하지 못한 탓이라 해야 옳다. 경쟁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승자를 제외한 나머지 패배자들에게, 한국의 자본주의는 이미 지옥이다. 불안정 고용과 저임금으로 고통받음에도 경쟁의 승자들이 자랑스레 내뿜는 성공 논리 앞에 무력하게 침묵해야 하는 사회에서 불행과 우울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모두의 ‘정신건강’은 잃어버린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것을 통해서만 실현될 것이다. 경쟁에서 살아남은 소수가 사회적 특권을 독점하고 경쟁에서 패배한 절대 다수는 일체의 권리에서 배제된다면, 잘못은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경쟁 질서 그 자체에 있다. 내가 느끼는 고통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자기 노동력을 판매해야 생존 가능한 노동자계급 다수의 보편적 고통이라는 것, 노동자계급의 빈곤과 박탈 맞은 편에는 노동자계급으로부터 거대한 부를 앗아간 한 줌의 자본가계급이 있다는 것, 저들 자본가계급이 누리는 무제한적 권력에는 어떠한 정당성도 없다는 것, 노동자계급이 사소한 차이를 넘어 거대한 단결을 실현하면 자본가 세상을 뒤엎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을 인식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상실한 인간성을 다시 되찾을 수 있다. 한마디로 노동자 계급투쟁의 복구를 통해서만 한국 사회의 각종 병리 현상은 비로소 치유 가능하다.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그리고 청년 노동자들에게 집단적 노동자투쟁이 하나의 ‘선택지’조차 아닌 시대에 막연한 얘기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길도 없다. 세계 곳곳에서 오랜 침묵을 깨뜨리고 노동자 계급투쟁이 진전하고 있는 지금, 한국에서도 그러한 길이 반드시 열릴 것이다. 자본주의에 더 이상 활로가 없다는 점은 명명백백(明明白白)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자들과 전투적 조직노동자 운동이 앞장서 전체 노동자들과 가난한 청년들, 차별과 억압에 고통받는 민중을 대변해 싸워나갈 때 거대한 노동자투쟁의 물결은 기필코 우리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
우리에게는 노동자계급의 페미니즘이 필요하다 - <여성파업 첫발떼기> 토론회 발제문‘페미니즘 리부트’ 그 후, 젊은 페미니스트들은 어디로 갔을까 이르게는 2015년 말부터 늦게는 2016년 초까지 이른바 ‘페미니즘 리부트’가 막 박차를 가하고 나아가던 시기를 기억한다. 그맘때를 떠올리면 SNS를 새로고침할 때마다 갱신되던 미투 챌린지의 게시와 다양한 여성 집회의 참여 후기 사진 그리고 그것들을 지켜보며 느꼈던 경이로움 비슷한 감정이 생각난다. 왜냐하면 2016년 이전까지는 페미니즘이라는 이론적 개념이 운동으로 눈앞에 나타난 경험은 전무했던 까닭이었다. 그즈음 내 또래 여성들은 누구나 페미니즘 운동이 일구어낸 뜨거운 사회적 논의와 변화에 고취되어 있었다. SNS에 각 대학교 이름을 검색하면 학교에 소속된 페미니즘 학회나 동아리들의 홍보 계정이 가장 먼저 올라오던 때였다. 우리 세대는 이미 페미니즘을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 생각했고, 그렇기에 가부장적 체제를 향한 이 분노가 영구적으로 계속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학가에서 페미니즘은 어떤가? 페미니즘 리부트 당시 왕성하게 활동하던 페미니즘 학회와 동아리들은 대부분 재생산에 실패해 사라졌고. 운 좋게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간신히 최소한의 인원을 유지하며 버티고 있다. 뉴스에서는 날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혐오 범죄 사례가 나오지만 강남역 살인사건을 추모하던 빼곡한 포스트잇처럼 대중적 규모의 행동은 눈에 띄지 않는다. 주변을 둘러보면 “페미니즘 운동을 그만두었다”라고 스스로 말하는 여성들이 많다. 그들에게 이유를 물으면 답은 언제나 같다. 이제 지쳤다는 것이다. 끝을 모를 것 같던 페미니즘 리부트의 열기는 왜 사그라들었는가. 왜 지금의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에 대한 폭력과 혐오가 그저 세련된 형태로 약간 발전한 것일 뿐인데도 불구하고 이전과 같은 대중적 규모로 청년 여성을 조직할 수 없는가. 누가 누구에게서 해방될 것인가 “이 가운데 여성에 대한 차별에 대항하는 집합행동이 등장한 것을 넘어 여성‘만’ 참여할 수 있는 집합행동이 등장했다. 2017년 10월부터 2019년 3월까지 진행된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 시위’ <비웨이브(BWAVE·임신중단 합법화를 위한 모임)>는 남성의 집회 참여를 제한한다고 공지하며 “해당 시위는 당사자주의를 채택”하며, “생명의 창조는 여성만이 지닌 고유한 권한”이고 따라서 “여성이 주체가 된 시위를 기획했”다고 밝혔다.1) 또한, 2018년 5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이어진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불편한 용기>(이하 <불편한 용기>)는 남성의 참여를 제한한 것을 넘어 ‘생물학적’2) 여성만의 집회 참여를 규칙으로 공표했다. 이들은 “시위에 참여하는 여성의 안전”을 보장하고 “시위의 주체가 여성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규칙이 필요하다고 설파했다.3) 주목할 점은 ‘생물학적’ 여성만의 집회를 최초로 주장한 집회가 한국 여성운동 사상 최대 규모의 인원 동원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집회 측 추산에 따르면 <불편한 용기>는 8개월간 약 30만 명의 여성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조선일보』 2018년 12월 24일, 『한겨레』 2018년 12월 29일)4) 1) “Q&A (자주 묻는 질문)” (cafe.daum.net/myboddymychoice/FguP/328 최종 검색일 2021.10.02) 2) <불편한 용기>는 무엇을 기준으로 ‘생물학적’ 여성을 판별하는지 제시하지 않았다. 여기서 “생물학적”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과학적·의학적 엄밀성을 담보하지 않는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따옴표 표기를 통해 일종의 기호(記号)로서 ‘생물학적’ 여성을 사용하고자 한다. 3) "본 시위는 생물학적 여성만 참여가능합니다" (cafe.daum.net/Hongdaenam/ig3k/27 최종 검색일 2021.10.02) 4) 이하 박영민. "'여성' 집회 전략의 모순적 성공과 역동." 국내석사학위논문 중앙대학교 대학원, 2022. 서울. 인용 표기는 논문 안에서 재인용하였음. (“이부진 사장님 딱 1억만" 홍보 문구 논란에 여성의당 사과”, YTN, 2020년 3월 13일) ‘페미니즘 리부트’와 관해 떠오르는 다른 말들도 분명 있다. 친자본주의적 시선, 트랜스젠더 배제 페미니즘. 바로 이 두 가지다. 트랜스젠더 배제 페미니즘으로 여성의 ‘생물학적’ 당사자성을 획득한 ‘래디컬’의 역사는 단순히 분리주의 페미니즘 진영과 그들의 지지자뿐 아니라 대학가 페미니즘 사회에도 악영향을 남겼다는 점에서 재검토되어야 한다. 오늘날 대학가 페미니즘 세력의 분열과 양극화는 분명 앞서 언급한 “당사자성” 논쟁에 상당 부분 기반하고 있으며, 단순히 ‘트랜스젠더를 여성에 포함시킬 것이냐 말 것이냐’하는 생산성 없는 토론에 서로를 결박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문제적이다. 더불어 분리주의 페미니즘(래디컬) 세력의 중심부에 있던 여성의당이 창당 후 공식적인 정당 홍보에서 인지도 있는 여성 자본가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투자를 요구하는 식으로 지지자들과 자본의 심리적 거리를 좁혔다는 점 역시 주목해야 한다. 당 차원에서 신자유주의를 옹호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사과문을 내놓긴 했지만, 사과문 내부에도 친자본주의적 시각에 대한 반성과 개선책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분리주의 세력에겐 △ 가사노동 전가 △ 돌봄 노동 전가 △ 재생산 기능을 통한 노동 인구의 무조건적 창출 등 자본이 의도적으로 여성 및 성소수자를 억압해 이윤을 증진하는 방식에 관한 문제의식이 부재했다. <나는 내 파이를 구하러 왔지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 김진아 전 여성의당 대표의 에세이집이 이미 암시하듯. 어느 순간부턴가 분리주의 세력에게 있어 노동자계급의 총생산량은 ‘파이’로. 여성해방이란 ‘생물학적 여성’ 노동자가 더 많은 ‘파이’를 가져가는 것으로 각인되었다. 이에 따라 여성의당과 주요 인사들은 SNS를 주요 선전 매개로 삼아 여성 청년층을 상대로 자본주의 체제 내부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이 곧 여성해방임을 격려하기도 했는데, 놀랍게도 이러한 일련의 선전은 실제로 유효한 효과를 보여 지지자층 사이에 신라호텔 주식 사기, 이부진 따라하기 같은 소비자주의에 입각한 행위가 유행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여성 자본가들이 여성 노동자를 위해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법적으로 여성이며 막대한 사적 부를 소유했다는 이유만으로 순식간에 여성해방의 영웅이 된 셈이었다. 혹은, 질문을 바꾸어 : 우리는 정말로 선동할 수 없는가? 학생이라는 신분의 특성이 대개 그렇지만, 특히 여성과 성소수자 학생의 경우 학창 시절에 이미 대부분 아르바이트 노동을 통해 저임금 노동과 불안정 노동을 하고 일터에서 많은 성폭력 위협에 시달린다. 그러나 학생사회에서는 그러한 고통을 단지 사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자기 공간에서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발전 불가능한 여성운동으로부터 탈피해야 한다. 침체된 대학가 페미니즘 운동을 재정립할 수 있는 정치적 노선을 발굴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치적 노선은 어디에서 만들 수 있을까? 답은 여성 노동자, 성소수자 노동자와 함께하는 노동자 운동에 있다. ‘스쿨 미투’의 학생층이 이전까지 사적 터부로만 취급되던 성폭력 경험을 공적 장에서 발화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보다 앞서 ‘미투 챌린지’의 여성,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결탁이라는 삼엄한 체제에서 여성, 성소수자 학생들은 절망적인 자기 미래를 꿈꾸었다. 그러나 실존하는 여성, 성소수자 노동자가 앞장서 투쟁하는 순간, 그것은 학생 집단들에게 매우 큰 의미를 내포하게 된다. 왜냐하면 억압받고 차별받아온 여성·소수자들이 노동자 투쟁 속에서 사회 변혁을 위해 앞장서는 모습은 이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를 넘을 수 있는 전망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올해 중순 프로젝트 문 사상검증 부당해고에서 시작되어 넥슨 ‘집게손’ 사태에 이르기까지 게임업계의 사상검증은 2016년 클로저스 성우 김자연 부당해고 시기부터 반복된 일이지만 이번 연속 사태에서 여성 연대자들이 집중하는 키워드는 이전과 확연히 다르다는 것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 대학생이나 대학원생, 사회 초년생 등으로 구성된 여성 게이머 연대자들은 페미니스트 사상검증이라는 여성혐오적 측면과도 더불어 노동자로서 권리가 침해당한 부분에까지 충분한 관심을 기울인다. ‘프로젝트 문’에게는 프리랜서 특수고용 형태로 계약을 맺은 업계 초년생 작가들에 대한 갑질을 묻고. ‘넥슨’에게는 이미 8차례 이상 원청 검수를 마친 하청업체 작업물에 대한 책임을 왜 하청업체 직원에게만 떠넘기는지 질문한다. 프로젝트 문 사태에서 부당하게 해고당한 여성노동자를 지지한 경험은 여성 청년층에게 단순한 연대가 아니라 ‘내가 해고당하지 않을’ 세상을 향한 투쟁의 경험으로 남았다. 물론 아직 이러한 연대 형성에 있어 소비자주의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는 극복해나가야 할 지점이지만, 양극화와 생산성 없는 여성운동의 정치적 방향성에 지친 여성, 성소수자 청년층에게 노동운동과 페미니즘의 결합을 받아들일 충분한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는 일면으로 사료되는 것은 뚜렷한 사실이다. 자본주의가 전례 없는 위기를 맞이한 지금 학생들은 노동자의 관점에서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를 사유해야 한다. 학생들이 자본가가 되는 헛된 환상을 꾸게 할지, 노동자 투쟁에 연대하며 지금의 체제를 변혁하는 꿈을 꾸게 할지는 우리의 투쟁에 달려있다. 여성파업에 누구보다 먼저 연대하고 함께해야 할 집단은 학생들이다. 바로 지금 “여성이 멈추면 세계도 멈춘다”라고 외칠 때이다. -
왜 파업인가? 2024년 여성파업의 함의, 국제 여성파업 사례 검토하기 - <여성파업 첫발떼기> 토론회 발제문[편집자 주] 2024년 3.8 ‘여성파업’이 80여 명의 참가자와 함께 첫발을 뗐습니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도 함께 하고 있는 2023년 3.8여성파업조직위원회는 12월 6일(수) 오후 민주노총에서 여성파업 첫발떼기 토론회를 열고 여성 노동자의 현실과 고통을 주목하며 내년 3.8 국제 여성의 날, 여성파업에 나서자고 제안했습니다. 이날 발표자로 참여한 사회주의를향한전진과 학생사회주의자연대 동지의 글을 차례로 게재합니다. 우리가 여성파업에 나서는 이유는 우리 스스로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여성이고 남성이며 성소수자다. 우리는 장애나 질병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매일 성장하고 또 매일 늙어간다. 우리는 도시와 시골에서 태어났고 해외에서 이주해 오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의 성과 신체, 출신은 모두 다르지만, 그럼에도 동일한 한 가지는 모두 노동력을 팔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는 노동자계급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이 사회가 한 줌의 자본가계급이 생산수단을 소유하여 노동자계급을 착취하고 수탈하는 자본주의라는 계급사회이기 때문이다.1) 이러한 사회에서 우리는 생존을 위해 일자리를 찾을 수밖에 없지만, 자본가는 노동자와 그 가족이 겨우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임금만 지급하며 잉여가치를 착취하고, 여기서 이윤을 낸다. 1) 2024년 3.8여성파업 제안서 중 그러나 모든 노동자계급이 동일하게 착취당하고 수탈되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는 가부장제와 결탁하여 우리의 고유한 성별과 신체와 출신에 등급을 매겨 서로를 경쟁시키며 값싼 임금노동자로 부린다. 그래서 어떤 노동에는 고가가 매겨지지만, 구조적으로 저임금 일자리로 떠밀리는 사람들이 있으며, 노동력을 팔고 싶어도 팔 수 없거나 노동을 해도 보상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도 존재한다. 이 같은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가 가장 먼저 임금을 깎는 대상은 여성이다. 그리고 성소수자 특히 트랜스젠더의 존재는 지워진다. 그러나 남성에게는 당연시되는 노동강도를 비롯해 남성 노동자 역시 성별을 이유로 억압된다. 그리고 그러한 억압을 통한 이득은 이 자본주의 체제가 비호하는 한 줌의 자본가들에게 돌아간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은 비단 임금에 국한되지 않는다. 즉, 여성은 타고난 재생산 능력에 의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특별한 차별과 억압을 받는다. 그것은 자본가계급이 노동자계급을 세대에 걸쳐 착취하기 위해서는 노동력이 계속해서 재생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의 성은 혼인에 구속되며 임신출산은 국가 인구정책의 대상이 되고, 자본은 생산영역과 재생산영역을 분리하고 가부장적 성별분업을 토대로 생산영역은 남성 중심으로, 재생산영역은 사적으로 여성에게 떠맡겨 가사돌봄 노동을 무급으로 수탈한다. 물론 임신출산과 가사돌봄을 사적으로 떠맡은 여성은 불완전한 노동자로 전락하여 채용에서부터 임금과 승진승급, 해고(사내 부부 중 여성 해고), 불안정한 고용형태까지 다양한 차별을 받는다. 이는 여성억압이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와 연결돼 있다는 점을 가리킨다. 즉, 여성 노동자를 옭아맨 이중의 굴레를 철폐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에 맞선 싸움을 우회할 수 없다. 그러면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의 여성억압을 철폐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여성을 노동자계급으로 주체화하며 계급투쟁에 나서는 것이다. 그 점에서 노동자계급 여성의 집단적인 여성파업은 이 같은 현실을 바꿔내기 위한 핵심적인 무기다. 파업의 함의 파업이란 집단적으로 임금노동을 중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파업은 자본가가 잉여가치를 착취할 수 없도록 하여 본질적인 계급투쟁의 수단이 된다.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가 레닌은 1899년 <파업에 대하여>2)라는 글에서 “노동자의 임금은 사용자와 노동자 간의 합의에 의해 결정되며, 이러한 상황에서 개별 노동자는 자신의 요구를 위해 공동으로 투쟁해야 (...)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더구나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대규모 공장이 급속도로 개방될수록, 소자본가들이 대자본가들에게 점점 더 많이 쫓겨날수록, 실업이 증가하고,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최대한 적게 주면서 상품을 가장 싸게 생산하려는 자본가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산업의 변동이 더욱 심해지고 위기가 더욱 첨예해지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공동 저항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진다”고 한다. 레닌은 이러한 조건에서 “모든 파업은 자본가들에게 진정한 주인은 자본가가 아니라 노동자들이며, 노동자들은 점점 더 큰 목소리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파업은 노동자들에게 고용주 또는 노동자의 힘이 무엇인지 이해하도록 경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자신의 고용주나 동료만이 아니라, 모든 고용주와 전체 자본가계급, 전체 노동자계급을 생각하도록 한다”고 한다. 따라서 “파업은 노동자들에게 단결을 가르치고, 노동자들이 단결해야만 자본가계급에 대항해 투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파업은 노동자들이 공장주 계급 전체와 자의적인 경찰 정부에 대항하는 전체 노동자 계급의 투쟁을 생각하도록 가르친다. 즉 파업은 노동자들이 전체 인민과 노동하는 모든 사람을 정부 관료의 멍에와 자본의 멍에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적과 전쟁을 벌이는 법을 배우는 학교”라고 지적한 바 있다. 2) V.I. Lenin, <On Strikes>, 《Lenin Collected Works, Progress Publishers》, 1964, Moscow, Volume 4, pages 310-319. 즉, 파업은 한편으로는 노동자계급의 무기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계급적 단결을 추동해 내는 학교다. 마르크스 역시 일찍이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각 개인들은 그들이 다른 한 계급에 대한 공동의 투쟁을 벌여야 하는 경우에만 하나의 계급을 형성하며, 그 밖의 경우에는 경쟁 속에서 서로 적대적으로 대립한다”3)라고 지적한 바 있다. EP 톰슨은 영국 노동자계급이 1780년에서 1832년 사이에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투쟁을 통해 “대부분의 영국 노동자들은 자신들 사이에서, 그리고 통치자와 고용주에 대항하여 이해관계의 동일성을 느끼게 되었다”라고 분석했다. 3)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김대웅 옮김, 《독일 이데올로기》, 104쪽 여성 노동자들의 계급투쟁과 여성파업 이러한 파업은 한동안 주로 남성 이미지로 대표돼 오기도 했지만, 그 뒤에는 집안일을 하며 파업 투쟁을 지원했던 여성들이 있었고, 여성 노동자 역시 초기 자본주의 시기부터 파업 투쟁의 오랜 전통을 만들어 왔다. 이들은 임금과 노동조건뿐 아니라 때로는 여성에 대한 성적 폭력에 대해서도 맞섰고 돌봄을 공동으로 조직하며 공적 돌봄을 요구했다. 1857년 3월 8일, 뉴욕의 직물공장 여성 노동자의 파업, 1909년 3월, 비인간적인 조건에서 일하다 산 채로 불 탄 140명의 여성 노동자들의 죽음에 이은 3만 명의 뉴욕 직물노동자들이 파업, 그리고 1912년 ‘빵과 장미’ 파업으로 유명한 미국 섬유 노동자들의 로렌스 파업을 비롯해 국내서도 일제 하에 자본주의가 이식되면서 1930년대 평양고무공장 동맹 파업을 비롯해 여성 노동자들이 수많은 파업 시위를 벌여 왔다. 이러한 초기 자본주의 착취와 억압에 맞선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념하기 위해 1910년 8월 제2인터내셔널 사회주의자 여성대회에서 독일의 클라라 체트킨을 비롯한 여성 사회주의자들이 매년 3월 ‘국제 여성의 날’ 행사를 개최하자고 제안하면서 시작했고, 이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1917년 3월 8일, 러시아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빵과 평화’를 요구하며 벌인 대규모 파업 시위는 러시아 노동자계급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혁명 이후 러시아에서는 여성이 급여와 재산을 통제할 권리, 이혼과 부모의 권리, 임신중지, 동성애 비범죄화, 성매매 비범죄화 등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중요한 권리가 여성에게 주어졌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이 후퇴한 1920년대 초 네프 정책 시기에 이어, 스탈린 관료집단이 권력을 장악하고 1920년대 말부터 1930년대 말까지 반혁명이 진행되면서 노동자혁명의 성과가 허물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이었던 여성과 성 소수자 정책도 뒤집혔다. 서구에서는 케인스주의의 위선 속에서 1960-70년대 신좌파 운동이 부흥한 데 이어 비로소 여성운동은 다시 발전하기 시작했다. 아이슬란드 여성파업은 이렇게 70년대 세계적으로 부상한 페미니즘 운동의 여파 속에서 일어났다. 아이슬란드에서 1975년 10월 24일 오후 2시 5분 일어난 여성파업에는 여성의 90%가 참여했고, 여성들은 거리로 뛰쳐나왔다. ‘2시 5분’은 남성과 동일한 임금을 적용해 퇴근 시간을 계산한 것이었다. 다수가 여성 노동자로 구성된 산업들은 완전히 마비되면서 아이슬란드 경제 역시 멈춰 섰다. 파업이 처음 제안되었을 때 많은 사람은 농담으로 여겼다. 그러나 파업은 거의 100%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위력적이었던 부문은 전화 서비스가 사실상 중단된 통신이었다. 또한 조판공이 여성이기 때문에 신문사가 문을 닫았고 여성 배우가 일을 거부했기 때문에 극장이 문을 닫았으며, 교사의 65%가 여성이기 때문에 많은 학생이 배우지 못한 채 남겨졌다. 국영 항공사는 스튜어디스 부족으로 항공편을 취소해야 했고, 은행은 여성 직원 대신 임원을 창구에 배치했다.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트 광장에서 열린 파업집회에는 당시 전체 인구의 10%가 넘는 2만5천~3만 명의 여성이 참가했다. 또 주요 도시별로 모여 시위와 집회를 열었다. 여성들은 “우리가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 “유치원을 늘려라”, “임금을 평등하게 지급하라”, “성폭력을 멈춰라” 등 평등과 권리를 외쳤다. 남성들은 이날이 너무 길어 ‘긴 금요일’이라 불렀다. 이 같은 여성파업이 만든 변화로, 현재 아이슬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성평등한 나라로 불리고 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법제화했고, 노동시간 단축과 주4일제도 시행했다. 2세부터 8시간 공공보육 정책을 포함해 초중고에는 성평등 교육을 의무화했다.4) 4) 3.8여성파업조직위원회 제안서 중 이후 여성파업은 아이슬란드에서 국경을 넘어 1994년 독일에서 100만 명이 참여하는 사례로 이어졌지만, 현재처럼 비교적 잦은 현상이 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여성파업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시작으로 일어난 세계 공황의 여파 속에서 인디그나도스 시위 등 유럽 긴축 반대 운동, 월스트리트 오큐파이 운동에 이어 다시 점화됐다. 2015년 아르헨티나에서는 여성 살해에 일어난 거대한 ‘니 우나 메노스 운동(#NiUnaMenos, 단 한 명도 잃을 수 없다)'에 이어 2016년 10월 19일에는 최초의 대규모 여성파업이 일어나 임신중지 권리를 쟁취했다. 처음 여성파업에 참여한 아르헨티나 여성들은 일터와 가정에서 최소 1시간 동안 노동을 중단했고, 파업 시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만 25만 명이 참여했다. 파업은 학교와 병원, 관공소와 제조공장뿐 아니라 쓰레기수거, 세탁, 식당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광범위한 참여로 이뤄졌다. 2016년 폴란드에서도 사실상 모든 임신중지를 불법화하는 헌법재판소 판결에 위력적인 검은 시위와 여성파업이 일어났다. 급기야 2018년 3월 8일에는 국제 여성파업이 70여 개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선언적인 수준에 그쳤지만, 그러나 스페인에서는 2시간 부분파업에 530만 명이 참여했고 열차 300편이 취소될 정도로 위력적으로 전개됐다. 결과적으로 스페인은 ‘임신중지 숙려 제도’를 폐지하고 16~17세 여성과 장애 여성이 법적 보호자의 동의가 없어도 임신을 중지할 권리를 보장했으며, 트랜스젠더 성별 확정 절차를 간소화하는 법안을 하원에서 통과시켰으며, 생리휴가를 법제화하는 등 성평등 개혁 조치를 쟁취했다. 2018년 아일랜드에서도 임신중지 합법화를 요구하는 여성파업이 일어나 국민투표를 이끌어 내 임신중지 합법화를 쟁취했다. 그뿐 아니라 2018년 브라질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자이르 보우소나로 극우정권에 반대하는 엘레낭(#EleNão, ‘그는 아니야')이라는 이름의 여성 시위가 일어났고, 이탈리아에서도 여성 살해 규탄 운동이 확산했다. 2019년 칠레에서는 지하철 요금인상에 반대하는 시위와 함께 성폭력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계속된 끝에 여성총파업이 벌어졌고, 2020년 멕시코에서는 ‘여성 없는 하루' 파업이 일어났다. 최근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여성파업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6월 14일에도 스위스에서 여성파업이 일어나 30만 명이 넘는 여성과 여러 노동자, 시민이 동등한 임금을 요구하며 전국적 파업에 동참했다. 이들은 직장 내 차별과 괴롭힘 근절,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폭력 근절, 가족을 돌보는 무급 노동에 대한 더 많은 인정도 요구했다. 지난 10월 24일에는 아이슬란드에서 다시 여성파업이 벌어졌다. 40여개 여성 단체·노조가 공동 조직한 이번 파업에는 여성 비중이 높은 교사와 간호사 직군을 비롯해 수산업계 여성 종사자 등이 참여한다. 여성들은 유급 노동 뿐 아니라 가사노동 등 무급 노동에서도 이날 하루 손을 떼겠다고 선언했다. 아이슬란드 여성들이 전일 파업에 나선 건 여성 노동자 90%가 파업에 돌입했던 1975년 이후 48년 만이었다고 한다.5) 지난 11월 30일에는 스페인 바스크 지방에서 페미니스트 단체와 여러 노조가 연합해 ‘공공 공동체 돌봄 시스템’을 요구하며 ‘페미니스트 총파업’이라는 이름의 여성파업을 일으켰다.6) 5) 남지현, <청소 노동자도 총리도 전일 파업 나선 아이슬란드 여성들>, 한겨레, 2023.10.24. 6) Josefina L. Martínez, <Euskal Herria. Fuerte jornada de huelga general feminista en el País Vasco>, Laizquierda Diario, 2023.11.30 국제 여성파업운동의 배경 이러한 국제 여성파업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젠더적 속성에 따른 결과다. 국제 여성파업이 일어나기에 앞서 지난 30여 년은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제패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속에서 노동자계급 여성은 갈수록 불안정해지는 노동조건 아래 노동시장에 더 많은 비율로 진입했고, 해체되는 사회안전망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으며, 빈곤의 여성화와 성과 재생산 억압이 심화했다. 이런 가운데 신자유주의의 세계화는 2007~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필두로 세계공황으로 이어졌고, 그 영향 속에서 2010년대 이른바 아랍의 봄과 유럽 긴축반대 투쟁, 미국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구조조정 반대 투쟁이 폭발했다. 그리고 그 운동 속에서 여성이 계급적 주체로 선 새로운 페미니즘 운동 역시 가시화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새로운 페미니즘 운동에 대해 친지아 아룻자는 ‘반자본주의 페미니즘 제3물결’이라고 부르며 “무엇보다 파업을 주요한 전술로 삼았고, 이는 사회 재생산에서 여성들의 일과 역할, 그리고 상품생산과 재생산의 관계를 논쟁의 중심에 놓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주체화 과정의 주요한 동력원”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이 주체화 과정을 통해 새로운 반자본주의 페미니스트 주체성이 출현했다”고 정의한다. 이의 대표적인 사례는 아르헨티나에서의 여성파업이다. 아르헨티나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파울라 바렐라는 “2015년 니 우나 메노스 운동의 핵심은 인권 운동의 시각에서 여성을 성폭력의 희생자로 본 것이었다면, 2016년에는 여성을 일하고 생산하는 주체로 정립하기 시작했다”라고 지적한다. 바렐라에 따르면, 이러한 변화에는 세 가지 요소가 관련되어 있다.7) 당시 정부가 밀어붙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여성과 성소수자는 더 잔인한 위기를 겪었다. 해고와 실업에 수많은 여성이 거리로 밀려났고, 성과 재생산 예산이 대폭 줄었으며, 성폭력과 페미사이드는 역사상 최고치를 경신해 가고 있었다. 2017년 남녀 평균 임금 격차는 26.2%이었으며, 초등교육을 받은 노동자 사이의 남녀 임금 격차는 41.2%까지 벌어졌다. 여성은 남성과 동일한 소득을 얻으려면 77일을 더 일해야 했다. 저소득층 노동자 10명 중 7명도 여성이었다. 14~29세 여성의 실업률은 21.5%로 같은 연령대 남성보다 4.2%p나 높았다. 또한 2017년 공식 확인된 여성 살해는 292건에 달했다. 그뿐만 아니라, 2018년 가정 폭력 핫라인에는 무려 7만 9,753건의 전화가 걸려 올 만큼 여성들이 가혹한 시간을 살고 있었다.8) 둘째는 저출생이 심화하면서 억압적인 가부장제의 이데올로기 공세가 심화했다. 그러나 주류 노동운동은 노동자계급 여성의 생존권에는 무게를 두지 않았다. 예컨대 페미사이드 중단이나 임신중지 합법화, 여성 실업 해결 등에는 소극적이었으며 오히려 임신중지 합법화를 반대하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이러한 조건에서 2016년 10월 19일 처음 일어난 아르헨티나 여성파업에서 여성들은 “우리가 멈추면 세상도 멈춘다”, “우리 삶이 무가치하다면 우리 없이 생산하라”, “우리는 세상을 움직인다”를 외치며 노동자계급 여성으로서의 권리를 요구했다.9) 7) Paula Varela, <Feminismo y sindicatos entre 2015-2018 en Argentina: articulaciones y tensiones. Una lectura desde la pregunta por el cruce entre género y clase>, Inicio / Archivos / Núm. 23 (13): Estado, políticas sociales y Trabajo Social, 2020.12.30. 8) DIANA BROGGI, <Argentina’s Popular Feminism>, jacobin, 2019.03.08. 9) 졸고, 《검은 시위》, 무산여성, 2023 여성파업의 함의와 전략 이러한 여성파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생산과 재생산 영역 모두를 문제로 삼는다. 앞서 살펴봤듯, 자본주의는 생산과 재생산을 분리하고 재생산은 사적으로 가정에 떠맡겨, 가부장제 아래 여성이 이를 무급으로 수행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성의 이중의 굴레를 철폐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전략을 가질 것인가 생각해봐야 한다. 이미 국제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은 여성억압에 맞선 파업 투쟁의 전략에 대해 토론해 왔다. 첫째, 여성파업은 노동자계급 여성의 단결을 조직한다는 것이다. 즉, 여성파업은 여성들의 탈계급적인 연대인가, 아니면 노동자계급 여성의 파업인가의 문제다. 최근 아이슬란드 여성파업은 카트린 야콥스도티르 여성 총리도 참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화제가 됐다. 그는 아이슬란드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좌파녹색운동 당대표로서 비교적 진보적인 여성 정치인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 역시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아이슬란드의 집권자라는 점에서 이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혹자는 그런 그의 여성파업 참가를 두고 단일한 여성 주체들의 여성파업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그가 여성파업의 일주체로 참여했다는 사실은 오히려 아이슬란드 노동자계급 여성의 위력 때문이지 여성파업이 탈계급적인 입장을 가지기 때문이 아니다. 여성파업은 성차별과 성폭력 철폐를 주장하지만, ‘성평등하게’ 착취하고 억압하는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다.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도 여성CEO나 여성 정치인의 수는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이 아무리 고위직에 올라간다 해도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되는 한 기층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와 억압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가부장제와 결탁해 여성 저임금과 무급노동을 구조화하는 자본주의의 속성 상 정부나 기업이 외치는 성평등이란 기만적인 수사일 뿐이다. 따라서 여성파업은 가부장적 자본주의 철폐 그리고 이를 위해 여성을 비롯한 모든 성별의 노동자계급의 단결 투쟁을 지향해야 한다. 둘째는 여성 억압에 맞선 파업을 조직하는 동시에, 무급 가사돌봄 노동 중단을 통해 공동의 위력을 조직한다는 것이다. 앞서 국제적으로는 무급 가사노동 중단의 의미와 한계를 둘러싼 토론이 진행돼 왔다. 우선, 2017년부터 국제 여성파업을 제안해 온 99% 페미니스트들은 ‘파업의 재발명'(테제1)에서 여성파업이 "'노동'으로 간주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에 관한 관념을 넓힘으로써 범위를 확장”한다고 하면서, 여성파업 행동은 노동의 범주를 임금노동에만 두는 것을 거부하고 (무급)가사노동·섹스·미소 또한 철회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영국 페미니스트 정치철학자 로나 핀레이슨(Lorna Finlayson)10)은 이런 유형의 파업이 갖는 한계를 이렇게 지적한다: "임금을 지불받는 노동의 중단은 영구적인 이윤 손실의 형태로 자본가들에게 타격을 가한다. 무급 재생산 노동의 중단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만일 노동이 어린이나 나이든 가족처럼 취약한 이들에 대한 돌봄노동의 형태를 취한다면, 중단은 가능한 선택일 수 없다. 만일 노동이 빨래나 청소처럼 삶과 죽음의 문제가 아닌 경우라면, 여성이 나중에 그 일을 하든지 아니면 다른 이가 하게 될 것이다. 또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면, 집이 점점 지저분해질 것이다. 기껏해야 남편이나 남자친구가 부끄러워하면서 여성이 하던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자본가들은 고통당하지 않는다. 아니 심지어 신경도 쓰지 않는다.”11) 10) Lorna Finlayson, <Travelling in the Wrong Direction>, London Review of Book, 2019.07.04. 11) 오연홍 엮음, 김요한·양동민·양준석·오연홍·전해성 옮김, 《빵과장미의 도전》, 숨쉬는책공장, 2023 실제로 재생산 노동의 중단이 가능할 경우에도 그것은 이미 무급이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노동을 중단한다고 해도 자본가계급에 미치는 타격이 직접적으로 조직되지는 않는다. 즉, 노동자가 생산하는 잉여가치에 늘 굶주린 자본가계급과 대항하는 실천적인 타격을 조직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여성파업에 무급 가사노동 중단을 포함하는 것은 중요한 사회적 의미가 있다. 생산과 재생산을 분리하고, 재생산 업무를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이 아니라 개별 가정에서 주로 여성이 전담하는 사적인 일로 ‘은폐’하며, 그럼으로써 자본가계급의 이윤 축적에 간접적으로 기여하도록 여성을 종속시키는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비밀을 사회의 표면에 드러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무급 가사노동 중단과 더불어, 이를 개별 가정에 떠넘기지 말고 다양한 성별의 노동자가 충분한 임금과 노동조건을 보장받으며 일하는 공적 산업으로 재편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여성파업은 생산과 재생산의 관계 전체를 변혁하는 대안적인 운동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 때문에 여성파업은 무급 가사돌봄 노동 전가를 포함한 여성 억압에 대항하기 위해 임금노동의 중단을 조직해 자본가계급을 압박하며, 그와 동시에 무급 가사돌봄 노동을 중단한 여성들과 함께 집회시위를 통하여 공동의 위력을 조직하는 전략을 취한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의 힘은 위력적인 여성파업이 일어난 아이슬란드나 스페인, 스위스에서의 사례가 웅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셋째, 여성파업은 성소수자, 남성을 비롯한 모든 성별의 노동자의 공동투쟁을 제안한다는 것이다. 2018년 스페인에서는 여성파업을 앞두고 남성 노동자들의 참가 자격 여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남성 노동자들의 참가에 반대하는 여성들은 “남자들은 우리가 받아야 할 주목을 훔치기 때문에 행진에 나서서는 안 된다”라거나 “남성도 파업하면 우리가 매일 하는 일을 눈에 띄게 할 수 없게 된다”고 주장했다.12) 12) Ana Sanchez, <8M: varones sí, varones no, ¿esa es la cuestión?>, Laizquierda Diario, 2018.03.18. 그러나 가부장적 자본주의는 여성과 성소수자 노동자들만 억압하는 것이 아니다. 남성 역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당연시되는 노동강도를 포함해 직장 내 규율은 남성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억압하기 위해서도 작동한다. 또한 여성·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철폐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 전체의 단결된 투쟁이 필요하다. 만약 여성 노동자의 파업으로 인해 지연된 업무를 남성 노동자가 한다면, 그것은 ‘파업 파괴자’의 행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파업 중에도 병원, 요양원 등 최소한의 서비스가 보장돼야 하는 사업장에서는 여성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설 수 있도록 남성 노동자들이 여성 노동자들과 협의하여 긴급 업무를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13) 13) Pan y Rosas Estado español, <Cinco claves para los hombres que quieren apoyar la huelga de mujeres este 8M>, Laizquierda Diario, 2019.03.07. 오히려 여성파업은 여성억압의 문제를 전 노동자계급의 문제로 확장하고 공동투쟁을 이끌어낼 때 더욱 큰 위력을 조직할 수 있다. 스페인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아나 산체스가 지적했듯이, 1917년 3월 8일 파업에 나섰던 여성 노동자들은 남성 금속 노동자들에게 파업에 동참할 것을 요청했고, 그것은 결국 차르 체제를 종식시키고 10월에 노동자 정부를 수립하는 혁명의 문을 연 총파업이 되었다. 나가며 지난 11월 1일 출범한 3.8여성파업조직위원회에는 승급 성차별로 악명 높은 KEC, 해체 위기를 겪고 있는 사회서비스원, 현재도 노동조건을 문제로 싸우고 있는 톨게이트, 코로나 시기 부당하게 해고한 세종호텔을 비롯해 페미니즘과 사회운동을 일궈 온 여성, 노동, 인권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해외 여성파업에 비하면, 누군가에게는 우리의 현재가 보잘것없게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1975년 처음 여성파업이 일어난 아이슬란드에서도 파업의 시작은 소수의 단체에서 비롯됐다. 이제 우리의 여성파업을 준비하자. 우리 역시 여성파업으로 잃을 것은, 여성 노동자를 쥐어짜고 굴욕을 안기고 살해하는 이 가부장적 자본주의 세상의 사슬뿐이다. -
[우리의 투쟁] 울산 2차 팔레스타인 연대 긴급행동 | 팔레스타인 자유와 해방을 위한 연대를!Instagram에서 이 게시물 보기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marchtosocialism)님의 공유 게시물 -
[우리의 투쟁] 청년노동자 김용균 5주기 추모제, 중대재해처벌법 즉각 시행하라!Instagram에서 이 게시물 보기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marchtosocialism)님의 공유 게시물 -
[주간 여성뉴스 브리핑] 가사노동 서비스 가치는 490조9,000억 원-여성이 남성보다 2.6배 많아1. 3.8 여성파업 첫발떼기 토론회, “여성이 멈추면, 세상도 멈춘다” 2024년 3.8여성파업조직위원회는 12월 6일(수) 오후 민주노총에서 여성파업 첫발떼기 토론회를 열고 여성 노동자의 현실과 고통을 주목하며 내년 3.8 국제 여성의 날, 여성파업에 나서자고 제안했다. 이날 토론회는 온오프라인 동시에 80여 명이 참가해 뜨거운 관심 속에 진행됐다. 당일 토론회에서는 현 시기 여성 노동자의 위치를 비롯해 여성파업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짚어볼 수 있었다. 1부에서 여성 노동자의 현실 및 윤석열 정부 시기 성평등 정책의 후퇴와 한국 노동운동의 현재와 여성 노동자의 위치가 풍부한 자료와 함께 설명됐다. 2부 현장의 목소리에선 톨게이트지부와 금속 KEC지회,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회와 학생사회주의자연대 동지가 여러 현장에서 여성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억압과 차별, 그리고 백래시 등 생생한 증언을 펼쳐졌다. 이어진 3부 시작하기/상상하기에선 ‘여성파업’의 함의와 역사적, 국제적 사례 발표가 진행됐다. 발표를 맡은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여성운동위원회 정은희 동지는 “여성억압은 가부장적 자본주의라는 체제의 문제를 우회할 수 없고 여성파업은 직장과 사회, 가정에서 여성 노동자를 억압하고 있는 이중의 굴레를 떨쳐낼 수 있는 무기”라고 힘줘 말했다. 마지막으로는 지난 9월부터 시작된 여성파업조직위원회 결성 과정과 경과, 계획, 그리고 5대 요구가 소개됐다. <당일 토론회 영상> https://www.youtube.com/live/uiUecHJd26k?si=45NBOwt54cBql6JX 2. 스페인 여성과 노동자가 참여한 페미니스트 파업 지난 11월 30일 스페인 바스크(Basque) 지역에서 ‘공공의 돌봄 책임’을 요구하는 대규모 '페미니스트 파업(feminist strike)'이 일어났다. 이번 페미니스트 파업은 지하철, 철도, 제조업, 학교, 청소 등 분야의 노동조합이 함께 참여해 125개 도시에서 온종일 파업 시위를 벌였다. 파업 참가자들은 집에서 이뤄지는 무급 가사노동뿐 아니라 사회에서 이뤄지는 돌봄 노동(노인, 어린이, 아픈 이, 부양가족, 교육과 보건 시스템의 돌봄)도 여성에게 집중되어 있다고 지적하며 ‘공공 및 지역 사회 돌봄 시스템’을 요구하고 개인 가정이나 병원을 통한 돌봄의 ‘사유화 및 상품화’를 비판했다. 또한 이주 여성 노동자에게 임금이 낮고 불안정한 돌봄 노동이 강요되는 점을 제기하며 이주노동자에 대한 악법을 폐지할 것을 촉구했다. 이번 페미니스트 파업은 페미니스트 운동이 팬데믹 기간을 거치며 오랫동안 준비했고, 여기에 노동조합이 동참하면서 모든 노동자와 페미니스트가 함께한 파업이 되었다. 또 여성, 특히 여성 노동자와 이주 여성 노동자의 요구를 위해 함께 싸우는 방법, 즉 여성화되고 인종화되는 노동자계급의 투쟁과 페미니스트 운동을 결합한 점에서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참조 기사> https://www.laizquierdadiario.com/Fuerte-jornada-de-huelga-general-feminista-en-el-Pais-Vasco 3. 가사노동 서비스 가치 490조9,000억 원-여성이 남성보다 2.6배 많아 5일 통계개발원은 가사노동 서비스를 누가 생산하고 소비하는지 등이 담긴 국민시간이전계정 심층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2019년 생활시간조사를 기초로 산출한 가사노동 서비스의 가치는 490조9,000억 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5.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5년 전인 2014년과 비교해 129조4,000억 원 증가한 것이다. 성별로는 여성이 생산한 가사노동 서비스의 가치가 356조, 남성이 생산한 가치가 134조9,000억 원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2.6배 많았다. <참조 기사> https://www.segye.com/newsView/20231205511426?OutUrl=naver 4. 노동조합으로 모이고 있는 멕시코 배달플랫폼 여성 노동자들 배달노동자 자전거에 붙어 있는 'Por un movimiento sindical conequidad de genero'( 성평등을 위한 노동조합 운동)이라고 적힌 스티커 멕시코 정부와 플랫폼 기업들의 여성과 노동에 대한 보호조치가 없는 가운데 배달, 택배, 택시 등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여성 혐오와 괴롭힘, 젠더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아이티 출신의 음식배달 노동자 아우구스틴은 남성으로부터 인종차별적 발언을 자주 들었고, 성관계를 하려면 얼마나 드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고객이 성기를 드러낸 채 배달 음식을 받으러 나온 일을 겪은 후 회사에 신고했지만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 이런 일을 겪으며 그녀는 전국앱노동조합(Unta)에 가입했다. 최근 플랫폼 긱 산업 학술프로젝트 페어워크(Fairwork)는 플랫폼 여성 노동자들이 근무 중 서비스 이용자나 제휴업체 직원으로부터 지속적 성희롱을 당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앱노조의 샤이라 가르듀뇨 사무국장은 택배를 받으러 알몸으로 나오는 남성 고객, 여성 노동자가 운전하는 택시에서 자위를 한 남성이 납치를 벌인 일 등을 전했다. 또 여성 노동자들이 교통법규를 위반했을 때 경찰이 성상납을 요구하기도 한다며 “사법제도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에 50만 명의 플랫폼 노동자(여성은 그 중 10분의 1)가 사고로 다치거나 임신한 경우 어떤 지원도 받지 못했다. 멕시코 노동법은 근로계약서가 없다는 이유로 플랫폼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는다. 이러한 불평등과 부당함에 대한 분노로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운동으로 모이고 있다. 앱노조는 젠더평등한 노조운동을 추구하며, 정부와 플랫폼 기업을 상대ㅗ 노동자성 인정, 노동권 보장, 여성 노동자 권리 보호, 고용안정, 노동자 안전 모니터링 등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10월 멕시코시티에서 중남미 7개국의 노조 대표들이 알고리즘의 투명성뿐 아니라 젠더폭력에 대한 플랫폼 앱 기업들의 적극적 대책을 요구했다. 멕시코 플랫폼 여성 노동자들은 아직 회사의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노조와 함께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다. 여성들은 서로의 위치를 추적하고, 동료애를 바탕으로 차별과 폭력에 맞서기 위한 네크워크를 형성한다. 앱노조는 여성 노동자가 화장실 등을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쉼터도 설치하고 있다. <참조 기사> https://www.theguardian.com/global-development/2023/dec/07/chlorine-attacks-and-daily-harassment-why-mexicos-female-delivery-drivers-are-organising 5. 육아휴직, 작은 사업장 상대로 꿈도 못 꾼다 8일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은 OECD 34개국의 평균 육아휴직 실 이용 기간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법정 육아휴직 가능 기간은 52주인데 여기에 육아휴직 이용률 19.8%를 곱한 실 이용 기간은 10.3주였다. 이는 OECD 평균 61.4주(69주×88.4%)의 6분의 1 수준에 그친다. 우리나라의 법정 육아휴직 기간은 2020년 기준 52주로 OECD 평균 수준(여성 기준 65.4주)에 비해 아주 짧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제 육아휴직 사용률은 출생아 100명당 여성이 48.0명, 남성은 14.1명으로 OECD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또 2021년 기준 50인 이하 기업에서의 육아휴직 사용 비율은 여성 54.1%, 남성 2.3%에 그쳤다. 반면, 같은 시기 300인 이하 대기업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여성 76%, 남성 6%였다. 이처럼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로는 ‘인력공백’이 첫손에 꼽혔다. 지난 2022년 고용노동부가 전국 5인 이상 사업체 5,070곳을 대상으로 ‘육아휴직 제도를 전혀 사용할 수 없다’고 답한 사업체에 이유를 물었더니 ‘동료 및 관리자의 업무 과중(25.2%)’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추가인력 고용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23.3%)’, ‘대체인력을 구하기 어려워서(19.7%)’ 등 주로 인력 공백 문제가 육아휴직 사용을 꺼리는 원인으로 지목됐다. 사업체 규모가 작을수록 고질적인 인력부족에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육아휴직을 하면 소득이 ‘반토막’ 나는 현실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의 육아휴직급여 소득대체율은 44.6%에 불과해 저임금 노동자에게 이 같은 소득 손실은 곧장 생계위협으로 다가온다. 이마저도 프리랜서, 특수고용 노동자, 자영업자와 같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닌 경우에는 고용보험의 육아휴직급여조차 지원받지 못한다. 여기에 육아휴직을 쓰기 어려운 직장 분위기나 문화도 한몫한다. 결국 인건비 절감을 위해 인력은 적게 쓰면서 임금은 낮게 주는 기업들의 경영방식이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고용과 임금 모두 열악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형편이다. <참조 기사> https://news.jtbc.co.kr/article/article.aspx?news_id=NB12154778 -
[우리의 투쟁] "이란과 팔레스타인의 해방운동은 긴밀히 연결되어있습니다."팔레스타인 4차집회에서 이란계 미국인 미샤님이 이란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성, 삶, 자유’ 투쟁이 팔레스타인의 해방과 연결되어 있음을 역설했습니다. 그는 이란과 이스라엘 모두 특정 집단을 2등시민으로 차별하는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로서, 저항하는 여성과 팔레스타인인을 억압하기 위해 공통적으로 “민간인을 이유 없이 구금하고, 의도적으로 언론인을 표적으로 삼고, 정부의 범죄를 숨기기 위해 인터넷을 차단하고, 가장 끔찍하게도 저항하는 이를 성폭력으로 고문하고 처벌한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는 이어 그렇기 때문에 이란의 “여성, 삶, 자유” 운동과 팔레스타인의 해방운동이 긴밀히 연결되어있으며,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에 맞선 운동은 국경을 초월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전세계의 모든 민중들에게, 해방을위한 서로 다른 듯 보이는 투쟁을 연결해주길” 호소하는 미샤님의 호소에 연대하며, 발언을 영상을 통해 전합니다. Instagram에서 이 게시물 보기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marchtosocialism)님의 공유 게시물 ----발언전문---- 오늘 이란계 미국인으로서 전 세계 모든 억압받는 사람들의 해방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란과 팔레스타인이 해방되어야만 하며 이는 분명히 가능한 일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성, 삶, 자유" 운동은 이란뿐만 아니라 억압적인 정부 아래 살아가는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위한 운동입니다. 이란 사람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아파르트헤이트 체제 하에 살고 있습니다.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서는 정부가 어떤 특정 집단을 2등 시민으로 차별합니다. 사회의 다른 구성원에 비해 권리와 자유를 제한합니다. 그 억압받는 집단은 이란에서는 여성들이고, 팔레스타인에서는 비유대인 팔레스타인인들입니다. 두 경우 모두 권력을 가진 정부는 억압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신체와 이동을 통제하는 엄격한 법률을 시행합니다. 억압 받는 이들이 용기를 내서 기본적인 인권을 요구하면 가혹한 보복성 폭력을 가합니다. 그러나 이란과 이스라엘의 공통점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두 정권은 모두 민간인을 이유 없이 구금하고 의도적으로 언론인을 표적으로 삼고, 정부의 범죄를 숨기기 위해 인터넷을 차단합니다. 그리고 가장 끔찍한 것은 두 체제 모두 강간과 성폭력을 이용해 목소리를 내고 저항하는 사람을 고문하고 처벌합니다. 이슬람 공화국과 이스라엘 정부가 종교와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해서 여성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억압을 정당화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의도적으로 이러한 전술을 펼쳐서, 그 누구나 정권을 비판한다면 ‘이슬람혐오' 혹은 ‘반유대주의'라고 외쳐서 비판을 회피하고, 비판자들을 침묵시킵니다. 이 전략은 수십년동안 효과적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세계의 민중들은 드디어 이러한 전술의 실체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정권들이 자행하는 행위는 그들이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종교의 기본적인 원칙을 위배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의 해방 운동은 이란의 해방 운동과 긴밀히 연관 되어있습니다. “종교적인"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을 무너뜨리는 노력은 국경을 초월해야하는 운동입니다. 하나의 정권이 무너지면, 다른 정권도 이어 무너지는 법입니다. 민중이 연합의 힘을 알게되면서 억압하는 정권들은 점점 힘을 잃을것입니다. 저희가 분열된 상태에서는 지속적인 변화를 이루기 어렵습니다. 공동의 적인 억압하는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을 향해 연합하고 함께 싸운다면 그 누구도 우리를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란에서의 “여성, 삶, 자유” 운동을 지지하였듯이 이란 민중들께 팔레스타인 해방 투쟁과 연대하기를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것은, 전세계의 민중들에게, 해방을 위한 서로 다른 듯 보이는 투쟁을 연결해주길 호소합니다. 그리고 이란, 팔레스타인, 혹은 여러분 지역사회에서 세계적인 억압을 종식시키기 위한 노력으로서 해방운동에서 여러분의 역할을 인식해주길 바랍니다. 전 세계에서 억압받고 있는 모든 사람을 해방하기 위해 연대가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 삶, 자유"를 외칩니다, 이란을 위해 팔레스타인을 위해, 쿠르디스탄을 위해, 그리고 모든 억압받는 민중을 위해! 번역참조: 김한나(해방을 꿈꾸는 씨네클럽) -
[우리의 투쟁] 이스라엘은 학살을 멈춰라! 팔레스타인에 자유와 해방을!Instagram에서 이 게시물 보기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marchtosocialism)님의 공유 게시물 Instagram에서 이 게시물 보기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marchtosocialism)님의 공유 게시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