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목록
-
[주간 여성뉴스 브리핑] 남태령 넘은 청년여성...“누구도 그들을 막을 수 없다”전남 무안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수많은 생명이 희생됐습니다. 아리셀과 이태원의 슬픔이 여전한데, 세월호와 스텔라데이지호의 비통함이 아직도 그대로인데, 우리는 다시 무고한 수많은 이들의 죽음을 겪고 있습니다. 세밑 한파 속에 모처럼 여행을 떠났던 노동자와 농민, 고향을 찾은 결혼 이주 여성 등 희생자는 우리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노동자민중이었습니다. 가족과 지인을 잃은 이들의 애통한 마음에 함께하며 희생된 이들의 명복을 빕니다.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이번 참사는 낯설지 않습니다. 안전이 성별과 출신과 계급에 따른 특권이 되지 않는 사회, 모두가 안전하고 평등한 사회여야만 참사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여성뉴스브리핑은 그 사회를 위해 더욱 경주하겠습니다. 희생된 분들의 명복과 생존자들의 쾌유를 빕니다. 1. 남태령 넘은 청년 여성...“누구도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씨로 기록된 지난 21일 밤, 서울 서초구 남태령 고개를 차벽으로 막아선 경찰이 트랙터 유리를 부수고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소속 농민들을 강제로 끌어내리는 모습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되자마자 가장 먼저 현장으로 달려온 이들이 있었다. 응원봉을 손에 쥔 2030 청년 여성들이었다. 그 결과, 21일 밤 ‘차 빼라’로 시작된 구호는 22일 오후 마침내 차벽을 몰아내며 이렇게 진화했다. “여성차별 반대한다. 장애차별 반대한다. 청소년을 존중하라. 노동권을 보장하라!” 21~22일 남태령 집회 현장의 발언대는 ‘모두에게 열려 있는 무대’였다. 성소수자, 이주민, 여성 농부, 노동운동가, 비정규직 노동자, 도시빈민, 학교 밖 청소년 등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이 밤새 마이크를 잡았다. 현장에선 어느 누구도 배제하지 않기 위한 암묵적 규칙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졌다. 이날 엑스(X)에는 한 농민이 “우리 딸들 수고했다”고 외치자, 자신을 ‘논바이너리(자신의 성별을 이분법적으로 규정하지 않는 퀴어 집단)’로 정의하는 시민들이 “사실 저흰 딸이 아니다”라고 답했고, 이에 대해 농민이 “그렇구나, 알아두겠다”고 응수했다는 사연이 300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공유됐다. 남태령 집회를 기점으로 2030 청년 여성들의 행동력은 다른 사회적 소수자들을 향한 후원과 지지로 이어졌다. ‘경찰로부터 트랙터 군단을 지켜냈다’는 정치적 효능감이 다른 약자 집단과 연대하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진 것이다.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23일 하루에만 400여 건 이상의 모금이 있었다”며 후원자 명단 일부(‘남태령에서 온 소녀’, ‘20대 여성 연대’, ‘연대한 트랜스젠더’, ‘생일자 퀴어 페미’, ‘아동학대 생존자’, ‘거제의 딸’, ‘통영 조선공의 딸’ 등)를 공개하기도 했다. 연대는 후원이나 기부에 그치지 않고 직접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24일 서울지하철 3호선 안국역 승강장에서 열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다이인(die-in, 죽은 듯 누워 있는 시위 방식) 행동에는 300여 명의 비장애인 시민이 몰려왔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금껏 광장에서 이 정도로 비주류의 목소리가 크게 터져 나온 적은 없었다”며 “박근혜 탄핵 정국 당시 정권 교체가 아닌 의제들은 모두 ‘나중’으로 밀린 것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라고 분석했다. [참조 기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22716550002107?did=NA 2. 2024 이라크부터 미국까지 성소수자 권리가 후퇴한 국가들 태국, 에스토니아, 그리스에서 동성결혼 합법화 등 일부 국가에서 성소수자의 권리가 진전되었지만, 미국과 영국, 이라크 등 여러 국가에서 성소수자의 권리가 저하되었다. 2024년 성소수자 권리가 후퇴한 국가 중 일부를 소개한다. =미국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여러 주 의회에서 최소 574개의 반성소수자 법안이 제출되었다. 이는 전년도에 비해 64개나 늘어난 수치다. 46개 법안은 통과되었고, 62개가 의결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는 집권 첫날부터 반트랜스젠더 정책을 제정하겠다고 선언했다. 트럼프는 취임 며칠 전 애리조나주 행사에서 “아동 성적 할례를 종식하고 트랜스젠더를 군대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몰아내기 위한 행정 명령에 서명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수석 고문 중 하나인 일론 머스크도 ‘깨어난 정신병 바이러스’를 근절하겠다며 성소수자 혐오정치를 천명했다. =불가리아 루멘 라데프 대통령은 수년간 성소수자 권리를 저해해 온 가운데 러시아의 성소수자 탄압 정치를 따라 불가리아판 성소수자금지법에 서명했다. 이로써 동성결혼, 성별 정정, 성별 확정 치료 등이 불법화되었다. =가나 가나 정부는 성소수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것에서부터 권리 주장 활동을 포함한 성소수자의 모든 권리를 불법화했다. =카자흐스탄 카자흐스탄 정부는 ‘비전통적 성적 지향’을 가진 사람의 입양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했다. =이라크 이라크는 성소수자를 줄곧 탄압한 데 이어 2024년에는 동성애와 트랜스젠더의 세부적 삶의 영역까지 범죄화하고 최대 15년의 징역형을 내릴 수 있게 법을 개악했다. =영국 영국 정부는 성소수자의 권리를 점차 후퇴시키고 있는데 올해 18세 미만 트랜스젠더의 성별 확정 치료를 금지했다. 키어 스타머 총리는 “성별확정 수술을 받지 않은 여성이 여성화장실을 쓰면 안 된다”, “학교에서 젠더(포괄적 성)를 가르치는 것을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참고 기사] https://www.thepinknews.com/2024/12/24/lgbtq-rights-2024-regressed/#page/6 https://www.washingtonblade.com/2024/12/23/trump-promises-anti-trans-executive-orders-on-day-1/ 3. ‘구조적 성차별 없다?’··· 퇴진광장 주축 된 2030 여성의 사회경제적 상황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이들이 20·30대 여성이다. 무엇이 2030 여성들을 시위의 장으로 이끌었을까.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성별 임금 격차 1위를 차지하는 등 성차별이 구조화되어 있다. 한국은 성별 임금 격차가 31.2%로 OECD 회원국 34개국 중 1위다. 임금노동자의 소득을 줄 세웠을 때 중간값(중위임금)을 비교해보면 여성이 남성보다 31.2% 정도 덜 받는다는 뜻이다.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OECD 회원국 평균(12.1%)의 2.6배에 달한다. 또 한국 여성들은 20대에 취업한 후 30~40대에 출산·육아로 경력이 단절되는 현상을 다른 OECD 회원국보다 도드라지게 겪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30대 여성 경제활동참가율 상승의 배경과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2022년 기준 자녀가 없는 30대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이 78.7%였지만, 자녀가 있는 30대 여성은 53.5%에 그쳤다. 한국에서 유독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이 자녀 유무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것은 OECD 회원국 중 최장시간 노동국가라는 특수성과 무관치 않다. KDI는 최근 30대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아졌는데, 아이를 낳은 여성의 비중이 감소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30∼34세 여성의 고용률은 2010년 53.0%에서 지난해 71.3%로 급증했다. 같은 시기 한국의 출생률은 1.23명에서 0.72명으로 줄었다. 일과 가정 양립이 어려우니 출산을 포기한 것으로 풀이된다. 여성은 직장을 다녀도 가사노동 시간이 길다. 통계청의 ‘생활시간조사’ 결과를 보면, 2019년 기준 맞벌이 부부의 주당 가사노동시간은 남성 54분, 여성 187분이었다. 맞벌이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이 남성보다 3배 이상 많다. 윤석열 퇴진과 구조적 성차별 철폐 구호를 함께 외칠 때다. [참조 기사] https://www.khan.co.kr/article/202412261530001 4. 시어머니만 적용됐던 산후도우미 지원금 친정어머니도 받는다 내년부터 친정어머니가 딸의 산후조리를 돕는 경우에도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동안 산후도우미 지원 시 민법상 가족은 배제하는 것이 원칙이라 시어머니는 지원 대상이 되고 친정어머니는 안 되는 불합리가 존재했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이하 ‘저고위’)는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7차 인구비상대책회의를 열고 이같이 밝혔다. 저고위는 27일 제7차 인구비상대책회의를 열어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지원사업’ 보완 방안을 비롯한 저출생 추가 과제를 논의했다. 산모는 출산한 후 건강관리사 자격증을 가진 정부 산후도우미를 신청할 수 있는데 민법상 가족관계에 있는 사람은 제외돼 왔다. 부정 수급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며느리와 생계를 달리하면 민법상 가족이 아니어서 건강관리사 자격만 갖고 있다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반면 친정어머니는 딸과 생계를 달리하고 건강관리사 자격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직계혈족이라서 아예 정부 지원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이는 올해 ‘황당규제 국민 공모전’에서 1위에 선정됐을 정도로 그야말로 ‘황당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내년 1월 1일부터 친정어머니 또는 생계를 같이하고 있는 시어머니가 산모의 산후조리를 돕는 경우에도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참조 기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22716150001421 5. 통계청, 저출생 통계지표 누리집에 공개 통계청이 저출생 현황을 종합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저출생 통계지표’를 24일부터 통계청 지표누리를 통해 공개한다고 밝혔다. 저출생 통계지표는 출산력과 혼인력 등 ‘출산현황’과 가족 형성 가치관과 조건, 양육 돌봄 등 ‘결정요인’, 가족 형성과 양육 돌봄 관련 ‘정책제도’ 등 3대 영역, 하위 9개 부문으로 구조화되어 출산과의 인과관계 파악 및 다각적인 분석이 가능하도록 개발됐다. 또한, 지표의 대표성, 타당성, 포괄성을 고려해 61개 지표가 선정됐다. 내년 11월에 있을 인구주택총조사에도 저출생, 돌봄 관련 문항이 추가된다. 통계청은 “가족 돌봄 시간, 비혼동거 여부 등을 포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족 돌봄 시간을 통해 18세 미만 아동·청소년의 부모 혹은 조부모 부양 실태 파악에 처음 나선다. 비혼동거와 유배우출산율은 저출생 현황 파악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참조 기사] https://www.mk.co.kr/news/society/11202541
-
[241228 민주노총 결의대회 유인물] 윤석열 직무복귀를 위한 극우의 발악에 맞서, 다시 총파업을 준비하자![1면] 윤석열 직무복귀를 위한 극우의 발악에 맞서, 다시 총파업을 준비하자! 탄핵심판 무력화를 의도하는 극우의 준동, 노동자 투쟁으로 분쇄하자 윤석열, 한덕수, 국민의힘, 태극기부대를 비롯한 모든 극우세력이 탄핵심판을 무력화하고자 나섰다. 윤석열은 공수처 출석을 노골적으로 거부하고 있고, 한덕수는 헌법재판관 추가 임명을 거부하며 스스로 내란공범임을 명확히 했으며, 국민의힘은 ‘헌법재판관 추가 임명 시 탄핵심판 자체가 무효’라며 나섰다. 아직 ‘비상계엄은 정당한 통치행위’라고 노골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있을 뿐, 국민의힘의 모든 행보는 윤석열의 내란 정당화와 탄핵 기각에 맞추어져 있다. 국민의힘 내 ‘윤석열 출당·제명’ 논의는 사라진 지 오래다. 이에 더해 태극기부대가 세를 결집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내부 지형 역시 심상치 않다. 12월 26일, 언론은 헌법재판관 1명이 ‘6인 헌재가 심리는 할 수 있으나, 윤석열 파면을ᅠ결정할 수는 없다’는 의견을 고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해당 ‘헌법재판관 1인’의 속내가 ‘탄핵 반대’임은 빤하다. 이렇듯 극우세력 결집과 함께 교착국면이 형성되고, 불안정성이 확대되고 있다. 보다 과감한 노동자 투쟁으로 이 교착을 깨야한다. 다시 총파업을 준비해야 한다. 남태령 대첩이 드러낸 것 - 윤석열 퇴진을 염원하는 모든 대중이 노동자 투쟁을 응원하고 있다 윤석열 체포와 양곡관리법 쟁취를 요구하며 진군한 농민들에게 쏟아진 연대의 힘으로 ‘남태령 대첩’이 만들어졌다. 농민들의 트랙터 행진으로 윤석열 즉각퇴진 투쟁과 함께 농민의 생존권 요구인 양곡관리법 제정 투쟁도 확대된 것이다. 남태령 대첩을 기점으로, ‘응원봉 연대’가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확대되고 있다. 구사대까지 동원한 한화오션의 노동탄압에 맞서 치열한 투쟁을 벌이는 거통고 조선하청노동자, 니토덴코 자본의 고용승계 거부에 맞서 불탄 공장을 지키며 고공농성을 벌이는 옵티칼 하이테크 노동자, 정리해고에 맞서 장기투쟁을 벌이는 세종호텔 노동자 등,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후원과 연대가 쏟아지고 있다. 모두 윤석열 정권과 자본의 노동탄압에 맞서 싸워온 노동자들이다. 바로 지금이 윤석열 즉각퇴진과 구속처벌, 한덕수를 포함한 모든 내란공범 엄중처벌, 국민의힘 해체를 위한 노동자 투쟁을 확대할 때다. 윤석열 퇴진을 염원하는 모든 대중이 노동자 투쟁을 응원하고 있다. 윤석열 퇴진투쟁과 생존권 쟁취투쟁을 함께 확대해야 한다. 윤석열 정권과 함께 모든 윤석열표 노동탄압을 청산하자 노조법 2·3조 즉각 개정, 안전운임제 상시화, 다단계 하도급 철폐를 위해 유보 없이 싸우자 자본은 이 와중에도 반노동 입법을 촉구한다. 12월 17일, 경총과 대한상의 등 경제 6단체는 국회 소환에 따른 기업인 출석을 의무화되는 ‘국회증언법’ 거부권 행사를 촉구했고, 한덕수는 자본의 요구를 수용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12월 18일에는 손경식과 최태원 등 경제4단체장이 우원식 국회의장을 만나 ‘여야 무쟁점 법안’, 즉 민주당과 국민의힘 합의로 국회상임위를 통과한 △반도체특별법 △지역균형투자촉진특별법 등 친자본 반노동 입법의 조속한 본회의 통과를 촉구했다. 자본은 노동탄압을 멈추지 않는다. 노동자는 무엇을 할 것인가? 정세가 위중하니 노동자 투쟁을 유보할 것이 아니라, 정세가 위중하기에 노동자 투쟁을 확대해야 한다. 윤석열 즉각퇴진 요구와 함께 △노조법 2·3조 즉각 개정 △화물노동자 안전운임제 상시화와 품목 확대 △조선업·건설업 다단계 하도급 철폐 △노동조합 공안탄압 책임자 처벌 등, 윤석열 정권과 윤석열표 노동탄압을 같이 날려버리자. 윤석열이 짓밟아온 노동자의 요구를 들고 정세의 중심으로 진출하자. 다시, 총파업을 준비하자! [2면] 노동자 민중의 손으로 윤석열 정권을 타도하고 청산하기 위해, 무엇을 요구하며 싸울 것인가? 윤석열 즉각 퇴진과 국민의힘 해체, 내란범죄 진상규명과 엄중 처벌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극우를 결집해 탄핵 기각을 유도하고 있다. 노동자 민중과 ‘내전’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노동자 민중을 ‘처단’하겠다는 저들, 극우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 윤석열 즉각 퇴진과 구속처벌은 물론, 한덕수를 비롯해 윤석열과 비상계엄을 심의한 모든 국무위원을 구속 처벌하자. 군대·경찰 내 친위쿠데타 가담자를 모조리 구속처벌하자. 내란을 옹호하는 국민의힘을 해체하자. 군대와 경찰, 정보기관 등 국가 무력기구에 대한 사회적 통제 강화 윤석열 정권이 비상계엄을 준비하는 동안,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비상계엄에 가담해 노동자 민중에 총칼을 들이댄 군경 부대를 즉각 해체하고, 군대와 경찰 등 무력기구에 대한 정보공개를 전면 확대해야 한다. 또한, 군대와 경찰 내 부당한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권리를 전면 보장해야 한다. 나아가 병사의 자치활동을 보장해 부당한 명령에 항거할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윤석열 정권의 노동탄압 분쇄, 생존권 쟁취 계급투쟁의 유보 없는 확대 윤석열이 막아온 모든 생존권 요구를 즉각 법제화하자. 첫째, 윤석열 정부와 원청자본에 맞선 처절한 투쟁으로 노조법 2·3조 개정을 쟁점화한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은 지금도 한화오션에 맞서 악전고투하고 있다. 즉각적 노조법 2·3조 개정으로, 원청에 맞선 하청노동자의 노동3권 행사를 보장해야 한다. 둘째, 윤석열이 업무개시명령과 공정거래위까지 동원해 탄압한 화물노동자들이 다시 투쟁에 나서고 있다. 모든 노동자들의 연대로 안전운임제 상시화와 품목 확대를 쟁취하자. 이뿐만이 아니다. 윤석열이 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를 달랜답시고 내놓은 기만적 ‘노동약자법’을 폐기하고 특고·플랫폼노동자, 또한 5인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하자. 나아가 윤석열 집권 내내 감소한 실질임금을 회복하기 위해 생활임금 쟁취투쟁을 확대하자. 윤석열 정권이 조장해온 여성-소수자 혐오 일소 윤석열 정권은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과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여성혐오 선동, 차별금지법 반대 선동으로 집권했다. 장애인 이동권 쟁취 투쟁을 탄압하며 장애인 혐오를 조장했다. 지금, 모든 일터와 사회에서 성폭력, 성차별, 여성과 소수자 혐오를 뿌리뽑자. △차별금지법 즉각 제정 △성폭력 피해자 지원 예산 회복 및 강화 △직장 내 성희롱 산재 보장 △포괄적 성교육 전면 시행 △국적에 상관없이 여성노동자 차별 금지 및 여성 노동자 노동권 보장 △유산유도제 도입 및 건강보험 적용 등 임신중지 권리 보장 △돌봄공공성 보장 △장애인 이동권 보장과 차별철폐 투쟁에 나서자. 윤석열이 조장해온 전쟁위기에 맞선 투쟁 확대 윤석열 정권은 한반도를 전쟁의 참화 속으로 이끌어 비상계엄을 발동하고자 했다. 윤석열 정권의 전쟁도발 시도를 철저히 조사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 또한, 한반도 전쟁위기를 심화하는 한미일 군사동맹을 해체하고, 일촉즉발의 전쟁위기로 이어지는 모든 전쟁연습을 전면 중단해야 한다. 또한, ‘K방산’이라는 허울좋은 이름과 함께 한국을 제국주의 전쟁의 보급기지로 만드는 전쟁무기 수출을 중단해야 한다.
-
[우리의 투쟁] “생지옥이던 조선하청노동자의 삶을 바꾸기 위해, 우리는 탄핵을 딛고 더 나아가야합니다.”지난 12월 14일, 퇴진 집회 시작 전 국회 앞에서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이 주최해 ‘노동자들은 이미 비상계엄 상황이었다 - 윤석열 없는 세상 말하기’가 진행됐다.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이김춘택 사무장이 탄핵 이전에도 생지옥이었던 조선하청노동자의 노동과 삶에 대해, 그래서 우리는 탄핵을 딛고 노동현장과 생산현장으로 민주주의를 확대시켜가자고 이야기했다. 투쟁의 미디어 스튜디오 알에 올라간 투쟁의 목소리를 널리 알리고자 지면에 옮겨싣는다. [발언전문]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기 위해서 저 멀리 거제에서 아침 5시에 출발해서 올라왔습니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사무장 이김춘택입니다. 투쟁! 여러분 요즘 야광봉 하나씩은 다 장만하셨죠? 저도 어제 조합원에게 야광봉 하나 받아서 열심히 흔들었습니다. 아이돌 그룹 세븐틴을 좋아해서 덕질하는 제 짝지는 세븐틴 야광봉, 응원봉을 사놓지 못한 걸 안타까워하면서 대신 당근마켓에서 또 다른 아이돌 그룹 NCT 응원봉을 사서 신나서 탄핵 집회에 나갔습니다. 다양한 모양과 빛깔의 야광봉을 들고 10대, 20대가 대거 참여하는 새로운 집회 모습이, K-POP이 흥겹게 울려퍼지는 축제와도 같은 집회가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참 다행스럽고 참 반가운 일입니다. 그만큼 윤석열의 비상계엄은 수많은 시민들의 일상을 깨뜨려버렸습니다. 덕후에게 마음껏 편히 덕질할 자유를 달라고 요구하는 거대한 외침이 지금 광장을 야광봉 불빛으로 넘실거리게 하고 있습니다. 모두들 윤석열이 하루빨리 탄핵되고 체포되고 구속돼서 12월 3일 밤 비상계엄 이전의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곧 그렇게 될 겁니다. 그런데 윤석열이 탄핵되고 구속되고 나서 다시 돌아간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지옥 같다면 어떻겠습니까? 윤석열이 탄핵되는 것만으로는, 그래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만으로는 생지옥 같은 현실이 변함없다면 어떻겠습니까? 거제에서 울산에서 목포에서 배를 만드는 조선소 하청 노동자의 처지가 그렇습니다. 저희도 매일 거리에서 목이 터져라 윤석열 탄핵을 외치고 있지만 윤석열이 탄핵된다 해도 조선소 하청 노동자가 다시 돌아갈 일상은 생지옥이나 다름 없습니다. 올해부터 조선업이 초호황입니다. 지난 3분기까지 그러니까 1월부터 9월까지 단 9개월 동안 현대중공업은 4,230억, 삼성중공업은 3,285억, 한화오션은 689억의 막대한 영업이익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그 수천억의 이익을 만들어낸 조선소 하청 노동자는 20년을 일해도 30년을 일해도 최저임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저임금에 고통 받고 있고 심지어 올해 들어 임금 체불까지 당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업 살인이라고 불리는 산재 사망 사고가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올해만 한화오션에서 노동자 7명이 목숨을 잃었고, 조선업 전체로는 21명이나 사망했습니다. 이런 현실을 바꾸고자 하청 노동자가 노동조합으로 뭉쳐서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하면 원청 조선소의 탄압이 뒤따릅니다. 그래서 지금 한화오션 하청 노동자는 이 추운 겨울에 천막도 치지 못하고 32일째 노숙농성을 하고 있고 25일째 단식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국회의원들이 농성장을 방문하기도 했지만 한화오션은 국회의원의 말도 들은 척, 만 척 안하무인입니다.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던 12월 3일 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는 침낭 하나로 겨울밤 추위를 견디다 비상계엄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화오션 하청 노동자에게 윤석열이 탄핵되고 다시 비상계엄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그 차디찬 노숙의 밤으로 돌아가는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한화오션 하청 노동자는 단순히 탄핵만 외칠 수 없습니다. 탄핵 이전의 삶 역시 생지옥이었기에 탄핵을 딛고 더 앞으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노동조합법 2조, 3조 개정 이른바 노란봉투법이라고 합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 3권을 한국사회 비정규직 노동자는 제대로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노동조합법을 고쳐서 비정규직 노동자도 노동 3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하려는데 윤석열은 두 번이나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그러므로 윤석열을 탄핵한다는 것은 그를 대통령에서 끌어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윤석열이 거부한 노동조합법 2조 3조 개정으로 나아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맞습니까? 윤석열이 탄핵된 뒤 국회에서 가장 먼저 통과시키는 법이 노란봉투법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도 이전에 윤석열과 국민의힘을 의식해서 만든 미흡한 내용이 아니라, 조선소 하청 노동자도, 자동차 판매 노동자도, 쿠팡 물류창고 노동자도, 퀵서비스 플랫폼 노동자도, 모든 노동자가 노동 3권을 누릴 수 있는 제대로 된 노란봉투법이 통과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윤석열을 탄핵시킨 보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한화오션 하청 노동자들은 헌법이 부여한 노동자의 권리를 찾고자 32일째 노숙농성하고 있고 25일째 단식투쟁하고 있습니다.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전에 서울에 올라와서 단식하고 오체투지도 하며 우리의 투쟁을 알리려 했지만 윤석열 탄핵을 외치는 함성 소리에 묻혀 계획을 취소하고 거제로 내려와야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윤석열이 탄핵되고 나면 이전보다 더 열심히 투쟁하려고 합니다. 탄핵의 함성 소리에 가려 잘 들리지 않던 투쟁하는 목소리에 앞으로 더 많은 관심과 연대가 필요합니다. 윤석열을 탄핵하고 구속해서 1987년 6월 항쟁이 만들어낸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회복하고 지키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에 그치지 않고 여전히 재벌의 독재, 자본의 독재가 강력한 노동 현장과 생산 현장으로 민주주의를 확대시켜 나갑시다. 윤석열 탄핵이 끝이 아니라 1987년에 형식을 갖추는 데 머물렀던 한국 사회의 진정한 민주화를 위한 시작이 될 수 있도록 노동자가 앞장서 투쟁합시다. 저희도 한화오션의 악랄한 노조 탄압에 맞서 끝까지 온 힘 다해 싸우겠습니다 투쟁!”
-
[성명] 모든 노동자 민중은 즉시 광장으로! 단호한 물리력으로 내란 세력의 반격을 완전히 분쇄하자!12월 26일 한덕수는 국회 선출 헌법재판관 3명의 임명을 거부했다. ‘수사보다 탄핵 심판이 우선’이라면서도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서류 수취조차 거부한 채 “6인 체제 탄핵 심판은 문제가 있다”고 밝혀온 윤석열과 합을 맞추는 짓거리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탄핵 심판을 지연시키다 내년 4월 18일 두 명의 헌법재판관이 임기를 마치면 아예 탄핵 심판 자체를 무산시키겠다는 속셈이다. 여야정 국정협의체를 제안하며 재집권에만 골몰하던 민주당은 뒤늦게 내란 세력을 발본색원한다며 한덕수에 대한 탄핵을 결정했다. 하지만 뒤를 이을 최상목 부총리 역시 헌법재판관을 임명한다는 보장이 없다. 최상목은 27일 원·달러 환율 급등 등 국정 혼란을 들먹이며 한덕수에 대한 탄핵을 “내각 전체에 대한 탄핵”으로 간주하겠다고 위협했다. 내란 잔당 국민의힘 역시 민주당의 국무위원 연쇄 탄핵이 국정을 초토화하고 있다며 극우반동 세력의 총결집을 선동하는 중이다. 눈앞의 상황은 명백하다. 노동자 민중의 물리력으로 분쇄되지 못한 내란이 다시 고개를 치켜드는 것이다. 지금은 윤석열에 대한 국회 탄핵이 가결되지 않았던 12월 14일 이전보다 더 위험하고 결정적인 시간이다. 윤석열의 돌발행동 탓에 극우반동 세력은 미처 전열을 정비하지 못한 채 국회의 탄핵안 가결을 지켜봐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 달라졌다. 연쇄 탄핵으로 인한 국정 혼란,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 등을 명분 삼아 내란 세력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게 결집하고 있다. 만약 윤석열의 탄핵이 무산되는 끔찍한 상황이 현실로 되면 이를 계기로 극우반동 세력은 총반격에 나설 것이다. 윤석열의 계엄 발동이 내란죄까지는 아니라던 기존의 소극적 저항을 넘어, 이제는 계엄 발동 자체가 정당했다는 주장이 공공연히 행해질 것이다. 노동자 민중의 저항에는 “몽둥이가 답”이라며 모든 시위‧파업에 총칼로 응답할 것이다. 결국 해답은 노동자 민중의 단호한 물리력이다. 재집권에 골몰하느라 광장과 의회 사이에서 갈지자 행보를 보이는 민주당에 기댈 것이 아니라, 노동자 민중 스스로의 힘으로 내란 세력을 철저히 분쇄해야 한다. 우선 당장 28일 광장에서 압도적 숫자로 태극기 부대를 제압해야 한다. 민주노조 진영은 지금부터라도 자본 이윤에 타격을 주는 실질적 총파업을 현실화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때다. 남태령 대첩으로 시작된 ‘응원봉 연대’가 투쟁하는 노동자에게 확대되고 있다. 광장의 에너지와 연대를 받아 안고, 노동자계급이 정말 민중항쟁의 길을 열겠다는 기세와 각오로 최전선에 떨쳐 나서야 한다. 내란 세력의 반격 앞에 주저하거나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모든 노동자 민중은 즉시 광장으로! 강력한 노동자 총파업과 민중항쟁으로 내란 세력의 발악에 철퇴를 내리치자! 2024년 12월 27일 사회주의를향한전진
-
12·3 이후 현 정세의 성격과 노동자계급의 과제에 관한 의견12월 3일 윤석열 비상계엄 발표 사진:로이터 1. 윤석열 12·3 친위쿠데타의 성격 12월 3일 저녁 10시 23분, 윤석열이 느닷없이 대국민담화를 시작한 뒤 10시 28분 ‘반국가세력 척결’을 내걸고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11시 23분, 계엄사령관이 포고령 제1호를 발표했다. 그러나 4일 새벽 1시 1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요구안을 통과시켰다. 4시 27분 윤석열이 비상계엄 해제를 선언했다. 비상계엄 선포로부터 5시간 59분 만이었다. 1)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압살 윤석열은 비상계엄을 선포한 12·3 담화와 극우세력의 궐기를 촉구한 12·12 담화를 통해 반국가세력의 핵심으로 민주당을 지목했다. 또한 부정선거 진실규명을 계엄령 선포의 주된 이유로 밝혔다. 3일 밤 정보사령부에는 북파공작부대(HID)를 포함한 38명의 요원들이 다음날 출근하는 선관위 직원 30명을 체포하여 B1 벙커로 이송하기 위해 대기 중이었다. 방첩사령관이 국정원1차장과 경찰청장에게 제시한 체포대상자 명단에는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에게 부정선거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들이 포함돼 있었다. 윤석열은 선관위 직원들과 체포된 인사들을 고문하여 부정선거 증거를 조작해 낸 뒤 4월 총선을 무효화하고 국회를 해산하면서 민주당을 절멸시키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을 비롯한 민주당계 인사들이 체포대상 명단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또한 민주당이 일차적인 공격 대상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체포대상 명단에 한동훈까지 포함된 것은 여야를 막론하고 모든 정적을 제거하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한동훈은 ‘국회에 가면 체포되고 목숨이 위험할 수 있다’는 전화를 계엄 선포 직후 누군가에게 받았다고 밝혔다. 체포대상 명단에 국회 의장과 부의장이 포함된 것, 전·현직 대법관들과 이재명 무죄선고 판사가 포함된 것은 입법부를 완전히 무력화하고 사법부 또한 겁박하려 했던 노골적인 의도를 보여준다. 계엄선포 직후 발표된 포고령 제1호는 △국회·지방의회·정당의 활동 금지 △결사·집회·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 금지 △언론과 출판에 대한 계엄사의 통제 △파업·태업·집회 금지 △영장 없는 체포·구금·압수수색 등 광범한 기본권 박탈을 통해 부르주아 민주주의조차 압살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또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전복을 기도하는 일체의 행위 금지 △가짜뉴스·여론조작·허위선동 금지 △포고령 위반자 처단 등 모든 비판과 저항을 반국가세력의 국가전복 행위로 규정하여 난폭하게 탄압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었다. 2) 노동자·민중의 기본권에 대한 압살 그런데 윤석열의 친위쿠데타가 성공했다면, 결과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당하는 것은 노동자·민중이었을 것이다. 체포대상 명단에는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포함돼 있었다. 포고령은 특히 파업·집회·언론·정치활동의 자유를 압살함으로써 노동자·민중의 권리를 전면적으로 박탈하려 했다. 만일 윤석열의 친위쿠데타가 성공했다면, 한마디로 말해서 파업과 민주노조가 불가능한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민주노총도 존재할 수 없고, 좌파정치조직·진보정당·노동단체·시민단체 등도 모두 존재할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자본가들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자계급이 쟁취해 온 모든 성과들을 박탈하려고 나섰을 것이다. 3)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은 군사파시즘 부활 시도 12월 3일 낮 국방부장관 김용현은 점심을 먹으면서 “탱크로 국회를 밀어버리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전차부대를 지휘하는 제2기갑여단장은 3일 밤 선관위 공격을 위해 요원들이 대기 중이던 정보사령부에서 별도 대기했다. 만일 윤석열의 친위쿠데타가 계속 진행됐다면, 전차들이 서울 시내 한복판을 휘젓고 다녔을 것이라는 얘기다. 윤석열의 12·3 친위쿠데타는 박정희의 1961년 5·16 쿠데타와 1972년 10·17 쿠데타, 전두환의 1979년 12·12 쿠데타와 1980년 5·17 쿠데타를 재현하려 한 시도였다. 만일 윤석열의 친위쿠데타가 성공했다면 1961~1987년의 군사파시즘이 전면적으로 부활했을 것이다. 1961~1987년 한국을 지배했던 군사정권은 (파시즘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압살했을 뿐만 아니라 자주적인 노조결성권과 파업권 등 노동자계급의 모든 권리를 박탈했다는 본질적인 측면에서 파시즘의 한 형태, 즉 군사파시즘이었다. (1920~30년대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등장했던 고전적인 파시즘과 1961~1987년 한국에 존재했던 군사파시즘 사이의 한 가지 중요한 차이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탈리아와 독일에서의 고전적인 파시즘은 노동자계급의 역량이 혁명 근처까지 다다른 상황에서 이를 제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군사파시즘은 노동자계급의 역량이 매우 미약한 상황임에도 노동자계급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했다.)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은, 1972년 박정희가 유신체제를 수립하며 단행했던 10·17 비상계엄이나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서울의 봄’과 광주민중항쟁을 짓밟으며 군사파시즘 체제를 재수립하는 과정에서 단행했던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와 매우 닮은꼴이다. 결론적으로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은 노동자·민중이 피로써 쟁취한 모든 권리들을 일거에 박탈하고서 군사파시즘을 전면적으로 부활시키려 획책한 친위쿠데타였다. 또한 1987년의 제한된 민주화에 입각한 현 헌정체제마저 반인민적 음모와 무력을 통해 일거에 전복시키려 한, 인민에 맞선 ‘내란’이었다. 2. 윤석열 12·3 친위쿠데타가 발생한 이유 1) 윤석열의 정치적 위기 윤석열이 2022년 3월 대선에서 0.73% 근소한 차이로 승리해 5월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민주당 등 야권은 국회의 63%(189석)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취임 2년 뒤에 치러진 2024년 4월 총선에서도 야권이 압승해 국회의 64%(192석)를 장악했다. 윤석열이 4월 총선에서 대패한 이유는 무엇보다 그의 반동적 정책들 때문이었다. 윤석열은 화물연대와 건설노조 등을 상대로 광포한 탄압을 자행했다. 여론의 강력한 반발 때문에 멈춰서긴 했지만 주69시간 노동제 도입을 시도했다. “더 이상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며 여성가족부 폐지 등 젠더평등에 반하는 정책들을 지속적으로 밀어붙였다.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동조하고, ‘일본 기업의 강제징용 배상’ 대법 판결을 무력화했으며, 한미일 동맹 강화와 전쟁연습 확대로 전쟁위기를 고조시켰다. 공정과 상식을 앞세워 놓고서 본인과 부인의 의혹에 대한 수사는 철저히 거부했다. 윤석열은 화물연대와 건설노조 등을 상대로 광포한 탄압을 자행했다 4월 총선에서 대패한 결과, 윤석열의 대통령 취임 이후 12월 3일까지 2년 7개월 동안 한국 정치사에서 전례없는 여소야대 상황이 지속되었다. 그동안 윤석열은 25번의 거부권을 행사하여 민주당이 주도한 각종 법률과 특검법 등을 무산시켰다. 윤석열의 수하 노릇을 한 검찰은 이재명을 상대로 압수수색 376회 등 전방위 수사를 진행하여 5건의 형사재판에 회부한 반면, 윤석열과 김건희의 의혹에 대해서는 철저히 수사를 회피했다. 윤석열의 거부권 행사 대상에는 본인과 김건희의 의혹을 수사하기 위한 특검법들이 여러 차례 포함됐다. 반면 민주당은 22건의 탄핵소추를 통해 정부 관리들의 직무를 정지시켰다. 민주당의 탄핵소추 대상에는 윤석열과 김건희의 의혹 수사를 회피한 검사들과 이재명 수사를 담당한 검사들이 포함됐다. 이 과정은 부르주아 정치세력들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서로 비리를 폭로하고 사법체계를 동원하는, 부르주아 정치질서 안에서 숱하게 되풀이되어 온 암투들 가운데 하나였다. 이 암투에서 상황은 윤석열에게 점점 더 불리해졌다. 그것은 무엇보다 한동훈과의 갈등 때문이었다. 한동훈은 윤석열의 최측근이었으나 차기 대권을 꿈꾸며 정치에 뛰어든 뒤 김건희 의혹에 대한 해법을 둘러싸고 윤석열과 일정한 차별화를 시도했다. 윤석열과 한동훈의 관계는 끝없이 악화되었고, 국민의힘 내 한동훈 세력이 김건희 특검법 재의결에 동참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또 하나의 변수는 윤석열 대선 때 깊이 관여한 정치브로커 명태균과 관련된 폭로였다. 10월 31일 윤석열의 불법적인 공천개입을 시사하는 녹음파일이 공개되었다. 12월 2일에는 구속된 명태균이 자신의 휴대폰을 민주당에 제공할 수 있다면서 윤석열·김건희를 강하게 압박했다. 이러한 요소들은 계엄을 선포한 12월 3일에 이르기까지 윤석열의 정치적 위기가 어떻게 심화하였는가를 보여준다. 그런데 윤석열의 정치적 위기가 45년만의 비상계엄으로 바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사이에는 많은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윤석열 개인의 성향과 기질도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윤석열이 자신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비상계엄이라는 선택을 할 수도 있게끔 영향을 미친 사회적·정치적 변화일 것이다. 2) 파시즘의 잔재 위에서 극우세력의 재성장 1980년 광주민중항쟁에서 시작되어 1987년 6월 민중항쟁에서 정점에 이르렀던 노동자·민중의 민주주의 투쟁은 군사정권과 야합한 부르주아 보수야당의 배신에 가로막혀 절반의 승리만을 거둔 채 멈춰 섰다. 민주주의는 껍데기로만 쟁취되었고, 군사파시즘은 온전히 청산되지 못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친일세력의 주류였으며 군사정권 시절 박정희·전두환을 떠받치던 극우세력은 1987년의 형식적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군대·경찰·행정·사법 등 국가기구 곳곳에서 강력한 기반을 유지했다. 파시즘의 잔재는 ‘1987년 체제’라는 제한된 부르주아 민주주의 안으로 스며들었고 지속되었다. 1990년 전두환·노태우의 민주정의당, 김종필의 민주공화당,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의 합당을 통해, 즉 군사정권 주역들과 보수야당 온건파의 결합을 통해 (오늘날 국민의힘의 원조라 할) 민주자유당이 출범했다. 처음에는 군사정권 후예들이 민주자유당의 주류였지만, 1993년 김영삼 정권에 의해 군부 내 하나회 세력이 제거되고 1995년 전두환·노태우가 5·17 쿠데타로 내란죄 처벌을 받으면서 주도권이 보수야당 출신의 공화주의 보수파에게 넘어갔다. 지도부를 잃고 중핵이 와해된 군사정권의 잔존 세력은 정치적 생존을 위해 공화주의 보수파로 변신했다. 1997년 IMF 경제위기를 전후해 김대중이 이끌던 보수야당 급진파가 신자유주의 중도우파로 재정립할 때, (군사정권 잔존세력을 포괄한) 공화주의 보수파는 신자유주의 우파로 재정립했다. 이후 두 세력은 1998년의 김대중 정부부터 2024년의 윤석열 정부까지 자본가정당이라는 근본적 본질에서만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공세를 집행한다는 핵심 정책에서도 엇비슷한 지배세력이 되었다. 그러나 두 세력이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었다. 신자유주의 우파가 집권할 때마다 그 속에 내재한 극우적 본성을 드러내면서 노동자·민중을 더욱 거칠게 공격하는 일이 되풀이되었다. 2009년 쌍용차 파업에 대한 살인적 진압, 2010~12년 금속산업 민주노조들에 대한 와해 공격, 이명박·박근혜 정권 내내 계속된 KBS·MBC 방송 장악, 박근혜 정권 시기 문화계 블랙리스트, 2015~16년 박근혜 정권의 노동개악 공세, 2022~24년 윤석열 정권의 화물연대·건설노조 등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은 그 대표적인 사례였다. 극우적 공격은 노동자·민중으로부터 거센 반작용을 낳았다. 2016~17년 박근혜 퇴진투쟁이 폭발하고 결국 탄핵으로 귀결되었던 것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극우적 공격에 맞선 노동자·민중의 반격이 축적되고 결집한 결과였다. 그런데 박근혜의 탄핵은 다시 극우세력이 새롭게 성장하는 반작용을 낳았다. 2017년 3월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의 탄핵이 최종 확정될 무렵, 극우세력이 결집한 이른바 ‘태극기집회’는 거리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1997년 이후 20여 년 동안 신자유주의 우파라는 외피에 봉인돼 있던 극우세력의 목소리가 군부에게 노골적으로 쿠데타를 호소하는 등 거리에서 거침없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극우세력의 재성장은 전광훈으로 대표되는 기독교 복음주의 우파가 주도했고 예비역 군 장성 등 군사정권 후예들이 결합했다. 극우세력의 기세는 문재인 정권 내내 지속되었고, 극우세력의 대중적 기반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데서 극우 유튜버들과 부정선거 음모론이 중심적 역할을 했다. 극우세력은 2020년 총선 등에서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시도했지만, 단 한 명의 국회의원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입당전술을 통해 국민의힘 안에서 영향력을 강화하는 데서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국민의힘에 대한 극우세력의 영향력 강화는 한동안 김종인과 이준석으로 대표되는 공화주의 보수파의 영향력 확산과 병행해서 진행되었다. 검찰이라는 핵심 관료조직을 틀어쥔 윤석열은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영입되면서 극우세력의 중심으로 부상했지만, 공화주의 보수파의 외피를 쓰고 대선을 치렀다. 윤석열은 집권 직후 이준석을 내쫓고 당권을 장악하면서 극우세력의 본성을 드러냈고, 이후 국민의힘의 주도권은 윤석열을 중심으로 한 극우세력에게 확연히 넘어갔다. 이후 윤석열은 노골적으로 국민의힘 대표선거에 개입하고 대표에게 사퇴를 강요하는 등 불법적이고 반공화주의적인 당무개입을 지속했다. 그러나 친윤계라는 이름 아래 국민의힘의 다수 정치인들이 윤석열을 맹목적으로 지지하고 줄서는 행태는 변하지 않았다. 2023~24년 윤석열이 공식 석상에서 ‘반국가세력 척결’을 되풀이해서 외치며 극우세력의 목소리를 점점 더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동안, 친윤계 또한 공화주의 보수파의 외피를 벗어던지고 극우세력의 본성을 노골화하는 방향으로 점점 이동하고 있었다. 이처럼 윤석열의 12·3 친위쿠데타는, 개인적 동기를 넘어 사회구조라는 큰 틀에서 바라보자면, 군사파시즘의 잔재 위에서 2017년 이후 극우세력이 다시 성장해 온 사회적·정치적 변화를 반영하는 사건이다. 또한 그러한 조건 위에서 군사파시즘의 부활이라는 극우세력의 잠재된 열망을 전격적으로 실행에 옮긴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3) 세계적인 극우세력 부상과의 관련성 윤석열의 12·3 친위쿠데타는, 그리고 그 사회적 기반이 된 2017년 이후 극우세력의 재성장은 최근 10여 년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극우세력이 부상해 온 세계적 경향과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을까?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미국 등과 비슷하게 한국에서도 기독교 근본주의, 즉 복음주의 우파가 최근의 극우세력 성장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 왔다는 점이다. 한국의 복음주의 우파는 태극기 집회에 성조기와 함께 이스라엘기를 휘날리고 차별금지법 반대운동을 극렬하게 펼쳐 왔는데, 이는 미국에서 복음주의 우파가 강력한 시온주의 지지 세력이자 성소수자 혐오 세력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부정선거 음모론이 극우세력의 논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점도 미국이나 브라질에서 나타난 현상과 일맥상통한다. 윤석열의 12·3 친위쿠데타는 ‘부정선거 진실규명’을 주된 명분의 하나로 내걸었다는 점에서, 부정선거를 주장했던 2021년 미국 의사당 폭동, 2023년 브라질 의회·대법원·대통령궁 폭동과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다. 2021년 미국 의사당 폭동 사진: EPA 그러나 중요한 차이점도 있다. 세계적인 극우세력의 부상은 대체로 자본주의 위기 심화에 따른 노동자·민중의 경제적 빈곤화로부터 역설적으로 가장 큰 동력을 얻고 있으며, 트럼프의 재집권이 보여주듯 많은 나라에서 상당히 폭넓은 사회적 기반을 획득해 가고 있다. 또한 극우세력의 집권은 노동자·민중에 대한 극심한 사회경제적 공격을 뜻하긴 하지만, 부르주아 민주주의 자체를 전면 부정하는 파시즘으로는 쉽게 진화하지 않고 있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 극우세력의 부상은 아직까지는 파시즘의 잔재와 연결된 정치의식의 요소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 사회적 기반 또한 과거 군사파시즘에 향수를 느끼는 60대 이상으로 무게중심이 크게 쏠려 있다. 또한 군사파시즘의 역사와 잔재 때문에 극우세력의 성장이 중간과정을 생략한 채 12·3 친위쿠데타와 같은 파시즘 부활 시도로 매우 빠르게 진화할 수 있다는 특징을 보여주었다. 3. 윤석열 12·3 친위쿠데타가 실패한 이유 1) 어설픈 준비와 자기정당성의 결여 윤석열의 12·3 친위쿠데타는 왜 실패했는가? 일차적인 이유는 계엄선포 직후 수천 명의 노동자·민중과 국회의원들이 계엄해제를 위해 국회로 달려간 속도에 비해 군대와 경찰이 국회를 봉쇄하러 달려간 속도가 밀렸다는 데 있다. 그런데 만일 동원된 군대와 경찰이 무자비한 폭력을 자행해서라도 국회를 마비시키고자 했다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었다. 실제로 윤석열은 특전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끄집어내라”고 지시했고, 수방사령관에게 “4명이 들어가 1명씩 끌고 나오라”고 지시했으며, 경찰청장에게도 여섯 차례나 국회의원 체포를 지시했다. 그러나 군대·경찰 지휘관들은 국회를 봉쇄하라는 윤석열의 명령을 기본적으로 실행하면서도 유혈사태를 야기할 정도의 명령은 이행하지 않았다. 유혈사태와 그에 따른 사후 책임을 감수할 정도로는 의식적으로 준비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군대·경찰 지휘관들이 유혈사태를 감수하지 못한 또 하나의 중요한 원인은 유혈사태가 발생할 경우 일선 병사들과 경찰들이 집단 항명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였을 것이다. 이와 관련, 12·3 비상계엄을 총괄기획한 국방부장관 김용현은 9월 2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계엄준비 의혹을 제기하는 민주당 의원에게 “지금 대한민국 상황에서 과연 계엄을 한다고 하면 어떤 국민이 이를 용납하겠나. 우리 군에서도 따르겠나. 저는 안 따를 것 같다”고 답변한 바 있다. 그의 답변은 계엄준비 사실을 감추기 위한 거짓말이었지만, 계엄에 대한 군대의 불복종 가능성을 언급함으로써 자신들의 계획에 심각한 역효과를 냈다. 이러한 사실들은 윤석열의 12·3 친위쿠데타가 그 핵심 주동자들 사이에서조차 자기정당성을 확신하지 못할 정도로 허술하게 준비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1년 이상 친위쿠데타를 논의하고 준비했지만, 윤석열 개인의 위기 타개나 부정선거 음모론을 넘어서는 그럴듯한 대의명분을 만들어내지 못했던 것이다. 극우세력의 성장이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자와 집권당 국회의원 수십 명을 휘어잡을 정도에 이르렀고, 이것이 군사파시즘의 역사와 잔재 때문에 조기에 파시즘 부활 시도로 이어졌지만, 친위쿠데타를 주도한 자들의 역량 부족과 충동적 성격 때문에 너무 어설프게 준비하고 실행했다가 “중과부적”으로 실패해 버린 것이다. 2) 광주민중항쟁이 남긴 역사적 힘 그런데 만일 윤석열의 12·3 친위쿠데타가 어떤 식으로든 일단 성공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났던 것과 비슷한 노동자·민중의 항쟁이 이번에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 항쟁이 성공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설령 그 항쟁이 다시 한 번 군홧발의 폭력에 짓밟혔을지라도, 1980년 5월 광주의 혁명적 패배가 1980년대 한국을 혁명의 시대로 만들었듯이, 학살당한 이들의 붉은 피를 머금고 군사파시즘의 압제에 맞서는 새로운 혁명의 시대가 펼쳐졌을 것이다.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의 패배가 1987년 6월 민중항쟁과 7~9월 노동자대투쟁으로 부활하고 전진했던 그 과정이 이번에도 되풀이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노동자·민중의 투쟁은 1980년대보다 훨씬 더 폭발적이고 거대한 양상을 띠었을 가능성이 높다. 1980년 광주에서 이름 없는 노동자들이 민중항쟁을 앞장서 책임졌지만, 그들은 그전에 어떤 조직적 무기도 갖고 있지 못했다. 1987년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도 노동자계급은 조직적 무기를 갖고 있지 못했고 따라서 독립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 자본주의의 가장 중추적인 영역을 중심으로 110만의 노동자들이 민주노총으로 조직되어 있다. 비록 심각한 관료적 후퇴로 고통 받고는 있지만 민주노조운동의 잠재력은 여전히 살아있다. 친위쿠데타에 맞선 항쟁 과정에서, 그리고 설령 패배하였더라도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과정에서 지금 민주노총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의 힘은 거대한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윤석열의 12·3 친위쿠데타가 설령 성공했을지라도 군사파시즘은 결코 오래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1980년대를 훨씬 능가하는 거대한 혁명적 파도가 한국을 휩쓸었을 것이고, 노동자계급은 1980년대보다 훨씬 더 멀리 전진했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점, 즉 설령 성공하더라도 오래 버티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국회를 봉쇄하러 동원된 군대와 경찰의 지휘관들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비록 제한적인 민주화에 그치긴 했지만, 1980년 광주민중항쟁이 역사 속에서 보여준 극적인 부활과 승리를 모르거나 무시할 수 있는 한국인은 없기 때문이다. 바로 그 점이야말로 군대·경찰 지휘관들을 머뭇거리게 만든 진정한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두려움이 없었다면 어설픈 대의명분을 갖고도 훨씬 쉽게 유혈사태를 감수했을 수 있다. 그러나 친위쿠데타가 성공하더라도 오래 버티지 못할 수 있다면 유혈사태까지 감수하기에는 훨씬 더 선명한 대의명분이 필요했던 것이다. 3) 국지전 불장난의 실패 12·3 친위쿠데타의 주모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명분을 만들어 내려고 노력하기는 했다. 북한을 자극하여 국지전을 유도해 내는 것이었다. 10월 11일 북한은 한국이 10월 3일, 9일, 10일 세 차례에 걸쳐 평양 상공에 무인기를 침투시켜 대북전단을 살포했다고 발표했다. 12·3 친위쿠데타가 실패한 이후 바로 이 무인기 침투 사건은 국지전을 유도하여 비상계엄의 명분을 확보하려는 윤석열 정권의 의도된 도발이었음이 확인되었다. 11월 18일 국방부장관은 북한 오물풍선 원점타격을 지시했지만 합참의 반대에 막혔던 것으로도 알려진다. 12·3 친위쿠데타를 실무기획한 노상원의 수첩에서는 “NLL 북한 공격 유도”라는 메모가 발견되었다. 대북전단 살포 무인기 잔해 국지전을 유도하려는 윤석열 정권의 시도는 왜 실패했을까? 10월 31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9’ 발사가 그 이유를 압축적으로 설명해 준다. 러시아와의 군사적 밀착, 중·러·북 동맹의 작동으로 자신감이 높아진 북한은 조급하게 국지전에 말려드는 대신 오히려 대담하게 ‘전쟁을 원한다면 전면전을 하자’고 (윤석열 정권이 아닌) 미국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실제로 지금의 국제정세 속에서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국지전으로 제한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난 몇 년 동안 미국과 중국을 정점으로 제국주의 패권대결이 매우 격화되어 왔으며, 그 일환으로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는 대만과 함께 세 번째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간주되어 왔다. 한반도는 대만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중국의 이해관계가 직접적으로 걸려 있지만, 대만과 달리 미·일·한과 중·러·북의 국제적 대치구도가 이미 팽팽하게 작동하고 있으며, 수십 년 동안 엄청난 양의 강력한 무기들이 서로를 겨눠 왔다. 따라서 만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자칫 미국·일본과 중국·러시아가 모두 뛰어드는 대량파괴 국제전으로, 나아가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산될 위험성이 매우 높다. 정확한 과정은 아직 알 수 없지만,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갖는 이 위험성 때문에 윤석열 정권의 국지전 유도 시도는 실패했을 것이다. 미국으로서도 정권 교체기에 준비되지 않은 방식으로 한반도 전쟁에 휩쓸려 들어갈 수는 없었을 테니까. 윤석열 정권의 국지전 유도 시도는 한편으로 국제정세에 대한 그들의 인식이 얼마나 저열한지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우리가 얼마나 위험한 세상에 살고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해 준다. 파시즘만이 아니라 전쟁 또한 얼마나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지를 확인하며, 그야말로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다. 자본주의의 극심한 위기가 파시즘과 전쟁을 부르는 시대, 따라서 노동자·민중이 생존을 위해서라도 혁명으로 떨쳐 일어서지 않을 수 없는 시대, 즉 위기·전쟁·혁명의 시대 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윤석열의 12·3 친위쿠데타는 다시 한 번 너무나 명징하게 보여준다. 4. 새로운 계급투쟁 지형의 성격과 전망 1) 극우세력에 맞선 전선의 돌출 윤석열의 12·3 친위쿠데타로 한국의 계급투쟁 지형이 하루 밤 사이에 급변했다. 극우세력이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노동자·민중의 권리를 전면 박탈하는 군사파시즘의 부활을 획책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새로운 지형 위에서 노동자계급은 극우세력에 맞서기 위해 불가피하게 민주당을 비롯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세력과 한 편에 서서 싸울 수밖에 없게 되었다. 현 상황은 1917년 8월말 러시아에서 코르닐로프 반란이 일어났을 때 노동자계급이 부르주아 임시정부와 한 편에 서서 싸울 수밖에 없었던 형국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1980년대 군사정권에 맞서 노동자·민중과 부르주아 보수야당이 한 편에 서서 싸웠던 전선이 재현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존의 계급투쟁 지형은 이와 달랐다. 노동자·민중은 신자유주의 우파(국민의힘)와 신자유주의 중도우파(민주당)라는 두 자본가세력 모두에 맞서 투쟁했다. 둘 사이의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노동자·민중의 입장에서 결정적인 차이는 아니었다. 기존의 계급투쟁 지형에서는 노동자계급의 독립성을 견결히 고수하면서 두 자본가세력 모두에 맞서 노동자·민중의 투쟁을 발전시켜 나가야 했다. 그와 같은 기존의 계급투쟁 지형은 1987년 제한된 민주화와 함께 형성됐다. 특히 1990년대 중후반을 지나며 군사정권 잔존 세력이 공화주의 보수파로 변신하고 부르주아 정치질서가 신자유주의 우파 대 신자유주의 중도우파의 대결구도로 재편되면서 지형이 고착됐다. 이후 30여 년 동안 지속되어 온 기존의 계급투쟁 지형이 12·3 친위쿠데타와 함께 새로운 지형으로 바뀐 것이다. 새로운 지형에서도 노동자계급의 독립성과 투쟁력을 견결히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다. 극우세력만이 아니라 민주당 등 부르주아 민주주의 세력에 맞선 투쟁도 당연히 지속되어야 한다. 다만 새로운 지형의 특징은 극우세력에 맞선 투쟁이 핵심 과제라는 데 있다. 극우세력에 맞선 투쟁에서 노동자계급이 민주당을 능가하여 주도권을 장악할수록 광범한 대중 속에서 헤게모니를 획득할 수 있고, 따라서 민주당에 맞선 노동자·민중의 투쟁 또한 더욱 성공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1917년 8월말 러시아에서 볼셰비키가 이끈 소비에트는 코르닐로프 반란군을 무력화하는 데서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다. 여기서 거둔 성과는 소비에트로 결집한 노동자·민중의 자신감을 극대화했고, 결국 두 달 뒤 껍데기만 남은 부르주아 임시정부를 가볍게 제압하고 소비에트가 사회주의 공화국을 건설하는 10월 혁명으로 귀결됐다. 마찬가지 원리가 지금 극우세력에 맞선 전선에서도 작동한다. 2) 극우세력의 목표와 방법 윤석열의 12·3 친위쿠데타는 도발적으로 새로운 전선을 열었지만, 곧바로 허망하게 실패하면서 극우세력을 매우 불리한 위치로 내몰았다. 그러나 정치적·사회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갖고 있는 극우세력은 만만치 않은 저항과 반격에 나서고 있다. 처음에 윤석열을 비롯한 극우세력은 한동훈과의 타협을 통해 탄핵소추를 피하면서 전열정비의 시간을 벌고자 했다. 그러나 한동훈이 ‘3~4개월 내 조기퇴진’이라는 항복을 요구하자 타협을 깨고 정면대결의 길로 선회했다. 윤석열은 12·12 담화에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선언했고, 12월 14일 탄핵소추가 가결될 때 국민의힘 의원 85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거나 12·3 비상계엄은 내란이 아니라는 응답이 여론조사에서 20~25%를 유지했다. 전광훈 등은 거리에서 극우 총궐기를 조직하기 위해 광기어린 선동에 나섰다. 탄핵소추 가결 이후에도 윤석열과 극우세력은 버티기를 통해 세력관계 반전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윤석열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는 최대한 지연시킬 작전을 펴면서 내란죄 수사는 일체 거부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헌법재판관 추가선임 절차를 보이콧하고 친윤계 일색으로 지도부를 재정비했다.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는 헌법재판관 추가임명과 내란 상설특검 후보 추천을 거부하면서 탄핵심판과 내란죄 수사를 노골적으로 방해하고 있다. 현 정세에서 국민의힘을 비롯한 극우세력의 핵심 목표는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윤석열의 파면과 내란죄 처벌을 막아내는 것이다. 저들의 논리는 ‘12·3 비상계엄은 대통령의 통치행위로서 내란이 아니다’로 요약된다. 군사파시즘의 부활을 시도했던 12·3 비상계엄을 본질적으로 옹호하면서 준엄한 단죄를 무산시키려는 것이다. 윤석열의 파면과 내란죄 처벌이 확정될 경우 자신들에게 미칠 후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군사파시즘 부활 시도를 정당화하여 이후에도 다시 시도할 길을 열어두려는 극우적 의도 때문이기도 하다. 3) 민주당의 목표와 방법 현 정세에서 민주당의 핵심 목표는 민주당 정권의 재창출이다. 한편으로는 12·3 친위쿠데타가 성공했을 경우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말살과 끔찍한 개인적 고초들을 겪을 뻔했기 때문에 민주당 또한 윤석열 파면과 내란죄 처벌에는 진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는 민주주의의 전면적인 발전과 노동자·민중의 광범한 권리 쟁취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신들의 재집권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또한 집권할 경우 신자유주의 정책의 집행자로서 노동자·민중을 거세게 공격할 것이라는 본질에도 전혀 변함이 없다. 당연하게도 민주당 정권의 재창출은 노동자·민중이 결코 공유할 수 없는 목표다. 사실 윤석열 국민의힘 정권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문재인 민주당 정권이었다. 문재인 정권은 2016~17년 촛불항쟁으로 표출된 노동자·민중의 열망과는 반대의 길을 갔다. 또 하나의 자본가정권답게 최저임금을 찍어 눌렀고, 집값 폭등을 방조했으며, 특권층의 부패를 감쌌다. 윤석열 정권의 광포한 건설노조 탄압을 먼저 시작한 것도 문재인 정권이었다. 윤석열 정권은 오로지 문재인 정권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광범한 실망과 환멸을 토대로 집권할 수 있었다. 그보다 앞서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등장시킨 것 또한 김대중·노무현 정권이었다. 1998년부터 10년 동안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펼친 신자유주의 공세는 대량 정리해고의 충격과 함께 비정규직의 급격한 확산을 불러왔다. 권력의 단맛을 본 민주당은 본격적으로 반동적인 주류 지배세력의 일부가 되었다. 민주당 정권 10년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광범한 실망과 환멸이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연속 집권을 가능케 했다. 너무나 긴박한 현 정세에서도 재집권에 몰두하는 민주당의 본질은 윤석열 탄핵소추 가결 직후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에게 국정안정협의체를 제안하며 여당 노릇을 하려 했던 장면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이제 안정을 내세워야 다가오는 대선에서 중도층의 표심을 잡을 수 있으리라는 얕은 계산의 결과였다. 하지만 이는 윤석열·한덕수와 국민의힘에게 전열정비의 시간과 명분만 제공하는 중대한 실수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당은 국회에서 170석(56.7%)을 갖고 있는 자신의 의회 권력을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군중집회는 자신들의 의회권력 행사를 정당화해 줄 보조수단으로서만, 또한 자신들이 그어놓은 정치적 한계 안에서만 작동하기를 원한다. 만일 민주당의 의도가 그대로 관철된다면, 극우세력에 맞선 투쟁은 결정적으로 약화될 것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자체의 압살을 꿈꾸는 극우세력을 제압할 힘은 의회 다수의석에서 나오지 않는다. 노동자계급이 총파업이라는 고유의 수단을 동원하며 민중항쟁의 주도자로 나설 때에만 극우세력을 완전히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4) 노동자계급의 목표와 방법 현 정세에서 노동자계급의 핵심 목표는 윤석열의 파면·퇴진과 내란죄 구속·처벌을 가장 단호하고 철저하게 관철하는 것이다. 또한 극우세력의 결집체가 되어 뻔뻔스럽게 윤석열의 파시즘 부활 시도를 옹호하고 있는 내란동조정당 국민의힘을 해체하거나 궤멸적 타격을 가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군사파시즘의 부활을 획책하는 쿠데타가 한국 사회에서 다시는 시도될 수 없도록 확고하게 뿌리를 뽑아야 한다. 아울러 한국 사회의 정치지형을 왼쪽으로 크게 이동시킴으로써 노동자·민중의 권리를 광범하게 쟁취하고 노동자운동과 노동자정치를 획기적으로 전진시킬 길을 열어야 한다. 동시에 노동자계급은 12·3 친위쿠데타 제압 이후 활짝 열린 광장 속에서 노동자·민중의 광범한 요구들을 함께 쟁취해야 한다. 노동자·민중은 12·3 비상계엄 이전에도 본질적으로 기본권을 박탈당한 삶을 강요당해 왔다. 노동자·민중의 삶은 비정규직 초과착취와 노동기본권 부정으로,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억압·차별로, 기후위기 가속화와 환경 파괴로, 제국주의 진영 간 패권대결과 전쟁위기로 이미 심각하게 유린당해 왔다. 오죽하면 한국 사회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과 가장 낮은 출산율을 갖고 있겠는가! 그리고 그것은 윤석열 정권에서나 과거 민주당 정권에서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윤석열의 친위쿠데타를 분쇄해 낸 바로 그 힘으로 이제 노동자·민중의 광범한 권리 쟁취를 위한 거대한 투쟁으로 전진해야 한다. 아울러 노동자계급은 최근 사태와 관련된 급진적 민주주의 요구들을 함께 쟁취해야 한다. 사문화된 줄로만 알았던 비상계엄이 현실로 튀어나와 군사파시즘 부활을 획책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재발을 막으려면 이제 계엄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 대통령 탄핵 찬성률이 75%에 이르는 데도 소수 헌법재판관에게 탄핵심판을 맡겨놓고 기다리는 것은 너무 불합리하다. 국민투표에 의한 대통령 파면제를 도입해야 한다. 유권자의 의사와 다르게 85명의 국회의원이 탄핵에 반대했으나 다음 선거 전까지는 이들을 응징할 방법이 없다. 국회의원 상시 주민소환제를 도입해야 한다. 국회를 봉쇄하라는 명백한 불법 명령 앞에서도 군대와 경찰이 한편으로는 주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명령을 이행했다. 군대·경찰에게 불법 명령에 대한 거부의무를 명시해야 한다. 윤석열은 관료적 국가기구인 검찰조직을 장악함으로써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검찰권을 마음대로 휘둘렀다. 검찰의 지역분권화를 통한 상호감시 및 지휘부에 대한 주민직선소환제를 도입해야 한다. 한편 현 정세에서 노동자계급은 위력적인 총파업이라는 고유의 수단을 동원함으로써 폭발적인 민중항쟁의 주도자로 나서야 한다. 한편으로는 그것만이 극렬 저항에 나서고 있는 윤석열과 국민의힘을 비롯한 극우세력을 실질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현 정세에서 극우세력에 맞선 투쟁을 실질적으로 주도함으로써, 또한 실질적으로 주도할 때에만, 노동자계급이 윤석열 탄핵과 내란죄 처벌에 찬성하는 70~75%의 광범한 대중 속에서 헤게모니를 획득하면서 노동자·민중의 요구를 관철할 힘과 노동자운동의 힘찬 전진을 보장하는 미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2016~2017년 촛불항쟁의 경험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2015~16년 박근혜 정권의 노동개악에 맞선 민주노총의 투쟁은 2016~17년 촛불항쟁의 문을 열었지만, 민중항쟁을 주도할 만한 총파업을 조직하는 데 실패하면서 탄핵을 성공시킨 민주당에게 주도권을 내주고 말았다. 탄핵소추 이후 헌법재판소 결과가 나오기까지 세 달 동안 열린 광장에서 노동자·민중의 요구가 폭넓게 제기되었지만, 대중적 탄력은 결코 받지 못했다. 촛불항쟁의 승리자가 된 민주당의 정치가 큰 틀에서 대중의 의식을 지배하고 제한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전선의 핵심 과제, 즉 극우세력의 저항을 진압하며 윤석열 파면·퇴진과 내란죄 구속·처벌을 관철하고 국민의힘을 해체·몰락시키는 투쟁에서 노동자계급이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할수록 노동자·민중의 다양한 요구들을 제기하고 관철시킬 힘이 확대된다. 역으로 노동자계급이 또 다시 핵심 과제에서 유의미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그래서 다시 한 번 민주당의 부르주아 의회권력이 결정적인 해결사로 기능한다면, 민주당의 정치를 넘어서는 노동자·민중의 요구는 대중적 호응 없는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노동자·민중의 요구를 분출하기 위해 다양하게 노력해야 하지만, 핵심 과제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결정적 역할 없이는 큰 의미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사진: 연합뉴스 5) 예상되는 세 가지 시나리오 새로운 계급투쟁 지형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큰 틀에서 볼 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첫 번째, 윤석열 파면·퇴진과 내란죄 구속·처벌 및 국민의힘 해체·몰락이 모두 실현되는 시나리오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번 기회에 극우세력을 궤멸시키는 것으로서, 현 정세에서 노동자계급이 최선을 다해 추구해야 할 투쟁목표다. 이러한 성과는 민주당의 부르주아 의회권력을 중심으로 해서는 결코 얻어질 수 없다. 오직 노동자계급이 위력적인 총파업으로 폭발적인 민중항쟁을 주도함으로써 결정적 역할을 수행해 낼 때에만 쟁취할 수 있다. 만일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한다면, 노동자·민중의 다양한 요구들과 급진적 민주주의 요구들을 관철해 나갈 수 있는 거대한 동력이 형성될 것이다. 노동자운동과 노동자정치가 그야말로 획기적인 전진을 시작할 것이다. 민주당의 재집권이 아닌 노동자정부 수립과 노동자세상 건설로 나아가야 한다는 노동자계급의 전망까지도 상당한 대중 속에서 유의미한 대안으로 부상하기 시작할 것이다. 두 번째, 국민의힘 해체·몰락은 말할 것도 없고 윤석열 파면과 내란죄 처벌조차 실패하는 시나리오다. 그 형태가 윤석열의 복귀든, 내각제 개헌이든, 또 다른 무엇이든, 결론은 같다. 극우세력의 목표가 실현되는 것으로 노동자계급으로서는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물론 여론의 70%가 12·3 친위쿠데타에 대해 강력한 분노를 갖고 있고 군중집회가 계속되는 현재 상황에서는 가능성이 매우 낮다. 그러나 극우세력이 궤멸의 위기 앞에서 필사적인 저항과 반격에 나서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완전히 봉쇄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민중의 투쟁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여론을 넘어 물리력으로도 극우세력을 제압해 나가야 한다. 세 번째, 윤석열 파면과 내란죄 구속·처벌은 실현되지만 국민의힘 해체·몰락은 실현되지 않는 시나리오다. 윤석열을 단죄함으로써 파시즘 부활 시도에 상당한 경종을 울리기는 하겠지만, 극우세력 또한 국민의힘을 지켜냄으로써 추후 반격을 도모할 진지를 확보하게 될 것이다. 지금의 세력관계를 크게 바꿔내지 못한다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다. 극우세력에 맞선 투쟁이 민주당의 부르주아 의회권력을 중심으로 전개된다면, 다시 말해 노동자계급의 총파업과 민중항쟁이 충분히 강력하게 전개되지 못한다면, 이 시나리오로 귀결될 것이다. 이 시나리오로 간다면, 이후 상황은 매우 위험하게 전개될 수 있다. 이 시나리오는 민주당의 재집권으로 귀결될 것인데, 민주당 정권 아래서 노동자·민중의 삶은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고, 머지않아 노동자·민중 속에 거대한 실망과 환멸이 다시 조성될 것이다. 살아남은 극우세력은 이 과정을 거치면서 전열을 정비하고 세를 불려 더욱 강력해진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다. 특히 세계경제와 한국경제가 점점 더 깊은 위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점은 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동안 한국의 극우세력 성장은 과거 군사파시즘에 향수를 느끼는 60대 이상에 크게 쏠려 있었다. 그런데 이제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양상처럼 극우세력이 노동자·민중의 경제적 빈곤화로부터 역설적으로 강력한 사회적 기반을 제공받으면서 전 세대에 걸친 세력을 구축하게 될 수 있다. 극우세력과 자본가계급 사이의 관계도 바뀔 수 있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극우세력의 성장은 자본가계급 전반의 지지를 얻지 못한 가운데 이루어졌고, 윤석열의 12·3 친위쿠데타가 실패한 또 하나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런데 향후 경제위기가 심화된다면 자본가계급 전반이 극우세력의 집권에서 해결책을 찾으려 할 가능성도 있다. 만일 극우세력이 재집권하게 된다면 그 자체로 노동자·민중에 대한 극심한 사회경제적 공격을 의미하게 되겠지만, 다시 한 번 파시즘 부활을 획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가 이번에 확인했듯이, 군사파시즘의 역사와 잔재 때문에 극우세력의 집권이 매우 빨리 파시즘으로 진화하는 게 한국 사회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나리오로 가게 되더라도 상황이 무조건 암울한 것만은 아니다. 설령 민주당이 재집권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노동자계급의 독립성과 투쟁력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느냐에 따라 이후 사태 전개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민주당 정권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실망과 환멸이 윤석열 국민의힘 정권의 등장으로 귀결된 것은 노동자운동·노동자정치의 위축과 민주당에의 종속이라는 연결고리가 있기에 가능했다. 만일 민주당 정권 아래서 노동자계급이 독립성과 투쟁력을 단호하게 발전시켜 나갔다면 민주당 정권에 대한 실망과 환멸은 극우세력이 아니라 노동자운동·노동자정치가 도약하는 발판이 되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결국 실천적인 요점은 이것이다. 첫 번째 시나리오를 현실화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것, 다시 말해 노동자계급의 위력적인 총파업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민중항쟁을 주도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것은 설령 투쟁이 목표한 만큼 이루어지지 못해 세 번째 시나리오로 귀결되더라도 그에 대한 최선의 준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5. 노동자계급의 투쟁방향 수립을 위하여 2016년 박근혜 퇴진 투쟁 때에는 10월 24일 최순실 태블릿PC가 폭로되고부터 46일 만에 탄핵소추가 가결되었다. 당시 군중집회 흐름 안에서는 민주당의 거국내각 타협 시도와 탄핵 추진을 비판하면서 ‘대중투쟁의 힘에 의한 퇴진’을 추구하는 노선이 한동안 우위에 섰었다. 하지만 11월 30일 민주노총 총파업이 초라하게 실패하자 민주당 중심의 탄핵 추진으로 분위기가 급선회했다. 12월 9일 민주당이 주도적으로 탄핵소추를 성공시킨 뒤 촛불항쟁의 모든 성과를 가져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12·3 친위쿠데타 시도 후 11일 만에 탄핵소추가 가결되었다. 2016년과 달리 처음부터 ‘대중투쟁의 힘에 의한 퇴진’이 아니라 ‘부르주아 제도에 의한 탄핵’으로 길이 잡힌 것이다. 왜 그랬을까? 첫 번째는 2016년 경험에 의한 학습효과일 것이다. 두 번째는 다시 한 번 민주노총이 ‘대중투쟁의 힘에 의한 퇴진’을 주도적으로 관철할 만큼 위력적인 총파업을 조직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12·3 친위쿠데타 이전 민주노총의 상태는 2016년 최순실 태블릿PC 폭로 이전보다 더욱 좋지 않았다. 세 번째는 민주당이 처음부터 모든 타협을 거부하고 탄핵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제2의 계엄령 선포에 대한 공포 때문에 윤석열의 직무를 하루라도 빨리 중단시켜야 한다는 대중적 공감대가 매우 강력했기 때문이다. 비록 ‘대중투쟁의 힘에 의한 퇴진’ 경로를 가지 못하고 ‘부르주아 제도에 의한 탄핵’ 경로를 밟아 왔을지라도,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지금까지 노동자·민중의 투쟁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비상계엄 선포로부터 2시간 33분 만에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요구 결의를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결정적 힘은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듣자마자 국회로 달려갔던 수천 명의 노동자·민중에게서, 또한 전국 각지에서 그들을 응원했던 수백만, 수천만의 노동자·민중에게서 나왔다. 12월 7일 이후 지속되고 있는 군중집회는 윤석열 탄핵소추가 가결되게 한 결정적인 힘이었으며, 윤석열의 파면과 내란죄 구속·처벌 및 국민의힘 해체를 향해 전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힘으로 기능하고 있다. 지금까지 투쟁에서 민주노총의 역할은 모순적이었다. 한편으로는 상당한 역할을 해왔지만, 자신의 잠재력에 비해서는 매우 제한된 수준에 그쳤다. 민주노총은 12월 4일 새벽 3시를 기해 ‘윤석열 퇴진시까지 무기한 총파업’을 선언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5일, 6일, 11일 세 번에 걸쳐 금속노조와 철도를 중심으로 5만에서 10만 정도가 참여하는 제한된 총파업에 그쳤다. 민주노총은 군중집회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고 있고 상당수 조합원들이 군중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민주노총이 군중집회에서 경찰 바리케이드를 밀어내고 길을 열어낸 모습은 광범한 미조직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자신의 진정한 잠재력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이 위력적인 총파업을 조직해 낸다면, 군중집회는 폭발적인 민중항쟁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그러나 아직 민주노총 내 공식 단위는 물론 현장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이에 관한 논의들이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군중집회에서는 2030 여성들의 주도성이 눈에 띄게 부상했다. 양적 기준에서는 2008년이나 2016년의 군중집회에서도 비슷한 면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과거보다 훨씬 강력한 적극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21~22일 남태령에서 경찰에 가로막힌 전봉준투쟁단에 2030 여성들 주도로 아래로부터 전투적 연대를 조직하여 28시간 만에 승리를 쟁취한 것은 매우 인상적인 사건이다. ‘남태령 대첩’의 감동은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들과 이동권 투쟁 장애인들에 대한 자발적 연대로 이어지고 있다. 차별과 억압에 맞서 스스로 연대를 조직하며 광장의 주역이 된 2030 여성들이 현 정세에서 전위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현 정세에서 가장 핵심은 민주노총이 윤석열 파면·퇴진과 내란죄 구속·처벌 및 국민의힘 해체라는 핵심 요구와 함께 노동자·민중의 다양한 요구들을 내걸고 위력적인 총파업을 조직해 내는 것이다. 이를 통해 폭발적인 민중항쟁을 주도하며 정세를 이끌고 나가는 것이다.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민주노총의 위력적인 총파업을 촉구하고 선도하는 활동을 아래로부터 긴급하게 조직해 나가야 한다. 좌파 정치조직들, 전투적·변혁적 현장 활동가들,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 먼저 주체로 일어서서 그 절실한 필요성을 광범한 조합원들에게 호소하고 설득해 나가야 한다. 동시에 민주노총 공식 기구에 전면적인 토론을 제기하고 단호한 결의를 끌어내야 한다. 관료적으로 후퇴한 노동자운동의 상태 때문에 당장에는 충분한 가시적 성과를 거두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지금 같은 역동적인 정세에서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도약이 일어날 수도 있다. 결과가 무엇이든 그야말로 최선을 다해야 할 시점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이번에 극우세력을 궤멸시키지 못한다면, 노동자·민중의 경제적 빈곤화가 역설적으로 극우세력 성장에 폭넓은 사회적 기반을 제공하는 세계적인 양상이 이제 한국에서도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다. 사회적으로 가장 위험한 부분은 2030 남성이다. 2030 남성은 대체로 2030 여성에 비해 상당히 보수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향후 2030 남성 사이에서 실업·비정규직에 따른 경제적 고통이 심화되고 여성·소수자 혐오성향이 강화된다면, 그 상당수가 극우세력의 강력한 사회적 기반으로 포획될 가능성이 있다. 만일 이것이 현실화한다면 극우세력의 파괴력이 몇 곱절 배가될 것이다. 이미 60대 이상이 극우세력의 중요한 기반이 돼 있는 상황에서 OECD 최악의 노인빈곤도 주목해야 한다. 당면한 정세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과정에서 이러한 위험에 맞선 투쟁을 적극적으로 조직해야 한다. 핵심적으로는 노동자운동이 청년실업·비정규직·노인빈곤 문제를 해결할 계급적 요구를 전면에 제기하는 것, 2030 여성운동이 분리주의가 아닌 반자본주의 운동으로 뻗어나가면서 2030 남성을 견인해 내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
[주간 여성뉴스 브리핑] 결혼‧출산 인식 변화 … 개인 선택 아닌 경제적, 사회적 구조의 문제1. 결혼‧출산 인식 변화 … 개인 선택 아닌 경제적, 사회적 구조의 문제 20∼40대 10명 중 5명은 자녀가 없어도 괜찮다’는 인식을 지닌 데다, 결혼에 대해선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는 중립적 입장을 취하는 비율이 높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특히나 자녀를 키우는 데 드는 경제적 부담에 불확실한 미래까지 맞물리면서 저소득층, 그리고 여성일수록 결혼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경향이 더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저출산·고령사회 대응 국민인식 및 가치관 조사’에 따르면, 결혼과 출산에 대한 가치관이 급격히 변하면서 특히, 가임 연령대(만 19~49살) 여성들 중 절반 이상이 ‘자녀가 없어도 괜찮다’는 인식을 보였고, 남성들 또한 경제적 여건을 고려한 자녀 양육에 대한 부담을 크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 변화는 단순히 개인의 선택을 넘어, 우리 사회의 경제적, 사회적 구조 변화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여성과 저소득층, 20대·30대 청년층에서는 경제적 불안정과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으로 인해 결혼과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경향이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변화에 맞춰 정부는 전통적인 결혼·출산 모델을 고수하는 정책에서 벗어나,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고 양육과 경력을 병행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참조 기사] http://www.jibs.co.kr/news/articles/articlesDetail/43283?feed=na 2. 오스트레일리아 성소수자 인구 10명 중 1명, 이유는 포용성 확대의 효과 오스트레일리아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16~24세 청소년 청년 인구 10명 중 약 1명이 성소수자로 젊은 층의 성소수자 인구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45~54세 성소수자 인구는 2.9%, 75세 이상은 1.4%에 지나지 않았다. 최근에 성소수자 인구가 급격히 증가한 것인가? 아니다. 성소수자는 언제나 있었다. 다만 부족했던 사회의 포용성과 안전이 확대하며 커밍아웃한 성소수자 인구가 증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성소수자 인권단체 마이너스18(Minus18)의 머독은 “성소수자 청소년의 증가는 공개적으로 왼손잡이인 사람들의 사례와 비슷하다. 수십 년 전만 해도 왼손잡이는 문제가 있는 비정상으로 여겨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구조사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이 더 있다며 “아직 많은 사람이 여전히 고뇌하고 고통받는 여정을 겪고 있다”고 했다. 67세 레즈비언 운동가인 셰인 와일리는 또래 게이 소년들이 아버지에게 커밍아웃을 하면 아버지가 옷을 벗기고 때렸고, 강제로 전기충격요법을 받도록 어딘가로 보내졌던 과거를 기억했다. “나는 레즈비언이나 동성애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26살 때 동성애자였다. 1990년대와 지금의 차이점은 과거에는 우리가 퀴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가족과 친구를 모두 잃었는데 지금 청년들은 잃지 않고 가질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성소수자 인권단체 ‘평등 오스트레일리아(Equality Australia)’의 대표인 안나 브라운은 통계는 진일보했지만, 여전히 성소수자는 평등한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고 말했다. “종교 학교에서 퇴학과 입학 거부가 합법적이고, 국가는 혐오로부터 성소수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서호주, 태즈메니아주 등에서는 반인권적 전환치료가 합법이고, 성별이분법에 맞게 태어나지 않은 유아와 어린이는 강제로 불필요한 의료시술을 받고 있”음을 증언하며 쉽지 않지만 불이익, 차별, 낙인에 맞서 성소수자 커뮤니티 가시성의 힘으로 평등을 위해 맞서 싸우자고 강조했다. [출처] https://www.theguardian.com/australia-news/2024/dec/20/australia-abs-first-lgbtq-gay-and-lesbian-population-data 3. 세계 교육자들, “젠더폭력을 무기화하지 말라” 국제교원단체연맹(EI) 이사회가 세계 곳곳의 전쟁과 분쟁 지역에서 젠더폭력이 고문 방법으로 동원되고 있다고 규탄했다. 이들은 “젠더 기반 폭력이 전체 공동체와 국가를 모욕하고 파괴하기 위한 무기로 동원되고 있다”며 특히 “우크라이나에서 수백 명의 여성, 어린이, 남성이 성폭력의 희생자가 되었다”고 규탄했다. 그러나 이들은 “젠더 기반 폭력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콜롬비아, 콩고민주공화국, 리비아, 말리, 미얀마, 소말리아, 남수단, 시리아, 예멘 등 분쟁 지역에 만연해 있다”라며 폭력을 종식하고 가해자를 정의의 심판대에 세우기 위한 국제적 연대를 촉구했다. [출처] https://www.ei-ie.org/en/item/29369:educators-condemn-the-weaponisation-of-sexual-and-gender-based-violence-in-war 4. 40대 비혼 비율 20년 새 5배 증가 … 청년 40% “젠더갈등 심각” 40대 비혼자 비율이 최근 20년간 5배 넘게 급증했다. 비혼자의 결혼 긍정 인식도 감소 추세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19일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24’를 보면 2020년 기준 40대 인구 중 비혼자 비율은 남성 23.6%, 여성 11.9%였다. 2000년에 비해 각각 6.7배, 5.7배 증가한 수치다. 이 같은 배경에는 젠더갈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기준 청년세대의 40% 이상이 우리 사회에서 젠더갈등이 심각하다고 봤다. 다만 심각성 인식 차이는 성별보다는 사회적 이슈에 따른 시기별 차이가 크게 나타났다. 예를 들어 ‘남녀 간 갈등이 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이 2018년과 2019년에 특히 높았는데, 연구를 진행한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 박선경 교수는 “2018년의 미투운동과 2019년 N번방 성착취물 제작 및 유포 사건 등 민감하고 첨예한 사건들에 따른 여론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했다. 사회 문제나 삶의 중요 요소에서도 청년세대 내 성별 격차가 발견됐다. 19~34세 청년 중 연애, 결혼, 출산·양육은 남성이 더 중요시했고, 사회 기여는 여성이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 위협과 기후위기는 청년 여성이 청년 남성보다 더 많이 걱정했다. [참조 기사] https://www.khan.co.kr/article/202412200600025
-
극우의 결집에 맞설 연대의 힘을 보여주다!21일 약 28시간 정도 이어진 남태령 시위는 퇴진 투쟁의 전진 가능성을 보여준 빛나는 연대였다. 전봉준 투쟁단이 남태령에서 막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사람들, SNS에서 올라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사람들의 생각은 분명했다. “탄핵 가결은 시작일 뿐이다. 탄핵으로 부족하다. 지금 한덕수는 거부권을 행사하며 윤석열 버티기에 나섰고 권성동을 비롯한 내란잔당 세력은 반격을 시도하고 있다. 파면이 확정될 때까지 싸워야 한다, 나아가 노동자민중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더 전진해야 한다.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노동자 차별에 맞서 싸우자. 윤석열은 노동자와 민중들의 권리를 빼앗아 왔다. 빼앗긴 우리의 권리를 되찾자.” 참가자들의 대다수는 2030 여성이었다. 이들은 내란 공범인 경찰들이 정의로운 행진을 막아설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계엄이 선포됐을 때 두려웠던 게 사실이지만, 그 두려움 속에서 광주항쟁을 비롯해 피흘리며 싸워 온 노동자민중이 있었기에, 지금의 민주주의가 가능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의 차별과 혐오 속에 여성과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이 어떻게 고통 받아왔는지에 대해서도 드러냈다. 장애인도 여성도 성소수자도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곳에 나왔다고 얘기했다. 임금은 어딜 가나 쥐꼬리만 하고 열심히 공부해도 변변한 일자리가 없는 청년들의 열악한 현실도 고발했다. 밤샘 집회 때도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아침에는 자유발언을 하기 위해 20명 이상이 줄을 서기도 했다. 고등학생들의 자유발언도 여럿 있었다. 그동안 켜켜이 쌓여왔던 분노가 얼마나 큰지, 억눌려 왔던 사람들이 얼마나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는지 알 수 있었다. 자발적 연대도 쏟아졌다. 커피, 피자, 죽, 핫팩, 담요, 월경용품이 계속 들어왔다. 이 후원 소식이 들릴 때마다 참가자들은 환호했다. 아침에는 이 물품을 나눠주기 위해 가판이 차려졌다. 남성들은 여성들이 화장실이 부족한 것을 보고 남성 화장실을 양보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먹을 것을 나눠 주고 깔판을 나눠주고 담요를 나눠 줬다. 온기와 애정, 연대로 강추위를 이겨냈다. 2030 여성들은 농민들의 투쟁에 열렬히 호응했다. 22일 아침 노동조합에 속한 조직된 노동자들이 달려오자 아주 반갑게 맞이했다. 민주노총의 역할이 얼마나 절실한지 알 수 있었다. 연대를 향한 의지는 여러 형태로 표현됐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 깃발에 팔레스타인저항연대 깃발을 같이 걸자 지지를 표하며 먹을 것을 나눠 준 시민도 있었다. 이 투쟁을 생중계한 주요 유투브의 동시간 접속자 수는 2만 명이 넘었다. 참가자들은 투쟁이 언제 끝날지 예측하지 않았다. 경찰들이 차를 뺄 때까지, 행진을 이어갈 수 있을 때까지 싸운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이 결의는 남태령을 넘어 사당역까지의 행진을 거쳐 한남동 관저 앞까지 이어졌다. 우리는 이번 연대를 통해 윤석열의 쿠데타에 맞선 저항의 에너지가 얼마나 큰지 확인하고 또 확인할 수 있다. 이 에너지는 착취 받고 억압 받아왔던 노동자민중의 삶 그 자체다. 노동자민중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요구를 제기하자. 민주당은 내란공범 한덕수를 인정하고 여야정협의체에 참여하며 국정의 안정, 즉 이 체제의 안정을 도모하고 있지만, 이 체제의 안정은 노동자민중이 다시 고통받는 일상으로의 복귀를 의미할 뿐이다. 노동자민중은 질서와 안정을 위해 거리로 나오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윤석열을 끌어내리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나갈 거대한 잠재력, 거대한 연대의 힘이 있다.
-
[우리의 투쟁] 윤석열 내리고 세상을 바꾸는 분노의 마이크 2탄2024년 12월 21일(토), 윤석열에 대한 탄핵안 통과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나왔습니다. 스튜디오 알 미디어활동가인 필자는 변혁적 여성운동 네트워크 빵과장미의 이소연 객원리포터와 함께 집회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분노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시민들은 윤석열 퇴진을 통해 “친일파를 척결한” “출판물이나 예술작품을 많이 볼 수 있게 여유를 가진” “여성혐오와 차별이 사라진” “차별금지법,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는” “농부들도 살기 좋은” “차별하고 혐오하지 않고 서로에게 선하고 다정하게 살아가는” “편견없이 다름을 인정하고 내가 겪어보지 못한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공감해주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염원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지면으로도 옮겨 싣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저는 (변혁적 여성운동 네트워크) 빵과 장미의 이소연입니다. 윤석열에 대한 탄핵안 통과 이후에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촉구하기 위해서 많은 시민들이 광장에 나왔는데요. 오늘도 어김없이 분노의 마이크를 들고 이곳에 있는 시민분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나왔습니다. 자 그럼 출발해 볼까요?” Q1.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서초동에 사는 20대 여성이고요. 윤석열 때문에 취미생활을 전혀 할 수 없어서 나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000에서 일하고 있는 000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강원도 춘천에서 왔고요. 지금 시위만 한 다섯 번째 하고 있습니다” “저는 경기도 양평에서 온 최자매 중에 동생입니다. 건축 설계를 하고 있습니다.” “저도 경기도 양평에서 왔어요. 지역 협동조합에서 일을 하고 있고 또 친구들하고 공동농사도 짓고 있어요” “저는 종암동에서 지금 10년째 자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서울에 살고 있는 30대 여성입니다.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어요.” “저는 경상도에서 올라와서 서울에서 상경해 살고 있는 스물 아홉 살 김00이라고 합니다. 전 영상 편집하고 있어요.” “대구에서 올라온 대학생입니다.” “인천 사는 여자입니다. 무역 관련 일 하고 있어요” “윤석열한테 화가 나서 여기로 뛰쳐나온 20대 청년 천명희라고 합니다” “저는 고은비라고 합니다.” “저는 왕빛나라고 합니다.” “20대 웹소설 작가고요, 양산에서 여기까지 올라왔어요” “20대 초반이고 인천에서 왔습니다.” “20대 청년 허은채라고 합니다” Q2. 이번에 내란 사태를 보면서 가장 분노했던 지점이 어떤 게 있으셨을까요? “저는 그때 출판 쪽에 있다 보니까, 그때 포고령에 "언론 출판 검열을 받는다" 이렇게 되어 있었거든요. 그때 당시에 저랑 저희 관계자분들이 난리가 났었어요. 단톡방에. 왜냐하면 잘못하면 생계가 끊길 수도 있는 거니까. 근데 우리한테 그래놓고, 자기는 녹화방송 그런 거 틀어놓고 편하게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열이 확 받는 거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양산에서 여기까지 올라왔어요.” “대통령으로서 어떤 책임감도 윤리의식도 전혀 없이 권력을 이런 식으로 이용하고 전쟁으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되게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저희 사장님이 OO장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저희 장관님께서 쿠데타에 적극적으로 가담을 하시는 것 같아서 너무 부끄럽고요. 선배 법조인으로서 저런 행동을 보인다는 게 가장 화가 난 지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참지 못하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지금 세월호를 겪고 이태원을 겪고 지금 계엄령까지 왔는데, 이 사태까지 만든 국민의힘한테 정말 너무 화가 나고 부결됐을 때 너무 분노에 억받쳐서 정말 너무 허망했거든요. 그래서 그 원동력이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어쨌든 가결이 됐지만 지금 한덕수 국무총리가 거부권을 행사한 지점에 대해서도 집회에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더 많은 원동력을 만들어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 나라를 바꾸겠다는 원대한 뜻은 없지만 그냥 제 주변 사람들이 조금 더 행복한 대한민국에서 그리고 국민이 주인되는 대한민국에서 살기 위해 그런 소시민적인 마음으로 여기에 나오게 됐습니다.” “12월 3일에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그 게임 도중에 갑자기 계엄령이 터진 거예요. 그 업데이트날에 게임 전혀 못 즐기고 뉴스만 봤거든요. 그걸 보다보니까 이런 나라에서 제가 자유를 누리고 이러려면 일단 나라부터 바꾸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을 해서 나오게 됐습니다.” “지금 계속 그 이후로도 발뺌을 하고 증거인멸만 하고 있으니까…” “잘못을 해놓고 그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아직까지도 버티고 있는 얼굴 두꺼운 그 낯짝 두꺼운 면이 제일 분노했고요.” “맨날 종북 좌파라고 북한을 욕하지만 무엇보다 독재를 더 심하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국지전을 유도하고 나라에 전쟁까지 유도해가면서 주술에 매달리는, 근본도 없고 상식이 없고 불공정한 그런 사회를 만든게 너무너무 화가 납니다.” Q3. 이 자리에 있게 한 원동력이 어떤 게 있으셨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국민들이 12월 3일에 국회로 나와서 다 같이 막아주고 나서, 윤석열이 발표를 한 번 했었잖아요, 담화를. 그때 이제 너무 제 안에서 분노가 끓어오르는 거예요. 그래서 그날 금요일에 퇴근을 하고 국회의사당에 가서 많은 사람들을 보고 "아 여기 와야겠다" 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민으로서 목소리를 내고 싶다고 생각했고, 막상 나왔을 때 되게 다양한 깃발들 다양한 목소리들 들을 수 있어서 오면 되게 힘을 받고 돌아가게 되더라고요. 탄핵은 사실 시작인 거라고 생각을 하고 이 광장에 쏟아지는 그동안 눌려왔던 많은 목소리 저도 더 듣고 싶어서 왔습니다.” “첫 경험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이미 8년 전에 박근혜 대통령 파면 시킨 경험이 있고 이번에도 너무 탄핵은 명확하다, 자명하다라고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그래서 고민하지 않고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너무 무기력해질 것 같아서 어쨌든 분노를 풀기 위해서…제가 공연을 좋아하는데, 공연도 못 가는 김에 그냥 와가지고 공연 때 하는 것처럼 화를 내보려고…” “지금 계속 국회 시위부터 참여를 했는데, 처음에 부결됐을 때 너무 열 받아서 그 다음에 '더 나와야 겠다' 라는 생각을 해서 만약에 이런 일이 없었다면 애들하고 그냥 연말 파티하고 했었을 텐데 ‘거기 참여할 수 없다’ ‘이제 여기 와야겠다’ 해서 오게 됐어요.” “사실 저희가 다 같은 학교 나온 학생회 친구들이거든요. 이런 친구들이랑 같이 나오게 돼서 뜻깊고, 다음 주에도 같이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저희 아버지가 사실 광우병 사태 때 물대포 맞는 사진으로 좀 유명하신 분이거든요. 아빠 보고 있어? 그래서 저에게는 사실 시위가 조금 익숙한 공간인데 아직 집회를 많이 나와보지 않은 친구들한테는 조금 무서운 공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집회가 그렇게 무섭지 않고 모두가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당당하게 주체로 나설 수 있는 공간이다'라는 거를 주변 친구들한테 많이 알려주고 싶어서 조금 책임감 있게 나오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관심도 크진 않았고 잘 모르고 지금도 역시나 아는 거는 많이 없지만 저도 세월호, 학교 후보 중에 하나였거든요. 그러다보니 이제 세월호를 시작으로 대학교 입학했을 때는 새내기 때는 박근혜 탄핵 시위도 나오고 하면서 점점 이 사회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회이기 때문에 잘 모르는 저도 일단은 나와서 소리를 내야겠다라는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같이 이렇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 덕분에 좀 더 용기를 낼 수 있게 되는 것 같고 그리고 이 현장에 오니까 다른 분들 목소리도 들으면서 점점 더 용기가 커져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다른 사람들이 주는 이 용기 덕분에 계속 나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희 독자분들이 거의 10대, 20대, 30대 여자분들이거든요. 시위에 그런 분들이 많이 나와서 하는데 제가 그분들한테서 돈을 받는 입장으로 그분들이랑 같이 연대를 해야지 그분들도 더 나은 세상에서 더 편하게 제 작품을 보실 수 있을 거고 그런 세상에서 제가 한번 일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나오게 됐습니다.” “저번 주나 저저번 주도 집회에 참여를 했는데요. 이 깃발에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사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게 많은데요. 다들 하나씩 하나씩 큰 깃발 들고 오시는데 저는 도저히 고를 수가 없어서 모든 걸 다 통틀어버리는 어중간한 그런 오타쿠로서 여기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Q4. 그러면 앞으로 한국 사회에 바라는 점은 뭐가 있으실까요? “너무 많은데 그냥 일단 좀 다들 살기가 편해져서 소설이든 영화든 만화든 이런 좀 다양한 출판물이나 예술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게 여유를 가졌으면…그런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여쭙고 싶은 게 있는데 양산이시면 엄청 멀리 지역에서 오신 거잖아요. 그 지역에서 청년으로 살아가는데 뭔가 어려움이나 이런 건 없으실까요?) 일단 일자리가 없고요. 그나마 저는 이제 자택 근무를 하면서 돈을 벌 수 있지만은, 저희 또래 친구들은 보면은 취업하는데 되게 굉장히 어려움을 겪고 있고요. 일자리가 없으니까 그래서 일자리가 있다고 '눈을 낮춰라' 이러는데 어른들이, 다 박봉이에요. 복지도 안 좋고. 그래서 외국인 노동자분들이 오셔서 거기에서 다 일을 하고 계시는데 그러다 보니 오히려 더 저렴한 외국인 노동자분을 선호하면서 더 일자리가 없어지는 그런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 같아요. 일단 일자리가 제일 문제인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는 여성혐오가 너무 심하다고 생각을 해서 일단 나라를 먼저 바꾸고 그 다음에는 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사회가 두 번째 기회를 맞이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8년 전에도 박근혜 탄핵을 계기로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가 있었는데 그걸 잘 살리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는 꼭 살려서 예컨대 차별금지법이나 노란봉투법이나 사회적 소수자들의 권리를 지켜줄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들을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저도 00으로서 그 목표를 이루는데 최선을 다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일단 친일파들을 다 척살했으면 좋겠고요. 국민의힘 해체해서 그들이 먹었던 재산을 다 몰수해서 국고로 환수했으면 좋겠습니다.” “농부들도 살기 좋은 나라 됐으면 좋겠고 차별받는 많은 존재들이 그냥 정말 시민으로서 존중받으면서 자기 요구할 거 권리 찾으면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친일파 척결이요! 친일파 척결!! 친일파 척결!!!!!” “저도 친일파 척결이요!!!” “갈아엎어버렸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여성분들이 그러시겠지만 여성 혐오가 너무 만연하잖아요. 저도 최근에 뭔가 성희롱 같은 그런 사건이 있긴 했었는데 심각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많은 여성분들이 그런 쪽에서 어려움을 겪고 계실 것 같고 좀 더 빨리 나은 세상이 돼서 많은 여성분들이 행복하고 잘 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지금 앱 개발하고 있는데 저도 뭐 회사에서는 제가 직접적으로 겪거나 본거는 없지만 저는 다른 회사랑 사무실을 같이 쓰고 있는데 다른 회사의 분위기를 보면은 아무래도 좀 느껴지는 게 있는 거 같아요. 그러다 보니 아까 친구가 얘기한 것처럼 여성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위험을 겪고 있는 분들께서 잘 이겨내셨으면 좋겠고 그분들을 제가 직접적으로 돕고 있진 않지만 항상 연대하고 있다는 마음으로 응원을 하고 있으니까 그분들이 또 힘들어하셔서 이런 자리가 마련된다면 나갈 의향도 있고 나갈 거니까... 네 그렇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께서 딱 한 가지, 한 가지는 하셨어요. 우리 여기 청년들이 집회에 나왔다는 거 그거를 끌어냈다는 거는 정말 칭찬해주고 싶어요. 말 같지도 않은 지도자도 끌어내리고. 민주적으로. 역사는 흐릅니다. 시대는 바뀝니다.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노벨 평화상을 주십시오. 우리는 기꺼이 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선하게 살 수 있는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다들 차별하지 않고 혐오하지 않고 좀 더 다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게 키움 히어로즈 응원봉이거든요. 근데 거기에 김건희라는 선수가 있어요. 키움 히어로즈 건희야~ 검색(?)하기 좋은 세상 만들어 줄게~” “좀 더 깨끗한 한국이 되고 좀 더 민주적이고 누구나 다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됐으면 좋겠어요.” “윤석열을 탄핵해라!” “한국 사회가 일단은 많이 기형적인 사회라서 학습 자체가 조금 잘못돼있다고 생각은 해요. 하지만 저는 편견이 없고, 다름을 인정하고 내가 겪어보지 못한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공감해주는 그런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더 나아지는 내일을 바라고 있기 때문에 누가 됐든지 일을 더 잘하고 청렴하게 한국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를 이끌어 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
[241221 민주노총 결의대회 유인물] 극우의 결집이 시작되었다아래에서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
-
[241214 청년 유인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 - 우리 모두의 인간다운 삶아래에서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