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파가 말한다, 비정규직 철폐하라__22대 총선,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선언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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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대파가 말한다, 비정규직 철폐하라__22대 총선,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선언 후기

  • 김경미
  • 등록 2024.04.08 14:50
  • 조회수 255

 

22대 총선 투표일을 앞두고 대파 소동이 일파만파다. 윤석열 정권은 사실 물가가 얼마나 치솟았는지 관심조차 없었다. 그런데 야당은 좀 나을까? 그렇지 않다. 바로 ‘저출산’ 공약을 보면, 그들의 선거가 우리의 삶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다. 여야는 저마다 자신이 ‘저출산’ 위기를 해결하겠노라 목소리를 높이지만, 공약에는 여성을 더 억압하려 하거나 우롱하는 또는 변죽만 울리는 정책이 부지기수다. 이런 가운데 “‘저출산’ 극복? 비정규직 철폐 없이 어림없다!”는 제목의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선언이 발표되었다. 그러면 각 정당들이 과연 어떤 정책들을 내놨기에 비정규직 여성들이 나선 것일까?

 

저출생 위기를 만든 자들이 내놓는 약속, 그 파렴치와 무능

 

우선 국민의힘은 저출생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인구부를 신설하겠다고 한다. 또 초등학생 방과 후 보육을 담당할 늘봄학교를 무상화하고, 아빠 유급 출산휴가 1개월을 의무화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인구부 신설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윤석열 정권의 기조에 맞춰 성평등 정책 무력화와 함께 여성을 인구정책의 도구로 만들겠다는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늘봄학교 역시 시간제 비정규직 양산 등 노동착취를 강화하는 기만적인 정책일 뿐이다. 아빠 유급 출산휴가 1개월 의무화는 어떤가. 여성에게 전가된 보육과 돌봄 현실을 생각하면 턱없이 부족한 정책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조건부 현금 지원 정책을 내밀며 노동자들을 우롱한다. 민주당은 신혼부부에게 10년 만기로 1억 원을 대출해 주면서 첫 자녀 출산 시 무이자, 둘째 출산 시 원금 50% 감면, 셋째 출산 시 원금 전액 감면을 해 주겠다고 공약했다. 이와 함께 월 20만 원의 아동수당을 공약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회성·선심성 재정지원 방안은 언 발을 더욱 꽁꽁 얼게 할 뿐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더군다나 이미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조건이 되는, 상대적 상위가구에 대한 지원일 뿐이다. 무엇보다 필수재화를 구매해야 하는 상황을 그대로 둔 채, 상품을 살 수 있는 푼돈을 지원하겠다는 것은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녹색정의당은 주4일제와 돌봄휴직 확대를, 새로운미래는 보편적 육아휴직제 도입을, 개혁신당은 전 국민 출산휴가 급여제 도입을, 조국혁신당은 신혼부부 임대주택 제공 등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어느 정당의 공약도 저출생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 수 있는 해법이 되지 못한다. 저출생이 드러내는 위기는 이런 공약들로 해소될 수 없을 정도로 깊다.

 

저출생은 노동자의 안정적 재생산이 보장되지 않는 한, 또한 여성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한 해결될 수 없다. 안정적인 일자리와 생활임금, 국가책임 주거·교육·돌봄 등 노동자 민중의 삶과 존엄을 국가책임으로 보장하지 않는 한 저출생은 영원하다. 의식주와 교육을 비롯해 노동자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재화가 시장 상품화되어있고, 더군다나 그 상품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는 지금이다. 필수재화의 공급을 비롯한 삶의 권리를 국가와 공공이 책임진다는 방향과 철학에 근거하지 않은 이런저런 지원은, 결국 필수재화와 서비스로 이윤을 만드는 자본의 금고를 채울 뿐이다. 또한, 육아에 뒤따르는 돌봄·양육의 부담이 여성 노동자에게 떨어지고, 돌봄·양육을 이유로 여성 노동자에게 저임금과 경력단절이 강요되는 현실 앞에 출생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임금 삭감과 비정규직 확대, 여성혐오 조장으로 오늘의 저출생을 만든 보수여야가 내놓는 대책은, 자본주의 체제의 파렴치와 무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출산, 자녀가 인생의 기쁨이라고요?

 

이미 여성 노동자의 비정규직 비율은 50%에 육박했다. 또 수많은 여성이 최저임금을 받는다. 첫 직장에서부터 비정규직으로 시작하는 20대 여성 비율은 40%에 달한다. 20대 비정규직 규모만 150만 명이다. 기혼여성 5명 중 1명은 경력단절을 경험한다. 31세~35세 남성 노동자 중 임금 수준 상위 10%의 혼인율은 76%, 하위 10%의 혼인율은 31%에 그친다. 그런데 누가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겠는가? 누가 결혼을 할 수 있겠는가? 많은 이들에게 이미 양육과 결혼은 특권이다. 

 

지난 3월 26일, 인구보건복지협회가 발표한 <제1차 국민인구행태조사> 결과에서도 국민 대다수가 자녀를 ‘비용’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결과를 보면, 결혼을 통해 성취할 수 있는 긍정적 가치는 ‘관계적 안정감(89.9%)’, ‘전반적 행복감(89.0%)’, ‘사회적 안정(78.5%)’, ‘경제적 여유(71.8%)’ 순(이상 동의율)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응답자들은 편익만큼 비용도 크다고 인식했다. ‘자녀는 성장기에 비용이 많이 든다(양육비용)’에는 응답자의 대부분인 96.0%가 동의했다. ‘자녀는 여성의 경력에 제약이 된다(경력제약)’, ‘자녀는 부모의 자유에 제약을 준다(자유제약)’는 문항에도 각각 77.6%, 72.8%가 동의했다. ‘자녀들이 겪게 될 미래가 걱정된다(성장환경 염려가치)’는 응답은 88.8%였다.

 

이 같은 조건에서 지난 4월 3일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선언 기자회견에 참가한 발언자들은 비정규직 철폐 없이 저출산 위기는 극복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우리 용균이가 사회에 나갔을 때 저에게 하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고용이 불안정한 사회에 임금도 최저임금을 받아서 삶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가정을 꾸릴 생각을 할 수 있냐고 했습니다. 이게 내가 아니,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구나 생각되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하나만 낳아 잘 키우자고 했던 정부 방침대로 했다가 그 하나밖에 없는 귀한 자식을 산업재해로 잃었습니다”라고 말했다. 평소 그 누구보다 비정규직 문제에 발 벗고 나서는 김미숙 이사장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으로 고용안정을 꾀하지 않고서는 저출생 문제를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숙희 전국여성노동조합 서울지부 홍익대 청소노동자는 여성이 다수인 “청소 노동자들의 노동이 최저임금만 줘도 되는 밑바닥 노동으로 평가되는 이 현실을 거부”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청소 노동뿐 아니라 여성이 다수인 돌봄, 가사, 서비스 등 수많은 직종들의 노동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저임금, 불안정 상황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오대희 서울사회서비스원지부 지부장은 “저출생 고령화 시대는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공공돌봄 사회서비스원을 지키고 확대해 가야 할 때입니다. 정치가 바뀌어도 돌봄은 계속됩니다. 양질의 서비스를 담보할 수 있는 공공인프라를 확충하고 이를 통해 국가 주도의 공적 돌봄체계로의 전환이 시급합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불어 “서울사회서비스원과 같은 성평등한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만이 일과 가정 양립을 통해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노동시장 이중 구조화에 따른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정성과 소득안정성을 해소할 수 있는 해법이 돌봄 공공성 강화”라고 했다.

 

명숙 인권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는 22대 총선이 “성평등이 사라진 선거이고 ‘비정규직 의제가’ 사라진 선거”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번 총선 정당 정책 중 국민의힘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성평등 정책이 빠졌다. 그는 “여성 비정규직을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취급하려면 제도와 관행이 바뀌어야 합니다.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이 된 현실에서 최저임금이 인상되어야 삶이 바뀝니다”라고 강조했다.   

 

희망은 가부장적 자본주의에 맞선 계급투쟁에 있다

 

참가자들의 발언처럼, 출산과 자녀 양육이 그저 기쁨이긴 어려운 게 지금의 현실인 셈이다. 그만큼 양육비용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는데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최저임금 인상률이 드러내듯 실질임금은 감소하고 있다. 더구나 안정적으로 일하며 돈을 벌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일자리는 점점 줄고 불안정한 비정규직 일자리만 계속해서 늘고 있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출산휴가, 육아휴직은 드라마 속 이야기처럼 잡히지 않는 이야기다.

 

더구나 최근 윤석열 정부는 돌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이주 가사노동자를 도입하고 가사돌봄 업종에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하는 방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는 사회와 국가가 책임져야 할 돌봄을 민간에 떠넘기는 처사일 뿐 아니라 차별적인 정책이다. 착취와 억압의 대상을 확대하는 것은 위기를 심화시킬 뿐이다. 이미 노동부의 인가를 거치면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중증 장애인을 비롯해 이제는 노인과 이주 노동자 또는 가사돌봄 노동자까지 임금 차별이 허용될 위기에 놓여 있다. 최근 서울시의회에서는 노인에게도 최저임금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건의안이 나온 바 있다.

 

말들이 난무하는 총선,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가 현 위기를 해결할 수 없음을 똑똑히 보고 있다. 실질임금이 삭감되고 비정규직이 넘쳐나는 현실, 그 중에서도 여성 노동이 저평가되고 여성 일자리는 단기 임시직이 태반인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면 저출산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비정규직을 철폐하고 일터 내 성차별과 성폭력을 뿌리 뽑아야 한다. 생활임금을 보장하고, 주거, 교육, 돌봄을 비롯한 필수재화를 국가책임으로 공급해야 한다. 최저임금 대폭인상을 비롯한 생활임금 쟁취 투쟁, 노조법 2·3조 개정을 비롯한 원청사용자성 쟁취 투쟁과 비정규직 철폐 투쟁을 확대할 때다. 심화하는 착취와 억압에 맞선 투쟁, 그 선두에 여성 노동자가 서야 한다. 그럴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새로운 생명이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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