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성파업을 듣다! _스페인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호세피나 마르티네스 온라인 초청 강연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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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스페인 여성파업을 듣다! _스페인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호세피나 마르티네스 온라인 초청 강연 후기

  • 김경미
  • 등록 2024.02.28 13:16
  • 조회수 305

지난 2월 20일 저녁 7시, 많은 관심과 뜨거운 열기 속에 온라인 강연 ‘스페인 여성파업을 듣다’가 진행되었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이 주최한 이번 자리에는 스페인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호세피나 마르티네스 동지가 강연자로 참여했으며 40여 명의 참가자가 함께했다. 참가자들은 노동운동 활동가, 페미니스트 활동가, 성소수자 활동가, 인권 활동가, 학생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가 하면 또 관심의 폭이 넓은 이들이었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오는 3월 8일, 대대적인 여성파업을 조직하기 위해 변혁적여성운동네트워크 빵과장미를 포함한 40여 개 단체와 함께 여성파업조직위원회를 결성했다. 한국에서의 여성파업을 준비하며 스페인 여성파업 진행 과정과 성과 등을 전해 듣고, 여성파업의 의미를 되새기며 여성파업을 더욱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호세피나 마르티네스 온라인 초청 강연을 준비했다.

 

스페인에서는 2018년과 2019년에 대규모 여성파업이 벌어졌고 2018년 당시에는 530만 명이 참여했다. 그로 인해 300편의 열차 운행이 취소될 정도로 위력을 보였다. 그 결과 스페인에서는 ‘임신중지 숙려 제도(임신중지를 선택한 당사자가 자신의 선택을 재고해 보도록 법적으로 강제하는 대기기간)’를 폐지하고 16~17세 여성과 장애 여성이 법적 보호자의 동의 없이도 임신을 중지할 권리를 보장받게 되었다. 또한 트랜스젠더 성별 확정 절차를 간소화하는 법안이 하원에서 통과되었고, 생리휴가를 법제화하는 등 성평등 개혁 조치가 이루어졌다.

 

강연을 맡은 호세피나 L. 마르티네스(Josefina L. Martinez) 동지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주로 스페인에서 활동하고 있다. 스페인 여성단체 빵과장미와 혁명적 노동자 경향의 회원으로 활동하며 최근 몇 년간 스페인 여성파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No somos esclavas)>, <혁명적인 것(Revolucionarias)> 등 여러 책을 썼고 <여성, 혁명과 사회주의(Mujeres, revolución y socialismo>의 편집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강연은 ○스페인 여성파업은 어땠는가? ○여성파업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여성파업의 계기는 무엇이었나? ○여성파업 조직과정은 어땠는가? ○여성파업 당일 투쟁의 모습 ○여성파업을 바라보는 여성노동 및 노동운동 시각과 쟁점 ○빵과장미의 주요 개입 노선 ○최근 몇 년 동안의 경과 등의 내용을 담았다.

아래 내용은 당시 강연 내용을 글로 정리한 것이다.

 

스페인 여성파업은 어떠했는가?

 

2018년과 2019년 스페인에서 벌어진 여성파업은 매우 중요했다. 메인 슬로건은 ‘여성인 우리가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였다. 그 이전에도 젠더 폭력에 맞서 여러 도시에서 수천 명의 여성이 자발적으로 시위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여성들은 ‘가부장적 정의’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다 전 세계적으로 #미투(#MeToo) 운동이 일어나 여성운동의 가시성을 증폭시켰고 국제 여성파업에 대한 요구가 강해지면서 여러 나라에서 투쟁으로 표현되었다. 스페인에서도 2018년, 2019년 여성파업의 흐름으로 이어졌다. 특히 스페인은 아르헨티나와 함께 여성파업과 여성운동이 활발하고 대규모로 진행된 국가 중 하나였다.

 

여성파업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다수 노조는 교대조당 2시간의 파업을 소집한 반면, ‘좌파 노조’는 24시간 파업을 소집했다. 물론 많은 여성 노동자가 종일 파업에 돌입했지만 몇 시간만 파업에 참여한 경우도 있었다. 당시 파업은 대규모 시위와 함께 노동계급과 청년 사이에서 중요한 투쟁의 날로 기억되고 있다. 노조 조합원 가운데 500만 명 이상이 부분적 작업 중지에 참여하기도 했고 수천 명이 24시간 동안 파업에 참여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날, 학생파업도 벌어져 고등학교와 대학교가 마비되었고,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빌바오, 사라고사, 세비야를 중심으로 스페인 전역의 거리에서 수백만 명에 이르는 시위대가 함께했다.

 

스페인의 여성파업은 지난 10년간의 자본주의 위기와 긴축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여성, 노동계급, 청년 대중이 깊은 사회적 불만을 표현하는 대규모 통로가 되었다.

 

여성파업의 계기는 무엇이었나?

 

 

우선, 여성 살해 사건을 비롯한 젠더 폭력의 증가가 불씨가 되었다. 이것이 광범위한 분노를 불러일으켰으며 운동을 추동한 주요 요인 중 하나였다. 이 강력한 목소리가 아르헨티나에서 탄생한 ‘더 이상 한 명도 잃지 않겠다(니 우나 메노스, Ni Una Menos)’ 운동을 통해 국제적으로 표현됐으며, 스페인에서도 대규모 시위를 통해 표현됐다.

 

분노의 또 다른 초점은 빈곤의 여성화, 또는 여성 노동자의 삶이 처한 불안정성이었다. 다른 나라들에서처럼 스페인에서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 일자리와 최악의 노동조건을 지닌 일자리는 대부분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 이는 98%는 여성 노동자인 가사노동에도 해당한다. 시간제 고용의 경우 75%가 여성 노동자로 구성되어 있다.

 

실업자 중에서도 여성이 더 많다. 임금 격차, 즉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의 급여 차이는 평균 13%에 달하며 이는 여성 노인들의 연금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학에서는 전체 학생 가운데 58%가 여성이지만, 여성 교수는 22%에 불과하다. 또한 여학생들은 학업을 마친 후에 남학생보다 더 취업에 어려움을 겪거나 더 불안정안 일자리로 내몰리고 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여성 노동자가 주도하는 여성의 낯 투쟁이 자본주의 위기와 결과로 고통받는 불안정 노동자들 및 학생, 청년들과 함께한 노동계급이 사회적 불만을 표현할 수 있게 했다.

 

여성파업 조직과정은 어땠는가?

 

스페인 주요 도시에서 여성의 날을 준비하기 위한 사전에 대회들이 소집됐다. 각 대회에는 이미 수년간 페미니스트 운동에 참여해 온 여성들을 비롯해 노동자, 학생, 연금 수급자 등 처음으로 집회에 참여하는 많은 여성 역시 함께했다.

 

대회는 한 달에 한 번씩 열렸으며, 파업의 쟁점이 토론되었다. 예컨대, 파업을 확대하는 방법, 노조에 파업을 촉구하는 방법 등이 주요 의제였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파업을 촉구했다. 그 후, 노조는 많은 가맹 조직과 대의원들의 압력을 받아 이 파업을 수용하고 소집했다.

 

이러한 대회들은 지역 사회와 학교에서도 소집됐다. 더불어 많은 여성과 함께 스페인 전역을 포괄하는 대회가 두 차례 조직되어 파업에 힘을 실어줄 방법을 논의했다.

 

대회는 기본적으로 민주적 요소들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진짜 민주적인 방식’으로 진행하길 원치 않는 참여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동의안에 대한 표결을 거부했고 모든 것을 ‘합의’로 결정하길 원했다. 그러나 그것은 다수에 의한 결정을 가로막는 방식이어서 많은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가장 중요한 논쟁 중 하나는 파업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였다. 빵과장미를 비롯한 여러 페미니스트는 여성파업이 “여성파업인 동시에 총파업이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달리 말하면, 노동조합이 파업을 소집해야 하고 여성 노동자는 물론 남성 노동자도 파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냐면 우리는 모든 걸 멈추고 싶었기 때문이다. 모든 작업장, 운송 및 상업을 마비시킴으로써 여성 노동자의 요구를 위해 투쟁하는 노동계급의 힘을 보여주고자 했다.

 

하지만 다른 페미니스트들은 이를 원치 않았다. 이들은 오로지 여성만 파업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성 노동자들이 파업에 참여해서는 안 되고 여성 동료를 위해 일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파업의 위력이 훨씬 축소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결국, 어떤 현장에서는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 모두가 파업에 나섰고, 또 어떤 현장에서는 여성 노동자만 파업에 나섰다. 그로 인해 투쟁의 위력이 상당히 약화되었다.

 

이는 여성파업 논쟁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는 여성 노동자의 요구를 수용해 전체 노동계급을 단결시키는 정책을 제안했다. 우리는 이 파업이 단순한 ‘상징적’ 파업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파업이 되기를 원했다.

 

결국 이는 ‘파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논쟁이었다. 우리는 총파업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통수단을 마비시킬 정도로 강력한 파업을 만드는 것만이 가장 불안정한 노동자들까지 파업에 나설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다른 페미니스트들과 몇몇 노조는 상징적인 행동만을 주장했다. 물론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매우 중요한 투쟁의 날들이었다.

 

여성파업 당일 투쟁의 모습

 

 

파업 당일 아침부터 여성파업 행사가 시작됐다. 도시마다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예를 들어, 마드리드에서는 파업 참가자들의 피켓 라인이 도심에 형성되었다. 참가자들은 행진을 했고, 쇼핑센터나 은행 앞에서 피케팅을 해 문을 닫게 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호텔 청소 노동자 대오의 피켓 라인이 형성되었다. 호텔 청소 노동자들은 대부분 여성이었고 불안정한 여성 노동자였는데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상황이었다. 빵과장미 동지들도 여러 곳의 피케팅에 함께 참여하고 거리를 차단했다.

 

스페인 전역 대학에서도 학생총회에 의해, 교사에 의해 파업이 선언되었다. 빵과장미에 소속된 학생 동지들은 수업을 중지하기 위해 피켓 행렬에 참여했고, 강의실은 텅 비었다. 수업이 진행되는 대신 캠퍼스 곳곳에서 행사가 열렸다.

 

정오가 되자 수백 개 작업장에서 두 시간 동안 파업이 벌어졌고, 오후에는 각 도시에서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여성파업을 바라보는 여성노동 및 노동운동 시각과 쟁점

 

 

노조 관료들은 두 시간짜리의 매우 제한적인 파업을 시도했다. 그런가 하면 노동계급 중 가장 취약한 부문인 불안정 노동자들은 파업을 포기했다. 실질적으로 불안정 노동자들은 파업에 임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스스로 조직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여성 노동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몇 달 동안 작은 자기조직화 공간을 만들어 내서 여성의 날 ‘여성파업’을 준비했다. 그러면서 전국단위 회의, 수백 개의 대회, 강연, 행사, 노동조합의 회의, 시위가 벌어졌고, 학교, 직장, 지역에서 피켓 시위가 일어났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연속성을 갖는 것이었다. 빵과장미는 전국단위의 회의, 집회, 여성위원회가 계속해서 발전하기 위해 또한 어떻게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 토론하고 결정하기를 원했다.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여성파업과 대중운동이 위축되었다. 왜 그랬을까? 우선 개량주의 정당들은 모든 형태의 불만을 끌어모아 자유주의-사민주의 정당인 사회당(PSOE)이 주도하는 정부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들은 정부에 들어가 ‘평등부’ 또는 ‘여성부’의 직책을 받았다. 그들이 한 일은 의회 합의와 자본가 정부 부처를 통해 모든 것이 ‘위로부터’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운동을 해체한 것이다. 빵과장미는 그러한 개량주의적 행태를, 뭔가를 바꾸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바꾸려 하지 않는 ‘제도적 페미니즘’으로 규정했다.

 

이후 노조 관료들은 더 이상 파업을 소집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개량주의자들이 정부에 참여하면 모든 것이 ‘위로부터’ 해결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여성운동 안에서는 여성파업이 지속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개량주의 관료들이 등장했다. 운동 사회에는 ‘새로운 관료제’가 생겼는데 이로 인해 집회에서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소수의 논의만으로 결정을 내렸고, 다수결을 위한 투표를 거부했으며, 이른바 ‘진보적인’ 정부에 대한 문제제기를 거부했다.

 

빵과장미의 주요 개입 노선

 

 

빵과장미는 모든 억압을 종식하기 위해서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포함한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심대한 변화가 필수적이라 생각한다. 여성파업 또한 이러한 방향으로 여러 아이디어를 제안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관료들과 개량주의자들은 이를 막기 위해 행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우리의 요구가 수백만 명의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노동자들로부터 지지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여성운동, 노동계급 운동, 학생운동 사이의 단결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라 부른다. 다시 말해, 노동자계급이 여성을 비롯한 모든 억압받는 대중과 함께하는 운동을 말한다.

 

또한 우리는 자본가들, 다시 말해 사장들의 이윤을 타격하는 것이 필수적이라 생각한다. ‘모든 것을 멈추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멈춰야 한다.’ 전체 노동자계급이 생산, 운송, 통신수단을 마비시켜야 한다. 여성들은 그 노동자계급의 일부다.

 

그리고 여성운동의 또 다른 큰 과제는 많은 남성 동지, 노동자, 학생, 청년들을 모아 마초주의에 맞서 싸우는 것이다. 남성 동지들이 우리의 깃발을 함께 높이 든다면, 더 많은 사람이 심각한 불평등에 기초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더욱 강력하게 의문을 제기하게 될 것이다.

 

수천 명의 남성 노동자가 우리와 함께 시위와 파업에 참여하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고무적이다. 따라서 여성의 날 시위에 남성 노동자가 참여하는 것을 원치 않는 페미니스트들은 매우 잘못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여성들이 대오의 맨 앞줄에 서야 한다. 우리가 여성파업의 중심이다. 하지만 남성도 우리 투쟁에 참여해야 한다.

 

또한 여성의 투쟁은 인종차별에 맞서는 이주민의 투쟁, 퀴어 혐오에 맞서는 LGTBI 투쟁, 실업과 인플레이션에 맞서면서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는 전체 노동계급의 투쟁을 포괄해야 한다. 이러한 잠재적인 동맹을 촉진하는 것은 운동의 시급한 과제이며, 이는 억압을 ‘가시화하는’ 제안으로만 머물지 않고 모든 억압과 착취를 종식하는 길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개인의 변화나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문화적 변화를 달성한다는 잘못된 환상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모든 걸 바꾸고 싶다. 그러한 환상을 품는 것은 큰 실수다. 때문에 우리는 반가부장제 투쟁과 반자본주의 투쟁을 분리하는 일부 여성운동의 전략에 맞서 싸운다. 또한 우리는 페미니즘을 모든 남성에 대한 투쟁으로 간주하는 ‘분리주의’ 페미니스트들을 비판한다. 우리는 남성 동지들을 우리 투쟁의 일부로 획득하기를 원한다.

 

여성운동이 억압에 대한 단순 저항에서 전면적인 전투로 나아가려면 노동계급과 전투적인 청년들 속에서 동맹세력을 만들어 스스로 강화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 맞서 우리의 요구를 승리로 이끄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것이 바로 빵과장미 동지들과 여러 여성 동지들이 함께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정부와 자본가 정당들로부터 독립적으로 여성 조직화를 추진한 이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집회, 토론, 행사를 활성화하고 여성 노동자들과 모든 노동자의 투쟁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노동계급과 연합해 위대한 투쟁 운동을 세우기 위해 애쓰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이것이 마초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그리고 자본의 이익을 위해 여성과 남성 노동자를 착취하면서 가부장적 위계와 편견을 조장하는 자본주의 구조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의 페미니즘은 계급투쟁의 페미니즘이다. 노동계급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이며, 사회주의를 위한 페미니즘이다.

 

최근 몇 년 동안의 경과

 

 

앞서 이야기했듯이 스페인에서는 ‘포데모스’ 정당의 개량주의자들이 정부에 입성하면서 우리의 운동은 침체에 빠졌고 제도화되었다. 개량주의자들은 변화가 위로부터 달성된다는 생각을 강요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도래했을 때, 소위 ‘진보적인’ 스페인 정부는 2021년 여성의 날 시위를 금지했다. 하지만 빵과장미 동지들을 비롯한 여성운동 진영 내 동지 중 일부는 금지를 무시하고 어떤 식으로든 시위를 하기 위해 나섰다.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경찰들은 우리를 체포하겠다고 위협했지만 우리는 큰 소리를 외치며 맞섰다. 우리는 자칭 ‘진보’ 정부의 역할을 비난했고 이는 언론을 통해서도 보도되었다.

 

그러나 여성의 날 운동을 이끈 진영 가운데 개량주의 페미니스트들은 더 이상 여성파업 소집을 원치 않았다. 그들은 ‘상징적인’ 시위만을 선호하고 평등부 장관을 신뢰했다. 하지만 스페인에서 여성파업은 더 이상 개량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쉽게 통제할 수 없는 운동으로 자라나 있었다.

 

이로 인해 매우 중요한 결과가 발생했다. 극우파들이 여성운동을 해체하기 좋은 상황을 만들었다. 극우파는 ‘페미니즘’을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동일시한다. 이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수백만 명의 남성과 여성 노동자의 급여가 삭감되는 동안 정부 부처들이 아무런 일을 하지 않은 채 내용 없는 제스처들과 사소한 문화적 변화에 몰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극우파는 페미니즘을 적으로 간주한다. 극우파는 ‘젠더 이데올로기’에 반대한다고 말하면서, 공포와 반동적인 분노를 일으킨다. 극우파들은 이러한 반동적 이데올로기를 갖고 거대한 사회적 위기 상황 속에서 성장해 왔다.

 

우리는 우익 정당과 극우 정당과 맞서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들의 이념과 가부장적 반동에 대향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소수의 여성을 위한 변화만을 추구하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싸움이다.

 

수백만 명의 여성 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불안정이 계속되는 한 승리는 이루어질 수 없다. 유일한 길은 여성운동과 노동계급을 단결시키는 강령을 통해서만 열릴 수 있다. 자본가의 이윤에 의문을 제기하고 반자본주의적 의미에서 민주적, 사회적 요구를 통합시켜 내는 강령을 통해서만 열릴 수 있다. 즉, 사회주의 페미니즘만이 유일한 승리의 길이다.

 

우리는 일하는 여성, 학생, 이주여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을 위해 싸운다. 극우에 맞서 노동자계급의 공동전선을 발전시키고 페미니스트, 반인종차별 운동과의 단결을 발전시켜야 한다.

 

지난해 우리는 아르헨티나 빵과장미 창립 20주년을 기념했다. 올해는 스페인 빵과장미가 20주년을 맞는다. 빵과장미는 많은 나라로 퍼졌고 현재 15개국 이상에서 수천 명의 동지들이 함께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우리는 노동자파업 연대에 참여해 왔는데 그곳에서 파업 노동자들의 여성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보다 노동계급 여성들이 다른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 자기조직화를 실현할 수 있도록 싸운다.

 

여성운동 속에서 우리는 여성운동이 모든 자본가 정당들로부터 독립하고 투쟁하는 강령을 취하도록 분투한다. 우리는 시위를 조직하기 위한 위원회에 참여했다. 우리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에 맞서 싸웠다.

 

그리고 우리는 가장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여성들의 요구를 위해 싸운다. 주거권을 위해, 실업에 맞서, 임금인상을 위해, 불안정에 맞서 싸운다. 젠더 폭력에 맞서 우리는 폭력 방지 계획 예산 증액, 도움이 필요한 여성을 위한 쉼터 제공, 모든 교육 단계에서 포괄적인 성교육 등의 긴급 대책을 제안한다. 또한 우리는 모든 여성의 임신중지 권리,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위해 계속해서 싸우고 있다.

 

더불어 사회주의 페미니즘에 관한 여러 컨퍼런스와 강연을 해 왔다. 사회주의 관점에서 페미니즘을 다룬 많은 책과 이론 논문도 출판했다.

 

또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는 우크라이나 전쟁, 제국주의적 군국주의, 팔레스타인 대량학살에 반대하는 행진도 벌였다. 우리 페미니즘은 국제주의 노선을 지향한다. 올해도 큰 페미니스트 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끝으로 아르헨티나, 스페인, 그리고 빵과장미가 있는 모든 나라의 동지들에게 따뜻한 인사를 보낸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한국의 페미니스트, 빵과장미, 사회주의를향한전진 활동가들과 스페인 여성파업과 혁명적 페미니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기쁘다. 3월 8일 한국에서도 정말로 강력한 여성파업이 일어나길 바란다.

 

한편 3월 8일 서울 보신각 앞에서는 12시 20분부터 여성파업 본대회가 열린다.

 

강연 당시 녹화 영상은 아래 주소에서 볼 수 있다.

https://youtu.be/yavEul4Pe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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