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총파업 연재기고] #6 투쟁 아홉째 날 지혜 씨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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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총파업 연재기고] #6 투쟁 아홉째 날 지혜 씨의 마음

2021년 여름,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상담노동자들은 투쟁에 돌입했다. 약 1천가지의 업무를 하며 하루에 약 120콜씩 전화를 받았다. 화장실 가는 시간도 통제받으며 인센티브를 더 받기 위해 경주하듯 일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저임금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투쟁의 결과는 ‘소속기관 전환’이었다. 온전한 직고용은 아니지만 비교적 고용 안정성이 나아지는 결과였다. 그러나 2년이 지난 2023년 11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1,600여 명의 상담사는 아직도 저임금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을 벗어나지 못했다. 기다리다 지친 노동조합원들은 원주에 위치한 국민건강보험공단 본사로 모였다.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곳에 모였을까, 하루하루 어떤 투쟁을 하며 그 속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궁금했다. ‘오늘의 투쟁’을 하루하루 돌아보기 위해 조합원을 인터뷰해서 정리하기로 했다. 투쟁 아홉째 날은 경인2센터 소속이며 반년 전에 입사한 신입 조합원, 송지혜 조합원을 인터뷰했다.

 

 

 

2023년 4월 3일, 지혜 씨가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에 입사했다. 센터로 출근하는 문 앞에 게시판이 있다. 그곳엔 노동조합이 활동해서 무엇을 바꿔냈는지 쓰여 있었다. 지혜 씨는 그걸 보면서도 ‘그런가 보다’ 싶었다.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입사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조장 언니가 다가왔다. “지혜 씨, 노동조합이 있는데 가입해 보면 어때요?” 건네받은 종이는 노동조합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적힌 가입서였다. 지혜 씨는 잠시 고민하다가 가입서에 이름을 적었다. 대단히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느낀 건 아니었다. 원해서 쓴 것도, 억지로 쓴 것도 아니었다. 그냥 동료가 권하니까 별다른 생각 없이 썼다.

 

아침마다 조합원들은 다 같이 ‘투쟁! 비정규직 철폐 투쟁!’을 외치고 업무에 들어갔다. 투쟁이란 말도, 팔뚝질도 어색했지만 가장 이상한 건 ‘비정규직 철폐’라는 말이었다. ‘내가 비정규직인가? 나 정규직 아닌가?’ 생각했다. 곧 조별 모임에서 내가 왜 비정규직인지 알게 되었고 그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하청업체와 공단이 거짓말했다는 배신감도 느꼈다.

 

2023년 10월, 노동조합은 곧 원주로 투쟁하러 가야 한다고 했다. 지혜 씨는 이 또한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노동조합이 간다니 나도 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투쟁하러 간다는 말도 와닿지 않았다. 2023년 11월 1일, 펜스를 넘어서 공단으로 들어갔다. 지혜 씨는 조합원들과 함께 모여 있는 내내 울 거 같았다. 무서웠다. 이런 건 처음이었다. 옆에 있던 동료 언니는 지혜 씨의 손을 잡고 ‘별거 아니야. 괜찮아’라고 말해 주었지만 지혜 씨는 계속 겁이 났다.

 

원주에서 투쟁한 지 9일이 되었다. 지혜 씨는 아직도 현실 감각이 별로 없다. 아침에 눈을 뜨면 집에 있을 거 같은데, 아침밥 먹고 출근하면 될 거 같은데, 자신은 원주에 있고 노조 투쟁을 하고 있다. 오늘 아침, 지혜 씨는 ‘아, 보초 서러 가야겠네’라고 생각했다. 지혜 씨는 군대에 가본 적은 없지만 선전전이 마치 군대에서 보초를 서는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추운 날 서 있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게 비슷한 거 같다. 지혜 씨는 선전전을 하면서 가만히 생각했다. ‘공단이 생각하는 정규직이랑 우리가 생각하는 정규직은 많이 다른가 봐.’ 지혜 씨는 정규직이 대단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입사해서 수습 기간을 거치면 자연스레 되는 게 정규직인데, 얼마나 대단한 벼슬이라고 저러나 싶다. 필기, 면접, 인성검사까지 다 통과해야 소속기관으로 받아주겠다는 공단의 제안도 참 어이가 없다. ‘정규직이 얼마나 대단한 거라고 이래? 이런 걸로 투쟁까지 해야 해? 그냥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되잖아. 심지어 약속했던 거잖아. 이전 이사장은 누구야? 거짓말쟁이였네.’ 지혜 씨는 공단 건물을 바라보며 속으로 온갖 나쁜 말을 했다.

 

 

오후 2시, 결의대회 발언 중 한 조합원이 이사장이 2023년 7월에 입사했다는 걸 말했다. 지혜 씨는 놀랐다. ‘이사장이 나보다도 늦게 들어왔다니.’ 어쩌면 이사장이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상황을 잘 몰라서 아직 전환을 안 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사실 지혜 씨는 약간 힘이 빠져 있다. 시간은 점점 흐르고 조합원은 모두 함께하는 줄 알았는데 몇몇 조합원은 원주에서 보이지 않았다. ‘다 같이 하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지혜 씨는 밤에 누워서 생각했다. ‘투쟁이 언제 끝날까? 끝날 땐 잘 끝날 수 있을까?’ 지혜 씨는 총파업 투쟁 9일 차를 ‘투쟁이 빨리, 잘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날’이라고 정리했다. 온전한 소속기관 전환을 위한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의 총파업 투쟁 9일 차, 하루 일상은 다소 무난했을지 몰라도 조합원들의 마음은 매일 소용돌이치는 걸 확인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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