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총파업 연재기고] #1 "공단을 기선 제압한 투쟁이요" 투쟁 첫째 날, 소라 씨의 마음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온라인신문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총파업 연재기고] #1 "공단을 기선 제압한 투쟁이요" 투쟁 첫째 날, 소라 씨의 마음

2021년 여름,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상담노동자들은 투쟁에 돌입했다. 1천 가지의 업무를 하며 하루에 약 120콜씩 전화를 받았다. 화장실 가는 시간도 통제받으며 인센티브를 더 받기 위해 경주하듯 일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저임금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투쟁의 결과는 소속기관 전환이었다. 온전한 직고용은 아니지만 비교적 고용 안정성이 나아지는 결과였다. 그러나 2년이 지난 202311,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1,600여 명의 상담사는 아직도 저임금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을 벗어나지 못했다. 기다리다 지친 노동조합원들은 원주에 위치한 국민건강보험공단 본사로 모였다.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곳에 모였을까, 하루하루 어떤 투쟁을 하며 그 속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궁금했다. ‘오늘의 투쟁을 하루하루 돌아보기 위해 조합원을 인터뷰해서 정리하기로 했다. 투쟁 첫날은 서울2센터 소속이며 11년차 상담사인 신소라 조합원을 통해 돌아보았다.

 

2023년 11월 1일, 소라 씨와 약 700여 명의 조합원이 원주 국민건강보험공단 앞에 도착했다.

 

photo_1_2023-11-02_10-36-28.jpg

사진제공=신소라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조합원

 

올해 8월쯤, 소라 씨는 또다시 투쟁이 시작될 거란 이야길 들었다. 조모임에서 조장 언니가 말해주었다. 소라 씨는 이전 투쟁을 모두 함께했기에, 어려움을 알고 있었다. ‘이번에도 투쟁에 들어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돈 걱정’이었다. 파업은 무노동 무임금이기에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지는 시간이었다. 당장 카드값도 있을 테고 은행 이자도 내야 하는데 또 투쟁에 들어간다고 하니 걱정이 됐다. 솔직히 ‘아, 이전 투쟁들은 다 했는데 이번만 좀 빠지면 안 될까?’ 생각도 했다. 그러나 소라 씨는 이번에도 투쟁에 함께하기로 했다.

 

원래 소라 씨는 긍정적이고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소라 씨는 이전 투쟁들이 작은 성과를 얻는 수준에서 그쳤을 때도 ‘이건 정말 어려운 거야. 한 번에 되는 게 신기한 거지’라며 긍정적으로 투쟁을 평가하곤 했다. 이번 투쟁도 마찬가지다. 투쟁을 준비하는 과정은 소라 씨에게 약간 설레는 시간이었다. 침낭을 새로 사면서 여행가는 기분도 들었다. ‘기왕 하기로 결정한 거니까 즐기면서 가자.’

 

오늘 원주행 버스를 타고 오면서 소라 씨는 긴장했다. ‘이번엔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걱정했다. 공단의 태도는 어떨지, 정규직은 어떻게 반응할지 걱정이 들었다.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낮 12시, 펜스를 뚫고 700여 명이 다함께 공단 부지로 진입했다. 소라 씨는 팔다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경찰이 진입을 막으려 하고 동지들은 그런 경찰을 막았다. 다같이 펜스를 밀어서 넘어뜨리고 진입했다.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가니까 소라 씨도 함께 들어갈 수 있었다. ‘이러다 연행되는 거 아냐?’ 불안했지만 몸은 동지들과 함께였다. 

 

IMG_0552.jpg

 

첫 펜스를 넘은 후 두 번째 펜스가 있었다. 이번엔 경찰과 공단 직원의 숫자가 조금 더 많았다. 소라 씨는 앞에 나서진 못하고 뒤에서 쳐다보며 ‘어쩌지’만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펜스가 뚫렸을 땐, 언니들과 함께 뛰어 들어갔다. 공단 정문 앞에 도착했고 모두 그 앞에 앉았다. 수백 명이 앉으니 떨리던 팔다리는 진정되었고 점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여기가 이렇게 넓었나?’ 올 때마다 공단이 펜스와 차 벽으로 막아놓아서 이 넓은 곳에 제대로 들어온 건 거의 처음이었다. ‘아니, 별것도 없는데 여기가 뭐라고 그동안 막았지?’ 생각했다. 곧 공단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나왔고 무시하는 눈빛으로 우릴 쳐다봤다. ‘얘네 하나도 안 변했네’ 싶으면서 참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땅, 내 땅 나눠서 땅따먹기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하는 거지? 여기 공공기관이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네 우리가 여자라서 펜스 못 넘을 줄 알았지? 우리 이 정도야’ 쿵쾅거리던 심장은 어디로 갔는지, 통쾌함이 느껴졌다.

 

MIN_7270.jpg

 

오후 2시, 문화제가 시작됐다. 문화제의 발언과 공연은 좋았지만, 맨 마지막에 쟁의대책위원 11명이 단식한다는 선포는 당황스러웠다. ‘이번엔 삭발이나 단식 같은 것도 생각하고 있어’라는 김금영 지회장의 말을 스치듯이 들은 적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누가, 몇 명이나,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진 않았다. ‘11명이나 한다니, 우리 지회장도 함께라니’ 소라 씨는 지긋지긋한 서러움을 느꼈다. 오후 7시, 저녁 문화제가 이어졌다. 즐거웠다. 특별히 서럽지도, 통쾌하지도, 화나지도 않았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오늘 하루가 잘 끝나서 다행이었다. 즐거웠다. 즐거운 투쟁이란 생각이 들었다.

 

소라 씨에게 ‘다른 건 다 생각하지 마시고요, 오늘 우리가 한 투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물었다. 소라 씨는 ‘공단을 기선 제압한 투쟁이요’라고 정리했다.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의 소속기관 전환을 향한 총파업 투쟁 첫째 날, 만족스러운 투쟁의 시작이다.

 

MIN_8198.jpg

=이은영 지부장을 포함한 11명의 쟁의대책위원들이 단식을 시작했다.

 

MIN_7087.jpg

 

MIN_8772.jpg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