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총파업 연재기고] #2 "내일의 투쟁을 위해 준비한 날" 투쟁 둘째 날, 경자 씨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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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총파업 연재기고] #2 "내일의 투쟁을 위해 준비한 날" 투쟁 둘째 날, 경자 씨의 마음

2021년 여름,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상담노동자들은 투쟁에 돌입했다. 약 1천 가지의 업무를 하며 하루에 약 120콜씩 전화를 받았다. 화장실 가는 시간도 통제받으며 인센티브를 더 받기 위해 경주하듯 일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저임금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투쟁의 결과는 ‘소속기관 전환’이었다. 온전한 직고용은 아니지만 비교적 고용 안정성이 나아지는 결과였다. 그러나 2년이 지난 2023년 11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1,600여 명의 상담사는 아직도 저임금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을 벗어나지 못했다. 기다리다 지친 노동조합원들은 원주에 위치한 국민건강보험공단 본사로 모였다.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곳에 모였을까, 하루하루 어떤 투쟁을 하며 그 속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궁금했다. ‘오늘의 투쟁’을 하루하루 돌아보기 위해 조합원을 인터뷰해서 정리하기로 했다. 투쟁 둘째 날은 서울3센터 소속이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가 처음 생길 때부터 함께한 이경자 조합원을 통해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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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2일, 경자 씨가 원주 투쟁 이틀 차를 맞이했다. 경자 씨는 내년 5월 27일이면 정년이다.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에 무려 1기로 입사한 상담사다. 경자 씨는 이번 투쟁을 앞두고 함께할지 솔직히 고민했다. ‘반년만 있으면 정년인데 굳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주변에선 ‘가만히 있다가 정년 맞으면 되는데 왜 돈 쓰고 체력 쓰고 시간 쓰냐’, ‘너는 또라X냐? 어차피 안 될 텐데 왜 정년 앞두고 그런 걸 하려고 해’라는 말이 쏟아졌다. 정말 그럴까 고민도 했지만, 결국 후배들과 함께 원주행을 선택했다. 경자 씨는 올해로 18년차 상담사다. 그러나 중간에 하청업체가 두 번 바뀌면서 지금 업체는 경자 씨를 8년차 상담사라고 하고 있다. ‘내 10년을 누가 가져가버렸나’ 생각이 들었다. 후배들은 자신이 일한 경력을 그대로 인정받도록 하고 싶었다.

 

어제, 경자 씨는 차벽과 펜스를 보면서 ‘못 들어가겠네. 여기 길바닥에서 자야겠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갑자기 누군가 ‘밀어!’, ‘뛰어!’라고 소리쳤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펜스에 붙었다. 경자 씨도 함께 펜스를 밀었다. 펜스를 넘어가면서 경자 씨는 희열을 느꼈다. 공단 건물 앞에 다같이 앉았을 땐 예전과 우리가 달라졌다고 느꼈다. ‘예전엔 우왕좌왕하더니 이제 우리 실력이 늘었군’ 생각했다. 경자 씨는 밤에 천막과 1인용 텐트가 잔뜩 깔린 걸 보고 생각했다. ‘춥게 자는 사람은 없겠네. 이 정도면 5성급 호텔이다.’ 새벽 3시에 잠시 천막에서 나와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감회가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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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 씨가 새벽에 나와 찍은 농성장 사진

 

아침에 눈을 떴다. 오전 9시 30분, 경찰은 자진 해산하라며 경고 방송을 했다. 혼란스러웠다. 안 그래도 어제 잔뜩 와주었던 연대 동지들이 대부분 돌아간 터였다. 숫자가 다소 줄었는데 혹여나 경찰이나 공단 직원들이 밀고 들어올까봐 걱정이 됐다. 다소 허둥대고 있었는데, 김금영 지회장이 텔레그램을 보내주었다. ‘괜찮아요. 다들 동요하지 마세요.’ 경자 씨는 김금영 지회장을 믿는다. 지회장이 괜찮다고 하면 분명 괜찮을 거다. 경자 씨는 다시 마음이 편해졌다. 아침, 점심, 저녁 선전전을 하면서는 ‘우리 실력이 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앰프 소리는 작았고 구호를 외치는 우리는 약간 버벅이는 거 같았다.

 

오전에 다같이 텐트와 천막을 정비하고 청소하는 시간을 가졌다. 경자 씨는 청소를 하면서도 속으로 투덜거렸다. ‘어제 잘 뚫고 들어왔는데 왜 청소를 하지? 시간 아깝다. 차라리 이 시간에 행진을 하거나 삼보일배라도 하면 좋겠다.’ 다른 아쉬움도 있었다. 단식자들이 자꾸 돌아다니며 일을 하고 구호를 외치고 선전전을 함께하는 거였다. ‘단식자들 왜 자꾸 돌아다녀? 식사도 안 하고 돌아다니다가 다치면 어떡해.’ 단식자들은 오전 10시 30분쯤 하얀색 몸자보를 맞춰 입었다. 굳은 마음으로 마지막 투쟁이라고 생각하고 임했을 동지들이 안타까웠다. 경자 씨는 속으로 ‘어쩌면 나도 마지막 수단이 단식일 때, 단식까지 할 수 있으려나?’ 슬그머니 생각하기도 했다. 저녁 7시, 문화제를 했다. 재밌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경자 씨는 역시 아쉬움이 남았다. 지금 공단 마당에 천막을 치고 즐거운 문화제를 하는 것도 좋지만 이건 이미 2년 전에 했던 투쟁인 것이다. 공단도 겪었던 투쟁이다. 경자 씨는 공단이 겪어보지 못한 수준 높은 투쟁을 하고 싶다. 경자 씨는 더 크고 강한 투쟁을 원한다. 경자 씨에게 오늘의 투쟁은 성에 차지 않았다. 경자 씨는 후배들이 소속기관으로 전환되어 행복한 표정으로 출근하는 날을 기다리고 원한다. 그날을 만드는 선배이고 싶다.

 

경자 씨에게 오늘의 투쟁을 한 줄로 말해달라고 했다. 경자 씨는 ‘내일의 투쟁을 위해 준비한 날’이라고 했다. 경자 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대단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보통 간부나 활동가들은 조합원들이 강한 투쟁을 꺼릴 거라고 생각한다. 감당하지 못할 거라고, 힘들어서 그만두려 할 거라고, 특히 정년이 얼마 안 남은 사람이면 더욱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언제나 노동자는 예상보다 강하고 단단하다.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의 소속기관 전환을 향한 총파업 투쟁 둘째 날, 강하고 단단한 경자 씨를 만족시키기엔 다소 아쉬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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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 저녁 문화제에서 발언하는 이경자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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