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반대 투쟁에 함께하는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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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논평

사드 반대 투쟁에 함께하는 노동자들

  • 오연홍
  • 등록 2023.09.26 10:05
  • 조회수 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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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투쟁에 함께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노동조합 중에 아사히비정규직지회가 있다. 노조를 만들자마자 해고된 자신들의 복직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에 앞장서는 모습으로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되는 동지들이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의 발걸음이 닿는 곳은 통상적인 ‘노동조합 투쟁’ 범위를 넘어선다. 수년째 사드 반대 투쟁이 벌어지는 소성리도 그중 하나다. 아사히 동지들의 연대 사례를 보면서, 노동자 운동이 사드 반대 투쟁 같은 정치쟁점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함께 고민해 보자.

 

15차 범국민 평화행동

 

9월 2일 경북 성주군 소성리에서 사드철회평화회의 주최로 15차 범국민 평화행동 집회가 열렸다. 8월 18일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3국 지배계급의 군사적 결속을 다지는 정상회의가 열렸는데, 이를 규탄하듯 집회 무대에는 “사드 철거! 한미일 군사동맹 구축 반대!” 구호가 크게 내걸렸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 회원들도 이날 집회에 참여해 한미일 군사동맹 반대 구호를 함께 외쳤다.

 

2017년 4월 26일 사드 장비가 처음 소성리에 반입된 이래 6년이 지나는 동안, 여러 반전 평화운동 단체, 종교단체, 학생단체, 정당 등이 지역 주민들과 함께 싸워왔다. 투쟁 현장에 나붙은 수많은 현수막을 보면 사드 철거, 평화, 민족자주 등 소성리 투쟁을 지지하는 개인과 단체들의 열망을 읽을 수 있다. 구한말 동학농민운동을 연상시키는 ‘척양척왜(斥洋斥倭)’ 같은 구호도 눈에 띄었다.

 

그동안 구미 아사히비정규직지회가 꾸준히 소성리 투쟁에 연대해 왔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날도 역시 아사히 동지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구미에서 노동자 공동투쟁의 기풍을 살려가고 있는 KEC지회,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동지들도 함께했다. 옵티칼하이테크 노동자들은 먹튀 자본 닛토덴코를 규탄하며 고용보장을 촉구하는 서명을 받았고, 집회 참가자들이 줄지어 서서 서명에 동참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사드 반대 투쟁에 함께하는 노동자들

 

민주노총 통일선봉대처럼 민족주의 지향이 강한 노동자들이 사드 반대 투쟁에 참여하는 장면은 익숙한 편이지만, 아사히비정규직지회 같은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 이 투쟁에 계속 연대하는 모습은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아사히 동지들이 어떤 생각으로 이 투쟁에 연대하게 됐는지, 이곳에서 무엇을 겪었는지 더 들어봤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차헌호 지회장은 국가권력의 가공할 폭력을 첫 번째로 꼽았다. 9년째 투쟁 중인 아사히 노동자들 자신도 자본가들의 악랄한 작태만이 아니라 경찰과 법원을 앞세운 정권의 체계적인 탄압을 겪어왔다. 하지만 그것조차, 소성리 주민들이 겪어온 압도적인 폭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사드 배치를 강행하는 동안 지역 주민들은 정부로부터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했다. 지배자들이 떠들어대는 민주주의는 여기에 존재하지 않았다. 저항하면 일방적으로 폭행당하며 끌려 나왔다. 투쟁하는 노동자를 짓밟는 바로 그 국가권력이 이곳에선 주민들의 저항을 짓밟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며 아사히 노동자들은 소성리 투쟁에 연대하기로 마음먹게 됐다. 그 과정이 마냥 ‘자연스럽게’ 이뤄진 건 아니라고 한다. 차헌호 지회장은 ‘아주 의식적인 노력’이 투여됐다고 강조한다. 지회에서 꼼꼼하게 토론하고 교육을 배치하며 집단적 결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거쳤다.

 

함께 전진하기

 

이와 같은 연대는 반대로 소성리 주민들이 노동자투쟁의 현실을 이해하고 노동자 운동을 지지하도록 이끄는 역할을 했다. 주민들이 직접 아사히비정규직지회 결의대회에 참가하기도 했고, 2017년에는 ‘투쟁사업장공동투쟁’의 광화문 고공 농성장을 방문해 힘을 실어줬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주민들 사이에서는 “노동자의 권리가 존중되지 않는 대한민국이 민주주의를 온전히 실현할 수 없다”는 얘기가 나돌았다고 한다.(관련 글) 

 

정권이 앞장서서 조장하는 노조혐오 십자포화에 맞서 노동자투쟁에 대한 사회적 지지와 연대를 강화할 수 있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힐끗 보여준 듯하다. 이 사례는 우리에게 다시 한번 중요한 질문을 던져준다. 조합원들만의 임금과 고용을 위한 편협한 요구를 넘어서지 않은 채 노동자 운동이 사회적 고립을 탈피할 수 있을까? 억압받는 민중의 권리를 위해 앞장서서 투쟁하지 않으면서 노동자 운동이 ‘세상을 바꾸는’ 힘을 끌어낼 수 있을까?

 

소성리 주민들은 힘겹게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투쟁하는 노동자들도 상황이 어려운 건 매한가지다. 하지만 그럴수록 자기 사업장 안으로만 움츠러드는 게 아니라 정반대로, 더 넓은 시각으로 연대운동을 만들어가야 더 강력한 지지를 끌어내며, 더 힘차게 싸울 수 있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동지들이 바로 그 증거다.

 

방향을 분명하게

 

소성리 투쟁에 연대하는 노동자들은 두말할 나위 없이 이 투쟁이 승리하기를 바란다. 한반도에서의 제국주의 경쟁과 전쟁 위기 고조는 노동자 민중 모두의 생명과 생존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지역만의 투쟁으로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15차 범국민 평화행동의 대표 구호가 선명하게 제기한 것처럼, 이 사안은 단지 특정 지역에서 사드 장비를 철수시키는 데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 한미일 군사동맹 구축 시도 자체를 꺾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노동자계급이 한미일 군사동맹 구축 시도에 제대로 맞서려면, 정치적 방향성을 바로 세우기 위한 토론이 노동자 운동 속에서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 제국주의 패권에 맞선다는 정당한 명분 아래 한미일 군사동맹에는 반대하면서도, 그 맞은편에 제국주의 경쟁의 다른 한 축으로 자리 잡은 중국, 러시아, 북한에 대해서는 명확한 태도를 취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지지하기까지 하는 그릇된 경향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다. 현실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는 이런 시각으로는 단기적으로든 장기적으로든 대중 속에서 설득력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한미일 군사동맹에 맞선 투쟁은 무엇보다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줄서기가 이뤄지고 있는 제국주의 패권 경쟁 자체에 맞선 투쟁이어야 한다. 경쟁자를 불리하게 만들면서 자신의 세력권을 확대하려는 지배자들 간의 경쟁에서 우리는 누구 편도 들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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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힘을 만들기 위해

 

그와 더불어 노동자 운동이 실제로 국제적인 연대의 힘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경험과 역량을 키워갈 필요가 있다. 지배계급이 군사동맹을 추진하며 전쟁 위기를 고조시킨다면, 노동자계급은 국경을 넘어 ‘노동자계급끼리’ 손잡고 전쟁 반대 동맹을 추진해야 한다. 전쟁 위기를 부추기는 제국주의 열강 내부에서부터 체제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 노동자계급의 저항을 조직하는 게 관건이기 때문이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의 경우, 한국에서 한창 ‘반일’ 분위기가 고조되던 상황에서 아사히 본사를 겨냥한 일본 원정 투쟁에 나선 바 있다. 이는 ‘일본 놈들 때려잡자’는 식의 민족주의적 행동이 아니라 이 투쟁을 지지하는 일본 노동자와 한국 노동자가 함께 손잡고 자본가에 맞서 시위를 벌이는 국제적, 계급적 연대였다. 또한 그렇게 연대했던 일본 노동자들이 반전 투쟁을 요구로 내걸고 실제로 그런 활동을 조직하는 모습이 아사히 동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우리 운동에서 이런 경험은 아직 미약하다. 그러나 노동자 운동이 ‘우리 민족끼리’나 ‘척양척왜’ 같은 협소한 민족주의 전망을 넘어 제국주의 경쟁체제를 근본적으로 뒤엎을 수 있는 노동자계급 국제연대의 가능성을 분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그 가능성을 증폭시키는 데에서 승리의 전망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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