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아동과 청소년의 성인권, 성평등 교육 금지? - 저들이 지울수록 우리는 더욱 뚜렷한 투쟁을 조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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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정부의 아동과 청소년의 성인권, 성평등 교육 금지? - 저들이 지울수록 우리는 더욱 뚜렷한 투쟁을 조직할 것이다

  • 배예주
  • 등록 2023.09.10 14:38
  • 조회수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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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 성차별을 개선하기 위한 기본 요소 중 하나는 인권과 평등에 기초한 성교육일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아동과 청소년의 성 인권 교육을 없애는 일을 저질렀다. 며칠 전 여성가족부는 청소년의 올바른 성 인권 형성과 가치관 형성을 위해 진행해 온 ‘성 인권 교육’ 사업을 내년에 폐지하기로 하고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올해 배정된 예산은 5억 5,600만 원이었다. 성 인권 교육 사업은 지난 10년간 초·중·고 장애·비장애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되었고, 장애인 비중이 더 높은 사업이었다.


아동과 청소년에게 허락하지 않는 ‘성 인권’, ‘성평등’


‘성 인권’이란 성별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성폭력 피해를 당하지 않을 권리 등을 말한다. 성 인권 교육 사업은 청소년 스스로 성적 주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성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하고 가르치는 내용이다. 아동과 청소년이 성장 과정에 맞춰 제대로 된 성 관련 정보를 습득하고, 학교 안팎에서 마주치고 경험하는 성을 통한 자연·역사·사회관계를 토론하며,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성적 문제들을 제기하고 다양한 성정체성과 입장을 존중받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우며 필수적이다. 


그런데도 여성가족부는 “보건복지부도 발달장애인 성 인권 교육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사업을 폐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최근 5년간 성 인권 교육에 참여한 인원은 1만 7~8천 명 대였고, 발달장애 외 시각, 청각 등 장애유형과 정도에 따라 변별력 있는 교육을 해 왔다는데 정부는 이를 무작정 없애버렸다. 발달장애 외 장애를 가진 아동과 청소년에게 적절한 방식의 성교육을 공교육에서 어떻게 제공할 것인지에 대한 대안은 따로 없다. 오로지 아동과 청소년에게 ‘성 인권’을 불온한 것으로 취급해 빼앗고 대신 ‘성평등’을 지운 교육과정만 강요할 작정이다. 


이미 정부는 여성가족부 폐지 기조를 세운 데 이어 대통령 소속 국가교육위원회를 통해 ‘2022 개정 교육과정’을 심의하면서 성교육에서 ‘성’을 지운 바 있다. 교육부는 ‘성평등’, ‘재생산권’, ‘성소수자’ 용어와 ‘섹슈얼리티’ 용어를 삭제해 의결했다.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되 그것은 ‘평등’해서는 안 된단다.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생명과 다양한 인간 정체성을 부정하며, 인간과 사회재생산의 권리를 빼앗아야 한단다. 성적인 모든 범주가 자연, 과학, 사회, 역사, 문화, 예술에 있지만 이를 인정하는 단어를 말해선 안 된단다.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게 하려면 알아서 사교육 시장에 의존하라는 말인가? 윤석열 정부는 반동적이고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강제로 주입하고, 성 인권과 성평등을 빼앗기 위해 아동과 청소년의 성교육 전반을 통제하고 있다. 


구조적 성차별 강화하는 성교육 통제


성평등과 존중의 가치는 인간 정체성의 일부이자 인간 사회의 기본요소로 자본주의 사회의 현 수준에서도 부정되지 않는다. 이는 아동과 청소년의 교육권 보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지배계급의 노동착취와 차별·억압에 기초한 자본주의는 근본적 평등과 무관한 형식적 성평등만 주창할 뿐이다. 그럼에도 청소년의 젠더와 섹슈얼리티, 성적 권리와 성교육은 국제사회의 상식으로 다뤄지고 있다. 유네스코,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 등은 지속적으로 포괄적 성교육(Comprehensive Sexual Education)의 개념을 제시하고, 이에 따라 성평등,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재생산권, HIV/AIDS 등에 관하여 연령에 따라 적합한 교육과정들을 마련할 것을 권한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역시 2020년 한국 정부에 성적 지향 및 성 정체성을 적절히 포괄하여 각 연령에 적합한 성교육을 제공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구조적 성차별과 여성과 성소수자,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강한 한국에서 ‘성교육’과 ‘성 인권 교육’은 지금도 부족하다. 게다가 자본의 민주주의와 형식적 성평등의 수준 역시 단연 꼴찌다. 가부장적 문화가 강한 한국의 현실을 개선하려면 지금 수준보다 인권과 평등을 강조하는 성교육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자신과 타인의 성 정체성과 성적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관점과 과학과 사회, 윤리적 소양을 제공받을 권리가 아동과 청소년에게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국제 표준’을 강조하면서도 아동과 청소년의 ‘성평등’과 ‘성 인권’ 교육에 관한 국제사회의 합의는 모두 무시했다. 아동과 청소년에게 ‘성’을 지운 성교육, ‘인권’과 ‘평등’ 없는 성적 존재와 가치, 양성과 이성애만 인정하는 주입식 교육을 통해 노동자 민중의 후세에게 지배계급이 인정한 가치와 방식만을 습득하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이는 존중과 함께 배려받아야 하는 아동과 청소년의 교육권과 존엄성마저 해치는 행위이자, 구조적 성차별을 강화하고 노동자 민중이 지향하는 평등과 권리, 자유의 가치를 차별과 가부장적 통제로 굴절시키며 저항을 사장시키는 행위다.


성범죄와 성차별


뿐만 아니라 정부가 성교육에서 평등과 인권을 지우는 것은 아동·청소년 시기에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진 인간의 존엄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게 함으로써 성에 기반한 폭력을 줄일 예방적 수단을 없애는 행위다.


2022년에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해바라기센터(성폭력피해자종합지원센터)를 찾은 피해자 중 미성년자는 12,311명(전체의 49.4%)이었다. 피해 미성년자 절반 이상인 7,594명이 13세 미만이다. 성폭력 피해의 86.4%(14,839명)는 강간·강제추행·디지털 성폭력이었다. 특히 장애인 피해자의 경우 평균보다 높은 78.4%(2,038명 중 1,597명)가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 2021년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아동·청소년 성범죄 유죄판결이 확정된 자료 분석 결과를 보면 피해자의 평균연령은 14.1세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2년 여성폭력통계’를 보면 한국 여성 4명 중 1명은 평생 1회 이상 성폭력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성범죄는 피해자가 가난할수록 사회적 약자일수록 더 쉽게 노출된다고 보고된다. 


이뿐인가. 성소수자 청년 10명 중 4명은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고 셋 중 하나가 ‘차별’을 경험할 만큼, 있는 그대로의 성 정체성과 성적지향은 존중받지 못한다. 낙태죄가 없어지고도 유산유도제는 도입되지 않았다. 영아살해는 처벌만 강화되었을 뿐, 내가 살려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한국 사회의 현실은 여전하다.


넘길 일이 아니다


0.7명 저출생이라는 사회 절멸의 위기 속에 소중한 아동과 청소년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과 존엄을 존중하고 존중받는 관점과 힘을 길러주는 것이 사회에서 없애야 할 영역이란 말인가! 아이들이 성적이 아니라고 넘길 일이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고 쉽게 넘길 일이 아니다. 정부가 성교육의 단어들을 없앤 것은 우리 노동자 민중과 아동·청소년들이 살아갈 사회에서 ‘성평등’, ‘성소수자’, ‘재생산’, ‘성 인권’을 지우는 일과 같다. 


저들이 단어를 지울수록 노동자 민중의 투쟁이 성평등과 성소수자를 포함한 모든 성 정체성과 성적지향을 존중하고 재생산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투쟁을 벌여야 할 것이다. 정부의 이러한 공격을 규탄하는 목소리에서부터 혐오와 차별, 억압에 맞선 노동자의 투쟁으로 미래세대에 성평등한 산 교육을 제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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