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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던 날씨가 갰다. 2026년 9월 13일 2026년 민주노총 전국이주노동자대회가 열린 서울지방노동청 주위에는 14시 대회 시작 전부터 전세버스와 승합차들이 줄지어 도착했다. HD현대중공업 정문에서 버스로 출발한 울산의 이주노동자들은 일찌감치 대회장에 도착해 자리를 잡았다. 200개 정도의 의자가 한꺼번에 채워졌다.
‘강제노동 철폐! 사업장 이동의 자유 완전 보장! 모든 이주노동자의 인권•노동권 보장! 2026년 민주노총 전국이주노동자대회’에 약 1,000명의 이주·정주노동자가 참여했다. 다양한 국적의 이주노동자와 소수지만 전보다 숫자가 늘어난 정주노동자, 전국에서 온 이주 단위 활동가들과 연대 동지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무대에 오른 현장 이주노동자들은 다양한 비자로 여러 산업에서 정부와 자본으로부터 받는 차별과 착취를, 그리고 분노와 투쟁을 증언했다. 참가자들은 청와대까지 행진하며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 보장을 위한 다양한 요구를 외쳤다.
△모든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 자유 완전 보장하라! △임금 체불, 산재 사망 근절 대책 마련하라! △위험의 이주화 중단하고, 노동안전 보장하라! △계절노동, 어선원, 기능인력 등 브로커 착취 근절과 송출 공공성 실현하라! △미등록 이주민 강제 단속 추방 중단하고 체류권 부여 정책 실시하라! △여성 이주노동자 성차별 성폭력 근절하고, 여성노동자 권리 보장하라! △HD현대중공업 나쁜 계약 및 차별 처우 철회하라! △이주노동자 표적 해고 중단하고 노조 할 권리 보장하라! △이주노동 제도 관할 노동부로 일원화하고 인권 중심 로드맵 마련하라!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요구가 없었다.
이날 열린 전국이주노동자대회는 지금까지 대회 중 가장 큰 규모였다. 이는 한국 사회에 이주노동자가 늘어나며 투쟁하는 노동자도 늘고 있는 상황을 반영한다. 특히 올해 6월부터 HD현대중공업 이주노동자 투쟁이 시작되며 이주노동자 운동은 소수의 투쟁에서 대중적 투쟁으로 한 단계 도약했다. 일천 명의 이주노동자와 정주노동자가 함께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외친 이번 집회는 규모 있는 이주노동자의 주체적 투쟁과 더불어 작지만 소중한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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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중공업 앞에서 서울지방노동청으로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는 9월 13일 전국이주노동자대회를 앞두고 노동조합으로 가입한 이주노동자의 참여를 조직해 왔다. 직접 고용 간접 고용 가릴 것 없이 HD 현장에 이주노동자가 겪고 있는 차별과 착취가 존재할 뿐 아니라 한국 사회 곳곳에서 이주노동자가 이중 삼중의 차별받는 현실 앞에 함께 목소리를 내며 같이 싸워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울산이주민센터도 별도의 조직화에 나선 결과, 13일 대회에 현중사내하청지회 이주노동자 조합원뿐 아니라 다양한 국적의 울산 지역 이주노동자와 정주노동자를 포함해 약 170명이 참가했다.
울산 동구 HD현대중공업 정문 건너편에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가 대절한 전세버스가 즐비하게 늘어서자 HD 경비대가 분주했다. 누구는 사진을 찍고 누구는 휴대폰에 뭔가를 열심히 입력하면서 버스가 떠날 때까지 여러 명이 사찰에 열중했다. 버스에 오른 노동자들은 설레고 즐거웠다.
현중사내하청지회 간부들과 울산이주민센터 활동가들이 인솔한 차량은 서울로 향하며 서로가 참가 소감을 나누고, 구호와 노래를 배웠다. 이주노동자 20여 년 전 투쟁 영상, 최근 HD 이주노동자 투쟁 영상을 보며 울산 대오의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식사는 종교와 취향에 따라 다른 음식이 제공되었다.
이번 대회에서 울산의 이주노동자 투쟁은 HD현대중공업의 ‘나쁜 계약·임금 삭감·차별 처우 중단’으로 대표됐다. HD현대중공업의 경우, 생산직에서 이주노동자 비율은 사내하청의 경우 전체 2만 5천 명 중 8천~1만 명으로 40%에 이르고 생산직 직접 고용은 약 20%로 생산에 막대하게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원하청 사측의 통제와 다양한 차별 강요로 저임금 고강도 착취를 받고 있다. 자동차 산업은 울산에서 경주에 이르는 부품 벨트에서 최저임금과 3D 업무를 강요받고 있다. 이렇게 모든 자본이 이주노동자를 더 많이 착취하는 상황에서 ‘나쁜 계약·임금 삭감·차별 처우 중단’은 서로 다른 사업장 조건에서도 울산 지역 이주노동자들의 요구로 이어졌다.
가족 단위로 버스에 몸을 실은 이주노동자들도 있었다. 여러 나라 국적의 노동자들이 모이다 보니 언어 장벽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이주노동자들은 “투쟁”이라는 말을 배웠다. 대회의 주요 구호를 배우고 따라서 외쳤다. Free Job Change,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를 같이 부르고 이주노동자의 투쟁 영상을 보며 그동안 겪은 설움과 분노를 맘껏 소리칠 준비를 했다.
수많은 현장 이주노동자의 목소리
흐린 서울 하늘, 투쟁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현중사내하청지회는 깃대에 팔레스타인 깃발을 같이 달았다. 대회사와 투쟁사, 성서공단지회 연대 율동패 공연에 이어 현장 이주노동자들의 발언이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소속의 HD현대중공업 이주노동자 차리타가 금속노조 조끼를 입고 무대에 올랐다.
“지난 3개월 동안 우리는 회사에 태도를 바꾸라고 요구하며 일어섰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가장 중요한 문제인 나쁜 계약 철회, 기본급 삭감 문제, 그리고 정주노동자들과 동일한 수준의 보너스를 지급하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회사에 있습니다. 이러한 행위들이 법에 어긋나고 회사가 잘못한 것이라면, 왜 법을 집행해야 할 정부 부처는 이 문제에 대해 제대로 법을 집행하지 않는 것입니까? 우리는 이미 증거와 함께 큰 도둑을 여러분 앞에 지목해 놓았습니다. 누가 법을 집행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노동자로서 부당함에 맞서 일어설 것입니다.”
차리타 노동자는 현중사내하청지회를 대표해 자본과 정부, 도둑들을 꾸짖으며 노동자가 법과 제도에 기대는 게 아니라 투쟁으로 권리를 쟁취할 것임을 선언했다.
금속노조 전북지부 일강지회 조합원 우즈베키스탄 출신 라지즈 노동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회사에 노동조합이 없던 시절, 이주노동자는 여권을 압수당하고, 임금을 차별당하며, 강제 노동에 시달리고, 가족이 사망해도 연차를 반려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금속노조에 가입해 함께 현장을 바꾸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회사는 우리를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주노동자도 똑같은 노동자입니다. 왜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숙련된 노동자를 버리고 또다시 다른 이주노동자로 채우면서 사측은 노조 탄압을 하고 있는 겁니까? 또한 문제는 같은 계열사인 대승이나 일강 평택 공장에서 어용노조에 가입한 사람들은 비자 연장 및 재계약에 대해서는 아무 문제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꼭 승리하여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도 싸울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줄 것입니다.”
전북 일강지회 이주노동자들은 비자와 재계약을 악용한 자본의 민주노조 탄압을 온몸으로 겪으며 투사로 일어섰다.
민주일반노조 부산본부 외국어교육지회 해미시는 보라색 단결투쟁 머리띠를 묶고 올라섰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부당하고 폭력적인 고용주에 맞서 목소리를 내기만 해도 비자 체류 자격을 위협받습니다. 그리고 저는 단지 다른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이주노동자들이 훨씬 적은 임금을 받는 현실을 강력히 규탄합니다. 덕스와 워릭의 조합원들은 부당 해고에 맞서 지금까지 힘겹고 고된 투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압박과 어려움 속에서도 일자리와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노동자가 공격받을 때 우리는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연대하고 함께한다는 것을 보여줍시다”
연대와 끈질긴 투쟁을 통해 승리하자고 강조했다.
렛 시낫 지구인의 정류장, 캄보디아 농업노동자가 마이크를 이어 잡았다.
“저는 2026년 5월에 노동부의 알선을 받아 그 농장에 취업했습니다. 숙소는 작은 비닐하우스 숙소였습니다. 사장은, 오전 6시에 저를 '바질, 참나물' 등을 심어 놓은 10km쯤 떨어져 있는, 여러 곳의 비닐하우스 밭에 차로 데려다 놓고 혼자서 야채들을 수확하게 했습니다. 화장실도, 그늘도 없었습니다. 점심 식사도 혼자 비닐하우스 안에서 싸 간 도시락을 먹습니다. 혼자 뜨거운 곳에서 휴식 없이 일하는 것도 너무 위험하고, 사장이 월급도 주지 않아서 사업장 변경을 신청했습니다. 저는 전의 직장과 같이 위험하고, 임금도 체불하는 곳에서 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노동부는 제게 나쁜 직장을 소개하지 마세요! 노동법을 지키는 직장을 소개해 주세요! 한국 노동부는 사장들이 농업노동자들을 착취하지 않도록 잘 지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렛 시낫은 캄보디아 여성노동자로서 당당히 정부와 지자체, 농업 자본의 이주노동자 차별과 착취를 비판했다.
계절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온 방글라데시 농업노동자 하산은 이주노동자 도입에 고착화한 브로커 구조와 자본, 무책임한 정부들로부터 받은 피해를 호소하며 연대를 호소했다.
“방글라데시에 있을 때, 저희는 계약 내용을 읽거나 검토할 기회도 없이 고용 계약서에 서명하도록 강요받았습니다. 우리는 (방글라데시 정부 파견기관인 BOESL로부터) 고용주에 대해 어떠한 불만도 제기할 수 없었으며, 계약 만료 후 방글라데시로 돌아가야 한다는 조건을 강요받았습니다. 두 명의 보증인에게 각각 BDT(방글라데시 화폐 다카) 500,000씩, 총 BDT 1,000,000에 달하는 은행 수표를 보증금으로 압수했습니다. 이 금액은 한국 돈 1,100만 원 이상에 해당합니다. 매일 새벽 3시에서 4시 사이에 일어나 12~13시간 동안 농사일을 하고 하루에 8만~9만 원밖에 받지 못했는데, 이는 한국의 최저임금 기준보다 훨씬 낮은 금액이었습니다. 숙박비, 전기세, 교통비, 쓰레기 처리비 명목으로 임금에서 과도한 금액이 공제되었습니다. 계약 갱신 수수료로 각자 300만 원을 추가로 지불하라는 요구도 받았습니다. 방글라데시 정부 파견기관인 BOESL, 한국의 중개업체 NDN, 그리고 피터 리(Peter Lee)라는 방글라데시계 한국인이 연루되어 있습니다.”
이는 단지 방글라데시 한 이주노동자의 불운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차별과 착취, 폭력과 괴롭힘, 무권리 강제노동이 한국의 이주노동 정책입니까”라고 물었다. “이재명 정부가 외국인력 통합 지원 로드맵 발표한다고 하지만 그것도 우리의 요구에 아주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사업장 변경 자유를 완전히 보장하지 않는 로드맵을 반대”하며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자유 완전히 보장하고 인권•노동권 보장하는 대안적인 노동허가제를 실시”하라고 요구했다.
현장 이주노동자들의 생생한 발언은 이주, 정주노동자가 국경을 넘어 노동자의 이름으로 단결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끼게 해 주었다. 이주노동자들은 언어 소통의 어려움에도 발언에 귀 기울이고 투쟁으로 화답했다.
참가자들은 “정부와 지자체, 사업주들은 이주노동자 숫자 확대에만 치중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차별을 철폐하고 노동과 삶의 모든 영역에서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며, “국경을 넘어 이주, 정주 모든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 투쟁으로 인권과 노동권을 쟁취”하자고 결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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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오에는 한화오션 하청업체에서 일하다가 직장 내 성희롱과 괴롭힘으로 정신질환을 얻고 최근 이에 대해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우즈베키스탄 여성노동자도 있었다. 그는 일터를 떠나지 않고 싸워 산재를 인정받았다. 아마도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 직장을 바꾸지 않고 젠더 폭력 피해 산업재해를 받은 사례는 처음이 아닐지. 사업장 변경 시 사업주의 허락이 필요한 고용허가제(E-9) 구조에서 젠더 폭력 피해에 대해 싸운 투쟁도 무대에서 전해졌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가자, 청와대로
투쟁결의문이 한국어, 영어, 싱할라어, 베트남어, 미얀마어, 벵골어로 낭독된 후 행진이 시작되었다. 이주노동자들은 사회자의 안내가 있기도 전에 의자를 치우기 시작했다. 손피켓도 잘 챙겼다. 바닥에는 쓰레기 하나 남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현수막도 깃발도 피켓도 높이 치켜들고 도로로 나갔다. 생수 한 병 제공되지 않았지만, 이주노동자들은 청와대 사랑채까지 2.5km 거리를 힘차게 행진했다.
대회 현수막, 단위별 현수막과 다양한 깃발이 도심에 나부꼈다. “We are not machine!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We are not slave!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어쩌면 현장에서 수없이 속으로 되뇌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행진하는 동안 한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그리고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로 가며 마음껏 소리칠 수 있었다. “We are not machine!”, “We are not slave! 해방감을 느꼈으리라.
광화문을 지나 청와대 분수대 방향으로 들어서서는 목소리가 더 커졌다. 대통령에게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게 할 작정인지 지친 기색 전혀 없이 더 우렁찬 목소리로 구호를 외쳤다. HD 나쁜 계약 철회하라! 노조 할 권리 보장하라!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하라! 차별 처우 중단하라! 여성노동자 권리 보장하라! 표적 해고, 부당노동행위 중단하라! 인권 중심 로드맵 즉각 마련하라! Free Job Change! Don’t Kill Anymore! Stop Crackdown!
울산 대오 맨 앞에선 스리랑카 노동자들은 팔뚝을 더 높이 치켜들었다. 뒤이은 여러 나라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노동자가 뒤로 펼쳐 든 ‘만국이 노동자여, 단결하라’ 구호의 현수막은 마치 커다란 날개를 펼친 듯했다. 울산 지역에서 참가한 어느 청년 이주노동자는 행진하는 동안 현대중공업지부 깃발과 사내하청지회 깃발을 번갈아 들며 높이 펄럭였다. 마치 윤석열 탄핵 광화문 광장의 깃발춤 같았다.
단결한 노동자계급의 힘으로
전국이주노동자대회에 참여한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은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마지막에 날린 청와대를 향해 달린 손피켓 종이비행기는 비록 가닿지 못했지만,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는 이주노동자와 정주노동자의 단결 투쟁으로 쟁취될 것이다.
울산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소감을 나누었다. ‘오늘의 투쟁을 통해 힘을 얻었다. 앞으로 더 힘차게 투쟁해서 이기자’, ‘서울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서 좋았다’, ‘모든 이주노동자의 차별과 억압에 반대해 함께 뭉치고 힘을 모으는 투쟁이 중요하다’, ‘더 많은 노동자와 함께하자’ 등 결의가 이어졌다. 울산에 도착했을 때 창밖에 보이는 공장과 조선소 풍경은 아침이면 다시 마주할 현장의 답답함보다는 어제와 다른 노동자로 당당히 노동하고 투쟁할 수 있는 자신감을 주는 듯했다.
2026년 전국이주노동자대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의 환호와 ‘투쟁’ 화답 소리가 가장 컸던 울산이주민센터 김현주 센터장의 발언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이주노동자 없이 한국의 산업은 지탱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오로지 자본과 기업의 편에 서서 이주노동자들을 사실상 노예로 내몰고 있습니다. E-7 노동자뿐 아니라 E-2 외국어 교육 노동자, E-9 고용허가제 노동자, E-8 계절노동자, E-10 선원노동자, G-1, F...비자로 이주노동자들을 찢어 놓았습니다. 그 비자 속을 들여다보면 온갖 제도적, 구조적 차별로 억압당하고 착취당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 HD현대중공업 이주노동자들이 일어섰습니다. 39년 전인 1987년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떨쳐 일어선 것처럼 말입니다. 150만 이주노동자 동지 여러분! 이제 함께 일어섭시다. 나는 한 명의 노동자지만, 우리는 이 사회를 뒤흔들 거대한 힘을 가진 노동자계급입니다. 사람답게 사는 길에 노동자는 하나입니다.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투쟁!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을 향해 투쟁!(투쟁!) 투쟁!(투쟁!) 투쟁!(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