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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 노동안전 대책의 허와 실

원청에 맞선 계급투쟁과 일터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통제가 노동재해 예방의 핵심이다

기사입력 2025.09.16 14:48 | 조회 5,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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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정부 노동재해 대책의 이면 


    노동운동은, 노동재해가 자본주의 그 자체의 결과라는 점을, 이윤을 위한 과도한 노동강도와 위험한 작업환경의 결과라는 사실을 드러냈다. 또한 자신이 일하는 현장을 가장 잘 아는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일터를 통제하는 것이, 노동재해를 예방하고 더 건강한 일터를 만드는 핵심이라는 점 역시 강조해 왔다. 노동자 건강 손상을 산업생산의 부산물 정도로 취급하는 인식을 타파하고, 노동자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맥락으로 산업재해가 아닌 ‘노동재해’, 산업안전이 아닌 ‘노동안전보건’이란 용어를 의식적으로 사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간 끈질긴 투쟁으로, “일하다 죽지는 않아야 한다”는 명제는 높은 사회적 공감을 확보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중대재해를 줄이는 데 직을 걸겠다’고 했고, 포스코이앤씨나 DL이앤씨, SPC 등 대기업을 강하게 질타하는 대통령의 모습이 대대적으로 조명되기도 했다. 노동재해를 줄이겠다는 정부의 행보, 일단 정부의 질타를 수용하는 듯한 자본의 모습은 끈질긴 노동자 투쟁의 성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부의 행보에는 노동재해의 근본적 원인에 맞선 노동조합의 현장활동을 제약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나아가 노동자 건강권 쟁취 투쟁이 노동자의 인력·생산량 통제를 포함한 더 넓은 투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즉, 이재명 정부는 대중적 공감대가 높은 사안으로 노동자들을 달래는 동시에, 노동안전을 주로 기술·관리의 문제로 축소함으로써 노동조합의 현장통제 투쟁, 원청에 맞선 투쟁의 확산을 차단하고자 한다. 이는 노조법 2·3조 개정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적절히 통제하고자 하는 의도와도 직결되어 있다.

     

    필요한 것은 AI와 CCTV가 아니라 현장을 통제할 노동자의 힘이다

     

    노동재해에 대한 이재명 정부의 기조는 “공공기관 안전관리 강화 방안”(2025.09.01 발표, 이하 기재부 안), “노사정이 함께 만들어가는 안전한 일터 - 노동안전 종합대책”(2025.09.15 발표, 이하 종합대책)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재부 안의 핵심은 △기관 경영평가에서 ‘산재예방’ 배점 비중 상향 △2인 1조가 필요한 위험작업, 6개월 미만 신규자 단독 금지작업 등 운영실태 조사 △안전은 비용이 아닌 투자란 기조 하 안전인력 강화의 명목으로 지능형 CCTV, AI 등을 현장에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종합대책은 △소규모 사업장 지원 금액 대폭 확대 및 중소사업장의 위험관리 역량강화를 위한 스마트 안전장비, AI기술 확산 △이주노동자 중대 사고재해 발생 사업장에 대한 3년간의 고용 제한 △특수고용노동자의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강화, 이륜차 교통위반 집중단속 및 단속시설 확충 △도급계약 시 원청의 의무 강화, 건설현장 불법하도급 합동단속 △원하청 산업안전보건위원회 확대 및 노동자,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의 작업중지권 요구권 확대 △반복되는 중대재해 사업장에 대한 과징금 등의 제재 강화 등을 제시하고 있다.

     

    09.01 기재부 공공기관 안전관리 강화방안 중

     

    이번 종합대책은, 특수고용이나 플랫폼노동 · 다단계 원하청 구조 · 고용허가제 등 공고한 착취 구조는 건드리지 않는다. 종합대책은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산업안전보건법 적용’을 논하지만, 원청에 책임을 부여하겠다는 문구는 없다. 이주노동자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의 이주노동자 고용을 3년간 제한하겠다지만, 사업장 이동의 자유조차 가로막는 현대판 노예제 고용허가제 폐지에 관한 이야기도, 농어업 등 이주노동자 다수 사업장의 노동시간 상한 규제에 관한 이야기도 없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 노동재해에 취약한 집단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한편, 안전을 ‘경영평가’와 연결하는 기조, AI나 CCTV 도입을 효율적 안전과 연결하는 기조 등은 기재부 안과 종합대책에서 공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안전이 경영평가와 결부되었을 때 노동재해 은폐로 이어진다는 점, “스마트 안전”이 노동재해를 예방해 주지 않는다는 점은 이미 명확하다. 충분한 인력과 천천히 일할 수 있는 작업 속도가 노동재해 예방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스마트 안전”은 노동자 개개인의 행동 통제에 활용될 위험이 크다. 현재 도입된 스마트 안전장비 대부분은 “노동자의 ‘불안전 행동’을 최대한 보완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이는 현장에서 노동자의 불안전 행동을 보완하면서 동시에 노동자의 불안전 행동에 대한 과도한 집중을 야기”1)하고 있다. CCTV 역시 안전을 제고하기는커녕 사고 발생 후 책임소재를 따지기 위한 도구, 개별 노동자 감시·통제 도구로 활용될 위험이 크다. 아차사고2)를 포함해, 철도나 지하철에서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기관사 책임론을 강조해왔던 코레일 등의 사례가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들은 시민안전 운운하며 기관실 CCTV 설치 논의를 반복적으로 제기해오고 있다. 이번 종합대책에서 제시된 “이륜차의 교통위반 집중단속 및 단속시설 확충” 역시, 프로모션이나 건당 수수료로 ‘빨리빨리’를 강요하는 배달 자본의 행태를 건드리지 않고 개별 노동자 통제와 단속에 강조를 둔다는 점에서 맥락을 같이 한다.

    1) 일환경건강센터, 「산업안전보건분야 스마트 기술 도입의 윤리적·철학적 원칙 제안을 위한 연구,  2025.

    2) 사고가 발생할 뻔하였으나, 직접적인 인적·물적 피해 등이 발생하지 않은 사고

     

    노동자의 자유로운 작업중지권 행사를 보장하고 다단계 하도급을 철폐하라

     

    종합대책은 노동자 참여권의 일환으로 작업중지 요구권과 원하청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등을 제시하고 있다. 종합대책은 노동자가 직접 사업주에게 적극적으로 작업중지 또는 시정조치를 “요구”할 권리를 신설하고, 명예산업안전감독관에게도 작업중지 “요구권”을 부여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작업중지권은 “요구권”으로 한정될 수 없으며, 조항 신설만으로 작동하지도 않는다. 사업장 안전보건을 위해, 집단이건 개인이건 노동자는 작업중지권을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위험을 가장 잘 아는 노동자가 현장을 멈출 수 있어야 하고, 위험이 시정될 때까지 작업중지가 유지되어야 한다.

     

    그동안 자본은 노동자가 현장을 멈추면 수십억 손해를 본다고 호들갑 떨며 부당징계나 해고를 남발해 왔다. 금속노조 콘티넨탈지회 사례가 대표적이다. 2016년 7월, 세종시 부강공단에서 유해물질 티오비스(Thiobis)가 300리터 이상 유출된 사고에, 작업을 중지하고 노동자를 대피시킨 조남덕 콘티넨탈지회 지회장에 대해, 사측은 “사후적으로 피해가 없었다”며 3개월 정직이라는 부당징계를 내렸다. 2024년이 되어서야 대법원은 작업중지권 행사가 정당하다고 인정했다. 한국GM지부 사례도 유사하다. 2020년 생산라인 속도를 일방적으로 올린 회사에 맞서 비상정지 줄을 당기고 임원실 점거투쟁을 했던 한국GM 노동자 33명에 대해, 한국GM 자본은 해고를 포함한 징계를 자행했다. 항소심과 대법원은 자본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러한 자본의 기조는 여전할 것이다.

     

    또한,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위험을 외주화시키고 안전과 책임을 외부화시킨 결과를 낳았다는 건 수없이 확인했다. 하청이라서 위험작업을 거부하지 못한 사례, 현장 개선 의견이 반영되지 못한 사례 등은 너무 많다. 일례로 “성동조선, 현대중공업의 표준도급계약서(2021년)에 따르면, 하청노동자의 단체행동, 작업거부, 작업 태만으로 원청에 손해를 끼칠 경우 ‘즉시 계약 해지’를 할 수 있다. 또한 안전관리 등의 벌점 관리에도 중대재해나 산재 은폐로 인한 벌점뿐만 아니라 일반 안전사고(산재)와 작업 중지 건수에도 벌점을 매기고 있기도 하다. … 이는 하청 노동자에게 작업중지권을 사용하면 위험이 해결될 거라는 기대 대신 불이익이 따라올 거라는 불신을 가져오는 핵심적인 기제다.”3)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경상정비 업무를 하던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 역시 공공연한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작동한 결과였다. 고(故) 김충현과 그의 동료 노동자들은 원청 서부발전과 1차 하청 한전KPS의 작업 지시를 일방적으로 따라야 했다. 그들은 비계설치 및 해체 작업, 수상 태양광 등의 위험 작업을 거부하지 못했고, 설비개선 등 안전에 대한 요구는 묵살 당했다. Safety-Call 등 작업중지권 절차는 마련되어 있었으나, 현장에선 유명무실했다.4) 원청의 노동안전 책임을 은폐해 노동자의 죽음을 낳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는 철폐되어야 한다.

    3)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전국금속노동조합, 「금속노조 작업중지권 실태와 과제」, 2024.

    4) 태안화력 故 김충현 비정규직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를 앞둔” 김충현의 동료들이 말한다 – 현장에서 말하는 ‘김충현 협의체’의 과제」, 2025.08.07.

     

    노동부조차 고질적인 다단계 하도급 구조의 위험성을 인정하고 있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는 폐기해야 한다. (09.15. 노동부 종합대책 중)

     

    정부에 기대지 않고, 원청에 맞선 현장활동을 건설해 나가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사업장 안전보건관리 체계 구축 필요가 부각되고 있다. 현장에서 이를 만들 수 있는 핵심 주체는 노동조합이다. 조합원 상담, 의견수렴, 현장순회 등 일상적인 안전보건 활동이 뒷받침되어야 사업장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 즉,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있어야 노동재해를 예방할 수 있다. 한 건설노조 간부의 이야기는, 윤석열 정권의 노조탄압이 건설현장을 얼마나 위험하게 만들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노동조합의 현장 장악력이 있을 때, 건설노조는 위험 작업을 자체적으로 판단하고 거부할 수 있었다.

     

    “‘야기리 작업’이라고, 대형으로 조립된 거푸집을 꽂는 작업이 있는데 바람이 불면 위험해요. 노조가 힘이 있을 때는 ‘바람이 부니까 다음에 합시다’라고 할 수 있었어요. 타워크레인 기사도 작업을 멈추고 내려오기도 했어요. 현장 안전 통로가 제대로 안 되어 있으면 정비하기 전까지 작업하지 않겠다고 거부하기도 했고요.”

     

    한편, 현재의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명예산업안전감독관 등의 제도는 사업장 규모에 따른 제약이 존재한다. (일부 산업을 제외하고 상시노동자 100명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함)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나 노동조합이, 타 사업장 출입 권한 및 작업중지권 발휘 권한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노조의 활동이 자기 일터를 넘어 소규모 사업장 현장 노동자들의 상담과 일상 활동 지원을 포함한 활동으로 이어진다면, 노동재해 예방에 있어 AI나 CCTV보다 훨씬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노동자들은 자기 일터를 가장 잘 안다.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집단적 힘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다면, 정부 안에 얽매이지 않고 더 실질적이고 효율적인 조치를 마련해 나갈 수 있다. 이를테면 앞선 기재부 안은 “근로자 안전조치”를 말하며 2인 1조가 필요한 “위험” 작업에 대한 실태조사를 말하고 있다. 물론 혼자 일하도록 내몰리는 상황에서 2인 1조 근무는 매우 중요한 조치다. 동시에 일터의 “위험”이 2인 1조 근무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실태조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우리 현장이 2인 1조가 될 수 있을지 어떨지 마음 졸이는 대신, 직접 현장에서 느끼는 위험 요소와 개선 방향에 대해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야간근무나 교대근무 환경에서 적절한 인력 배치 및 충원 방안은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 고객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성희롱·성폭력과 같은 폭력을 “위험 작업”으로 포함할 때 사업주 책임은 무엇인가 등등. 그렇게 간과되어 온 “위험”을 발굴하고 개선하는 작업은, 정부의 관리·감독 강화가 대신할 수 없다. 결국 현장을 가장 잘 아는 노동자들의 집단적 힘으로 자기 일터를 통제하는 싸움을 벌이는 것, 원청에 맞선 계급투쟁을 확대하는 것이 노동재해를 예방하고 더 건강한 일터를 만들어가는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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