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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투쟁] 퀴어라고, 페미니스트라고, 사회주의자라고 티를 내는 이유
[편집자 주]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이 트랜스젠더에게는 생존의 문제가 됩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노동자계급을 성별 이분법으로 갈라치고 줄 세우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트랜스젠더의 투쟁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지키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지지해온 국제 성소수자 운동은 1998년 혐오범죄로 목숨을 잃은 리타 헤스터의 죽음을 계기로 매년 11월 20일을 ‘국제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Transgender Day of Remembrance, TDoR)’로 정하고 혐오와 차별에 희생당한 트랜스젠더들을 추모하고 트랜스젠더의 인권과 권리를 지지해 왔습니다.
한국에서도 국제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앞두고 16일 서울 이태원에서 TRANS PRIDE(트랜스 프라이드, 트랜스 자긍심)이란 슬로건을 외치며 트랜스젠더 추모 행진을 진행했습니다. 노동자를 갈라치는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트랜스젠더의 자긍심과 권리를 지지하며 사회주의를향한전진도 함께 행진했습니다. 퀴어 사회주의자로서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지지하며 발언한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이소연 동지의 발언문을 전합니다.
안녕하세요, 사회주의를향한전진에서 활동하는 소연입니다.
제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요즘은 어딜 가서든지 티를 내고 다닙니다. 내가 누구고 뭐에 관심 있고 어떻게 살고 싶고 기타 등등을 말합니다. 퀴어인 거, 페미니스트인 거, 사회주의자인 거 티 내다보면 의심하거나 피하거나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반짝이는 눈빛으로 이야기를 더 해줬으면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게 된 것은 트랜스젠더 인권활동가 이연수 덕분입니다.
이연수 활동가는 자신의 삶을 통해 증명했습니다. 트랜스젠더가 여기에 있었고 있고 있을 거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연수 활동가에게 이 세상과 활동에 대한 힘듦, 고민을 토로하면 쉴 땐 쉬어도, 그럼에도 계속 전진하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트랜스젠더로서, 여성으로서, 노동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더 열악한 상황에서 투쟁하는 사람들과 연대했습니다. 가만히 그녀의 말과 글을 읽다보면 뛰쳐나가 팔뚝질을 하게 됩니다. 그만큼 선동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아주 가끔은 저도 입을 다물고 내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얌전히 세상이 원하는 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대한민국 사회가 투쟁하라고 등 떠밉니다.
보수 기독교와 반동적인 정치세력이 결탁하여 좌파 교육 끝장내자, 성혁명 저지하자, 동성애 독재반대한다며 여기저기 외치고 있습니다. 딥페이크 성폭력 사건이 생겨도 제대로 된 문제 해결, 후속조치는 전무하고 학생들보고 sns에 사진 올리지 말라고 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 대표주자로 윤석열 정부는 4차산업혁명에 대응한다며 돈을 여기저기 씁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알맹이는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어떻게 서로를 받아들이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살 것인지 고민이 없습니다. 유망한 산업군에서 일할 수 있는 내국인 외국인 저렴한 노동자들을 양성하는 것이 이 사람들의 빈약한 상상입니다. 우리는 거기에 얼마나 뾰족한 대응을 하고 있습니까? 이런 것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됩니다.
이들을 지탱하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하나님, 보수, 이익, 애국, 자유, 안전을 들먹이며 우리의 곁을 지우고 있습니다. 특정 정치 성향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분법적 성별 규범, 그에 기반한 성별 분업, 시스젠더 이성애 규범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보수적인 가치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어떻게 우리는 돌파해야 할까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저는 사회주의 상상을 제안합니다. 개인의 자유 평등 박애를 보장한다는 자유주의와 누구든지 일하는 만큼 더 가져갈 수 있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믿음은 우리를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별하고 차별합니다. 이 믿음 속에서 우리는 정상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거나 비정상으로 낙인찍히게 됩니다. 진짜 행복한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요? 저는 누구나 태어난 그대로 사회의 돌봄을 받고 임금을 위한 노동으로 일생을 다 보내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살며 필요한 만큼만 가져가는 상상을 제안합니다. 머나먼 세상일수도 있겠습니다만, 상상은 계속 되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곁을 지키기 위해서는 말입니다.
우리의 곁을 잠시 떠난 트랜스젠더 동지들을 기리며 기억하고 추모합니다. 여기 있는 우리가 조금 더 열심히 싸워보겠습니다. 지켜봐주시고 응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