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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이주노동자들과의 계급적 단결을 버리고서 건설노동자의 생존권은 지켜지지 않는다지난 12월 말 건설노조 대구경북건설지부는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 앞에서 ‘불법고용 이주노동자 단속 촉구’ 총파업 투쟁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이어서 각 건설현장에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출근을 저지하기 위해 신분증을 검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작년 4월에도 경기지역에서는 건설노동자들이 “세금 한 푼 안내는 불법외국인 고용”이란 표현을 써가며 집회를 하기도 했다. 불법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노가다’로 불리며 공기단축, 비용절감이란 이름으로 목숨을 저당 잡혀 일해온 건설노동자들은 노동조합으로 단결해 건설현장을 바꿔왔다. 이런 건설노조를 눈엣가시로 여긴 윤석열정부는 ‘건폭’으로 몰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양회동 열사는 윤석열 정부의 탄압에 항의하며 산화했다. 건설자본은 정권의 탄압을 등에 업고 현장에서 건설노조 조합원들을 배제했다. 게다가 건설경기 또한 침체하여 일자리 자체가 줄어들었다. 이런 조건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혐오, 배제 정서가 더욱 강화됐다. 건설노조의 어려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건설노조가 정부와 자본에 당한 탄압과 배제를 이주노동자들에게 확대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정주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지키는 방법도 되지 못한다. 건설자본은 이주노동자 고용을 확대하여 건설현장을 저임금, 고위험, 장시간 노동이 횡행하던 시대로 되돌리려고 한다.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장 이동의 권리를 가로막아 노예노동을 강요하고, 거기서 벗어나려면 미등록이 될 것을 강요하는 고용허가제를 활용해서다. 이윤만을 추구하는 정권과 자본에게 과녁을 맞춰야 한다. 과녁을 빗나간 화살은 노동자계급의 대의와 단결을 헤친다. 철폐돼야 할 것은 고용허가제이지 그 피해자인 이주노동자가 아니다. 민주노조운동이 따라야 할 것은 정부와 자본이 행하는 배척과 혐오가 아니라 이주노동자와의 단결이다. 건설노동자들이 이주노동자의 손을 굳건히 부여잡고 고용허가제 폐지 투쟁에 나설 때 건설노동자들은 ‘건폭몰이’ 탄압하는 윤석열정부에 맞설 수 있는 무한한 계급적 정당성과 연대의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건설경기 침체에 따라 건설자본과 정부를 상대로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건설노동자의 생존권 보장과 불법다단계하도급 폐지를 요구하며 투쟁할 때 정주 건설노동자들의 생존권 또한 지켜질 것이다. 불법인 사람은 없다. 노동자 단결은 국적, 피부색, 체류자격에 따라 나눠질 수 없다. 이주노동자와 함께 단결하여 건설노조에 대한 탄압을 방어하고, 건설노동자 모두의 생존권, 기본권 쟁취 투쟁으로 나아가자. 2024년 1월 17일 사회주의를향한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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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여성파업 5] 스위스 여성 노동자 파업: 천천히 전진하기[편집자 주] 지난 12월 6일 열린 “여성파업 첫발떼기 토론회”를 비롯해, 2024년 3월 8일 여성파업을 조직하기 위한 활동이 여성파업 조직위원회 주도 아래 진행되고 있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노동자계급의 여성해방 운동을 건설하기 위한 여성파업 시도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며, 이 운동의 현황과 과제, 전망을 짚어 보기 위해 세계 여러 나라의 여성파업 사례를 돌아보고자 한다. 1975년 아이슬란드 여성파업에서 시작해 지난 십수 년 사이에 폴란드, 스페인, 아일랜드, 스위스, 아르헨티나 등 곳곳에서 여성파업이 일어났다. 각각의 사례는 그 자체로 세계 여성 노동자의 현실과 투쟁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넓혀 주기에 충분하다. 또한 여성파업의 양상과 결과, 다양한 쟁점을 훑어보면 우리의 과제에 대한 인식도 더 풍부하게 채워 갈 수 있을 것이다. 2023년, 6월 14일에 스위스에서는 여성 노동자와 페미니스트들이 대규모 파업을 벌였다. 주된 요구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이었다. 이날 스위스 곳곳에서 동시다발로 이루어진 파업으로 스위스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여성 노동자들의 대규모 파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스위스에서는 1972년이 되어서야 여성들의 참정권을 보장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급격한 발전이다. 다른 서구 국가들에 비해 비교적 늦게 여성 참정권이 도입된 이유는 스위스의 정치 체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스위스는 지방 정부의 권한이 다른 중앙집권 국가보다 강하고, 직접 민주주의 제도로 인해 지역 주민의 정치적 결정권이 행사하는 영향력의 범위가 다른 대의 민주주의 제도 국가보다 훨씬 넓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적 결정권은 1972년까지만 해도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직접 민주주의 제도라는 진보적인 정치 형태를 가졌고, 세계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발달된 나라 중의 하나이며, 유럽 지역에서 중립적인 정치노선으로 금융 자본의 요충지로 활용되고 있는 스위스에서 여성의 참정권이 1972년에 생겼다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다. 1971년, 여성 참정권을 얻다 그동안 스위스 여성들이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다. 1868년, 취리히(Zurich)주에서 여성들이 주 헌법 개정 투표에 참여하기 위해 투표권을 요구했다. 그로부터 18년 뒤, 제네바(Geneva)주에 거주한 여권 운동가 마리 괴그-푸슐랭(Marie Goegg-Pouchoulin)의 주도로 여성들이 청원서를 연방의회에 제출했다. 이후 여성의 참정권을 요구하는 다양한 조직이 등장했다. 1893년, 여성노동자협회(Working Women Association)와 여성권리보호협회(Women’s Rights Protection Association)와 같은 단체가 생겨났다. 1904년, 사회민주당이 최초로 당 강령에 여성 참정권에 대한 내용을 포함했으며 1909년, 몇 개의 단체들이 모여 스위스여성참정권협회(Swiss Association for Women’s Suffrage)를 조직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 11월 12일부터 14일 동안 스위스 총파업이 일어났다. 전쟁에 동원된 22만 명의 군인과 산업 노동자들이 전쟁으로 인해 치솟은 물가에 비해 낮은 임금으로 삶이 어려워지자 파업에 나섰다. 이 총파업의 요구안에는 여성의 참정권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1919년에 스위스 하원 의회가 연방평의회에 제출한 법안도, 1929년에 거의 25만 명이 제기한 청원도 모두 실패했다. =1929년 여성 참정권 청원서 제출. 출처 sozialarchiv.ch 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에 사회 보장의 책임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일어남과 동시에 여성 참정권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여론이 나타났다. 1959년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려는 첫 번째 연방 국민투표에서 남성 유권자의 66.9%가 반대해 부결되었다. 제네바주, 뉴샤텔(Neuchâtel)주, 보(Vaud)주에서만 찬성이 나타났다. 1971년 2월 7일, 남성 유권자의 65.7%가 스위스 여성에게 남성과 동일한 정치적 권리를 부여하는 연방헌법 개정에 투표했다. 이렇듯 유럽 국가에서 보기 드물게 여성에게 참정권이 늦게 부여된 이유는 앞서 언급한 정치 체제에 기인한다. 스위스는 지역 행정 구역이 주(칸톤, 상급 자치단체), 코뮌(커뮤니티, 하급 자치단체)으로 나뉜다. 이런 체제에서 남성 유권자들의 과반이 찬성한 주가 과반이 되어야 여성이 참정권을 획득할 수 있었다. 주변 국가의 여성 참정권 인정(스위스와 비교했을 때, 독일은 53년 전, 오스트리아는 52년 전, 프랑스는 27년 전, 이탈리아는 26년 전에 여성 참정권을 인정했다) 이후 한참 뒤에 쟁취한 스위스 여성들의 참정권이었다. 1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스위스 민중과 노동자들이 투쟁해 온 여성 참정권은 이들의 정치적 참여에 대한 의식 수준을 기르는 자양분이 되었다. 1991년, 스위스 최초 대규모 여성파업 이러한 맥락을 바탕으로 1981년 한 해 동안 스위스에서 4번의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이 해에 있었던 두 번째 투표가 6월 14일에 실시된 성평등에 대한 헌법 수정에 관한 투표다. 이 헌법은 여성과 남성 사이의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고자 했다. 특히, 4조에 있는 ‘일반적 평등 조항’ 안에 ‘남녀동권조항’에 관한 내용을 2항에 도입했다. 이 내용에는 남녀동등지위, 남녀의 실질적 평등의 실현, 동일 임금이 명시되었다[이 헌법 규정을 근거로 1995년 연방남녀동등지위법(Gleichstellungsgesetz, GlG. 영문으로는 Gender Equality Act)이 제정되고 1996년에 실행되면서 스위스 내에 남녀의 실질적 평등을 지향하는 법 정책이 확고해지기도 했다].1) 이 헌법이 도입된 지 정확히 10년 뒤인 1991년 6월 14일, 약 50만 명의 스위스 여성과 남성이 ‘Wenn Frau will, steht alles still(여성이 멈추면 모든 것이 멈춘다)’라는 슬로건 아래 파업에 돌입했다. 이 파업의 주요 요구 사항은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이었다. 1) 신옥주(2009). <스위스의 남녀평등실현법제 고찰>, 《토지공법연구》 제44집, 2009.05. =1991 파업 포스터(출처 : blog.nationalmuseum.ch) 스위스 최초 대규모 여성파업이 조직되기 위한 시작은 196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성파업 조직에 큰 기여를 했던 크리스티안 브루너(Christiane Brunner)가 공동으로 창립한 여성해방운동(Mouvement de libération des femmes, MLF)은 스위스 내에 프랑스어권 지역에서 만들어진 조직이며, 독일어권 지역(FBB), 이탈리아어권 지역(MFT) 조직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MLF는 여성 억압에 대해 자본주의 사회의 해체 자체만으로 해결되지 않을 근본적인 억압으로 보고 있었다. 1969년 2월 1일, 취리히 참정권 연합(Zurich Suffragette’s Union)은 1959년 여성 참정권을 위한 첫 번째 연방투표가 패배한 것에 항의하기 위해 촛불 집회를 열었다. 이에 MLF는 부르주아 질서에 맞서기 위해 성적인 도구와 가사 도구를 사용한 연극적인 효과로 이 ‘평화로운’ 집회에 소란을 더하며 강경한 입장을 표현했다. 이들이 1969년에 내건 구체적인 요구는 “가사 노동자에 대한 더 나은 직업적 대우, 여성 청소년에 동등한 기회 제공, 직장에서의 동등한 기회 제공,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어머니(돌봄제공자)를 위한 임금, 더 저렴하고 많은 어린이집, 어린이를 위한 주택 건설을 포함한 토지 이용 정책, 더 많은 유치원 설립, 결혼 및 이혼 법 개정, 파트타임 노동에 대한 더 나은 사회적 혜택”이다. MLF는 1971년 자발적인 임신중지 비범죄화에 대한 연방 대중 발의를 위한 서명 수집을 조직했고, 1975년에 있었던 4차 스위스 여성회의(Schweizerischer Frauenkongress)와 병행해 자발적인 임신중지 비범죄화, 여성의 동성애, 가사 노동 임금, 여성 수감자, 이주민 문제에 관한 행사를 개최했다. 이들은 창립 20주년을 맞아 1989년에 해산하게 되었다. 1991년은 앞서 언급했던 1981년에 있었던 성평등에 관한 헌법 수정 이후 10년이 지난 상황이었다. 또한 참정권을 얻은 지 20주년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헌법에 명시된 성평등에 관한 구체적인 법률은 마련되지 않았고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는 여전히 뚜렷했다. 특히, 발레 드 주(Vallée de Joux) 지역의 시계 노동자들은 업계 내 지속되는 불평등한 임금에 분노했다. 지역 SMUV(Schweizerischer Metall- und Uhrenarbeiter Verband, 스위스금속및시계노동자연합) 소속 조합원이었던 크리스티안 브루너는 여성운동과 노동운동에 기반을 둔 다른 조합원들과 함께 여성파업을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이들의 요구 사항은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사회보험법에 따른 평등, 차별과 성희롱 종식”이었다. 이 파업은 1918년 스위스 총파업 이후로 두 번째의 대규모 파업이었다. =1991년 6월 14일, 스위스 여성파업의 날 베른(Bern) 주 (출처 : blog.nationalmuseum.ch) 전국에서 약 50만 명의 여성이 파업에 동참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파업보다 상상력과 결의를 통해 불만을 표출하고 연대를 나타내는 새로운 방법을 시도했다. 자주색과 보라색으로 차려입고, 다양한 시위, 행진, 행사에 찾아갔다. 또한 빗자루, 대걸레, 세탁 바구니 등 가사 도구를 창문에 걸어 놓아 집 안의 여성이 파업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학교를 다니는 여성 청소년들도 교실에서 평등에 관해 토론하거나 미래를 위한 파업의 의미를 숙고했다. 이 날은 스위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연대와 인식의 날이 되었다. 사회보장제도에서 배제되는 어머니나 가사 노동자에 대한 연대, 파업의 참여에서 배제되는 취약한 위치의 외국인 여성 노동자에 대한 연대, 보복을 두려워하며 파업 참여에 주저하는 여성에 대한 연대가 이뤄졌다. 이러한 연대는 공적인 그리고 사적인 영역에서 여성들이 마주하는 불이익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증가시키고 여성 사이의 연대감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2) 2) Dan Gallin (1991), Women’s Strike in Switzerland. Agenda: Empowering Women for Gender Equity, 11, 28–29. 스위스의 젠더 역사학자 엘리자베스 조리스(Elisabeth Joris)는 1991년 여성파업이 처음에는 노동조합에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제안이었다고 봤다. 그 이유로 파업이라는 개념 자체가 유급 노동과 연결되어 있는 반면에 여성들은 매우 다양한 환경에서 일했고, 급여를 받지 않고 일하는 경우도 있는 점을 꼽았다. 또한, 전통적인 파업과 달리 유급 노동 영역 밖의 노동자들도 참여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분권적으로 조직되었기 때문이라고 봤다. 1993년 3월 연방의회 선거에서 사회민주당 후보였던 크리스티안 브루너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우파 정치인들은 사회민주당의 남성 후보(프란시스 매티, Francis Matthey)를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순식간에 국회 앞 광장에 많은 여성이 몰려들어 와 항의했고. 새로이 조직된 선거에서 루스 드레이퍼스(Ruth Dreifuss)와 크리스티안 브루너가 사회민주당의 후보로 등록했다. 두 명의 여성이 공식 선거에 오른 것이 처음이었고, 1993년에 루스 드레이퍼스가 연방의회의원으로 당선된다. 이후 그는 1999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연방 대통령으로 선출된 최초의 여성 정치인이 되었다. 여성 정치인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축하할 만한 일이었지만, 여성 노동자계급의 요구인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은 여전히 도입되지 못했다. 여성파업의 두 번째 영향으로 1995년에 연방남녀동등지위법(GIG)이 연방의회를 통과했다. 이 법은 1996년 7월 1일부로 발효되었다. 여성과 남성 사이에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보장하며 고용 관계에서 여성과 남성 사이의 어떠한 형태의 차별도 금지하는 것이다. 이 법은 젠더평등국(Eidgenössische Büro für die Gleichstellung von Frau und Mann, EBG) 설립을 명시해, 스위스 연방 차원에서 법률, 직장생활, 가족, 교육, 정치 및 사회를 포함한 모든 삶의 영역에서 여성과 남성의 평등을 장려하고 성평등과 가정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직장 내 성희롱도 금지되었고, 피해자의 입증 책임을 줄이는 것도 명시되었다. 2002년까지 유지되었던 현행법 상 합법적인 임신중지의 범위는 산모의 건강이 위험한 경우뿐이었다. 2002년 6월 2일, 유권자의 72% 이상이 임신 첫 12주 내 임신중지 비범죄화에 찬성했다. 낙태죄 폐지 국민투표가 발의되고 통과되기까지 3번의 고비가 있었다. 1977년 9월에 임신중지를 합법화하는 헌법 개정안이 국민투표로 진행되었지만 거의 3%p 차이로 부결되었다. 1978년과 1985년에는 임신중지를 더 어렵게 만들기 위한 헌법 개정에 대한 국민투표를 했는데, 다행히 큰 차이로 부결되었다. 1991년 여성파업의 요구안에 정확히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 파업을 통해 여성 노동자들이 경험하는 다양한 부정의에 대해서 남성 노동자뿐만 아니라 다른 정체성을 공유하는 노동자들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공감은 임신중지 합법화를 위한 국민투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019년, 스위스 여성파업 30주년과 현재 =2019년 6월 14일 바젤슈타트(Basel-Stadt) 주의 중심지 바젤(Basel)의 한 빌딩에 투사된 사진(출처 : X @angelacarlucci) 2019년 6월 14일은 1991년 첫 대규모 여성파업이 일어난 지 28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번 파업의 슬로건은 “임금, 시간, 존중(여성 노동에 대한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재평가, 돌봄제공자에게 더 많은 시간과 임금, 직장에서 성차별이 아닌 존중)”이었고, 50만 명 이상이 파업에 참여했다. 파업을 조직하고 참여한 여성들은 동일 임금, 무급 돌봄 노동에 대한 인정, 성적/육체적 괴롭힘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는 법, 정부 대표성을 국가의 주요 지방자치단체(주 정부)에 요구했다. 2019년 당시 스위스 여성 노동자들의 상황에 대해 요약한 글에 따르면, 세계경제포럼의 유사한 노동에 대한 임금 평등 부문에서 세계 44위를 차지했다.3) 2019년 6월, 유니세프 연구에서는 스위스의 ‘가족 친화적 정책(양육자의 유급휴가, 3세 미만 / 3세 이상 8세 미만 아동보호 등록률)’이 유럽에서 최악으로 나타났다.4) 이런 현실은 스위스 여성 노동자들이 파업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파업에 참여한 여성들은 독일어로 ‘여성파업’을 의미하는 #Frauenstreik, 프랑스어로 #GrèvedesFemmes 라는 해시태그를 사용하며 온라인으로도 조직되었다. 3) WEF(World Economic Forum), The Global Gender Gap Report 2018, p.261 4) UNICEF Office of Research, Are the world’s richest countries family friendly?, 2019, p.6 스위스의 수도 베른에서는 최대 4만 명의 참가자가 의회 건물 앞으로 모여들었다. 여러 도시와 마을에서는 공식적으로 파업이 시작되었음을 알리기 위해 오전 11시에 교회 종소리를 울렸다. 로잔[보(Vaud) 주의 주도]에서는 여성들이 밤에 모여 브래지어와 넥타이 같은 물건을 상징적으로 불태웠고, 취리히에서는 시위대가 시내 중심가에서 차량 이동을 막아섰다. 제네바에서는 약 1만 2,000명이 참여했다. 스위스 의회는 15분 동안 회의를 중단했고, 파업 참여자들은 남성 노동자들과의 20% 임금 격차를 반영하도록 오후 15시 24분에 일을 마치도록 요구했다. 이러한 여성파업의 긍정적인 결과로 2019년 10월 20일에 치러진 연방선거(연방의회를 구성한 7명의 의원을 뽑는 선거는 같은 해 12월 11일에 치러짐)에서 여성이 하원의 42%를 차지했다. 이 총선에서 여성 후보자 수가 1,875명으로 전체 후보자의 40%였다. 이때 총선에서 녹색당, 녹색자유당이 가장 강세를 보였는데, 각각 55%, 40%가 여성 후보자였다. 여성파업을 통해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이 증가했음을 알 수 있는 사건이었다. 2023년, 가부장적 자본주의에 맞서는 페미니스트 파업 <2023 페미니스트 파업 요구 사항> 업무 강화 없이 임금을 유지하며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노동조건 개선. 여성이 주로 고용되는 부문의 최저임금과 임금 인상 포함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보장. AHV(Alters- und Hinterlassenenversicherung, 연방 노령/유족 보험)의 강화와 민영화된 연금제도 폐지/공적연금 강화 : 퇴직연령 단축 및 돌봄 노동을 임금노동으로 인정 성, 가정 폭력에 맞서는 스위스 전역의 체계적인 조치 1인 자녀 당 최소 1년 동안 각 부모의 100% 유급 육아휴직 민간 건강보험 폐지, 재생산권 보장(생식 및 성 건강비용 포함) 인종, 국적, 성별 정체성 및 성적 지향, 장애, 몸매 조롱에 대한 차별 철폐 페미니스트 망명 및 거주 허가 기후 및 환경에 대한 국가 행동 계획 및 조치 교육 분야에서 교차성 페미니즘 도입 신분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헌법에 명시된 임신중지 권리 보장 =2023년 페미니스트 파업 (출처 : 14juni.ch) 30만 명이 넘는 여성 노동자가 거리로 나왔다. 2019년 대규모 여성 파업 이후로, 2021년 2주의 유급 출산휴가 도입과 동성혼 법제화(2007년 ‘동성간 시민결합’ 이후 혼인이 가능해짐) 등의 중요한 변화가 있었으나, 노동계급 여성, LGBTQ+ 등의 민중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2년 여성 노동자의 퇴직 연령을 64세에서 65세로 높이는 개혁이 채택되었고, 최저임금이 부족해 돌봄, 소매업 등 불안정하고 저평가된 노동을 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삶은 더 어려워져 갔다. 식품, 에너지, 주거 비용, 민간 의료보험비의 상승도 그에 한 몫을 하고 있었다. 한편, 보수주의자들이 임신중지를 더욱 어렵게 만들려고 하는 움직임으로 인해 여성에 대한 억압은 더해 갔다. 그들은 임신중지 전에 하루의 성찰 기간을 도입하고, 후기 임신중지를 금지하는 조항을 만들려고 했다. 다른 한편, 보육에 대한 공공 서비스가 부족했으며, 젠더 기반 폭력(직장 내 성희롱, 비동의 강간죄 도입 등)의 변화는 지지부진했다. =2023년 취리히에서의 페미니스트 파업 (출처 : feministischerstreikzuerich.ch) 이에 맞서기 위해 스위스 노동자계급은 ‘페미니스트 파업(여성, 남성, 논바이너리 등의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사용한 용어)’이라는 이름을 걸고 대규모 파업을 결의했다. 다음의 내용을 담은 행동은 스위스 일부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났다. 오전 10시 46분: 남성은 오전 8시부터 일하는 반면, 여성은 임금을 받지 못하고 출근 후 2시간 46분을 일한다. 오후 1시 33분: 이 시간부터 여성은 임금 불평등, 무급 돌봄 노동, 시간제 노동으로 인해 더 이상 소득이 없다. 오후 3시 24분: 이 시간부터 여성은 임금 불평등(남성 임금의 18%를 더 적게 받음) 때문에 무급으로 일한다. 이번 파업을 ‘페미니스트 파업’이라고 명명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몇 가지 더 주목할 부분이 있다. 하나는 각 주마다 요구 사항이나 투쟁에 집중하는 부분이 조금씩 달랐던 점이다. 아르가우(Aargau)주의 경우에는 남성으로만 이뤄진 정부 위원회가 있고, 대의원회에서는 31%만 여성이 차지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또한, 폭력으로부터의 보호, 어린이 돌봄 시설, 난민 출신의 사람들에 대한 관심, 간호 노동자의 노동조건이 열악하다는 것을 드러냈다. 루체른(Lucerne)주에서는 주방용품 업체에서 일하는 25명의 여성 노동자가 동료들을 이끌고 고용주의 건물 출입을 막았다. 그들은 동일 임금, 무급 출장 시간, 연체 임금 지급, 현금 지급, 괴롭힘과 차별에 반대하며 항의했다. 그 결과, 회사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수용하기로 합의하고 노동조합과 협약을 체결했다. 베른(Bern)주의 한 개인 요양원의 여성 간병 노동자들은 점심시간을 연장시키고, 그들의 요구 사항을 고용주에게 제출했다. 이들은 더 많은 고용과 존중을 위해 투쟁했다. 또 다른 마을에서는 여성 간병 노동자 50명이 동시에 오후에 퇴근하여 파업에 참여했다. 소매업 여성 노동자들도 스위스 여러 도시에서 시위를 벌였는데, 가장 큰 규모는 로잔(Lausanne)과 제네바의 주요 쇼핑 지역에서 나타났다. 이들은 소매업에서의 더 나은 임금, 정규직 고용, 일과 삶의 균형 개선을 위해 투쟁했다. 보주에서는 제약 노동자들이 더 나은 조건을 위해 싸우고 있으며, 로잔과 루트리(Lutry)의 노동자들은 낮은 임금과 불공정한 노동조건에 대한 단체 노동협약을 요구하기 위해 파업에 돌입했다. 그들의 직업에는 큰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마땅히 받아야 할 인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편, 우편 및 물류 여성 노동자들은 노동조합과 함께 전국에서 성평등 및 동일 임금을 위한 활동을 벌였다. 또 다른 하나는 FLINTAQ5) 에 대한 차별과 요구를 직접적으로 명시한 것이다. 2023년 페미니스트 여성 파업 선언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는 파트너가 있든 없든, 자녀가 있든 없든, FLINTAQ다. 우리는 건강하거나 아프며 신체적, 정신적 장애가 있든 없든 살아간다. 우리는 젋고, 어른이고, 늙었다. 우리는 성노동자다. 우리는 학생이자 연금 수급자다. 우리는 스위스나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우리는 이민자이자 난민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문화의 일부이고 서로 다른 기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임금 노동자, 자영업자 또는 실업자이다. (중략) FLINTAQ는 전 세계적으로 권위주의 정권, 전쟁, 환경 파괴의 첫 번째 희생자이다. 또한 그들은 자주 저항 운동의 최전선에 선다. 우리는 이러한 모든 투쟁에 연대하며, 모든 형태의 가부장제를 시급히 끝장내야 한다는 과제를 공유한다.” 페미니스트의 시각으로 다양한,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삶을 경유하는 여성/성소수자이자 노동자의 상황을 드러낸 것이다. 가부장적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권력과 위계에서 벗어나 여성/성소수자 민중의 억압을 그들의 위치에서 드러냈다는 것은 페미니스트 파업의 위력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5) “Frauen, Lesben, intergeschlechtliche, non-binäre, trans, agender und genderqueere Personen”의 약어로 여성, 레즈비언, 인터섹스,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에이젠더, 젠더퀴어를 의미한다. 취리히 지역의 페미니스트 파업 선언문을 보면, 여/성소수자 노동자들이 경험하는 차별과 억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중 일부를 살펴보면, “모든 차별의 공통점은 우리가 살고 있는 가부장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사회적 질서에서 비롯된다. 성장과 이윤 극대화는 자연 자원의 파괴 및 성차별적이고 인종적인 노동 분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즉, 수많은 FLINTAQ에 의한 무임금 및 낮은 임금의 돌봄 노동이 경제를 보조하는 것이다. 이 착취적인 노동 분업으로 남반구 국가의 FLINTAQ가 가장 고통받고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에서 불평등이 촉진되고 유지되는 것이다”고 밝힌다. 또한 기후 위기, 제도화되고 인종화된 성차별과 폭력, 퀴어/트랜스 폭력, 여성 신체에 대한 자본과 남성의 대상화, 성적 편견과 표준 등에 반대하는 입장도 담겼다. 파업을 통해 생산을 멈추고 노동자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투쟁에서 그 누구도 배제할 수 없다는 스위스 페미니스트 파업 조직, 참여자들의 의지를 볼 수 있다. 여성/성소수자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향하여 스위스 여성 참정권은 1972년에 도입되었고, 1981년에는 헌법상 성평등에 관한 조항을 만들었으며, 1991년 첫 대규모 여성파업이 나타났다. 오랜 시간을 들여 형성해 온 직접 민주주의 제도에 여성이 포함되고, 여성/성소수자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개진해 온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은 것이다. 스위스와 한국의 여성/소수자 노동자들이 경험하는 착취와 억압의 정도를 비교할 순 없으나, 여전히 견고한 가부장적 자본주의에 균열을 내기 위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조직하는 결의는 같다. 2019년과 2023년에 나타난 여성파업은 스위스 사회에 계속되는 임금 격차, 여성/성소수자에 대한 젠더 폭력, 차별과 낙인에 대해 투쟁해 왔다. 특히, 2023년 페미니스트 파업은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사회에서는 2015년 이후 페미니즘의 대중화가 나타나면서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성별분리주의와 신자유주의 전략을 채택한 입장이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모두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의 목적과 목표가 각각 달랐고 실천도 달랐다. 페미니스트가 무엇을 실천하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이 달랐고, 조직적인 백래시와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상황 때문에 페미니즘 대중화 이후의 변혁적인 움직임이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변화의 가능성은 언제나 찾아오기 마련이다. 이미 영영 페미니스트(2015년, 온라인에 만연한 남성중심주의 문화를 비판하며 만들어진 여성 전용 사이트 ‘메갈리아’의 등장, 2017년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2018년 미투운동으로 페미니즘 대중화와 수많은 페미니스트가 등장했다. 이에 1990년대에 활동했던 ‘영페미’보다 더 젊은 페미니스트를 칭하는 단어다.)들은 4B운동6)이라는 일종의 파업을 선언했다. 6) 비연애·비섹스·비혼·비출산을 의미하는 것으로, 페미니즘 대중화로 나타난 분리주의 페미니스트의 실천 전략이었다. 여성에게만 강요되며, 이성애 중심의 가족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임신·출산·양육을 개별 실천을 통해 거부함으로써 가부장제에 대항했다. 작년 5월 9일에 발간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31.1%로 38개 회원국 중 1위이다.7)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 이후, 안전한 임신중지를 보장하는 법안은 아직도 만들어지고 있지 않다. 여성가족부가 낸 ‘2021 여성폭력 실태조사’를 보면, 성인 여성 7,000명 중 과거 또는 현재의 배우자, 연인 등 친밀한 관계의 파트너로부터 신체적, 성적, 정서적, 경제적 폭력 및 통제 피해를 평생에 하나라도 경험한 비율은 약 16%다. 한국 성인 여성 10명 중 1명은 살면서 한 번 이상의 젠더 폭력 피해를 경험한 것이다. 성소수자 인권단체 다움이 2022년 5월 17일에 발간한 ‘청년 성소수자 사회적 욕구 및 실태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40%가 최근 1년 동안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트랜스젠더 가운데 차별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70%에 달한다. 7) OECD, “Joining Forces for Gender Equality : What is Holding Us Back?”, 2023.05.09. 여성/성소수자 노동자들이 살아가기에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는 시대다. 그럴수록,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억압과 착취를 규명하고 드러내고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스위스의 여성/페미니스트 파업이 보여 주는 것은 ‘여성(소수자)이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는 것이다. 또한 말 그대로 100년이 걸린다고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여성/성소수자 노동자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이지 않고, 임금으로 인정받지 못하며, 여/성소수자가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서로를 붙들고 살리고 있다. 몇 차례의 대규모 파업을 조직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러한 파업을 통해 친구, 동료, 지인들을 설득하고 참여를 유도하는 과정에서 변혁은 시작된다. 페미니즘의 전망은 이미 제시되어 있다. 그것은 가부장적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정치경제학적 위계를 타파하고 성에 기반한 수탈, 착취와 억압을 깨부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파업을 조직하고 진행하는 과정에 수많은 여성/성소수자이자 노동자계급이 참여할 때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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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여성뉴스 브리핑] 비상구 유도등의 사람 성별은 남자?1. 호주 보육 노동자, 번아웃과 저임금으로 사직 행렬 호주연합노조(UWU)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12개월 동안 퇴사한 노동자가 1명이라도 있는 곳이 약 1,000개의 보육 시설 중 95%였고, 3명인 곳은 80%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와 함께 퇴사한 일자리에 인원 충원이 쉽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유아교육 및 보육 노동자가 저임금과 과로로 더는 일할 수 없는 번아웃 상태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 노조와 정부가 전국적 차원의 임금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2년간 보육 노동자로 일하다가 저임금과 스트레스로 인해 퇴사한 트레이시 레이는 유아교육센터에서 일한 지 1년밖에 안 되었을 때 자신이 가장 고참 노동자란 사실을 알고 무척 놀랐다. 트레이시는 2년 전 졸업한 노동자였기 때문이다. “식당이나 슈퍼마켓에서 일하면 더 많은 임금을 받지만 노동 강도는 덜해요. 교실에 아이가 1명만 있어도 경계심을 늦출 수 없어요. 정신적, 육체적으로 스트레스가 크죠. 하지만 하는 일에 비해 임금은 엄청나게 불균형적이에요”라고 증언했다. 10년 동안 유아교육 노동자로 일해 온 아이리스 황은 인력 부족으로 아이에게 맞춤 교육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해 교육의 질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교육 프로그램 계획은 모든 어린이에게 중요합니다. 하지만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제대로 준비할 방법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뿐 아니라 조사에 참여한 보육 노동자의 3분의 2는 인력 부족이 아동의 복지나 안전에 영향을 끼치고, 거의 4분의 1은 아동의 안전이 ‘위험에 처해 있다’고 답했다. 정부는 보육 자격증을 발급하는 교육과정을 무료로 운영하고 있지만, 지원자는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 연합노조 헬렌 기븐스는 “조기 교육에 위기가 닥쳤다. 연방정부는 오랫동안 저평가된 보육 노동자의 임금을 올려라”며 보육 노동자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25%의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협상은 아직 타결되지 않았다. <참조 기사> https://www.sbs.com.au/language/chinese/en/article/there-is-a-crisis-in-early-education-why-are-educators-leaving-the-sector/q99uk8ueb 2. 눌러도 울리지 않는 비상벨...공중화장실 비상벨 실태 경기도가 작년 10월 31일부터 11월 27일까지 도내 각 시·군의 공중화장실 조례 개정 여부와 공중화장실에 설치된 비상벨 정상 작동 여부, 유지관리 실태 등을 중점적으로 점검한 결과 239건의 부적합 사례가 적발됐다. 현장 점검에서 136개 중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사례가 26건이나 확인됐다. 이 중 전원이 꺼져 있거나 도내 경찰관서가 아닌 전북지방경찰청으로 연결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도 나타났다. 음성인식이 가능한 비상벨을 대상으로 소음측정기를 이용해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라는 외침에 작동한 데시벨을 측정한 결과 기차 통과 시 나는 철도변의 소리 크기의 100데시벨이 넘었는데도 작동하지 않거나 100데시벨 초과에서만 작동한 경우가 총 45건이나 나왔다. 또한 어떤 곳은 비상벨이 여성 화장실에만 설치된 경우도 있었다. 경찰청이 발표한 ‘범죄 유형별 공중화장실 범죄 발생 현황’에 따르면 최근 5년(2018~2022년) 동안 공중화장실에서 발생한 범죄는 총 1만 9,286건에 달한다. 이 중 성범죄, 스토킹, 불법 촬영, 마약 등이 포함된 기타 범죄가 6,182건(32.05%)으로 가장 많았다. 정부는 공중화장실에서 발생하는 범죄를 막기 위해 ‘공중화장실 내 비상벨 설치 의무화’ 제도를 작년 7월부터 시행하고 있지만 무용지물에 그치고 있다. <참조 기사> https://www.hani.co.kr/arti/area/capital/1123988.html 3. 비상구 유도등에 ‘치마 입은 여성’ 추가? 여전히 뿌리 깊은 성역할 고정관념 정부가 비상구 표지판에 치마 입은 여성 도안을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지난 12일 복수의 매체는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를 인용, “시대 변화에 맞춰 52년간 남성이 독점해 왔던 비상구 그림에 여성 그림을 추가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해당 소식이 전해진 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는 비판이 이어졌다. “비상구 그림은 남자가 아니라 사람 표시다”, “‘여자=치마’라고 생각하는 건 시대 역행이다”, “국민 혈세 낭비하지 마라” 등 “여성들도 원한 적 없는 뜬금없는 논란”이라는 지적이 파다했다. 한 여성단체 관계자는 온라인 공간에 퍼진 여성 상징 유도등 도안에 대해 “오히려 성 고정관념을 고착화하는 그림”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가슴을 부각하고 짧은 치마로 옷차림을 묘사하는 등 ‘여성다움’에 대한 뿌리 깊은 고정관념을 정부가 앞장서 확대 재생산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다. 논란이 일파만파 번지자 행안부와 소방청은 이날 공동 설명자료를 내고 “비상구 유도등 도안 변경은 구체적 사항이 결정된 바 없다”며 언론에 보도된 여성 상징 유도등 픽토그램도 “정부 시안이 아니며 임의로 제시된 것”이라고 일축했다. <참조 기사>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1132020001 4. 미국, 성소수자 혐오법안 증가로 직장 내 차별 가중 우려 미국에서 갈수록 점점 더 많은 기업이 성소수자 인권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프라이드의 달(pride month)’을 기념하고 있다. 하지만 채용 웹사이트 인디드(Indeed)가 최근 발표한 성소수자(LGBTQ+) 정규직 노동자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성소수자 노동자들은 성소수자 혐오법안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면서 오히려 지금보다 일터의 노동권 차별과 침해가 가중될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에 답한 성소수자 노동자의 3분의 2는 개악법으로 인해 채용 기회에서부터 차별당할 것이라 우려했다. 응답자의 4분의 3 이상이 개악법이 있는 주에서는 기업들이 채용 공고를 망설일 것이라 했고, 절반 이상은 그런 주에서는 절대 입사 지원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이미 만연한 일터의 차별도 조사 결과 확인되었다. 응답자의 60%는 직장 내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으로 승진에서 탈락했다고 했다. 비슷한 비율로 성과개선계획 대상(저성과자)이 되었다. 절반 이상의 응답자는 비슷한 경력과 능력의 이성애자나 시스젠더인 동료 노동자보다 임금이 적다고 답했다. 복지제도도 차별이 심한데, 절반 이상이 성소수자 친화적 의료서비스, 성별 확정 치료에 대한 의료보험 적용, 가족계획 지원 등 복지혜택이 중요하다고 봤지만 고용주가 이런 혜택을 평등하게 제공하는 경우는 4분의 1도 되지 않았다. 트랜스젠더 노동자의 4분의 3이 복지혜택이 없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성소수자 노동자가 겪는 일터의 차별은 트랜스젠더일수록, 특히 여성이고, 유색인종 트랜스젠더일수록 심하다. ‘2022기업평등지수(the Human Rights Campaign’s 2022 Corporate Equality Index)에 따르면 포춘 500대 기업 3분의 1 이상이 여전히 트랜스젠더 노동자에게 기업이 제공하는 포괄적 혜택을 제공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소수자 노동자들은 인권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일터의 평등한 대우를 제공하지 않는 핑크워싱 기업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참조 기사> https://theconversation.com/lgbtq-workers-want-more-than-just-pride-flags-in-june-215745 5. ‘양성평등’ 구호만 난무하는 지자체 성평등 정책 인천 10개 기초자치단체 중 8곳이 ‘여성친화도시’로 지정돼 관련 사업을 추진하지만 ‘양성평등 실현’, ‘여성 역량 강화’ 등 제도의 취지를 살리기보다 ‘형식적 구색 맞추기’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가령 인천 기초단체 대부분이 ‘여성 안심 귀갓길’ 정책을 여성친화도시 특화사업으로 홍보했지만, 이는 여성친화도시가 아닌 기초단체도 시행 중인 사업인 데다가 경찰 예산으로 시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별과 상관없이 청년을 대상으로 창업 공간을 지원하는 ‘청년창업지원센터 운영’을 여성친화도시 사업에 포함한 기초단체도 많았다. 여성가족부가 지정한 인천지역 여성친화도시는 10개 기초단체 중 강화군·옹진군을 제외한 8곳이다. 여성친화도시는 2009년 여성가족부가 지역정책 전반에 성인지적 관점을 적용하는 기초단체를 선정하고 사업 실적과 성과를 점검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여성친화도시로 선정된 기초단체는 ▲성평등 정책 추진 기반 구축 ▲여성 경제사회 참여 확대 ▲지역사회 안전 증진 ▲가족친화 돌봄환경 조성 ▲여성 지역사회 활동 역량 강화 등을 5대 목표로 삼고 세부 사업을 이행해야 한다. 여성의 일과 삶을 아우르는 지역 생활 전반에서 다양한 차별이 일어나고 있지만, 관련 사례를 발굴하고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미흡하기만 하다. 기초단체들이 여성가족부가 인증하는 ‘여성친화도시’라는 타이틀을 얻는 데만 혈안일 뿐, 실제 특화사업은 ‘여성’의 노동권, 교육권 등 기본적인 권리 신장을 위한 내용으로 행정력을 발동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참조 기사> 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20240115010001667 6. 장시간 여성 노동자 가정과 직장 간 갈등 경험 높아 지난 3일 국제직업환경보건학회지에 ‘장시간 일하는 여성 노동자는 가정과 직장 간 갈등이 있을 때 우울증 위험이 더 커진다’는 제목의 논문이 게재됐다. 야간교대 근무를 하지 않는 정규직 임금노동자 2만 384명(남성 1만 189명, 여성 1만 195명)을 표본으로 삼았다. 가정과 직장 간 갈등 경험 비율은 남성(43.1%), 여성(49.5%) 모두 40%를 웃돌았다. 주 52시간 초과 장시간 노동은 남녀 모두에게 우울증 발생 가능성을 높였다. 주 52시간 초과 그룹에서 남성, 여성의 우울증 비율은 각각 38%, 36.1%였다. 주 52시간 이하 그룹에선 각각 28.2%, 27.7%로 낮아졌다. 다만 장시간 노동을 하는 남녀 노동자 중 가정과 직장 간 갈등으로 인해 우울증 발생 위험이 더 커진 것은 여성 노동자였다. 가정과 직장 간 갈등 수준이 높은 여성 집단에서는 장시간 일한 여성 노동자가 그렇지 않은 여성 노동자보다 우울증 발병 가능성이 35% 더 높게 나타났다. <참조 기사> https://www.khan.co.kr/national/labor/article/202401101526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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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식민주의로 이어지는 거대한 그린워싱, 탄소배출권거래제UAE 국영석유회사 정유화학단지 사진: Getty Images 탄소배출권거래제는 정부가 기업에게 온실가스 배출 할당량을 부여하고 그 안에서 배출권을 매매할 수 있게 하는 제도로, 온실가스를 감축해 배출권이 남는 기업은 배출권이 필요한 기업에게 이를 판매할 수 있다. 배출권거래제의 전 세계적 확산과 고도화 속에서, 민간이 자발적으로 탄소감축 프로젝트에 참여해 탄소배출권을 만들어 거래하는 시장, 즉 자발적 탄소시장(VCM) 및 관련 파생금융상품도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탄소배출권거래제는 기후위기 해결에 무용할 뿐 아니라, 녹색식민주의로 이어지고 있다. 아랍에미리트가 탄소배출 ‘면죄부’로 사들인 녹지, 남한 면적의 2.4배 2023년 9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소재 기업 ‘블루카본(Blue Carbon)’은 아프리카 5개국과 2,450만 헥타르(ha) 규모 삼림 탄소배출권 협약을 맺었다. 협약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블루카본은 협약체결국에 막대한 투자금을 지원하고, 각국은 협약 대상에 해당하는 자국의 산림을 보전한다. 블루카본은 파괴되지 않은 삼림의 탄소흡수량을 계산해 각국 정부로부터 탄소배출권을 발급받는다. 이 프로젝트는 라이베리아 전체 면적의 10%, 탄자니아, 잠비아, 짐바브웨의 20%에 달하는 삼림을 대상으로 하며, 이는 남한 면적(약 1,000만 헥타르) 2.4배에 달한다. 2022년 8월 설립된 블루카본은 개발도상국 삼림을 직접 매입하거나 각국 삼림보전사업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탄소배출권 사업을 추진해왔다. 아프리카 탄소 시장에 4억 5천만 달러 이상을 투자하기로 약속한 블루카본은 짐바브웨에만 이미 15억 달러를 "탄소배출권 사전 자금조달" 명목으로 지급했다. 이는 짐바브웨에서 가장 많은 지출을 차지하는 교육·아동보육 세출보다도 많은 액수다. 신생기업 블루카본의 막대한 자금력과 신속한 추진력의 배후에는 역설적으로 화석연료 자본이 존재한다. 블루카본 대표 셰이크 아흐메드 알막툼은 두바이 토후국을 통치하는 막툼 가문으로, 현 UAE 총리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의 친척이다. 막툼 가문은 190년간 UAE를 통치하며,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하는 화석연료 산업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셰이크 아흐메드 알막툼 자신부터가 중동, 남아시아, 서아프리카 등지에서 화석연료·인프라사업을 운영한다. 블루카본과 화석연료 자본 간의 밀접한 관계는, 블루카본의 배출권 사업이 UAE의 탄소배출 상쇄를 위한 것이라는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배출권거래제 아래, 탄소배출권을 구매한 기업은 구매량만큼 탄소배출을 줄인 셈이기 때문이다. 2021년 기준 아랍에미리트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억 3,700만 톤인데, 블루카본이 만들어내는 배출권은 최대 연 2억 5,000만 톤으로 예상된다. 블루카본이 만든 배출권을 UAE가 전부 사들이면, 아랍에미리트는 이론적으로는 ‘탄소중립’을 달성한다. 실제로 UAE는 2023년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COP28) 기간 동안, 의장국 지위를 활용해 삼림 탄소배출권 사업을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핵심 수단이라고 끊임없이 선전했다. COP28 의장단이 민간 탄소시장(자발적 탄소시장, voluntary carbon market)1) 확대를 위해 개최한 회담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 세계은행 총재, 미국 기후특사 등 고위 인사들은 자발적 탄소시장을 강력히 지지했다. COP28 종료 후 UAE는 탄자니아와 6개 국립공원 180만 헥타르에 달하는 삼림을 대상으로 동아프리카 최대 규모 토지기반 탄소배출권 사업계약을 체결했으며, 라이베리아 정부는 서아프리카 전체 산림 면적 10%에 해당하는 100만 헥타르 산림에 대한 독점권을 30년 동안 블루카본에 넘겼다. 케냐, 잠비아, 짐바브웨 정부도 이와 유사한 양자 협정을 체결하였다. 1) 민간이 탄소배출권을 만들어 거래하는 탄소시장. 탄소시장은 정부가 탄소배출 허용 상한을 정하고 탄소배출권을 할당하는 '규제시장'과 '자발적 시장'으로 구분된다. 한편, COP28은 산유국과 화석연료 자본의 공세 속에서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phase out)을 거부하는 후퇴로 끝났다. COP28에서 화석연료 자본을 철저히 대변해온 UAE는 향후 50년간 석유 생산을 멈추지 않을 예정이다. UAE 국영 에너지기업 ‘아부다비 국영석유회사(ADNOC)’는 2030년까지 석유 생산량을 올해보다 41%, 가스 생산량을 1/3 늘릴 계획이며, 이는 온실가스 배출량 40% 증가를 뜻한다. 화석연료 자본은 증산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을 상쇄하고자 대대적인 탄소배출권 사업을 벌이고 있다. 라이베리아 재무개발기획부 장관(왼쪽)과 블루카본 회장(오른쪽) 사진: Gulf News 탄소가격제, 기후위기 해결에 무용하다 탄소배출권거래제와 탄소세 등 탄소가격제의 핵심 논리는 기후변화로 인한 비용을 경제주체가 부담케하는 ‘내부화’로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탄소에 가격을 매기면 기업이 탄소배출 비용을 덜고자 탄소를 배출하는 생산 방식을 축소하고, 재생에너지를 비롯한 신기술을 도입할 것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배출권거래제는 기후위기 해결에 기여하지 못한다. 배출권거래제는 ‘상쇄배출’, 즉 배출권 구매나 온실가스 배출 상쇄로 인정되는 조치를 제도화해 기업에 온실가스 배출량 유지나 확대를 허용한다. 실제로 배출권거래제 도입 이후에도 온실가스 배출은 나날이 늘었으며 온실가스 감축에 필요한 자원은 오히려 배출권거래제 시스템 구축 그 자체에 낭비되고 있다. 상쇄배출권 시장을 겨냥한 인위적인 산림·습지 보호와 재조림 사업은 자연과 토지의 상품화, 지역 생태계 파괴, 지역 민중의 공동체적 삶 붕괴 등 심각한 부정적 파급효과를 낳을 수 있으며, 실제 그에 맞선 저항과 투쟁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 학계와 언론에 따르면, 배출권 사업이 창출하는 온실가스 감축 효과는 거의 없다. 자발적 탄소배출권 거래의 75%를 차지하는 탄소배출권 인증기관 ‘베라(Verra)’가 인증한 열대우림 보호사업 대부분이 온실가스 감축효과가 없다는 조사 결과들이 대표적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베라가 인증한 열대우림보호 사업 중 10% 이하만 산림벌채 감소로 이어졌으며, 90% 이상은 온실가스 감축효과가 거의 없다고 보도했다. 2022년 6월 케임브리지대학 연구진은, 베라가 더 많은 탄소배출권을 발급받기 위해 사업대상 산림의 파괴 위협을 평균 400%가량 부풀려왔다고 보고했다. 같은 해 독일 언론에 따르면 베라의 탄소배출권 중 94%가 실제 탄소배출 감축 효과가 없는 ‘팬텀 크레딧’인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다국적 석유기업인 셰브론이 베라로부터 구매한 탄소배출권 93%가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없으며, 반대로 42%는 환경이나 지역사회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연구결과가 확인되었다. 애플, 구찌 등 거대자본이 탄소배출권 시장에 투자한 막대한 자금은 그저 ‘면죄부’ 발급 비용이었던 셈이다. 배출권거래제의 대안으로 이야기되는 탄소세 역시 마찬가지다. 오염행위 자체에 대한 금지가 아니라, 오염행위에 가격을 붙이는 구상이라는 점에서 배출권거래제와 본질적으로 다르지도 않거니와, 이는 소득이 더 낮은 사람에게 더 많은 부담을 지우는 불공평한 시스템이다. 소득이 낮을수록 소득 대비 에너지요금 비중이 높아, 자본가 부유층과 노동자 민중 중 후자가 더 많은 비율을 탄소세로 납부하게 된다. 녹색식민주의의 도구, 탄소배출권 사업 블루카본 사례에서 드러나듯, 대자본이 주도하는 탄소배출권 사업은 기후위기 해결을 명목으로 개발도상국의 경제 종속을 강화하고 민중의 생존권을 파괴하는 ‘녹색식민주의’로 이어진다. 자발적 탄소시장의 본거지인 아마존에서는 탄소배출권 창출을 위한 열대우림 보호사업 상당수가 심각한 인권침해와 토지 분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페루 북서부 알토마요에서는 현지 주민 수천명이 디즈니의 자금 지원을 받는 열대우림 보호사업으로 삶의 터전을 잃었다. 디즈니, 마이크로소프트, 유나이티드항공 등은 이 사업으로 창출한 탄소배출권을 구입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상쇄했다. 팔레스타인에서 학살을 벌이는 이스라엘도 산림조성 사업을 통해 팔레스타인 지역을 체계적으로 점령해왔다. 준정부기구인 유대인민족기금(JNF)은 네게브 사막에 거주하는 베두인계 팔레스타인 거주지를 강제로 철거하고 국립공원을 조성하는 등, 식민주의 조림사업을 벌여왔으며 최근에는 이를 배출권 사업과 연계하고 있다. 블루카본의 행적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블루카본과 라이베리아 정부가 체결한 계약서 초안에 따르면, 블루카본은 지역사회와 개인 농장, 보호구역에 배정된 탄소배출권을 판매할 권리를 확보한다. 또한, 10년 동안 면세 혜택을 누리면서 해당 토지에서 나온 탄소배출권을 팔아서 얻은 수익금의 70%를 챙기게 된다. 나머지 30%는 라이베리아 정부의 몫이다. 이때 배출권 가격의 10%만큼 로열티가 발생하고, 그중 절반만이 지역사회에 돌아간다. 인구의 70%가 농업에 종사하는 라이베리아의 경우, 블루카본의 배출권 사업으로 인해 최소 백만 명 이상이 생계에 중대한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 탄소배출권 사업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아랍에미리트와 파트너십을 체결한 탄자니아는 국립공원 보전과 확장을 명분으로 국립공원 인근 거주민들을 폭압적으로 내쫓고 있다. 공권력을 동반한 강경한 퇴거 조치로 주민들은 주거지를 잃고 가축을 압수당하는 등 생존권을 극도로 침해받고 있으며, 탄자니아 당국과의 갈등이 심화된 일부 지역에서는 거주민을 대상으로 한 고문과 살해도 확인되고 있다. 2023년 5월에는 탄자니아의 아루샤 지역에서 국립공원 당국이 어부들을 보호구역에서 낚시를 했다는 혐의로 체포하면서 어부 2명이 실종되고 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탄자니아의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COP28에서 글로벌사우스를 위한 손실과 피해기금(Loss and damage fund)조차 1,000억 달러 규모에서 8억 달러 수준으로 난도질당하는 등, 그간 기후위기를 만들어온 자본주의 열강은 노골적으로 책임을 회피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상쇄배출권 사업에 적극 뛰어들며 녹색 식민주의로 개발도상국의 의존성을 강화하고 있다. 아제이 방가 세계은행 총재는 COP28 기간 중 “자발적 상쇄가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돈을 옮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탄소배출권 사업을 옹호하였다. ‘글로벌사우스’에 대한 제국주의 국가의 책임은, 자본의 안정적 이윤창출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기후위기 해결을 명분으로 선진자본주의 국가와 저개발국 간 위계를 심화하고, 다국적 대자본과 개도국 정부가 함께 저개발국 민중을 억압하는 새로운 형태의 식민주의가 확산하고 있다. 유대민족기금의 '조림' 프로젝트에 항의하는 팔레스타인 베두인들 사진: Aljazeera 노동자계급의 기후정의운동이 절실하다 오늘날 한국에서 시장주의 기후정책과 담론은 여전히 지배적이다. ‘저탄소 녹색성장’과 함께 2010년대 중반에 도입된 배출권거래제는 오늘날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규제완화 수단으로 전락했다. 정부는 배출권거래제가 도입된 2015년부터 2021년까지 세 차례2)에 걸쳐 배출권을 기업에 무상으로 할당해왔다. 정부가 기업에 지급한 무상배출권 비중은 1차에 100%, 2·3차에 각각 97%, 90%에 달한다. 해당 기간 산업부문이 판매한 배출권은 3,800만 톤에 달하며, 톤당 약 2만 원에서 2만 5천 원에 매매되었다. 기업들이 무상배출권을 판매하여 챙긴 수익은 약 8,500억 원에 이른다. 탄소배출권이 온실가스 배출 상위 기업에 대한 정부 보조금으로 활용된 셈이다. 국내 온실가스 배출 최다기업인 포스코의 경우, 2022년에 받은 무상 배출권이 7,715만 톤으로 온실가스 배출량(7,019만 톤)을 넘어서고, 2017년 이래 무상 배출권 할당량은 실제 배출량을 세 번이나 넘겼다. 어떠한 온실가스 감축 노력 없이도 탄소배출권이 남아도는 구조는 더 많은 탄소배출을 장려하는 것과 같다. 실제로 2016년~2021년에 걸친 기간 동안 산업부문이 줄인 온실가스는 고작 230만 톤에 불과하다. 2) 1차(2015~2017년), 2차(2018~2020년), 3차(2021~2025년) 자본 부담을 최소화하는 정책기조는 윤석열 정권 들어 더욱 노골화되었다. 정부는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2023년 3월 확정하며 산업부문 탄소배출 허용량을 810만 톤이나 경감한 반면, 국제감축 목표치는 400만톤 늘렸다. 국제감축이란 국외에서 온실가스 감축사업을 벌인 뒤 감축 실적을 인정받는 제도를 뜻한다. 여기에 더해 상쇄배출권 한도 또한 기존 5%에서 10%로 확대했다. UAE와 마찬가지로 대기업의 막대한 온실가스 배출을 탄소배출권으로 상쇄하려는 목적이다. 산림청은 탄소배출권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해외산림투자를 독려하고자 기업 대상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정부는 14개국에 42개 기업이 진출해 있는 국외 조림사업을 탄소배출권 사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시도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 솔로몬제도 등 글로벌사우스 국가, 수몰위기국가 대상 투자가 확대되고 있다. 이미 SK, 삼성 등 주요 대기업이 배출권 시장에 진출한 가운데, 2023년 2월에는 SK 계열사인 SK루브리컨츠(현 SK엔무브)가 ‘베라’의 인증을 받은 탄소배출권을 구매했다는 이유로 자사 윤활유 제품을 '탄소중립 윤활유’로 홍보하다 환경부의 그린워싱 제재를 받았던 촌극도 있었다. 탄소가격제를 비롯한 시장주의 기후 해법은 탄소배출을 억제하는 대신 배출량 증가를 정당화하는 데 동원되고 있다. 기후위기의 주범인 제국주의 자본의 책임은 녹색식민주의와 함께 저개발국 민중에게 전가되고 있다. 무분별한 자연 수탈로 이윤을 축적해온 자본은, 이전과 똑같은 방식에 그저 녹색 꼬리표를 붙였을 뿐이다. 이 모든 부조리 뒤에 이윤을 위한 생산체제가 존재한다. 자본의 이윤축적을 털끝만큼도 건드리지 않는 체제 내 기후위기 해결책이 아니라, 자본이 축적한 막대한 생산력을 온전히 기후위기 해결에 투입할 수 있도록 강제할 힘이 필요하다. 기후정의운동에 가장 절실한 ‘자본에 대한 강제력’은 자본의 이윤을 생산하는 주체이자 그 생산을 중단할 수 있는 주체, 즉 노동자계급의 기후정의운동에 근거해 만들어질 수 있다. 한국 재벌기업이 그린워싱 국제사업으로 글로벌사우스 종속을 강화하는 지금, 한국 노동자계급의 생산과 산업에 대한 통제투쟁은 세계 노동자 민중과 맞닿는다. 파국으로 치닫는 기후위기 속에서, 전 세계 노동자는 자본에 맞선 투쟁 속에서 하나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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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여성파업 4] 아르헨티나 - 여성파업 조직한 여성 노동자들, 성폭력의 희생자에서 생산하는 주체로[편집자 주] 지난 12월 6일 열린 “여성파업 첫발떼기 토론회”를 비롯해, 2024년 3월 8일 여성파업을 조직하기 위한 활동이 여성파업조직위원회 주도 아래 진행되고 있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노동자계급의 여성해방 운동을 건설하기 위한 여성파업 시도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며, 이 운동의 현황과 과제, 전망을 짚어 보기 위해 세계 여러 나라의 여성파업 사례를 돌아보고자 한다. 1975년 아이슬란드 여성파업에서 시작해 지난 십수 년 사이에 폴란드, 스페인, 아일랜드, 스위스, 아르헨티나 등 곳곳에서 여성파업이 일어났다. 각각의 사례는 그 자체로 세계 여성 노동자의 현실과 투쟁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넓혀 주기에 충분하다. 또한 여성파업의 양상과 결과, 다양한 쟁점을 훑어보면 우리의 과제에 대한 인식도 더 풍부하게 채워 갈 수 있을 것이다.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하늘이었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 콩그레소(Congreso) 광장에서는 어느 방향으로든 움직이기 어려울 만큼 많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여성, 소녀, 논바이너리 사람들, 남성 동맹자들이 도로에 빽빽이 서서 플래카드를 흔들고, 드럼을 치고, 구호를 외쳤다. 활동가부터 모유를 수유 중인 아이 엄마까지 거의 모든 참여자가 임신중지 합법화를 요구하는 상징인 초록색 삼각형 손수건을 착용하고 있었다.” 위의 내용은 2020년 3월 9일 여성파업 시위 현장을 그린 아르헨티나 언론사의 취재기사 중 한 구절이다. 국제 여성의 날을 계기로 일어난 파업이었지만, 당시 3월 8일이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하루 뒤인 월요일까지 포함해 3월 8일과 9일 양일간 조직된 파업이었다. 주최측인 니우나메노스 운동은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에만 50만 명이 모였고 북부 살타에서부터 남부 우수아이아까지 전국적으로도 수십만 명이 시위를 벌였다고 추산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2016년부터 2023년까지 모두 7차례에 걸쳐 여성파업이 일어났다. 2016년 10월 19일 처음 여성파업이 일어났으며, 2019년에는 진행되지 않았지만, 이외에는 모두 국제 여성의 날에 진행됐다. 2016년 처음 아르헨티나 여성들은 “우리는 파업한다. 단 한 명도 잃을 수 없다(Nosotras paramos! Ni una menos).”는 구호를 외치며 파업했고, 이는 아르헨티나 페미니즘 대중화에 마중물이 되었으며, 특히 임신중지 합법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도 아르헨티나 여성파업은 무급 가사돌봄 노동과 함께 생산 현장에서의 파업이 조직되면서 임신중지 권리를 위한 계급투쟁의 사례를 처음으로 보여 줬다는 점에서 역사적이다. 아르헨티나 여성 운동은 지난 10년 동안 성장해 왔지만 전국적 여성 파업이 가능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파업은 아르헨티나를 지배해 온 가부장적 자본주의에 도전하는 효과적인 도구란 점이 입증됐다. 즉, 아르헨티나 여성파업은 여성 의제를 노동자계급의 의제로 삼은 한편, 이 의제를 위한 투쟁 방식 역시 생산을 중단하는 파업이라는 수단을 동원했다는 점에서 반자본주의 페미니즘 운동의 전망을 보여 줬다. 여성파업의 시작1) 1) 이 글은 졸고 《검은 시위》 중 아르헨티나 장을 여성파업을 중심으로 수정, 보완한 글이다. 아르헨티나에서 여성파업이 일어난 계기는 2015년 3월 16일 19세 여성 다이아나 가르시아가 반나체 상태로 스타킹이 입에 물린 채 쓰레기봉지 속에서 발견되면서였다. 가르시아의 무참한 죽음에 아르헨티나 문인들은 “비닐봉지 속의 여성이 우리다. 너무나 많은 우리가 비닐봉지에 휘감겨 있다. 비닐봉지를 찢고 나오자. 아무도 그곳에 남아 있지 않도록 하자(ni una menos).”라며 페미사이드와 젠더폭력에 반대하는 릴레이 문화예술행사를 제안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두 달도 지나지 않아 또다시 14세 소녀 치아라 차베스가 살해되자 니우나메노스라는 이름으로 대중적인 시위가 조직되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 여성·인권·사회 운동을 비롯해 노동조합, 학생운동, 좌파 정당 등 수많은 단체가 니우나메노스 운동을 조직하고 2015년 6월 3일 대규모 집회를 소집했다. 이에 전국 80개 이상의 도시에서도 시위가 일어났고, 시위는 국경을 넘어 우루과이와 칠레에서도 이어졌다. 그런데 2016년 10월 8일 16세 소녀 루시아 페레스가 또다시 잔혹하게 살해되면서 결국 니우나메노스 운동은 10월 19일 아르헨티나 최초의 여성파업을 제안했고, 이는 6일 만에 대규모 파업 시위를 이끌었다. 애초 언론들은 이 살인 사건을 마약과 연계하거나 고립된 범죄로 취급하면서 탈정치화했지만, 니우나메노스 운동은 이것이 사회구조적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여론을 다시 조직했다. 이날 파업에 참여한 아르헨티나 여성들은 직장과 학교, 가정 등 가능한 한 모든 공간에서 최소 1시간 동안 노동을 중단했다. 이러한 파업 시위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만 25만 명이 참가할 만큼 대대적이었고 아르헨티나 페미니즘 운동의 역사적인 이정표였다. 국영 TV마저 여성파업이라는 주제를 다뤘고, 몇 달 동안 TV 방송은 연예인들을 제쳐두고 페미니스트들을 초대해 다가오는 여성파업과 임신중지 합법화에 대해 토론하고, 변화하는 아르헨티나 사회에서 페미니즘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했다. 녹색 스카프를 맨 여성 노동자들 이러한 니우나메노스 운동은 많은 아르헨티나 여성 운동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라틴 아메리카에 광범한 영향을 미쳤다. 그중에서도 가장 격렬하게 촉발된 것은 임신중지 합법화 운동이었고, 이 운동의 여파 속에서 아르헨티나는 2019년 임신중지 합법화를 쟁취했다. 그리고 여성 살해에 맞선 여성파업에서처럼 여성 노동자들은 임신중지 권리 역시 노동 의제로 만들고 파업투쟁을 조직했다. 실제로 여성 노동운동가 다수가 임신중지 합법화를 지지했고, 여성 조합원들도 이를 노조 운동의 목표로 세웠다. 여성 조합원들은 여성파업과 파뉴엘라소(임신중지 합법화를 위한 녹색 손수건 시위)에 참여했고 여러 쟁의 역시 파뉴엘라소 방식으로 진행했다. 여성 노동자들은 학교와 병원, 공공기관과 대학 등 직장에서마다 파뉴엘라소를 진행했다. 공공기관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녹색 스카프의 물결은 계속됐다. 다국적 기업 펩시코 해고 노동자들과 성폭력 신고전화 ‘114 라인’ 노동자들, 언론사 텔람(Télam)과 마푸체 원주민 여성들이 함께 니우나메노스를 조직했다. 아르헨티나노총(CGT) 소속 승무원 노동자들은 8월 8일 모든 비행기에서 임신중지 권리를 지지하는 캠페인도 진행했다. 조선소 폐쇄 반대 투쟁이 진행되던 라플라타의 리오산티아고 조선소에서는 2018년 8월 8일 거대한 녹색 스카프가 뱃머리에 걸렸다. 2018년 7월 22일에는 노동자가 운영하는 마디그라프(MadyGraf) 공장 여성위원회와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그룹 ‘빵과장미(Pan y Rosas)’2)가 ‘공개 여성 집회’를 소집해 8월 8일 의회 토론을 앞두고 여성 노동자의 권리를 논의했다. 여기에는 펩시코, 크라프트, 포사다스병원 등 다양한 작업장 출신 노동자 700명 이상이 참석할 정도로 큰 호응을 받았다. 시위를 주도하는 니우나메노스와 70개 이상의 단체 그리고 지하철및전철노조협회(AGTSyP)는 모든 지하철 노선에서 캠페인도 조직했다. 여기에는 쓰레기수거, 세탁, 돌봄이나 식당 등 재생산 부문 노동자들도 가세했다. 또한, 여성 노동자들은 “단 한 명의 여성 노동자도 잃을 수 없다(#NiUNA Trabajadora Menos)” 혹은 “단 한 명의 이민자도 잃을 수 없다(NiUNA Migrante Menos)” 같은 새로운 슬로건과 함께 운동 영역을 확장해 냈다. CGT가 임신중지 합법화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을 때도 여성 노동자들은 즉각 반발했고, CGT 본부 앞에서 녹색 파뉴엘라소 시위를 벌였다. 2) ‘빵과장미’는 아르헨티나 사회주의 페미니즘 단체로 페미니즘 제도화에 반대하며 노동자계급이 주도하는 여성운동을 지향한다. 이러한 빵과장미는 2000년대 초 아르헨티나 경제위기 후 ‘사장 없는 기업’을 내건 자주관리 운동의 급속한 성장을 배경으로 한다. 빵과장미는 현지 사회주의노동자당(PTS) 연관 단체이기도 하다. 성폭력 희생자에서 생산하는 주체로 이러한 아르헨티나 임신중지 합법화 운동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임신중지가 여성 노동자계급의 보편적인 이슈로 조명되고 전술 역시 계급행동으로 조직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운동에는 수많은 여성 조합원이 참여했고, 노조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도 자신을 노동자로 정체화하는 여성이 많았다. 그런 점에서 첫 번째 여성파업이 일어난 2016년은 아르헨티나 여성운동의 전환점, 특히 노동계급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아르헨티나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파울라 바렐라는 “2015년의 핵심은 인권운동의 시각에서 여성을 성폭력의 희생자로 본 것이었다면, 2016년에는 여성을 일하고 생산하는 주체로 정립하기 시작했다”라고 지적했다. 바렐라에 따르면, 이러한 변화에는 3가지 요소가 관련되어 있다. 첫째,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과 그의 동맹 ‘캄비에모스’로의 정권 교체다. 앞서 아르헨티나에서는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정부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사회적 위기가 더욱 깊어지고 있었다. 더구나 마크리 정부는 취임 직후 공공 부문 구조조정과 해고를 밀어붙였고, 공공 서비스 요금은 급등했으며, 인플레이션으로 실질임금이 곤두박질쳤다.민간 부문에선 6%, 공공 부문에선 8% 하락할 정도로 생존권이 후퇴했다. 빈곤율은 마크리 정부가 출범한 2015년 약 30%에서 2019년 41%로 급증했다. 세계 30대 경제국 아르헨티나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 같은 조건에서 여성과 성소수자는 더 잔인한 위기를 겪고 있었다. 해고와 실업에 수많은 여성이 거리로 밀려났고, 성과 재생산 예산이 대폭 줄었으며, 성폭력과 페미사이드는 역사상 최고치를 경신해 가고 있었다. 2017년 남녀 평균 임금 격차는 26.2%이었으며, 초등교육을 받은 노동자 사이의 남녀 임금 격차는 41.2%까지 벌어졌다. 여성은 남성과 동일한 소득을 얻으려면 77일을 더 일해야 했다. 저임금 노동자 10명 중 7명도 여성이었다. 14~29세 여성의 실업률은 21.5%로 같은 연령대 남성보다 4.2%p나 높았다. 또한 2017년 공식 확인된 여성 살해는 292건에 달했다. 그뿐만 아니라, 2018년 가정 폭력 핫라인에는 무려 7만 9,753건의 전화가 걸려 올 만큼 여성들이 가혹한 시간을 살고 있었다. 둘째는 여성들에게 누적되어 온 종교적 억압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헌법은 가톨릭교회의 특권을 인정한다. 이에 따라 가톨릭교회는 연간 수십억 페소에 달하는 국가보조금을 받으며, 이 자금으로 다양한 사회 부문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 때문에 가톨릭교회는 그들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보수세력뿐 아니라 중도좌파까지 집권층을 지원해 왔다. 그러나 그들은 늘 억압적인 여성관과 가부장제의 이데올로기를 강요했다. 대표적으로 교회는 수많은 종교학교를 소유하고 있지만, 교육 과정에는 성교육조차 없을 만큼 보수적3)이다. 더구나 임신중지에 대해서는 태아의 ‘생명’을 옹호하며 여성에게 도덕적 공세를 퍼부었다. 3) 아르헨티나 상원이 임신중지 합법화 법안을 막은 배경에 대해 친지아 아루자와 티티 바타차리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신자유주의 세력과 교회 모두 ‘가족의 가치’라는 이데올로기를 지키고자 한다. 둘째, 그들은 신자유주의적 약탈에 대응해 생겨나 과감하게 정치 지형을 만들어 가는 페미니즘 운동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요소는 여성 노동계급을 대표하는 집단이 부재했던 조건이다. 아르헨티나 노조들은 마크리가 집권한 2015년부터 퇴임한 2019년까지 5차례에 걸친 총파업으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맞섰다. 그러나 페미사이드 중단이나 임신중지 합법화, 여성 실업 해결 등에는 소극적이었으며 오히려 임신중지 합법화를 반대하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2018년 7월 7일 CGT는 임신중지 합법화로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비용을 우려하는 대국민 성명을 발표했다. 교회가 노동조합에도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결과였다. 노조 지도부 중에는 우파 정부를 지지하는 세력도 있었다. 이 때문에 2016년 10월 1차 전국여성파업 당시 슬로건 중 하나가 “CGT가 정부와 차를 마실 때 우리는 거리로 나간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노조 지도부가 여성 실업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었던 상황에서 이에 주목하기 시작한 건 여성 운동이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수많은 여성 노동자가 직장에서 밀려났는데도 CGT가 자신의 역할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즉, 2016년 10월 19일 여성파업은 이 3가지 요소가 맞물려 있었다. 그리고 여성들은 자신을 계급적 주체로 정체화하고 계급투쟁을 선택했다. 파업에는 “우리가 멈추면 세상도 멈춘다.”, “우리 삶이 무가치하다면 우리 없이 생산하라.”, “우리는 세상을 움직인다.”는 슬로건이 늘어 갔다. 또 파업 제안서에는 성차별적 폭력과 더불어 아르헨티나 여성이 겪는 삶의 불안정과 실업, 무급 가사노동, 성별 임금 격차, 교사와 간호사 등에서 드러나는 성별분업 체계와 계층화를 문제 삼았다. 출산 휴가 부족이나 무급 육아 노동, 부족한 보육원 등으로 인해 낮은 노동시장 참여율의 문제도 제기됐다. 결국 2015년 6월 3일 첫 니우나메노스 시위 이후 1년여가 지나면서 운동의 요구는 페미니즘 운동의 전통적 의제는 물론, 불안정노동 체제 청산과 빈곤 해결, 그리고 여성 노동자를 외면하는 CGT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확대됐다. 아래로부터의 파업 조직한 빵과장미 그러나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집회를 소집한 노조 지도부 역시 많은 경우 파업을 준비하지는 않았다. 즉, 대규모의 여성파업 시위에 비하면, 노동조합 중앙이 현장에서 실제로 파업을 조직한 곳은 많지 않았다. 2023년의 경우에는 아르헨티나 중부 네우켄에 위치한 ATEN 캐피털,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아데미스 등 좌파가 주도하는 5개 정도의 사업장에서만 파업이 조직됐다. 아르헨티나 빵과장미의 나탈리아 곤살레스 셀리그라(Nathalia González Seligra), 로라 빌치스(Laura Vilches)에 따르면, 일부 노조 지도부, 즉 부에노스아이레스교육노동자연합(SUTEBA)이나 아르헨티나중앙노조 교육종사자연합(CTERA-CTA)과 같이 키르치네르주의4) 정치세력이 주도하는 교사 노조의 지도부가 파업을 제안하기는 했지만, 선동적인 선언에 불과했다. 아르헨티나공무원노조(ATE)의 산하 조직들은 “성평등 없이는 사회 정의도 없다”고 말하며 “공식 및 비공식 노동, 서민 경제 및 무급 노동의 다양한 조직”이 역사적인 날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기껏해야 일부 여성 조합원들이 조기퇴근하는 데 동의했을 뿐, 파업의 중요성을 전파하고 토론하고 설득하기 위한 노력은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한다. 4) ‘키르치네르주의(Kirchnerism)’란 아르헨티나 전직 대통령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와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가 주도한 정치운동이다. 페론주의의 한 조류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사민주의와 좌파 포퓰리즘을 추구한다. 이러한 조건에서 아르헨티나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단체 빵과장미는 노동조합 중앙이 임신중지 권리, 성차별적 폭력, 여성 살해 반대 등 여성 운동의 요구에 대해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파업에 나설 것을 요구해야 한다고 제기해 왔다. 실제로 빵과장미 동료들은 노동조합이 운영되는 모든 공장에서 민주적 집회를 소집하고 파업을 제안했다. 2017년 이래로 ‘국제 페미니스트 파업’이라는 이름으로 국제적인 여성파업 운동이 일어났을 때 여성과 남성 모두가 일하는 교대조에서 생산을 마비시키고 시위에 참여하기로 투표한 업계 유일의 회사는 다국적 기업 펩시코였다. 셀리그라와 빌치스는 “여성들이 파업에 나서기 위해서는 각 학교, 대학, 병원, 각 공장, 각 동네 등 동료와 이웃과 함께 파업이 실제로 가능하도록 아래로부터의 준비가 필요”했고, “또 여성 노동자들이 가정에서 필수적인 가사돌봄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실질적인 투쟁 수단을 구축해야 하지만, 그런 준비는 이뤄지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결국 아르헨티나 중도좌파 키르치네르주의 정치세력은 직장에서의 파업 즉, 반자본주의의 계급투쟁은 우회했지만, 임신중지 합법화 운동 한가운데서 페미니즘 이름으로 키르치네르주의의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후보 선거운동을 벌였고, 결국 그들은 2019년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승리했다. 이후 아르헨티나 정부는 임신중지를 합법화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중요한 한계를 노정한 것이었다. 역사적 승리와 한계 2019년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임신중지 합법화를 공약했고, 이후 2020년 12월 30일 아르헨티나 의회는 ‘자발적 임신중지 접근법(IVE)’을 가결했다. 이에 따라 법안 통과 후 11개월 동안5) 아르헨티나에서는 임신중지 시술 3만 2,758건이 무상으로 이루어졌다. 유산유도제는 4만 6,590개가 무상 공급됐다. IVE에 따라 아르헨티나는 임신중지를 필수 의료 서비스 대상으로 정하고 국민건강보험으로 의료비의 전액을 지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임신중지 시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은 903개소에서 1,243개소로 늘었다. 5) 2021년 11월 30일 기준. 법률 27610 하지만 자발적 임신중지 권리는 14주까지만 합법화되었고, 14주 이후에는 강간으로 인한 임신이거나 여성의 생명이나 건강의 위험 또는 사산 위험이 있을 때만 임지중지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아르헨티나 24개 주는 주가 보건 정책을 결정해 지역적 격차도 컸다. 전체 인구의 40%가 거주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주에서는 상당히 큰 변화가 일어났지만, 135개 지역 중 36개 지역에는 여전히 임신중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이 없다. 또 의사가 ‘양심’에 따라 임신중지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해 여전히 많은 여성이 어려움을 겪었다. 뿐만 아니라 여성 노동자의 사회경제적 조건은 더욱 후퇴했다. 아르헨티나 경제위기가 심화하는 가운데 정부는 노동자민중에게 그 위기를 전가했고, 가장 큰 타격은 여성 노동자들에게 돌아갔다. 최저임금 노동자의 64%는 여성이며, 비혼 여성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구도 12%에 달했다. 백래시와 반격 더구나 가속화하는 아르헨티나 경제위기 속에서 치러진 지난 대선에서는 무정부적 자유주의를 외치는 극우 하비에르 밀레이가 당선하여 노동자민중과의 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선거 유세장에 전기톱을 들고 나온 밀레이는 임신중지 권리 폐지를 비롯해 동성 결혼 반대, 총기 자유화와 장기 매매 합법화 등을 밀어붙일 예정이다. 그는 이미 공공 부문 임금을 동결했으며, 연금 인상 종료 및 파업권 제한을 골자로 하는 노동법 개정 대통령령을 발의했다. 이 대통령령에는 법적 수습 기간을 3개월에서 8개월로 늘리고, 해고 시 보상을 줄이며, 임신 휴가를 축소하는 등의 내용도 담겼다. 다만 이 대통령령에 법원이 제동을 걸었지만, 전면적인 경제 구조조정과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는 밀레이의 공격은 이제 시작이다. 특히 밀레이의 개악은 임신중지 권리 공격이나 사회복지 예산 삭감을 비롯해 여성 노동자들에게 가장 큰 타격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같은 조건에서 아르헨티나 노동자민중은 반격을 채비하고 있다. 12월 20일에는 좌파전선과 실업자단체를 비롯한 전투적인 노조가 대규모 집회를 벌였으며, 5월 광장과 의회 앞에서는 냄비와 팬을 두드리는 카세롤라소(Cacerolazo)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아르헨티나 노동총동맹은 1월 24일 전국 총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단체 빵과장미도 극우에 반격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조직하고 있다. 이제 아르헨티나 페미니즘 운동은 또 다른 계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페미니즘 운동이 실제로 반격으로 조직되기 위해서는 빵과장미가 말하듯 노동자계급에 기초한 여성운동, 여성 노동자들이 주도하는 페미니즘의 투쟁이 절실한 상황이다. 아르헨티나 빵과장미 이론가 안드레아 다트리(Andrea D’Atri)는 “임신중지 합법화 투쟁을 통해 우리가 배운 것처럼, 우리가 확실히 승리할 수 있는 곳은 부처 사무실이나 투표소가 아니라 거리다. 우리는 모든 직장, 모든 학교와 대학, 모든 동네에서 조직하여 극우에 맞서야 한다. 다시 한번 자신의 힘을 믿고 싸우는 그린타이드가 시작돼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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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기후 레닌주의를 향하여!원문 기사 https://www.leftvoice.org/for-climate-leninism/ 나다니엘 플라킨 2023년 10월 1일 안드레아스 말름은 기후 비상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생태적 레닌주의”를 요구한다. 좋다. 하지만 레닌주의란 무엇보다 자본가 국가를 분쇄하는 것을 뜻한다. 거대 재앙의 위험이 … 임박했다. 모든 신문이 이것을 되풀이해 쓰고 있다. … 결의안들은 … 재앙을 피할 수 없다는 점, 재앙이 아주 가까워졌다는 점, 재앙에 맞서기 위해 극단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 파멸을 피하려면 민중의 “영웅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 등을 인정한다. 모두가 재앙을 말하고 있으며, 모두가 재앙을 인정한다. 모두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 누구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생각하면, 재앙에 맞설 방법들이 있다는 것, 재앙에 맞서기 위한 조치들이 더없이 분명하고, 간단하며, 완벽하게 실현 가능하고, 민중의 힘이 온전히 닿는 곳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조치들이 실행되지 않는 것은, 전적(全的)으로 그 실현이 한 줌 자본가들의 막대한 이윤에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란 점도 알 수 있다. - 레닌 레닌은 이 글을 1917년 10월에 썼다. 이 글에서 레닌은 러시아에서 다가오는 기근의 위험성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몇 가지 사소한 생략을 제외하고서 보면, 위 인용은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을 묘사한다. 기후재앙이 진행 중이라는 걸 모든 사람이 안다. 지난 가을 COP27 기후 회의에서는 사실상 모든 부르주아 정치인들이 참여한 엄숙한 선언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실행되지 않는다. 필요한 조치들은 간단하지만, 자본가들의 이윤을 침해한다. 그래서 아무것도 실행되지 않는다.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 XR)’은 여러 나라에서 도로를 막아섰다. 독일에서는 여러 활동가 단체가 정부의 행동을 강제하기 위해 시민 불복종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엔데 겔란데(Ende Gelände, 길이 없음)’는 석탄 광산을 점거했다. 최근에는 ‘레츠테 게네라치온(Letzte Generation, 마지막 세대)’ 회원들이 강력 접착제로 자기 몸을 도로에 붙여 교통을 방해했다. 두 단체 모두 끔찍한 탄압을 받고 있다. ‘레츠테 게네라치온’은 “범죄 음모”로 수사받고 있으며 심지어 “기후 테러”라는 비난까지 받고 있다. 이들의 전술은 과격해 보이지만 놀랍게도 그 요구는 온건하다. 이들은 정치인들이 “과학에 귀를 기울이고”, 아우토반에 속도 제한을 도입하며, 그밖에 소소한 조치를 시행할 것을 요구한다. 정부의 행동을 강제하기 위한 시민 불복종 전략의 주요 이론가는 스웨덴 학자 안드레아스 말름이다. (1) 그의 책 <파이프라인을 폭파하는 방법>은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기사와 장편 영화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코로나 봉쇄 기간에 쓴 두 번째 책 <코로나, 기후, 오래된 비상사태>에서 말름은 기후 비상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전시 공산주의”, “생태적 레닌주의”를 촉구했다. 레닌주의자로서, 우리는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레닌주의란 말름이 제안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의미한다. 누구도 평화주의자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파이프라인을 폭파하는 방법>은 클릭을 유도하는 미끼에 불과하다. 사실 말름은 화석연료 기반 시설을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말름은 왜 더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하지 않는지 의문을 가진다. 존 랭커스터의 질문처럼 말이다. 기후변화를 강력히 체감하는 사람들이 그런 종류의 일을 하기엔 너무 착하고 교육을 너무 많이 받은 것일까? 아니면 어느 정도의 기후변화를 가장 강력히 체감하는 사람들조차 기후변화라는 사실 자체를 믿지 못하는 것일까? 기후운동의 많은 영역에서 평화주의는 절대적인 것으로 다뤄진다. 예를 들어 환경운동가 빌 맥키벤은 마틴 루터 킹, 간디, 넬슨 만델라의 정신과 같은 비폭력주의가 유일하게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빌 맥키벤은 지구를 구하고 싶어 한다. 다만 그 운동이 누군가의 재산을 털끝만큼도 건드리지 않을 때만 그렇다. ‘미래를 위한 금요일’은 역사상 가장 예의 바른 저항 운동으로 명성이 높다. ‘레츠테 게네라치온’은 주황색 안전조끼를 입고 도로를 막으며, 운전자들의 폭행에 소극적으로 대응한다. 재미난 것은, 이런 극단적인 평화주의로도 우익 정치인들이 “폭력”, “테러리즘”이란 비난을 쏟아내는 것을 막지 못했단 것이다. 말름은 자기 책에서 부르주아 사회의 평화주의 신화를 해체한다. 자본가 정치인들은 억압받는 사람들의 “폭력”을 비난하지만, 경찰과 군대 같은 특별한 무장기관의 엄청난 폭력은 정당화한다. 진보적 변화를 향한 운동은 권력과의 폭력적 대결을 결코 피할 수 없다. 예컨대 만델라는 수십 년의 옥살이를 금욕적으로 견딘 성자(聖者)로 기억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에 맞서 폭탄 테러를 감행한 무장조직 ‘움콘토 위 시즈웨’의 수장이었다. 지금은 만델라를 평화주의의 상징으로 떠받드는 전 세계의 정부들은 이전에는 만델라의 “테러리즘”을 비난했다. 만델라 자신도 “나는 비폭력 시위가 효과적인 한에서만 비폭력 시위를 호소했다”고 말했다. 마틴 루터 킹도 마찬가지로 항상 총을 휴대했다. 다수의 유명한 “평화주의자”에게, 비폭력이란 특정한 상황에서의 전술적 선택일 뿐이었다. 평화주의는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말름은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해하려고 산탄총을 들고 모스크에 들어갔던 노르웨이인 나치의 사례를 예로 든다. 세 명의 노인이 범인을 제압했는데, 꼼짝 못 하게 범인을 짓누르고 머리를 가격하면서 그렇게 했다. 진정한 평화주의자라면 나치의 두개골을 멍들게 하는 “폭력”을 거부했을 것이다. 물론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량 학살을 막기 위한 작은 대가로써 그런 폭력을 사용하는 데 동의했을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평화주의에 예외를 두고 있는 셈이다. 말름이 말했듯이, “예외를 인정하는 평화주의자는 ‘정의로운 전쟁론자’다.” (‘정의로운 전쟁 이론’은 어떤 전쟁이 정당한가를 다루는 군사 윤리학이다. - 옮긴이) 마르크스주의자는 결코 평화주의자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폭력이 정치적으로 목표한 것이 무엇인지, 폭력을 압제자가 행한 것인지 피억압자가 행한 것인지에 따라, 모든 폭력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나치 경비병에 맞서 봉기한 부헨발트 강제수용소 수감자들이 사용한 폭력에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말름이 설득력 있게 주장하듯이, 우리는 기후변화에 대해 달리 생각할 여유가 없다. 자본주의 체제는 모든 인간을 살해하는 방향으로 우리를 몰아가고 있다. 그런 결과를 막기 위해 어느 정도의 폭력이 정당화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현실적 태도가 절망적 기후위기에 대한 유일한 대안이다. 조나단 프랜즌 같은 부유한 자유주의자들은 지구의 파괴를 멈추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걸 수용하라고 한다. 적절하게도 말름은 이런 생각에 충격을 받았다. 적어도 어떤 이들에게는 싸우는 법을 배우기보다 죽는 법을 배우는 게 더 쉽고, 전투적 저항을 생각하는 것보다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의 종말을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게 더 쉽다. 비록 상황이 “절망적”이라 하더라도,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투쟁이다. 냇 터너(1831년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흑인 노예 반란을 이끌었다 – 옮긴이)와 바르샤바 게토 투사 등의 행동도 “절망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수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썼듯이, “모든 것을 잃었다면, 당신은 투쟁해야만 한다!” 전시 공산주의 그러나 말름이 제안하는 시민 불복종과 태업의 목표는 무엇인가? 이런 것들이 전술이라면, 전략은 무엇인가? <파이프라인을 폭파하는 방법>은 2단계, 즉 폭발물이 터진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로 나아가지 않는다. 공산주의자 출신인 말름은 자기 출신을 모호하게 만든다. 말름은 책에서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와 독일의 좌파 테러리스트 울리케 마인호프(1934~1976, 독일 적군파의 창설자 - 옮긴이)를 인용하지만 그들의 이름은 후주(後註)로 처리된다. 책에서 그들은 각각 파시즘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 “서독 칼럼니스트(!)”로 축소된다. (2) 말름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확실히 급진화 돼, 다음 책에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붉은 깃발을 휘둘렀다. 책의 부제는 <21세기의 전시 공산주의>이며, 본문은 레닌, 트로츠키, 볼셰비키, 혁명에 관한 언급으로 가득 차 있다. 말름은 특히 흥미로운 비유 하나를 제시한다. 기후재앙에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전시(戰時) 동원을 상상하면 통상 우리는 2차 세계대전 때의 미국 전시생산국(WPB)을 떠올린다. (3) 그러나 더 나은 역사적 사례가 있다. 러시아혁명 이후 신생 소비에트연방은 21개 제국주의 국가 군대의 침략을 받았다. 볼셰비키는 노동자계급의 취약한 권력을 방어하기 위해 “전시 공산주의”를 필요로 했다. 볼셰비키는 농민들로부터 곡물을 징발하기 위해 가차 없는 무력을 사용했는데, 이것이 적군(붉은군대, 赤軍)과 도시에 식량을 공급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반동과 파시즘을 억제하기 위해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향후 불타는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사적 투쟁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엄청난 희생이 요구될 것이다. 말름은 재미난 지적을 한다. ‘트로츠키는 장갑열차를 타고 전방 지역들을 이동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열차는 나무 장작, 즉 재생에너지를 연료로 했다. 적군(赤軍)은 친환경적이었다!’ (4) 전시 공산주의는 진정한 민중 혁명이 가진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해방시켰다. 1789년 파리에서, 1791년 프르토프랭스에서(카리브해의 프랑스 식민지였던 생도맹그에서 노예제를 폐지하고 아이티 공화국을 세운 혁명을 가리킨다 – 옮긴이), 1917년 페트로그라드와 모스크바에서, 1936년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서 역사가 반복적으로 보여준 것처럼 말이다. 러시아에서 적군(赤軍)은 내전에서 승리했는데, 이는 수백만 명의 노동자, 농민이 그들 자신의 해방을 위해 투쟁했기 때문이다. 노동자, 농민은 농장과 공장, 그리고 국가권력을 장악했으며, 자신들이 쟁취한 것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희생했다. 이것이 전 세계 생산 시스템에 급진적이고 즉각적인 변화를 도입하는 데 필요한 혁명적 동원(動員)이다. 말름의 “전시 공산주의” 기획에는 삼림벌채 중단, 운송수단의 탄소 배출 감축, 석유 재벌에 대한 몰수와 같은 일련의 “매우 엄격한 제한과 중단”이 포함돼 있다. 화석연료 자본이 전체 사회의 통제를 받게 되면, 국가는 화석연료 추출을 중단시킬 뿐 아니라 대기 중 탄소를 제거하기 위해 새로 확보한 자원을 이용할 것이다. 그러나 말름의 “생태적 레닌주의”는 한계적이다. 사실 말름의 “생태적 레닌주의”는 사민주의에 대한 향수로 잘 알려진 <자코뱅>에서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언급되는 레닌주의다. 말름은 레닌주의란 용어를 규율 있는 정치적 운동이란 뜻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자면, 예수회, 사이언톨로지스트, 일본 제국주의 군대 등 수많은 운동이 하나의 대의를 위해 헌신해 왔다. 레닌주의란 노동자계급이 자본가 국가를 타도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해 노동자 정부를 건설한다는 특정한 강령을 실현하기 위한 규율에 관한 것이다. 레닌주의와 국가 레닌 최고의 저작은 1917년 혁명 도중의 짧은 소강기에 쓰였다. <국가와 혁명>에서 레닌은 국가가 사회의 중립적 관리자가 아니라는 점을 해명했다. 국가는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억압하기 위한 도구다. 자본가 국가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수호하며, 노동자계급과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가장 민주적인 공화국조차 부르주아 독재 체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노동자계급이 처음으로 정치권력을 획득한 1871년 파리 코뮌의 사례를 연구했고, 노동자계급이 단순히 기존 국가 기구를 장악하는 데 그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대신 노동자계급은 부르주아 국가를 분쇄하고, 이를 노동자 평의회와 같은 자주적 조직체에 기반한 프롤레타리아 국가로 대체해야만 한다. 레닌은 노동자 국가가 단지 반쪽의 국가라고 덧붙였다. 코뮌 유형의 국가는 사회의 절대 다수에 기반해 있으며, 그 목적이 이전의 자본가들에 맞서 노동자권력을 수호하는 데 있다. 따라서 관료 기구적 방식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사회주의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노동자들은 점차 스스로 모든 행정업무를 처리하게 될 것이며, 모든 형태의 국가는 불필요해지고 사멸할 것이다. (5) 말름은 레닌의 주장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 기후재앙을 멈추자면 인류의 이익을 위해 행동해야 할 때 자본가 국가 스스로 “본질적 무능”을 드러냈다고 말름은 지적한다. 자본가 국가의 유일한 목표는 부르주아가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그것이 지구와 모든 사람이 불타는 것을 뜻할지라도 말이다. 또한 말름은 특히 종말적 위기에 직면하게 되면 국가권력이 하루아침에 폐지될 수 있다고 보는 무정부주의자의 환상을 거부한다. 말름은 “실제적 전환에 어느 정도의 강압적 권력이 요구된다는 것은 언제나 진실로 드러난다.”고 썼다. 말름은 레닌의 주장을 동의하며 인용한다. “우리는 (특정한 이행기에) 국가가 필요하다. 이것이 우리를 무정부주의자와 구별하는 지점이다.” 이 정도는 진지한 사회주의자들 모두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은 자본가 권력을, 경찰이나 감옥과 같이 자본가들을 보호하기 위한 모든 기구를 분쇄할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은 폭력이며, 한 계급이 다른 계급에 맞서 폭력을 체계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노동자 국가다. 그러나 말름은 레닌을 인용하면서 자기 생각에 맞추기 위해 다음 문장을 누락한다. 우리는 국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부르주아가 필요로 하는 국가, 즉 경찰력, 군대, 관료제(관료집단)와 같은 정부 기구가 인민에게서 분리되어 인민을 억압하는 국가는 아니다. 모든 부르주아 혁명은 단지 그러한 국가 기구를 완성했을 뿐이며, 그것을 한 정당의 손에서 다른 정당의 손으로 옮겼을 뿐이다. 반면 프롤레타리아트가 현재 혁명의 성과를 유지하고 더 나아가 평화, 빵,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국가 기구,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성(旣成)”의 국가 기구를 분쇄하고, 경찰력, 군대, 관료제가 무장한 전체 인민과 통합된 새로운 국가로 대체해야만 한다. 그렇다. 지구 온난화 시대에 인류 생존을 위한 투쟁에는, 수십억 명이 자본가 권력의 마지막 흔적까지 파괴하기 위해 조직되는 이런 종류의 혁명적 동원이 필요하다. 불타오르는 세계에 적응해 나가고 가능한 한 많은 것을 구하기 위해, 인류의 전체 생산수단을 민주적 통제 아래 두어야만 한다. 그러나 말름의 “레닌주의”는 국가를 분쇄한다는 사상을 의도적으로 생략한다. 말름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방금 자본가 국가가 이런 조치들을 취해나가는 데서 본질적 무능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형태의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소비에트에 기반한 노동자 국가는 하룻밤 새 기적적으로 탄생하지 않는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민주적 기구라는 이중권력은 설령 실현되더라도 조만간 실현될 것 같지 않다. 그것을 기다리는 것은 망상이고 범죄적이므로, 우리가 함께할 것은 늘 자본의 순환에 결박(結縛)돼 있는 음울한 부르주아 국가다. 이를 견디자면 대중적 압력이 가해져야 한다. 이로써 국가 내에 응축된 힘의 균형이 바뀌고, (국가) 기구들이 결박을 풀고 움직이기 시작하도록 강제될 것이다 … 그러나 이것이 국가를 파괴하고 새로운 국가를 건설한다는 고전적 강령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은 분명할 것이다. 그 강령은 레닌주의가 자신의 사망 기사를 쓰는 데 충분하게(혹은 너무도 충분하게) 보이는 여러 요소 중 하나다. 이것은 쓰리 카드 몬테(three-card monte, 세 장의 뒤집힌 카드 중에서 ‘머니 카드’를 찾기 위해 돈을 걸게 하는 속임수 게임 – 옮긴이)와 이치가 같다. 말름은 레닌의 급진적 이미지를 소환하는 걸 즐기지만, “국가의 파괴”는 거부한다. 말름은 자본가 국가에 “전시 공산주의” 수행을 요구하는 동시에, 바로 그 국가가 탄소 배출을 감축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시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말름은 “소비에트에 기반한 노동자 국가”가 “하룻밤 만에 탄생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누구도 하룻밤 만에 노동자 국가를 탄생시키려 작정한 적은 없다. 정반대다. 레닌주의의 핵심 테제는 그러한 국가는 오로지 수많은 노동자의 의식적 노력에 의해서만 건설될 수 있으며, 노동자들의 에너지는 혁명 정당을 통해 집중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레닌주의자들이 투쟁하는 목적이다. 다른 한편 말름은 개량주의(“유로코뮤니스트”) 이론가 니코스 풀란차스에 대한 충성을 드러낸다. 비록 그 이름을 각주에서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국가를 “전체 부르주아계급의 공동 업무를 관리하는 위원회”라고 주장한 반면, 풀란차스는 국가가 사실 “계급적 힘들의 응축체”라고 반박했다. (6) 다시 말해 풀란차스는 국가 기구가 여러 계급 사이 투쟁의 장이며, 노동자계급은 국가 내부에서 힘의 균형을 바꿀 수 있고 궁극적으로 국가를 장악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결국 노동자계급이 부르주아 국가 내부에서 권력을 얻을 수 있다는 오래된 개량주의 이론을 쓸데없이 장황하게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국가에 대한 이런 관점은 “레닌주의” 이론가 말름을, ‘멸종저항’, ‘엔데 겔란데’, ‘레츠 제너레이션’ 같이 비(非) 사회주의자 활동가들의 운동과 확실하게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다. 이들 모두는 시민 불복종을 통해 국가가 기후재앙에 맞서 비상조치를 시행하도록 강제하려 든다. 말름은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러면서 대안은 없다고 주장한다. 즉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 완전히 불가능하다는 걸 역사와 이론이 보여주었다. 결국에 이것은 프랜즌이 주장했던 기후 절망의 “사회주의자” 버전일 뿐이다. 폭탄을 든 자유주의자 트로츠키가 지적한 대로, 부르주아가 노동자들의 이익을 위한 정책을 시행하도록 강제하기 위해 노동자계급에게 필요한 에너지는, 노동자계급이 정치권력을 잡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보다 더 크다. (7) 말름은 노동자계급이 부르주아 국가를 파괴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할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정반대로 주장한다. 소규모 태업, 자본가 정부가 어떻게든 우리 목표에 복무할 것이라는 환상적 희망에 노력을 기울이면서, 자본가 국가가 불에 기름을 끼얹도록 놔둘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전시 공산주의” 논의의 결말 무렵에서 말름은 레닌주의자보다는 사회민주주의자에게 커다란 지지를 표명한다. 2019년에 제레미 코빈이 영국 총리가 되고, 2020년에 버니 샌더스가 미국 대통령이 되는 것만큼 지구에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말름은 브라질 룰라 정부도 마찬가지로 칭찬한다. 말름이 그런 개량주의 정부가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고 보는지 정확하지는 않다. 그보다 말름은 그런 정부가 민중의 압력을 받아 “자기 자신을 뛰어넘어” 자본주의를 폐지하기를 희망한다. 룰라는 브라질 지도자로 이제 세 번째 임기 중에 있지만 아마존 파괴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한 부르주아 국가가 민중의 압력을 받아 갑자기 반자본주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보는 희망이 바로 말름과 제4인터내셔널 통합서기국의 동료들이 시리자와 포데모스를 지지하게 된 이유다. 이로써 노동자계급이 얻은 것은 사회주의 대신, 배신과 사기 저하뿐이었다. 즉 “레닌주의자” 말름은 <자코뱅>이 지지하는 바로 그 사회민주주의 정치인들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 말름에게 직접 행동의 최종 목적은 탄소 배출 감축에 진지하게 임할 개량주의 정부를 선출하는 것이다. 이것은 백여 년 전에 레닌이 지적했던 것을 다시 확인해 준다. 말름과 같이 “행동에 의한 선전”(propaganda of the deed, 주로 19세기 말 20세기 초 무정부주의자들의 지배계급에 대한 테러를 뜻한다. 이 전술은 1881년 런던 국제 아나키스트 대회에서 승인되었다. - 옮긴이)을 촉구하는 “혁명가들”은 “폭탄을 든 자유주의자”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크리스 마이사노는 <자코뱅>에 기고한 글에서 말름에게 “파이프라인을 폭파하지 말라”는 신랄한 반응을 내놓는다. 부르주아 정부가 그린뉴딜 정책을 시행하도록 하는 게 목표라면, 부르주아적 전술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그는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이를테면 예비선거에서 좌파 후보를 후원하고 의회 의원들에게 로비하는 것들이다. 사회민주주의적 목표는 사회민주주의적 수단을 요구하며, 화려해 보이는 태업 행위는 단지 방해가 될 뿐이다. 자본가 국가가 전시 공산주의를 시행하게 한다는 말름의 계획에는 못돼먹은 점도 있다. 1918~21년 러시아에서 노동자들은 그들이 쟁취한 권력을 방어하기 위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희생을 요구받았다. 말름은 비슷한 희생을 요구하지만, 권력 없이 희생을 요구한다. 말름이 자본가 국가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동시에 “매우 엄격한 제한과 중단”을 요구할 때, 이는 자본가들의 이윤을 보호하면서 노동자들의 생활 조건을 공격하는 것을 뜻할 뿐이다. 사실 이것은 부르주아 정부가 이미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녹색” 긴축경제란, 부자들은 24시간 내내 개인 제트기를 띄워놓을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기후 보호”라는 명목으로 비행기 이용을 포기하라는 것을 뜻한다. 이런 종류의 긴축경제는 전시 공산주의와 아무 상관이 없다. 제대로 말하면 그건 1차 세계대전 기간 독일 제국의 정책에 더 가깝다. 크리스암트(전쟁청)의 독재 아래 정말 전 사회적 동원이 이뤄졌다. 대중은 전방의 참호에서 웅크려야만 했고, 군수 공장에서 장시간 노동했으며, 순무 배급을 받기 위해 긴 줄을 서야 했다. 전염병으로 아이들은 파리떼처럼 죽어갔다. 그러나 부르주아 정치인들이 국가적 희생을 분담할 것을 요구하는 동안, 투기꾼들은 샴페인을 마시며 기록적인 이윤을 얻었다. 독일 사회민주당(SPD)에서 가장 우파적인 목소리를 냈던 일부는 이러한 국가 경제 관리가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단계라고 믿었다. 그들은 이것을 “전쟁 사회주의”라고 불렀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는데, 자본가 국가의 일시적 경제 통제는 더 큰 야만을 가능하게 했을 뿐이다. 자본가 국가를 옹호하는 말름은 사실 (러시아의) “전시 공산주의”보다는 (독일의) “전쟁 사회주의”에 훨씬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기후 레닌주의란 무엇인가? 말름이 정식화한 “생태적 레닌주의”는 놀라울 정도로 온건하다. 말름의 두 책에는 반자본주의적 전망이 빠져있다. 오히려 말름은 상당한 숫자의 사람들이 태업에 참여하면 기후 행동이 실현된다고 여긴다. 말름이 언급하는 구체적 사례는 SUV (8) 자동차 타이어 바람 빼기, 일시적으로 석탄발전소 점거하기 등이다. 최근에 활동가들이 월마트 상속자 한 명의 호화 요트에 주황색 페인트를 뿌린 것처럼, 의도적으로 거대 자본가를 표적으로 삼기도 한다. 그런 행동에 대해, 심지어 파이프라인을 폭파하는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설령 기후 운동이 파이프라인을 매일 폭파하더라도 화석연료 자본의 기계는 멈추지 않고 돌아갈 것이다. <자코뱅>의 크리스 마이사노 같은 개량주의자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정치권력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한다. 옳다. 그러나 크리스 마이사노는 코빈, 샌더스, 룰라가 부르주아 국가를 맡는 것이 노동자계급의 권력 장악을 뜻한다고 본다. 비록 급진적 전술을 옹호하지만 말름도 여기에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진정성 있는 개량주의자가 정부 수반이 되더라도 자본가 국가는 눈앞의 재앙을 다루는 데서 “본질적 무능”의 상태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생태적 레닌주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말름은 세 가지 정의를 내린다. (1) “징후의 위기를 원인의 위기로 바꾸는 것”, 즉 자본주의가 일으킨 재앙을 변화의 기회로 삼는 것. (2) “속도를 가장 중요한 미덕으로 여기는 것”. (3) “국가를 이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모든 기회를 붙잡고, 요구되는 만큼 급격하게 평소의 관행과 단절하며, 재앙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경제 영역을 공공의 직접적 통제 아래로 복속시키는 것.” 정확히 이 중 아무것도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말름의 레닌주의는 사회민주주의 개량주의와 거의 비슷하게 들리며, 단지 일정표가 훨씬 빠를 뿐이다. 이건 사실 “잘못된 방법이지만, 더 빠른” 최대출력(Max Power) 방식이다. 반면 로자 룩셈부르크는 개량과 혁명이 서로 반대되는 강령이란 점을 지적했다. 정치권력 장악 및 사회혁명에 대비(對比)하여 입법 개혁의 방법을 지지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같은 목표를 향해 좀 더 평온하고, 고요하고, 느리게 나가는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목표가 다르다. 그들은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지지하는 대신, 낡은 사회의 표면적 변경을 지지하는 것이다. 이를 기억하고 진정한 기후 레닌주의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견해를 추가로 살펴보자. 1. 노동자계급 중심성 우리는 세계 경제 전체를 급진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어떤 사회적 주체가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 개개의 파이프라인을 폭파하기 위해 몇 달 동안 지하에 숨어있는 활동가들은 절대 대중의 힘을 가질 수 없다. 레닌주의는 노동자계급, 즉 자기 노동력을 판매해 자본주의를 돌아가게 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회를 향한 투쟁을 이끌 수 있는 사람들이란 점을 인식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를 분쇄하기 위해 모든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민중과 동맹으로 연합할 수 있다. 적지 않은 기후 활동가들은 노동자계급이 급진적 변혁의 주체라는 점을 거부할 것이다. (“그것은 150년 전 마르크스주의의 교리일 뿐이다!”) 그들은 석탄 광부들을 대표하는 노동조합이 최소한의 기후 행동에도 가장 악랄하게 반대했던 독일 기후운동의 구체적 경험을 지적한다. 이와 비슷하게, 금속노동조합은 문명 전체가 그렇듯이 자신들의 일자리 또한 기후변화로 파괴될 것이란 점엔 관심을 두지 않은 채 그저 자동차산업 조합원의 일자리만 방어해 왔다. 이것은 (제대로 된 - 옮긴이) 조직이 없으면 노동자계급이 자기 잠재력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지금 대부분의 노동자조직은 돈 많은 관료들이 운영하고 있다. 이 관료들은 자본가들과 거래함으로써 특권을 누린다. 노동자들은 독립된 정치적 주체로서 투쟁할 때 비로소 세상을 뒤바꿀 자기 힘을 드러내게 된다. 프랑스 그랑퓌 토탈 정유공장 노동자들이 구체적 사례다. 토탈 노동자들은 다국적 기업의 “그린워싱” 행각의 일환으로 해고될 것이란 통보를 받았다. 그 대응으로 토탈 노동자들은 평조합원위원회를 조직했다. 그들은 원유 정제를 계속하기 위해, 즉 지구를 계속 불태우기 위해 투쟁하지 않았으며, 또한 “녹색 자본주의”의 이름으로 거리로 내몰리는 것도 수용하지 않았다. 토탈 노동자들은 기후 활동가들과 연합하여 자신들의 일자리를 위해, 그리고 노동자 통제 하의 에너지 산업전환을 위해 투쟁했다. 정유 노동자들이 청정에너지를 위해 투쟁하는 것을 상상해 보라! 이것은 노동자 자기조직화의 “마법”과 사회주의 사상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그랑퓌 정유공장은 작은 사례에 불과하다. 자기 작업장을 점거하고 자신들이 모두의 이익을 위해 생산을 재조직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은 노동자들의 사례는 수두룩하다. 그런 사례들은 세계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것, 즉 한 줌 억만장자 기생충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게 아니라 모든 인민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레닌주의는 혁명 정당의 지도를 받는 노동자계급이 세계를 변혁할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2. 부르주아 국가를 타도하는 혁명 말름은 자본가 국가가 기후 재앙을 해결하는 데서 “본질적 무능”을 드러낸다고 올바르게 주장한다. 위에서 주장했듯이, 레닌은 노동자들이 어떻게 자본가 국가를 파괴할 수 있는지 보여줬다. 이는 모든 혁명 과정에 등장하는 경향이 있는, 노동자 평의회와 같은 노동자계급 자기 조직화의 기반 위에서 가능하다. 오늘날 혁명가들은 노조 관료와 사회운동에 맞서 싸우면서 노동자 자기조직화를 추진해 나가야만 한다. 3. 혁명 정당 또한 레닌주의는 노동자계급이 결정적 행동을 통해서만 역사적 임무를 완수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한다. 이를 위해 가장 의식적이고 결연한 투사들로 구성된 정당, 즉 전위 전당이 필요하다. 이 정당은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겠지만, 무게중심은 계급투쟁에 있을 것이다. 레닌주의는 전투적 정당을 건설하고자 한다. 4. 비계(飛階)로서의 언론 레닌주의는 혁명 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비계(飛階)가 혁명적 언론이라는 점을 보여줬다. 노동자들은 투쟁의 경험을 공유하고 이로부터 교훈을 이끌어내기 위해 자신들만의 매체를 만들어야 한다. 한 세기 전에 이것은 신문을 의미했다. 오늘날 혁명적 매체는 모든 기술적 가능성을 활용해야 한다. 5. 국제주의 레닌주의는 사회주의 변혁이 일국(一國) 차원에서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한다. 기후재앙의 시대에 “일국 사회주의”라는 스탈린주의 사상은 그 어느 때보다 터무니없어졌다. 말름은 모든 자본주의 국민국가가 무기한 존속될 것이라고 가정한다. 반면 레닌은 러시아혁명을 사회주의 세계 공화국으로 나아가는 첫 번째 걸음으로 보았을 뿐이다. 레닌주의가 국제적으로 조직돼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간단히 말해 기후 레닌주의란 모든 부르주아 국가의 완전한 파괴를 요구하는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후재앙을 멈추기 위해 유일하게 현실적인 선택이다. 우리가 사회주의를 향한 노동자계급 정당을 건설하기 위해 투쟁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절망에 맞선 레닌주의 지난 몇 년간 기후 운동은 어느 정도 사기 저하를 겪고 있다. ‘미래를 위한 금요일’이 전 세계 수백만 젊은이들을 불러일으킨 지 수년이 지났다. 그들은 젊은이들의 절박한 외침에 감동한 자본가 정치인들이 마침내 과학에 귀 기울일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각 정부(政府)는 계속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정부가 민주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거의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즉 절망에 빠지기 쉽다. 핵심은 그들이 자본가 국가의 지도자들임을 이해하는 데 있다. 그들의 유일한 임무는 자국 자본가들이 자본을 늘리고 다른 자본가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지구가 불타오른다 해도, 이건 정말 그들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계속해서 자동차, 고속도로, 석탄 공장을 건설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그들이 과학을 믿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니다. 사실 그들은 우리보다 더 나은 과학적 보고를 받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기후재앙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긴급 조치들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표현을 따르자면 “소유권의 전제적(專制的) 침해”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어떤 자본가 국가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리고 수많은 시민 불복종으로도 그것을 바꿀 수 없으며, 바꾸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자본가 국가가 적이란 사실을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노동자계급이 자본가 국가를 무너뜨릴 수 있고 무너뜨려야만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세계에는 화석연료 자본의 기계를 갑자기 멈출 수 있는 수십억 명의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브레히트를 다시 인용하자면, “당신이 자신의 상황을 이해했다면, 누가 당신을 막을 수 있겠는가?” 여기에서 전략이 도출된다. 레닌주의는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을 조직하기 위한 이론적 도구를 제공한다. 서두에 인용한 1917년 책자에서, 레닌은 “자본가들과의 철저하고 일관된 단절”을 촉구하며 글을 맺는다. 레닌은 유일한 희망이 사회주의 혁명에 놓여 있다고 주장했다. 멸망하느냐, 아니면 [혁명을 향해] 전력으로 나아가느냐. 이것이 역사가 제시한 선택지다. 자본가 국가를 타도하느냐, 아니면 우리 모두 불타버릴 것이냐. 이것이 선택지다. 후주(後註) 1. 말름은 가끔 트로츠키주의자로 언급된다. 말름이 오늘날 트로츠키주의 운동의 우익을 형성하며 개량주의 입장을 가진 제4인터내셔널 통합서기국의 회원이기 때문이다. 2. 말름은 이렇게 썼다. “‘항의(protest)는 나는 이것이 싫다고 말하는 것이다. 저항(resistance)은 내가 싫어하는 것을 끝장내는 것이다. 항의는 내가 더 이상 이것에 동의하지 않겠다고 거부하는 것이다. 저항은 다른 누구도 동의하지 않도록 내가 확실히 하는 것이다.’ 1968년에 한 서독 칼럼니스트는 이렇게 썼다.” 사실 서독 칼럼니스트는 적군파의 창설자인 마인호프다. 말름은 결론 부분에서 이렇게 쓴다. “1930년대 초반, 독일이 나치의 권력 장악으로 끝날 비탈길로 미끄러지고 있다는 것이 그 달에 이르러 점점 분명해졌다. ‘얼마나 귀중하고,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잃어버렸는가! 사실 시간은 많이 남지 않았다.’ 가장 집요하게 위험을 경고하고 청중들에게 그 위험과 맞서 싸우는 데 노력을 아끼지 말라고 촉구했던 목소리 중 하나가 외쳤다.” 그 ‘목소리’는 바로 레온 트로츠키다. 3. 우리는 <레프트보이스>에서 이런 비유를 했다. “2차 세계대전 기간 미국 경제는 전시생산국(WPB)의 중앙 계획에 굴복했다. 예컨대 1942년 2월 22일, 미국에서는 모든 자동차 생산이 중단됐다. 대략 하룻밤 사이에 모든 자동차산업 역량은 탱크와 비행기 생산을 위해 전환됐다. 오늘날 민간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화석연료에서 전환하자면 수십 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우리에게는 수십 년이란 시간이 없다. 생산은 즉시 사회적 통제 아래 급진적으로 변화돼야 한다.” 로버트 벨라노·나다니엘 플라킨, ‘그린뉴딜은 우리를 구할 수 없다. 계획경제는 가능하다’, <레프트보이스> 4호. 4. 안타깝지만, 계속해서 인용될 법한 이 비유가 잘된 것은 아니다. 나무 장작을 태우는 것은 재생 가능하지 않으며, 새로운 나무를 키워 탄소를 회수하는 것은 수십, 수백 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문학적 의미에서 이 비유가 여전히 맘에 든다. 5. <국가와 혁명>은 훌륭한 저작이다. 간결하고 읽기에 어렵지 않다. 아직 못 보았다면 꼭 읽어보라! 6. 풀란차스는 국가를 “계급과 계급 분파 사이 힘의 관계가 물질적으로 응축된 것”으로 보았다. 독일어로 된, 풀란차스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비판은 스테판 슈나이더가 <계급 대 계급>에 쓴 ‘국가를 파괴할 것인가, 강화할 것인가?’를 보라. 7. 1848년 혁명에 대해 쓴 글에서 트로츠키는 부르주아에 대해 이렇게 썼다. “이 이탈자들이 자신들의 의무를 다하도록 강제하기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 쪽에서 임시 노동자정부를 세우는 데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와 성숙함이 필요했을 것이다.” 8. 이것은 SUV 자동차를 오로지 부유층만 보유했던 2007년 스웨덴에서 취했던 행동이다. SUV 자동차가 널리 보급된 오늘날 미국에서 이런 일을 벌이면, 주로 노동자계급에게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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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을 거부한다! 공장철거를 거부한다! 공장의 주인은 우리다!급히 처리해야 할 업무가 있어 평소보다 일찍 출근했다. 기상청 예보대로 기온은 영하로 뚝 떨어졌다. 난방기를 틀었지만 추위는 쉬이 가시지 않았다. 그러다 소식을 들었다. 1월 8일 새벽 6시 40분.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이하 한국옵티칼지회) 박정혜 수석부지회장과 소현숙 조직2부장이 옵티칼 공장 옥상에서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얼마나 화가 아니, 분노가 차올랐으면 영하의 날씨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고공농성에 나섰을까. 박정혜 수석부지회장은 고공농성을 위해 공장 옥상에 오르기 전, 머리를 단발로 싹둑 자르고 왔다. 스스로 결의를 한 번 더 다진 셈이다. 구미에 위치한 한국옵티칼은 일본 닛토덴코의 자회사로 LCD 편광 필름을 생산해 LG디스플레이에 납품하는 업체로 한국 정부와 구미시의 지원을 받으며 2003년에 세워졌다.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따라 공장 부지 무상 제공 50년을 보장받은 것에 더해 각종 세제 혜택을 누렸다. 하지만 닛토덴코는 이윤을 더 늘리기 위해 중국으로 눈을 돌리면서 한국에서의 ‘먹튀’를 준비해 왔다. 그러다 2022년 한국옵티칼 공장에 화재가 발생했고 이를 이유로 청산을 결정했다. 이로 인해 한국옵티칼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해고자가 되어 버렸다. 닛토덴코는 평택에도 공장(한국니토옵티칼)을 두고 있어 노동자들이 고용승계를 요구하고 그럴 여력이 충분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모르쇠를 일관하고 있다. 심지어 닛토덴코는 화재로 인해 챙긴 보험금은 새로 공장을 세우고도 남을 금액이다. 박정혜 수석부지회장은 고공농성을 시작하며 “2022년 11월 4일, 옵티칼이 청산을 문자로 통보한 그날부터 저는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습니다. 12년을 일한 회사가 한순간에 우릴 버리고 떠난 날부터 마음 편한 날이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고, 혹시 내가 잘못해서 회사가 우릴 버렸을까 매일 스스로 의심했습니다. 이제 저희는 쓸데없는 자책을 멈추고 잘못한 사람에게 저희를 책임지라고 당당히 주장하려 합니다. 하루하루 죽어가던 것을 멈추고 투쟁 승리로 살아나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고공농성을 시작한 날 오후 5시 30분, 구미시는 결국 공장철거를 승인했다. 이어서 사법부의 가처분 승인이 나면 공장철거를 거부하는 행위는 손배가처분 대상이 된다. 그럼에도 공장을 지키는 한국옵티칼지회 조합원들과 고공농성을 사수하는 두 조합원들은 몸을 던지면서 손배가처분을 뚫고 맞서 싸우려 한다. 자본가는 자본을 가지고 기업을 만들고 공장을 세우고 이윤을 얻는다. 하지만 그 이윤을 만들어내는 것은 다름 아닌 노동자다. 그런데 자본가는 기업의 주인이 공장의 주인이 자신이라 말한다. 하지만 자본가만이 기업과 공장의 주인일 수는 없다. 노동자 역시 기업의 주인이자 공장의 주인이다. 노동자들의 동의 없이는 자본가 마음대로 공장을 청산할 수 없다. 비록 불탄 공장이라 할지라도 고용승계 없이는 공장을 철거할 수 없다. 시청과 사법권의 공장철거에 맞서 고공농성이 시작된 데 이어 오는 1월 13일에는 한국옵티칼 공장에서 집회와 문화제가 열린다. 한국옵티칼 지회 동지들의 절박한 투쟁에 많은 힘을 모아주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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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째 책읽기모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 발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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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여성뉴스 브리핑] 우리는 ‘사회봉사자’가 아니라 ‘노동자’, 필수유지업무 파업 금지 명령에도 꺾이지 않고 쟁취한 임금인상1. 저출생 해결에서 ‘여성’ 지운 대통령의 신년사 “노동, 교육, 연금의 3대 구조개혁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저출산 문제의 해결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1일, 2024년 신년사에서 저출생 위기 해소 의지를 강조했다. 그러나 저출생의 근본 원인인 성차별과 장시간·불안정 노동 구조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대한민국 저출생 위기의 원인은 성차별적 사회 구조’이며, 성평등 정책 없인 해결도 어렵다고 강조한다. 결혼·출산·양육이 일과 삶의 균형을 파괴하는 경험이 아닌, 행복한 선택이 될 수 있는 사회 환경 조성도 강조한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교육, 돌봄, 복지, 주거, 고용정책이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정부가 저출생 해결을 위해 교육, 주거, 고용 등의 정책을 제대로 추진한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더욱이 ‘여가부 폐지’ 공약을 필두로 ‘여성’, ‘성평등’ 지우기에 앞장선 것도 다름 아닌 윤석열 정부였다. 이러한 정부 인식을 반영하듯 이번 대통령 신년사에서도 ‘여성’이나 ‘(양)성평등’ 언급은 빠졌다. 저출생의 원인과 실효성 있는 대책을 강조한 신년사 발언은 대통령 자신부터 성찰하고 쇄신해야 할 지점이다. <참조 기사>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3880 2. 인도, 노동자의 이름과 생존을 얻기 위한 안간와디 여성 노동자의 파업투쟁 인도 정부는 6세 미만 아동과 임신·출산 여성을 위한 안간와디센터를 전국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곳 노동자(안간와디노동자와 보조노동자)는 여성으로, 농촌 지역 곳곳에서 여성, 아동, 장애인과 노인들을 위한 기초의료 지원과 돌봄노동을 제공하는 필수업무를 수행한다. 그런데 정부는 이들을 노동자가 아닌 ‘사회봉사자’라 규정하고 임금 대신 매우 낮은 액수의 ‘사례금’을 지급한다. 보조노동자는 그마저도 60% 수준이다. 약 1백만 명의 안간와디 노동자들은 지난 12월 12일부터 공무원 노동자로 인정, 임금 월 11,500루피에서 26,000루피로 인상, 정년 62세로 연장 등을 요구하는 파업에 돌입했다. “우리는 하루에 18시간 일한다. 정부는 우리를 노예 취급하고 있다”. “한 달에 7천 루피를 받고 집세, 학비, 공과금, 배급비 등이 지출을 다 감당해야 한다. 정부가 임금을 인상할 수 없다면 이 돈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줘야 한다” 안간와디 보조노동자인 벤카타 락쉬미와 나가마니는 정부를 규탄하며 싸우고 있다. “우리는 지난 20여 일 동안 도로를 누볐다. 하지만 모든 업무에 우리를 활용하는 정부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다. 우리는 한 주에 있는 약 1만 명 어린이에게 영양가 있는 음식을 제공하는데, 우리는 정작 저임금으로 자녀에게 같은 수준의 음식을 해줄 수가 없다.” 이 절절한 안간와디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1월 6일 드디어 정부가 답을 내놓았다. ‘필수유지업무 노동자 6개월간의 파업 금지 명령(Esma)’이 바로 그것이다. 노동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해당 주 정부를 상대로 파업을 그대로 이어가며 노동자 탄압 항의 시위, 도로점거, 명령서 불태우기, 변함없는 투쟁의 상징으로 85명의 릴레이 단식 투쟁 등을 벌이고 있다. 또한 1월 6일 비하르 주 정부에서는 노사교섭을 통해 2년간의 파업 투쟁으로 해고당한 18,000여 명의 안간와디 노동자를 복직시키고 임금을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참조 기사> https://www.thenewsminute.com/andhra-pradesh/ap-govt-prohibits-anganwadi-workers-from-protesting-invokes-essential-services-act https://www.thehindu.com/news/national/andhra-pradesh/anganwadi-workers-accuse-andhra-pradesh-government-of-apathy-as-their-protest-enters-20th-day/article67693059.ece 3. 영국, 주로 여성과 젊은 노동자들 0시간 파트타임 계약에 고통받아 영국에서는 노동시간 유연화, 비정규직 고용계약으로 여성과 청년 노동자의 삶이 흔들리고 있다. 비정규직 고용계약의 대부분은 ‘0시간 파트타임 계약’*이며, 소매업, 서비스업, 보건과 사회복지 등에 해당하는 직종이 많다. 영국 4개 대학 연구팀은 3년간 진행한 연구결과를 놓고 “비정규직-불완전 고용이 매우 우려스러운 영국 노동시장의 특징”이며, “여성, 청년, 자격 수준이 낮은, 소수민족 출신인 노동자가 비정규직 고용의 악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다”고 밝혔다. 스토크온트랜트의 소매점 직원인 44세 캐서린은 대기업인 하이스트리트 브랜드에서 일한다. “여기선 주 14시간 계약으로 일한다. 버스로 3시간씩 이동하며 다른 지점들에 가서도 일한다. 다른 노동자들도 생계 때문에 투잡을 한다. 4~6시간 일하는 곳에서는 보통 7일 연속, 가끔 9일 연속으로 일한다. 평균 12~14시간씩 집 밖에 있으니 아이들은 스스로 저녁식사 등을 챙겨야 한다. 정규직이 되면 정말 좋겠다”고 말했다. 런던의 중환자실 간호사인 리지는 예전엔 여러 간호기관에서 풀타임으로 일했지만 지금은 훨씬 적은 시간 일한다. 또한 “최소한 먹고살 만큼 노동시간을 확보하는 게 어렵다. 고용주들은 계속 일하라는 호출을 취소한다. 지금은 일주일에 2번 일을 받기도 힘들다”고 했다. 한 25세 대졸자는 취업난으로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수년간 대형 슈퍼마켓에서 일했는데 주 16시간 계약만 맺을 수 있었다. 다른 이주 노동자는 4시간짜리 야간 근무를 밤 10시에 시작해서 마쳐도 첫 버스가 올 때까지 꼼짝없이 사업장 식당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금융사의 개인 비서로 일하는 클레어는 “고용주가 비용을 아끼려고 임시직을 더 많이 써서 정규직도 스트레스가 커지고 비정규직의 삶도 더 힘들어진다”면서 “고용주가 특히 돌봄의 책임이 있는 노동자를 쓰러질 때까지 쥐어짜고는 잔인하게 내쫓아버린다”고 말했다. *0시간 파트타임 계약(zero-hours contracts)이란 고용주가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약정하지 않고 임시직(비정규직) 계약을 한 뒤 일한 만큼 시급을 주는 노동계약이다. 주나 월 단위로 인력 수요에 따라 노동시간을 정하고, 일한 시간만큼 돈을 줘 고용주가 인건비를 최소화할 수 있다. <참조 기사> https://www.theguardian.com/uk-news/2024/jan/01/how-women-and-younger-uk-workers-are-being-hit-by-underemployment 4. 노동시장 차별을 개선해야 출생률도 상승할 것 지난해 3분기 국내 합계출산율은 0.70 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경신했다. 통계청은 지난달 장래인구 추계에서 국내 합계출산율은 내년 0.65명까지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이 발표한 ‘20~30대 여성의 고용·출산 보장을 위한 정책방향’ 보고서에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수록 출생률도 상승한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노동시장 진입 시기인 20~30대를 보면 여성의 진출은 활발해지고 있지만, 불안정성이 크고 남성과 고용 및 임금에서 격차가 큰 차별적인 고용 상황을 저출생의 주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보고서에서 소개하고 있는 마티아스 돕케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의 연구를 보면 돕케 교수는 OECD 국가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에 따라 상위 그룹, 중간 그룹, 하위 그룹으로 나눴는데, 상위 그룹 국가일수록 합계출산율이 더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 중심의 OECD 국가들은 출산 이후 여성들이 노동시장에서 이탈하는 것을 막고자 가족 정책과 일·가정 양립 제도를 젠더중립적으로 재편하거나, 노동시장 차별구조를 완화하고 여성의 고용 유지를 위한 정책을 채택했고, 여성 고용률이 상승하면서 합계출산율도 비례해 지속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조 기사> https://www.khan.co.kr/economy/economy-general/article/202401022141015 5. 국민 10명 중 6명 “부양의무, 가족·정부·사회가 함께해야” 저출생‧고령화가 사회 문제로 대두한 가운데 ‘부양의무’에 관한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가 나왔다. 특히 ‘부양 의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란 질문에는 ‘가족·정부·사회가 함께해야 된다’가 65.9%, ‘정부·사회가 해야 된다’가 12.0%의 수치를 보이며 77.9%가 부양 의무를 정부와 사회의 책임으로 인식했다. 이 같은 조사결과는 지난 5일 한 데이터 컨설팅 기업이 전국 20~69세 남녀 3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부양의무에 대한 의견’에서 확인됐다. 한국의 생산연령인구 비중은 2022년 기준 71.1%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하지만 50년 뒤에는 45.8%로 가장 낮아질 전망이다. 반면, 한국의 총부양비는 2022년(40.6명)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지만 2072년(118.5명)에는 가장 높은 수준이 될 것으로 예측됐다. 2072년 노년부양비가 100명을 넘길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는 OECD 국가 중 한국이 유일하다. 이처럼 부양의무에 대한 국민 인식은 급격한 고령화와 1인 가구의 증가, 맞벌이 가구의 지속 등 사회변화와 함께 많이 바뀌어, 가족 중심의 돌봄체계는 더 이상 작동 불가능한 상황이 도래했다.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사적 돌봄체계에서 정부와 사회가 책임지는 공적 돌봄체계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참조 기사> https://www.imaeil.com/page/view/2024010610385220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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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밀려나는 데 익숙해지고 싶진 않아요_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소현숙 동지 인터뷰2022년 10월 4일, 구미의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에 불이 났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일본 닛토 자본의 한국 자회사다. 불이 난 지 한 달 만에 회사는 화재보상금만 받고 공장을 청산하겠다고 노동자에게 문자로 통보했다. 130여 명의 노동자는 희망퇴직으로 떠났지만 11명의 노동자는 남아서 싸우고 있다. 11명의 노동자 중 언제나 조용하지만 단단한 소현숙 조직2부장을 만나서 인터뷰했다. 2006년 12월 4일, 현숙 씨가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이하 옵티칼)에 입사했다. 옵티칼은 모든 노동자가 방진복을 입고 일했는데, 몸에 열이 많은 현숙 씨에게 방진복은 쥐약이었다. 샤워를 몇 번씩 해도 퇴근할 때쯤 온몸에서 땀에 찌든 냄새가 났다. 자신에게 이런 냄새가 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기도 했다. 현숙 씨는 외관 검사 공정에서 일했다. 암실에서 이리저리 필름을 비춰보고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불량을 찾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일은 익숙해졌고 점점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물량 압박이 심했다. ‘현숙 씨, 저 사람은 같은 시간에 이만큼 더 하는데? 현숙 씨는 왜 못해?’ 대놓고 핀잔도 자주 받았다. 물량 압박이 크니 스트레스가 자연스레 쌓였다. 외관 검사를 한 지 4년쯤 되자, 눈이 뭔가 이상했다. 눈이 침침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안경점을 찾았다. 그러나 금세 눈은 더 나빠졌고 안경점을 자주 들락거려야 했다. “눈이 점점 나빠지시는 거 같은데요”라며 걱정스러운 말도 들었다. 외관 검사를 한 지 12년이 지났을 무렵, 아침에 눈을 떴는데, 눈이 너무 시리고 눈물이 줄줄 흘렀다. 빛이 닿기만 하면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병원에 가보니 각막이 찢어졌다고 했다. 듣자마자 현숙 씨는 생각했다. ‘암실에서 불량 검사를 12시간씩 하니 눈에 무리가 왔구나.’ 의사는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조심히 떠야 한다고 했다. 현숙 씨는 각막을 신경 쓰느라 스트레스가 쌓여 이석증까지 생겼다. 의사에게 원인을 물었으나 ‘각막 손상은 원래 원인 불명’이라는 답만 들었다. 산재로 인정받기 어렵겠다고 판단한 현숙 씨는 산재 신청을 포기했다. 2019년과 2020년, 희망퇴직이 이루어졌다. 노동자는 50명대로 줄었다. 외관 검사만 13년 했는데, 갑자기 회사는 청소도 시키고 다른 공정으로 보내며 여러 일을 같이 시켰다. 현숙 씨는 회사가 미웠지만 절대 스스로 나가진 않으리라 다짐했다. 이미 희망퇴직으로 동료들이 나가는 걸 보면서 ‘절대 내 발로는 안 나가. 그렇게 내보내고 싶으면 잘라’라며 마음을 정한 상태였다. 약간의 오기, 약간의 분노, 약간의 포기 등이 뒤범벅된 마음이었다. 2년쯤 지난 2022년 10월 4일, 공장에 불이 났고 한 달 만에 회사는 청산을 결정했다. 현숙 씨는 불이 나고 한 달 동안 한 번도 회사가 청산할 거란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청산하기엔 일이 너무 많았다. 이렇게 바쁜데 청산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문자를 본 순간 “이 개새X!” 욕이 튀어나왔다. 한 달 동안 정상화를 위해 노력한다더니 뒤로는 도망가려고 작업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너무 화가 났다. 이튿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노동조합 사무실을 찾았다. 투쟁을 하기로 처음 결정했을 때, 현숙 씨는 생각했다. ‘나이가 적지 않으니 다른 일자리 찾기 힘들 거야.’, ‘그래도 여기선 정규직인데…….’, ‘여기가 내 마지막 직장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숙 씨는 정규직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을 시작했다. 2023년 8월, 태풍이 찾아왔을 때 현숙 씨는 기가 찼다. 갑자기 경찰이 거리에 쫙 깔렸다. 구미의 ‘높으신 양반들’이 찾아왔다. 공무원이 소속에 상관없이 잔뜩 왔다. 그들은 ‘태풍 때문에 안전을 위해’ 공장 안으로 들어오겠다고 했다. 하지만 현숙 씨는 알고 있었다. 이미 전에도 바람이 많이 분 날도 있었고 비가 쏟아지던 날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찾아온 건 처음이었다. 공장에 불이 난 후 처음 만난 건 태풍이 아니라 그들이었다. 그 후로 변호사, 노무사 등을 데리고 청산인이 직접 오기도 했고, 다소 작고 귀여운 크기의 굴착기가 찾아오기도 했다. 처음엔 조금 긴장됐으나 현숙 씨는 이제 점점 무감각해지고 있다. 딱히 위협적이란 생각은 안 한다. 2023년 12월 29일, 구미시청은 옵티칼 공장 철거 승인을 예고했다. 2024년 1월 8일 이후면 언제든지 승인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구미시청이 공장 철거를 승인하면, 회사는 진심으로 철거하기 위해 찾아올 것이다. 현숙 씨는 이 소식에 두근거림을 느꼈다. 투쟁이 점차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기든 지든 투쟁이 끝으로 향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현재 노동조합은 공장 철거에 대해 더욱 탄탄히 준비하고 여러 투쟁을 고민하고 있다. 현숙 씨는 앞으로의 투쟁에 대해 “힘든 싸움이니까 어쩌면 포기할 수도 있고 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아도 갈 수밖에 없는 길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현숙 씨는 이 싸움의 끝을 보고 싶다. 현숙 씨는 해고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다. 밀려나고 싶지 않다. 물론 투쟁을 포기하고 다른 직장을 알아볼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그런다면,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길 때마다 또다시 밀려나리라 생각한다. 심지어 자연스러워지고 익숙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현숙 씨는 점점 밀려나고 또 밀려나는 것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다. 어쩌면 지금의 현숙 씨가 지키고 있는 건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보다 자기 자신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