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은 재난이고, 돈벌이는 돈벌이다? 기후재난 시대에 유전 개발이 웬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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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재난은 재난이고, 돈벌이는 돈벌이다? 기후재난 시대에 유전 개발이 웬 말!

  • 김요한
  • 등록 2024.06.28 10:44
  • 조회수 605

사진: 연합뉴스

 

이게 지금 대통령이 나설 일이야?

 

이달 초 윤석열은 취임 이후 최초로 진행한 ‘국정브리핑’에서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윤석열은 “세계 최고 수준의 심해기술평가 전문기업에 물리탐사 심층 분석”을 맡긴 결과, 추정 매장량이 최대 140억 배럴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채상병 수사 직권남용, 김건희 씨 명품 가방 수수 의혹 등으로 궁지에 몰린 윤석열은 임기 완주를 위해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얘기나 임기응변식으로 던져대는 중이다.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은 노동법원을 노동약자 보호 운운하면서 임기 내 설치하겠다고 떠든 것이 단적인 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윤석열이 동해 유전 가능성을 직접 발표한다는 사실을 소관 부서인 산업자원통상부 대변인실조차 발표 1시간 전에 알았다고 한다. 윤석열은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는 정권 지지율을 반전시키기 위해 확실치도 않은 유전 개발 가능성을 직접 발표하는 뻔뻔함을 보인 것이다.

 

물론 윤석열의 장밋빛 전망이 그대로 실현된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유전 개발은 ‘지표 지질조사 → 탄성파 탐사 → 탐사 시추 → 경제성 평가 → 원유 생산’의 5단계로 이뤄진다고 한다. 이제 2단계 물리탐사가 끝났을 뿐이고, 실제 매장량이 얼마일지, 경제성이 있을지는 앞으로 확인해야 한다. 물리탐사 단계의 추정 자원량과 시추 이후 실제 추정량을 엄격히 구분하는 것이 자원 개발 사업의 통례인데도, 윤석열과 그 똘마니 산업부는 “석유·가스 최대 매장 가능성인 140억 배럴은 현 가치로는 삼성전자 총 시가총액의 5배 수준”이라며 기대를 부풀렸다. 긁지도 않은 즉석복권을 치켜들며 당첨금 운운하는 꼴이다.

 

근본적 질문 : 경제성이 있으면 유전 개발은 타당한가?

 

윤석열이 “세계 최고 수준의 심해기술평가 전문기업”이라고 평가한 액트지오가 과연 실제 전문성이 있는지, 시추공 하나당 1천억 원이 소요되는 막대한 예산 투입에 수상한 흔적은 없는지 따지고 들어가는 것은 물론 정당하다. 그러나 그에 앞서 판단해야 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설령 윤석열의 장밋빛 전망대로 유전 개발이 막대한 경제적 효과를 불러온다 치더라도, 기후재난이 현실화한 지금 유전 개발을 하는 것이 정당한가 하는 질문이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시추 작업을 통해 실제로 매장이 확인되면 경제성 평가를 실시하고, 경제성이 확인되면 2027~2028년 채굴을 위한 공사를 진행해 2035년에 상업 생산을 시작한다고 한다. 2035년이면 어떤 해인가. 2021년 탄소중립위원회는 2030년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로 2018년 대비 온실가스 40.0% 감축을 결정한 바 있다. 이를 통해 2050년 탄소중립에 도달한다는 것이 정부 계획이다.

 

자본가 정부의 이 계획이 기후재난을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란 것은 잠깐 묻어두자. 또한 2030년에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겨우 21.6% 수준에 맞추겠다는 한국 정부 계획을 두고 국제 자본가계급조차 비웃고 규탄한다는 사실 역시 잠깐 내버려두자. 온실가스의 실제 감축 여부가 이윤욕에 사로잡힌 자본의 선의(물론 존재하지 않는)에 온전히 맡겨져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NDC 달성과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선 최소한 추가적 온실가스 배출은 없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 화석연료 개발에 나서겠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2022년 전 세계에서 원유 44억 톤을 생산·사용하면서 71억 톤의 온실가스가 배출됐다고 한다. 윤석열의 장밋빛 전망대로 동해 유전에서 140억 배럴(원유 약 19억 톤)이 모두 채굴된다면, 이때 배출되는 전체 온실가스는 30억 톤 수준이 된다. 2022년 한국이 배출한 온실가스 총배출량 잠정치 6억 5천만 톤의 4.6배다.

 

6월 중순부터 시작된 때 이른 폭염은 우리가 살게 될 미래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일상화되는 폭염, 집중호우, 가뭄, 거대 산불 등에서 희생되는 사람들은 언제나 가장 가난한 노동자 민중일 것이다. 눈앞의 현실이 된 기후재난에 대처하려면(솔직히 이미 늦어버린 것 같다) 있는 유전도 폐쇄해야 하는 마당이다. 그런데도 자본가 정부는 유전을 새로 개발해 온실가스를 지금보다 더 배출하자는 정신 나간 소리를 지껄인다.

 

기후재난이 현실화한 지금, 유전 개발 자체가 정당한지 묻는 근본적 질문이 힘을 얻지 못하는 상황에는 자본가 정부의 국가 경제발전 이데올로기와 완전히 절연하고 있지 못하는 한국 시민사회의 문제도 있다. 윤석열의 동해 유전 발표 직후 다음날인 6월 4일,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이렇게 발언했다.

 

“석유가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충분히 비용을 투자하고도 그만큼의 경제적 가치가 나오느냐가 중요하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수 있다." 심지어 이헌석은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석유가 있다는 게 아니라 충분히 비용을 투자했을 때 그만큼의 경제성이 나오느냐는 것”, “제일 좋은 것은 모든 기름이 한 덩어리로 예쁘게 모여 있으면 상관이 없는데 예를 들면 여러 덩어리로 나뉘어 있으면 나중에 시추할 때 또 여러 군데를 파야 할 것”이라는 말까지 늘어놓았다.

 

이것이 명색 “자본에 짓밟히는 생명을 지키는 운동”(에너지정의행동 홈페이지)을 하겠다는 단체의 정책위원이 방송에서 떠들 소리인가? 경제성이 흘러넘치더라도 기후재난 앞에서 즉각 유전 개발을 중단하라고 해야하지 않겠는가? 태양광·풍력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G20 평균(2023년 기준 14.91%)은커녕 세계 평균(2023년 기준 13.3%)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한국(2023년 기준 5.34%)에서, 온실가스를 지금보다 더 배출하겠다는 범죄적 시도를 어떻게든 막아내자고 호소해야 정당하지 않은가?

 

이헌석 정책위원의 발언은 심지어 자신이 속한 에너지정의행동이 6월 3일 발표한 입장과도 배치되는 것으로, ‘기후재난 시대 유전 개발이 옳은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우는 처사다.

 

한국 태양광·풍력 재생에너지 비중은 G20은커녕 세계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국가주의 이데올로기 극복 없이는 기후재난 대응도, 노동자운동의 전진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자본가 정부의 국가 경제발전, 국익 이데올로기에 휘둘리는 것이 단지 기후정의운동 일부 인사에 국한된 경향이라고 볼 수 없다. 레닌은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에서 “몇몇 해외 나라들과 식민지의 노동을 착취하는 것에 의해서 생활하는 나라”, 즉 제국주의 국가에는 “기생성이라는 각인”이 새겨진다고 지적한 바 있다.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이런 면에서 보자면 한국은 제국주의 국가의 기생성을 점점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생산적이거나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지만, 어렵고 힘들며 위험한 일은 글로벌 사우스에서 이주한 노동자들의 몫이 된다. 그래서 리튬전지 제조 공장에서 불법 파견으로 일하던 이주노동자 수십 명이 사망하는 참변이 벌어지고, 이주 돌봄노동자를 최저임금도 주지 않은 채 대거 도입하겠다는 정책이 추진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 한국의 상층 노동자계급은 ‘내 집 마련’을 넘어 주식, 코인 금융투기에 골몰하며, 조직 노동운동은 자신의 협소한 조합주의적 이익 대신 노동자계급 전체의 이익을 위해 자본 이윤에 타격을 주는 진정한 노동자투쟁을 조직하는 것에 무관심하다.

 

백여 년 전의 식민지 경험, 그리고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한 유례없는 경제발전의 경험이 기묘하게 결합한 탓에 한국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는 도처(到處)에서 그 강력함을 뽐낸다. 그러나 전 지구가 기후재난으로 스러지는데 한국만 안전할 방법이 있을 리 없다. (과학적 사실을 말하자면 기후재난에서 한반도는 특히나 고통스러운 지역이다.) 또한 자본 이윤율이 장기침체에 빠진 시대, 이로써 제국주의 패권 경쟁이 전면화된 시대에 한국 혼자만 자본의 야만적 공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역시 엄밀히 말하자면 한반도는 제국주의 전쟁의 발발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의 하나다.)

 

한국의 노동자운동은 협소한 국가 경제발전 이데올로기 대신 노동자 국제주의의 이념으로 무장하고 세계 노동자계급 앞에 자기 의무를 다해야 한다. 우선 당장 지구의 기후재난을 가속(加速)할 동해 유전 개발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자.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최소한 국제 평균 수준으로 높이라고 요구하자. 돈벌이를 위해 탄소를 다량 배출하는 산업자본을 이제 사회가 운영·통제하자고 외치자. 최저임금도 주지 않겠다는 정부의 반노동 이주정책을 분쇄하고, 진정한 노동자 국제연대의 모범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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