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노동약자보호법’ 아닌 ‘사업주 보호법’ 만드는 윤석열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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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기고] ‘노동약자보호법’ 아닌 ‘사업주 보호법’ 만드는 윤석열 정부

=5월 14일 진행된 '함께 보듬는 따뜻한 노동 현장' 민생토론회 KTV국민방송 화면 갈무리

 

윤석열 정부, 노동약자를 보호하겠다?

 

지난 5월 14일, 윤석열 대통령은 ‘함께 보듬는 따뜻한 노동 현장’이라는 주제의 민생토론회에서 “‘노동약자 지원과 보호를 위한 법률’(약칭 노동약자보호법)을 제정해 노동약자를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책임지고 보호하겠다”고 말했다. 해당 법률안에는 △질병, 상해, 실업을 겪었을 때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공제회’ 설치 △노무제공자와 사업주 사이의 분쟁조정협의회 설치 △표준계약서 제정 △이를 위한 정부 재정지원 사업 등에 관한 법적 근거 등이 담길 예정이다. 대통령의 말 끝나기가 무섭게 이틀 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민생토론회 사후브리핑에서 “노동약자보호법 제정안이 올해 정기국회에서 논의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해당 법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려는 모양새다.

 

기존에 일하는 사람들을 포괄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근로기준법이나 노조법 등이 있음에도, 정부가 이러한 법률과는 별개의 시혜적 법안을 냈다는 점은 생각해 볼 만한 지점이다. 노동약자보호법 속 용어가 노동조합이 아닌 '공제회', 고용노동부/지방노동위원회가 아닌 '분쟁조정협의회', 근로계약서가 아닌 '표준계약서'인 것은 애초에 노동약자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시각에서 기인한다. ‘노동하는 약자’라면서 마치 사업주와 동등한 계약자인 양 취급한다.

 

=고용노동부에서 6월 9일 발표한 "노동약자를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보도자료 내용 갈무리

 

‘노동약자보호법’은 노동약자와 노동자를 갈라치는 법

 

사실상 정부가 말하는 노동약자, 즉 미조직 노동자들은 작은사업장/저임금/불안정 노동자들일 것이다. 이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겪고 있는 문제는 최저임금 미지급, 임금체불, 갑질, 장시간 노동, 위험한 노동, 고용불안 등이다. 그런데 이를 단순히 공제회 설치를 지원 받거나, 분쟁조정위원회의 도움을 받거나, 표준계약서를 작성한다고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정부는 ‘노동자의 권리와 사용자의 책임’보다는 ‘정부의 지원과 도움’이란 소극적이고 시혜적인 방식으로 노동약자를 보호하겠다고 나선다. 그러나 법적 강제력이 없는 방식으로는 일터가 바뀔 수 없다. 현 시스템은 ‘노동약자’를 통해 이윤을 내야 작동하기 때문이다. 일터에서 노동자의 권리와 사용자의 책임을 명확히 강제하지 않으면 노동자들의 권리는 계속 침해된다. 이 법이 제시하는 권리는 기존 근로기준법이 보장하는 노동자의 권리에 미치지 못할뿐더러, 지속되는 권리침해를 정부의 지원으로 메꾸는 것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셈이다.

 

애초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프리랜서·배달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는 것에 대해 “(노-사에게) 굉장히 복잡한 권리·의무가 생기고 (사용자를) 규제하기 위한 처벌 조항이 들어간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표했다. ‘복잡한 의무와 권리’ 없이 노동약자를 보호할 수 있을까? 그의 말은 사실상 노동약자를 방임하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이러한 정부의 문제적인 정책은 기존 노무현, 문재인 정부 시절 추진되었었던 ‘비정규직 보호법’, ‘플랫폼 종사자 보호법’과도 맥을 같이한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비정규직 보호법'은 IMF 이후 급증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제정됐으나, 실제로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2년마다 상시적 고용불안에 빠뜨렸고, '비정규직'을 2등 노동으로 고착화시켰다. 문재인 정부 시기 추진했던 '플랫폼 종사자 보호법'도 배달라이더 등의 플랫폼 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는 대신, '플랫폼 종사자'라는 제3의 지위를 부여해 기존 노동법에 못 미치는 권리를 보장하자는 법이었다. 윤석열 정부가 말하는 '노동약자보호법' 또한 일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과 같은 기존 노동법을 확대/보강 적용해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기보다, 별도의 법을 만들어 오히려 취약한 노동을 고착화시키는 방식이다.

 

‘노동약자’ 보호에 필요한 것은 노동법 확대적용과 노조법 2,3조 개정이다

 

노동약자보호법은 언뜻 취약한 노동자들을 보호해주려는 좋은 법안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법이 시행된다면 노동자들의 권리구제, 권리쟁취 방식은 파편화될 것이고, 취약한 노동자들은 더 취약해질 것이다. 정부가 ‘노동자’라는 이름을 지우기 위해서,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고 단결할 권리를 제한하기 위해서, 노조 혐오의 기조를 깔고 법제정을 추진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현 정부가 내놓은 노동약자보호법은 실질적으로 정부가 책임지고 노동약자를 보호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책임지고 사업주들을 보호하겠다는 법안이다. 진정 노동약자를 보호하고 싶다면 무엇보다도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기존 노동법을 작은사업장, 플랫폼, 특수고용 등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확대해 강력하게 적용해야 한다.

 

또한 비정규직의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했지만, 결과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2년에 한 번씩 해고되도록 만들었던 '비정규직 보호법'의 사례에서 보듯, 일터에서 노동자가 사용자에 맞서 투쟁할 권리가 없이는 정부의 어떤 시혜적 지원정책도 노동자를 보호할 수 없다. 노동자와 사용자 간의 불평등한 관계는 어떤 보호법도 결국 사용자의 이익을 위해 작동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노동약자가 스스로를 조직하고 투쟁할 권리를 보장해야만, 진정으로 노동약자를 보호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법 전면적용을 통해 권리를 명문화하는 것에 더해, 원청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하고 투쟁할 권리를 전면적으로 보장하는 노조법 2,3조 개정이 뒷받침되어야만 노동약자의 권리가 현장에서 진정 보호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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