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기후정의운동의 성공적인 출발, 충남노동자행진: 계급투쟁과 기후정의운동은 더 연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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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노동자 기후정의운동의 성공적인 출발, 충남노동자행진: 계급투쟁과 기후정의운동은 더 연결되어야 한다

  • 고근형
  • 등록 2024.04.27 19:03
  • 조회수 179

 

지난 3월 30일, 충남 태안에서 열린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330 충남노동자행진(충남행진)>에 1,000여 명이 모였다. 근래 태안에서 열린 집회 중 가장 큰 규모의 투쟁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지난해 11월 충남행진 제안자 모임에서 언급된 숫자는 300 남짓이었다. 발전 현장에서 150명을 조직하고, 지역에서 그 정도의 숫자를 조직하면 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지난 1월 중순까지만 해도, 충남행진의 설계는 지역에서 노동자 기후운동의 첫발을 떼 보는데 맞춰져 있었다.

 

그러던 1월 20일, 충남행진 1차 전체회의에서 호기롭게 목표를 1,000명으로 올려잡았다. 충남을 넘어, 충남행진에 함께하는 전국적, 계급적 연대를 조직하자는 취지다. 인구 3만이 안 되는 태안에서 1천 명 규모의 투쟁이 가능할까. 준비팀은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3월 30일까지의 사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두 달, 전국 각지에서 충남행진에 관심을 갖고 자발적으로 연대를 준비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기후활동가들은 물론, 다양한 지역과 업종의 노동자들도 충남행진에 참여했다. 충남행진이 이들을 조직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노동자가 앞장서는 기후정의행진이 시작됐다

 

충남행진은 한국에서 노동자가 제안하고 주도한 첫 번째 기후정의행진이다. 충남행진을 제안한 주체는 정의로운 에너지전환을 위한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모임(정태모)을 비롯한 태안의 발전노동자들이었다. 특히 내년 12월 태안 1, 2호기 폐쇄로 고용위기에 직면한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는 살아남기 위해서 싸울 수밖에 없다. 충남행진의 제안서에는 ▲정부의 시혜가 아닌 투쟁으로 정의로운 전환 ▲단 한 명의 해고 없는 정의로운 전환 쟁취 ▲아래로부터 조직하고 노동자가 주체가 되는 투쟁 ▲노동자가 앞장서는 기후정의운동을 명시하고 있다. 노동자의 투쟁으로 생존권과 정의로운 전환을 쟁취하겠다는 의지다.

 

특히 태안 발전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생존권 투쟁을 기후정의운동으로 연결했다.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석탄발전소 폐쇄는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는 석탄발전소를 민간 LNG 발전소로 대체할 뿐, 발전노동자들의 일자리는 보장하지 않았다. 기후파괴에 앞장섰던 것은 정부와 에너지 자본이었으나, 그 피해는 노동자들에게 전가된다. 발전노동자들은 여기에 공공재생에너지를 통한 총고용 보장과 기후위기 해결을 요구했다. 민영화된 에너지 산업은 기후위기도, 고용위기도 해결할 수 없으며, 에너지 산업에 대한 국유화와 민주적 통제가 생존을 위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충남행진은 이 요구를 정식화하고 전국적인 연대를 건설한 첫 번째 투쟁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충남행진은 한국 노동운동과 기후정의운동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첫째, 기후정의운동과의 연대를 통해 노동자 운동이 사회적 지지와 헤게모니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모든 노동자 생존권 투쟁은 그 자체로 정당하지만, 최근 노동운동의 상태는 광범위한 민중의 지지를 조직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기후정의운동과의 연대를 통해 노동자들의 투쟁이 모든 민중을 위한 투쟁임을 보여줄 수 있었다. 단적으로, 충남행진에 함께한 환경단체 가운데에는 지난해 414 기후정의파업에서 이탈했던 단체가 포함되어 있다. 노동자 기후정의운동이 기후-환경운동에서 얼마나 넓은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기후정의운동은 노동운동과의 결합을 통해 구체적인 투쟁의 현장과 힘을 확보할 수 있었다. 지난 수년간 진행된 9월 기후행동은 한편으로는 광범한 민중의 참여를 이끌어냈지만, 투쟁이 아닌 하루의 행사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평가가 공존한다. 이는 무엇보다 자기 현장에서 끈질기게 투쟁을 이어갈 주체가 모호했기 때문이다. 충남행진은 바로 산업 현장의 노동자들이 기후정의운동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투쟁이었다. 특히 발전노동자들은 임박한 발전소 폐쇄를 앞두고 싸움에 나설 수밖에 없다. 기후정의운동의 과제는 이들과 함께 싸우는 것이어야 한다. 발전노동자들의 투쟁을 기후정의투쟁으로 규정하면서 운동을 진전시켜야 한다.

 

노동운동과 기후정의운동의 이분법을 넘어, 함께 현장을 정치화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자

 

충남행진은 한편 정규직과 비정규직 운동의 상태를 정직하게 드러낸 계기였다.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는 발전소 폐쇄가 곧 생존의 위기로 연결되는 반면, 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이 보장되어 있다. ‘석탄발전은 멈춰도 우리 삶은 멈출 수 없다’라는 충남행진의 슬로건은 발전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관계와 직결되지 않은바, 정규직 노동자들의 참여는 상대적으로 미온적이었다. 그나마 참여한 정규직 노동자 역시 2002년 발전 파업을 경험한 세대가 다수였던 반면, 청년 정규직 노동자들의 참여는 거의 없었다.

 

물론 이는 발전소뿐 아니라 한국 노동운동이 함께 겪고 있는 문제다. 특히 정규직 입사시험을 통과한 청년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비정규직과 함께하는 연대투쟁은 어려운 과제다. 그러나 충남행진은 정규직 노동자들에겐 생존권 투쟁을 넘어선 정치·연대투쟁일 수밖에 없다. 이들을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관료적 동원질서를 넘어 현장을 정치적으로 설득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민간 LNG 발전으로의 전환과 국가책임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중 무엇이 더 사회적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지. 비정규직을 해고하는 에너지전환과 총고용을 보장하는 에너지전환 중 무엇이 옳은 것인지 그들과 토론하고 설득해야 한다.

 

현장을 조직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노동조합의 과제다. 어쩌면 노조 바깥의 활동가들이 직접 노동자를 조직한다는 것은 어딘가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실제 330 충남행진을 준비하면서, 추진위원회의 사업은 발전 현장을 조직하기보다 외부 연대를 조직하는 데 방점을 두었다. 그러나 기후파국이 현실화되는 지금, 기후정의운동 역시 노동자를 기후정의운동으로 조직하는 데 함께 나서야 한다. 독일 메가 스트라이크(거대한 파업)의 사례를 보자. ‘미래를 위한 금요일’ 활동가들은 3년간 대중교통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데 매진했고, 그 결과 작년과 올해 연달아 노동자 기후파업을 실현했다. 한국의 기후정의운동 역시 현장에 더 밀착해 노동자들을 조직해야 한다. 기후활동가들이 나서서 정의로운 산업 전환을 위한 원·하청 공동투쟁의 필요성을 선전하고 조직해야 한다.

 

다양한 업종에서 노동자 기후정의운동에 착수하자

 

충남행진의 중심 제안 주체는 분명 발전노동자들이었다. 그러나 330 당일에는 다른 업종의 노동자들도 대오에 함께했다. 특히 본무대 발언자와 행진 연설자 중 3명은 금속사업 노동자였다. 이들의 발언은 금속산업 기후정의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자동차 부품사 노동자의 발언을 들어보자.

 

“저희는 전기차·수소차로의 전환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내연기관차가 없어지더라도 삶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동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기후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데 함께 참여하기를 원합니다.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데 있어 한쪽에서는 자본가들은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노동자들이 노동현장에서 쫓겨나 삶의 낭떠러지로 떠밀려 죽어 나가는 비극이 벌어져서는 안 됩니다.

 

자본과 정권은 산업전환과정에서 노동시간을 단축해서 일자리를 늘리는 등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해야 합니다. 저희 자동차 부품사 노동자들은 노동자가 죽어 나가는 방식이 아니라 노동자가 사는 방식의 정의로운 전환이 이뤄질 수 있도록 투쟁할 것입니다.”

 

금속산업 노동자들의 기후정의운동은 발전노동자들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산업 전환을 앞두고 자본은 그 비용을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있다. 금속노동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금속 자본과 싸워야 한다. 총고용 보장-비정규직 철폐-생활임금 쟁취-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고, 그 비용과 책임을 기후위기-비정규직 양산 주범인 금속 자본에 물어야 한다.

 

이는 동시에 기후정의운동의 요구이기도 하다. 탄소배출 대부분이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바, 노동시간 단축은 기후정의를 위해 필수적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노동자는 오히려 물량 확대와 잔업, 특근을 선호할 수 있다. 이는 대다수 노동자에게 생활임금이 보장되지 않고, 임금이 작업량과 연동되기 때문이다. 물량에 무관한 생활임금 보장, 노동조건 후퇴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함께 요구할 때, 기후정의도 가능하고 노동해방도 가능하다.

 

충남행진이 금속노동자의 기후정의운동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사업장을 넘나들며 금속 자본과 함께 싸우기 위한 연대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충남행진에 참여했던 금속노동자들과 함께, 금속노동자의 기후정의운동을 확대하기 위한 논의를 충남지역 금속사업장으로 가져가야 한다.

 

산업국유화와 노동자 산업통제의 전망 하에, 기후정의 계급투쟁을 확대해나가자

 

330 충남노동자행진이 성공으로 끝났지만, 총고용 보장 없는 발전소 폐쇄는 현재진행형이다. 에너지 산업이 지금처럼 민간 자본에 잠식당했다면, 총고용 보장이든 재생에너지 전환이든 그저 자본과 정부의 선의에 기댈 밖에 없다. 발전노동자 총고용 보장과 재생에너지 전환은 에너지 산업 국유화를 통한 노동자민중의 통제를 전제할 때 가능하다. 산업국유화-노동자 산업통제 전망 하에 지역과 현장에서 기후정의 계급투쟁을 확대해야 한다.

 

당장 2025년 태안 1, 2호기 폐쇄, 2026년 하동 1호기 등 석탄발전소 폐쇄가 임박했다. 싸워야 한다. 하동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오는 5월 말 최초의 파업투쟁을 앞두고 있다. 이들의 투쟁이 곧 노동자 기후정의운동이며, 노동운동과 기후정의운동이 함께 연대를 조직해야 한다. 충남지역 역시 태안 1, 2호기 폐쇄까지의 투쟁 계획을 준비하고, 2-3차 행진 등을 통해 발전노동자 조직 강화와 계급적 연대 확대를 시도해야 한다.

 

발전 뿐 아니라 공공교통, 금속 등 다른 부문으로도 기후정의운동을 뻗어나가야 한다. 금속부문의 경우 산업전환에 따른 구조조정과 고용위기가 임박한 사업장을 발굴하고, 그곳을 기후정의운동의 현장으로 조직해나가야 한다. 충남행진이 3월 30일 하루의 행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기후정의운동의 확대로 이어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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