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프레이저, 팔레스타인 연대 서명 이유로 독일 방문교수직에서 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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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낸시 프레이저, 팔레스타인 연대 서명 이유로 독일 방문교수직에서 해임

‘자유 팔레스타인’이 범죄인 독일의 재무장...노동자가 단결해야

  • 정은희
  • 등록 2024.04.15 13:05
  • 조회수 383

‘전진하는 페미니즘’ ‘좌파의 길’ 등을 쓴 대표적인 비판이론가 낸시 프레이저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독일 쾰른대 방문교수직에서 해임됐다.

 

독일 진보언론 <노이에스 도이칠란트> 12일 보도 등에 따르면, 낸시 프레이저는 독일 쾰른대 초청으로 오는 5월부터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센터에서 강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프레이저가 참여한 팔레스타인 연대 서명이 알려지면서 독일 쾰른대가 그에게 약속한 방문교수직을 일방적으로 취소한다고 통보했다.

 

<노이에스 도이칠란트> 화면 갈무리
 

앞서 프레이저는 지난해 11월 북미, 라틴아메리카, 유럽 출신의 철학자 약 200명과 함께 ‘팔레스타인을 위한 철학’이라는 이름의 선언문에 서명했다. 이 선언문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 공격으로 이미 8,500명 이상이 사망한 시점에서, 팔레스타인 민중에 연대하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을 규탄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선언이 최근 온라인에 게시되자 학교 측이 프레이저에게 메일을 보내 그가 선언에 참여했다는 사실에 대학 총장이 우려를 표했다며 입장을 분명히 해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프레이저는 “내가 초대된 이유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견해와 전혀 무관한 나의 학문적 연구 때문이었다”라며 “이 문제에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며, 내가 유대인으로서 겪었던 고통을 포함해 모든 면에 수많은 고통이 존재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프레이저는 이 답장을 보낸 지 24시간 만에 학장으로부터 “입장을 수정할 의사가 없기 때문에 방문교수직을 취소할 수밖에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프레이저는 이에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자 정치적 자유에 대한 공격”이라고 규탄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낸시 프레이저를 이메일 한 통으로 해임할 만큼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 대한 독일 지배계급의 탄압은 극심하다. 대표적으로 독일 정부는 지난 12일 경찰 2,500명을 배치해 팔레스타인 연대 단체들이 개최하려 한 ‘팔레스타인 대회의’를 가로막았다. 증오 선동, 반유대주의, 폭력 미화, 폭력 행위가 일어날 위험이 있다는 이유였다. 그에 앞서 독일 시중은행인 베를리너 스파카쎄는 한 유대인 평화단체가 관리하는 이 행사 후원 계좌를 차단했다. 또 이날 발표할 예정이었던 한 의사는 베를린 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했다. 하싼 아부 시테(Ghassan Abu Sitteh)라는 이름의 그는 국경없는의사회와 함께 43일 동안 가자지구 알시파 병원에서 일한 경험을 팔레스타인 대회의에서 전하려고 했으나 독일 당국에 가로막힌 것이다.

 

독일 당국은 ‘반유대주의’라는 이유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탄압해 왔지만, 이는 지난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과 연이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이후 더욱 격화하고 있다. 지난 10월 20일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가 열린 베를린에서는 174명이 체포됐고 65명이 기소됐다. 이때 쿠피야(팔레스타인 스카프)를 착용하고 카페나 레스토랑에 앉아 있던 사람들도 무작위로 연행됐다. 지난 12월 20일에는 경찰 170명이 베를린에서 ‘팔레스타인 해방 없이 여성해방은 없다’라는 제목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올렸던 반자본주의 페미니스트 단체 조라(Zora)를 포함해 8개 단체를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활동가들의 자택도 수색하고 휴대전화나 데이터 저장장치를 압수하고 있다. 함부르크 경찰은 지난 10월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 참가자에게 최대 500유로의 벌금을 부과하고, 주최자에게는 최대 1년의 징역형을 내린다는 일반처분을 발표했다. 3월 초에는 ‘하마스와 수감자 연대를 위한 팔레스타인 네트워크 사미둔’이라는 단체가 해산됐다. 이외에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을 ‘대량 학살’이라고 부르거나 ‘프리(free) 팔레스타인’이나 ‘정착민 식민주의와 아파르트헤이트의 종식’을 요구하거나, 희생된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추모하고자 하는 사람은 법원으로부터 기소될 수 있다. “강에서 바다까지 팔레스타인은 자유로울 것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는 이유로 벌금이 부과된 사례도 있다. 하지만 실제 유대인이나 이주민을 공격하는 나치에 대한 조사는 더디다.

 

이러한 처사는 독일 지배계급의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민낯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이미 독일 지배계급은 10월 7일 하마스가 주도한 대 이스라엘 공세 후 만장일치로 ‘팔레스타인 테러’를 비난하며 이스라엘의 보복을 환영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겉으로는 이스라엘의 자위권과 평화를 지지하는 듯하지만,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평화가 아니라 중동에서의 패권과 전쟁이윤이다.

 

단적으로 독일은 이스라엘에 미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기를 팔고 있다. 2023년 10월 7일 이후 대 이스라엘에 대한 독일의 무기 수출액은 1년 전의 10배를 넘어섰다. 영국 연구 기관 포렌식 아키텍처(Forensic Architecture)의 독일 자매 기관인 포렌시스(Forensis)가 최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2023년 독일은 이스라엘 전체 무기 수입의 47%를,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 동안에는 전체 무기 수입의 30%를 차지했고, 이들 무기 중 적어도 일부는 가자지구에서 사용됐다. 또 2003년부터 독일은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수출을 위해 4,427건의 개별 무기 수출을 허가했으며, 그 규모는 약 33억 유로에 달한다. 승인율은 99.75%였다. 이스라엘의 대형 재래식 무기 수입량을 기준으로 하면, 지난 20년 동안 독일은 꾸준히 2위를 차지했으며, 어떤 해에는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2023년 승인된 무기 수출 총액은 3억 2,650만 유로였으며, 이는 대부분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공격과 반격 이후 승인됐다. 지난해 11월 <파이낸셜타임스>는 독일 정부가 이스라엘 무기 신청 처리 속도를 높이기 위해 외무부, 경제부, 수출통제국 간 실무그룹을 구성했다고 보도했다. 그사이 팔레스타인에선 35,000명 이상이 살해됐으며, 사망한 민간인의 70%는 여성과 어린이였다. 또 100만 명 이상의 소녀와 여성은 난민이 됐다.

 

중국과 BRICS의 부상,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등 심화하고 있는 다극체제와 전쟁 위기 속에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 2월 2,500명의 시위대가 둘러싼 뮌헨안보회의에서 “안보가 없으면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이 안보를 부르짖을수록 그들의 총구는 다시 팔레스타인과 노동자민중을 향할 것이다. 그래서 600명의 독일 공공부문 노동자가 지난 4일 집단으로 발표한 “이스라엘 정부에 대한 무기 공급 즉각 중단”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이 더욱 주목된다. 자본주의 위기의 시대, 노동자가 팔레스타인 학살과 전쟁에 반대해 분연히 일어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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