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해방 없이 노동해방 없다” 박순향 지부장을 만나다_워크숍 ‘찾아가는 여성파업’(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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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여성해방 없이 노동해방 없다” 박순향 지부장을 만나다_워크숍 ‘찾아가는 여성파업’(4)

  • 유지원
  • 등록 2024.04.05 18:40
  • 조회수 423

2024년 3‧8 여성파업조직위원회는 여러 사업장의 현장 노동자들과 함께 워크숍 ‘찾아가는 여성파업’을 진행했다. 이번 회차에서는 ‘찾아가는 여성파업’에 참여한 박순향 톨게이트지부 지부장으로부터 톨게이트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과 여성파업에 대한 소감을 듣는다.

_편집자 주

 

지난 3월 8일, 보신각에서 2024 3.8 여성파업 본대회가 치러졌다. 이날 여성파업 대오는 수많은 현장 여성 노동자와 활동가로 구성되어 열기를 자랑했다. “역행하는 시대, 돌파하는 우리의 투쟁”. “여성이 멈추면, 세상도 멈춘다”. 미국에서, 러시아에서, 아이슬란드에서, 스페인에서, 아르헨티나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보여준 파업의 구호가 한국 여성 노동자의 손에서 다시 빛나는 순간이었다. 대회가 진행되던 중 유독 결연하고 드높은 목소리로 대오의 집중을 끌어가던 목소리가 있었다. 사회를 맡은 박순향 민주일반연맹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지부장이었다. 톨게이트 투쟁 승리, 직접고용 쟁취 후 4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 박 지부장을 만나 그가 경험한 여성파업을 들었다.

 

▲2024년 3.8여성파업대회에 참가한 톨게이트지부 조합원 모습 ©스튜디오 알

 

직접 고용으로 투쟁 승리했어도 노동자의 싸움은 끝나지 않아

 

2017년, 자신만만하게 출발한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은 ‘직접고용’ 아닌 ‘자회사 전환’의 모습을 하고 톨게이트 노동자를 찾아 왔다.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해주겠다는 정부의 호언장담은 허울뿐이었다. 노사정 협의회가 꾸려지자마자 조합원 갈라치기에 들어간 도로공사 측은 온갖 회유와 압박으로 6,500명의 노동자를 자회사에 떠넘겼다. 직접고용을 외치며 남은 노동자는 고작 1,500명이었다. 하지만 이 1,500명마저도 2019년 6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순차적으로 해고되면서 톨게이트 투쟁은 시작되었다. 캐노피에 올라가 98일간 고공농성에 청와대 노숙농성까지. 팔뚝질조차 낯설었던 조합원들은 투쟁이 전개되는 동안 차차 서로의 굳센 ‘동지’가 되었다. 여성으로서, 내 현장을 지키고 싶은 노동자로서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결의 높은 투쟁을 묵묵히 이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2020년 5월 14일, 톨게이트 조합원들이 직접 고용되었다. 눈부신 투쟁 승리의 결과였다.

 

그러나 직접 고용 이후에도 도로공사의 이유 없는 괴롭힘은 끝나지 않았다. 도로공사는 조합원들이 기존에 맡던 수납이 아니라 현장 지원이라는 새로운 직군을 만들었다. 고속도로 내의 졸음 쉼터 청소, 휴게소 녹지 청소, 고속도로 국도변 교량 밑 녹지대 청소 등 엄연히 외주업체가 담당하던 일을 조합원들에게 전가하는 건 기본이었다. 직접 고용되어 일터로 향한 조합원들에게 갖가지 업무가 마구잡이식으로 맡겨졌다. 물론 앞선 두 번의 투쟁을 승리로 이끈 경험이 있던 박 지부장과 톨게이트 조합원들은 순순히 져 주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우리는 떼쓰는 사람이 아니다’라 며 절박한 구호를 외친 시간들은 박 지부장을 포함한 조합원들에게 싸우면 바뀐다는 교훈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우선 ‘불편한 눈’이 트이고 나니 도로공사의 횡포에 가만 있을 수만은 없었다. 톨게이트 조합원들은 위험성 평가, 작업 중지권 행사와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도로공사의 보복성 업무 전가를 저지했다. 박 지부장은 “직접 고용 이후로도 업무 투쟁을 통해 알찬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톨게이트 조합원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박 지부장에 따르면 톨게이트지부는 모두가 일터로 돌아간 지금도 상/하반기 조합원 교육, 하반기 간부 수련회를 통해 소통과 단결의 결의를 다지고 있다. 또 한 달에 한 번은 꼭 운영위원회 자체 회의 이후 전 조합원 줌 회의를 한다고 한다. 박 지부장은 “이해도와 단결력은 경험에서 나온다고 생각된다. 고통을 겪어본 사람은 타인의 고통도 금방 이해하고 도움을 줄 수 있다. 톨게이트지부 조합원들은 투쟁을 겪었고, (투쟁 과정이) 어려웠던 상황 중에 많은 연대를 받았기 때문에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지속적인 교육과 논의, 소통을 거치지 않으면 투쟁 당시의 감각은 잊혀지고 편안함과 나태함이 지배하게 된다. (투쟁 중인 모든) 현장을 가지는 못하더라도 투쟁하는 곳을 공유하고, 지금 내가 몸은 회사와 가정에 있지만 누군가는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처절하게 싸우고 있다는 걸 계속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그 사실에 대해 소통하고 더 나아가 연대할 수 있게 간부가 앞장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캐노피 고공농성 투쟁 모습 ©전국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당신의 투쟁이 나의 투쟁, 사업장의 경계를 넘어선 여성 노동자 총단결로

 

어떤 계기로 2024 3.8 여성파업조직위에 참여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박 지부장은 의외의 대답을 꺼냈다. 박 지부장에 따르면 처음 여성파업조직위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그동안 투쟁 현장에서 숱하게 얼굴을 마주쳐 온 한 동지의 권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갈수록 실물적인 파업이 줄어들고 노동조합을 향한 탄압이 심화하는 시기에 정치 파업, 그것도 ‘여성파업’이라니. 분명 쉽지 않은 권유였다. 하지만 박 지부장에게는 동지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는 기억이 있었다. 바로 톨게이트지부 투쟁 중 겪은 젠더 불평등의 기억이었다. 투쟁 중 조합원들은 천막 농성을 하면서도 오후 6시가 되면 집에 밥을 차리러 가야 했다. 구호를 제창하다가도 빠져나와 시부모를 병원에 모시고 가야 했고, 지친 몸을 끌고 귀가하면 (투쟁을) 때려치우고 집에 있으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물론 박 지부장도 마찬가지였다. 톨게이트 조합원들은 사측만이 아니라 가정의, 노동운동 현장의, 주변 사람들의 젠더 불평등과도 싸워야 했다. 박 지부장은 당시의 경험을 회고하며 “우리 사회에서 남성 노동자가 투쟁하는 것은 멋지고 응원받을 일이라 하면서 여성의 몸으로 투쟁하는 건 (내가) 미친 것이란 소리를 들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런 불평등의 경험은 박 지부장을 여성파업조직위로 나서게 했다.

 

‘아래로부터의 조직화’, ‘노동자의 현실과 결합하는 정치 파업’, ‘주체인 여성 노동자와 모든 노동자를 연결하는 여성파업’. 2024 3.8 여성파업은 이와 같은 첫 시작의 마음가짐을 잃지 않기 위해 내내 최선을 다했다. 2024 3.8여성파업조직위는 △ 성별 임금격차 해소 △ 돌봄 공공성 강화 △ 고용안정과 비정규직 철폐 등 일하는 모두의 노동권 보장 △ 임신 중지에 건강보험 적용, 유산 유도제 도입 △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다섯 가지 요구를 내걸었고 끝까지 고수했다. 다섯이면 다섯 전부 여성 노동자의 고통과 그 원인을 날카롭게 짚어낸 요구들이었지만. 박 지부장의 마음에는 ‘최저임금 인상’이 특히 와닿았다. 박 지부장은 최저임금 인상 요구를 고른 이유를 “남녀노소 (노동자계급이라면) 누구나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라 답했다.

 

박 지부장이 택한 요구안이 보여주듯, 여성파업조직위는 다양한 현장의 다양한 노동자들과 연대하며 유기적으로 나아갔다. 국제적으로 전개되었던 다른 여성파업들이 그랬던 것처럼 전체 노동자의 절박한 상황을 기조에 반영했으며 남성/퀴어 노동자도 대오에 결합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또 구미의 한국 옵티칼이나 명동의 세종호텔, 원주의 건강보험고객센터 등 한창 투쟁 중인 동지들을 찾아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론 많은 노동자와 손을 맞잡으려 하다 보니 자연히 아쉬운 점이 생겼다. 박 지부장은 다시 여성파업을 준비한다면 보완해야 할 점으로 세종호텔 앞에서 진행했던 오픈 마이크를 말했다. “오픈마이크를 세종호텔 앞에서 진행했고, 참여해서 건보 동지들 힘을 주었는데. 건보 동지들은 좋았겠지만 세종 동지들이 해고된 투쟁 현장인 만큼 그 동지들과도 (연대를 더 충분히) 진행했어야 했던 거 아닌가 생각된다”라며 박 지부장은 마지막 남은 아쉬움을 표했다. 그러나 연대의 기억은 파업을 준비하는 과정 가운데 인상 깊은 한 장면으로 남기도 했다. 박 지부장은 여성파업조직위 활동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으로 건강보험고객센터 노동자들과 함께한 용산 기자회견을 택했다. 박 지부장은 “(각 현장의 투쟁) 상황에 맞게 투쟁 현장과 소통하며 함께할 수 있는 것을 조직하고 실천하는 것이 좋았다”고 망설임 없이 부연했다.

 

▲2024년 3.8여성파업대회에 참가한 톨게이트지부 조합원 모습 ©스튜디오 알

 

다시 한번, 여성 노동자에게

 

여성파업은 무사히 마무리 되었지만, 박 지부장이 일하는 톨게이트 사업장에서 생리휴가는 여전히 무급이다. 여성 노동자라서 겪는 부조리와 혐오적인 말들은 파업 이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박 지부장은 “그 한 번이 두 번 세 번 (거듭될 때)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한 번 투쟁으로 당장 현실을 바꾸기는 힘들지언정 그 한 번으로 포문을 열 때, 두 번 반복해서 노동자가 여기 있음을 알릴 때, 세 번 두드려서 마침내 억압을 물리칠 때 세상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박 지부장은 올해 여성파업에 결합하지 못한 여성 노동자들에게 “생각을 바꾸는 건 어렵지만 한 번만 실천해 보세요”란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아직도 각종 언론과 보도에서는 자본주의 위기 현상인 저출생과 노동인구 감소를 여성 노동자의 책임으로 몰아가고 있다. 여성은 가정의 가장이 아니라는 편견. 여성 노동자의 임금은 ‘부수입’이나 ‘용돈벌이’라는 잘못된 편견이 장기적으로 저출생과 1인 가구 증가 현상을 부르는 것 같다고 박 지부장은 덧붙였다. 더불어 여성 노동자를 향한 무급 노동(가사 및 돌봄)에 대해서도 그는 의견을 밝혔다. “무급 (노동)이 당연한 것이란 시대는 지났고 난 딸이 둘이지만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며 박 지부장은 여성 노동자 이중 착취 구조에 대한 생각을 가감 없이 전했다.

 

2024 3.8 여성파업은 여성 노동자 계급투쟁의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여성 노동자의 생존권은 갈수록 더한 강도, 더 세밀한 방식으로 위협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역행하는 시대, 돌파하는 우리의 투쟁”! “여성이 멈추면, 세상도 멈춘다”! △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 저지 △ 최저 임금 인상 △ 돌봄 공공화를 위한 정치 파업 등 당면한 과제를 앞두고 여성 노동자의 절박한 투쟁으로 맞설 중요한 전환점이 바로 올해다. 이주/장애인/비정규 노동자와 같이 억압받는 노동자들과 연대해 자본에 대항하자. 전체 노동자계급이 함께 노동해방으로 나아가는 그 길에 여성 노동자 투쟁의 대오가 앞장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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