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강령] 3.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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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를 향한 전진

[기본강령] 3.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

기본 강령

 

2024년 2월 17일 제정

 

1. 자본주의 사회와 노동자계급의 해방

1) 자본주의 사회와 노동자계급

2) 자본주의 사회의 필연적인 발전경향과 노동자계급의 잠재력과 독립성

3) 노동자계급의 해방

 

2.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가는 이행의 시대

1) 다시 전면화한 자본주의 쇠퇴와 제국주의, 그리고 이행의 시대

2) 자본주의 체제위기에 맞서 부활하는 세계 노동자투쟁

3) 세계노동자혁명과 한국노동자계급의 과제

 

3.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

1) 개량주의·의회주의 반대하고 혁명적 사회주의 수호

2) 노동자 스스로의 해방노선

3) 노동자 국제주의와 혁명적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건설

4) 현장에 뿌리내리고 민주적 집중주의를 실현하는 조직

5) 노동자 공동전선과 노동자계급의 총단결 선도

6) 사회적 헤게모니

7) 사회주의 노동자권력과 대중투쟁강령

 

 

3.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

 

1917년 러시아 노동자혁명에서 시작해 1930년대 독일·프랑스·스페인의 거대한 노동자투쟁 등으로 이어졌던 20세기 전반부는 노동자계급의 위대한 혁명적 잠재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1968년에도 미국·유럽 등에서 노동자계급의 전투적 진출이 대대적으로 일어났다. 한국에서도 1987년 노동자대투쟁이 터져 나왔고, 그 뒤에도 한국 노동자계급은 수많은 투쟁 속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입증했다. 최근 10년 사이에는 칠레·프랑스 등에서 전투적인 노동자 투쟁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처럼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는 노동자계급의 잠재력은 유감없이 증명되었지만, 노동자혁명은 어느 한 나라에서도 온전하게 성공하지 못했고 노동자운동은 침체로부터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개량주의자들은 노동자계급에겐 혁명적 잠재력이 없다는 결론을 끌어내고 혁명과 노동자투쟁으로부터 도망쳐 왔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힘은 결코 소진하지 않았다. 기존 제조업 노동자들에 더해, 서비스 분야에서 노동자들이 급격하게 형성됨으로써 모든 나라에서 노동자계급은 더욱 결정적인 다수가 되어가고 있고, 사회적 생산에서 노동자계급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나아가서 세계적으로 더욱 긴밀히 연결되어가는 노동자계급의 잠재력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 문제는 이 거대한 잠재력을 불신하면서 자본주의에 굴복하는 세력이 노동자운동의 지도부를 형성해 왔던 것에 있다. 한마디로 “노동자계급 지도력의 위기”가 현재 한국을 비롯한 세계 노동자운동의 위기를 규정하고 있다. 이 위기를 극복하고 계급투쟁 속에서 노동자계급의 거대한 힘을 현실화하여 노동자혁명을 향해 이끌 진정 혁명적이고 노동자계급적인 지도력을 건설하는 것, 바로 이것이 현시대의 절체절명의 과제다.

 

19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국 노동자운동의 위기 또한, 다수 지도자들이 대담하고 전면적인 노동자 단결투쟁을 전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투적·혁명적인 노동자계급 정당 건설로 전진하는 것을 겁냄으로써 나타난 뼈저린 역사적 패배들이 켜켜이 쌓인 결과물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노동자투쟁을 전투적·계급적으로 전진시키는 가운데, 노동자계급의 가장 선진적인 투사들을 사회주의 전망하에 하나의 단일한 조직으로 통일시킨 사회주의 노동자당을 창건해야 한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그것에 복무하기 위한 조직적 수단이다. 우리가 혁명적 동지들과 힘을 모아 건설하고자 하는, 사회주의 노동자당의 핵심 노선은 다음과 같다.

 

 

1) 개량주의·의회주의 반대하고 혁명적 사회주의 수호

 

개량주의 정당들은 자본가들의 소유권을 조금 제한하기만 할 뿐 철폐하려 하지 않는다. 노동자권력을 쟁취하려고 투쟁하지 않고 자본가국가를 수선하려 할 뿐이다. 이들이 수행하는 객관적 역할은 노동자들을 혁명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묶어두면서 자본가권력을 보호하는 것이며 자본가들의 소유권을 지켜주는 것이다.

 

이렇게 혁명적 사회주의 노선을 거부한 결과, 개량주의 세력들은 의회주의에 몰두해왔다. 자본가국가 밑에서 몇몇 국회의원직이나 장관직, 대통령직을 얻어내는 데 집착하고 있다. 자본가국가를 그대로 둔 채로 얼굴만 바꾸겠다는 개량주의 노선의 결과물이었다. 이들은 노동자 정치운동을 투표소에 가서 자신들의 정당에 표를 찍는 것으로 제한해 왔으며, 총파업을 비롯해 자본가 국가에 대항하는 노동자의 직접적인 투쟁은 뒷전으로 밀어냈다.

 

자본주의 위기 국면에서 이 개량주의 정당들을 내세움으로써 자본가계급은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모면한다. 반면 개량주의 정당들이 노동자 민중에게 약속한 것들이 전혀 실현되지 못하고, 결국 노동자들이 배신당했음이 드러남으로써 노동자운동은 깊은 침체의 늪에 빠져들었다.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전망을 거부한 결과, 자본가들의 요구에 굴복해 실업·불평등·구조조정 등을 수용하고 관철했던 것이 개량주의 정당이 집권 후에 했던 일이다. 생산수단과 금융 등 경제의 결정적 권한을 틀어쥔 자들은 여전히 자본가들이었기 때문이다.

 

개량주의자들은 최선의 경우에도 칠레 아옌데 정권처럼, 노동자계급에게 노동자권력 수립으로 전진하는 대신 자본가 국가기구의 꼭대기에 놓인 사회당 정부를 방어하도록 요구했을 뿐이었다. 그 결과 노동자계급은 혁명의 기회를 날려버리고 자본가계급의 반혁명에 속수무책으로 궤멸하고 마는 비극적 결과를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아옌데 정부와 함께 칠레 노동자운동을 궤멸시킨 것은 바로 그 자본가 국가기구의 일부인 군대였다. 자본가국가를 철폐하지 않은 채 유지하려 했던 개량주의 전략의 참담한 결과물이었다.

 

이러한 개량주의 노선의 영향력은 노동조합운동 내에서도 퍼져있다. 바로 노동조합관료제다. 개량주의 정치에 영향받거나 개량주의 정당들과 한 몸이 된 노동조합 관료층은 ‘노동조합이 계급적이고 혁명적인 길을 버리고 개량적 처방을 따라 온건하게 나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그들은 결사적인 투쟁과 계급적 단결을 회피하고, 타협과 조합주의 노선에 노동조합을 묶어두려 안간힘을 쓴다. 이러한 노선이 번성한 결과, 노동조합운동은 허약해지고 계급대표성도 계속 부식되어 왔다. 광범한 노동자들이 ‘사회주의 혁명’의 필요성을 배우고, 이 혁명을 위해 단결하는 법을 깨우치며,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주체로 단련되어 가는 발판으로 노동조합운동이 전진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노동조합운동의 위기는 노동조합 관료층의 배신적 범죄 행위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오늘날 자본주의 쇠퇴가 본격화되면서 개량주의 정당과 노동조합 관료들의 한계는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노동자들의 투쟁 앞에서 약간의 임금인상이나 일자리 확대 등의 조치를 내놓을 여지가 있었던 시절과 달리, 오늘날 자본주의는 너무 위기가 심화하여 그것마저 제공할 능력이 없고 오히려 노동자들로부터 더 많이 강탈해야만 한다. 그 결과 개량주의 정당들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스스로 수용해 집행하기 일쑤이고, 노동조합 관료층은 노동자의 절실한 생존권을 지켜내는 데서 계속 실패하고 있다.

 

이처럼 자본주의가 쇠퇴하는 국면에서 노동자계급에게는 자본주의의 이윤 추구와 자본가정부의 탄압에 정면으로 맞서는 전투적·계급적 투쟁만이 유일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나아가서 모든 생산수단을 자본가계급과 자본가국가로부터 회수하여 노동자권력의 수중에 집중해 ‘생산수단의 사회적 공동소유’를 이룩하는 혁명적 조치로 전진해야만 쇠퇴하는 자본주의가 불러오는 참화로부터 노동자 민중이 벗어날 수 있다. 단호한 계급투쟁을 통해 이러한 노동자민중의 혁명적 진출을 선도하는 혁명적 지도력을 세워내는 것, 바로 그것이 현시대의 역사적 과제다.

 

우리가 추구하는 당은, 계급투쟁의 대안적 지도력을 세워내기 위한 실천적 분투를 통해 이러한 혁명적 사회주의 노선을 구현하는 당이다. 전투적 투쟁을 통해 노동자 생존권을 단호하게 수호하고, 정치총파업을 선도해 자본가국가에 맞선 정치투쟁을 주도하는 당, 나아가서 노동자 산업통제와 기간산업 국유화 투쟁 등을 통해 사회주의를 향해 노동자계급을 단련시키는 당만이 쇠퇴하는 자본주의에 맞서 노동자운동을 이끌 수 있다. 이러한 전진을 통해 민주노조운동이 계급대표성을 회복하고, 노동조합운동의 거대한 생명력을 되살리는 일도 촉진될 것이다. 자본주의 선거 참여와 국회의원직 등은 이러한 투쟁을 지원하고, 노동자 민중의 자기조직화를 촉진하며, 사회주의 혁명의 사활적 필요성을 널리 알리는 보조수단으로 배치될 것이다. 사회주의 노동자당은 이러한 노선에 입각해 수행하는 실천의 용광로 속에서 출현하고 확대될, 사회주의 혁명을 지향하는 노동자 민중의 선진적 투쟁조직들을 통해서 건설될 것이다.

 

 

2) 노동자 스스로의 해방노선

 

혁명의 본질은 대중이 사회의 운명에 직접 개입하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누군가에 의해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며, 오직 노동자계급 스스로의 자주적 운동을 통해서만 움켜쥘 수 있다. 게다가 사회주의 혁명은 한 유형의 착취자를 좀 더 진보적인 다른 유형의 착취자로 대체하는 지난날의 혁명이 아니라, 모든 착취자의 손아귀에서 생산수단을 빼앗아 전체 사회의 공동 소유물로 만들고 생산자들 자신이 운영함으로써 ‘계급제도’ 일반을 없애는 혁명이다. 따라서 이 혁명은 노동자계급이 전면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하며, 오직 이들의 주도권과 능동성에 바탕을 둬야만 비로소 승리할 수 있다. 사회주의가 관료주의적 접근과 양립할 수 없는 이유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을 통해 노동자계급이 수립해낸 노동자평의회 유형의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노동자 대중권력만이 “노동자계급 스스로의 자기해방 사상”인 사회주의의 참된 의미를 대변한다. 이 혁명은 노동자 민중이 인류와 노동자계급의 대의에 따라 생각하고 끌어낸 자기 결론에 입각하여 능동적으로 행동한 결과였다. 이 혁명이 수립한 노동자평의회 정부는 대중적인 토론을 통한 집단적인 결정을 기본으로 하였으며, 언제든지 대표자들을 소환하는 등 직접민주주의 정신을 최대한 실현했다. 노동자평의회 정부는 스스로 생산을 통제하고 착취자들의 반항에 맞서 무력을 행사함으로써 노동자 민중의 이해를 실현해나갔다. 나아가서 모든 노동자 민중을 하나로 결집하기 위해서 구소련 내 모든 민족의 평등과 자결권을 보장하고, 여성에게 남성과 동등한 임금 지급·임신중지 합법화·가사노동의 사회화 등 여성의 삶에도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이 수립한 이러한 노동자국가는 1920년대 볼셰비키 당내 민주주의 파괴와 관료화를 거쳐 1930년대 중반에 이르러 관료집단의 반혁명을 통해 완전히 붕괴되었다.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의 반혁명은 스타하노프식 노동강도 높이기, 노조와 노동자평의회 무력화, 관료적 계획화 등을 통해 노동자들을 ‘생산의 주인’에서 감시와 통제,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볼셰비키 당의 주요 지도자들 대부분을 처형하고 암살하는 억압정책도 자행했다. 관료적으로 진행되었던 “강제 농업집산화” 정책은 노동자와 가난한 농민 사이의 동맹을 파괴했고, 농민을 억압과 감시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가부장적 가족주의의 부활과 함께 임신 중지는 금지됐다. 또한 오직 결혼한 부부 관계만 국가가 공식적으로 승인했고, 성 소수자들은 박해받으며 감옥에 끌려갔다. 소연방 소수민족들과 인접 약소국들에 대한 대러시아 제국주의 정책도 부활했다. 이렇듯 노동자 민중의 피가 강물처럼 흘렀던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의 반혁명을 통해 노동자 민중은 다시 권력을 빼앗겼고 억압과 차별은 복원되었다. 사회주의 혁명의 원동력인 노동자 민중의 자발적·역동적인 혁명에너지는 파괴되고 말았다. 노동자 국가의 본질인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사회를 지배하는 노동자계급”, 그리고 이것을 실현하는 기구인 노동자평의회의 정부는 사실상 사라져버렸다.

 

이제 노동자계급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당과 국가의 관료들이 국가권력의 새로운 주인으로 등장했다. 일종의 “집단적” 자본가계급으로 관료집단은 기능했다. 이 체제를 우리는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체제라 부른다. ‘노동자계급은 잉여가치를 수탈당하고, 관료집단은 이를 바탕으로 국유화된 자본의 확대재생산을 추진하는 축적을 위한 축적체제’이기 때문이다. 구소련에서 등장한 반혁명의 영향력은 구소련에만 머물지 않았다. 구소련 관료체제의 영향력이 미치는 동유럽 국가들에서도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체제가 자리잡았다.

 

다른 한편으로 중국과 베트남 등에서는 소부르주아 민족혁명을 통해 등장한 국가가 ‘국가자본주의’ 체제로 진화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이 민족해방혁명을 주도한 주체는 노동자계급이 아니라 농민이었고, 여기에서는 노동자계급이 주인이 되어 성공시킨 노동자혁명이 애당초 없었다. 코민테른(제3인터내셔널)을 지배했던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이 노동자계급의 독립성과 주도성을 부정하는 식민지판 ‘인민전선노선’을 집행한 결과였다. 가령 아시아에서 노동자혁명을 이끄는 결정적 지위를 부여받고 있었던 중국 노동자계급운동은 스탈린 관료집단이 장악한 코민테른의 반동적 지도 때문에 무력화되면서 국민당 자본가 세력에 의해 파괴되고 말았다.

 

이런 식으로 식민지에서 민족해방혁명을 사회주의 혁명으로 성장 전화시키는 원동력인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 운동은 파괴되었다. 소부르주아 혁명주의 세력들은 노동자계급운동을 소부르주아 운동의 종속물로 전락시켰고, 그 한도를 벗어나는 순간, 노동자계급운동을 잔인하게 억압했고 통제했다. 이렇게 소부르주아 혁명주의 세력이 수립한 민족적 체제는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적 지도력이 발휘되지 않는 상태에서, 결국 민족경제 발전이란 이름으로 자본주의 축적과정을 떠맡아야 하는 운명에 직면했다.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체제의 형성은 그 표현이었다. 농민층의 자주적인 민족해방혁명이 수행되지도 않은 채 구소련 스탈린주의 체제의 군사적 지원에 의해 수립되었던 북한 정권의 경우, 이러한 관료적 지배체제의 억압적 성격은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런 체제들을 ‘모종의 사회주의 체제’로 규정하는 노선은 과거에는 진보적 소부르주아 혁명주의에 대한 굴종이었지만, 오늘날 이것은 반동적 국가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굴종이다.

 

그것이 등장한 역사적 기원은 서로 다르지만, 이렇게 구소련·동유럽·중국·북한 등에서 수립되었던 ‘국가자본주의’ 체제는 노동자들의 능동적인 참여와 지지를 끌어낼 수 없었기에 결정적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 1953년의 동독, 1956년의 헝가리, 1966년과 1989년의 중국, 1968년의 체코, 1980년의 폴란드 등에서 노동자들은 ‘국가자본주의’ 체제를 타도하는 노동자혁명으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관료적 지배체제를 뒤흔드는 투쟁으로 일어났다. 이러한 위기 앞에서 구소련·중국·베트남·동유럽 등에서 ‘국가자본주의’ 체제는 사적자본주의와 결합하는 등 변화를 추구했다. 하지만 노동자를 수탈해 축적하는 자들이 지배하는 사회체제는 그것이 관료적 계획경제 형태를 취하든, 사적인 시장경제 형태를 취하든 그 본질에서 전혀 다르지 않은 착취적이고 반동적인 자본주의 사회일 뿐이다. 반노동자계급 세력에 의해 관료적으로 운영되는 국가의 국유화는 사회주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오직 노동자대중이 스스로 사회의 운명에 개입해 주도력을 발휘하는 권력, 즉 노동자권력에 의해 이뤄지는 국유화만이 비로소 사회적 공동소유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다. 구소련 스탈린주의 체제와 중국, 북한의 관료적 지배 체제 모두는 사회주의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진정한 사회주의에 기반하지 않았을 때 마주치는 파국을 보여줄 뿐이다. 우리가 건설하고자 하는 사회주의 노동자당은 이런 지배자들의 가짜 사회주의를 거부하고 진정한 사회주의의 전통을 복원해, 모든 노동자의 희망으로 우뚝 서는 당이다.

 

구소련, 중국, 북한 등의 체제에 대해 어떤 이름을 붙이든 다음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첫째 스탈린주의 관료체제는 사회주의를 향한 운동을 억압하는 반동적 체제다. 이 체제는 반드시 타도되어야 하고, 이 체제와 사회주의 체제를 명확히 구별해야 한다. 물론 국유화된 생산수단은 사회주의 실현을 위한 형식적 조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기능하기 위한 핵심 조건은 권력을 노동자계급의 수중으로 이전하는 것이다. 둘째 세계 노동자혁명, 즉 세계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단결을 통해 세계적 수준에서 생산력을 작동시키지 않는 한, 고립된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를 온전히 실현하는 것은 물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사회주의 노동자당은 응당 세계 노동자혁명을 위해 현신해야만 한다. 또한 중국을 비롯한 스탈린주의 관료체제가 세계적 수준에서 자행하는, 제국주의 책동과 전쟁 등에 맞서 단호하게 반대하고 노동자 국제주의에 입각해 투쟁해야 한다. 이 공통분모의 범위 내에서 혁명적 사회주의 경향은 하나의 당으로 단결할 수 있다.

 

사회주의 노동자당은 노동자계급의 대용품이나 대리자가 아니다. ‘전지전능한 무오류의 당’이거나 노동자계급을 ‘대신’해 혁명을 하는 당은 더더욱 아니다. 사회주의 노동자당은 노동자계급의 자기 해방운동의 역사적 과정을 안내하고 촉진하는 촉매 역할을 담당할 뿐이다.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혁명적 상황을 낳는 것은 노동자들의 집단적 행동이다. 사회주의 노동자당이 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노동자대중의 운동을 의식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 운동의 에너지를 자본가계급으로부터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탈취해 노동자 자신의 권력으로 대체한다는 궁극적 목표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바로 이렇게 대중의 에너지가 모이고, 그 에너지가 혁명의 기관차를 움직일 수 있는 올바른 방향을 찾게 안내하고 앞장 서 이끄는 것이 진정한 사회주의 노동자당의 역할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주의 노동자당은 이러한 자주적 운동을 가로막는 온갖 유형의 관료주의적 질서와 통제, 억압에 맞서 투쟁하면서 노동자 스스로의 운동, 즉 노동자계급의 의식과 조직, 노동자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당이다.

 

 

3) 노동자 국제주의와 혁명적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건설

 

자본주의 체제 전반의 쇠퇴가 매우 심화하고 그에 따라 체제 전반의 이윤율이 바닥을 치게 되자, 지난 수십 년 동안 전 세계 자본가들은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를 끝없이 강화해 왔다. 그 과정에서 지구 전역에 휘몰아친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는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세계 각국을 서로 긴밀하게 연결하고 빠르게 변모시켜 사실상 하나의 지구촌으로 통합시켰다. 노동자 국제주의와 노동자 국제연대는 자본주의가 시작된 이래 노동자운동의 한결같은 과제였지만, 오늘날에는 더욱 큰 중요성과 의미, 실현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노동자 국제주의는 한국 노동자운동 안에서부터 실현되어야 한다. 우리는 한국 노동자운동이 다른 나라 노동자들과 물량 경쟁을 강요하는 자본가들에 맞서 노동자계급의 권리와 해방을 향해 전 세계 노동자들과 단결하고 연대할 수 있도록 앞장설 것이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모든 억압과 차별에 반대하면서, ‘노동자는 하나’라는 정신이 한국 노동자운동 속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앞장설 것이다. 노동자운동 안에서 노동자 국제주의를 훼손하는 민족주의 경향에도 적극적으로 맞설 것이다.

 

세계 각국의 자본가들은 자본의 경쟁력 강화라는 명분 아래 노동자들을 ‘바닥을 향한 경주’ 속으로 끝없이 몰아넣고 있다. 노동의 유연화, 임금 삭감, 사회복지 삭감, 노동법 개악 등이 세계 곳곳에서 수십 년째 경쟁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끝없이 강요되는 ‘바닥을 향한 경주’로부터 세계 각국의 노동자계급이 탈출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노동자 국제연대를 강력하게 건설해서 국제적 공동투쟁에 떨쳐나서는 것이다. 우리는 한국 노동자운동이 그러한 방향으로 힘차게 전진할 수 있도록 앞장설 것이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열강의 대결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속시키고 나아가 또 다른 전쟁을 향해 치닫고 있다. 우리는 한국 노동자계급이 모든 제국주의 세력과 그 하수인들에 맞서 ‘제국주의와 전쟁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투쟁’이라는 깃발을 들고 단호하게 투쟁할 수 있도록 앞장설 것이다.

 

오늘날 제국주의 억압과 수탈로부터의 해방은 자본가계급이나 소부르주아계급의 민족주의를 통해서가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를 향한 투쟁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약소국에 대한 침략·억압·수탈에 단호하게 반대하되, 약소국의 반동적 지배자들 또한 지지하지 않으면서, 제국주의와 자국 지배계급에 맞선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자주적인 투쟁에 적극 연대해 나갈 것이다.

 

앞으로 자본주의 위기가 격화할수록 사회주의 운동에 역동적인 성장의 기회가 뚜렷이 열릴 것이다. 각국 사회주의 운동이 서로 교류하고 상대의 경험으로부터 배우며 당면 과제를 위해 연대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사회주의 운동의 발전을 가속하기 위해 더욱 필수적이다. 우리는 해외 사회주의 세력과 교류·연대를 적극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노동자혁명과 사회주의 건설이 본질적으로 세계적인 과정이라면, 사회주의 노동자당 또한 궁극적으로는 세계적으로 결집해서 하나의 국제 사회주의 노동자당, 즉 혁명적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을 이루어야 한다. 우리는 혁명적 국제 경향과 긴밀히 협력·연대하면서 혁명적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건설을 함께 준비해 갈 것이다.

 

 

4) 현장에 뿌리내리고 민주적 집중주의를 실현하는 조직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은 노동자계급과 피억압 민중 속에 뿌리내려야 하며, 조직의 연결망을 통해 선진활동가들의 전투적·혁명적 의지와 에너지를 수렴해서 활동에 반영해야 한다. 또한 투쟁의 한가운데서 단련된 최상의 선진 투사들이 조직 활동의 중추 역할을 맡도록 배치함으로써 모든 계급투쟁을 선도하며 노동자 권력과 사회주의를 향해 전진해야 한다.

 

우리는 노동자 권력 장악과 사회주의를 향한 투쟁에 가장 적합한 조직노선을 채택해야 한다. 바로 모든 현장에 광범하게 뿌리내린 사회주의 현장 분회에 기초한 사회주의 노동자당 노선이다. 이것은 우리의 목표인 노동자계급과 피억압 민중의 생산 및 활동 공간에 기반한 노동자평의회 권력 수립에 온전히 복무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사회주의 현장 분회를 조직 골간으로 삼고 더 넓은 영역으로 조직을 확장함으로써 사회주의 노동자당을 건설할 것이다.

 

사회주의 현장 분회는 현장 투쟁과 정치투쟁, 사회적 억압과 차별에 맞선 투쟁에서 노동자계급의 원칙과 대의에 헌신하는 선진 투사들을 중심에 세워야 한다. 사회주의 현장 분회는 선진활동가들을 사회주의 사상과 실천으로 견인해 정치활동을 수행하는 필수적 수단이어야 한다. 우리에게 모든 선거는 노동자계급과 피억압 민중에게 다가가는 하나의 전술이며, 사회주의 정치활동의 본령은 현장 분회의 연결망을 통해 지역과 전국 차원의 계급투쟁을 추동하고 개량주의와 조합주의를 뛰어넘는 계급적·혁명적 전망을 조직하는 것이다. 또한 조직·미조직 노동자와 피억압 민중의 요구와 미래의 이익을 대변하는 전략적 과제에 복무하는 것이다. 모든 회원은 계급적·혁명적·전략적 전망에 근거해 실천하면서 노동조합을 비롯한 대중조직과 활동가조직과의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계급투쟁에서의 주도력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은 중앙·지역위·분회의 유기적 응집력 강화와 정치적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우리는 민주적 집중주의를 조직 운영 원리로 승인하며, 객관적 조건의 변화를 엄밀하게 분석·검토해 유연하게 적용한다. 사회주의 조직의 민주적 집중주의는 모든 회원이 조직의 기구에 직접 소속되어 함께 토론하고 실천함으로써 실현할 수 있다. 민주적 집중주의는 토론의 자유와 행동의 통일로 요약된다. 민주적 집중주의는 조직 내 민주주의에 대한 적극적인 보장에서부터 출발하며, 이는 일상적 보고를 통한 정보 공유, 적극적인 토론의 자유, 분파 형성권 등을 포함한다. 민주적 집중주의는 조직 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의견과 경향, 그에 따른 차이와 논쟁을 가장 올바르게 해결하도록 돕는다. 또한 모든 회원이 유기적 협력을 바탕으로 진지하고 책임성 있게 조직의 전진에 이바지할 수 있게 한다. 민주적 집중주의는 노동자계급과 피억압 민중의 완전한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 치열한 논쟁에 직면하더라도, 우리가 조직 내부의 응집성과 실천적 통일성을 훼손하지 않으며 조직 외부의 대중적 신뢰를 잃지 않게 하는 수단이다. 이런 점에서 민주적 집중주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통용되는 ‘속 빈 강정’ 같은 형식적·절차적 민주주의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우리가 민주적 집중주의를 채택하는 것은 내부의 철저한 규율과 조직의 전투적·정치적 정체성 유지, 전략·전술의 실천적 올바름을 입증함으로써 노동자계급과 피억압 민중의 지지를 확보함으로써 노동자혁명을 향해 나아가기 위함이다. 우리는 모든 활동과 투쟁에서 민주적 집중주의의 정신과 원리를 실현하며 조직의 전통을 세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모든 회원은 조직과 기관을 통해 집단적 활동을 구현함으로써 노동자계급과 피억압 민중의 계급투쟁을 추동하는 전투적 정당을 추구한다. 노동자계급과 피억압 민중의 요구와 견해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모든 투쟁에 적극 개입하며 선진 투사들과 함께 호흡할 줄 알아야 한다. 나아가 우리의 견해, 목적, 의도가 선진 투사와 대중에게 공개되고 일상적 검증을 거침으로써 활동을 일신 또 일신해야 한다. 우리는 조직 내외적으로 민주적 집중주의 조직원리를 실현함으로써 광범위한 노동자계급과 현장에 뿌리내린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을 향해 중단없이 전진할 것이다.

 

 

5) 노동자 공동전선과 노동자계급의 총단결 선도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은 자본가계급의 일상적 착취와 수탈, 실업 등 구체적인 공격에 맞선 투쟁과 지배계급의 반동과 탄압, 제국주의 패권과 전쟁, 사회적 소수자의 차별과 배제, 인종주의적 혐오와 학살 등에 맞선 투쟁에서 노동자 권력을 향해 전진하는 데 필요한 정치적·혁명적 역량을 촉진하기 위해 노동자 공동전선을 주목한다.

 

노동자 공동전선은 모든 나라 노동자계급 내부에 다양한 의식적 편차가 있고, 이에 기반해 개량주의 정당들이 대중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주·객관적 조건으로부터 제기된다. 대중이 착취 받고 억압받는 계급에서 사회혁명의 주도계급으로 발돋움하려면 계급투쟁의 축적된 경험이 필수적이다. 이에 우리는 대중이 당면한 요구를 쟁취함으로써 투쟁의 자신감과 능력을 높이고, 대중 속에서 자본주의 철폐에 필요한 의식적·조직적 역량을 형성하며, 혁명적 사회주의 세력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노동자 공동전선 전술을 능동적으로 운용하고자 한다.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은 노동자 공동전선 전술을 운용하는 데 있어서, 조직의 독자성을 유지하고 자기의 정치적 견해를 선전 선동할 권리를 보유해야 하며, 공동전선에 참여한 노동자의 계급의식을 성장시키고 혁명적 실천을 향해 나갈 수 있도록 대중투쟁강령을 매개로 활동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공동전선에서 노동자의 총단결과 공세적 투쟁을 선도함과 동시에, 개량주의 정당들이 대중의 이익과 미래를 대변할 수 없고 오히려 배신할 것이라는 점을 폭로·입증함으로써 노동자들을 그들로부터 이탈시켜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을 선택하도록 안내할 것이다. 우리가 공동전선을 통해 개량주의 정당을 지지하는 대중 속으로 들어간다는 점에서 항상 위험이 존재하기에, 공동전선을 사회주의 대의로 전진시키기 위해 우리는 헌신적인 실천, 강력한 응집력과 이론적 명확성을 통해서 지도력을 증명해야 한다는 점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한국 노동자계급과 피억압 민중은 오랜 침체기를 겪고 있다. 개량주의 정당들은 노동자들을 선거와 의회주의로 유인하고 있다. 민주노총을 틀어쥔 노조 관료들은 민주당에 의존하며 노동자투쟁을 통제하고 있다. 현재 사회주의 노동자당이 존재하지 않는 조건에서도 우리의 실천적 주도성과 대중투쟁강령을 매개로 한 다양한 공동전선 운용은 더욱 필요하다.

 

우리는 개량주의 정당들이 자본가 정당들과 함께하려는 ‘인민전선’ 경향을 단호히 반대한다. 이른바 ‘민주대연합’은 소부르주아 자유주의 정당과 민주당까지 포함한 인민전선의 명백한 한 표현이다. 인민전선은 노동자 운동의 독립성을 파괴하고 공세적인 노동자투쟁을 봉쇄하는 자본가계급의 전략이다. 또한 노동자계급을 자본가 정당의 이중대로 전락시켜 노동자혁명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지배계급의 반혁명 도구다. 우리는 인민전선의 본질과 배신적 결과를 낱낱이 밝히고 모든 노동자가 자본가 정당들과 완전히 단절하고 독립적 정치세력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우리는 개량주의 정당들과 노동조합 관료들이 장악한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객관적 상황에서 노동조합 공식 체계와 연결되는 활동에 기권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이 현장 노동자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적극적 수단이 되도록 개입할 것이다. 노동조합 상층체계와 직책에 안주하지 않고 현장조합원의 민주적 주체성과 실질적 능동성을 끌어올리며 개량주의·조합주의 관료들에 맞선 투쟁을 강화·확대해 노동조합운동의 민주적·전투적·계급적 재편을 위해 실천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노동자평의회 정신에 입각한 노동자 공동전선 건설에 복무하며 공동전선에 함께하는 선진활동가와 현장조합원들과 동지적으로 협력하면서 가장 헌신적이고 단호한 중핵이 되고자 분투할 것이다. 동시에 다양한 공동전선에서 우리가 제기하는 대중투쟁강령이 대중적 투쟁 요구로 자리 잡도록 설득하면서도, 공동전선의 성격과 발전 정도를 참작해 노동자의 의식과 조직을 한 단계 성장시키는 투쟁강령을 유연성 있게 적용할 것이다.

 

현시기 한국 노동자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노동자계급의 총단결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은 그 자체적으로는 착취와 수탈의 대상이지만, 노동자 총단결 투쟁을 통해 거대한 힘을 경험하면, 더 단호하고 더 급진적으로 전진할 수 있다. 지배계급은 비정규직 제도를 도입해 노동자를 분할하고, 노조 관료를 육성해 노동자 총단결 투쟁을 필사적으로 가로막는다. 이에 우리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든 성별의 노동자, 장애인 노동자와 비장애인 노동자, 정주노동자와 이주노동자, 고용노동자와 실업노동자 등 모든 노동자 총단결 투쟁을 가로막는 모든 형태의 조합주의, 관료주의, 종파주의, 노동자 분열주의에 맞서 투쟁할 것이다. 또한 노동자 총단결 투쟁을 실제화하기 위해 현장·지역·전국 차원에서 노동자의 자기조직화를 추진·지원하고 그 조직된 힘이 노동자 총단결 투쟁으로 전진하게 하는 선도자·조정자로 복무함으로써 공동전선이 참된 생명력을 갖고 탄생·전진하도록 도울 것이다.

우리는 다양한 공동전선 운용에서 당면한 정세에 필요한 요구와 공동행동 제안, 조직 간 단결을 위한 조정자의 역할, 공동전선 전진을 위한 대안 지도부의 면모 등 정치적 능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또한 노동자 공동전선을 통한 계급투쟁 속에서 축적된 경험을 토대로 미래의 노동자 국가, 사회주의 사회를 자주적으로 운영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함께 길러나갈 것이다. 나아가 노동자 공동전선 건설과 투쟁 속에서 배출된 전투적 노동자들이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의 주역으로 도약하도록 돕고 함께 전진할 것이다.

 

 

6) 사회적 헤게모니

 

노동자계급은 계급투쟁 속에서 자본주의 체제 아래 고통받는 다양한 민중을 이끌 수 있는 사회적 헤게모니를 발휘해야 한다. 소부르주아, 여성, 성소수자, 빈민, 장애인, 이주민, 학생, 청소년 등 자본주의 사회의 다양한 피억압 민중의 이해관계는 자본가계급의 이해관계와 본질적으로 충돌한다. 이들에 대한 착취와 억압, 차별과 배제 없이 자본가계급은 자신들의 권력과 질서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노동자계급 외의 다른 민중도 자본가계급의 지배 아래서 끊임없이 고통받는 위치에 있게 된다. 그렇지만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는 지배계급인 소수 자본가들의 헤게모니가 국가기구, 법률, 교육, 언론, 종교, 대중문화 등 사회의 전 영역에 걸쳐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자본가헤게모니에 대항해서 노동자계급의 사회적 헤게모니를 수립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노동자계급이 모든 민중이 해방되는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주체로서 자격을 형성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노동자계급의 사회적 헤게모니 수립은 손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목적의식적인 정치적 투쟁을 필요로 한다. 노동자들이 사업장 안에서의 투쟁, 조합주의적인 운동과 경제투쟁에만 멈춰있을 때, 사회적 헤게모니를 수립할 정치적 역량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노동자계급의 사회적 헤게모니는 다양한 피억압 민중이 겪고 있는 고통과 차별에 대해 인식하고,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계급적 입장을 갖고 앞장서 투쟁하며, 모든 민중을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으로 결집시킬 때 만들어질 수 있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는 다양한 피억압 민중의 역동적인 투쟁이 분출하고 있다. 자본주의 위기 심화에 따라 세계 민중의 억압과 고통이 누적되어 왔고, 이에 대한 분노는 현실에서의 위력적인 운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성억압, 기후위기, 인종차별 등에 맞선 격렬한 투쟁은 각국에서 진행되는 중이고, 특히나 자본주의 속에서 자신들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하는 많은 청년 세대들이 이러한 투쟁에 함께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피억압 민중의 투쟁에서 노동자계급이 중심이 되어 투쟁을 이끌지는 못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이와 같은 사회운동과 계급투쟁의 분리는 차별과 억압에 맞선 다양한 투쟁들이 그 역동성이나 광범위한 대중적 참여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체제에 근본적인 타격을 주지 못하고 있고, 명확한 변혁적 전망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게 만든다.

 

그럼에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피억압 민중의 투쟁은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광범위한 불만과 급진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급진화 가능성을 현실화시키고, 노동자계급이 억압과 차별에 맞선 투쟁들에서 사회적 헤게모니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운동의 계급적·정치적 발전과 지도력이 필수적이다.

 

노동자계급의 사회적 헤게모니는 단순히 노동자들이 다른 민중의 투쟁에 연대하거나, 공동의 요구를 내세우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피억압 민중의 투쟁에 노동자계급이 철저한 계급적 관점을 가지고 자본주의 철폐의 정치적 전망을 제시할 때, 자본가헤게모니에 대항할 힘을 가질 수 있다. 가부장제 아래서 고통받는 여성의 해방을 위해, 일상이 된 기후재난을 끝내고 기후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끝없는 경쟁 속에서도 미래를 기대하기 어려운 청년들을 위해 노동자계급이 맨 앞에서 투쟁하면서 자본주의 타도를 외칠 때, 다양한 민중의 지지 속에서 자본가들의 권력을 무너뜨리고 노동자권력을 수립할 힘을 확보할 수 있다.

 

이처럼 노동자계급의 사회적 헤게모니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정치적 구심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러한 정치적 구심이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 노동자당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건설하고자 하는 사회주의 노동자당은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억압받는 모든 민중의 해방을 위한 사회주의를 지향한다. 노동자계급이 겪고 있는 착취와 억압에 맞선 투쟁뿐만 아니라, 여성·성소수자·장애인·빈민·이주민·청소년 등 모든 억압받고 차별받는 이들의 투쟁을 선도하는 것 역시 우리가 만들 사회주의 노동자당의 핵심적인 역할이다. 이와 함께 사회주의 노동자당은 기후위기, 제국주의와 전쟁 등의 문제도 오직 계급투쟁의 힘으로만 해결할 수 있음을 증명할 것이다.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을 통해 우리는 노동자계급이 자본가계급에 맞서 사회적 헤게모니를 수립하고, 모든 억압받고 차별받는 민중의 해방을 위해 전진해 나갈 것이다.

 

 

7) 사회주의 노동자권력과 대중투쟁강령

 

처음부터 혁명을 목표로 벌어지는 계급투쟁은 없다. 계급투쟁의 성격은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역사는 작은 계기를 매개로 발생한 투쟁이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거대한 운동으로 발전해왔음을 드러낸다. 당장 실현할 수 있는 과제로서의 최소강령과 노동자권력 수립 후 비로소 가능한 과제로서의 최대강령을 나누고, 최소강령과 최대강령 사이에 침범할 수 없는 경계를 세울 경우 사회주의는 계급투쟁과 조응할 능력을 잃고 한낱 무기력한 이상으로 전락한다.

 

최소강령과 최대강령의 분리는 사회주의 운동을 발전시키지 못한다. 최소강령주의는 사회주의를 먼 훗날에나 가능한 것으로 규정하거나 현실 운동의 좌표로서 하등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며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가능한 과제만을 추구하는 개량주의로 귀결하며, 최대강령주의는 생존권을 요구하는 노동자 투쟁이 협소하고 혁명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기권하며 운동의 역할을 선전과 학습으로 한정하는 선전주의로 귀결한다. 최소강령주의자는 전투에서 승리하다보면 언젠가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믿으며, 최대강령주의자는 지난한 전투를 치르지 않고서도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사고는 사회주의 운동과 계급투쟁의 유기적 연관을 해체하고, 강령을 실천의 도구가 아니라 종교적 가르침으로 전락시킨다. 자본주의체제 내에서 가능한 조치만을 요구하는 최소강령주의, 부분적인 경제투쟁이라는 이유로 생존권 투쟁에 대한 개입을 기각하고 사회주의 혁명 이후에야 가능한 조치만을 선전하는 최대강령주의는 동전의 양면이며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일견 정반대로 보이는 양 경향의 실천적 결론은 같다.

 

정치투쟁과 경제투쟁,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투쟁과 생존권 투쟁은 긴밀한 연관 속에서 함께 발전한다. 계급투쟁에 잠재한 맹아를 자본주의 체제를 겨냥한 전체 노동자계급의 정치투쟁으로 발전시켜내는 것이 사회주의 운동이 존재하는 이유다. 이에 사회주의자는 노동자계급의 일부로서 생존권 투쟁에 목적의식적으로 결합하며 생존권 투쟁의 확대와 정치적 발전을 도모하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을 정치적으로 조직한다. 사회주의자는 생존권 투쟁을 기각하지 않음은 물론, 노동자계급의 일부로서 노동자계급의 자기조직화와 정치적 발전을 위해 싸운다.

 

위기와 재난의 시대, 자본주의는 임금과 노동조건에 대한 공격은 물론 노동자 민중의 기본권 박탈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이윤축적의 위기 앞에, 국가는 자본의 확대재생산을 보장하기 위한 제반 행정력 행사는 물론 노골적 폭력행사까지 주저하지 않는다. 이렇듯 심화하는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착취의 결과에 맞선 투쟁과 착취의 원인에 맞선 투쟁은 더욱 긴밀히 얽힌다. 대중투쟁강령을 매개로, 사회주의 운동은 생존을 위한 대중투쟁을 자본주의 자체에 맞선 투쟁으로 상승 연계하고자 분투한다. 이때, 공동전선은 대중투쟁강령을 더 많은 대중의 요구로 세우는 매개다. 사회주의자는 공동전선을 통해 전체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추동하는 한편, 당면 생존권 투쟁을 자본주의체제에 맞선 정치투쟁으로 발전시켜야할 필요와 방안을 공동전선 안에서 실천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을 조직한다.

 

비정규직 철폐와 해고금지, 노동시간 단축과 실업해소 등 노동자계급의 생존권을 지키는 투쟁, 집회·시위·결사의 자유와 사회주의 정치활동의 권리 등 민주적 권리를 지키는 투쟁, 자본을 위한 공적자금 투입에 반대하고 자본가계급의 경영권과 소유권을 박탈하며, 생존권 보장을 위해 산업을 국유화하고 노동자 민중 자신이 통제하기 위한 투쟁, 노동자정부를 수립하는 투쟁은 하나의 사슬로 얽힌 고리들이다. 우리, 노동자계급의 일원인 사회주의 운동세력은 정세에 조응하는 대중투쟁요구를 부단히 제출할 것이다. 이를 통해 국가와 산업, 사업장과 고용형태로 나뉜 노동자들을 하나의 계급으로 묶고, 지키는 투쟁을 나아가는 투쟁으로 발전시키며, 마침내 사회주의 노동자권력을 실현하고자 분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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