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강령] 1. 자본주의 사회와 노동자계급의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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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를 향한 전진

[기본강령] 1. 자본주의 사회와 노동자계급의 해방

기본 강령

 

2024년 2월 17일 제정

 

1. 자본주의 사회와 노동자계급의 해방

1) 자본주의 사회와 노동자계급

2) 자본주의 사회의 필연적인 발전경향과 노동자계급의 잠재력과 독립성

3) 노동자계급의 해방

 

2.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가는 이행의 시대

1) 다시 전면화한 자본주의 쇠퇴와 제국주의, 그리고 이행의 시대

2) 자본주의 체제위기에 맞서 부활하는 세계 노동자투쟁

3) 세계노동자혁명과 한국노동자계급의 과제

 

3.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

1) 개량주의·의회주의 반대하고 혁명적 사회주의 수호

2) 노동자 스스로의 해방노선

3) 노동자 국제주의와 혁명적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건설

4) 현장에 뿌리내리고 민주적 집중주의를 실현하는 조직

5) 노동자 공동전선과 노동자계급의 총단결 선도

6) 사회적 헤게모니

7) 사회주의 노동자권력과 대중투쟁강령

 

 

1. 자본주의 사회와 노동자계급의 해방

 

 

1) 자본주의 사회와 노동자계급

 

자본주의는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와 노동력 상품화에 기반한 잉여노동 착취체제다. 소수 자본가는 생산수단을 독점하며,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판매해야 생존할 수 있는바 자본을 위한 생산과정에 종속되어 잉여가치 생산의 도구로서 소비된다.

 

자본축적 확대에 따라 상품생산과 시장교환은 사회 모든 영역을 장악하고, 이에 따라 인구 절대다수가 계급관계 속으로 편입된다. 소생산자와 독립생산자 비중은 절대적으로 감소하며, 인구는 소수 자본가계급과 다수 노동자계급으로 분해된다. 자본축적은 대규모 기계장비 도입을 통한 노동력의 대체를 수반하며, 이는 항시적 산업예비군의 존재로 이어진다. 이에 따라 노동자는 고용상태와 실업상태를 오가야하는 운명에 놓인다. 상대적 과잉인구로서의 취업노동자는 언제건 다른 노동자에게 대체되어 실업상태로 떨어질 수 있다는 불안에 시달리며, 이는 임금과 노동조건 하락을 감내하게 하는 구조적 요인이자 노동자계급을 자본에 종속시키는 효과적 규율로 작용한다.

 

노동의 소외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필연적 결과다. 노동자는 자신의 생산물과 자신이 속한 노동과정, 자기 동료와 스스로의 인간본성으로부터 소외된 채 하루하루 소모될 수 있을 뿐이다. 더 많은 이윤을 위한 생산과정의 도구가 되어서야 비로소 생존할 수 있는 노동자계급의 삶은 육체와 정신의 마모에서 비롯되는 고통, 실업의 공포, 동료 노동자와의 경쟁, 자기계발이라는 이름의 자기 학대로 채워진다. 노동자는 자기 노동에 대한 모든 통제권을 상실하며, 노동은 순전히 생존을 위한 도구적 수단으로 전락한다. 이렇듯 자본축적의 확대 과정은 착취와 소외의 확대 과정이다.

 

이 고통이 계급투쟁의 근원이다.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판매하는 노동력이라는 상품은 노동자라는 인격체와 분리할 수 없으며, 이에 노동자는 생존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자본과 싸울 수밖에 없다. 이렇듯 더 많은 축적을 위한 자본의 운동은 노동자계급을, 그리고 계급투쟁을 생산활동의 모든 공간으로 확대한다.

 

 

2) 자본주의 사회의 필연적인 발전경향과 노동자계급의 잠재력과 독립성

 

자본의 목적은 더 많은 자본축적 그 자체다. 더 많은 집적을 향한 자본의 운동은 모든 공간으로 자본-임금노동 관계를 확장하고, 임금과 노동조건을 떨어뜨려 착취율을 높이고, 노동력을 기계로 대체하며, 이윤을 재투자해 생산을 확대하는 제반 조치로 드러난다. 더 많은 집중을 향한 자본의 운동은 경쟁자를 패퇴시키고 독점자본으로 서고자하는 자본 사이의 투쟁을 격화한다. 이는 더 저렴한 생산 기지, 더 많은 상품 판매시장과 원자재 수급처 확보를 위한 자본간 경쟁으로 이어지는바 자유경쟁 자본주의 시대의 종말과 제국주의 패권국 간 사활적 투쟁, 나아가 제국주의 전쟁이 그 결과다.

 

지난 세기 식민지 재분할과 대공황 극복을 둘러싸고 벌어진 두 차례 세계대전은 자본주의가 인류를 절멸할 수 있음을 드러냈다. 2008년 위기 이후 열강의 갈등은 갈수록 격화하는바, 제국주의 전쟁위기가 다시 심화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대만과 남중국해를 둘러싼 미·중 대결은 또 다른 세계대전의 전조다. 자유시장 안에서의 호혜와 번영이라는 약속을 보호주의와 군비경쟁, 애국주의 선동이 대체하고 있다.

 

전면화하는 위기와 함께, 자본주의 국가들은 형식적으로나마 내걸어온 민주적 외양마저 폐기하고 있다. 노동권 억압이 심화하고 있고, 노동악법이 확대되고 있으며, 사회보장제도가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민주적 기본권에 대한 공격도 강화되고 있다. 대중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강화되고 있고, 여성과 성소수자, 이주민과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심화하고 있다.

 

바로 지금, 위기로 치닫는 자본주의체제는 임금과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복지를 확장할 능력도, 노동자 민중에게 민주적 기본권을 확대할 능력도 없다. 이 모든 것은 착취체제의 위기에 대응하는 자본의 계급투쟁이자, 최소한의 진보성마저 상실한 채 노동자 민중에 대한 공격으로 연명하는 자본주의, 즉 쇠퇴하는 자본주의의 단면이다.

 

적대계급으로 나뉜 사회에서, 착취계급의 위기는 피착취계급 해방의 계기이기도 하다. 그간 자본주의는 자신의 발전 과정에서 노동자계급 해방의 조건도 창출했다. 더 많은 축적을 위한 자본의 운동은 모든 인구를 계급관계 속으로 편입시키고, 인구 대다수를 노동자계급으로 만들었으며, 생산의 공간을 전례 없이 확장하고 국경을 가로지르는 망으로 연결했다. 오늘날 단 하나의 상품도 전체 사회의 분업과 협력 없이 만들어질 수 없다.

 

이렇듯 더 많은 축적을 향한 자본의 운동은 노동자계급의 능력을 확대했다. 사회화된 생산은 노동자계급을 확대하고 집단화했으며, 생산과 유통망 안에서 연결했다. 이는 노동의 성격을 사회적으로 만들며, 또한 계급투쟁을 사회적인 것으로 만든다. 오늘날 계급투쟁은 자본주의가 세운 생산과 유통의 망을 타고 파급된다. 이는 자신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지키는 투쟁에 다른 노동자의 연대를, 또한 다른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지키는 투쟁에 자신의 연대를 필수적인 것으로 만든다. 결국, 자본주의는 전체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연대를 필요할 뿐 아니라 가능한 것으로 만들었다. 이렇듯 생산의 사회화는 체제 자체에 맞선 계급투쟁을 가능케 하는 물질적 토대다. 계급투쟁을 통해, 노동자는 고립된 개체가 아니라 전체 사회와 연결된 주체 집단이 된다. 노동자계급은 계급투쟁 속에서 자신을 독립적인 실체로 세우고, 독자적 세계관을 형성해 자본주의체제 자체를 재편하는 투쟁에 착수한다. 노동자계급의 독자 정치세력화와 사회주의 혁명이 그 실천적 결론이다.

 

모든 혁명은 억압받는 민중의 혁명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는 어떤 계급이 피억압 민중을 이끌어 권력을 장악하느냐가 혁명의 성격을 결정한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계급으로 나뉜 사회의 대립축은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의 적대다. 자본주의체제의 대립축은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적대다. 중간계급은 투쟁하는 양 계급 사이에서 끝없이 동요하는 한편, 생산력 발전과 임노동관계 확장에 따라 몰락하고 분해되어 다수가 임금노동자로 편입된다. 노동자계급은 몰락하고 동요하는 중간계급을 노동자계급의 입장으로 이끌며 착취체제의 종식을 위한 투쟁을 확대한다.

 

 

3) 노동자계급의 해방

 

(1) 사회주의란 노동자계급의 완전한 해방을 뜻한다

 

사회주의는 국가권력을 장악한 노동자계급이 경제와 사회를 재조직하고 스스로 운영함으로써 자본주의적 사적소유를 폐지하고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와 억압을 끝장내는 체제다.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자신의 힘으로 쟁취해야 한다.

 

공정하고 자유로운 계약의 형태를 띠는 임금노동제도 속에서 노동자는 경제적으로 착취당한다. 자본가계급은 민주주의라는 가면을 쓰고 노동자의 정치적 권리를 짓누른다. 더 나아가 사회적, 문화적으로 형성된 지배구조를 활용해 노동자의 의식과 행동을 옭아맨다. 이 모든 착취와 억압을 깨고 모든 노동자의 해방을 추구하는 것이 곧 사회주의다. 따라서 이는 자본가계급이 내려주는 혜택이나 그들과의 타협으로 이뤄질 수 없다. 선의를 가진 중간계급이 노동자계급의 역할을 대신 수행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수도 없다. 이 본질에서 벗어난 관점과 사회는 어떻게 포장하더라도 사회주의라고 부를 수 없다. 일부 노동자만의 이익을 앞세우는 태도, 의회 질서 안에서 지배계급의 허락을 구하는 정책 대안론, 혁명의 성과를 파괴하고 노동자를 착취와 억압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스탈린 관료집단의 독재체제, 스탈린 체제를 이식해 수립된 위성 국가,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급진적 민족해방혁명을 수행한 뒤 관료적 국가자본주의로 귀결된 나라 등이 그런 사례다.

 

자본가계급의 착취와 억압을 분쇄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적 사적소유의 폐지가 필수적이다. 자본주의적 사적소유는 생산수단에 대한 자본가들의 개별적 소유에서 주식회사나 국유기업 같은 집단적 소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식을 취하지만, 생산수단과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권을 자본가계급이 배타적으로 독점한다는 동일한 속성을 지닌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사적소유의 폐지, 즉 사회적으로 연합한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통제하며, 따라서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생산하고 분배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는 힘을 쟁취하는 것은 착취와 억압을 끝장내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데에서 핵심적인 토대가 될 것이다. 이 토대는 개별 기업이나 특정 산업부문, 일부 지역 차원에서 마련될 수 없다. 전 산업에 걸쳐 전국적이고 전면적인 변혁이 이뤄져야 사적소유의 폐지를 확립할 수 있다.

 

이 과정을 일관되게 추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노동자계급의 권력 장악이 필요하다. 자본주의적 사적소유를 폐지하고 노동자계급의 공동체적 소유를 전면적으로 확립하기 위해,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부딪힐 자본가계급의 공공연한 물리적 저항과 은밀한 사보타주를 분쇄하기 위해, 여전히 남아 있을 노동자계급 내의 의식 편차를 극복하고 다른 피억압 민중과의 동맹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노동자계급은 국가권력을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선거와 의회를 바탕으로 노동자 권력을 세울 수는 없으며, 기존 지배계급의 억압적, 관료적 국가기구를 그대로 물려받아 사용할 수도 없다. 기존의 국가 질서는 자본가계급의 착취와 억압을 유지하고 혁명을 차단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사회혁명에 나선 노동자들은 낡은 억압적, 관료적 국가기구를 해체하고, 작업장에 바탕을 둔 대중적, 민주적 평의회 권력 기구를 새롭게 창조해내야 한다.

 

즉 사회주의는 통상적인 선거와 의회 내 정책 협의가 아니라 혁명으로만 가능하다. 사회주의를 향한 노동자혁명은 지배계급 내 분파가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 일으키는 쿠데타와는 완전히 다르다. 노동자혁명은 단순한 정권 탈취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의 전면적인 변혁을 위한 것이며, 소수의 독단적 행위가 아니라 다수 대중의 집단적 행위로서 이뤄진다. 개량을 위한 투쟁, 부분적 요구를 위한 투쟁을 거부하지 않는 노동자계급은 선거와 의회를 활용한 투쟁 역시 거부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선거와 의회 활동을 노동자 정치의 모든 것으로 간주하는 의회주의에 반대하며, 혁명적 계급투쟁 역량을 성장시키는 과정으로 선거 및 의회 활동에 찬성한다.

 

(2) 노동자계급은 모든 사회적 억압과 불의에 맞선 투쟁에 앞장선다

 

사회주의 사회 건설로 나아가는 노동자 권력 수립을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역량을 전면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노동자계급 모든 부문의 단결을 추동하며 각각의 요구와 투쟁을 단일한 계급투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계급투쟁을 강조하는 것은, 노동자의 계급의식과 자기해방 능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계급투쟁 속에서 노동자들은 자본가계급이 착취와 억압의 질서를 보존하기 위해 얼마나 냉혹한 또는 기만적인 수단을 쓰는지, 얼마나 단호하고 비타협적인지, 따라서 노동자들 또한 얼마나 단호하고 철저하게 투쟁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 임금인상 투쟁이 임금제도 철폐를 위한 혁명적 계급투쟁으로 곧장 나아가는 것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일상 시기에 노동자는 균등한 계급의식으로 무장한 균질적인 집단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용 형태, 성별, 나이, 인종, 국적, 성 정체성, 장애 등 다양한 잣대에 따라 분열돼 있다. 자본가계급이 노동자의 단결을 가로막고 서로 경쟁시키기 위해 이와 같은 분열을 의식적으로 조장하며, 다양한 사회적 차별이 마치 원래부터 자연스럽게 존재했던 것처럼 환상을 부추기고 이용한다. 이를 통해 그들은 노동자가 자본주의적 착취에 직접 대항하는 투쟁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한다. 다양한 차별과 억압을 방치한 채 노동자가 혁명적 계급투쟁으로 나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분열해 있는 노동자들이 하나의 계급으로 단결하고 계급투쟁으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차별과 억압에 맞선 투쟁에 의식적으로 앞장서야 한다.

 

특히 노동자계급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에 대한 구조적인 차별과 억압은 자본주의적 착취와 긴밀하게 결합해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을 지탱하고 이윤을 창출하는 데에서 노동력 재생산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이 노동력 재생산을 사회적 생산에서 분리하고 개별 가정의 사적인 가사노동, 돌봄노동의 몫으로 떠넘겼다. 출산, 육아를 비롯해 가사와 돌봄은 원래부터 여성에게 부합하는 일이라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차별적인 성별 노동 분업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즉 사회적 생산에서 분리된 채 개별화돼 있다는 물질적 속성과 더불어, 당연히 여성이 해야 할 몫이라는 이데올로기가 결합해 가사와 돌봄은 자연스럽게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무급 노동으로 전락했다. 그렇다고 여성이 집안에만 묶여있는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여성을 사회적 생산으로 불러들인다. 그러나 이때 여성은 한편으로 여전히 가사노동, 돌봄노동 책임을 져야 하므로, 주로 고용이 불안정한 저임금 노동으로 떠밀린다. 임금노동자로서 직장에 출근해 이윤 창출의 도구로 사용되고, 그다음에는 다시 집으로 출근해 가사와 돌봄 노동에 종사하며 자본가계급 전체의 필요에 따라 산아 도구로 살아야 하는 이중의 굴레가 여성 노동자의 삶을 짓누른다. 이런 혹독한 이중의 굴레가 언제까지나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는 없다. 그 결과 자본의 착취 질서를 흔들거나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할 정도의 재생산 위기가 발생한다.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자본주의는 또다시 여성에게 산아 도구 역할을 감당하라고 압박하며,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억압과 통제는 개별 가정에서 국가 수준으로 확대된다. 이처럼 현실에서 자본주의적 착취와 가부장적 억압이 뗄 수 없는 결합체로 작동하고 있다. 이 착취와 억압의 결합 구조를 우리는 가부장적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이와 같은 물질적 토대 위에서 일상적인 성차별, 여성의 성 상품화, 성폭력에서 여성 살해에 이르는 기나긴 여성 억압의 쇠사슬이 형성된다. 가부장적 자본주의가 하나의 체제로서 작동하는 이상, 이 체제 전체에 맞서 싸우지 않은 채 얻은 여성의 권리는 일시적이고 불안정하며 다시 체제에 의해 무력화되기 쉽다. 자본주의 착취구조, 즉 계급 체제에 맞서지 않은 채 오직 가부장제만을 문제 삼는 경향이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초역사적 가부장제 관점에 기대어 계급 경계선을 넘나드는 여성 연대를 지향하는 흐름은 쉽사리 일부 자본가 정당과의 유착관계에 빠져들며, 체제를 변혁할 수 있는 노동자계급 단결의 힘이 탄생하지 못하게 가로막는다. 모든 사회적 억압과 불의에 맞선다는 폭넓은 관점을 견지하되, 그 전망을 실현할 힘은 가부장적 자본주의라는 체제 자체를 겨냥한 계급투쟁에서 비로소 등장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다양한 차별과 억압에 맞선 투쟁에서 노동자들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려면 노동조합 간부라는 시각을 뛰어넘어 민중의 호민관으로서 노동자계급이라는 관점을 분명히 세워야 한다.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단결과 투쟁으로 나아가는 첫 발걸음으로서 소중한 의미가 있지만, 거기에 멈춘다면 노동조합에 가입한 일부 노동자만의 협소한 이익에 얽매이기 쉽다. 그 결과 다양한 차별과 억압에 맞선 민중의 보편적 권리를 위한 투쟁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며, 자신과 관계가 없다고 여기거나 노동자투쟁에 방해된다고 여기기까지 하게 된다. 이는 곧 노동자 운동의 계급적, 정치적 발전이 가로막힌다는 것을 뜻한다. 사회 전체의 변혁을 위한 노동자혁명에 다수 대중의 지지를 끌어모으는 데서도 실패하게 된다. 노동자계급은 혁명적 계급투쟁에서 헤게모니를 쥐어야 한다. 차별과 억압에 맞선 투쟁은 그 출발점이다.

 

더 나아가 자본주의가 초래한 파국적인 위협에 맞서 인류 전체의 해방을 내걸고 투쟁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위한 투쟁은 역사적 정당성을 실현할 수 있다. 임금노동자를 착취해 이윤을 쌓아 올리는 자본주의의 본성 탓에 민주주의는 기만적인 껍데기로 전락하기 일쑤이고, 자본주의 경제위기가 심화할수록 대중의 민주적 권리는 심각하게 박탈되며 정치체제는 반동적으로 타락한다. 오직 이윤만을 위해 무정부적 생산을 지속해온 자본주의는 생태계 질서를 교란하며 기후 위기를 재촉했다. 이는 그 자체로 인류의 공멸 위기로 이어진다. 곳곳에서 식량난이 발생하고, 야만적인 혼란과 내전, 전쟁 위협이 확산하고 있다. 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가 필요하다.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위한 사회주의 혁명이 그 길이다.

 

(3)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세계혁명으로 이뤄진다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위한 사회주의 혁명은 근본적으로 세계혁명의 성격을 지닌다. 자본주의 자체가 생산과 분배를 국제적으로 실행하는 세계체제인 한, 이로부터 단절한 채 한 나라에서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느 한 곳에서 혁명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사회 위기가 표면화한다는 것은 곧 지구적인 차원에서 위기가 누적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위기만이 아니라 기후 위기 같은 재난 상황 역시 일국의 경계를 넘어 전 지구적 범위에서 다가오고 있다. 또한 어느 나라에서 노동자혁명이 일어나든, 반드시 세계 자본가계급이 연합해 이 혁명을 진압하려 정치적, 군사적으로 간섭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무정부적 경쟁이 초래하는 낭비와 자연 파괴를 막기 위해 전 지구 차원에서 의식적, 계획적으로 생산과 분배를 조직해야 실현할 수 있다. 따라서 노동자혁명의 시작은 일국적일지라도, 세계혁명의 전망 아래 여러 나라로 확산하며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협력을 성취했을 때 비로소 완전한 승리를 기대할 수 있다.

 

그 점에서 노동자 국제주의를 구현하는 것은 단지 고귀한 이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실현하기 위한 현실적이고 필수적인 과제다.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세력권 재분할을 위한 열강의 제국주의 경쟁에 편승하기를 거부하고, 민중의 생명을 담보로 진행되는 전쟁 책동에 맞서 독립적인 세계 노동자 단결을 제기해야 한다. 국내 이주 노동자의 동등한 권리를 위해, 그리고 해외로 진출한 한국 독점자본의 착취 시도에 맞서 세계 노동자계급 전체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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