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첫 ‘여성파업’으로 기록된 2024년 3‧8 여성파업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온라인신문

한국 첫 ‘여성파업’으로 기록된 2024년 3‧8 여성파업

  • 홍희자
  • 등록 2024.03.12 13:06
  • 조회수 152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을 맞아 2024년 3‧8여성파업조직위원회(이하 여성파업조직위) 주최로 3‧8 여성파업대회가 열렸다. ‘역행하는 시대, 돌파하는 우리의 투쟁’이라는 모토를 건 이날 집회에는 800여 명의 노동자가 서울 보신각 앞마당을 가득 메웠다. 여성파업조직위는 41개 노조와 단체가 모여 지난해 11월부터 이번 3‧8 여성파업을 조직해 왔다. 구미의 금속노조 KEC지회와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공단고객센터지부는 현장 조합원들이 파업을 하고 상경해 투쟁에 함께했고 그 외 노동자도 연월차 휴가나 조퇴 등으로 현장노동을 중단하거나 무급 가사노동을 멈추고 여성파업에 동참했다.

 

이날 노동자들은 성별 임금 격차 해소, 돌봄 공공성 강화, 고용 안정과 비정규직 철폐 등 모두의 노동권 보장, 임신중지에 건강보험 적용과 유산유도제 도입,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다섯 가지 요구를 내걸고 파업집회를 한 뒤 민주노총 3‧8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리는 대학로까지 행진하며 여성 노동자의 권리와 요구를 외쳤다. “여성이 멈추면 세상도 멈춘다!” 

 

이 땅에서의 첫 여성파업

 

민주일반연맹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박순향 지부장의 사회로 열린 집회에는 여성 노동자만 아니라 남성 노동자, 장애인, 성소수자 등 다양한 동지들이 한목소리를 냈다. 박순향 동지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여성파업이 벌어지는 역사적인 순간”이라며 힘차게 집회를 이끌었다.

 

 

발언자들은 저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어떻게 성차별과 억압을 겪어 왔는지를 절절히 증언하며 함께 뭉쳐 투쟁으로 여성의 권리를 찾자고 목청을 높였다.

 

전 조합원 현장파업으로 여성파업에 힘을 실은 KEC지회 김진아 지회장은 승진과 임금에서의 성차별에 대해 인권위에 진정한 뒤 “4년 동안 매년 여성도 겨우 한두 명 정도 승급이 되고 있습니다. 작은 성과지만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멉니다”라고 했다. “KEC지회는 전체 조합원이 여성이 반, 남성이 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회 남성 동지들이 늘 미안한 마음으로 차별에 맞서 함께 투쟁하고 있고, 오늘도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어 너무나 힘이 되고 든든합니다. 같은 마음으로 함께하고 있는 수많은 동지를 보니 너무 기쁘고 힘이 납니다”라고 성별을 가리지 않는 노동자의 단결의 의미를 강조했다.

 

전체 노동자의 95% 정도가 여성인 국민건강보험공단고객센터지부는 전날 노동청 앞에서 여성파업 전야제를 치른 뒤 3월 8일 파업집회에 참가했다. 김금영 서울지회장은 “고객센터에는 경력단절 여성, 한부모가정, 여성 가장의 비율이 높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최저임금에 맞춘 최저 생계만 가능합니다. 10년, 20년을 다녀도 임금은 오르지 않고, 경력인정도 가정의 안정도 그 어느 것 하나 바랄 수 없는 저임금 여성 노동자들”이기에 “여성 노동자들이 갖는 아픔과 고통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며,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의 상징인 ‘빵과 평화’의 의미를 절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라고 투쟁결의를 밝혔다.

 

 

파업집회에서는 공장 청산에 맞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소현숙 동지와의 전화통화도 있었다. “저도 입사해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인해 직무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당했고 임금 또한 차별받으며 살아왔습니다. 자유롭게 교육을 받고 직업을 고르고 삶을 평화롭게 유지하고 싶다면 지금 여성에게 가해지는 교묘하고 직접적인 차별을 막아내고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지금의 나를 위해서 앞으로 이 땅에서 살아갈 여성들을 위해 포기하지 말고 나아가야 합니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자본의 공격에 맞서 선봉에 서서 투쟁하고 있는 여성 당사자들의 힘찬 목소리는 이번 여성파업의 의미를 분명히 보여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시장화’는 반여성적 단어 – 공공돌봄 확대돼야

 

여성민우회 신혜정 활동가는 엄마의 이력서를 대신 써준 경험을 전하며 “엄마는 평생 여러 일을 해왔음에도 막상 이력서를 마주했을 때 무엇을 ‘이력’으로 써야 하는지 난감해하셨습니다. 한국 사회는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고, 두 노동이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수노동임을 인정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가부장적인 자본주의 사회가 여성 노동자의 무급가사 노동을 하찮은 것으로 취급하고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아 왔기에 여성 노동자가 다수인 돌봄 일자리는 저임금 일자리, 불안정한 일자리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요양보호사 김춘심 동지는 이렇게 말했다. “요양보호사들에게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이하 서사원) 입사는 로또라고 불렸습니다.” 하지만 “서울시가 서사원 예산을 100억 원 넘게 깎아 버렸기 때문”에 결국 서사원에서 퇴사해야 했고 지금 민간업체에서 시급제로 일하고 있다. 그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서사원뿐만이 아니라, 모든 요양보호사들이 월급을 받으면서, 눈치 보지 않고 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양보호사는 똥기저귀 치우며 반찬값 버는 노동자가 아닙니다.”

 

서사원 폐지 저지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오대희 서사원 지부장은 “서사원은 1%도 안 되는 매우 주요한 공적 돌봄기관”인데 “국가책임이 아닌 시장화 정책으로 경제적 효율성만 강조”하는 서울시를 비판했다. 그는 “사회서비스의 가장 반여성적인 단어는 시장화입니다. 공공돌봄, 서사원의 확대는 여성 돌봄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한 약속이자 성평등한 돌봄 일자리의 희망”이라며 돌봄노동의 공공성 강화는 돌봄노동자와 이용자 모두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최저임금 인상! 장애인, 성소수자에겐 더욱 절실

 

전국여성노동조합 신희숙 인천지부장은 이렇게 외쳤다. “청소노동자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집중적으로 일하는 돌봄, 가사, 서비스 등 수많은 직종이 노동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저임금, 불안정 노동에 놓여 있습니다.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여성 노동자의 임금도 올라가고 모든 불안정 노동자의 빈곤이 개선됩니다.” 여성 노동자 다수가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한다. 하기에 최저임금 인상은 인간답게 살기 위한 여성 노동자의 생존권 요구다.

 

이런 저임금은 장애인과 성소수자에게는 더 가혹하다. ‘서울형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에서 4년 동안 일하다 해고된 이수미 동지는 “윤석열 정부 들어서 오세훈 시장이 2024년도 예산을 중단하여 파업투쟁을 시작했고, 최중증장애인 노동자 400명이 해고 철회 및 원직복직 투쟁을 하고 있”다며 “여성, 장애인을 차별하는 이 사회적 구조를 바꿉시다. 같이 연대하며 지지하며 앞으로 나갑시다”라고 연대투쟁을 호소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에서 활동하는 이연수 동지는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어려움을 말하며 ‘노동자 단결’이 더욱 확장되어야 한다고 경종을 울렸다. “트랜스여성은 끊임없이 여성의 범주에서 배제되고, 탈락되며, 존재를 부정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트랜스젠더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부장제 사회는 아직도 일터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낡은 기준을 들이대며 트랜스젠더 노동자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박탈시키고 있습니다. 여성 노동자뿐만 아니라 성별이분법에서 배제된 트랜스젠더 노동자와 일터에서 쫓겨나고 있는 성노동자들과도 우리는 함께 가야 합니다.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다양한 노동을 하는 우리가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는 것이, 지금의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억압받고 차별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여성파업으로!

 

“여성 노동자가 겪는 구조적 차별 역시 학생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많은 학생들은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여성파업은 당장 우리의 일이고 나의 일입니다.”라고 고려대 소수자인권위 김다희 동지는 말했다. 여성파업조직위에는 학생단위도 함께했다. 또 이날 집회에는 팔레스타인 해방투쟁을 지지하는 동지들도 참가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팔레스타인 해방투쟁 지지 인증샷 찍기에 동참하고 ‘여성해방 없이 팔레스타인 해방 없고 팔레스타인 해방 없이 여성해방도 없다’는 구호를 함께 외치며 행진했다.

 

 

여성 노동자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부장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차별과 억압을 받으며 저임금 불안정 노동에 처하고, 성범죄와 여성살해의 희생양이 되는 등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다고 여성이 단지 약자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생산과 재생산을 책임지는 이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서 자기 권리를 찾기 위해 세상을 향해 목소리 내고 연대의 손 맞잡고 배제와 차별의 고리를 끊어내는 투쟁으로 한 걸음씩 전진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연대와 투쟁의 길은 여성 노동자만이 아니라 똑같이 차별과 억압, 배제로 고통받으면서 부당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실천하고자 하는 남성 노동자, 장애인, 성소수자, 학생들과도 동지로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 여성끼리만의 연대와 단결이 아니라 더욱 그 범위를 넓혀나가 여성파업이 전체 노동자의 파업이 되고 여성 노동자의 요구가 모든 차별받고 억압받는 노동자민중의 요구로 뻗어나가야 하리라. 이번 여성파업은 그 긴 여정의 출발점으로서의 의미가 크다.

 

“여성이 멈추면 세상이 멈춥니다. 우리의 노동이 가지는 힘을, 우리의 연대가 가지는 힘을 세상에 보여줍시다.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폭력과 가난 속에 죽거나 사라지는 여성들이 없도록, 우리의 노동이 지워지거나, 우리의 투쟁의 역사가 삭제되지 않도록 이 차별과 착취의 세상을 바꾸어냅시다! 단 한 명도 포기하지 않는 세상을 위해, 우리는 오늘 생산과 재생산 노동을 중단합니다. 역행하는 시대를 돌파하는 우리의 투쟁을 시작합니다. 우리가 잃을 것은 우리를 결박해 온 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여성해방입니다. 가자 3‧8 여성파업, 쟁취하자! 여성해방!”(3‧8 여성파업 선언문 중)

 

참조1. [자료집] 3.8 여성파업 첫발떼기 토론회(23.12.06.)

참조2. [유인물] 3.8여성의날, 여성파업! “여성이 멈추면, 세상도 멈춘다!”(24.03.08.)

 

 

※투쟁의 미디어 스튜디오 알에서 3.8 여성파업 참가자들의 목소리를 기록한 영상을 볼 수 있다.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