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원 김정남 동지에게 들어본 여성노동 _워크숍 ‘찾아가는 여성파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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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서사원 김정남 동지에게 들어본 여성노동 _워크숍 ‘찾아가는 여성파업’(2)

2024년 3‧8 여성파업조직위원회는 여러 사업장의 현장 노동자들과 함께 워크숍 ‘찾아가는 여성파업’을 진행했다. 이번 회차부터는 ‘찾아가는 여성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을 인터뷰한 글을 소개한다.

_편집자 주

 

 

2024년 3‧8 여성파업조직위원회에 참가하고 있는 공공운수노조 서울사회서비스원지부 김정남 사무국장을 만났다. 서사원에서 파트타임 정규직으로 일하는 김정남 동지는 13년 차 장애활동지원사다. 서사원 1기로 입사해서 지금은 노조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그는 자기소개를 할 때 ‘여자 사람’이라 끝맺는다. 이름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 때문에 남성으로 오해받는 일이 잦아서다.

 

5년도 안 돼 서사원 존폐 위기

 

서울사회서비스원(이하 서사원)은 2019년에 문을 열었다. 든든어린이집, 모두돌봄센터(재가돌봄), 장애인활동지원 등 서울 시민을 위해 공공돌봄을 제공하는 기관이다. 그러나 설립한 지 5년도 안 되어 존폐 위기에 놓였다. 서울시의회에서 서사원 관련 조례 폐지안이 발의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7개의 어린이집 가운데 하나는 문을 닫았고 남은 어린이집도 6월 말까지만 운영하고 민간위탁으로 넘기겠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나마도 지난해 문 닫겠다는 걸 노조가 파업투쟁해서 겨우 미뤄둔 상태다. 모두돌봄센터는 12개에서 5개(장기요양 4개+장애인활동지원기관 1개)로 줄었다. 회사가 없어진다는 불안감으로 매달 퇴사자가 늘어 돌봄 인력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서사원 안에 있는 4개 노조 가운데 공공노조 서사원지부는 조례 폐지에 맞서 돌봄 공공성을 지켜내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조례 폐지 이야기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서울시에서는 서사원 ‘혁신안’이라는 이름으로 인력 감축, 노동조건 후퇴 등을 노동자들에게 강요하며 혁신안을 받지 않으면 문 닫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노동자들은 지금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중”이다. 서사원지부는 교섭을 거듭하고 있지만 김정남 동지 눈에는 서울시가 서사원을 폐지하고 싶어서 안달 난 것처럼 보인다.

 

“말로는 공공돌봄이라지만 돌봄 대상자를 만나기 위해 당연히 필요한 이동시간을 이젠 노동시간으로 안 쳐주려 하는 걸 보니 그동안 나간 돈이 아까웠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센터 수가 줄어 요양보호사의 이동거리는 훨씬 더 길어졌다. 그는 또 이렇게 지적했다.

 

(가운데가 김정남 동지, 출처: 공공운수노조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주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는데 지금은 이런 걸 대비하는 시기라 봐요. 서울시는 그걸 못 기다리는 건지……. 오히려 민간업자들이 난리를 치고 있어요. 서사원 역할이 분명히 있어요. 표준화된 서비스를 만드는 걸 서사원이 해야 해요. 거기까지 가기 전에 이런 상황 돼서 속상해요.”

 

공공돌봄, 실험으로 끝날까 걱정돼요

 

김정남 동지는 3‧8 여성파업조직위원회에서 내건 다섯 가지 요구(성별임금격차 해소, 돌봄 공공성 강화, 일하는 모두의 노동권 보장, 임신중지에 건강보험 적용/유산유도제 도입, 최저임금 인상) 모두가 중요하지만 특히 성별임금격차 해소와 돌봄 공공성 강화 요구에 제일 마음이 간다. 서사원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와 장애활동지원사는 전문서비스직이지만 서울시생활임금만 받는다. 그런데 행정직은 공공기관임금인상가이드라인을 적용받는다. 애초에 설계가 그렇게 되어 있다고 한다.

 

“만일 돌봄노동이 남성이 주로 하는 업무였다면 이렇게 했을까요? 중장년 여성이 주로 하는 업무이다 보니 저임금을 못 벗어나는 것 같아요. 서울시의회에서 자꾸 우리 노동조건을 낮추려고 혁신안을 강요하는 것에도 이런 인식이 깔려 있다고 봐요. ‘여성, 아줌마’가 하는 일, 아무나 데려다 할 수 있는 일 정도로 생각하는 거 말예요.”

 

물론 현장 조합원 다수도 평생 저임금 불안정/여성 노동자로 살다 보니 “여성 일자리는 원래 그래” 하는 의식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돌봄 공공성 강화 요구는 서사원 노동자 모두의 관심사다.

 

“지금처럼 기관 존립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엔 굉장히 중요한 의제예요. 앞으로 어르신 비중이 더 높아지기 때문에 장애인, 어린이 못지않게 장기요양 문제가 특히 중요한 돌봄이거든요. 재가돌봄이나 장애인돌봄은, 노동자가 가진 역량에 따라 서비스 질이 달라져요. 정말 천차만별이에요. 민간에선 부정수급과 같은 문제도 많아 도저히 표준화를 못해요. 그런 걸 만들어 내고 사회서비스원을 확대하면서 공공돌봄으로 가야 하는 거죠. 돌봄을 공공으로 끌고 와서 시민에게 혜택을 돌려줘야 해요. 서사원이 공공돌봄을 끌어가고 사회 전체가 보편적으로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걸 많이 알려야 하는데 이렇게 실험하다 끝날까 봐 걱정이에요. 공공돌봄이 유지, 확대돼야 우리 일자리도 살고 시민도 행복한데 말이죠.”

 

노동자안전 VS 효율성

 

돌봄노동은 대면서비스이다 보니 감정노동 부분이 정말 힘들다. 성비불균형으로 어쩔 수 없이 남성 이용자를 서비스해야 하는 경우엔 어려움이 더 크다. 서사원은 남성활동지원사가 민간보다는 많지만 30% 수준에 그친다. 반면 이용자는 남성 비율이 더 높다. 성희롱성 발언은 흔한 일이다. 목욕 등을 도울 때 간접적으로 성기 부위를 처리해달라고 요구받으면 헷갈린다. 진짜 필요해서 그런 건지 즐기는 건지. 기관에 어려움, 개선점 얘기하면 돌아오는 답변은 이렇다. “아들도 키워봤고 남자랑 살아 봤잖아요. 그게 뭐가 문제가 돼요? 너무 유난스러운 것 아녜요? 역량 부족 아녜요?”

 

요양보호사들도 마찬가지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씩씩한 사람, 멘탈 강한 사람’은 좀 유리하다. 대부분 여성이다 보니 어르신들이 ‘나랑 차나 한 잔 하러 가자, 나랑 연애하자’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그래도 융통성을 발휘해 대처한다. 무서우니 2명씩 보내달라고 하면 이용자가 ‘안 된다, 집이 좁다, 둘이 오면 정신 사납다’라고 하기도 한다. 더구나 서울시가 ‘효율성’을 강조하니까 기관에서도 서울시 눈치 보느라 1명만 보내려고 한다. 요양보호사가 치매 어르신에게 성추행당하면 기관에선 ‘치매시잖아요’라고 할 뿐이다.

 

“노동자가 갖고 있는 트라우마나 감정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아요. 꾀병 식으로 취급하는 거죠. 심지어 동료들도 그렇게 보는 경우가 있어요. 내놓고 심리치료 받는 건 나은 경우고, 못 버티고 퇴사하는 분들도 있어요.”

 

어르신 혼자 사는 집에 화장실 문이 아예 없는 경우가 많아 요양보호사들은 주변 공중화장실 위치부터 확인해야 하고 이로 인해 꽤 많은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아줌마, 50대 여자, 살림해 본 사람’이라는 고정관념

 

장애인이 못하는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게 활동지원사의 역할인데 “다른 건 됐고 ‘집안일’만 해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딱 그 용도로 장애활동지원사를 원하면 정말 화가 나요. 그런 분이 생각보다 많거든요. 파출부나 가사도우미 일이 우리 업무는 아니잖아요. 우리가 여자라서 ‘그냥 해 주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관리자와 싸워도 시원하게 답이 안 나온다. 보건복지부에 질의하니 고작 ‘지침에 따르고 적절한 협의를 통해서 하라’는 두루뭉술한 답변이 돌아왔다.

 

“저는 음식솜씨가 좋진 않아도 노력은 해요. 이용자를 위해서요. 요리를 잘 못하면 ‘아니 안 해 봤어요? 못한다고요? 여태껏 반찬도 안 만들어봤어요? 일을 너무 못하네. 살림도 제대로 못 해서야 밥 먹고 살겠어요?’ 하며 화를 내요. 많은 이용자가 저희를 ‘아줌마, 50대 여자, 살림해 본 사람’이라 여기고 그러면 당연히 요리를 잘할 거라고 생각해요. 전 손재주가 없어요. 한 번은 머리 땋는 걸 좋아하는 여성 이용자를 만났어요. ‘아이 키워봤으니 머리 잘 땋지 않아요? 딸 있다면서요?’라고 하더군요. 이 일을 남성이 했어도 저런 생각을 했을까? 그렇진 않을 거잖아요. 이런 일은 여자가 더 잘한다, 이 정도는 하겠지 하는 고정관념이 있는 거죠.”

 

전신마비 장애인 이용자에게 여성, 남성 지원사 둘이 가면 남성 지원사는 힘쓰는 일만 하고 여성 지원사는 밥 차리고 청소한다. 남성 지원사 혼자 가면 목욕 정도만 도와달라고 한다. 그 남성 지원사도 청소, 요리 다 할 줄 아는데 그런 건 안 시킨다. 어르신들은 장애인들보다 더 성별분업 고정관념이 심하다.

 

“‘여성의 일’이라고 판단되는 것, 정말 싫어요.”

 

김정남 동지는 “이용자님도 장애에 대해 고정관념 갖는 것 싫어하시잖아요? 제가 고정관념 안 갖듯 이용자님도 저에 대해 그래 주세요”라고 말하지만 잘 먹히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토로했다.

 

“이 일에 대한 사회의 고정관념이 있어요. 돌봄노동=여성이 하는 일. 진입장벽이 낮아서도 그렇고요. 잘하려고 들면 정말 어려운 일인데!”

 

여성노동이 가치를 인정받았으면 좋겠어요

 

3‧8 여성파업에 참가하면서 바라는 점이 있는지 물었다.

 

“여성일자리는 급여도 적고 사회적 인식도 낮아요. 여자라서 그럴까요? 전문화되지 않아서 그런 것도 같고. 일하는 여성의 권리가 높아질 수 있었으면 해요. 이 일 하면서, 의미 있고 좋아요. 여성의 일이라 생각해서 하는 건 아녜요. 적성에 맞아서 하는 거지. 3‧8 여성파업이 일하는 여성들에게 ‘일에 대한 권리의식을 가져라’라는 메시지를 줬으면 좋겠어요. 안타까운 게, 요양보호사 가운데도 ‘서사원 없어지면 다른 일 하지 뭐’라고 말씀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럼 전 그래요. ‘왜 그렇게 생각하냐. 대한민국에서 월급제로 일하는 요양보호사, 서사원이 유일하다. 자부심을 가져라. 우리 일에 대한 권리의식을 가져라. 전문화해야 가치를 인정받는다’라고요. 우리 일의 가치를 인정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지금껏 돌봄노동이 돌봄 노동자의 희생으로 이뤄졌지만 앞으로는 사회가 돌봄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성노동, 공공돌봄에 응원이 필요해요!

 

김정남 동지는 많은 노동자에게, 특히 여성 노동자에게 이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여성의 노동은 일하는 여성을 자립적으로 만들어요. 우리 사회의 여성들이 자신을 위해 당당히 일하고 우리의 권리 요구했으면 해요. 내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일한 만큼 사회가 인정해주길 요구하자고요.”

 

그리고 여성노동, 공공돌봄에 대한 응원을 당부했다.

 

“조합원들이 사실 많이 지쳐있어요. ‘공공돌봄 좋은 거 알겠고 우리가 바로미터인 것도 알지만 2년 넘게 불안정한 상태가 계속되니 힘들다’라고 말하는 분도 있거든요. 여러분의 응원이 필요해요. 시민들이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사회서비스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줬으면 좋겠어요.”

 

서사원을 지켜내지 못하면 우리 사회의 돌봄이 지금보다 더 무너질 수 있다. 이미 민간 손해보험사에서 요양 분야 쪽을 치고 들어오고 있다. 수명이 늘수록 장기요양보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전망인 상황에서 돌봄 서비스가 민간으로 넘어갈 경우 돌봄 서비스의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질이 떨어지기 쉬우며 관련 노동자들의 처우도 훨씬 열악해질 것이다.

 

(출처: 공공운수노조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김정남 동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요양보호사들이 내년이면 40% 정도는 촉탁직으로 넘어가요. 그럼, 다음에 또 누가 들어와야 해요. 노조활동을 하는 이유가 그거거든요. 내 뒤에 오는 누군가는 좀 더 편하게 일했으면 하는 생각에서 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요. 돌봄노동뿐 아니라 여성들의 노동에 좀 더 관심 가져 줬으면 해요. 우리 사회에서 여성으로 일하며 살아가려면 정말 많은 게 요구되잖아요. 사회가 이 많은 걸 좀 나눠 가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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