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여성파업 4] 아르헨티나 - 여성파업 조직한 여성 노동자들, 성폭력의 희생자에서 생산하는 주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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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세계의 여성파업 4] 아르헨티나 - 여성파업 조직한 여성 노동자들, 성폭력의 희생자에서 생산하는 주체로

  • 정은희
  • 등록 2024.01.11 07:53
  • 조회수 331

[편집자 주]

지난 12월 6일 열린 “여성파업 첫발떼기 토론회”를 비롯해, 2024년 3월 8일 여성파업을 조직하기 위한 활동이 여성파업조직위원회 주도 아래 진행되고 있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노동자계급의 여성해방 운동을 건설하기 위한 여성파업 시도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며, 이 운동의 현황과 과제, 전망을 짚어 보기 위해 세계 여러 나라의 여성파업 사례를 돌아보고자 한다. 1975년 아이슬란드 여성파업에서 시작해 지난 십수 년 사이에 폴란드, 스페인, 아일랜드, 스위스, 아르헨티나 등 곳곳에서 여성파업이 일어났다. 각각의 사례는 그 자체로 세계 여성 노동자의 현실과 투쟁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넓혀 주기에 충분하다. 또한 여성파업의 양상과 결과, 다양한 쟁점을 훑어보면 우리의 과제에 대한 인식도 더 풍부하게 채워 갈 수 있을 것이다.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하늘이었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 콩그레소(Congreso) 광장에서는 어느 방향으로든 움직이기 어려울 만큼 많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여성, 소녀, 논바이너리 사람들, 남성 동맹자들이 도로에 빽빽이 서서 플래카드를 흔들고, 드럼을 치고, 구호를 외쳤다. 활동가부터 모유를 수유 중인 아이 엄마까지 거의 모든 참여자가 임신중지 합법화를 요구하는 상징인 초록색 삼각형 손수건을 착용하고 있었다.”

 

 

위의 내용은 2020년 3월 9일 여성파업 시위 현장을 그린 아르헨티나 언론사의 취재기사 중 한 구절이다. 국제 여성의 날을 계기로 일어난 파업이었지만, 당시 3월 8일이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하루 뒤인 월요일까지 포함해 3월 8일과 9일 양일간 조직된 파업이었다. 주최측인 니우나메노스 운동은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에만 50만 명이 모였고 북부 살타에서부터 남부 우수아이아까지 전국적으로도 수십만 명이 시위를 벌였다고 추산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2016년부터 2023년까지 모두 7차례에 걸쳐 여성파업이 일어났다. 2016년 10월 19일 처음 여성파업이 일어났으며, 2019년에는 진행되지 않았지만, 이외에는 모두 국제 여성의 날에 진행됐다. 2016년 처음 아르헨티나 여성들은 “우리는 파업한다. 단 한 명도 잃을 수 없다(Nosotras paramos! Ni una menos).”는 구호를 외치며 파업했고, 이는 아르헨티나 페미니즘 대중화에 마중물이 되었으며, 특히 임신중지 합법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도 아르헨티나 여성파업은 무급 가사돌봄 노동과 함께 생산 현장에서의 파업이 조직되면서 임신중지 권리를 위한 계급투쟁의 사례를 처음으로 보여 줬다는 점에서 역사적이다. 아르헨티나 여성 운동은 지난 10년 동안 성장해 왔지만 전국적 여성 파업이 가능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파업은  아르헨티나를 지배해 온 가부장적 자본주의에 도전하는 효과적인 도구란 점이 입증됐다. 즉, 아르헨티나 여성파업은 여성 의제를 노동자계급의 의제로 삼은 한편, 이 의제를 위한 투쟁 방식 역시 생산을 중단하는 파업이라는 수단을 동원했다는 점에서 반자본주의 페미니즘 운동의 전망을 보여 줬다.

 

여성파업의 시작1)

1) 이 글은 졸고 《검은 시위》 중 아르헨티나 장을 여성파업을 중심으로 수정, 보완한 글이다.

 

아르헨티나에서 여성파업이 일어난 계기는 2015년 3월 16일 19세 여성 다이아나 가르시아가 반나체 상태로 스타킹이 입에 물린 채 쓰레기봉지 속에서 발견되면서였다. 가르시아의 무참한 죽음에 아르헨티나 문인들은 “비닐봉지 속의 여성이 우리다. 너무나 많은 우리가 비닐봉지에 휘감겨 있다. 비닐봉지를 찢고 나오자. 아무도 그곳에 남아 있지 않도록 하자(ni una menos).”라며 페미사이드와 젠더폭력에 반대하는 릴레이 문화예술행사를 제안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두 달도 지나지 않아 또다시 14세 소녀 치아라 차베스가 살해되자 니우나메노스라는 이름으로 대중적인 시위가 조직되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 여성·인권·사회 운동을 비롯해 노동조합, 학생운동, 좌파 정당 등 수많은 단체가 니우나메노스 운동을 조직하고 2015년 6월 3일 대규모 집회를 소집했다. 이에 전국 80개 이상의 도시에서도 시위가 일어났고, 시위는 국경을 넘어 우루과이와 칠레에서도 이어졌다. 그런데 2016년 10월 8일 16세 소녀 루시아 페레스가 또다시 잔혹하게 살해되면서 결국 니우나메노스 운동은 10월 19일 아르헨티나 최초의 여성파업을 제안했고, 이는 6일 만에 대규모 파업 시위를 이끌었다. 애초 언론들은 이 살인 사건을 마약과 연계하거나 고립된 범죄로 취급하면서 탈정치화했지만, 니우나메노스 운동은 이것이 사회구조적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여론을 다시 조직했다. 이날 파업에 참여한 아르헨티나 여성들은 직장과 학교, 가정 등 가능한 한 모든 공간에서 최소 1시간 동안 노동을 중단했다. 이러한 파업 시위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만 25만 명이 참가할 만큼 대대적이었고 아르헨티나 페미니즘 운동의 역사적인 이정표였다. 국영 TV마저 여성파업이라는 주제를 다뤘고, 몇 달 동안 TV 방송은 연예인들을 제쳐두고 페미니스트들을 초대해 다가오는 여성파업과 임신중지 합법화에 대해 토론하고, 변화하는 아르헨티나 사회에서 페미니즘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했다.

 

 

녹색 스카프를 맨 여성 노동자들

 

이러한 니우나메노스 운동은 많은 아르헨티나 여성 운동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라틴 아메리카에 광범한 영향을 미쳤다. 그중에서도 가장 격렬하게 촉발된 것은 임신중지 합법화 운동이었고, 이 운동의 여파 속에서 아르헨티나는 2019년 임신중지 합법화를 쟁취했다. 그리고 여성 살해에 맞선 여성파업에서처럼 여성 노동자들은 임신중지 권리 역시 노동 의제로 만들고 파업투쟁을 조직했다.

 

실제로 여성 노동운동가 다수가 임신중지 합법화를 지지했고, 여성 조합원들도 이를 노조 운동의 목표로 세웠다. 여성 조합원들은 여성파업과 파뉴엘라소(임신중지 합법화를 위한 녹색 손수건 시위)에 참여했고 여러 쟁의 역시 파뉴엘라소 방식으로 진행했다. 여성 노동자들은 학교와 병원, 공공기관과 대학 등 직장에서마다 파뉴엘라소를 진행했다. 공공기관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녹색 스카프의 물결은 계속됐다. 다국적 기업 펩시코 해고 노동자들과 성폭력 신고전화 ‘114 라인’ 노동자들, 언론사 텔람(Télam)과 마푸체 원주민 여성들이 함께 니우나메노스를 조직했다. 아르헨티나노총(CGT) 소속 승무원 노동자들은 8월 8일 모든 비행기에서 임신중지 권리를 지지하는 캠페인도 진행했다. 조선소 폐쇄 반대 투쟁이 진행되던 라플라타의 리오산티아고 조선소에서는 2018년 8월 8일 거대한 녹색 스카프가 뱃머리에 걸렸다. 2018년 7월 22일에는 노동자가 운영하는 마디그라프(MadyGraf) 공장 여성위원회와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그룹 ‘빵과장미(Pan y Rosas)’2)가 ‘공개 여성 집회’를 소집해 8월 8일 의회 토론을 앞두고 여성 노동자의 권리를 논의했다. 여기에는 펩시코, 크라프트, 포사다스병원 등 다양한 작업장 출신 노동자 700명 이상이 참석할 정도로 큰 호응을 받았다. 시위를 주도하는 니우나메노스와 70개 이상의 단체 그리고 지하철및전철노조협회(AGTSyP)는 모든 지하철 노선에서 캠페인도 조직했다. 여기에는 쓰레기수거, 세탁, 돌봄이나 식당 등 재생산 부문 노동자들도 가세했다. 또한, 여성 노동자들은 “단 한 명의 여성 노동자도 잃을 수 없다(#NiUNA Trabajadora Menos)” 혹은 “단 한 명의 이민자도 잃을 수 없다(NiUNA Migrante Menos)” 같은 새로운 슬로건과 함께 운동 영역을 확장해 냈다. CGT가 임신중지 합법화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을 때도 여성 노동자들은 즉각 반발했고, CGT 본부 앞에서 녹색 파뉴엘라소 시위를 벌였다.

2) ‘빵과장미’는 아르헨티나 사회주의 페미니즘 단체로 페미니즘 제도화에 반대하며 노동자계급이 주도하는 여성운동을 지향한다. 이러한 빵과장미는 2000년대 초 아르헨티나 경제위기 후 ‘사장 없는 기업’을 내건 자주관리 운동의 급속한 성장을 배경으로 한다. 빵과장미는 현지 사회주의노동자당(PTS) 연관 단체이기도 하다.

 

 

성폭력 희생자에서 생산하는 주체로

 

이러한 아르헨티나 임신중지 합법화 운동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임신중지가 여성 노동자계급의 보편적인 이슈로 조명되고 전술 역시 계급행동으로 조직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운동에는 수많은 여성 조합원이 참여했고, 노조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도 자신을 노동자로 정체화하는 여성이 많았다. 그런 점에서 첫 번째 여성파업이 일어난 2016년은 아르헨티나 여성운동의 전환점, 특히 노동계급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아르헨티나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파울라 바렐라는 “2015년의 핵심은 인권운동의 시각에서 여성을 성폭력의 희생자로 본 것이었다면, 2016년에는 여성을 일하고 생산하는 주체로 정립하기 시작했다”라고 지적했다.

 

바렐라에 따르면, 이러한 변화에는 3가지 요소가 관련되어 있다. 첫째,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과 그의 동맹 ‘캄비에모스’로의 정권 교체다. 앞서 아르헨티나에서는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정부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사회적 위기가 더욱 깊어지고 있었다. 더구나 마크리 정부는 취임 직후 공공 부문 구조조정과 해고를 밀어붙였고, 공공 서비스 요금은 급등했으며, 인플레이션으로 실질임금이 곤두박질쳤다.민간 부문에선 6%, 공공 부문에선 8% 하락할 정도로 생존권이 후퇴했다. 빈곤율은 마크리 정부가 출범한 2015년 약 30%에서 2019년 41%로 급증했다. 세계 30대 경제국 아르헨티나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 같은 조건에서 여성과 성소수자는 더 잔인한 위기를 겪고 있었다. 해고와 실업에 수많은 여성이 거리로 밀려났고, 성과 재생산 예산이 대폭 줄었으며, 성폭력과 페미사이드는 역사상 최고치를 경신해 가고 있었다. 2017년 남녀 평균 임금 격차는 26.2%이었으며, 초등교육을 받은 노동자 사이의 남녀 임금 격차는 41.2%까지 벌어졌다. 여성은 남성과 동일한 소득을 얻으려면 77일을 더 일해야 했다. 저임금 노동자 10명 중 7명도 여성이었다. 14~29세 여성의 실업률은 21.5%로 같은 연령대 남성보다 4.2%p나 높았다. 또한 2017년 공식 확인된 여성 살해는 292건에 달했다. 그뿐만 아니라, 2018년 가정 폭력 핫라인에는 무려 7만 9,753건의 전화가 걸려 올 만큼 여성들이 가혹한 시간을 살고 있었다.

 

둘째는 여성들에게 누적되어 온 종교적 억압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헌법은 가톨릭교회의 특권을 인정한다. 이에 따라 가톨릭교회는 연간 수십억 페소에 달하는 국가보조금을 받으며, 이 자금으로 다양한 사회 부문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 때문에 가톨릭교회는 그들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보수세력뿐 아니라 중도좌파까지 집권층을 지원해 왔다. 그러나 그들은 늘 억압적인 여성관과 가부장제의 이데올로기를 강요했다. 대표적으로 교회는 수많은 종교학교를 소유하고 있지만, 교육 과정에는 성교육조차 없을 만큼 보수적3)이다. 더구나 임신중지에 대해서는 태아의 ‘생명’을 옹호하며 여성에게 도덕적 공세를 퍼부었다.

3) 아르헨티나 상원이 임신중지 합법화 법안을 막은 배경에 대해 친지아 아루자와 티티 바타차리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신자유주의 세력과 교회 모두 ‘가족의 가치’라는 이데올로기를 지키고자 한다. 둘째, 그들은 신자유주의적 약탈에 대응해 생겨나 과감하게 정치 지형을 만들어 가는 페미니즘 운동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요소는 여성 노동계급을 대표하는 집단이 부재했던 조건이다. 아르헨티나 노조들은 마크리가 집권한 2015년부터 퇴임한 2019년까지 5차례에 걸친 총파업으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맞섰다. 그러나 페미사이드 중단이나 임신중지 합법화, 여성 실업 해결 등에는 소극적이었으며 오히려 임신중지 합법화를 반대하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2018년 7월 7일 CGT는 임신중지 합법화로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비용을 우려하는 대국민 성명을 발표했다. 교회가 노동조합에도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결과였다. 노조 지도부 중에는 우파 정부를 지지하는 세력도 있었다. 이 때문에 2016년 10월 1차 전국여성파업 당시 슬로건 중 하나가 “CGT가 정부와 차를 마실 때 우리는 거리로 나간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노조 지도부가 여성 실업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었던 상황에서 이에 주목하기 시작한 건 여성 운동이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수많은 여성 노동자가 직장에서 밀려났는데도 CGT가 자신의 역할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즉, 2016년 10월 19일 여성파업은 이 3가지 요소가 맞물려 있었다. 그리고 여성들은 자신을 계급적 주체로 정체화하고 계급투쟁을 선택했다. 파업에는 “우리가 멈추면 세상도 멈춘다.”, “우리 삶이 무가치하다면 우리 없이 생산하라.”, “우리는 세상을 움직인다.”는 슬로건이 늘어 갔다. 또 파업 제안서에는 성차별적 폭력과 더불어 아르헨티나 여성이 겪는 삶의 불안정과 실업, 무급 가사노동, 성별 임금 격차, 교사와 간호사 등에서 드러나는 성별분업 체계와 계층화를 문제 삼았다. 출산 휴가 부족이나 무급 육아 노동, 부족한 보육원 등으로 인해 낮은 노동시장 참여율의 문제도 제기됐다. 결국 2015년 6월 3일 첫 니우나메노스 시위 이후 1년여가 지나면서 운동의 요구는 페미니즘 운동의 전통적 의제는 물론, 불안정노동 체제 청산과 빈곤 해결, 그리고 여성 노동자를 외면하는 CGT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확대됐다.

 

아래로부터의 파업 조직한 빵과장미

 

그러나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집회를 소집한 노조 지도부 역시 많은 경우 파업을 준비하지는 않았다. 즉, 대규모의 여성파업 시위에 비하면, 노동조합 중앙이 현장에서 실제로 파업을 조직한 곳은 많지 않았다. 2023년의 경우에는 아르헨티나 중부 네우켄에 위치한 ATEN 캐피털,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아데미스 등 좌파가 주도하는 5개 정도의 사업장에서만 파업이 조직됐다.

 

아르헨티나 빵과장미의 나탈리아 곤살레스 셀리그라(Nathalia González Seligra), 로라 빌치스(Laura Vilches)에 따르면, 일부 노조 지도부, 즉 부에노스아이레스교육노동자연합(SUTEBA)이나 아르헨티나중앙노조 교육종사자연합(CTERA-CTA)과 같이 키르치네르주의4) 정치세력이 주도하는 교사 노조의 지도부가 파업을 제안하기는 했지만, 선동적인 선언에 불과했다. 아르헨티나공무원노조(ATE)의 산하 조직들은 “성평등 없이는 사회 정의도 없다”고 말하며 “공식 및 비공식 노동, 서민 경제 및 무급 노동의 다양한 조직”이 역사적인 날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기껏해야 일부 여성 조합원들이 조기퇴근하는 데 동의했을 뿐, 파업의 중요성을 전파하고 토론하고 설득하기 위한 노력은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한다.

4) ‘키르치네르주의(Kirchnerism)’란 아르헨티나 전직 대통령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와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가 주도한 정치운동이다. 페론주의의 한 조류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사민주의와 좌파 포퓰리즘을 추구한다.

 

이러한 조건에서 아르헨티나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단체 빵과장미는 노동조합 중앙이 임신중지 권리, 성차별적 폭력, 여성 살해 반대 등 여성 운동의 요구에 대해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파업에 나설 것을 요구해야 한다고 제기해 왔다. 실제로 빵과장미 동료들은 노동조합이 운영되는 모든 공장에서 민주적 집회를 소집하고 파업을 제안했다. 2017년 이래로 ‘국제 페미니스트 파업’이라는 이름으로 국제적인 여성파업 운동이 일어났을 때 여성과 남성 모두가 일하는 교대조에서 생산을 마비시키고 시위에 참여하기로 투표한 업계 유일의 회사는 다국적 기업 펩시코였다. 

 

셀리그라와 빌치스는 “여성들이 파업에 나서기 위해서는 각 학교, 대학, 병원, 각 공장, 각 동네 등 동료와 이웃과 함께 파업이 실제로 가능하도록 아래로부터의 준비가 필요”했고, “또 여성 노동자들이 가정에서 필수적인 가사돌봄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실질적인 투쟁 수단을 구축해야 하지만, 그런 준비는 이뤄지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결국 아르헨티나 중도좌파 키르치네르주의 정치세력은 직장에서의 파업 즉, 반자본주의의 계급투쟁은 우회했지만, 임신중지 합법화 운동 한가운데서 페미니즘 이름으로 키르치네르주의의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후보 선거운동을 벌였고, 결국 그들은 2019년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승리했다. 이후 아르헨티나 정부는 임신중지를 합법화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중요한 한계를 노정한 것이었다.

 

 

역사적 승리와 한계

 

2019년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임신중지 합법화를 공약했고, 이후 2020년 12월 30일 아르헨티나 의회는 ‘자발적 임신중지 접근법(IVE)’을 가결했다. 이에 따라 법안 통과 후 11개월 동안5) 아르헨티나에서는 임신중지 시술 3만 2,758건이 무상으로 이루어졌다. 유산유도제는 4만 6,590개가 무상 공급됐다. IVE에 따라 아르헨티나는 임신중지를 필수 의료 서비스 대상으로 정하고 국민건강보험으로 의료비의 전액을 지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임신중지 시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은 903개소에서 1,243개소로 늘었다.

5) 2021년 11월 30일 기준. 법률 27610

 

하지만 자발적 임신중지 권리는 14주까지만 합법화되었고, 14주 이후에는 강간으로 인한 임신이거나 여성의 생명이나 건강의 위험 또는 사산 위험이 있을 때만 임지중지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아르헨티나 24개 주는 주가 보건 정책을 결정해 지역적 격차도 컸다. 전체 인구의 40%가 거주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주에서는 상당히 큰 변화가 일어났지만, 135개 지역 중 36개 지역에는 여전히 임신중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이 없다. 또 의사가 ‘양심’에 따라 임신중지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해 여전히 많은 여성이 어려움을 겪었다.

 

뿐만 아니라 여성 노동자의 사회경제적 조건은 더욱 후퇴했다. 아르헨티나 경제위기가 심화하는 가운데 정부는 노동자민중에게 그 위기를 전가했고, 가장 큰 타격은 여성 노동자들에게 돌아갔다. 최저임금 노동자의 64%는 여성이며, 비혼 여성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구도 12%에 달했다.

 

백래시와 반격

 

더구나 가속화하는 아르헨티나 경제위기 속에서 치러진 지난 대선에서는 무정부적 자유주의를 외치는 극우 하비에르 밀레이가 당선하여 노동자민중과의 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선거 유세장에 전기톱을 들고 나온 밀레이는 임신중지 권리 폐지를 비롯해 동성 결혼 반대, 총기 자유화와 장기 매매 합법화 등을 밀어붙일 예정이다. 그는 이미 공공 부문 임금을 동결했으며, 연금 인상 종료 및 파업권 제한을 골자로 하는 노동법 개정 대통령령을 발의했다. 이 대통령령에는 법적 수습 기간을 3개월에서 8개월로 늘리고, 해고 시 보상을 줄이며, 임신 휴가를 축소하는 등의 내용도 담겼다. 다만 이 대통령령에 법원이 제동을 걸었지만, 전면적인 경제 구조조정과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는 밀레이의 공격은 이제 시작이다. 특히 밀레이의 개악은 임신중지 권리 공격이나 사회복지 예산 삭감을 비롯해 여성 노동자들에게 가장 큰 타격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같은 조건에서 아르헨티나 노동자민중은 반격을 채비하고 있다. 12월 20일에는 좌파전선과 실업자단체를 비롯한 전투적인 노조가 대규모 집회를 벌였으며, 5월 광장과 의회 앞에서는 냄비와 팬을 두드리는 카세롤라소(Cacerolazo)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아르헨티나 노동총동맹은 1월 24일 전국 총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단체 빵과장미도 극우에 반격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조직하고 있다.

 

이제 아르헨티나 페미니즘 운동은 또 다른 계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페미니즘 운동이 실제로 반격으로 조직되기 위해서는 빵과장미가 말하듯 노동자계급에 기초한 여성운동, 여성 노동자들이 주도하는 페미니즘의 투쟁이 절실한 상황이다. 아르헨티나 빵과장미 이론가 안드레아 다트리(Andrea D’Atri)는 “임신중지 합법화 투쟁을 통해 우리가 배운 것처럼, 우리가 확실히 승리할 수 있는 곳은 부처 사무실이나 투표소가 아니라 거리다. 우리는 모든 직장, 모든 학교와 대학, 모든 동네에서 조직하여 극우에 맞서야 한다. 다시 한번 자신의 힘을 믿고 싸우는 그린타이드가 시작돼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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