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밀려나는 데 익숙해지고 싶진 않아요_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소현숙 동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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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기고] 밀려나는 데 익숙해지고 싶진 않아요_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소현숙 동지 인터뷰

2022년 10월 4일, 구미의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에 불이 났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일본 닛토 자본의 한국 자회사다. 불이 난 지 한 달 만에 회사는 화재보상금만 받고 공장을 청산하겠다고 노동자에게 문자로 통보했다. 130여 명의 노동자는 희망퇴직으로 떠났지만 11명의 노동자는 남아서 싸우고 있다. 11명의 노동자 중 언제나 조용하지만 단단한 소현숙 조직2부장을 만나서 인터뷰했다.

 

2006년 12월 4일, 현숙 씨가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이하 옵티칼)에 입사했다. 옵티칼은 모든 노동자가 방진복을 입고 일했는데, 몸에 열이 많은 현숙 씨에게 방진복은 쥐약이었다. 샤워를 몇 번씩 해도 퇴근할 때쯤 온몸에서 땀에 찌든 냄새가 났다. 자신에게 이런 냄새가 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기도 했다.

 

현숙 씨는 외관 검사 공정에서 일했다. 암실에서 이리저리 필름을 비춰보고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불량을 찾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일은 익숙해졌고 점점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물량 압박이 심했다. ‘현숙 씨, 저 사람은 같은 시간에 이만큼 더 하는데? 현숙 씨는 왜 못해?’ 대놓고 핀잔도 자주 받았다. 물량 압박이 크니 스트레스가 자연스레 쌓였다.

 

외관 검사를 한 지 4년쯤 되자, 눈이 뭔가 이상했다. 눈이 침침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안경점을 찾았다. 그러나 금세 눈은 더 나빠졌고 안경점을 자주 들락거려야 했다. “눈이 점점 나빠지시는 거 같은데요”라며 걱정스러운 말도 들었다. 외관 검사를 한 지 12년이 지났을 무렵, 아침에 눈을 떴는데, 눈이 너무 시리고 눈물이 줄줄 흘렀다. 빛이 닿기만 하면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병원에 가보니 각막이 찢어졌다고 했다. 듣자마자 현숙 씨는 생각했다. ‘암실에서 불량 검사를 12시간씩 하니 눈에 무리가 왔구나.’ 의사는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조심히 떠야 한다고 했다. 현숙 씨는 각막을 신경 쓰느라 스트레스가 쌓여 이석증까지 생겼다. 의사에게 원인을 물었으나 ‘각막 손상은 원래 원인 불명’이라는 답만 들었다. 산재로 인정받기 어렵겠다고 판단한 현숙 씨는 산재 신청을 포기했다.

 

2019년과 2020년, 희망퇴직이 이루어졌다. 노동자는 50명대로 줄었다. 외관 검사만 13년 했는데, 갑자기 회사는 청소도 시키고 다른 공정으로 보내며 여러 일을 같이 시켰다. 현숙 씨는 회사가 미웠지만 절대 스스로 나가진 않으리라 다짐했다. 이미 희망퇴직으로 동료들이 나가는 걸 보면서 ‘절대 내 발로는 안 나가. 그렇게 내보내고 싶으면 잘라’라며 마음을 정한 상태였다. 약간의 오기, 약간의 분노, 약간의 포기 등이 뒤범벅된 마음이었다.

 

2년쯤 지난 2022년 10월 4일, 공장에 불이 났고 한 달 만에 회사는 청산을 결정했다. 현숙 씨는 불이 나고 한 달 동안 한 번도 회사가 청산할 거란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청산하기엔 일이 너무 많았다. 이렇게 바쁜데 청산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문자를 본 순간 “이 개새X!” 욕이 튀어나왔다. 한 달 동안 정상화를 위해 노력한다더니 뒤로는 도망가려고 작업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너무 화가 났다. 이튿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노동조합 사무실을 찾았다. 투쟁을 하기로 처음 결정했을 때, 현숙 씨는 생각했다. ‘나이가 적지 않으니 다른 일자리 찾기 힘들 거야.’, ‘그래도 여기선 정규직인데…….’, ‘여기가 내 마지막 직장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숙 씨는 정규직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을 시작했다.

 

 

2023년 8월, 태풍이 찾아왔을 때 현숙 씨는 기가 찼다. 갑자기 경찰이 거리에 쫙 깔렸다. 구미의 ‘높으신 양반들’이 찾아왔다. 공무원이 소속에 상관없이 잔뜩 왔다. 그들은 ‘태풍 때문에 안전을 위해’ 공장 안으로 들어오겠다고 했다. 하지만 현숙 씨는 알고 있었다. 이미 전에도 바람이 많이 분 날도 있었고 비가 쏟아지던 날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찾아온 건 처음이었다. 공장에 불이 난 후 처음 만난 건 태풍이 아니라 그들이었다. 그 후로 변호사, 노무사 등을 데리고 청산인이 직접 오기도 했고, 다소 작고 귀여운 크기의 굴착기가 찾아오기도 했다. 처음엔 조금 긴장됐으나 현숙 씨는 이제 점점 무감각해지고 있다. 딱히 위협적이란 생각은 안 한다.

 

2023년 12월 29일, 구미시청은 옵티칼 공장 철거 승인을 예고했다. 2024년 1월 8일 이후면 언제든지 승인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구미시청이 공장 철거를 승인하면, 회사는 진심으로 철거하기 위해 찾아올 것이다. 현숙 씨는 이 소식에 두근거림을 느꼈다. 투쟁이 점차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기든 지든 투쟁이 끝으로 향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현재 노동조합은 공장 철거에 대해 더욱 탄탄히 준비하고 여러 투쟁을 고민하고 있다. 현숙 씨는 앞으로의 투쟁에 대해 “힘든 싸움이니까 어쩌면 포기할 수도 있고 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아도 갈 수밖에 없는 길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현숙 씨는 이 싸움의 끝을 보고 싶다.

 

현숙 씨는 해고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다. 밀려나고 싶지 않다. 물론 투쟁을 포기하고 다른 직장을 알아볼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그런다면,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길 때마다 또다시 밀려나리라 생각한다. 심지어 자연스러워지고 익숙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현숙 씨는 점점 밀려나고 또 밀려나는 것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다. 어쩌면 지금의 현숙 씨가 지키고 있는 건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보다 자기 자신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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