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여성파업 3] 폴란드 - “죽을 아기는 낳지 않겠다”, 신자유주의 여성 억압에 맞선 여성파업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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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세계의 여성파업 3] 폴란드 - “죽을 아기는 낳지 않겠다”, 신자유주의 여성 억압에 맞선 여성파업의 시작

  • 정은희
  • 등록 2024.01.03 19:56
  • 조회수 337

[편집자 주]

지난 12월 6일 열린 “여성파업 첫발떼기 토론회”를 비롯해, 2024년 3월 8일 여성파업을 조직하기 위한 활동이 여성파업 조직위원회 주도 아래 진행되고 있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노동자계급의 여성해방 운동을 건설하기 위한 여성파업 시도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며, 이 운동의 현황과 과제, 전망을 짚어 보기 위해 세계 여러 나라의 여성파업 사례를 돌아보고자 한다. 1975년 아이슬란드 여성파업에서 시작해 지난 십수 년 사이에 폴란드, 스페인, 아일랜드, 스위스, 아르헨티나 등 곳곳에서 여성파업이 일어났다. 각각의 사례는 그 자체로 세계 여성노동자의 현실과 투쟁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넓혀 주기에 충분하다. 또한 여성파업의 양상과 결과, 다양한 쟁점을 훑어보면 우리의 과제에 대한 인식도 더 풍부하게 채워 갈 수 있을 것이다.1)

1) 이 글은 졸고 《검은 시위》 중 폴란드 장을 여성파업을 중심으로 수정, 보완한 글이다.

 

2016년 3월 14일 폴란드의 대표적인 극우단체가 하원의장에게 ‘임신중지 금지’ 입법발의 절차를 시작하겠다고 통보했다. 3월 30일에는 폴란드 주교회 의장단이 ‘현행법은 태아의 생명을 제대로 보호하고 있지 못하며 이에 만족할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3월 31일 총리 대행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임신중지 금지 법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4월 1일 이를 비판하며 ‘소녀들을 위한 소녀들(Dziewuchy Dziewuchom)’이란 페이스북 페이지가 개설됐고, 몇 시간 만에 수천 명의 여성 이용자가 결집했으며, 이튿날에는 지역 그룹까지 만들어졌다.

 

4월 3일 폴란드 좌파 라젬당 활동가 주도로 폴란드 여러 도시에서 임신중지 금지 법안을 규탄하는 첫 번째 시위가 열렸다. 현장에는 ‘여성을 고문하는 법안에 반대한다’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같은 날 소셜 네트워크에 미사 중 성당을 떠나는 여성들의 모습을 촬영한 비디오 영상이 퍼져 나갔다. 4월 4일에는 페이스북에서 ‘총리에게 옷걸이 보내기’라는 캠페인이 시작됐다. 4월 13일에는 ‘여성을 구하라’라는 이름의 대안 입법이 국회에 제출됐다. 7월, 임신중지 금지 입법발의위원회가 연방의회에 법안을 제출했다. 개정안에는 40만 명 이상이 서명했다. 8월 4일에는 대안입법발의위가 21만 5,000명의 서명을 받아 법안을 제출했다. 9월 18일 여러 도시에서 ‘한 발짝도 더 나가지 않겠다’는 슬로건 아래 시위가 열렸다. 9월 21일 라젬당 활동가가 #blackprotest(검은 시위) 행동을 제안했다. 이후 소셜 네트워크에 해시태그 #blackprotest가 포함된 사진 수천 장이 게재됐다. 9월 24일 폴란드 배우 크리스티나 얀다가 페이스북에 1975년 아이슬란드 여성파업에 대한 글을 게시하며,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이 여성파업을 제안했다.

 

9월 25일 폴란드 전역에서 검은 시위가 벌어졌다. 폴란드 남서부 브로츠와프 시위에서는 활동가 마르타 렘파르트가 10월 3일에 전국적인 여성파업(Strajk Kobiet)을 일으키자고 제안했다. 9월 26일 폴란드 여성파업 페이스북 계정이 만들어졌다. 이벤트 페이지에 지역위원회가 구성되고 전국적인 행사 계획이 수립됐다. 10월 3일 여성파업이 일어났다. 이른바 검은 월요일. 전국적으로 결근 운동이 벌어지고 수많은 여성과 남성이 검은 옷을 입고 거리에서 시위를 벌였다. 파업이 어려운 여성노동자들은 병가나 돌봄휴가, 또는 헌혈을 하고 여성파업 대열에 합류했다. 결국 수많은 대중의 반발에 부딪힌 의회는 10월 6일 법안을 부결시켰다. 10월 23~24일 아이슬란드 여성파업 기념일을 맞이해 전국적인 여성파업의 두 번째 라운드가 펼쳐진다. 여성파업은 요구를 확대한다. 여성에 대한 경멸과 폭력 반대, 정치에 대한 교회의 간섭 및 교육에서의 정치 개입 반대. 11월 3일에는 바르샤바에 “죽을 아기는 낳지 않겠다”는 슬로건이 적힌 대형 벽화가 그려졌다.2)

2) 일부 사업장에서는 헌혈을 할 경우 휴가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헌혈을 하고 여성파업에 참가했다.

 

출처: Razem 페이스북 계정

 

이것은 임신중지 금지 법안 발의에서 여성파업까지 사태가 전개된 과정이다. 임신중지 권리를 위해 여성파업을 벌인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폴란드 사례를 주시해 보자. 폴란드 여성파업은 누구도 예상치 못할 만큼 강력했고, 임신중지 권리를 더 후퇴시키려던 정부의 계획을 며칠 만에 좌초시켰다.

 

사건의 한가운데 서 보자. 2016년 10월 3일 폴란드에서는 150개 이상의 도시에서 약 20만 명이 집회와 행진 시위를 벌였고, 거리를 봉쇄했다. 참가자들은 “나는 인큐베이터가 아니다”, “동정녀 마리아도 우리와 함께 싸울 것이다”, “우리는 일하지 않을 것이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시위에는 페미니스트나 활동가뿐 아니라 시위 경험이 없는 여성 고교생과 대학생, 기층 노동자계급 여성이 광범하게 참가했다. 또 약 90%의 시위가 인구 5만 명 미만의 도시에서 일어났을 만큼 검은 시위는 폴란드 사회 저변으로 깊숙이 뻗어 갔다. 이들은 가장 단순하고 원시적인 임신중지 도구를 상징하는 옷걸이를 들고 거리로 나왔고, 이는 곧 임신중지 합법화 투쟁의 국제적인 상징이 됐다. 이러한 검은 시위에 이어 마르타 렘파르트가 페이스북에서 제안한 여성파업은 공개 제안된 지 하루 만에 6만 명이 ‘좋아요’를 누를 만큼 대중적인 반응을 얻었다. 결국 2016년 10월 3일 여성파업 당일, 수많은 지역에서 여성들은 출근 대신 검은 옷을 입고 거리를 점거했다. 전투적인 노동조합 ‘노동자 이니셔티브(Inicjatywa Pracownicza)’를 포함해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 경제특구 노동자 등 주류 노총이 대표하지 않는 노동자들도 여성파업에 가세했다. 결국 수십만 규모의 시위가 계속되고, 유럽과 해외로도 연대 시위가 확산하자, 집권당은 더 이상 법안을 고집할 수 없었다. 여성파업의 역사적인 승리였다.

 

그러나 법과정의당은 약 4년 만에 헌재를 통해 태아 손상의 경우에 대한 임신중지 금지 결정을 끌어냈다. 바로 2020년 10월 헌재가 낸 결정이 그것이다. 검은 시위를 학습한 법과정의당이 의회를 우회해 꼼수로 추진한 결과였다.

 

“우리는 일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더 크고 과격한 시위가 전국 도처에서 터져 나왔다. 헌재 결정 이튿날인 2020년 10월 23일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만 1만 5,000여 명이 거리로 나와 헌재와 정부를 규탄했다. 이번에는 “엿 먹어라”라는 의미의 “Kaczyński!”, “Fuck PiS”라는 욕설까지 거침없이 쏟아졌다. 법과정의당 소속 정치인들의 집 앞은 돌을 던지는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로 아수라장이 됐다. 또 시위대는 전국 곳곳에서 자동차와 자전거를 이용해 도로와 철도, 공공시설을 봉쇄했다. 도심 못지않게 지역에서도 수많은 시위가 일어났다. 특히 150개 이상의 지역에 여성파업위원회가 조직되어 시위를 이끌었다. 낙태죄를 옹호해 온 성당들은 붉은색 페인트로 뒤덮이기도 했다. 급기야 10월 27일에는 최소 70개 지역에서 여성파업이 일어났으며, 28일에는 43만 명이 전국 600개 지역에서 다시 시위를 벌였다. 이러한 집회에서는 여성 배달 노동자와 교사, 세입자와 기후운동가, 장애 아동의 어머니와 장애 여성 등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이 발언했다. 간호사를 비롯해 파업에 직접 동참하기 어려운 다양한 여성노동자들은 붉은 번개가 새겨진 마스크와 함께 검은 옷을 입고 일하며 지지를 표현했다. 한편에선 극우 청년들이 시위대를 공격했지만, 여성들의 반격을 멈추지는 못했다. 당시 폴란드에서는 하루에만 1만 명 이상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고, 방역을 이유로 10명 이상의 집회가 금지된 상황이었는데도 시위 물결은 여러 개월 동안 지속됐다. 국제 공공데이터 플랫폼 ‘타블로우 퍼블릭(Tableau Public)’에 따르면, 2020년 10월 19일부터 2021년 2월 12일까지 폴란드에서 일어난 시위는 1,159건에 달했다. 외신은 당시 시위를 1980년대 폴란드 ‘솔리다르노시치(Solidarność, 연대노조)’ 운동 이후 가장 커다란 규모라고 기록했다.

 

폴란드 임신중지 권리 후퇴의 배경

 

폴란드는 현재 유럽에서 가장 억압적인 낙태죄 중 하나를 두고 있지만, 약 30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형태로 임신중지 권리를 보장했다. 1959년 폴란드 인민공화국은 임신중지를 합법화했고, 이는 스웨덴을 비롯한 다른 지역의 여성들이 임신중지 시술을 받기 위해 폴란드를 찾을 만큼 급진적인 것이었다.

 

당시 여성의 권리가 확대된 이유는 소련이 이식한 폴란드 정권의 여성 정책 때문이었다. 하지만 폴란드 사회에서 나타난 이 같은 변화는 근본적인 한계를 노정한 것이었다. 폴란드 여성가족계획연맹 공동창립자인 반다 노비스카에 따르면, 당시 폴란드 여성의 지위 변화는 여성의 힘으로 쟁취한 것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부여된 문제를 지니고 있었다. 그 때문에 역사적으로 여성의 지위를 국가와 남성에 종속했던 국가주의와 가부장제가 인민공화국 시절에도 변함없이 지속했다. 단적으로 1970년대에 집권 통일노동당 지도자들은 광부의 어머니들에게 그들의 출산을 치하하며 훈장을 수여하고 ‘모범적인 애국자’라고 불렀다. 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비교적 강력했던 여성운동마저 폴란드의 스탈린주의 체제 시절 완전히 사라지면서 여성의 목소리는 더욱 찾기 어려워졌다. 결과적으로 이 기간 폴란드 여성의 임신중지 권리는 가장 진보적인 형태를 취했지만, 동시에 매우 취약한 것이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임신중지 권리는 1989년 폴란드 인민공화국이 무너지면서 정반대 경로를 걷기 시작했다. 바로 가톨릭교회가 후원한 야권 연대노조의 공세에 구(舊)통일노동당 세력이 받아들인 ‘임신중지 타협’ 때문이었다. 당시 신구 정치세력이 체제 전환에 합의하며 맺은 ‘타협법’은 산모의 생명이나 건강이 위험한 경우나 심각한 태아 손상의 경우에만 임신중지를 허용했다. 이러한 낙태죄는 폴란드 의회가 1993년 도입해 1997년 헌재가 확정했으며, 이는 전환기를 나타내는 이정표 중 하나가 됐다. 붕괴를 겪은 소련 위성국들이 임신중지 권리를 특별히 제한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폴란드의 사례는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다. 막달레나 스로다(Magdalena Sroda) 바르샤바대 윤리학 교수는 “민주화 시대가 여성의 권리에 대한 백래시가 되리라고, 당시에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라고 지적한다.

 

출처: Silar

 

한편, 시장주의 개혁 세력이 추진한 공공부문 민영화와 노동유연화 등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기존의 불평등을 완화하기는커녕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 사회 위기를 가중시켰다. 전 폴란드 통일노동당을 비판적으로 계승한 세력 역시 자본주의 체제를 지키는 지배집단의 한 축일 뿐이었다. 그런 가운데 2001년 레흐 카친스키와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쌍둥이 형제가 창당한 ‘법과정의당’이 기득권 정당의 위기를 발판으로 빠르게 성장해 갔고, 극심한 사회적 위기를 겪는 폴란드 대중에게 가톨릭 신앙과 민족을 외치는 한편, 주류 양당과는 다르게 최저임금이나 복지수당 인상을 공약하면서 유권자층을 빠르게 흡수해 갔다. 결과적으로 법과정의당은 창당 14년 만에 좌우 양대 정당을 완전히 제치고 최대 정당으로 도약했다.

 

그러나 법과정의당은 민생조치를 강화하면서도 사회적 위기의 원인은 약자에게 돌리고 통제를 강화하는 극우 정당의 노선을 분명히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낙태죄 강화다. 뿐만 아니라 2019년에는 총선에서 ‘성소수자 없는 도시 만들기’를 공약했고, 결과적으로 법과정의당이 집권한 100여 개의 지방정부(전체 지방정부의 3분의 1)가 ‘LGBT 프리존’을 선언하기도 했다. 2018년에는 장애아를 둔 부모들이 턱없이 부족한 정부의 장애아동 지원예산을 비판하며 하원을 점거하자 이들을 강제 퇴거했다.3) 법과정의당은 이미 2015년 총선에서 다수파가 된 뒤 사법제도를 바꿔 헌법재판소까지 장악했다. 2020년 10월 폴란드 헌법재판소가 태아 손상의 경우에 관한 임신중지를 허용한 법안을 위헌 판결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3) 폴란드 정부는 장애아 출산 시 1,000유로를 지급하며 장애 아동 돌봄비로 월 350유로를 지원하지만, 별도의 소득이 없을 경우에만 이 수당을 받을 수 있다. 더구나 장애 아동이 18세가 되면 이 수당도 종료된다.

 

폴란드 여성의 현실

 

전환기 이후 폴란드 여성이 임신중지 권리만 빼앗긴 것은 아니다. 애초 폴란드 전환기를 주도한 시장주의 개혁 세력은 1980년대 당시 서구를 지배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를 관료제에 억눌려 온 노동자들에게 유익한 발전 경로로 보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시장주의 세력이 추진한 공공부문 민영화와 노동유연화 등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경제성장률이 증가했을지라도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이 심화하며 폴란드는 급속한 사회적 불평등과 위기 속으로 빠져들게 되고3), 그 주된 피해는 노동자계급 여성에게 돌아갔다.

3) 애초 폴란드 사회 각계가 체제 이행을 합의하기 위해 구성한 원탁회의부터 합의안에서 노동자의 파업권을 유보할 만큼 보수적이었다. 그래서 당시 기층에서는 “폴란드 국민은 원탁회의보다는 식탁에 더 관심이 많다”는 말이 회자됐다.
김용덕, <폴란드 체제 전환 연구 – 원탁회의와 6월 총선을 중심으로>, 《세계역사와 문화연구》, 제59집, 2021, 205쪽.

 

실제로 폴란드가 세계 자본주의 체제 속으로 편입된 뒤 경제성장률은 ‘아시아의 호랑이’보다도 빠르게 치솟았지만, 경제 성장에 따른 부는 소수에 집중되어 사회적 불평등과 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했다. 대표적으로, 폴란드 상위 1%의 소득 점유율은 1890년 약 11%에서, 1952년 폴란드 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에는 5% 미만을 유지했지만, 세계시장체제로 편입된 1990년부터 다시 증가해 2015년에는 13%로 급증했다.

 

폴란드의 세계시장체제로의 편입과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주된 피해자는 여성이었다. 폴란드 언론인 아가타 차르나카(Agata Czarnacka)에 따르면, 새로운 일자리는 남성에게 집중됐고, 여성 다수 사업장의 노동조건은 후퇴해 갔다. 이는 여성들이 열악한 직장을 그만두고 가족 돌봄을 선호하게 된 계기가 됐다. 동구 붕괴 후 공히 나타나는 것처럼, 정부는 이를 올바른 모델이라며 치켜세웠다. 또 공공부문 노동자 다수는 여성이었기 때문에, 정부가 추진한 공공부문 민영화도 여성에게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쳤다. 여성의 권리를 침해한 또 다른 문제는 공공보육 해체였다. 이 역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속에서 해체되었고,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여성의 가사돌봄 비중을 증가시켰다. 1990년대 초 가임기 여성 1인당 출산율이 평균 1.33명으로 급격히 하락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1997년에는 헌법이 개정되어 부채 상한선이 국내총생산의 60%로 한정되었고, 이는 공공지출 규모를 제한해 여성에게 더 큰 타격을 입혔다. 2004년 5월 유럽연합 가입을 앞두고 폴란드가 인준해야 하는 유럽연합 평등 지침 등이 잠시 여성계의 기대를 모았지만, 이 역시 아무런 효과를 갖지 못했다. 폴란드가 유럽연합 정책을 거부할 수 있는 선택적 이탈권 제도(옵트아웃)를 채택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폴란드 통화의 유로화로의 통폐합과 긴축재정 아래, 폴란드 여성들은 공공부문 임금동결 같은 경제적 타격을 추가로 받았다. 폴란드 여성들은 그런 정부 정책을 피해 유럽연합 가입국 특히 영국과 독일로 대거 이주했으며, 이는 정부의 반여성 정책을 시사하는 또 다른 징후로 해석됐다.

 

결과적으로 폴란드는 유럽연합 젠더 평등 인덱스에서 2022년 기준 21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유럽연합 평균보다 10.9포인트 낮았다. 노동시장에 참여한 여성 비율은 2022년 기준 50.8%에 불과한 반면, 폴란드 여성이 요리와 집안일에 보내는 시간은 하루 최대 3.2시간으로 유럽연합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2015년 기준). 폴란드 성별임금격차는 2020년 기준 8.7%로 OECD에서 낮은 편이지만, 그 원인은 성평등 수준이 높다기보다는, 여성의 교육 수준은 비교적 높은 반면,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낮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또 실업 여성의 약 3분의 1이 육아나 돌봄 부담 때문에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대답할 만큼, 여성이 떠맡은 부담이 큰 편이다. 같은 여건의 남성은 약 3%에 불과했다. 이런 조건에서 법과정의당 정부가 2016년 도입한 보편적 아동수당제도인 ‘패밀리 500+’가 기대를 모았지만, 이 역시 보육원과 유치원이 부족해 일과 보육을 결합하기 어려운 소도시에서는 여성이 집에 머물도록 유도한다는 한계가 지적되고 있다.

 

폴란드 여성파업의 특징

 

이러한 조건에서 2016년 여권이 발의한 임신중지 금지 법안은 그렇지 않아도 힘겹게 살아가는 폴란드 여성들에게 거대한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더구나 극우 정권에 대한 불만이 수년 동안 증가해 온 상황이기도 했다. 2020년 여권은 코로나19 대처를 위해 온라인 교육이나 병원, 의료서비스를 강화하는 대신 선거운동에 바빴다. 뿐만 아니라 형편없는 의료서비스 수준이 상황을 악화시켰다. 2017년에는 레지던트 의사들이 장시간 노동에 맞서 단식투쟁을 포함한 파업에 들어갈 정도로 보건의료 수준이 열악했다.

 

그러면 폴란드 여성파업에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우선 폴란드 여성파업은 폴란드 역사상 최초로 임신중지권을 쟁취하기 위해 조직된 대중적 계급투쟁이다. 이는 2016년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이 1975년 아이슬란드 여성파업에서 영감을 얻어 처음 제안했고, 즉시 대중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여성파업이 반향을 얻은 것은 앞서 언급한 신자유주의 아래 후퇴한 여성들의 사회적 조건과 관련이 깊다. 

 

폴란드 현장 노동자조직 ‘노동자 이니셔티브(Inicjatywa Pracownicza)’에서 활동하는 마르타 에르(Marta R)에 따르면, 여성파업이 뜨거운 반응을 얻은 이유는 검은 시위에 참여한 여성 대부분이 저임금과 불안정 노동, 열악한 공공서비스 아래 무급 가사·돌봄노동 모두로부터 고통당하는 상황에서, 임신중지가 박탈당한 사회경제적 권리의 일부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에게는 ‘파업’으로 자신에게 떠맡겨진 노동을 거부하는 것이 중요한 전술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임신중지 금지는 부자가 아닌 가난한 여성의 문제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임신중지는 계급적 문제였다. 실제로 폴란드 여성이 국내서든 아니면 해외서든, 임신중지 수술을 받으려면 월급의 50~100%를 지불해야 했다. 즉, 폴란드 여성파업은 임신중지 권리 억압을 계급적 문제로 보고 계급적 주체로 서서 저항한 반자본주의 계급투쟁이었다.

 

둘째, 소수의 노동조합이 여성파업에 참가하기는 했지만, 사실 폴란드 여성파업은 노조운동과는 거의 관련 없이 진행됐다. 애초 여성파업 주체들은 총파업을 예고하며 “우리는 일하러 가지 않겠다”라는 슬로건을 채택하고 노동자들에게 “하루 쉬자, 하루 무급휴가를 갖자. 헌혈을 위한 휴가를 내자. 사업자와 상점, 가판대를 접자. 그냥 단순하게 일하러 가지 말자. 폴란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이제 그만 멈춰 버리자! 그리고 새로운 폴란드를 만들자!”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렇게 총파업을 호소했지만, 노동조합의 파업 행동은 조직되지 않았고, 여성파업은 출근하지 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 거리 시위 형태로 진행됐다.

 

집회 시위에서 전폴란드노총(OPZZ), 자유노조연맹(49 WZZ Sierpień 80), 연합대안(Związkowa Alternatywa51)을 비롯한 여러 노동조합이 발언했고, 그들은 여성파업을 지지하는 성명을 내고 시위 중 경찰에 제지된 이들에게 법적 지원을 제공했다. 그러나 오로지 단 하나의 노조, ‘노동자 이니셔티브’만 실제로 조합원들의 파업을 조직했다.

 

셋째, 폴란드 여성파업위원회는 산업이나 단체를 포괄하는 위원회라기보다는 여성단체에 가까웠다. 여성파업위원회는 전국 150개 지역에서 조직되었으며, 다양한 시위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 같은 조직을 기반으로 2020년 10월 헌재 판결 후 시위는 한 달 동안 계속됐고, 2021년 1월 해당 법안이 발효됐을 때에도 일주일 이상 시위가 지속됐다. 2021년 3월 8일에는 다시 여성파업이 일어났다.

 

노동조합 없는 여성파업

 

그러면 폴란드 노동조합은 왜 여성파업에 나서지 않은 것일까. 그 이유는 크게 3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폴란드 노동조합의 가부장적 질서 때문이다. 사실 폴란드의 양대노총 중 하나인 연대노조는 우파 정치세력에 가까우며 역사적으로도 가부장적 질서가 팽배한 노조였다. 연대노조에는 많은 여성노동자도 참여하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조선소 크레인 여성노동자 안나 발렌티노비치 해고가 유명한 그단스크 파업의 직접적인 원인이었고, 연대 조합원 중 여성은 54%에 달해 여성노동자들도 파업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이를테면, 1980년 8월 연대노조 위원장 바웬사는 사측이 임금 인상 요구의 일부분을 수용하자 파업 종료를 선언했지만, 파업을 멈추면 정권이 더 많은 공세를 펼 것이라며 파업이 계속돼야 한다고 설득한 것도 여성노동자들이었다. 그러나 연대노조 내에서 여성 의제가 채택된 적은 없을 만큼 여성들은 소외되어 있었다. 오히려 1990년 연대노조 전국연대대회(NCS)는 ‘태어나지 않은’ 자의 법적 보호를 지지하는 결의안을 채택해 여성의 의사를 외면했다. 당시 연대노조 여성부는 그러한 결정을 내리는 주체가 여성이어야 한다는 이유로 반대했으나, 그 결과 1991년 봄에 해산되고 말았다. 폴란드 페미니스트 문학평론가 마리아 야니온(Maria Janion)은 연대노조가 주도한 체제 전환 과정에 대하여 “그것은 남성 민주주의의 시작이었다”라고 지적한다. 체제 전환을 위해 구성된 원탁회의에는 여성(2명)보다 가톨릭 신부(3명)가 더 많이 참여했고, 모두 56명의 남성과 2명의 여성으로 구성됐다.

 

지난 여성파업에서도 연대노조는 유사한 태도를 취했다. 연대노조는 1989년 자신의 선거 포스터에 나오는 남성을 여성으로 묘사한 크로아티아 예술가 산자 이베코비치(Sanja Ivekovic)를 고소했다. 그러나 애초 선거 포스터를 제작한 예르지 야니체우스키(Jerzy Janiszewski)는 예술가와 시위대를 옹호하며 진보적 목적에 한해선 누구나 이 포스터를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Tomasz Sarnecki의 1989년 6월 선거 포스터와 Sanja Iveković의 작품 "잊혀진 연대의 여성들”

(사진: Sławomir Sierzputowski / Agencja Wyborcza.pl; 바르샤바 현대 미술관)

 

둘째, 여성단체들도 노동조합이 파업에 나설 충분한 동기를 제공하지 못했다. 바르샤바대 법과대 조교수 표트르 그제비크(Piotr Grzebyk)에 따르면, 폴란드 여성파업 주체들이 임신중지권 쟁취를 위해 노동자 파업을 조직하려면, 임신중지권과 노동권이 직접적인 관계가 있음을, 또한 임신중지 금지가 전체 노동자의 이익을 침해함을 입증해야 했다. 다시 말해 노동자들을 설득해야 했다. 임금 삭감이나 실직 위험을 이기고 파업에 나서게 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러나 여성파업위원회는 이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파업권을 제한하는 법 제도 때문이다. 1990년대 폴란드에서는 파업 주체, 절차, 요구 등 파업에 관한 제반 권리가 제한됐다. 법은 임금이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파업만 합법으로 인정했고, 임신중지권을 요구하는 여성파업은 법의 허용 범위를 초과했다. 요구 대상도 고용주가 아니라 국가라는 점에서, 합법적인 파업권을 가지기 어려웠다. 아울러 폴란드에서는 노조만 파업을 조직할 법적 권리가 있지만, 여성파업의 주체는 노조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폴란드는 파업 돌입 전 교섭과 조정 단계를 의무화하기 때문에, 노조가 여성파업에 참가하기 어려웠다는 평가다.

 

그러나 여성노동자들은 노조가 조직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여러 문제와 탄압을 감수하고 여성파업에 참가했다. 일례로 폴란드 남부 자브제의 교사 그룹은 여성파업에 참가한 사진을 온라인에 게시했다가 교육당국 징계위원회에 신고됐고, 이에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위해 싸워야 했다. 2021년 11월을 기준으로, 지난 1년 동안 시위 참가를 이유로 법정에 출두한 사람은 약 4,000명에 이른다.

 

폴란드 여성파업의 성과와 과제

 

이제 폴란드 사회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2020년 11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폴란드 국민 73%가 헌법재판소 판결에 반대했는데, 이는 2019년 53%에서 대폭 늘어난 것이다. 또 거의 절반(45%)이 임신중지 문제가  향후 선거에서 자신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다. 렘파르트는 “우리는 진정 빠르게 세속화하는, 또한 페미니스트가 많아지고 있는 유일한 나라”라며 “검은 시위와 여성파업은 폴란드 사회 전체를 뒤바꿀 것”이라고 말한다.

 

애초 폴란드 노동자민중은 연대노조를 중심으로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했지만, 체제의 대안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로 삼으며 역설적으로 노동자계급에 반하는 국가를 건설했고, 여성의 처지는 더욱 악화했다. 즉, 공적 자원이 해체되면서 여성에게 노동력 재생산 책임이 주어지고, 무급 가사돌봄에 붙들린 이들의 노동력은 더 저평가됐다. 더구나 시장주의 개혁 세력은 가톨릭교회의 비호 속에서 집권해 더 반여성적인 자본주의 체제를 건설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국가의 대표적인 정책이 바로 낙태죄 도입이었다. 이에 폴란드에서 임신중지 권리는 계급투쟁의 문제였고, 그 때문에 2016년을 시작으로 폴란드에서 대중적인 여성파업이 전개된 것은 노동자계급의 무기를 든 계급투쟁이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계기를 기록한다. 뿐만 아니라 폴란드 여성파업은 아르헨티나 여성파업과 더불어 2017년 3월 8일 30여 개국이 함께한 국제 여성파업의 물꼬를 텄다는 점도 중요한 성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폴란드 여성파업이 부딪힌 한계도 중요한 시사점이 될 수 있다. 폴란드 여성파업은 역사적인 투쟁을 전개했지만, 시위 중심이었고 강력한 파업으로 전개되지는 못했다. 여기에는 여성노동자의 이해 역시 대변해야 할 노동조합이 주요한 걸림돌로 작용해 여성파업의 위력을 저해했다. 이에 강력한 여성파업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가부장적인 노동조합을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한다는 과제가 제기된다. 우선 노동조합부터 여성노동자에게 사적으로 떠넘겨져 왔던 문제, 즉 성과 재생산 의제를 자기 과제로 삼아야 한다. 생리부터 임신을 중지 또는 유지할 것인지를 비롯해 출산과 보육, 간병까지 여성노동자가 수행해 온 성과 재생산 의제를 전체 노동자계급의 문제로 삼고, 이 권리를 박탈하는 자본가계급에 맞서 성과 재생산의 권리를 온전히 쟁취하는 투쟁이 필요하다. 전체 노동자계급 여성의 성과 재생산 권리를 위한 싸움은, 개별 사업장 단체협상부터 산별과 전국 수준의 투쟁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출처: www.ozzip.pl

 

여성운동은 가부장적 노동자운동을 혁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노동조합이 외면해 온 여성노동자들을 주체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운동과 공동전선을 결성해 노동자계급의 성과 재생산 권리 쟁취를 위한 공동투쟁을 전개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여성운동은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정치세력으로부터 독립해 노동자계급에 토대를 둔 대중적 운동을 전개할 수 있다.

 

나아가 폴란드 사례는 현 시기 성과 재생산 권리가 단순히 하나의 법안, 하나의 정책이 아니라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인 문제로 여성해방을 위한 투쟁은 가부장적 자본주의 변혁을 우회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이에 성과 재생산 권리 운동 역시 체제 개선에 안주하지 않고 가부장적 자본주의 변혁운동으로 전진해야 한다. 예컨대, 2019년 아르헨티나에서 주류 임신중지 합법화 활동가들의 지지 속에서 당선한 중도좌파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최근 극우 하비에르 밀레이에게 정권을 내준 것은 중요한 메시지다. 최근 폴란드에서도 여성파업의 정치적 여파 속에서 중도좌파 야당이 승리했는데, 이들 역시 아르헨티나의 사례를 주시해야 할 것이다.

 

폴란드 여성파업이 들려주는 교훈

 

사실 극우 법과정의당의 성과 재생산 억압은 비단 폴란드에서만 나타난 현상도 아니고 일시적인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발생한 저출생 심화에 따라 도입된 노동자계급의 성과 재생산 권리 억압이다. 신자유주의는 노동자계급의 생활수준을 공격해 결혼·출산 가능성을 낮추고 결과적으로 저출생을 낳는다. 특히 여성노동자는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로 떠밀리고 공공기반시설이나 서비스는 민영화되거나 삭감되어 더 많은 무급 가사돌봄 부담을 떠안는다. 그러나 자본가계급은 노동력이 세대에 걸쳐 재생산되어야 착취할 수 있기에, 여기서 모순이 발생한다. 결국 자본가국가는 여성을 이중으로 쥐어짜는 위기전가에 나서는데, 한편으로는 불안정노동을 강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낙태죄를 비롯해 성과 재생산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실제로 폴란드를 비롯해, 보수적 대법관을 임명해 결국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무력화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공개적으로 페미니즘과 LGBTQ+ 운동을 반대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동성결혼과 임신중지에 반대한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당선자 등 극우 정치인들은 앞다퉈 성과 재생산 권리를 악화하고 있다. 성과 재생산 권리의 진전은 오직 대중투쟁의 결과였다.

 

자본주의 위기가 심화하는 현재, 정권의 성과 재생산 권리 억압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정부는 영아 살해 논란을 주도한 끝에 영아살해죄를 살인죄에 통폐합하고, 여성과 아이 둘 다 보호하지 못하는 보호출산제를 강행했다. 우리에게는 우리 계급의 이해를 지킬 힘이 필요하다. 체제와 정권의 공격에 맞서 여성파업을 조직하는 것이 바로 폴란드 여성파업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교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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