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연구개발 예산삭감, 노동자 민중의 민주적 예산통제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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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기고]연구개발 예산삭감, 노동자 민중의 민주적 예산통제를 요구한다

사진: 대통령실

 

과학기술, 인문사회 연구개발 예산 졸속 삭감

 

6월 28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가 연구개발 예산집행에도 카르텔이 개입되어 있다”라고 발언했다. 다음 날 감사원은 10개 연구관리 전문기관에 대해 현장감사를 시작했다. 6월 30일 진행 예정이던 2024년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안 심의·의결을 위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제4회 심의회의’는 갑자기 연기되었고, 경제인문사회연구회(경인사연)와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는 소속기관 사업비를 각각 30%, 20% 삭감하라는 기재부의 지침을 받았다.1)

1) 경인사연은 인문·사회과학분야 26개 출연연구기관을 지원·육성하는 조직이며, NST는 과학·기술분야 25개 출연연구기관을 지원·육성하는 조직이다.

 

국가재정법에 따라 예산요구서는 매년 5월 31일까지 기재부에 제출되어야 한다. 경인사연과 소속 기관은 기재부의 1차 심의를 이미 받았으며(주로 예산이 삭감된다), 2차 심의를 앞둔 상황이었다. 또한 과학기술기본법에 따라 과기부는 국가 연구개발예산안을 6월 30일까지 기재부에 제출해야 하는데, 윤석열 발언 후 예산안의 대폭 수정이 요구된 것이다. 결국, 당시 정부가 제출한 연구개발 총예산안은 25조 9천억 원으로, 올해보다 3조 4천억 원(10.9%)이나 줄어들어 있었다.2)

2) 교육·기타부문 R&D 일반재정사업 재분류 제외

 

인문·사회과학분야를 지원하는 경인사연 예산은 올해보다 무려 52.2%나 줄었고 경인사연 산하 연구기관의 전체 예산은 211억 원이 감액돼 3.8% 줄어들었다. 한 연구기관의 기관장은 “연구자 인건비와 시설비도 모두 포함된 예산인 점을 염두에 두면 실제 연구 사업과 관련 예산삭감률은 두 자릿수에 이른다”고 전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간 인문사회분야 연구개발 예산은 전체 연구개발 예산 1% 남짓에 불과했다. 지난 5년간 정부 연구개발 예산 53%가 늘 동안 인문사회분야는 고작 6.76% 늘었을 뿐이다. 연구비 과제도 인문사회계는 이공계 6분의 1에 불과하며, 연구비사업 참여 교원도 이공계 3분의 1 수준이다. 이렇듯 인문사회 연구는 홀대받아 왔고, 이번 예산안에도 역시 그러한 경향이 드러난 것이다. 대선후보 시절 “지금 세상에서 인문학은 그런 거(공학, 자연과학) 공부하면서 병행해도 되는 거다. 그렇게 많은 학생을 대학교 4년, 대학원 4년… 그건 소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던 윤석열의 발언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과학기술분야를 지원하는 NST에 소속된 연구기관의 주요 사업비는 올해보다 25.2% 삭감되었는데, 이는 5% 늘어난 1조 2,445억 원이 필요하다는 NST의 올해 초 입장과 차이가 크다. 급작스러운 예산삭감이 확정되면 연구 자체가 타격을 받는다. NST 소속 연구기관은 정규직을 제외한 학생연구원, 박사후 연구원(post doctor) 등의 인건비를 직접사업비에서 지급하는데, 내년 직접사업비 예산 3천억 원이 줄었다. 연구과제 기획과 시행이 무산되는 상황이고, 연구인건비를 받아 생계를 유지하는 지식노동자들의 생활권도 위기에 놓였다.

 

결국 12월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내년도 R&D 예산이 26조 5천억으로 올해(31.1조) 대비 14.7% 줄어드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국가 R&D 예산삭감은 33년 만에 처음이다.

 

학생과 노동자 사이에서, 생활권을 보장받기 어려운 대학원생

 

사실, 이번 예산삭감이 아니더라도 연구노동자들의 불안정한 삶은 계속되어왔다. 이를 살펴보자.

 

연구에 종사하기로 마음먹고 대학원에 진학한 학생은 불안정한 환경에 놓인다. 등록금도 내고 생활비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연구로 받을 수 있는 돈은 학생인건비인데, 이는 ‘학생인건비 계상기준’으로 정해진다. 연구기관장은 기준금액을 계상률(참여율) 100% 기준으로 학부생 월 130만 원, 석사과정생은 220만 원, 박사과정생은 300만 원 이상으로 설정해야 하며, 여러 과제에 참여해도 계상률은 100%를 넘길 수 없다.

 

규정만 보면 박사과정생은 300만 원 이상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기준금액이 아무리 높아도 계상률은 100% 아래로 인정받는 경우가 많다. 2021년 과기부에 따르면 월평균 인건비 지급액은 석사 63만 원, 박사 99만 원이었다. 기준금액 절반도 받지 못하는 학생이 52.4%였고, 전액을 받은 학생은 10.8%에 불과했다. 인문사회 연구학생은 “월 28~29만원 수준을 받는 경우가 다반사다.”

 

2020년 석·박사 과정생과 박사후연구원 등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이들 중 51.9%가 연 소득 2천만 원~3천만 원이 필요하다고 답했으나 64.9%의 연 소득이 2천만 원 아래로 최저시급 미만이었다. 또한 연구실 평균 노동·연구시간이 주 52시간을 넘는다는 응답이 57.3%에 달해 열악한 노동환경도 함께 드러났다. 한편 연구수주와 예산을 연계하는 ‘연구과제중심제도(PBS)’ 하에서는 학생들이 연구비를 받기 위해 과제를 맡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자신의 본래 연구주제와 관계없는 과제를 맡거나 행정업무를 하는 일도 생긴다.

 

돈을 버는 다른 방법은 수업·연구·행정조교, 근로장학생 등으로 일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받는 돈은 대개 ‘장학금’이나 ‘장려금’으로 분류된다. 이렇게 되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2018년 발표되어 교육부에 전달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주요 대학교 대학원생 조교 중 90.6%가 계약서를 쓰지 않고 일한다. 노동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할 만하다.

 

반면 학생이 아니라 노동자 신분이 되면 대학(원)생 전세자금대출, 생활비지원 등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 전일제 학생 대상의 장학금도 받을 수 없다. 수입이 일정액을 초과하면 학자금대출 상환의무도 발생한다. 출연연구기관의 학생연구원 근로계약서에는 ‘학습시간 보장’ 조항이 있어, 실 노동시간과 관계없이 주 25~35시간만 노동시간으로 인정된다. 결국 대학원생과 학생연구원들은 학생과 노동자 어느 한 편에도 안정적으로 속하지 못하는 이중 사각지대에 있다.

 

일러스트: 시사인

 

대학원을 나선 후에도 지식노동자의 불안정한 생활은 계속된다

 

학위를 받아도 정규직 일자리를 얻기는 매우 어렵다. NST, 경인사연 박사후연구원은 대부분 계약직이다. ‘박사후연구원은 임시일자리’라는 통념 때문이기도 하지만, 과제별 예산 할당제도(PBS)를 따라 인력이 필요할 때마다 임시연구원을 충원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고용하는 박사후연구원도 계약직이다. 많은 경우 석·박사학위를 가지고도 계약직 연구원이나 시간강사, 사교육 강사나 아르바이트 노동자로 일해야 한다.

 

인문·사회과학 분야는 대부분 박사후연구원 제도가 운영되지 않기에, 이 분야 연구자들은 더욱 불안정하다. 2022년 한국직업능력연구원과 교육부 전수조사에 따르면 신규 박사학위 취득자 중 사회과학, 언론 및 정보학 전공자 17%, 예술 및 인문학 전공자 33%가 연봉 2천만 원 이하였다. 이 비율은 학위 취득 후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학업전념 박사’3)뿐 아니라 학위 취득 후 이직·승진·종사상 지위 변화를 겪는 ‘직장병행 박사’4)를 포함해 산정된 것이므로, ‘학업전념 박사’에 한정하면 저연봉 박사 비율은 더 높다고 예상할 수 있다.

3) “박사과정 중 조교, 아르바이트와 프로젝트, 시간강사 등을 했지만 학업에 전념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한 자”

4) “박사과정 중 재직 또는 고용주, 단독자영업자를 포함하여 학업과 직장을 병행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한 자”

 

출연연구기관 정규직 정원과 임금도 제약된다. 연구기관 정규직 증원은 기재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 2016년부터 2022년까지 기재부가 허가한 증원은 총 654명으로 NST 산하 연구기관 요청의 14.5%에 불과했으며, 올해는 349명 증원 요구 중 11명만 허가받았다. 출연연구기관이 정규직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 업무부담이 더해질 뿐 아니라, 연구 인력의 숙련도와 연구의 연속성도 확보하기 어렵다.

 

또한 인건비 총액과 상하한선이 정해져 있어 필요한 인원을 고용하기도 어려우며, 인건비 한도가 정해져 있어 연구기관이 벌어서 쓰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다. 게다가 출연연구기관 소속 연구노동자들은 IMF 사태 이후 정년이 4년 당겨져 만 61세를 적용받고 있었는데,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적용 후 정년은 연장되지 않고 임금만 삭감됐다(임금피크제의 효과라던 신규채용도 크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다). 전국과학기술노조 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신명호 지부장은 “과기계 연구기관 종사자들의 시간외수당 문제는 항우연만의 문제나 우주환경시험을 수행하는 연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한 바 있다.

 

잘려나간 노동자 민중의 몫은 재벌과 군산복합체의 이윤으로?

- 노동자 민중의 예산통제를 요구한다

 

33년 만에 이루어지는 연구개발 예산삭감은 정부의 필수 공공부문 축소와 해체, 사유화라는 맥락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실제로 2024년 정부 예산 증가 폭은 재정통계가 정비된 2005년 이후 가장 낮다. 서이초 사태에서 드러나듯 교육현장 인력확충이 필요함에도 유·초·중등 교육예산은 7조 1천억 원 삭감된다. 심지어 공공돌봄을 담당하는 시·도 사회서비스원 예산 전액 삭감을 시도했다. 정권은 공공부문 노동자의 생계를 위협하는 동시에, 공공복지 자체를 해체하거나 민영화하고 있다. 연구개발 예산삭감도 이 같은 정부 기조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윤석열 정권은 긴축재정이 필요하다면서도 재벌 지원은 아끼지 않는다. 정권 출범 이후 종합부동산세, 법인세, 고소득자 소득세 삭감이 있었고, 6월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 1~5월 법인세는 전년 대비 17.3조원 덜 걷혔다. 하지만 10월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은 “법인세율을 더 낮추었어야 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기후위기 주범인 재벌에게 61.1조를 직접 지원하며 ‘기후위기 해결사’로 둔갑시켰다(전진 성명 “자본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계획을 폐기하라” 참고).

 

국방비 예산안은 올해 대비 2조 5742억 원(4.5%) 증가했다. 정부 총지출 증가율(2.8%)보다 국방 예산 증가율이 더 큰 것은 2017년 이후 처음이다. 민중의 필요를 위한 재정은 ‘카르텔’로 규정하면서도 재벌 지원과 군비에는 기꺼이 돈을 쓰는 것이다. 특히 국방 예산 확대는 올해 8월 ‘캠프 데이비드 정신’ 성명에 따른 한미일 군사 공조 체제가 가속할 동북아 군비 경쟁의 악순환과 떼어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연구개발 예산 삭감을 반대하는 투쟁은 노동자 민중의 삶을 위한 예산통제 또한 요구해야 한다. 공공부문 노동자, 사회적 소수자들과의 연대가 그 시작이다. 당장 사회서비스원, 공공임대주택, 공공병원 등 민중의 삶에 꼭 필요한 예산이 줄줄이 삭감되고 있다. 나아가 장애인예산권리투쟁에서 보듯 정부는 권리예산 확대라는 민중의 요구를 묵살하기도 한다. 예산을 요구하고 관철해 내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노동자 민중은 예산을 들여다보고 요구할 권리를 가져야 하고, 그럴 힘을 키워야 한다. 또한 공공돌봄, 교육, 의료, 주택 등 예산삭감으로 인간답게 살 권리를 박탈당한 노동자 민중이 연대해 싸워야 한다.

 

그럴듯한 허울을 걷어내면, 대학원생과 연구자도 마찬가지임을 알 수 있다. 앞서 지적했듯 대학원생과 박사후연구원의 평균임금은 대개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한다. 예술 및 인문학 박사학위 취득자 33%는 연봉이 2천만 원 이하이며, 일자리 역시 불안정하다. 이공계 예산이 33년만에 줄어들지만, 인문사회계 구조조정은 벌써 수십년째다.5) 지식노동자가 인간답게 일할 권리를 위해, 또한 지식노동자가 만드는 지식이 노동자 민중을 위해 쓰이기 위해, 민주적 예산통제를 요구하며 연대하자.

5) 많은 경우 이공계 연구개발 예산은 이윤 획득, 생산력 발전과 직결된다. IMF 경제위기 때에도 연구개발 예산은 삭감되지 않았다. 하지만 연구개발 예산 확대는 자본의 이윤을 늘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연구노동자들의 생활권을 보장하고 연구 결과가 민중에게 유익하게 쓰이기 위해서여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예산삭감은 연구노동자들의 생활권 쟁취투쟁은 물론 연구의 목적과 용도 자체에 대한 질문과 문제제기로 이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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