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 노동자들은 어디에 이의제기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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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 노동자들은 어디에 이의제기해야 하나요?”

가만히 있으면 바뀌는 것이 없다 - 빵과장미의 할말많3 : 콜센터 노동 토론회 후기

사진: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 파업을 지지하는 구호를 외치는 토론회 참여자들

 

“아무도 생리휴가가 있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고객이 억지로 요구한 반성문인데도 관리자가 쓰게 했다. 제사 때문에 연차를 내자 고사리 산 영수증을 제출하라고 했다. 취업규칙 같은 건 본 적도 없었다. 야간에는 휴게실이 없어서 바닥에서 쪽잠을 자다 콜이 울리면 다시 받아야 했다. 직원은 모두 여성이고 관리자만 남성이다.”

 

이번에도 여성 노동자들은 할 말이 많았다. 지난 9일, 변혁적여성운동네트워크 빵과장미에서 진행한 ‘할말많’ 토론회에서는 또다시 여성 노동자들이 겪어 온 차별과 폭력에 관한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특히 작년 12월,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의 용역업체 변경과정에서 고용승계 약속을 어기고 4명을 부당해고한 원청과 하청 효성 ITX를 규탄하며 원직복직 투쟁과 단식 투쟁을 진행했던 이하나 동지와, 3월 14일 콜센터 노동자들에게 해고를 통보한 신용보증재단 콜센터 하청업체에서 파업 투쟁을 진행한 김민정, 임지연 동지가 참석해 콜센터 현장의 문제와 투쟁을 생생하게 들려줬다. 또 최근 ‘해고 없는 전환’을 쟁취하기 위한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전면파업까지, 여러 콜센터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열린 토론회여서 더욱 의미가 컸다.

 

토론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여성 노동자들이 투쟁을 결심하는 과정이었다. 이하나 동지가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 측의 부당한 조치에 맞설 수 있었던 것은 “가만히 있으면 바뀌는 것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김민정 동지는 “생존권을 타인에게 맡길 수 없어서” 투쟁에 나서게 됐다고 한다.

 

 

‘화이트칼라 공장’

 

콜센터 산업은 배예주 빵과장미 동지가 설명했듯, “전자감시 기술이 결합된 ‘화이트칼라 공장(White-collar factory)’”이다. 예전 여성 저임금 직종이 ‘공순이’로 상징됐다면, 지금은 ‘콜순이’로 변화했으며, 노동조건은 여성 집중, 저임금, 고과(성과급), 비정규직·간접고용, 전자감시기술 등을 통한 노동통제와 감시, 숨 막히는 감정노동, 스트레스, 방광염, 높은 이직률 등으로 상징된다. 이러한 콜센터는 특히 1998년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이 시행된 뒤 파견, 도급 형태의 간접고용이 대다수인 대표 직종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간접고용이 지속될수록 노동조건 개선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간접고용에 이어 콜센터 상담사들의 노동조건을 더욱 열악하게 하는 것은 성과급제다. 성과급제는 콜 수 등을 채우지 못했을 때 월급을 깎는 형식으로 운영되어 강력한 노동통제 제도로 기능한다. 이런 상황에서 콜 수를 채워야 하는 콜센터 노동자들은 자리를 이탈하는 것은 물론, 쉬는 시간조차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이와 연관되어 문제가 된 것은 콜센터 노동자들의 건강권이다. ‘2023년 콜센터 노동자 건강권 실태조사 보고서 발표’에 따르면, 콜센터 노동자들의 대부분은 상지 통증, 허리 통증, 만성피로, 방광염 등의 증상 및 질환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빵과장미 이영미 동지는 “2022년 업무관련 질병으로 인한 치료 경험 질문에 상지와 허리의 통증, 만성피로 비율이 70% 수준으로 나타났다”며, “이는 한국 노동자 평균보다 적게는 3배, 많게는 6배나 높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군다나 최근 늘어나는 플랫폼 기업 콜센터 노동조건은 더 열악하다. 플랫폼 기업 콜센터는 여러 하청업체 계약을 통해 경쟁을 부추기며 그런 경쟁 속에서 노동자 착취는 더 강해진다. 2021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실시한 ‘콜센터 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플랫폼 콜센터 노동자의 고용형태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대다수다. 이들의 평균임금은 192만 원에 불과해 콜센터 노동자 평균임금(235.8만 원)에도 미치지 못하며, 강도 높은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데다, 휴가 및 이석 통제도 더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노동자 차별과 억압의 집합소

 

이 때문에 콜센터는 여성 노동자를 차별하고 억압하는 집합소가 된다. 그러면 과연 콜센터 여성 노동자들은 어떻게 이러한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까?

 

노동자들은 “뭉쳐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하나 동지는 동료들과 악의적인 규칙을 모아 회사에 개정하지 않으면 노동청에 가겠다고 항의했고, 때로는 회사 내에 대자보를 붙이기도 했다. 지난 복직 투쟁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그는 “침묵하면 우리는 계속 착취당할 수밖에 없고 이런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 수밖에 없다. 우리뿐 아니라 다른 콜센터를 위해서도 우리가 계속 싸우고 투쟁해야 다른 곳에서도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투쟁이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용보증재단 콜센터 김민정, 임지연 동지는 1초라도 늦으면 지각에, 무급 조기출근과 연장근무, 제대로 쓰지 못하는 연차, 미흡한 보호조치를 비롯해 문제가 비일비재했지만,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뒤 싹 바뀌었다고 한다. 노조가 결성된 계기도 재단이 노동자들에게 거짓 선전과 함께 정규직 전환 정책에 반대를 종용하자 이에 공동대응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김민정, 임지연 동지는 “그럼에도 2년마다 고용불안에 떨어야 하는 재계약 문제나 낮은 상담 권한, 민간부문의 낮은 조직률은 여전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콜센터 노동자 투쟁은 그 절대다수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여성 생존권을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 하지만 긴 노동시간, 퇴근하고서도 이어지는 무급 가사·돌봄노동, 만성적인 통증 및 스트레스로 여성 노동자들이 조직적 행동에 참여하기는 쉽지 않다. 가부장적 자본주의, 인종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이 없는 여성은 저임금 불안정 노동을 해도 되는 존재로 여겨진다. 자본주의는 젠더와 인종 등을 매개로 노동자를 범주화하고 분할함으로써 착취를 더 강화한다.

 

그렇기에, 이렇게 어려운 상황을 뚫고 나오는 여성 노동자의 목소리는 울림이 더 크다. 그리고 이미 많은 콜센터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투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고군분투 중이다. 이 투쟁에 힘을 더하기 위해, 자본의 착취 구조를 면밀히 드러내고 대안을 제시하는 변혁적 페미니즘 지식 생산과 실천이 시작되어야 한다. 변혁적여성운동네트워크 빵과장미가 주도적으로 이 흐름에 앞장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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