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총파업 연재기고] #4 투쟁 넷째 날, 은수 씨의 마음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온라인신문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총파업 연재기고] #4 투쟁 넷째 날, 은수 씨의 마음

photo_2023-11-05_11-13-23.jpg

  

2021년 여름,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상담노동자들은 투쟁에 돌입했다. 1천 가지의 업무를 하며 하루에 약 120콜씩 전화를 받았다. 화장실 가는 시간도 통제받으며 인센티브를 더 받기 위해 경주하듯 일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저임금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투쟁의 결과는 소속기관 전환이었다. 온전한 직고용은 아니지만 비교적 고용 안정성이 나아지는 결과였다. 그러나 2년이 지난 202311,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1,600여 명의 상담사는 아직도 저임금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을 벗어나지 못했다. 기다리다 지친 노동조합원들은 원주에 위치한 국민건강보험공단 본사로 모였다.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곳에 모였을까, 하루하루 어떤 투쟁을 하며 그 속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궁금했다. ‘오늘의 투쟁을 하루하루 돌아보기 위해 조합원을 인터뷰해서 정리하기로 했다. 투쟁 넷째 날은 경인2센터 소속이며 지회 조직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은수 조합원을 통해 돌아보았다.

 

2012620, 은수 씨가 국가건강보험고객센터에 입사했다. 그 당시 콜 잘 받는다는 선배는 하루에 200콜도 넘게 받고 있었다. 그러나 은수 씨는 콜 수를 신경쓰지 않았다. 자신의 직업은 숫자를 올리는 게 아니라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루에 20-30콜만 받았다. 관리자는 가끔 은수 씨를 불러서 콜 수를 높이라며 압박했지만, 은수 씨는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답하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곤 했다. 은수 씨는 자신의 노동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국민들의 건강보험을 최전선에서 책임진다는 자부심, 정확한 정보를 공들여 전달하는 상담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었다.

 

20191221, 노동조합 설립 총회가 대전에서 열렸다. 전국의 동료가 모인 자리에서 깃발이 순서대로 들어오고 휘날리는 걸 보며 은수 씨는 눈물을 흘렸다. 눈물의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가지 느껴지는 건 동료애였다. 각 센터의 관리자는 상담사들을 갈라치기했다. ‘다른 센터에 비해 우리 센터가 돈을 많이 준다는 거짓말은 경인 1, 2, 3센터가 상담사들에게 서로 했던 거짓말이었다. 12개의 센터는 전국 순위를 서로 잘 받기 위해 서로를 이겨야 하는 경쟁 상대로 만들었다. 그러나 상담 노동자들은 힘을 모아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우린 동료가 되었고 동지가 되었다. 고객센터에 입사하고 처음으로 다른 센터 상담사들에게 동료애를 느꼈다는 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photo_2023-11-05_11-13-23 (2).jpg

 

2023114, 온전한 소속기관 전환을 위한 총파업 투쟁 넷째 날이다. 경인지회 집행부는 아침부터 회의가 있었다. 농성장에서 나와서 적당한 곳을 찾았다. 둘러앉아 논의를 시작했다. 한참 회의 중인데 텔레그램이 울렸다. ‘조합원들 모두 모이세요라는 메시지였다.

 

, 뭔가 이상하다. 경찰 아니면 공단에서 들어오려고 하는구나전속력으로 달렸다. 정확한 상황을 공유받은 것도 아니었지만 다 같이 뛰었다. 도착했을 땐 이미 경찰과 조합원이 길게 서서 대치한 상태로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경인지회 조합원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함께 섰다. 누군가 말해주지 않았지만 은수 씨는 바로 깨달았다. ‘118일 때문이야. 그날 결의대회를 한다니까 경찰들이 이러는 거야자세히 들어보니, 경찰이 결의대회 날을 우려해서 차 벽을 세운다며 잔뜩 왔고 조합원 텐트에 손댔다고 했다.

 

은수 씨는 내가 더 잘했어야 했는데라는 자책이 들었다. 어제 확대 간부만 남고 조합원들이 흩어지는 걸 보며 은수 씨는 걱정이 많았다. ‘조합원들이 갑자기 많이 빠지면 바로 밀고 들어오는 거 아냐?’ 밤새 걱정한 일이 현실로 벌어졌다. 싸우고 있는데 은수 씨 바로 뒤에서 조합원 한 명이 쓰러졌다. 긴장 가득한 상황 탓에 과호흡이 온 것이다. 급히 119에 전화했고 구급차와 구급대원들이 도착했다. 그런데 경찰이 구급대원을 막아섰다. 조합원과 연대자는 경찰에게 빨리 비키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때, 경찰 뒤로 공단 직원들이 보였다. 웃고 있었다. 팔짱을 끼고 있었다. 박수를 치는 사람도 있었다. 소름이 돋았다.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상황 자체가 기이했다. 구급대원을 막는 민중의 지팡이, 박수 치며 웃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직원들. 

 

photo_2023-11-05_11-13-22 (2).jpg

 

심지어 단식자 한 분이 이상하대요라고 누군가 말하는 게 들렸다. 순간 경인지회장, 부지회장의 얼굴이 떠오르며 머리가 핑 돌았다. 당황스럽고 겁이 났다. 조합원들은 경찰에게 악을 쓰며 비키라고, 구급대원이 들어오게 하라고, 쓰러진 사람이 나갈 수 있게 하라며 싸웠다. 은수 씨도 함께였다. 한 경찰은 껌을 씹으며 그런 조합원들을 비웃었다. 경찰서장이라고 밝힌 사람은 딴소리만 했다. 겨우 구급대원이 들어오고 쓰러진 두 사람을 데려갔다. 몸에 이상이 생긴 단식자는 부산지회장이었다. 얼굴색과 표정이 너무 안 좋았다. 걱정스러웠다.

 

경찰과의 마찰이 끝나고 이은영 지부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우리 아무한테도 빌어서 이길 생각 없습니다. 그 누구의 힘이 아니라 우리의 힘으로 승리하겠습니다는 말이 들렸다. 다들 잠시 쉬라고 해서 흩어지는데 눈물이 났다. 펑펑 울었다. 자책감이 너무 심했다. 경인지회 농성 담당 기간이라 돌아간 경인 조합원은 딱히 없었다. 그러나 애초에 원주에 온 인원 자체가 적은 거 같았다. ‘투쟁 준비할 때 내가 조합원들을 더 설득했어야 했는데, 그래서 처음부터 우리 인원이 더 많이 왔으면 경찰이 이러지 못했을 텐데.’ 내 잘못 같았다.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누구에게, 왜 미안한지도 모르겠지만 마음엔 미안함이 가득했다.

 

휘몰아치는 시간이 끝난 후, 은수 씨는 경인지회 텔레그램 방에 연락을 돌렸다. 상황을 공유하고 강한 말투로 원주로 와달라고 했다. 어떤 조합원은 당장 출발했고 어떤 조합원은 밤에 출발해서 온다고 했다. 또 어떤 조합원은 일요일에 오겠다고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일정대로 월요일에 오겠다고 했다. 은수 씨는 지금 솔직히, 조합원들에게 서운한 마음이 든다. 우리 일인데, 함께하지 않는 조합원들이 원망스러운 마음도 조금은 있다.

 

은수 씨는 투쟁 넷째 날인 오늘을 자책의 날이라고 정리했다. 오늘 많이 자책했고 많이 욱했다. 은수 씨는 함께하는 최선의 투쟁을 하고 싶다. 마지막 투쟁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걸 쏟아붓는다면, 만약 실패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거 같다. 조합원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은수 씨는 최선을 다하는 투쟁을 다함께 하고 싶다.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의 소속기관 전환을 향한 총파업 투쟁 넷째 날, 약간은 새로운 상황이 벌어진 약간은 혼란스러운 날이다.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