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총파업 연재기고] #3 투쟁 셋째 날, 보라 씨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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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총파업 연재기고] #3 투쟁 셋째 날, 보라 씨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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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여름,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상담노동자들은 투쟁에 돌입했다. 약 1천 가지 업무를 하며 하루에 약 120콜씩 전화를 받았다. 화장실 가는 시간도 통제받으며 인센티브를 더 받기 위해 경주하듯 일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저임금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투쟁의 결과는 ‘소속기관 전환’이었다. 온전한 직고용은 아니지만 비교적 고용안정성이 나아지는 결과였다. 그러나 2년이 지난 2023년 11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1,600여 명의 상담사는 아직도 저임금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을 벗어나지 못했다. 기다리다 지친 노동조합원들은 원주에 위치한 국민건강보험공단 본사로 모였다.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곳에 모였을까, 하루하루 어떤 투쟁을 하며 그 속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궁금했다. ‘오늘의 투쟁’을 하루하루 돌아보기 위해 조합원을 인터뷰해서 정리하기로 했다. 투쟁 셋째 날은 경인2센터 소속이며 소속기관 전환보다 더 큰 꿈을 갖고 원주에 왔다는 심보라 조합원의 시선으로 돌아보았다.


2014년 12월 23일, 보라 씨가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에 입사했다. 보라 씨는 어릴 때부터 꿈이 있었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인종, 국경, 나이, 성별이 다 없고 서로를 배려하고 도우며 사는 세상을 바랐다. 어릴 적 보았던 동화책이 영향을 준 건지 그 꿈을 항상 갖고 살았다. 보라 씨의 아이는 몸이 아팠다. 다른 아이들은 같은 병을 갖고 있어도 크면서 저절로 나아진다는데 보라 씨의 아이는 그렇지 않았다. 계속 몸이 불편하고 큰 병원에 다녀야 했다. 보라 씨는 아이를 돌보고 함께 있는 시간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집에서 가까우면서 빨간 날엔 쉬는 직장을 가져야 했다. 그게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였다.


보라 씨가 처음 입사했을 때만 해도 한 콜당 1분 30초 안에 상담을 끝내야 했다. 그 당시엔 지금보다 더 많은 콜을 받도록 회사의 강압적인 분위기가 강했다. 보라 씨는 하루에 240콜도 받은 적 있다. 관리자는 1시간 점심시간 중 30분만 밥 먹고 30분은 콜을 받으라고 당당히 말했다. 가끔 아이가 병원에 가야 할 때면 보라 씨는 급히 연차를 신청했다. 그러나 관리자는 ‘미리 신청 안 해서 못 씁니다’, ‘지금 콜 많은데 꼭 가야 해요?’라며 보라 씨를 막았다. 그러나 보라 씨는 “저는 지금 가야 해서 갈 겁니다. 만약 연차 쓰는 게 절대 안 될 일이면 차라리 자르세요”라며 나갔다. 관리자는 보라 씨의 성격을 알게 된 후로 강하게 붙잡진 않았다. 그러나 보라 씨만 긴급한 상황에 처하는 건 아니었다. 가끔 동료들도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 관리자는 소위 말하는 ‘강약약강’이었다.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관리자는 더욱 강하게 붙잡았다. 보라 씨는 이런 상황을 지켜보며,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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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노동조합 설립 총회가 열렸다. 육아휴직 기간이었지만 보라 씨도 참석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있었다. 설레고 벅찼다. 1997년, 서울 거리를 가득 메우던 노동자를 떠올렸다. 그즈음 대학생 집회에서 풍물패 일원으로 북을 쳤던 자신을 떠올렸다. 떠오른 기억은 보라 씨의 마음을 ‘툭’ 건드렸다. ‘와, 이 인원이면 못 할 게 없겠어’ 생각했다.


2021년 2월과 7월, 노동조합은 ‘직접고용 쟁취’를 구호로 걸고 원주로 향했다. 보라 씨는 ‘조합이 가면, 조합원은 당연히 가는 거지’라며 망설임 없이 함께했다. 보라 씨는 노동조합을 신뢰하고 믿는다. 노동조합이 생긴 후로 동료들이 점차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관리자에게 대놓고 따지진 못할지라도 자신이 겪은 부당한 일을 노동조합에 상의하는 수준까진 사람들이 변한 것이다.


2023년 11월도 ‘조합이 가면 조합원은 당연히 간다’는 생각으로 보라 씨는 원주행을 택했다. 투쟁 둘째 날, 조합원 토론 시간이 있었다. 보라 씨는 필요하면 자신이 삭발이라도 하겠다며 결의를 드러냈다. 사실 보라 씨가 이런 결의를 가질 수 있는 건 ‘소속기관 전환’이 하고 싶어서만은 아니다. 보라 씨는 투쟁이란 건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꼭 전환해내고 싶지만, 만약 못 할지라도 이 투쟁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조합이 만만치 않은 싸움을 한다면, 하청업체가 바뀌어도 노조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더욱 단단한 조합이 될 것이다. 일단 노동조합이 굳건하기만 하면 언젠가 반드시 소속기관을 쟁취할 수 있다고 믿는다. 보라 씨에겐 이번 투쟁에서 노동조합이 더욱 단단해지는 것이 더 큰 목표다.


2023년 11월 3일, 투쟁 셋째 날이다. 보라 씨는 하루 종일 고민이 많았다. 저녁이면 확대간부만 남고 평조합원들은 각자의 지역으로 흩어진다. 곧 다들 돌아올 거지만, 주말은 확대간부와 연대의 힘만으로 이곳을 지켜야 한다. 보라 씨는 더 높고 강한 수준의 투쟁을 하기 위해선 우선 이곳을 주말 동안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고민이 컸다. 저녁 8시, 약 600명의 조합원이 버스에 올랐다. 보라 씨는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돌아가는 조합원들이 미운 마음도 잠시 들었다. 하지만 ‘아냐. 이런 생각하면 안 돼. 동지들도 사정이 있어서 가는 건데 마음 무거울 거야’라며 감정을 떨쳐냈다. 보라 씨는 어쩔 수 없이 떠나는 사람들의 몫까지 남은 사람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단단히 다잡고 또 다잡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비가 와서 천막을 보수하고 비닐 작업을 하느라 정신없이 바쁘기도 했다. 보라 씨에게 투쟁 셋째 날은 ‘마음을 더 다잡을 수 있었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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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씨는 어릴 적 꿈을 지금도 그대로 갖고 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길 바란다. 그 꿈을 이루는 길에 소속기관 전환이 도움이 된다면 망설임 없이 강한 투쟁도 할 수 있다. 또한 건보고객센터 노동자가 ‘사람다운 삶’으로 가까이 가게 되었을 때, 다른 노동자에게 아낌없이 연대하고 싶다. 연대함으로써 그들도 ‘사람다운 삶’을 살게 하고 싶다. 보라 씨가 바라는 세상은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런 세상이 만들어졌을 때 아이에게 ‘엄마가 이렇게 열심히 해서 세상이 바뀐 거야’라며 약간은 우쭐하게 말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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