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자들은 폭력을 자행해도 보호받는데 왜 우리는 물 한 모금의 자유마저 빼앗겨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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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자들은 폭력을 자행해도 보호받는데 왜 우리는 물 한 모금의 자유마저 빼앗겨야 합니까?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의 단전, 단수 인권침해를 규탄하는 박정혜 조합원의 발언

[편집자 주] 

9월 11일(월) 오전 11시, 서울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단전, 단수 인권침해 규탄, 국가인권위원회 긴급 구제 신청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지분 100%를 소유한 일본 닛토덴코 자본은 구미공장의 상수도를 막도록 구미시에 요청하고, 한전을 통해 단전을 시도했습니다.


일방적인 청산과 폐업통보로 노동자를 해고한 것으로 모자라, 노동자들의 전셋집에 가압류를 걸고, 이제는 단전단수를 통해 노동자를 탄압하는 닛토덴코 자본에 맞서 13명의 한국옵티칼 하이테크 노동자들이 투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있었던 박정혜 금속노조 구미지부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여성부장의 발언을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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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병철


저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에서 12년 일한 박정혜입니다. 지금은 불타버린 공장을 지키며 일자리를 되찾기 위해 노조사무실에서 농성 중에 있습니다. 지난 9월 8일 오전 10시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조합원들과 회의를 마친 후 화장실에 갔습니다. 그때까지 화장실 사용에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 바로 뒤에 화장실을 이용한 조합원이 물이 안 나온다고 했습니다. “무슨 소리고, 좀전까지 물 나왔는데” 하는 순간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회사가 단수를 하겠다고 하더니 이게 그건가 싶어 수도꼭지를 틀었습니다.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부리나케 상수도사업소에 연락을 했습니다. 회사가 단수를 신청해 물을 끊었다고 했습니다.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너무 화가 났습니다. 일방적인 청산과 폐업 통보로 우리를 해고했던 회사가, 제가 사는 전셋집에 가압류까지 걸더니 이제는 우리가 거주하는 노조사무실에 단전단수까지 신청한 것입니다. 단전단수.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습니다. 사람이 물 없이 살 수 있습니까? 어떻게 이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날 수 있는지 당하고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당장 물이 끊기니 불편함은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일상의 불편도 불편이지만 만약 예기치 못한 불이라도 난다면 다 죽으라는 겁니까? 이건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짓이 아닙니다.


회사가 이렇게까지 잔인하게 구는 이유를 생각했습니다. 결국 괴롭히기였습니다.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사람을 괴롭히는 것. 누군가를 괴롭혀 굴복시키려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세상. 이게 내가 사는 세상이라니 소름이 끼칩니다. 


저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무얼 하는 곳인지, 어디에 있는지 몰랐습니다. 오늘 여기에 처음 와 봅니다. 낯설지만 이런 곳을 국가가 운영한다니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 침해를 당한 이들을 구제하는 곳이라고 들었습니다. 인권! 인간답게 살 권리라는 말이겠지요. 극한 전쟁 상태의 포로에게도, 교도소 재소자들에게도 물과 음식은 제공됩니다. 생명을 가진, 살아 숨쉬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물은 인간의 생명이자 생존입니다. 회사가 물을 끊은 건, 살아 숨쉬는 우리의 숨통을 끊겠다는 신호였습니다. 자신들을 위해 수 십 년 한솥밥 먹으면서 일한 우리를 세상 밖으로 내던지는 행위였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공장폐업으로 하루아침에 쫓겨난 노동자들에게는 인권이 없습니까? 공장을 재가동하라고 내 일자리로 돌아가고 싶다고 농성하는 노동자들은 인권이 파괴돼도 괜찮습니까? 가진 자들은 불법을 일삼으며 폭력을 자행해도 보호받는데 왜 우리는 물 한 모금의 자유마저 빼앗겨야 합니까? 


인권위원회에 호소드립니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구미공장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13명의 노동자가 있습니다.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공장을 지키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자신을 던져서라도 소중한 가족만은 지키고 싶은 간절함으로 하루를 버티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도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물 한 모금에 인권위원회를 찾는 이들이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배 고픈 사람 앞에서 혼자 밥을 먹지 않는 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 배웠습니다. 물을 끊어, 인간을 괴롭혀 자신의 탐욕을 채우려는 자들에게 “그건 나쁜 짓이야. 멈춰라”고 해주십시오.


누구에게라도, 어떤 순간에도 인간의 존엄과 권리는 보장되어야 합니다. 이 당연한 상식이 통하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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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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