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다른 목소리를 내고, 다른 행동을 조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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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누군가는 다른 목소리를 내고, 다른 행동을 조직해야 한다

<긴급토론: 모두를 위협하는 윤석열 정권의 ‘교권’ 대책,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후기

  • 오연홍
  • 등록 2023.08.19 12:19
  • 조회수 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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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교육노동자현장실천

 

빗나간 해결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8월 18일 “모두를 위협하는 윤석열 정권의 ‘교권’ 대책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을 포함해 16개 단체가 공동 주최한 토론회였다. 토론회 장소인 민주노총 15층 교육장은 참가자로 가득했고, 준비된 자료집은 금방 동이 났다.


무엇보다도 현시점에 이런 토론회가 개최됐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서이초 교사의 죽음을 계기로 교육 현장에 쌓여 온 숱한 갈등과 모순이 폭발적으로 모습을 드러냈고, 주말마다 수천에서 수만 명의 교사가 모여 분노를 표출했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과 보수 우익세력은 이 분위기를 활용해 학생인권조례 폐지와 교권 강화라는 권위주의적 퇴행을 일으키려 한다. 불행하게도 교사 상당수가 교권 강화와 아동학대 면책권 같은 빗나간 대안에 이끌리고 있고, 이 점에서 전교조 역시 중대한 한계를 보인다. 이날 토론회는 이 같은 흐름에 명백하게 반대하면서,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과 행동이 절실함을 보여줬다.


“학교가 전쟁터가 됐다”


토론회 발제는 “학교가 전쟁터가 됐다”는 진단으로 시작했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교사와 학생, 양육자를 대결 구도로 몰아가는 정책일 따름이며, 교사의 면책권을 얘기하는 아동학대 관련 법률 개정안으로 실제 면책되는 건 “정부일 뿐”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예컨대 발제자와 여러 토론자가 이구동성으로 인원 확충 문제를 제기했다. 학생인권조례에 비난이 쏟아지는 동안 교사 정원은 계속 줄었다. 내년도 전국 공립학교 교사 선발 인원은 올해 선발된 인원보다 13~30% 줄어든다고 한다. 충북에선 무려 58.7%나 감축된다. 교육과 생활 관리를 위해 그 어떤 정책을 도입하더라도, 이를 실행할 인원이 부족하다면 결국 또 다른 폭탄 돌리기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적 비용절감 논리를 내세우는 정부는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인원확충 책임을 철저하게 외면한다. 이래서는 교육노동자의 노동권이 절대 지켜질 수 없다. 교육부가 해결책이라고 내놓은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방안’도 딱 그런 수준이다.


학교 울타리를 넘어, 투쟁의 범위를 확대하기


인원 확충은 예산 문제와 떼놓을 수 없다. 이날 토론에서도 정부가 “총정원제와 총액인건비제라는 경제적 관점에 메여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공부문에서 총액인건비제는 노동자의 분열을 강제하는 강력한 도구로 자리 잡았다. 2년 전 건강보험고객센터 투쟁 때에도 총액인건비제를 이유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 요구를 들어주면 안 된다는 정서가 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 나돌았다. 정부 예산안이 신성불가침의 가이드라인으로 여겨지는 꼴이다.


이런 현실은 2011년 칠레를 뒤흔든 학생들의 대투쟁 장면과 날카롭게 대비된다. 학생들은 보편적 무상교육을 비롯한 교육 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고, 칠레 최대 산업인 구리산업을 국유화해 재원을 마련하라고 외쳤다. 한국으로 치면 현대기아차를 국유화해 교육예산을 확보하라고 요구한 셈이다. 투쟁의 시야를 학교 울타리 안으로 가두지 않고, 사회 전체로 확장하면서 해법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무척 인상적이다. 이 투쟁은 이후 수년간 이어지면서 무상교육 확대 성과를 만들어냈으며, 그 운동의 저력은 2019년 칠레 항쟁으로도 연결됐다. 지금 칠레에서는 구리뿐만 아니라 자동차 배터리 핵심 소재인 리튬 광산 국유화 논의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


이 경험을 우리 현실에 접목하려면 더 구체적인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의 시야를 학교 울타리 안에 가두지 않을 때 비로소 교사와 학생, 양육자를 대결 구도로 몰아넣는 윤석열 정권의 ‘대책’을 넘어설 수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할 것이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사회 전체가 엉망진창인데 그 속에서 학교만 아름답고 조화로운 공간으로 만든다는 게 될 법한 얘기인가.


“파업을 할 수 있었더라면…”


‘파업을 할 수 있었더라면’이라는 발제자의 한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노동조합 활동의 자유가 보장됐다면, 단체행동권을 누릴 수 있었다면, 정치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지금보다는 더 나은 교육 현장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주장에 모든 토론회 참가자가 공감했으리라.


정부나 국회에 기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수십 년간 경험해 온 일이다. 누군가 먼저 다른 목소리를 내고, 다른 행동을 조직해야 한다. 퇴행의 물결을 거스르는 다른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예정된 시간을 30분가량 넘겨 진행된 토론회를 마치며 논의의 성과를 계속 이어가자는 공감대도 확인했다. 저마다의 지역에서 이런 토론회를 열어보자는 제안도 있었다. 이날 토론회는 그렇게 실천을 이어가자고 뜻을 모은 소중한 첫 발걸음이었다. 죽음의 그림자에 뒤덮인 교육 현장을 뒤바꾸기 위해, 교육노동자의 노동권과 정치활동 자유를 위해 함께 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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