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중간착취 전문업체의 ‘전문성’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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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중간착취 전문업체의 ‘전문성’에 대하여

  • 임용현
  • 등록 2023.08.02 17:04
  • 조회수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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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ITX 홈페이지 회사소개 '경영이념' 갈무리

 

‘혁신’ - 가치 없는 모든 일을 제거, 긍정의 마인드로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

‘책임’ - 주인의식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참여, 몇 번이든 시도하여 악착같이 해내고자 하는 의지

 

콜센터 업무 아웃소싱 전문업체 효성ITX㈜는 자사의 ‘핵심가치’에 대해 홈페이지에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효성ITX가 말하는 이 핵심가치들은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굳이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효성ITX 본사 건물 앞에서 이 업체의 본모습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에서 근무해 온 상담노동자들의 농성장이 차려져 있다. 효성ITX는 지난해 말 저축은행중앙회가 콜센터 업무위탁계약을 새로 맺은 업체다. 이전에 저축은행중앙회 콜센터 업무를 수행한 곳은 KS한국고용정보라는 또 다른 용역업체다. 당시 업체 변경 과정에서 효성ITX는 공개입찰 제안요청서에 ‘전 직원 100% 고용승계’를 약속한 바 있는데, 결국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사실상 해고된 상담노동자들이 재고용을 촉구하는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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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 이하나 해고노동자가 효성ITX 본사 앞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황금알을 낳는 콜센터 '시장'

 

효성ITX는 업계 1위의 대형 콜센터 외주업체다. 이 업체는 원청의 콜센터 업무를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을 가리지 않고 위탁 운영해 왔다. (참고로 효성ITX는 하루 평균 120콜을 처리해야 할 만큼 극단적인 성과 경쟁으로 악명 높은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의 11개 용역업체 중 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 효성ITX와 KT 계열사(KTis, KTcs) 두 곳 등 콜센터 외주업체 상위 3개 업체는 지난 5년간 124개 공공기관 콜센터 민간위탁의 51.4%를 점유해 업계의 포식자로 군림 중이다. 더욱이 대형 콜센터 외주업체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눈부신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공공기관과 금융 및 보험업, 유통업 등 고객 상담과 안내가 빈번히 이뤄지는 곳에서 콜센터 업무를 꾸준히 외주화한 결과다. 원청 자본은 외주화의 근거로 콜센터 업무가 이른바 ‘비핵심 업무’이거나 단순 노동이라는 이유를 댔다. 효성ITX의 경우 지난해 연매출 5,113억원, 영업이익 223억원을 기록해 사상 최대 실적을 갱신했다. 이에 대해 한 증권업체는 ‘전체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컨택센터 사업부문은 안정적인 Cash Cow 역할을 수행 중’이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콜센터 시장은 많은 자본가들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널리 인식되고 있으며, 그중 효성ITX는 독점적 사업 지위와 안정적 고수익 등 탄탄한 성장기반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금융자본가들도 평가하고 있다.  

 

비용절감 논리가 불러 온 외주화

 

그런데 콜센터 사업은 사무실 임대 등 초기 투자 비용을 제외하면 통신비와 인건비가 운영 비용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다시 말해 시설 투자 정도를 빼면 상담노동자에게 지불하는 노동의 대가가 장부상에 지출로 처리되는 ‘비용’인 셈이다. 그러니 원청은 이 비용을 절감하는 데 안간힘을 쏟을 뿐이고, 위탁업무를 수행하는 하청 역시 극심한 중간착취를 통해 수익을 남기려 혈안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효성ITX가 어마어마한 실적을 기록한 밑바탕에는 ‘감정노동의 극단’에 서 있는 상담노동자의 땀과 눈물이 깊게 배어 있다 해도 결코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결국 효성ITX가 표방하는 ‘핵심가치’라는 것도 원청 자본이 비핵심 업무로 간주해 외주화한 콜센터 업무에서 ‘가치 없는 일은 모두 제거’하겠다는 효율화 전략을 ‘악착같이 해내고자 하는 의지’라는 성과 경쟁으로 관철하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그리고 이는 효성ITX 같은 대형 콜센터 외주업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2000년대 들어 금융과 통신,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콜센터는 급격하게 도급화되었다. 이렇게 도급의 형식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원청이 인원 관리를 하고 시험을 관장하고 업무 매뉴얼을 만드는 등 사실상 업무지시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콜센터 노동 자체가 원청의 업무를 이해해야만 수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2000년대부터 급격하게 확산된 금융권의 콜센터 외주화를 보자. 은행이나 보험, 신용카드 회사 같은 금융권 콜센터는 초기부터 원청이 직접 수행해야 하는 업무 처리를 목표로 구축되었고, 200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전산망이 발달하자 고객과 직접 대면하는 서비스의 많은 부분이 콜센터로 이관되었다. 당연히 상담노동자들은 이러한 업무에 대해 포괄적으로 이해해야만 고객의 질문이나 요구에 정확하게 응답할 수 있다. 게다가 이들 금융권 콜센터는 고객 응대 등 업무 처리 과정에서 고객의 금융거래내역, 거주지, 자산 및 소득 규모 등 각종 개인정보를 취급할 수밖에 없다. 고객들이 자신의 중요한 개인정보를 금융권에 제공하는 이유는 애초 계약을 맺은 원청 금융사가 개인정보를 함부로 다루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에 기반한 것이기도 하다. 콜센터 노동을 비핵심 업무라거나 단순 노동으로 간주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저비용 고효율'을 노리는 원하청 자본

 

이처럼 콜센터 업무는 기업(원청)과 고객을 연결하는 중요한 업무다. 그런데도 콜센터 용역업체들은 상담노동자들을 언제든지 쓰다 버릴 수 있는 일회용품으로 취급한다. 동시에 이들 용역업체들은 오랜 기간 노동 경험을 통해 숙련을 쌓은 상담노동자의 ‘품질’ 높은 상담서비스를 원한다.  

 

이 모순적인 상황은 콜센터 시장이 도급 형태의 외주화로 재편된 이유를 말해준다. 파견법 제정 이후 2년 이상 상담노동자를 계속고용할 경우에는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원청 자본이 이를 수용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청 자본은 상담노동자의 업무가 지속적으로  수행 가능하면서도 간접고용의 이점도 취할 수 있는 도급 형식을 도입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도급을 주는 업체가 바뀌더라도 노동자들은 고용이 승계되어 계속 일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되었다.

 

'전문성'은 누구에게 있는가

 

도급화가 이미 대세가 되어버린 일터에서 상담노동자들은 본인이 원한다면 계속 한 곳에 머물며 숙련과 경력을 쌓을 기회를 그나마 가질 수 있었다. 포괄적인 업무지식과 고도의 집중성, 숙련을 요구하는 콜센터 노동에서 이들의 존재는 노동통제기법 말고는 아무런 전문성도, 고유 기술도 없는 용역업체들이 천문학적인 이윤을 거둬들인 유일한 원천이었다. 이들 용역업체들은 내용적 전문성은 고사하고, 오로지 성과 목표 달성을 위한 콜 수 올리기 압박, 이석체크 등 과도한 통제와 실적 경쟁에만 자신의 전문성을 뽐낼 뿐이다. 결국 전문성은 상담노동자들에게 있는 것이지, 용역업체들은 단지 중간착취만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도 무엇 하나 다를 게 없다. 원하청 자본이 고용승계를 거부해 사실상 해고된 상담노동자들은 이전 용역업체인 KS한국고용정보 시절 새롭게 바뀌는 업무 내용에 대한 숙지를 위해 직접 매뉴얼을 만들어 동료들과 공유한 경험이 있다. 용역업체는 업무 내용에 있어서 무지한 데다가 실은 관심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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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 이하나 해고노동자가 연대자들과 함께 투쟁을 외치고 있다.

 

상담노동자들이 일터로 돌아가야 할 이유

 

그렇게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는 온전히 상담노동자들의 노력으로 가꿔 온 일터였다. 비록 차별과 멸시가 들어찬 공간일지라도 이들은 자신이 수행하는 업무에 대한 책임감과 자부심으로 더 나은 일터를 만드는 데 앞장섰다. 그런데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 업무의 내용이 아니라 그 업무 수행을 통해 얻은 수익에만 관심을 가진 자들이 상담노동자들의 자격을 심사하는 세상이라니. 끔찍하고 기가 찰 노릇이다. 심지어 효성ITX 인사 담당자가 지난해 말 상담노동자들과 면담한 시간은 기껏해야 5분 남짓이었다. 당시 사측이 통보한 계약불가 사유는 “회사가 추구하는 인재상과 맞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상담노동자들이 수년 동안 현장에서 갈고 닦은 경험과 역량에 대해 과연 저들이 판단할 자격이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자사 홈페이지에 자랑스레 내건 핵심가치부터 효성ITX는 스스로 곱씹어 보기를 권한다. 열악하고 존중 없는 노동조건에도 불구하고 ‘긍정의 마인드로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한 것도, ‘주인의식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도 다름 아닌 해고된 상담노동자들이었다.

 

더 이상 억지 부리지 말라! “원청업체로서 하청업체의 채용 과정에 개입할 수 없다”는 저축은행중앙회나 “저희에게 고용된 적이 없기에 ‘해고’라는 말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는 효성ITX 둘 다 공동사용자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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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28일, 해고 208일차(농성 57일차), 효성TIX 본사 앞에서 복직을 촉구하는 필리버스터가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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