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영아살해를 단죄할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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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국가는 영아살해를 단죄할 자격이 없다

영아살해 막으려면 낳지 않을 권리와 낳을 권리 보장해야

  • 정은희
  • 등록 2023.07.13 13:57
  • 조회수 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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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연합뉴스 

 

지난달 감사원 조사로 수원 영아살해 사건이 알려진 후 한국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냉동고에서 영아 시체 두 구가 나왔으니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사람들은 영아살해 피의자를 두고 짐승보다 못한 인간 취급을 하며 비난한다. 갓난아이 출생신고가 얼마나 누락되고 있는지도 모르는 국가를 손가락질하기도 한다. 한편에서는 처벌이 솜방망이나 다름이 없다며 혀를 찬다. 조사가 시작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사망한 출생 미신고 영아가 34명이 넘은 것으로 밝혀졌으며, 사건이 드러날수록 비참하기 그지없다. 결국 사건은 처벌과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결말로 달려간다. 이미 경찰은 수원 영아살해 피의자에게 ‘영아살해죄’가 아닌 ‘살인죄’를 적용했다. 정부는 아동인권 침해 논란을 빚어온 보호출산제까지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임산부가 익명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그런데 이 같은 정부 대책은 여성을 비정한 가해자로 기록할 뿐 무엇이 그를 영아살해자로 몰아갔는지는 주목하지 않는다. 그저 임신한 여성의 출산은 당연시하면서 오로지 영아살해가 부모의 정보는 감추고 아이의 출생만 등록하면 해결될 ‘인구 정책’인 것처럼 접근한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하면 또 다른 영아살해를 막을 수 있을까?


그러면 수원 영아살해 사건 피의자의 상황부터 돌아보자.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친모가 자신이 낳은 영아를 살해한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범행 당시 그는 남편과 함께 반지하에 거주하며 콜센터에 다녔다. 2020년 콜센터 상담사 평균 월급이 205만 원에 불과했으니, 남편과 둘이 같이 벌었어도 아마 월 소득은 400만 원 수준이었을 것이다. 또 한국 여성 노동자가 대개 그렇듯, 집에서는 밥을 짓고, 걸레를 빨고, 세 아이를 씻기며 남편보다 약 2.5배의 가사노동을 했을 것이다. 범행 당시에는 차상위 계층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 여성이 얼마나 생존을 위해 발버둥 쳤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런 조건에서 그가 임신중지 수술을 위해 내야 했던 돈은 250만 원에 달했다고 한다. 자신의 월급을 몽땅 다 갖다 바쳐도 모자란 액수였다. 그 역시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인한 심리적 불안 상태에서 아이를 살해했다고 밝혔지만, 결국 임신중지할 권리를 보장받았다면, 영아살해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정부가 말하고 있는 처벌 강화나 ‘보호출산제’ 도입이 제대로 된 해결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사건이 발생하는 원인, 즉 임신중지할 권리를 누릴 수 없거나 경제적 문제로 키울 수 없는 현실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처벌만 강화하는 대책은 영아의 시신을 더욱 깊이 숨길 공산이 크다. 익명으로 출산할 수 있도록 하는 보호출산제 역시 생부모의 정보를 차단해 아동의 권리를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아동보호시설 입소나 입양 외에는 선택할 다른 대안도 없다. 임신한 여성은 오로지 출산에 필요한 모든 부담을 홀로 감당해야 할 뿐이다.


실은, 국가는 영아와 여성의 권리에 관심이 없다 


그런데 정부가 잘못된 대책을 말하고 있지만, 그 대책을 집행할 자격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영아살해는 임신한 여성에 대한 국가의 외면과 권리 박탈 속에서 자행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수원 영아살해 사건 피의자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친모는 영아를 살해하기 전 당연하게도 임신 상태였다. 메슥거리면서 토하는 입덧이 시작하고 배와 가슴이 불러오고 살이 터지고 산달이 가까워질수록 자신이 목숨을 빼앗아야 할 태아의 태동까지 느끼면서 그는 10개월을 버틴다. 그리곤 죽을힘을 다해 출산한 뒤 하루 만에 핏덩이의 목을 졸라 살해한다. 그런데도 그는 1년 만에 이를 다시 반복한다. 그러니까 임신에서 영아살해까지 이어지는 이 여성의 비참한 조건을 생각해 보면, 그가 가해자만은 아닌 것 같다. 만약 그가 임신중지 수술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었다면, 또는 그가 더 많은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형편이었다면 영아살해란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는 그러한 권리 모두를 외면했다. 낙태죄가 폐지된 지 2년이 지나도록 임신중지에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는 국가, 유산유도제 도입을 철저히 가로막고 있는 국가, 임신중지를 지원하는 국제 여성 단체의 웹사이트마저 차단하고 있는 국가, 여성 노동자의 절반을 비정규직으로 내몬 국가, 임금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250만 원도 벌지 못하게 하는 국가가 과연 무슨 자격으로 영아살해자를 처벌할 수 있을까? 이것은 영아살해자를 처벌하지 말자는 말이 아니다. 그러니까 국가는 영아살해를 단죄할 자격보다는 공범의 지위를 가졌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는 말이다. 결국 죽이려고 낳은 여성을 낳은 것은 국가다.


이러한 비극은 계속해서 되풀이된다. 하지만 '끔찍한 영아살해'라는 자극적 보도 속에서 여성의 낳지 않을 권리나 낳을 권리 즉, 성과 재생산 권리에 대한 질문은 철저히 외면된다. 이를 통해 임신을 중지할 권리 행사나,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 필요한 국가의 책임은 가려진다. 여성이 원치 않는데도 낳을 수밖에 없었던 그 갓난아이가 앞으로 어떤 조건에서 살든, 국가에는 오로지 새로운 ‘인구’ 1명이 중요할 뿐이다. 


그러면 국가는 생부모가 키우기 어려운 인구 1명을 제대로 성장하도록 지원해 왔을까? 전국 200여 보육원에 1만2천 명 이상의 아동이 살지만, 아동인권 침해 사건은 끊이지 않는다. 한 해 400명이 넘는 국내외 입양 아동 중 적지 않은 아동이 인권 침해로 고통받으며 최악의 경우에는 ‘정인이 사건’처럼 비참하게 살해된다. 해외입양의 경우, 갖은 논란에도 최근에야 한 기관의 인권 침해를 법원이 인정했을 뿐이다. 해마다 아동학대로 살해되는 아동만 170명에 달한다. 결국, 국가는 덮어놓고 낳으라고 말할 뿐이다. 실은, 국가는 여성이든 영아든 모두의 권리에 관심이 없다. 


낳지 않을 권리와 낳을 권리 보장해야


임신중지는 기본권이다. 이 권리에는 임신하는 당사자만이 아니라 태어나는 생명의 권리도 포함된다. 미국 여성정책연구소(IWPR)가 2019년 발표한 연구 결과를 보면, 임신중지로 출생을 계획할 가능성이 커졌고, 이는 자녀의 어린 시절과 이후 인생에서 교육율과 생활 조건을 개선했다. 임신중지를 한 여성에게서 태어난 어린이는 어린 시절 빈곤율과 공적부조 수혜율이 낮았다. 또 대학을 졸업할 가능성이 더 높았고, 성인이 되어 공적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작았다.1) 


물론, 영아살해를 막기 위해서는 임신중지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낳지 않을 권리뿐 아니라 낳을 권리 역시 보장해야 실제로 낳아 기를 수 있다. 아무리 ‘저출산 대책’이랍시고 출산수당이나 육아수당을 통 크게 지급한다고 해도 출산해고와 육아휴직 노동자에 대한 불이익이 여전하며, 갈수록 불안정한 일자리만 늘어나는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가정은 많지 않다.


영아살해는 고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이루어진다. 국가와 사회가 아이를 키울 권리를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대국가 역시 상대적으로 가벼운 처벌을 내린다. 아이를 책임질 수 없는 국가의 무능을 인정해 처벌을 감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살인죄와 구분하여 영아살해죄를 두었다. 하지만 지금은 간단한 약물만으로도 임신을 중지할 수 있는 과학기술을 누릴 수 있는 사회가 됐다. 그런데도 가난과 사회적 편견 때문에 영아살해를 감행하는 여성과 부모들이 있다는 사실은 이 사회가 그들의 권리를 얼마나 끔찍하게 유린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한해에만 100명이 넘게 베이비박스에 버려지는 영아가 가리키는 현실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재생산을 위한 모든 비용은 개인에게, 특히 여성에게 떠넘기면서 수탈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민낯이다. 그럼에도 최근 잇따른 영아살해 사건을 계기로 사회에서는 ‘저출산 이데올로기’와 맞물린 여성혐오만이 더욱 기승을 부린다. 


영아살해는 낳지 않을 권리와 낳을 권리 모두가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서 나타나는 참혹한 비극이다. 따라서, 처벌과 통제를 강화하는 것으로는 아무런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영아살해를 예방할 명확한 방법이 있다. 임신중지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유산유도제를 도입해 여성들의 임신중지 권리를 실제로 보장하면 된다. 나아가 임신출산 과정에 대한 무상의 의료적 지원을 포함해 가사돌봄을 사회화해 여성과 가족에게 씌워 온 재생산 책임을 국가가 짊어져야 한다. 그것이 태어난 모든 아이가 죽지 않고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 방법이다.



1) https://iwpr.org/wp-content/uploads/2020/07/B377_Abortion-Access-Fact-Sheet_final.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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