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산업 전환, 무엇을 요구하며 어떻게 싸울 것인가? (1) - 자동차산업 노동자의 물량경쟁 중단과 계급적 단결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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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자동차산업 전환, 무엇을 요구하며 어떻게 싸울 것인가? (1) - 자동차산업 노동자의 물량경쟁 중단과 계급적 단결을 촉구한다

  • 강진관
  • 등록 2023.06.29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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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지난 5월 말 현대차 대의원대회에서는 ‘친환경차 배터리팩 및 PE 관련 부품 사내 전개’ 현장발의안이 의결되었다. 전기차 핵심 부품을 현대자동차 안에서 만들자는 요구가 결정되자, 지역 부품사 노동자 다수가 해당 요구를 비판했다. 산업전환을 맞이하는 지금, 물량 확보를 둘러싼 노동계급 내 갈등이 심화하고 있음을 드러낸 사건이다. 이번 기사는 자동차산업 전환에 대한 금속노조와 현대차지부의 대응 경과를 진단하고, 산업전환에 대한 자동차산업 노동자의 올바른 요구와 대응방안은 무엇인가를 논한다. 분량상 두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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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E-GMP 전기차 플랫폼

 

들어가며

 

한국 자동차산업은 거대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 늦어도 2050년까지 내연기관차를 전기차 등으로 교체하는 전환에 따라, 자본가들과 정부, 자동차산업 연구자들은 20~40%의 부품이 사라질 것이며, 사라진 부품만큼 기존 고용인원도 축소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부품과 인원이 축소될지 단언할 수 없지만, 20% 내외로 예측되는 것은 사실이다. 이미 완성차와 부품사 공장 내부 구조변화와 공정 축소가 진행되고 있고, 완성차로 수직계열화된 1~4차 하위부품사의 아이템 축소, 직장폐쇄, 폐업이 나타나고 있다. 이렇듯 내연기관차와 그 부품을 생산·서열·조립하는 완성차와 부품사 노동자들에게, 현 상황은 충분히 위협적이다. 


이 글은 자동차산업 전환을 마주하는 금속노조의 요구와 대응을 살피고, 그 문제점을 비판할 것이다. 또한 지난 시기 자동차 생산의 세계화와 기술 고도화에 대응해온 현대자동차지부의 요구와 대책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금속노조 산업전환 요구안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나아가 금속노조와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이 무엇에 주목하면서 어떤 요구와 목표로 산업전환을 주도적으로 실현할 것인지를 제시할 것이다. 


고백하건대, 이 글을 준비하는 과정은 지난 시기 우리 활동을 되돌아보는 계기이기도 했다. 여러 활동가와 함께 산업전환에 대응해온 우리의 책임도 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프고 힘들지만, 지난 대응 과정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진지하게 토론함으로써 함께 해결방안을 찾기를 희망한다.


자본가 주도의 산업재편에 맞선 투쟁, 과거와 현재


자본가들은 생산성 향상, 이윤율 하락 만회, 다른 자본에 대한 경쟁우위 확보 등을 목적으로 생산구조재편을 줄기차게 추구해 왔다. 그것 중 하나가 설비의 자동화, 생산의 외주화, 부품의 모듈화였다. 이런 재편은 차량 조립, 부품 생산과 부품서열 등 자동차 산업의 전체 영역을 포괄해 이루어졌고, 노동자들에게는 일자리 축소와 외주화로 쫓겨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하락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은 설비의 자동화, 생산의 외주화, 부품의 모듈화로 인한 노동유연화와 고용 감소, 노동조건의 악화에 맞서 오랫동안 투쟁해 왔다. 자본의 공격에 직면한 선진활동가들은 징계해고, 구속 등 혹독한 탄압을 무릅쓰고 노동자의 고용과 생존권, 현장권력 사수를 위해 투쟁했다. 그리고 이 투쟁에서 선진활동가들에게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이 있었다. 그것은 자동화와 외주화, 모듈화가 야기하는 해고와 노동조건 악화에 맞서 투쟁하면서도, 외주화되는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의 고용과 생존권을 지키고자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다.

 

이런 기본 원칙과 관점이 유지된 시기에, 민주노조는 이미 외주화된 공장 노동자들이 생산·조립하거나, 다른 공장에서 생산·조립이 예정된 물량을 자기 사업장으로 들여오는 행위를 금기로 여겼다. 다른 사업장 노동자들의 고용과 생존권을 침해하는 물량 유치를 민주노조의 정신과 원칙을 위배하는 행위로 여겼기 때문이다. 즉, 이를 ‘물량 빼앗기’로 규정한 셈이다. 그래서 선진활동가들은 자본가들이 유도하는 물량 싸움의 덫에 걸려들지 않으려고 치열하게 토론했고, 사업장 안팎 노동자 단결을 사수하는 실천을 자부심으로 여겼다. 그러나 지금 이런 계급적·전투적인 연대 의식과 투쟁은 전노협 시절, 민주노조의 원칙과 정신이 유지되던 시절에나 가능했던 영웅담으로 취급되고 있다. 


돌아보자. 설비의 자동화, 생산의 외주화, 부품의 모듈화를 통해, 자동차산업 자본가들은 단지 더 많은 이윤만 얻은 것이 아니다. 자본은 원청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의 분할, 완성차 노동자와 부품사 노동자 분할에도 성공했다. 고용형태에 따른 임금과 노동조건 격차, 현대기아차를 정점으로 수직계열화된 자본들의 지불능력 차이가 곧 임금과 노동조건의 차이로 이어지는 현실도 어느새 당연하게 취급되었다. 그 결과 현장 통제권은 자본가들에게 넘어갔고, 산별노조는 이름뿐인 것이 되었으며, 노동자들은 전면화한 경제적 조합주의 속에 각자도생을 추구해왔다. 이것이 한국 자동차산업 노동운동이 처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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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연합뉴스 

 

필요한 것은 물량경쟁과 금속산업 노사정위원회가 아니라 완성차-부품사 노동자 공동투쟁이다 

 

금속노조의 주력은 자동차산업이다. 2022년 금속노조 조합원 18만6천여 명 중 자동차산업 조합원은 13만4천여 명으로 약 72%에 달한다. 완성차와 부품사에 철강을 공급하는 제철산업 노동자 등을 포함하면 금속노조 전체 조합원의 80%를 차지한다. 이런 비중을 감안할 때, 자동차 산업전환에 대응하는 금속노조의 실천은 40만 명(2023년 1월 현재 완성차 151,391명, 부품사 234,717명)에 달하는 자동차산업 노동자의 생존권과 금속노조의 전망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3년 4월, 금속노조는 ‘금속산업 전환 대응 관련, 당면 사업 방향과 요구’를 발표했다. 우선 금속노조는 자동차산업 전환 관련 당면 사업방향으로 두 가지 공동사업 목표를 세웠다. 이는 △부품사 완성차 공동 대응, 공동투쟁 모색 △노조 총괄 대응, 지부·지자체 대응, 사업장 대응의 유기적 집행을 통한 정의로운 산업전환 경로 확보다. 


그러나 금속노조의 공동 대응과 공동투쟁 목표는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완성차지부들의 경제적 조합주의와 공동투쟁 회피, 부품사 지회들의 완성차지부에 대한 불신에서 나오는 ‘공동투쟁은 불가능하다’는 인식, 자동차산업 미조직 노동자의 생존권에 대한 무관심 등에서 비롯된다. 완성차-부품사 노동자들의 발전적 상호작용 부재에 따른 불신과 분열 위에서, 완성차지부와 지역지부들은 지역과 산업 수준의 노사정위원회 참여에 몰두하고 있다. 


5월 초 금속노조가 주관한 완성차와 부품사 간부 수련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완성차와 부품사 노조의 공동투쟁 계획은 논의되지 않았다. 전기차 등 배터리팩과 PE 모듈(모터·인버터·감속기 등)을 어디에서 만들 것인지가 주요 관심사였고, 물량 문제를 둘러싼 불신은 전혀 해소되지 못했다. 울산지역에서 현대차지부, 현대중공업지부, 부품사지회 간부들의 단합행사가 있었지만, 그 자리에서도 완성차와 부품사의 공동투쟁, 울산지역 3개 지부 공동투쟁에 관한 구체적 고민은 없었다. 그런데도 ‘2030 울산 자동차산업 포럼’과 같은 노사정협의기구에는 각 지부 임원이 참여해 지방정부, 자본가단체 대표들과 ‘자동차산업 미래 발전 방향’을 논의한다. 물론 현장조합원은 그 자리에서 어떤 논의와 주장이 오갔는지를 알 수 없다. 나중에 보수언론 기사를 통해 ‘노사 상생의 성과’라는 포장을 확인할 뿐이다.


현대차지부는 구조조정과 폐업에 직면한 부품사 노동자들, 그리고 사내하청 노동자들과의 공동대응 계획 수립에 소극적이다. 반대로 자본과의 협력에, 그리고 보수여야 관계자와 자본가단체를 포괄하는 노사정 대화에는 적극적이다. 그리고 노사정 대화가 대공장노조의 사회적 책임인양, 노사정 대화의 낙수효과로 부품사 노동자들에게 혜택이라도 돌아가는 것처럼 자족하는 것이 현대자동차지부의 모습이다. 2022년 현대자동차지부 대의원대회에는 단체협약 요구안 외 별도로 ‘고용안정 관련 요구’가 상정됐다. 해당 별도 요구에 포함된 ‘자동차산업 정의로운 미래 전환을 위한 노사정 협의체 참여 요구’는 대의원들의 특별한 반대 없이 통과됐다. 


민주노총은 경사노위 등 전국 수준의 노사정기구에 참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수 지역과 산업에서는 노사정위원회가 버젓이 가동되고 있다. 금속산업의 경우 금속노조 전북지부의 ‘상용차산업 노사정위원회’, 경주지부의 ‘미래자동차 부품산업 수퍼클러스터 조성을 위한 경북 지방주도형 투자일자리 상생협약’, 울산지부의 ‘자동차산업 노사정 미래포럼’ 등이 가동되고 있다. 완성차와 부품사 노조의 공동투쟁이 사라진 자리에, 다양한 노사정 협조기구가 판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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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울산매일

 

국내 생산물량 확대 요구, 왜 문제인가 


‘2023년 금속노조 자동차산업 대정부·대국회 요구안’은 현대자동차 국내공장과 해외공장 노동자, 국내 완성차와 부품사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를 가로막는 내용이 다수 발견된다. 이 중 ‘국내 자동차산업 고용확대 및 미래차 전환 지원을 위한 국내 자동차산업 발전대책 마련’에 담긴 요구는 심각하다. 그 요구는 △자동차산업 공동화 방지를 위한 완성차 국내 책임생산량 유지 △배터리, PE 모듈 등 미래차 핵심 부품 국내 생산시설 확충과 국내 의무생산 비율 50% 이상 유지 △국내 판매 완성차의 국내 생산부품 의무사용 비율제 도입 △한국 자동차산업 노동자 적정임금제 도입이다. 


그렇다면 이런 요구가 왜 문제인가. 자본은 더 값싼 노동력을 확보하고, 더 안정적으로 핵심 원료와 부품을 확보하고, 더 많은 이윤을 축적하고자 해외 생산을 확대해왔다. 이런 자본의 전략에 맞서, 노동조합은 해외 생산량을 축소하고 국내 생산을 확대하라고 요구해야 하는가?  


아니다. 노동조합의 요구는 노동자의 단결을 강화할 수 있어야 한다. ‘해외가 아니라 국내에서 생산하라’는 요구는 노동자가 물량 확보를 둘러싼 국제 경쟁에 뛰어드는 것을 뜻한다. 국내 생산 확대가 가장 중요한 요구로 걸리는 순간, 금속노조 산하 지부와 지회의 대응은 각자의 물량확보가 된다. 이는 물량과 무관한 총고용 보장, 노동시간 단축 등 계급적 요구에 기반한 공동투쟁을 시도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자본의 덫이다. 


일례로 전미자동차노조(UAW)는 현대자동차지부보다 오래전부터 미국 생산 유치를 요구해 왔다. 자국 내 생산 확대라는 전미자동차노조의 요구는 옳은가? 대표적 자동차 기업인 GM 사례를 보자. 글로벌 GM자본은 연쇄적 해외공장 폐쇄와 함께 미국 생산을 강화했고, 그 과정에서 한국GM 군산공장과 부평 2공장 폐쇄를 포함한 온갖 구조조정과 노동탄압을 자행했다. 그리고 우리는 전미자동차노조가 이에 맞서 투쟁하거나 항의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렇듯 지구화된 생산 체제에서, 자국 중심 생산 요구는 종종 타국 노동자들의 물량을 뺏어오라는 요구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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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폐쇄된 한국GM 군산공장. 사진: 한겨레 

 

여기서 끝이 아니다. 글로벌 GM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한국GM 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떻게 대응했던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담당하던 공정을 ‘인소싱’하며 하청노동자들을 내쫓았다. 미국GM 생산 확대 → 한국GM 생산 축소 → 한국GM 정규직 고용유지를 위한 비정규직 우선 해고라는 과정이 연쇄적으로 펼쳐졌다. ‘생산물량 유지’를 1차 요구로 잡는 순간, 물량과 무관한 생존권 보장은 허무맹랑한 요구로 치부될 뿐이다. 이에 따라 각자 물량을 확보하기 위한 노동자 내부의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금속노조의 ‘국내 자동차산업 고용확대 및 미래차 전환 지원을 위한 국내 자동차산업 발전대책’에 제시된 요구안은 노동운동에 위험하다. 해외 생산 축소와 국내 생산 확대라는 요구는, 국내 완성차와 부품사 노조의 물량 경쟁으로 고스란히 반복된다. ‘우리부터 살려면 해외 물량을 가져와야 한다’라는 인식은, ‘우리 공장 노동자부터 살아야지’라는 인식, ‘정규직부터 살아야지’라는 인식과 다르지 않다.  


자동차산업 전환에 대한 금속노조의 중심 대응이 ‘물량 확보’인 상황은 우연이 아니다. 사실 이런 요구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있었다. 금속노조는 2010년 ‘해외 생산 비례제’를 요구했다. 그리고 이는 당시 현대자동차지부의 ‘국내 생산 비율 유지’라는 요구와 연결돼 있다. 2023년 금속노조 산업전환 요구 중 하나인 ‘완성차 국내 책임생산량 유지’는 표현만 다를 뿐, 그 본질은 2010년 해외 생산 비례제와 같다. 산업전환에 대응하는 금속노조의 중심 요구가 물량 확보로 설정되는 상황은, 금속노조의 정책과 방향을 좌우해온 현대자동차 등 완성차 지부의 계급성과 연대성 상실, 경제적 조합주의와 해외 노동자에 대한 배타주의가 빚어낸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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