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여성+노동’ 해방을 향해, 함께 연결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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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여성+노동’ 해방을 향해, 함께 연결되자

변여운넷 준비모임 3차 토론회 “왜 여성은 더 가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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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수많은 국가를 제치고 30년 가까이 ‘부동의 1위’를 유지하는 부문이 있다. 바로 성별 임금격차다. 한국 여성들은 왜 저임금·불안정 일자리에 내몰려야 하는 걸까. 현실을 바꿀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6월 3일 열린 여성 노동자 토론회 <왜 여성은 더 가난해?!>는 그 궁금증을 해소하는 장이었다. 변혁적 여성운동 네트워크 준비모임(이하 변여운넷 준비모임)이 주최한 이번 토론회는 강북노동자복지관에서 대면 진행됨과 동시에 유튜브로 생중계되며 온라인 참여도 이뤄졌다.


변여운넷 준비모임은 여성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가부장제 자본주의 체제의 변혁을 일구는 것을 목표로 지난해 11월 결성됐으며, 20여 명의 여성 노동자·학생들이 함께하고 있다. 그동안 ‘변혁적 여성 네트워크, 왜 필요한가’, ‘여성 노동자가 말하는 직장 내 성폭력 문제’를 주제로 두 번의 토론회를 열었다. 이번 토론회는 여성 저임금 실태를 살펴보고, 대항하는 운동을 도모하고자 열렸다. ‘여성 노동자 할말많’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활발한 논의가 펼쳐졌던 현장을 세세히 담아봤다.


저임금 일자리로 떠밀리는 여성들


1, 2부로 나뉜 토론회의 1부는 각자 현장 사례를 공유하며 여성 저임금 현주소를 알아보는 시간이었다. 토론 참여자들은 나누고 싶은 사례를 요약하는 열쇳말을 포스트잇에 적어 토론장 한편에 마련된 공간에 붙였고, 그 결과 다양한 열쇳말이 모였다.


그중 ‘경력단절’을 열쇳말로 적은 배예주 동지는 “연구자료에 따르면 여성 저임금이 평생 이어지는 가장 큰 원인은 경력단절”이라는 점을 짚으며 “노동시장 속 여성 차별이 절정에 이르는 시기가 결혼과 출산 시기다. 여성은 결혼·출산을 이유로 비정규직·저임금 일자리에 내몰린다”고 말했다.


현재 유천초 부당징계 철회를 위해 투쟁 중인 남정아 동지는 ‘30분의 2’와 ‘98%’를 열쇳말로 적어 붙였다. 남정아 동지는 “유천초등학교는 교직원이 60명 정도다. 그중 30명이 교육공무직, 쉽게 말해 비정규직이며, 그 30명 중 남성은 단 2명이다. 우리나라 전체로 보면 교육공무직 98%가 여성”이라며 “교육공무직은 정규직 공무원이 받는 호봉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또 같은 교육공무직 안에서도 유형이 나뉘며 유형별 기본급이 다르다. 기본급 통일을 요구하고 있지만 관철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왜 교육공무직은 여성이 대부분일까. 남성들은 왜 덜 지원할까. 이유는 임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장이 아닌 여성’에겐 적당하지만 ‘가장인 남성’이 받기엔 충분치 않은 임금 수준이기에 남성이 선호하지 않는 직업이 된 것”이라며 “학교 현장 안에서도 정규직, 비정규직이 나뉘고, 그 속에서 또 여성과 남성이 나뉜다. 다른 직종 안에서도 비슷한 구조의 차별이 있지 않을까. 이미 관행으로 굳어진 현실”이라고 성별 직무분리 문제를 비판했다.


‘가장은 남성 몫, 여성 노동은 반찬값’으로 요약되는 남성생계부양모델은 여성의 불안정·저임금 노동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기능했다. 여성 다수 일자리의 처우가 열악하고 그 개선이 더뎌지는 원인엔 뿌리 깊은 성차별적 관념이 자리한 셈이다. 그러나 ‘남성 가장’은 1인 가구가 늘어나는 현실에 더는 유효하지 않으며, 실재하는 여성 가장의 존재를 지운다는 점에서 큰 결함이 있다. 이는 토론회 1부에서 한부모가족에 대해 이야기한 배예주 동지의 발언을 통해 되짚을 수 있다. 배예주 동지는 “제 친구는 가난한 비혼 여성으로 살다가 결혼했다. 경제적 어려움, 주택 문제, 육아·출산 비용 등을 모두 각오하고 한 용기 있는 결혼이었지만 배우자가 암에 걸려 사별하게 되었다. 그렇게 가장이 되어 일을 하는데, 취업할 수 있는 일이 최저임금 일자리밖에는 없었다. 사회적 지원은 거의 없다시피 했기에 개별 가정이 어려운 상황을 다 떠맡아야 했었다”고 사례를 전하며 “한부모가족 특히 한부모 여성 가구의 현실은 곧 ‘계급 문제’로 이야기된다. 생존을 위해 노동해야 하는 문제와 함께, 가사·돌봄노동까지 두 가지 큰 어려움을 헤쳐 나가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한국한부모연합의 조사에 따르면 한부모 여성 가구의 절반이 빈곤 상태에 있다. 또한 한부모가족 월 소득 평균은 389만원인데, 여성이 가장인 가구는 169만원에 그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여성 저임금과 불평등이 심각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이야기했다.


‘여성이 하는 일’이라 더 낮은 임금 받는 현실


여성노동 가치 저평가와 그에 따른 저임금 사례도 터져 나왔다. 정은희 동지는 “여성 노동자들은 한결같이 ‘10년을 일해도 첫 월급과 달라진 것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만큼 자신의 노동에 대한 가치를 보상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며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저평가된 여성노동의 대표적인 예는 돌봄직종이 아닐까. ‘돌보는 일=여성노동=사적이고 부차적인 노동’의 도식 속에 돌봄노동은 그 가치를 도둑질 맞는다. 병원 노동자 홍희자 동지는 “병원 내에선 온갖 비정규직 노동 조건을 찾아볼 수 있다. 간호보조나 간호조무사 들은 대부분 계약직에, 최저임금을 받는다. 특히 큰 병원에선 보조 역할 직종은 정규직을 뽑지 않은 지 10년이 넘었다”며 “그나마 조건이 좀 좋으면 한 병원을 4년까진 다닐 수 있는데, 그것마저도 ‘2년은 파견, 2년은 계약직’ 이런 식이다. 심지어 이전에 근무했던 병원은 파견 이후 복직 투쟁을 통해 정규직이 된 사례 이후엔 절대 2년 이상 고용하지 않기도 했다”고 생생한 현장 사례를 전했다. 이어서 “(계약을 갱신할 때마다)이전 경력은 전혀 월급에 반영되지 않는다. 늘 신입이다. 2년마다 경력이 계속 갱신되니 비정규직엔 ‘경력단절’이라는 말이 무의미한 셈”이라며 “간호보조·간호조무사직뿐만 아니라 병원 청소 노동자분들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용역업체에 소속돼 한 병원에서 2~30년씩 일하지만 월급은 사실상 사회초년생과 다를 바 없다. 병원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들 역시 간접고용이기에 상황은 마찬가지다. 간병사들은 환자 개인과 1대1로 계약하는 특수고용직이어서 제대로 된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데, 어쩌면 더욱 열악한 상황에 부닥쳐 있다. 24시간 내내 환자를 돌보면서도 엄청나게 적은 돈을 받는다. 노령의 여성이 고되고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한다는 현실 자체가 큰 문제”라고 발언하면서 병원이라는 공간 속 여성 노동자가 겪는 차별을 세세히 짚어냈다.


이러한 여성노동 평가 절하는 서로 다른 직군에서만이 아닌, 동일 직종 내 임금 차별로 이어지기도 한다. 배예주 동지는 “금속제조사업장인 KEC의 한 여성 노동자는 1988년 입사했는데, 같이 입사한 남성보다 임금이 적다”며 “여기엔 KEC의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KEC는 임금 체계를 5단계로 나눈다. 여성은 입사하면 가장 낮은 급에서 시작하는데, 남성은 그보다 한 단계 높은 급에서 시작한다. 또 여성에겐 인사고과 자체를 낮게 주기도 한다. 남성은 2, 3년 만에 쉽게 승급하는데 여성은 그렇지 않다. 남성보다 승진·승급이 어려운 구조를 계속 재생산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일했음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낮은 임금을 받게 된다. 연봉으로 따지면 남성과 천만 원 이상 차이가 난다”고 말하며 구체적 사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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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가난, 구조적 문제다


이날 1부에선 앞선 주제 외에 청소년·청년이 겪는 임금 차별과 부당대우, 여성이 육아휴직을 전담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현실 등 다양한 논의가 펼쳐졌다. 현장 사례를 들여다볼수록 여성이 겪는 저임금은 단순히 개별적인 문제가 아닌, 가부장제 자본주의 체제가 불러온 구조적 성차별에 기인한다는 사실이 선명해졌다. 토론회 2부는 그 근본적 구조를 더 깊이 살피며 대안을 모색하는 시간이었다. 변여운넷 준비모임 구성원들이 발제를 맡았으며 총 5개의 주제가 다뤄졌다. 발제 내용을 요약해 전한다.


생의 끝까지, 성차별 속에 살고 늙는다


첫 주제는 성차별로 인해 여성이 겪는 생애사적 영향이었다. 발제를 맡은 배예주 동지는 여성의 삶을 [아동기-청년기-중년기-노년기] 네 단계로 나누어 시기별 차별구조를 짚어냈다. [아동기]는 ‘생계부양=남성/돌봄노동=여성’, ‘여자라면, 남자라면 이래야 한다’는 성차별적·가부장적 성별 고정관념을 내면화하는 시기다. [청년기]는 노동시장 진입을 앞두고 경쟁과 서열화에 치이는, 그야말로 ‘N포’의 시기다. 진로 선택을 요구받는 청소년 시절엔 ‘남자는 의사, 여자는 간호사’ 같은 성별화된 직업관념에 마주하고, 이는 성별 직종분리 공고화로 이어진다. 또한 ‘20세 미만 여성 아르바이트 노동자 월평균 임금 85만원, 성별 임금격차는 75%’ 통계는 노동시장 진입 초기부터 저평가된 여성노동과 맞닥뜨리게 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어서 사회에 본격적으로 진입한 여성 청년은 구조적 성차별로 빚어진 불평등과 저임금으로 생존 및 미래 계획에 어려움을 겪으며, 이는 곧 높은 여성 청년 자살률의 원인이 된다. [중년기]를 맞은 여성에겐 “육아나 직장이냐, 이것이 문제”인데, 결국 많은 여성이 가정으로 내몰리며 경력단절을 겪는다. 배예주 동지는 “중년기 기준점인 35세는 여성이 생애 최고의 임금을 찍는 나이다. 35세만큼 더 벌 수 없다는 것이다. 최고를 찍은 후에는 곤두박질친다”며 “35세~39세 구간 임금격차는 75.9%인데, 20년 후인 55세~59세 구간엔 55.4%로 남성 임금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경력단절로 인한 저임금 문제가 훅 다가오는 시기”라고 말했다. 경력단절 외에도 성별 직종분리, 유리천장, 단지 여자라서 등을 이유로 저임금을 겪는 중년기 여성은 가사노동 부담까지 떠안으며 고착화된 성차별 구조로 몸살을 앓는다. 이후 [노년기]에 이른 여성은 빈곤과 마주한다. “죽을 때까지 가난한 여성”일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적은 연금이다. 저임금은 곧 ‘저연금’으로 이어진다 연금 100만 원 이상 수익자 대상 통계에서 여성이 받는 연금은 남성의 ‘30분의 1’이다. 적은 연금은 노년기에도 일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여기서도 여성 노인은 남성에 비해 한정적인 직종, 저임금·불안정 일자리로 내몰린다. 그렇게 60~64세 구간 성별 임금격차는 57.8%, 70세 이상이 되면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39%에 그친다. 아동기부터 노년기까지, 구조적 성차별에 시달리는 여성의 현실을 되짚은 배예주 동지는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지독한 성차별은 노동계급 여성에게 심대한 고통을 안기며, 노동자 민중이 하나로 단결하지 못하게 분할한다. 이는 단지 이데올로기만으로 여성을 고통에 내모는 것이 아니다. 여성의 생애를 관통해 물리적이고 총체적인 고통을 가한다”고 말하며 발제를 마쳤다.


한편 이날 발제에서 배예주 동지는 여성 저임금 문제를 여성 노동조합 조직률과 함께 놓고 살피기도 했다. 그는 “여성의 노조 가입률이 굉장히 낮다. 민주노총만 하더라도 여성 조합원은 28%로 전체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노동조합 운동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며 “그렇기에 기존 노동조합 내에서도 젠더차별에 맞서는 저항의식 자체가 낮다. 사회적 불평등에 맞선 저항의 핵심 주체인 노동자계급이 구조적 젠더차별에 대항할 힘을 가지려면 여성 노동자 조직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 생도 버거운데 출생까지 떠맡기다니


이어진 주제는 저출생 문제였다. 발제를 맡은 변주현 동지는 앞서 살펴본 성차별 구조 속 여성 생애에 대해 “다들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하며 살아가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상하지 않느냐. 잘못된 것 같다”고 말하며 말문을 열었다. 자본주의 사회 속, 인간은 결혼·출산으로 대를 잇기를 반복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그런 재생산은 곧 기업, 자본을 위한 노동력으로 이어진다. 현대적 노예의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임금격차를 비롯한 불평등은 개선되지 않고, 사회적 복지망도 턱없이 부족하다. 빈곤 아동이 아사하는 현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드러나는 것은 기업의 눈부신 성장뿐이다. 변주현 동지는 이런 현실 속, 여성 노동자의 불안정·저임금 노동조건은 낮은 출생률의 원인이 된다고 짚어냈다. 그는 “결혼은 어떻게든 하더라도, 자녀를 낳게 되면 그 자녀에게 경제적 어려움이 대물림된다. 다들 이를 잘 알기 때문에 출생률이 낮아지는 것”이라며 “여성 노동자의 빈곤 같은 불합리한 사회 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 출생률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하면서 여성에게 저출생 책임을 떠미는 사회의 오류를 비판했다. 이에 대해 정은희 동지는 “자본주의 위기가 심화하며 자본가들이 그 위기를 기층 노동자와 여성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그런 현실이 저출생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노동에 낮은 값을 매기며 착취를 이어가는 자본이 곧 저출생의 원인인 것이다.


자본은 착취 강화로 위기를 모면한다


자본 성장을 위한 여성 착취의 역사는 뿌리 깊은데, 이를 이주영 동지의 발제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주영 동지는 한국의 자본주의 이행 역사 속에서 여성노동이 저평가된 구조를 분석해 비판했다. 1960년대와 70년대, 국가는 근대화론에 입각해 단계적 경제개발 계획을 추진한다. 그중 2단계였던 경공업 분야 수출주도산업 육성에는 수많은 여성의 노동력이 동원됐다. 수출산업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상품이 저렴해야 했고, 이는 곧 저임금 노동을 통해 가능했다. 그렇게 섬유, 신발, 가발, 전자 공장의 여성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수행했다. 실제 수출산업 부분 여성 노동자 비중은 70%를 웃돌았고, 그중 대부분은 10대, 20대 여성이었다. 국가는 ‘산업체부설학교제도’를 만들어 ‘공장에서 공부도 시켜준다’며 청년 여성의 노동을 강제하고 저임금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1960년대 자본주의가 막 자리 잡던 시기, 한국의 폭발적 경제 성장은 여성 노동자에 대한 혹독한 착취로 만들어졌다. 그러한 여성 저임금 일자리 형성엔 여성 노동을 ‘반찬값’ 노동, 부차적 노동으로 취급하며 여성 저임금을 ‘감수할 만한 것’으로 만든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도 한몫 했다. 한편 이 같은 성 불평등은 급속한 경제 성장기에 나타나는 계급 갈등을 무마해 주기도 했는데, 그 사회적 부담을 여성에게 고스란히 전가한 셈이다. 더불어 이주영 동지는 페미니스트 경제학자 Seguino의 연구를 소개하기도 했다. 연구에 따르면 한국과 같은 동아시아 신흥 공업국 중 성별 임금격차가 큰 국가일수록 성장 속도가 빨랐고, 1975년에서 95년 사이 한국은 남성 대비 여성 임금이 평균 48.5%로 동아시아 9개 국가 중 가장 컸다.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은 분명 여성에 대한 초과착취를 통해 가능했던 것이다. 


이주영 동지는 발제를 끝마치며 “현재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경제를 지탱하는 서비스 산업은 여성 노동자 비율이 높은데, 서비스 직종은 불안정·저임금 노동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까지도 여성 노동을 평가절하하고 착취하며 경제 성장 토대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하면서 자본의 여성 초과착취가 현재진행형임을 짚기도 했다.


성별 직종분리, 노동자 단결 막는 자본


앞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여성 노동 저평가·여성 저임금의 배경이 된 역사를 살펴본 것에 이어, 성별 직종분리를 주제로 발제를 맡은 정서영 동지는 그처럼 사회문화적 이념이 개인의 삶의 조건을 결정짓는 현실을 더 들여다봤다. 정서영 동지는 직업 선택에 사회문화적 규범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제기했다. 사회는 ‘섬세하고 수동적인 여성상/ 활동적이고 능동적인 남성상’을 기본값으로 삼고, 이 가부장적 이분법 틀에 갇힌 개인은 자신에게 맞는 직종을 탐색하고 선택할 자유를 억압당한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내면적·추상적인 영역뿐만 아닌, 보다 물리적·구체적인 영역에도 개입한다. 일례로 한국에 인정받는 여성 야구 선수 배출이 드문 이유는 남성 야구처럼 유년기부터 선수를 발굴·양성하는 제도적 기반이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금속 사업장의 경우 여성보다 남성을 선호하며, 이런 사업장에선 여성 휴게공간 등 여성을 위한 기반 시설이 부족하고 이는 곧 여성 기술직 유입을 가로막는 또 다른 조건이 된다. 이러한 직종분리 속에 여성은 대부분 서비스 직종, 돌봄 직종에 머물며 노동의 평가절하와 저임금을 겪는다. 남성 역시 신체적 부담이 큰 일자리에서 ‘가장이니까 이 정도는 참아야지’라는 말과 함께 과로를 견뎌낸다. 결국 자본은 불합리한 처우나 위험한 노동환경을 개선할 노력은 뒷전으로 한 채,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이용해 여성/남성 노동 계급을 분할하고 단결을 저지하고 있는 셈이다.


돌봄노동은 모두의 몫이다


그런데 여성화된 노동, 즉 돌봄노동 혹은 가사노동은 도대체 왜 저평가 대상이 됐을까. 이소연 동지는 미국 경제학자 낸시 폴브레의 저서 <보이지 않는 가슴>을 소개하면서 돌봄노동 저평가의 경제적·사회적 기원을 밝혀냈다. 낸시 폴브레는 출산이 가능하다는 생물학적 차이에서 성별 노동분업이 생기고, 이는 곧 여성에 대한 사회적·문화적 통제의 기틀이 된다고 말한다. 이 기틀을 토대로 자본주의는 가부장제 규범과 손을 잡고 여성에게 가족·공동체에 대한 이타주의를 주입함으로써 여성의 돌봄노동에 도덕적 가치를 덧씌운다. 겉으론 자본주의가 ‘노동력 제공 ↔ 임금 지급’ 등 계약 관계로 굴러가는 체제인 듯해도, 돌봄·가사노동 영역에선 도덕 규범적 강제와 ‘생산성 지우기’를 통해 여성 노동력을 무급으로 수탈하는 셈이다. ‘엄마라면, 아내라면 무조건 해야 하는 일’이란 명목 아래 이뤄지는 수탈이다. 


그러나 불이익이 커지면 사람들은 돌보는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다. 한국의 경우 유교적 가부장제 아래 착취당해 온 역사 끝에 여성들의 ‘4B 운동’(비연애·비출산·비섹스·비혼)이 일었다. 이소연 동지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영영(young*2) 페미니스트’들은 ‘남성 되기’ 전략을 취했다고 생각한다. 돌봄·가사노동이 인정받지 못하고, 성차별에 시달리면서 꾸밈노동 등 여성성을 계속 생산해야 하니 차라리 남성 노동자 모델을 따르겠다는 것이다. 고위직 되기 등 능력주의에 편승하는 전략을 취하기도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정말 능력주의만이 길인 걸까. 자본주의 착취에 대항할 다른 방법은 없나. 이 물음에 이소연 동지는 ‘사회적 재생산 여성주의’로써 응답한다. 리스 보겔의 ‘사회적 재생산 여성주의’는 마르크스 자본론의 노동해방과, 가부장제 자본주의 속 여성해방을 통합적 관점으로 바라본 주장으로, 마르크스의 재생산 개념을 ‘사회 생산’과 ‘사회적 재생산’으로 다시 나누었다. 사회 생산은 전체 체제를 지속하기 위한 재생산이고, 사회적 재생산은 돌봄·가사노동이 이뤄내는 노동력의 재생산이다. 리스 보겔은 이 두 개념으로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자고 말한다. 그가 주장하는 여성해방을 위한 핵심 조건 두 가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재생산 노동도 사회적 생산에 기여함을 인정하면서 민주주의적·계획적·의식적으로 재생산 노동을 사회화해야 한다. 둘째, 세대 재생산에서 여성 고유 역할에 기인하는 문제점에 대해 확실한 권리(모성휴가, 임신 기간 동안 쉬운 노동 등)를 보장해야 한다. 


이날 새로운 대안으로 사회적 재생산 여성주의를 제시한 이소연 동지는 “한국 사회는 굉장한 시설사회다. 장애인, 성판매여성, 탈가정청소년 등 소수자들을 ‘정상사회’에서 분리해 시설에 몰아넣는다. 여성화된 노동 역시도 ‘저평가되어도 되는’ 구획으로 분리됐고, 여성들을 그곳으로 내몰고 있다. 모두 함께 이를 비판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하며 발제를 마무리했다.


모든 노동이 제 가치를 찾는 세상, 우리가 해나갈 투쟁


토론회 마지막 순서는 앞으로 어떤 투쟁을 해야 할 지에 대한 구체적 논의였다. 먼저 마이크를 잡은 홍희자 동지는 현재 진행 중인 ‘5·6·7 최저임금 투쟁’에 적극 나서야 함을 이야기했다. “여성 다수가 최저임금 혹은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임금으로 살아간다. 그렇기에 최저임금 인상 투쟁에 여성들이 앞장서야 한다”고 운을 띄운 홍희자 동지는 “현재의 낮은 임금 인상률은 엄청난 물가 인상 폭을 따라가지 못한다. 가장 큰 문제는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장하고 있는 현실이다. 상여금 같은 이런저런 수당을 욱여넣다 보니 실질임금은 삭감될 수밖에 없다”며 문제를 드러냈다. 그는 “자본가들은 월급을 적게 지급하기 위해 기본급 자체를 아예 낮춰버렸다. 초과근무가 잦은 직종의 경우 초과근무 임금을 기본급의 1.5배나 2배로 계산하는데, 기본급이 낮아지니 최저임금이 아무리 올라도 실질적으로 받는 시급은 최저임금 이하가 된다”며 최저임금 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서 “최저임금 미달 노동자는 남성 16%, 여성은 35%가 넘는다. 여기서 구조적 성차별이 확실히 드러난다. 여성 정규직은 남성 비정규직보다도 적은 임금을 받는데, 자본가 입장에서 이러한 분리는 여성/남성, 비정규직/정규직, 대사업장/소사업장을 ‘갈라치기’ 하며 노동자 단결을 막는 데에 효과적”이라며 “여성 노동자가 최저임금 투쟁에 나서서 남성 노동자들과 단결해 목소리 내야 한다. 약한 고리를 틀어쥐고 하나씩 끊어내려 하는 자본의 분할 통치에 맞서 단결 투쟁해야 한다”고 최저임금 인상 투쟁을 강력히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이영미 동지는 “200% 동의”로 응답하는 한편, 또 다른 제안을 제시했다. 그는 “최근 코로나 완화로 여성 취업률이 늘었다고 하는데, 실제 살펴보면 시간제·기간제·단시간 노동이 많다. 그런데 언론은 가사·돌봄노동을 맡아야 하는 여성에겐 그런 불안정 노동이 적합하다는 식으로 보도한다. ‘일·가정 양립’을 여성에게만 미루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왜 여성이 돌봄노동을 독박 전담해야 하는가. 왜 생산적인 부문엔 전면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부수적인 일에 머물러야 하는가. 여성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여성은 불안정한 일자리가 아니라, 다른 노동자와 똑같이 이 사회의 생산적 발전을 위해 노동하고 있음을 제대로 인정받아야 한다”며 그러한 논의를 최저임금 투쟁과 함께 사회적으로 확산해 가자고 제안했다.


배예주 동지는 “여성 저임금에 맞서는 투쟁은 저평가받는 모든 노동 현실에 맞서는 투쟁”임을 되짚었다. 그는 “여성 노동자 차별에 맞서는 투쟁은 모든 젠더 차별에 맞서는 투쟁이며, 장애인 노동자 차별과 이주 노동자 차별에 맞서 싸우는 투쟁이고, 곧 모든 차별·억압에 맞서 싸우는 단결 투쟁을 의미한다. 가부장적 자본주의, 자본가계급이 주입하는 차별적 이데올로기에 제대로 맞서 싸워야 한다. 더욱 많은 노동자와 노동조합, 그리고 여성 노동자들이 주체적으로 이러한 문제에 맞서서 사회의 불평등과 억압을 하나씩 깨부숴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끝으로 이소연 동지는 “친구가 항공사에서 일을 하는데 전문대 졸업 후 바로 취직해서 지금 6년 차다. 그런데 그 회사에선 전문대 졸/대졸을 구분한다. 전문대 졸업의 경우 대졸 입사자보다 더 오래 일해도 대우를 못 받는다. 또 다른 친구는 콜센터에서 일하는데, 콜센터는 워낙 사람이 빨리 바뀌어서 조금만 오래 일해도 관리직으로 배치한다. 그런데 월급을 더 주지 않고 오히려 인센티브를 받는다며 실질 월급은 더 삭감하는 상황”이라며 “그런데 이렇게 20대인 제 또래에 일을 다니는 친구들은 주변에서 노동권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기 쉽지 않다. 이런 친구들에게 노동권 문제를 알리고 함께 얘기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쟁을 하나의 ‘힙한 문화’로 만들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친구들과도 함께 투쟁에 나서고 싶다”고 말하면서 투쟁에 더 많은 사람이 함께할 수 있도록 일상에서 알리고, 실천할 것이라고 전했다.


‘여성+노동’ 해방을 향해, 함께 연결되자


변여운넷 준비모임 3차 토론회 <여성은 왜 더 가난해?!>는 열띤 토론에 이은 굳은 결의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생생한 현장 사례를 듣고, 문제를 직시하고, 대항할 방법을 모색하며 여성해방, 노동해방을 향해 한걸음 나아간 시간이었다. 이번 토론회를 주최한 변여운넷 준비모임은 앞으로 토론회와 더불어 연대 투쟁이나 공동행동 등도 같이 펼쳐 갈 예정이다. 사회 변혁을 위한 연결망을 튼튼히 다져가려는 앞길에 ‘투쟁!’하며 함께 외치는 목소리들이 끝없이 보태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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