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산업전환에 여성 노동자의 자리는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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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산업전환에 여성 노동자의 자리는 어디에 있는가?”

자본의 ‘글로리’ 울산에서 기후정의파업 나서는 금속 여성 노동자 김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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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김미옥 현대글로비스울산지회 사무장이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정기대의원대회에 발언하고 있다.



4월 11일 기후정의파업에 나서는 금속 여성 노동자 김미옥. 그는 지난해 이란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에 일어난 여성들의 시위에 “여성, 삶, 자유”를 외치며 머리카락을 한 움큼 잘라냈던 노동자다. 그런 그의 모습은 지난 2월 현대글로비스울산지회 사무장이자 대의원으로 참여한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정기대의원대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그는 울산지역본부가 4.14 기후정의파업 참가를 조직하자고 제안했다. 울산 노동자들이 앞장서 기후정의파업에 참여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현대그룹 일가의 조선, 자동차를 비롯한 금속산업과 크고 작은 화학공장, 그리고 온갖 하청공장이 밀집한 울산은 쉴 새 없이 탄소를 뿜어내는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굴뚝이자 해안가를 따라 늘어선 공장들에서 거대한 이윤을 뽑아내는 자본의 ‘글로리’다. 울산은 서울 다음으로 1인당 가계총처분가능소득이 가장 높은 도시이면서도 산재 사망률 1위에 지역별 근로소득 양극화 1위인 도시이기도 하다. 현재 가동 중인 원전 2기와 건설 예정인 2기 외에도 부산, 월성, 신월성에 위치한 총 12기의 원전이 울산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고, 이 원전은 현대자본을 위해 오늘도 맹렬히 핵분열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울산이기에 김미옥 사무장은 노동자들이 기후위기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자본주의가 기후위기의 주범이라면, 기후정의운동이란 곧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이미 오래전부터 노동자를 잡아먹고 울산의 하늘과 바다와 개울을 더럽혔지만, 그 가장 밑바닥에는 성별임금격차 역시 1위라는 울산의 현실만큼이나 여성 노동자가 자리하고 있다. 바로 김미옥 노동자의 삶과 노동이 말하는 이야기다.


김미옥 노동자는 여러 직종에서 일했다. 미포조선에서는 충분한 보호장비가 지급되지 않는 조건에서 도장 일을 했고, 화장실이 없어 일하다 간혹 노동자들이 보는 소변 등을 치워야 하기도 했다. 또 자동차 부품사 하청공장과 현대글로비스 하청공장에서는 조선업종과는 달리 여성 노동자들이 어느 정도 배려 받고 임금 등에서 차별이 없는 상태여서 때로는 오히려 남성 노동자가 역차별 받고 있다고 말하는 환경에서 일했다. 이러한 경험과 삶이 현대자본이 그에게 내어준 자리였다.


“그러니 몸이 휘어지는 것이다”


처음 김미옥 노동자가 미포조선에 입사했을 때는 일 자체가 너무 험악해서 달리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고 한다. 일만 미친 듯이 했다. 6시 반에 출근해 7시 20분 회사 조회를 마친 뒤 각 배의 자기 공정으로 옮겨가 체조를 하고 8시부터 업무가 시작되는 일정이었다. 30~40분은 공짜 노동을 해주는 셈이었다. 거기서는 특수도장(페인트 등 외관 작업)이라고 해서 탱크 안에서 일했다. 배 하나에 6~7개의 족장(비계)이 있는데, 따라다니며 일하는 것이었다. 도장하는 사람들은 까만 봉지 여유분을 많이 넣고 다녔다. 화장실이 급하면 비닐 2개를 놓고 볼일 보고 묶어 나오는 것이다. 놔뒀다가 까먹기도 했지만, 족장반 남성 노동자들은 소변을 그냥 봤다. 그러면 도장을 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일을 하기 위해 다 치웠다. 늦게까지 잔업을 해야 하는 날이면 차가운 도시락을 까먹었다. 임금은 최저임금보다 많기는 했지만, 점차 그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런 환경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잔인했다. 안전화나 보호장구부터 충분히 지급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요즘은 천국 만난 거다’라는 언니들이 많았다. 조선소 언니들이 오래 일하신 분들은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흔히 여성이 맡는 도장작업을 하면 자세가 비틀어진다. 단순히 페인트만 칠하는 것이 아니라 까고 ‘빼빠’치고, 깨끗이 닦아내야 하는 일인데, 양손을 다 쓰는 것이 아니라 계속 불균형적으로 일해야 한다. 그러니 몸이 휘어지는 것이다. 그런데도 다리 수술을 하고서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을 시작해 재발한 언니도 있었다. 


특수도장은 여성 노동자들이 주되게 일하기도 했지만, 연이은 스프레이 작업은 남성 인원이 없으면 여성이 배치되곤 했다. 여성들은 줄잡이를 하고 싶지 않아도 찍소리 못하고 소장이 오더 주는 대로 해야 했다. 줄잡이는 남성 노동자가 스프레이를 하면 따라 들어가 커버링이라고 해서 신나로 닦아내는 작업을 말한다. 그러면 강렬한 냄새 때문에 눈물 콧물이 다 쏟아진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아무도 줄잡이를 하지 않으려고 해 대개 여성 노동자들에게 떠넘겨진다. 김미옥 노동자 역시 줄잡이를 한 적이 많다. 일이 힘들어도 가장인 여성 노동자들도 많고, 돈벌이가 좀 되니까 떠날 생각들을 하지 못했다. 


그 같은 노동조건에서 해마다 수많은 노동자가 다치고 때로는 목숨까지 잃었다. 여성 노동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미옥 노동자도 당시 허리 때문에 입원 치료를 받았다. 10킬로그램짜리 페인트도 부지기수로 들고 다녔다. 덕분에 목, 어깨, 허리 마디마디는 늘 파스 신세였다. 더구나 남성 노동자들이 족장을 다 치우고 나면 엄청난 공포감 속에서 일해야 했다. 사다리를 잡고 있는 사람이 잠깐이라도 딴 생각을 하면 바로 미끄러질 수 있었다. 항상 긴장 상태에 있어서 일이 더 험했다. 


김미옥 노동자는 이후 미포조선을 그만두고 임금을 더 받을 수 있는 현대중공업으로 이전했는데, 이곳에서 그라인드(연삭 작업) 공정 다음 순서인 청소 일을 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철가루가 눈에 들어가 치료받았고, 미끄럼에 넘어지면서 심하게 다쳐 수술도 받아야 했다. 중형선박부문 세계 1위 조선소로 발전한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중공업에서의 이야기다. 


그렇게 힘들게 일했지만, 여성 노동자는 제대로 된 이름을 가지지 못했다. 대부분 ‘이모님’이 되거나 ‘아줌마’가 된다. 그래도 여성 노동자들끼리는 재미있게 일했다. 끝나고 모임도 만들어 같이 저녁도 먹고, 힘든 일을 함께하기도 했고, 같이 어우러져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서로 알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목숨 걸고 하는 일이지’ 하면서 함께 버텼다. 


이후 김미옥 노동자는 자동차 부품서열업체인 동진오토텍으로 이직해 잠시 피딩업무를 했다. 맨손으로 화물 상하차와 서열을 연계하는 공정인데, 누구나 기피하는 일이다. 차가 들어오면 무조건 움직여야 해 자기 시간을 가지기 어렵고 여름에는 많이 움직이니까 덥고 겨울에는 춥다. 하지만 김미옥 노동자는 조합원들과 같이 일하게 되어 재미가 났다. 한 공정의 노동자가 결근이라도 하면 가서 때워줘야 해 각 공정의 일을 다 배우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 사내 조합원뿐 아니라 화물 상하차 운수 노동자와도 돈독해졌다. 그렇지만 업체가 폐업하면서 이에 맞선 공장 정상화 투쟁이 벌어졌고, 또 이후 노조 사무장을 맡으면서 실제 현장의 조합원들을 많이 만나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했다.


여성 노동자가 설 자리는 어디인가?


울산에도 여유가 있는 여성이 있지만, 대부분은 힘들다. 남편이 게임이나 노름에 빠져서 모든 걸 책임져야 하는 여성 또는 이혼하고 혼자 아이 키우면서 사는 여성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기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 특히 금속사업장이 그렇다. 그나마 조선소에서는 여성 업무가 정해져 있어 여성을 모집하지만, 현재 일하고 있는 자동차 부문에서는 여성 비율이 낮거나 아예 없다. 실제로 금속사업장에는 여성 고용률이 극히 낮다. 단적으로, 창사 이래 현대차의 기술직군 여성 공채는 0명이며, 그나마 사내하청 업체 소속이었다가 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이 나면서 정규직이 된 여성 300여 명이 일하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신규 채용이 이뤄지지 않아 여성 노동자들이 설 자리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이러한 금속산업의 여성 배제는 해당 산업뿐 아니라 국내 성별 일자리 격차 전체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금속산업 일자리 규모가 전 산업 총량의 12.3%를 차지하는 데 반해 여성 고용률은 5~10%에 그쳐, 여성 고용률이 하락하는 결정적 원인의 하나가 된다. 입직을 하더라도 업무는 성별화되어 있고,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문화가 똬리를 틀고 있다. 화장실 수부터 극히 적다. 그러나 정규직 일자리에 여성은 한 줌일 뿐이지만, 하청 비정규직 일자리에는 많다. 여성 금속 노동자 조직률 또한 6%로 현저히 낮다. 


울산지역의 젠더 격차는 더욱 심각하다. 자동차, 조선, 화학 등이 몰려 울산 전 산업 중 제조업 비중은 61%나 되지만, 울산의 여성 고용률은 47.1%로 전국 최하위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지역별 성별 임금 격차 현황 및 시사점(2022)’ 연구에 따르면 2021년 울산지역 내 시간당 평균 성별 임금 격차는 34.2%로 전국에서도 가장 높았다. 대표적인 여성 다수 일자리인 보건복지서비스업 임금 노동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도 울산이 88.3%로 가장 높았다. 5인 미만 사업체 노동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도 울산이 56.2%로 가장 높았고, 근속년수 성 격차는 여성이 남성보다 4.8년 짧아 전국에서 가장 컸다. 한편으로 울산은 경력단절된 기간이 9.9년으로 전국에서 가장 길고 20년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도 15.9%로 가장 높았다. 그만큼 울산은 자본이 구조화한 성적 불평등이 그 어느 지역에서보다도 크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여성 노동자가 나서야


그래서 김미옥 사무장은 여성 노동자들이 스스로 성적 계급적 현실과 권리를 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남성을 기준으로 짜인 설비설계 속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건도 성평등하게 바꿔야 한다. 그러려면 여성 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바꿔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그는 생각한다. 더불어 여성 노동자들뿐 아니라 남성 노동자들도 이 문제를 자기 문제로 삼고 공동투쟁할 때 현장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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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진행된 4.14 기후정의파업 선전전



지금 노조에서는 최소한 여성이 그만둔 자리에 여성을 채용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는데, 남성 노동자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대부분 여성도 할 수 있고, 여성 노동자에게 힘든 일은 남성 노동자에게도 힘든 일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더구나 자본이 산업전환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를, 특히 여성 노동자를 일자리에서 밀어내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사업장 중심이 아닌 모든 노동자를 위한 단결된 요구로 민주노조가 모두의 노동권을 위해 싸울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민주노조가 더 적극적으로 청년과 여성 노동자의 고민을 자기 의제로 세워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 대안 역시 금속 노동자들의 고민과 연결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지금처럼 노동자와 분리된 것만 같은 노동조합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기후위기를 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노동자들이 산업을 통제해야 하며, 그것은 성평등한 산업통제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본주의가 기후위기의 주범이라면, 기후정의운동이란 곧 계급투쟁이며 이의 목적이 ‘다양한 성별’의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정기대의원대회에서 김미옥 사무장은 울산지역본부가 4.14 기후정의파업 참가를 조직하고 그에 앞서 기후위기에 관한 강연회를 열어 노동자들이 기후 문제에 관심 갖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울산지역은 처음으로 현장 노동자, 노동당, 사회주의 조직들이 힘을 합해 4.14 기후정의파업 노동자 참가단을 구성해 세종시 집회에 참여한다. 현대글로비스울산지회는 울산지역본부 기후특위장을 맡고 있는 지회장의 제안과 운영위 논의를 거쳐 22명의 간부가 4.14 기후정의파업에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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