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노동자와 청년들이 점점 더 대담한 시위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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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중국 노동자와 청년들이 점점 더 대담한 시위에 나선다

  • 오연홍
  • 등록 2023.03.15 12:18
  • 조회수 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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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베이징에서 열린 시위

 

 

반중 정서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그 배경에는 중국의 제국주의적 야심에 대한 정당한 반감도 뒤섞여 있을 테다. 하지만 반미라는 구호 아래 미국 노동자들의 투쟁과 사회주의자들의 활동, 미국 내 정치적 급진화 흐름을 지워서는 안 되는 것처럼, ‘반중감정에 휩싸여 중국 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투쟁과 저항, 그것이 중국 사회에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에 주목하고 연대해야 할 필요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많은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초의 이야기다.

 

2022년의 주요 시위

 

대출 상환 거부시위: 지난해 6월 허난성 정저우 등에서는 아파트 공사중단과 은행의 대출 상환 압박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 집을 마련한 이들에게 아파트 시공이 중단됐다는 소식은 날벼락이 아닐 수 없다. 당장 머물 곳이 없어 전기도 안 들어오는 미완공 아파트에 이불만 갖고 들어가 밤을 보내는 가족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 와중에 은행은 대출금을 갚으라고 독촉했다. 시위에 참여한 수천 명이 건설 중단에는 대출 상환 중단으로! 집을 내놓고 돈을 갚으라 하라!”고 외쳤다.

 

또 한 명의 탱크맨: 202210월에는 중국공산당 20차 당 대회를 며칠 앞두고 수도 베이징에서 시진핑을 규탄하는 1인 시위가 있었다. 시진핑의 국가주석 3연임 결정을 앞둔 상황에서 이런 시위가, 그것도 수도에서 일어났다는 건 그 자체로 놀랄 만한 일이었다. 시위자는 고가도로 위에서 현수막을 걸고 불을 피우면서 독재자, 반역자 시진핑을 파면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그는 금방 경찰에 연행됐지만, 시위를 벌이는 모습이 SNS를 타고 빠르게 전파됐다. 1989년 톈안먼 항쟁 당시 홀로 탱크의 진격을 가로막은 이를 떠올리게 한다며 또 한 명의 탱크맨이라는 호칭이 붙었다.

 

폭스콘 공장 시위: 한 달 뒤인 11월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아이폰 생산 공장인 정저우의 폭스콘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투쟁을 벌였다. 노동자들은 임금을 지급하라”, “관리자 나와라하고 외치며 공장 집기를 부수고 몽둥이를 휘두르기도 했다. 이 일이 벌어지기 한 달 정도 이전에는 노동자 상당수가 공장에서 탈출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폭압적인 봉쇄조치가 이어지면서 노동자들은 사실상 감금된 상태로 일을 했다. 음식도 제대로 제공되지 않았고, 소량 지급된 도시락을 두고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공장 안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는데도 적절한 조치 없이 계속 봉쇄하기만 해 노동자들은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부 노동자들이 몸싸움을 벌이면서 공장 문을 뚫고 탈출했으며, 교통편도 없었던 탓에 걸어서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다.

 

백지 시위: 그리고 곧바로 202211월 말 중국을 뒤흔든 백지 시위가 시작됐다. 우루무치의 한 아파트에서 화재 사고가 일어났을 때 거주자들이 빠르게 대피할 수 없었고 화재진압도 어려웠다고 한다. 건물 출입구까지 막아버리는 혹독한 봉쇄조치 때문이었다. 이 화재로 10명이 목숨을 잃자 전국 수십 개 도시와 대학에서 폭압적인 제로 코로나 정책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가 번져나갔다. 시위 참가자들은 중국 정부의 검열과 탄압에 항의하면서 백지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 흰 종이에는 아무것도 적히지 않았지만, 그들이 외치고 싶은 모든 구호가 담겨 있는 것이기도 했다. 때로는 중국공산당을 규탄하며 시진핑은 물러나라는 구호를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이 투쟁이 현재의 체제를 넘어 새로운 사회를 향한 전망을 뚜렷하게 붙잡지 못한 건 사실이다. 투쟁의 수위를 과장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규모에서 1989년 톈안먼 항쟁 이후 최대 시위였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특히 수도 베이징과 상하이, 광저우, 선전 등 중국 주요 대도시 전부가 이 시위의 무대가 됐다. 중국공산당과 시진핑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공공연하게 터져 나온 것 역시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장면이다. 백지 시위는 시진핑 정권을 두려움에 휩싸이게 했으며, 중국은 이 시위 이후 급격하게 그간의 봉쇄조치를 해제하기 시작했다.

 

2023년에도 계속된 시위 흐름

 

백지 시위가 사그라든 뒤 시진핑 정권은 적극적인 집회 참가자들을 추적해 은밀하게 체포하고 있다. 지금까지 연행자가 100명 이상이라고 전해진다. 하지만 2023년 들어서도 또 다른 계기를 통해 시위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충칭 지바이오 노동자투쟁: 1월에는 충칭에서 노동자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코로나19 진단키트를 만드는 제약회사 지바이오(ZYBIO) 공장이 그 현장이다. 2만여 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지바이오 사측은 올해 설을 앞두고 8,000명가량을 해고한다고 발표했다. 임금도 체불됐다. 필요할 때 불려왔다 헌신짝처럼 버려진 노동자들은 그냥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시위 장면은 한국에서 노동자 운동이 한창 전투적인 면모를 보였던 시절처럼 격렬했다. 노동자들은 경찰과 충돌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여러 대의 경찰 차량을 전복시켰다. 제품을 담는 플라스틱 상자, 의자, 교통통제용 시설물 등 손에 잡히는 대로 내던졌으며, 진압경찰은 이리저리 밀려다녔다.

 

의료보조금 삭감 항의 시위: 2월이 되자 후베이성 우한에서 의료보조금 삭감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 참가자 상당수가 우한제철소 또는 다른 국유기업에서 일하다 은퇴한 고령의 노인들이어서 백발시위라는 별칭이 붙었다. 우한에서 의료보험 개혁안을 추진하면서 월급의 6%를 지급해왔던 의료보조금을 기존 대비 70%나 삭감하자 의료보험금을 돌려달라며 시위가 일어난 것이다. 28일 우한 정부청사 앞에 모여 시위를 벌인 사람들이 15일까지 해결책을 내놓으라고 요구했으나, 여전히 제대로 답변이 나오지 않으면서 15일에 또다시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가 벌어졌을 때 시내 지하철 역사를 폐쇄하고, 15일에는 우한의 대학들이 봉쇄됐다는 소식도 나돌았다. 비슷한 시위가 우한뿐만 아니라 랴오닝성 다롄 등 다른 몇몇 도시에서도 벌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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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여러 시위: 베이징 시진핑 규탄, 광저우 폭스콘, 우한 의료보조금 삭감 항의, 충칭 지바이오 공장(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지난해에서 올해로 이어지는 이런 연쇄적인 투쟁은 계기도 다양하고 참가자들의 면모도 다양하다. 중국 사회에 누적된 모순이 다면적으로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지방정부 차원의 충돌을 넘어 베이징을 포함한 주요 대도시에서 시진핑 정권을 규탄하는 정치 시위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고, 무엇보다 저항의 전통과 기억에서 완전히 단절된 것처럼 보였던 젊은 세대가 (특히 백지 시위에서) 투쟁의 전면에 나섰다는 점에서도 의미심장하다. 지금 보이는 흐름이 곧장 체제에 도전하는 투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식으로 과장하지는 않더라도, 중국 노동자 민중의 불만이 점점 더 대담하게, 그동안 보지 못했던 양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는 점은 아주 중요하다. 이런 분위기 변화의 배경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면서 이후 중국의 동향을 가늠해보도록 하자.

 

과도한 제로 코로나 정책 탓이었나?

 

예컨대 지난달 우한에서 의료보조금 삭감에 항의하는 시위가 터져 나오자, 언론이 주로 제시한 설명은 제로 코로나 정책을 강행하면서 막대한 방역 비용을 의료보험 기금에서 충당한 결과 재정 적자를 감당할 수 없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여러 지방정부가 심각한 재정 적자를 겪고 있는 건 널리 알려졌다. 헤이룽장성 등 일부 지역은 행정조직을 축소했고, 윈난성에서는 6개월 넘게 공무원 임금을 체불했다고 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의료보조금 삭감과 마찬가지로 주민 복지혜택이 축소되고 있다거나, 교사 임금의 3분의 1이 삭감됐다는 소식도 들린다. 코로나19를 겪은 몇 년간 도시들에 대한 반복적인 봉쇄가 이뤄지면서 사실상 경제가 마비되고, 그에 따라 세금 수입은 줄어드는 반면 방대하고 반복적으로 이뤄지는 코로나19 검사로 막대한 경제적 지출이 이뤄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날 중국에서 노동자, 학생, 퇴직자 등 대중 속에서 불만이 자라나고 행동으로 표출되는 이유를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이렇게 비교해 보자. 근래 미국의 젊은 층 사이에서 사회에 대한 불만이 성장하고 정치적 급진화로 연결되며 완곡하게나마 사회주의에 대한 우호적 반응이 늘어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역사상 처음으로 젊은 세대의 삶이 자기 부모의 삶보다 더 열악해질 거라는 명백한 사실이 그들의 시야를 휘감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도 기본적으로 비슷한 패턴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몇십 년간 중국이 가파르게 성장하는 동안에는 지방 관리들의 부패 같은 불만 사항이 생기더라도 중국 사회를 뒤흔들 정도의 투쟁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중국공산당의 통치가 어쨌든 우리의 삶을 더 낫게 만들어주고 있다는 대중의 기대감이 더 우월했기 때문이다. 10%를 넘나드는 성장률은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힘들었다. 이런 경제 성장은 정권 안정의 물질적 기반이 됐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 이 추세가 꺾였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의 파도 앞에서도 큰 틀에서는 중국 경제가 선방한 것처럼 보였지만, 2012년에 7%대로 내려앉은 성장률은 2015년에 6%대로 내려왔고, 계속 하락하는 추세를 보였다. 지난해 성장률은 3%에 불과했다. 2021년 청년(16~24) 실업률이 국가 통계국 공식 발표로도 19.3%에 이를 정도로 일자리 문제가 암울하다사회 전반의 고령화와 한국 못지않은 저출생 양상도 심각하다.(1990, 2000, 2010년에 한국의 출생률 추이가 1.6 1.7 1.23인데 비해 중국은 2.87 1.56 1.63으로, 이 기간에는 중국의 출생률 낙하폭이 더 크다. 2012 유엔세계인구전망 참조.)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저출생은 젊은 세대가 느끼는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안의 증표다.

 

중국의 경제위기와 재정 적자

 

이 불안이 어느 정도의 폭발성을 지닐 수 있을 건가와 관련해 가장 큰 관심을 끌어모으는 지점은 정부의 부채 문제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의 파장으로 중국에서도 공장이 문을 닫고 수백만 노동자가 거리로 내몰리는 상황에서, 중국 지배계급은 과잉자본의 배출구를 찾기 위해 인프라 건설에 투자를 집중했다. 철도, 항만, 고속도로 등을 연결하는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도 2013년부터 공식화했다. 중국 내에서는 지방정부를 앞세워 인프라 건설 사업을 부추겼다. 이는 일정 기간 일자리를 창출하고 성장률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됐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가공할 만한 부동산 거품을 일으키고 부채를 누적시키며 위기를 초래하는 중심축이 됐다. 스페인에서 장기불황에 대처하기 위해 부동산개발에 자본을 집중한 뒤 그것이 거품을 일으키고 위기를 초래하면서 2011년 광장 점거 운동으로 나아갔던 것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현재 중국에서 부동산산업의 비중이 전체 GDP25%가량 된다. 2018년에 30%까지 치솟은 뒤 부동산 침체와 더불어 하락한 게 그 정도다.(‘부동산 공화국인 한국의 경우 부동산 및 임대업, 건설업을 합한 비중이 2020년 기준 GDP13%가량 된다.) 그런 상황에서 2021년 중국 2위의 부동산 개발기업 헝다그룹이 364조 원의 부채를 짊어지고 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졌다. 364조 원은 한국 박근혜 정부 시절의 연간 정부 예산 규모와 맞먹는다(340~380조 원). 280개 도시에서 1,300여 개의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8,400여 개의 연관 기업과 380만 개의 연관 일자리의 중심에 있는 헝다그룹이 파산하면 그 파장은 엄청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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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가 중단돼버린 아파트에 들어와 사는 사람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이 헝다그룹만의 모습이 아니라는 점이다. 20228월 기준으로 30개의 부동산 개발업체가 채무 불이행 상태라고 한다. 이 때문에 지난해 대출 상환 거부시위에서 본 것처럼 전국 각지에서 아파트 시공 중단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데, 전체 미완공 아파트 규모가 200만 채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덧붙여 영국의 컨설팅 기업 캐피털이코노믹스는 현재 3,000만 채의 아파트가 미분양 상태이고, 잔금 미지급 등의 이유로 비어있는 아파트가 1억 채에 이른다고 보고했다. 중국 런민대학 원테쥔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은행이) 목숨 걸고 부동산에 투자했다. 사실 부동산은 몇 년 전부터 넘쳐났다. 2018, 2019년 계산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분양주택은 수요의 두 배에 이른다.”(KBS ‘세계는 지금’, 202286)

 

그런데 이런 부동산 거품이 정부의 재정 적자와 어떻게 연관되는가? 중국에서는 지방정부가 토지사용권을 부동산 기업들에 판매하면서 재정을 조달했다. 이렇게 벌어들인 수입이 2021년 기준 지방재정의 40%를 차지했고, 전국 재정수입의 25%에 이르렀다.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으면 곧바로 재정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과정을 지방정부는 지방정부융자기구(LGFV)라는 일종의 자회사,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수행한다. 공식적인 정부 기관이 아니라 별도의 기업이다. 그러다 보니 이 기구에서 쌓이는 부채는 공식적인 정부 부채로 집계되지 않고 숨겨진 부채가 된다.

 

그 규모가 얼마나 될까? 지난해 차이나 쇼크, 한국의 선택을 출간한 한청훤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중국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의 부채는 공식적으로는 51조 위안(9,732조 원), GDP45.8% 수준이어서 양호한 편이다. 하지만 지방정부융자기구의 채무 총액이 2020년 말 기준 약 53조 위안(1113조 원)이어서, 이를 합하면 국가 부채 규모가 GDP100%를 뛰어넘는다. 여기에 더해 중국 국유기업의 부채 규모가 GDP140%인데, 이를 모두 합하면 중국 전체 GDP240%에 이른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 최악의 경제 붕괴를 경험한 그리스에서도 그 시기에 정부 부채 규모는 GDP170~180% 수준이었다.

 

시진핑 정권의 발밑이 불안하다

 

시진핑 정권 입장에서는 이런 불안 요인을 어떻게 연착륙시킬 것인가가 관건일 테다. 상하이방과 공청단 등 권력 기구 내 경쟁 세력을 제압하고 만장일치로 국가주석 3연임에 성공하면서 절대권력을 손에 넣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시진핑 정권은 자신의 장기집권 정당성을 무슨 재주로 입증할 것인가라는 중대한 시험대에 스스로 몸을 던진 셈이다. 정권 안정성을 흔들 수 있는 모든 요인을 제거하거나 적어도 묶어두기 위해 혈안이 될 것이다. 올해 3월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공산당에 금융공작위원회를 20년 만에 부활시켜 금융 영역 전반을 당이 직접 관장하기로 한 것, 내무공작위원회를 신설해 기존 공안부와 국가안전부가 맡은 역할을 당이 직접 관장하기로 한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이런 상황이 의미하는 게 무엇일까? 좁게는 시진핑 정권이, 넓게는 중국 사회 전반이 작은 사건에도 크게 흔들릴 만큼 사회 안정성이 약해져 있다는 것이다. 우루무치에서 발생한 화재 사망 참사가 전국을 뒤흔든 백지 시위의 방아쇠를 당긴 것처럼 말이다.

 

지난해와 올해 초 볼 수 있었던 중국 내의 다양한 시위 흐름은 앞으로도 다양한 계기로 재현될 수 있다. 그런 투쟁이 어디로, 얼마나 전진할 수 있을지 쉽사리 예측할 순 없다. 대규모로 퍼져나간 백지 시위에서 그만큼 더 두드러졌던 것처럼, 저항 운동 자체는 폭발적으로 터져 나올 수 있지만 이 운동을 일관되게 이끌어갈 수 있는 정치 전망과 조직은 아직 준비돼 있지 않은 상태다. 노동자, 학생, 여성 등이 조직을 만들고 연대를 건설하며 투쟁에 나설 수 있는 권리가 심각하게 제약돼 왔기 때문이다. 중국 국가가 근본적으로 인민의 국가라고 믿거나 마오주의를 혁명적 전통으로 여기는 허구적인 이데올로기의 잔재도 여전히 강력해 보인다.

 

시진핑 정권은 관료적, 억압적 국가기구를 강화하면서 아래로부터의 저항에 대한 국가적 통제와 탄압을 더욱 촘촘하게 가할 전망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결코 시진핑 정권의 자신감의 표현이 아니다. 최근의 일련의 시위, 특히 백지 시위를 거치면서 중국 민중은 자신들이 집단으로 행동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며, 이런 투쟁으로 정권을 움찔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지금 중국에서 가장 불안감을 느끼는 집단은 다름 아닌 시진핑 정권이다.

 

이런 상황이 중국에서 급진적 운동이 성장할 가능성을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불안한 처지의 시진핑 정권은 탈출구를 찾기 위해 위험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중국 사회 내에서 갈등이 고조될수록 그 압력을 외부로 배출하려는 시도가 강해질 것이다. 즉 지금껏 부추겨온 애국주의를 한층 더 고조시키며 모험적인 대외정책으로 나아갈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제국주의 세력이 자신의 패권을 지키며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막기 위해 중국 봉쇄정책을 강화할수록 그 위험은 더 커진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조만간 미국과 중국의 전쟁이 발발할 것인가를 따지는 건 이 글의 주제를 벗어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정세를 뒤흔드는 불안정성은 더욱 커져갈 거라는 점이다.

 

그 불안정성을 날려버릴 수 있는 유일한 힘은 각 나라 노동자와 민중의 폭발적인 투쟁과 국제적인 연대에서 자라날 수 있다. 중국 내부에서 터져 나오는 투쟁에 계속 주목하고 지지를 보내는 것이 그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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