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주의 환경운동진영, 노동자 민중에게 기후위기 책임을 묻지 마라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장주의 환경운동진영, 노동자 민중에게 기후위기 책임을 묻지 마라

  • 고근형
  • 등록 2023.03.10 11:03
  • 조회수 685


59540_54376_2253.jpg


에너지 가격인상이 기후정의라고?


'전기·가스요금 인상 철회' 요구가 기후정의운동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환경운동진영 일부는 가정용을 비롯한 에너지 요금 전반을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한국은 탄소배출 4위 기후악당 국가이며, 따라서 에너지 감축은 모든 국민이 함께 분담해야 한다. 즉, ‘에너지 기본권’은 기후위기·탈탄소 시대에는 맞지 않는 개념이며, 모두 에너지 절약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 귀결은 물론 집집마다 겨울철 난방온도를 낮추고 여름철 에어컨을 덜 쓰는 것이다. 대체 우리가 얼마나 안락하게 지내고 있길래? 


시장주의도 끼어든다.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는 가운데 값싼 전기요금은 어불성설이고, 40조원이 넘는 한전과 가스공사 적자와 미수금을 해결하기 위해 요금인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운동진영 일부가 이런 주장에 동조함에 따라 기재부와 민간발전자본은 든든한 동맹군을 얻은 셈이다. 


덕분에 한국 민중은 졸지에 기후악당이 되었다. 정부가 한전 32조 적자, 가스공사 10조 적자를 강조할수록, 에너지 요금인상에 항의하는 목소리는 짓눌린다. 대중교통도 마찬가지다. 정부와 서울시가 서울교통공사 연간 1조원 적자를 강조함에 따라, 65세 이상 노인이 교통비 인상 주범으로 낙인찍힌다. 에너지기본권, 교통기본권이 비난 대상이 되자 국가 책임은 지워져 버렸다.


전기 소비, 자본의 책임을 민중에게 전가하지 마라 


한국 민중은 전기를 많이 쓰는가? 아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전력사용량 통계에 따르면 2020년 한국 전체 전력사용 중 가정용 전력 비중은 13.4%에 불과하다. 미국(39.6%), 영국(37.5%), 캐나다(31.5%), 일본(28.7%), 독일(25.9%) 등 국가의 가정용 전력 소비는 한국의 2~3배 수준이다. 한국 가정용 전력 소비는 1인당 1,367kWh로 OECD 평균 2,258kWh를 한참 밑돌며 38개국 중 26위에 불과하다. 즉, 한국 전력의 대부분은 산업용과 상업용(79.9%)으로 이용된다. 산업용, 상업용, 가정용 전기를 모두 더한 전체 소비를 전 국민으로 나눈 1인당 평균 전력사용량은 10,186kWh로 OECD 38개국 중 7위로 높지만, 대중이 생활에 사용하는 전기 사용량은 매우 낮은 것이다. 


스크린샷 2023-03-10 11.26.30.png

 

즉, 기후악당은 한국 노동자 민중이 아니라 자본이다. 노동자 민중이 전기를 많이 쓴다는 주장은 거짓 선동이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가정용보다 싸고, 대기업은 그에 더해 특혜까지 받는다. 지난 5년간 대기업 평균 전력구매단가는 ㎾h당 94.44원으로, 산업용 전기요금단가 106.65원보다 훨씬 싼 것으로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다. 그 결과 전력 소비 상위 10대 대기업은 5년간 4조 3천억에 달하는 차익을 챙겼다. 지금은 노동자 민중이 대기업 전력사용을 통제하고 누진요금을 강화할 때이지, 가뜩이나 궁핍한 민중의 에너지 요금을 인상할 때가 아니다.


또한, 에너지 위기로 돈을 번 에너지 재벌 책임도 물어야 한다. 특히 지난해 천연가스 가격 폭등 와중에 저렴한 LNG 직수입으로 이윤을 챙긴 SK 등 에너지 재벌이야말로 기후악당이다. 지난해 1~3분기 SK, GS 등 7개 민간발전사의 매출액은 9.3조, 영업이익은 1.5조원을 기록했다. 이들 7개 회사의 발전량이 전체 민간발전량의 1/3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작년 3분기까지 민간발전사 총 이윤은 약 4조 5천억원으로 추정된다. 같은 기간 4대 정유사 역시 매출액 161조, 영업이익만 15조원을 기록했다. 이렇듯 에너지 기업 이윤은 한전 적자와 맞바꾼 것이며, 정부는 전기요금 인상으로 한전 적자를 민중의 생존과 맞바꾸려 한다. 전형적인 위기 전가다.


무조건 적자 해소? 민영화로 가는 길


제국주의 열강의 대립, 전면화하는 보호주의, 장기화하는 전쟁과 일상이 된 기후재난. 자본주의는 위기로 치닫고 있으며 현 에너지 위기도 그 산물이다. 국가책임으로 재생에너지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한다면, 에너지 위기는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으며 심지어 에너지 자본의 약탈이 없더라도 적자는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에너지뿐만 아니라 의료, 교육, 교통 등 모든 공공재가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이 적자는 무조건 해소해야 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에너지가 필수재이기 때문이다. 인간다운 삶에는 적절한 에너지 사용이 필요하며, 국가는 민중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보장해야 한다. 에너지는 상품이 아니라 공공재여야 하며, 이것이 노동자 민중의 통제 아래 국가가 에너지를 공급해야 하는 이유다. 


원가주의에 따른 가격 인상은 에너지 상품화 확대, 즉 에너지를 통한 이윤축적의 자유 확대를 뜻한다. ‘한전과 가스공사도 기업이고, 기업은 이윤을 추구해야 한다’는 압박은 결국 공기업을 민영화하라는 압박으로 이어진다. 실제 가스공사는 난방비 인상뿐 아니라 인력 감축도 예고했다. 원가주의 확대는 공공부문 민영화로 이어지는 길이다. 이는 그 어떤 의미에서도 기후정의가 아니다.


기후정의를 위한 에너지산업 국유화와 에너지 가격통제를 요구한다


민중은 필요한 에너지를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냉난방, 취사, 조명, 전자기기 사용 등 민중의 생활에 필요한 에너지는 무상에 가깝게 공급하되, 자본과 부유층의 에너지 과소비는 징벌적 누진요금으로 통제해야 한다. 또한, 전체 전력사용의 약 80%를 차지하는 산업용과 상업용 에너지, 특히 대기업 전기·가스요금을 높게 책정하고, 나아가 ‘필요에 따른 생산 원칙’을 확대해야 한다. 


민중의 에너지 기본권은 시장 상황과 무관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필수 에너지 가격을 통제해 민중이 추위와 더위에 고통받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 그러자면 에너지 공급을 ‘기업’이 담당해서는 안 되며 발전-송전-공급 전 과정을 국가가 직접 책임져야 한다. 발전 국유화는 필수에너지 가격통제의 필요조건이다.


에너지 자본은 기후위기 대응에 필요한 재생에너지도 상품화하고 있다. 2022년 3분기까지 태양광 모듈을 생산하는 4개 대기업(한화솔루션, 현대에너지솔루션, OCI, 신성에너지)의 매출액은 14.2조, 영업이익은 1.5조를 기록했다(각 기업 분기보고서, 전자공시시스템). 그리고 이들 재생에너지 자본의 이윤을 위한 국가적 지원은 어느 정권에서나 반복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이른바 ‘그린뉴딜’을 통해 전기차·수소차, 재생에너지 자본을 기후위기 해결 주체로 치켜세우고 공적자금으로 이들의 이윤을 보장했다. 2021년 그린뉴딜에 사용된 국비만 17.2조원이다. 왜 자본에게는 아낌없이 지원하면서도 이미 생존을 위해 짜낼 만큼 짜내고 있는 노동자 민중을 더 궁핍하게 만들자 하는가?


전기차 전환이든 재생에너지 전환이든 비용이 필요하며, 그 비용은 자동차, 에너지 생산으로 이윤을 쌓은 이들에게서 물어야 한다. 특히 에너지 위기로 이윤을 쌓은 민간발전사와 재생에너지 상품화로 이윤을 챙긴 에너지기업의 이윤을 환수해야 하고, 이 재원을 공공 재생에너지 확대에 투입해야 한다. 에너지 기본권 보장을 위한 국가책임 재생에너지 공급, 발전산업 국유화가 그 경로여야 한다.


어떤 형태의 재생에너지든 그것이 무공해 에너지원은 아니다. 이윤을 위한 무정부적인 에너지 생산은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며 심지어 재생에너지 비중이 적은 현재는 더 심각하다.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은 노동자 민중의 필요에 따른 에너지 생산의 통제다. 발전산업 국유화가 필요한 이유다. 자본의 이윤을 위한 에너지 생산과 소비체제가 지속되는 한 기후위기 해결은 요원하다. 기후정의를 위한 에너지산업 국유화와 에너지 가격통제를 요구한다.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