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연금개악 반대 총파업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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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프랑스 연금개악 반대 총파업 톺아보기

  • 양준석
  • 등록 2023.02.23 18:54
  • 조회수 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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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AFP=연합뉴스

지난 한 달 남짓, 마크롱 정권의 연금개악 추진에 반대하는 프랑스 노동자들의 총파업 시위 소식이 우리 시선을 끌었다. 무엇보다 100만을 훌쩍 넘어선 거대한 총파업이 며칠이 멀다 하고 몇 차례씩 거듭되고 있기 때문이다. 총파업과 더불어 에너지산업 노동자들의 ‘로빈 후드 작전’ 이야기도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전기요금 폭등으로 허덕이는 가난한 민중들에게 ‘미터기를 조작해’ 전기를 무료로 공급해 주겠다면서, 이것은 “불법이지만 도덕적인 행위”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이번 연금개악의 핵심은 연금수령 개시연령을 62세에서 (2030년까지) 64세로 2년 상향하는 것이다. 연금을 100% 수령하기 위한 기여 기간을 현행 42년에서 (2027년까지) 43년으로 연장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


1980년대 이후 최대 규모의 총파업 시위


프랑스에서는 그동안 여러 차례 연금개악이 진행돼 왔지만, 이번 연금개악은 여러 모로 2010년 연금개악과 비교된다. 이번과 비슷하게 연금수령 개시연령이 60세에서 62세로 상향됐으며, 그에 맞서 1980년대 이후 최대 규모의 총파업 시위가 전개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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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 총파업은 이미 2010년 투쟁을 넘어서고 있다. 2010년에는 (경찰집계 참가자수가 100만을 넘어서는) 대규모 투쟁으로 불붙기까지 연금개악 쟁점화로부터 6개월여가 걸렸던 반면, 이번에는 2023년 1월 10일 연금개악안 발표 이후 불과 9일 만에 열린 첫 총파업 시위부터 대규모 투쟁의 양상을 보였다. 또한 1월 31일 2차 시위 참가자수 127만(경찰집계 기준)은 2010년 최대치였던 10월 12일 123만을 훌쩍 넘어서 버렸다.


오늘날 프랑스 노동자운동을 주도하는 철도·정유·전기·가스·교사 등 공공부문 전반은 이번 투쟁에서도 높은 참여율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침체돼 있는 민간부문에서도 뚜렷한 변화의 조짐이 확인되고 있다. 이를테면 어느 항공산업 하청업체의 경우 과거 총파업들에는 노동자 200명 가운데 5명 정도만 참여했는데, 이번에는 90명 정도가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프랑스의 이번 총파업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양상은 중소도시 노동자들의 대규모 참여다. 1980년대 이후 프랑스에서 진행된 대부분의 총파업들은 파리를 비롯한 대도시를 중심으로 전개됐다. 이와 달리 중소도시들에서는 노동자운동과 좌파 정치가 전반적으로 허약했고 극우세력이 강력한 정치적 기반을 구축해 나갔다. 그런데 이번 총파업에서는 중소도시들에서 전체 주민의 20~30%가 총파업 시위에 나서는 일이 프랑스 전역에서 숱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를테면, 1월 19일 16만이 거주하는 그르노블에서는 3만 5천 명이 시위에 참여했고, 2월 16일 3천 명이 거주하는 무띠에에서는 1천 명이 시위에 참여했다. (물론 220만 인구를 가진 파리에서 40~50만 명이 꾸준히 참가하는 등 이번에도 총파업을 주도하는 것은 대도시다.) 한편 르펜이 이끄는 극우파는 압도적인 여론 때문에 형식적으로 반대는 하고 있지만, 파업과 시위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번 투쟁은 중소도시의 노동자계급이 극우파와 관계를 단절하고 노동자운동의 한 부분으로 새롭게 정립하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과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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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6일 프랑스 남동부의 소도시 무띠에에서 벌어진 총파업 시위



총파업에 거대한 동력이 붙은 이유


현지 여론조사 결과는 전체 프랑스인들 가운데 60~65% 정도가 연금개악에 반대함을 드러낸다. 노동자들만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는 반대율이 90%까지 나온다. 그렇다면 이처럼 거대한 동력이 이번 총파업에 붙은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연금을 받기까지 “2년 더 일해야 한다”는 사실에 모두가 분노하고 있다. 노령연금은 프랑스에서 사회복지의 근간으로 간주된다. 흔히 프랑스 노동자들은 ‘5주간의 여름휴가’를 바라보며 1년을 일하고, ‘노령연금으로 뒷받침되는 안락한 노후’를 바라보며 평생을 일한다는 말이 있다. 모두 프랑스 노동자들이 숱한 혁명과 계급투쟁으로 쟁취한 성과들이다. (연금이 너무 허술해서 ‘정년연장’을 요구하는 한국 노동자들의 현실이 참 씁쓸하다.)


연금개악에 대한 노동자들의 분노가 아래로부터 뜨겁게 밀려 올라오자 전국단위 8개 노총 모두가 2010년 투쟁 이후 처음으로 총파업 공동행보에 나섰다. 그동안 여러 차례 친정부 입장을 취해 왔던 민주노동연맹(CFDT)조차 “지난 30년 동안 최악의 연금개악”이라는 일성과 함께 ‘노총연대’에 동참했다.


2020~21년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사회를 움직이는 필수요소로서 노동의 의미가 재평가되고 그에 따라 노동자들의 자부심이 전반적으로 상승한 점, 2022년 인플레이션에 맞서 광범한 임금투쟁이 펼쳐지면서 수많은 젊은 노동자가 생애 첫 파업을 경험한 점도 중요한 배경으로 꼽힌다.


‘이대로 가면 연금에 큰 적자가 난다’는 것이 연금개악을 추진하는 마크롱 정권의 명분이지만, 팬데믹 기간 자본가들의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재정을 쏟아부어 놓고서 연금적자는 노동자들에게 다 전가하려 하는 정부의 이중성도 분노에 불을 지폈다.


연금개악에 대한 분노가 물가상승에 따른 실질임금 저하, 에너지 부족, 공공서비스 불만족 같은 프랑스 노동자들이 느끼는 온갖 사회적 고통이나 불만들과 버무려진 것도 큰 요인이다. 그래서 실제 총파업 시위에서는 연금개악 문제를 넘어서서 훨씬 광범한 분노들이 표출된다.


연금수령 개시연령 상향으로 특히 더 큰 타격을 입게 될 블루칼라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더욱 거대한 분노가 표출되고 있다. 제조업·택배·청소·의료 등 고된 육체노동을 하는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기존에도 기대수명이 더 짧았고 그래서 연금수령 기간도 더 짧았던 터인데, 이제 2년을 더 일하라 하니 “죽을 때까지 일하라는 얘기냐”며 거친 분노를 쏟아내는 것이다. 야간 노동, 중량물 운반, 독극물 노출 등 고강도 착취에 대한 강력한 분노도 역시 표출되고 있다.


시위에는 연금을 이미 수령중인 은퇴자들과 더불어 나이 어린 대학생과 고등학생들도 대규모로 참여하고 있다.


연금개악 법안의 처리 전망


2010년에 연금개악을 밀어붙였던 사르코지 정권과 달리 지금 마크롱 정권은 (제1세력이긴 하지만) 의회 과반수를 갖고 있지 못하다. 제2세력인 좌파 ‘생태사회신인민연합’(NUPES)과 제3세력인 극우파 ‘국민결집’(RN)은 연금개악에 반대한다. 제4세력인 우파 ‘공화주의자’(LR)는 연금개악에 긍정적인데, 만일 이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면 제1세력인 마크롱 정권의 ‘함께’(Ensemble)와 합쳐 과반수를 점할 수 있다. 하지만 ‘공화주의자’는 연금개악 표결에 찬성했을 때 감당해야 할 정치적 부담 때문에 매우 신중한 입장이다.


마크롱 정권이 ‘공화주의자’를 설득하지 못한다고 해서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제5공화국 헌법이 정부에게 비상입법권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 제49조 3항에 따르면 정부는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그로부터 24시간 이내에 불신임 당하지 않으면) 의회 표결을 생략한 채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종종 이 방법이 사용돼 왔다. 이를테면 2016년 사회당 정권이 노동법 개악안을 강행할 때 이 방법이 사용됐다. 하지만 이후 사회당의 지지기반이 충격적으로 붕괴한 것처럼, 위험부담이 많은 방법이기도 하다.


마크롱은 어떤 식으로든 이번만큼은 반드시 연금개악을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공공연히 표명하고 있다. 지난 2019년 첫 번째 임기 때 연금개악을 일차 추진했으나 강력한 총파업으로 고전하다가 코로나를 핑계로 물러선 적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재선에 성공할 때도, 연금개악은 마크롱의 주요 선거공약 가운데 하나였다. ‘앞선 정권들이 노조의 반대 때문에 연금을 제대로 손보지 못하면서 프랑스가 경제적으로 뒤처지게 됐다’는 것이 마크롱이 줄기차게 떠들어온 논지다. 마크롱은 그래서 이번에는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고, 실제로 이번에도 물러섰다가는 조기 레임덕에 빠질 수 있다.


하원에서 2월 6일부터 18일까지 토론을 벌인 데 이어, 3월 2일부터는 상원 토론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다. 3월 하순경이면 표결 절차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데, ‘공화주의자’의 태도에 따라 비상입법권의 발동 여부가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승리를 향한 전망과 과제


프랑스의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 <연속혁명>의 후안 칭고는 “1980년대 이후 프랑스에서 전개된 어떤 운동도 이렇게 강력하게 출발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쉽사리 승리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2010년 연금개악 반대 투쟁 때도 열두 번의 강력한 총파업 시위를 펼쳤지만, 의회에서 개악안이 통과됐을 때 이를 극복할 방법을 찾지 못했고 결국 패배했다.


지금 전개되는 운동의 약점과 한계도 분명하다. 전국단위 8개 노총 모두의 연대가 실현되면서 대규모 시위가 가능해지긴 했지만, 그 대신 언제라도 정부와 타협하며 뛰쳐나갈 수 있는 민주노동연맹(CFDT)이 노총연대 속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모순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CFDT의 깃발과 조끼는 거리 시위대 속에서도 3분의 1 가까운 규모를 차지하는데, 공공연히 계급협조주의를 표방하는 CFDT는 이번 투쟁에서도 의회 협상에 압력을 가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노총연대가 주도하는 총파업 시위들은 대규모이긴 하되 과격하지는 않게 노동자들의 불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지금 상황은 마크롱 정권의 첫 번째 임기 때 펼쳐졌던 상황들과 대비된다. 프랑스 노동자들은 2016년 사회당 정권의 노동법 개악에 맞선 투쟁 이후 마크롱 정권의 첫 번째 임기를 관통하며 상당히 격렬한 계급투쟁을 전개했다. 2017~18년 철도노조 파업, 2018~19년 노란조끼 운동, 2019~20년 공공부문 중심의 연금개악 반대 파업 등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는데, 이 투쟁들은 이번 투쟁보다 규모는 더 작았지만 훨씬 격렬하고 급진적인 양상을 보였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노조관료들의 통제를 상당 수준 극복하면서 아래로부터 주도성과 역동성을 발전시키는 과정이기도 했다.


결국 이번 투쟁의 전망은 노총연대가 주도하는 하루짜리 총파업 시위를 넘어서서 아래로부터 강력한 역동성을 바탕으로 최대한 많은 노동자들이 무기한 총파업으로 전진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의회 내 협상이 어떻게 전개되는가에 상관없이, 또한 비상입법권이 발동되는가에 상관없이, 오로지 생산과 사회를 마비시키는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투쟁을 강력하게 조직할 때만 ‘연금개악 완전 철회’라는 노동자들의 의지를 관철시킬 길이 열릴 것이다.


이와 관련해 2019년 투쟁의 경험은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2019년 공공부문 중심의 연금개악 반대 파업이 펼쳐졌을 때 파리교통공단(RATP) 노동자들은 노조관료들의 소극성을 뛰어넘어 아래로부터 강력하게 무기한 총파업을 요구하고 스스로 조직해 나갔다. 이 흐름은 국영철도로도 확산됐고 50년 만에 최장기 파업 기록을 세우며 두 달 가까이 이어진 끝에, 결국 마크롱 정권이 뒤로 물러서도록 강제할 수 있었다.


이번 투쟁이 갖고 있는 거대한 규모는 무기한 총파업 운동이 2019년보다 훨씬 멀리 뻗어나갈 가능성 또한 보여준다. 2019년의 무기한 총파업 운동은 격렬하긴 했지만 운수부문에 한정됐다. 다른 조직노동자들은 일부가 며칠짜리 파업 정도에 머물렀고, 대다수 미조직 불안정노동자들에게는 전혀 다가가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투쟁에서는 훨씬 다양한 노동자들이 거대한 규모로 동참하고 있기 때문에 훨씬 큰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이와 관련, <연속혁명>의 후안 칭고는 1995년 연금개악 반대파업 때의 (개악안을 철회시켜 냈던) 성공적인 경험을 잘 살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당시 총파업에서 파업에 나선 조합원들은 지인들의 작업장을 직접 찾아가 총파업에 동참하도록 설득하는 전술로 파업을 확산시켜 나갔다. 이 전술은 무작위 대중에게 리플렛을 배포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고 하는데, 특히 5인 이상이 집단적으로 방문했을 때 종종 직접적인 결과를 끌어낼 정도로 더욱 효과적이었다고 한다. 또한 사업장마다 현장 노동자들이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는 총회를 기반으로 작동하면서 파업에 활력이 넘쳤다고 한다.


점점 더 많은 노동자들이 더 강력한 행동을 요구하는 상황에 떠밀리면서, 노총연대 지도부는 ‘정부와 의회가 응답하지 않는다면 3월 7일에는 프랑스 전체를 마비시키겠다’고 2월 11일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무기한 총파업이 아니라 하루 총파업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반면 2월 7일 노동총동맹(CGT)에 속한 전기·정유·철도·항만 노동자들은 노총연대가 주도하는 하루 총파업 시위를 넘어서서 (무기한 총파업을 준비하는 성격으로) 48시간 파업을 전개했다. 파리교통공단의 노조합동위원회와 CGT 철도지부는 3월 7일부터 무기한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정유 노동자들도 비슷한 계획을 논의 중이다. 이처럼 아래로부터 주도성을 갖고 무기한 총파업을 역동적으로 건설해 나갈 때 이번 투쟁을 승리로 이끌 길이 열릴 것이다. 나아가 노동자계급의 모든 부문 속으로 다가가며 무기한 총파업을 널리 확산시킬 때 단지 연금개악 철회를 넘어서서 다양한 공세적 요구를 관철시킬 길이 열릴 것이다.

 

이와 관련해 <연속혁명>을 비롯한 프랑스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60세부터 (중노동 부문은 55세부터) 모든 노동자들에게 풍족한 연금 지급 △물가인상에 맞선 대규모 임금인상과 물가임금연동제 실시 △열악한 노동조건을 해결하기 위한 노동자의 생산통제 △불안정노동 철폐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 △교육·의료·주거 환경 개선 △반이민법 폐지 등의 요구를 이번 투쟁 속에서 함께 해결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만일 이번 투쟁에서 프랑스 노동자들이 마크롱을 패퇴시킬 수 있다면, 세계 곳곳 노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록적 인플레이션으로 다시 한 번 ‘위기와 전쟁의 시대’가 시작된 상황에서, 세계 노동자계급 또한 ‘혁명의 시대’를 향해 힘차게 전진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노동자계급의 역사적인 투쟁을 기대하며 우리 모두 응원의 마음을 함께 보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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