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다시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 자본주의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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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다시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 자본주의 2부

[2부]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시대들이 구분되게 하는 요인

  • 양준석
  • 등록 2023.01.05 09:44
  • 조회수 298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록적 인플레이션은 마침내 세계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를 뒤로 하고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게 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는 다시 한번 전 세계가 위기와 전쟁으로 뒤덮이는 시대, 그래서 혁명으로 뒤덮여야 할 시대다.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동안 세계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는 어떤 시대들이 있었는가? 자본주의 아래서 그와 같이 시대들이 구분되게 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지난 40여 년 세계 자본주의를 지배한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 시대는 어떻게 등장했고 어떤 내재적 모순이 작동한 결과 막을 내리고 있는가? 세계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시대의 위치와 함의는 무엇인가? ‘다시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 자본주의’라는 제목 아래 다섯 번에 걸쳐 진행될 이번 연재는 그런 질문들에 답해 보기 위한 하나의 시도다.


[1부]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록적 인플레이션이 열어젖힌 새로운 시대

[2부]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시대들이 구분되게 하는 요인

[3부] 앞선 네 번의 시대

[4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 (1980~최근)

[5부] 위기와 전쟁의 시대를 혁명의 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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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시대들이 구분되게 하는 요인


자본주의는 그 출발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노동자계급에 대한 끝없는 착취에 기반해 왔다. 또한 노동자계급을 분열시키고 착취체제를 지탱하기 위해 여성과 성 소수자,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 이주민과 장애인 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을 지속해 왔다. 나아가 자본의 맹목적인 확대재생산만을 절대시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나 도시와 농촌의 조화 같은 인간 생존의 필수적인 환경들을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파괴해 왔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늘 같은 모습을 띄었던 것은 아니다. 한 인간이 한평생을 거치며 소년기·청년기·장년기·노년기의 모습을 거쳐 가는 것처럼, 자본주의 또한 그동안 자본 간의 관계, 자본과 국가 간의 관계,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 착취와 수탈의 결합방식, 그리고 계급투쟁의 양상에서 상당히 뚜렷하게 구별되는 특징을 가진 시대들을 거쳐 왔다.

 

그동안 자본주의는 크게 다섯 개의 시대들을 거쳐 온 것으로 대별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1776년부터 1871년까지 ‘자유경쟁과 부르주아혁명의 시대’다. 두 번째는 1871년부터 1914년까지 ‘독점과 제국주의 전면화의 시대’다. 세 번째는 1914년부터 1945년까지 ‘세계전쟁과 대공황과 노동자혁명의 시대’다. 네 번째는 1945년부터 1980년까지 ‘전후호황과 개량주의의 시대’다. 다섯 번째는 1980년부터 최근까지 이어진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다.

 

이윤율 저하 경향의 장기적 관철


자본주의 생산의 목적은 인류의 더 나은 삶이나 행복 또는 사회적 필요가 아니다. 자본의 자기증식, 다시 말해 이윤을 덧붙여 자본을 끊임없이 불려 나가는 것 자체가 자본주의 생산의 진정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자본의 맹목적인 확대재생산’에 복무하려는 자본가들의 탐욕과 열망이야말로 자본주의에 끊임없이 생기를 불어넣는 원동력이다.

 

‘자본의 맹목적인 확대재생산’에 복무하기 위해, 자본가들은 끝없는 경쟁에서 살아남고 승리해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기술혁신을 통해 특별이윤을 선취하는 것이다. 그런데 경쟁에서 뒤처진 자본가들에게 필사적으로 요구되는 것 또한 선발자의 기술혁신을 따라잡는 것이다. 그러므로 특정 자본가의 기술혁신은 오래지 않아 전체 자본가계급의 기술혁신으로 일반화하고, 특정 자본가의 특별이윤이 전체 자본가계급의 상대적 이윤으로 일반화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기술혁신의 지속적인 전개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 다시 말해 자본가의 임금(가변자본) 투자액 대비 생산수단(불변자본) 투자액의 비중을 점점 높인다. 나아가 자본의 평균이윤율이 점점 하락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자본의 이윤이란 결국 노동자가 수행하는 살아있는 노동에서 잉여가치를 착취하는 것인데, 기술혁신이 지속될수록 살아있는 노동 대비 생산수단에 투자된 비중이 점점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윤율 저하 경향을 마르크스는 <자본론> 제3권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본질로부터 파생되는 하나의 자명한 필연성”이라고 표현했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불변자본에 비해 가변자본을 점점 더 감소시킴과 함께 총자본의 유기적 구성을 점점 더 고도화시키는데, 이것의 직접적인 결과로 [잉여가치율(노동착취도)이 불변이거나 심하게는 증대하는 경우에도] 일반적 이윤율은 계속 하락한다. (이 하락이 왜 이와 같은 절대적인 형태로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점진적인 하락의 경향으로 나타나는가에 대해서는 뒤에서 설명할 것이다.) 따라서 일반적 이윤율의 점진적인 저하 경향은 사회적 노동생산성의 점진적인 발달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특유하게 표현되는 방식에 불과하다. 물론 이윤율이 기타의 이유 때문에 일시적으로 저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발달함에 따라 일반적인 평균잉여가치율이 일반적 이윤율의 하락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 것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본질로부터 파생되는 하나의 자명한 필연성이라는 점이다.” (마르크스, <자본론> 제3권, 제3편 이윤율 저하경향의 법칙, 제13장 법칙 그 자체)


그런데 이윤율 저하 경향은 말 그대로 ‘경향적으로’ 관철된다. 상쇄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그 상쇄요인으로 ‘노동착취도(잉여가치율)의 증대, 노동력의 가치 이하로 임금 저하, 불변자본 요소들의 저렴화, 상대적 과잉인구, 대외무역, 주식자본의 증가’(제14장)를 든다. 상쇄요인의 원리는 간단하다. 이윤율 공식{잉여가치/(생산수단+임금)}에서 분모는 줄이고 분자는 늘리는 것이다. 또한 마르크스가 지적하는 상쇄요인의 대부분은 자본가들이 이윤을 늘리기 위해 (또는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그렇다면 실제 자본주의 역사에서 이윤율 저하 경향은 어떻게 실현됐을까? 2014년 아르헨티나의 에스떼반 에쎄끼엘 마이또는 이와 관련해 의미 있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1869년부터 2010년까지 미국, 영국, 독일, 일본, 스웨덴, 네덜란드 여섯 개 핵심 국가의 이윤율 평균치를 실제로 계산한 것이다. 그 결과를 보면, 1870년 무렵 40%대에서 출발했던 이윤율은 경향적으로 하락을 거듭한 결과 2010년 무렵 10% 근처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짧은 기간을 놓고 보자면 등락을 거듭했지만, 긴 시간을 놓고 보자면 이윤율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 마르크스가 예견한 그대로 이윤율 저하는 ‘경향적으로’ 관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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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역사를 통해 이윤율이 큰 폭으로 하락해 왔다는 것은 자본주의가 결코 영원불멸의 체제가 아니라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탄생-성장-만개-노화-소멸의 과정을 겪고 있음을 말해준다. 바로 이 점이 자본주의 안에서 서로 구분되는 시대들이 나타나게 만드는 첫 번째 요인이다.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려는 필사적인 분투


자본주의적 생산은 ‘더 많은 이윤 확보’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데, 개별 자본가들이 이윤을 늘리려고 기술혁신을 전개할수록 사회 전체적으로는 평균이윤율의 저하 압력을 더 강하게 받는다. 이러한 모순적 상황은 자본가들로 하여금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기 위해 끝없는 분투에 나설 수밖에 없도록 강제한다.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려는 자본가들의 필사적인 분투는 자본주의가 전개되는 양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왔다.

 

첫째,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려는 자본가들의 노력은 여러 측면에서 생산의 과잉을 심화시킴으로써, 이윤율 저하 그 자체와 함께 공황을 유발하는 주요한 원인이 돼 왔다. 이를테면 잉여가치율을 높이려는 시도는 기술혁신에 더욱 매달리게 함으로써 과잉축적을 불러온다. 노동력의 가치 이하로 임금을 저하시키려는 시도는 사회적으로 노동자들의 소비 능력을 저하시킴으로써 과잉생산을 불러온다. 이윤율의 급격한 저하 또는 생산의 과잉은 가장 취약한 자본들부터 연쇄적인 파산으로 내몰면서 공황을 불러온다.

 

둘째,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려는 자본가들의 노력은 공황을 거칠 때마다 독점이 빠르게 심화하도록 만드는 주요한 원인이 돼 왔다. 공황 때 파산한 기업들의 생산수단을 저렴하게 인수하는 것은 전체 생산수단(불변자본) 투자액의 비중을 낮춤으로써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실제로 독점체들이 형성되는 역사적 과정을 보면, 자기 자본을 확장하는 ‘집적’보다 다른 자본을 흡수하는 ‘집중’이 훨씬 더 큰 역할을 수행해 왔다.

 

셋째, 자본주의 국가는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기 위해 특정 시기마다 특정 방향의 정책을 집중적으로 추진해 왔다. 이 점은 1870년대 독점자본주의 등장 이후 거대하게 성장한 독점체들이 국가기구를 직접 좌지우지할 정도로 영향력이 커지면서 뚜렷한 추세가 되었다. (반면 자유경쟁 시대에는 자본주의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지 않은 채 체제수호 역할만을 수행했다.)

 

그런데 자본주의 국가가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기 위해 추진하는 핵심 정책은 일정한 시기마다 달라져 왔다. 이를테면 1871~1914년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기 위한 자본주의 국가의 핵심 정책은 ‘식민지로의 자본수출’이었고, 1914~1945년 핵심 정책은 ‘전쟁’이었다. 1945~1980년 핵심 정책은 ‘유효수요 확장’이었으며, 1980년부터 최근까지 핵심 정책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였다. 일정한 시기마다 핵심 정책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누적된 모순 때문에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역효과가 극심해졌기 때문이다.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기 위해 자본가들이 필사적인 분투에 나선다는 점, 특히 국가를 동원해 특정 정책을 추진하는데 그 핵심 정책이 일정한 시기마다 바뀔 수밖에 없다는 점은 자본주의 안에서 서로 구분되는 시대가 나타나게 만드는 두 번째 요인이다.

 

자본주의 위기의 심화 정도


마르크스가 1867년 <자본론> 제1권을 쓸 때까지 목격할 수 있었던 공황은 ‘거의 10년 주기의 전면적 공황’이었다. 그런데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려는 자본가들의 필사적인 분투는 공황의 전개 양상을 바꾸었다. 1870년대 독점자본주의 등장과 함께, 주기적인 전면적 공황 대신 만성적인 장기불황이 들어섰다. 독점자본은 규모와 시장지배력 때문에 쉽사리 파산하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데다가,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기 위해 국가를 대대적으로 동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를 엥겔스는 이렇게 포착했다.


“1825년부터 1867년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 정체-번영-과잉생산-공황이라는 10년 주기의 순환은 확실히 그 진행을 마쳐 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오로지 우리들을 영속적이고 만성적인 불황이라는 절망의 수렁으로 빠뜨리기 위해서일 뿐이다.” (엥겔스가 1886년 <자본론> 제1권 영어판을 발간하며 붙인 서문)


“종전의 10년 주기의 급격한 형태의 순환은, 상대적으로 짧고 약한 경기회복과 상대적으로 길고 격렬하지 않은 불황이 교체되는 형태로 전환한 것 같다. 이는 더 만성적이고 장기적인 성격을 가지며, 각각의 공업국에서 서로 다른 시기에 펼쳐진다. … 지금 우리는 들어보지도 못한 정도로 격렬한 새로운 세계공황의 준비기에 있는가? 많은 점에서 그런 것 같다. … 유럽의 과잉자본을 위한 무제한의 각종 투자영역이 세계 각지에 열려 있으며, 이리하여 그 과잉자본은 더 광범히 분산되며, 국지적인 과잉투기는 더 쉽게 극복된다. 이러한 모든 것들에 의해 공황 발생의 종전의 온상이나 계기가 대부분 제거되었거나 매우 약화되었다. 이와 함께 국내시장의 경쟁은 카르텔과 트러스트의 출현에 의해 후퇴하고 있으며, 해외시장의 경쟁은 보호관세[영국 이외의 모든 주요 공업국들은 보호관세 장벽을 치고 있다]에 의해 제한되고 있다. 그러나 이 보호관세 자체는 세계시장의 지배권을 결정할 최후의 전면적 산업전쟁을 위한 무기일 따름이다. 이와 같이 종래의 공황의 재현을 상쇄하는 요인들 각각은 훨씬 더 격렬한 장래의 공황의 싹을 내포하고 있다.” (엥겔스가 1894년 <자본론> 제3권을 발간하며 제5편 제30장에 붙인 주석)


엥겔스가 예견한 것처럼, 만성불황은 공황의 종말을 뜻하지 않았다. 만성불황은 (과거의 전면적 공황이 주기적으로 모순을 해소해 냈던 것과 달리) 충분히 해소되지 않은 모순을 고스란히 축적하는 과정이었고, 그럼으로써 “훨씬 더 격렬한 장래의 공황”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었다. 실제로 1870년대 초부터 1890년대 말까지 30년 가까이 지속됐던 만성불황은 1900~1903년 세계적인 공황을 향해 모순을 축적하는 과정이었다.

 

만성불황이 지배하는 시기는, 다시 말해 전면적 공황이 외견상 사라진 시기는,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기 위한 자본주의 국가의 정책이 일정 기간 효과를 발휘하는 시기였다. 하지만 그 정책은 그 자체의 모순으로 인해 일정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또는 역효과가 극심해지는) 지점에 봉착했고 결국에는 누적된 모순이 더욱 격렬한 형태의 공황으로 폭발했던 것이다.

 

그런데 모순의 누적은 단지 경제적인 측면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사회적·정치적·국제적 측면에서도 모순은 누적되었으며, 그러한 영역에서 모순의 폭발 또한 기존의 축적체제 또는 자본주의 자체에 존폐가 걸린 위기를 불러왔다. 이를테면 1871~1914 시기에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는 핵심 수단이었던 ‘식민지로의 자본수출’은 식민지 재분할을 둘러싼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갈등을 고조시킨 끝에 마침내 1914~1918 제1차 세계대전을 불러 왔다. 그리고 그 시기에 누적된 경제적 모순은 끝내 1929~1939 세계대공황으로 폭발했으며, 대공황이 불러일으킨 사회적·정치적·국제적 모순은 다시 1939~1945 제2차 세계대전으로 폭발했다.

 

이는 자본주의가 전개되면서, 처음에는 활력을 갖고 성장하는 시기가 펼쳐지다가, 이어서 외견상 평화와 안정을 누리지만 모순이 누적되는 시기가 펼쳐진 뒤, 어느 시점에 이르면 누적된 모순이 폭발하면서 모든 것이 전면적으로 요동치고 충돌하여 체제 자체가 사활적 위기에 빠지는 시기로 나아간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위기의 심화 정도는 자본주의 안에서 시대가 구분되게 하는 또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착취와 수탈의 결합방식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착취(exploitation)는 자본주의 생산과정 안에서 노동자가 생산한 잉여가치를 가로채는 것을 뜻한다. 반면 수탈(expropriation)은 잉여가치 생산과정 바깥에서 누군가의 소유물을 빼앗거나 훔치는 것을 뜻한다.

 

자본주의 생산과정의 중심은 사회적 생산을 조직하고 그 과정에서 잉여가치를 착취하는 데 있다. 거대하게 발전한 사회적 생산은 그 규모만큼 거대한 잉여가치를 만들어 낸다. 따라서 자본가들이 거두는 이윤의 중심은 착취를 기초로 한다. 하지만 이윤율 저하 경향은 자본가들로 하여금 이를 상쇄하기 위해 수탈에 기초한 추가수익 또한 끊임없이 갈구하게 만든다.

실제로 자본주의 역사에서 착취와 수탈은 그 출발부터 지금까지 늘 결합돼 왔다. 18~19세기 유럽과 북미에서 산업혁명에 투입된 자본은 기본적으로 16~18세기 식민지와 노예노동에 대한 어마어마한 강탈을 통해 조성됐다. 노동력의 가치 이하로 임금을 지급해도 되는 저렴한 노동력을 풍부하게 확보하기 위해, 자본가들은 흑인과 여성에 대한 차별, 식민지·종속국에 대한 제국주의적 억압을 지속적으로 활용해 왔다.

 

그런데 착취와 수탈이 결합되는 비중은 변화를 거듭해 왔다. 자본가들이 원활하게 이윤을 획득할 수 있을 때에는 상대적으로 잉여가치 착취에 집중했다. 그러나 이윤율 저하로 고통당할 때에는, 줄어든 이윤을 보충하기 위해 (또는 추가적인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잉여가치 생산과정 바깥에서 수탈을 병행했다. 수탈의 집중점도 변화해 왔다. 이를테면, 20세기 전반까지는 식민지에 대한 총체적 약탈이 중심에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금융수탈이 중심에 있다.

 

그런데 수탈에는 ‘파멸로 나아가는’ 속성이 있다.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자의 노동 없이는 착취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착취에는 ‘노동력의 재생산’이라는 한계선이 있다. 그러나 수탈에는 그런 한계선이 원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수탈은 자주 피수탈자를 파멸로 내몬다. 피수탈자가 파멸하면, 더 이상 수탈을 할 수 없게 된 수탈자도 몰락한다.

 

실제로 그동안 수탈이 가진 파멸적 속성은 경제적 측면을 넘어서서 사회적·정치적·국제적 측면에서 매우 큰 후과를 낳았다. 수세기에 걸친 식민지 약탈은 끝내 제국주의 세계전쟁과 지구를 뒤덮은 민족해방운동이라는 후과를 낳으며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중대한 위기에 빠뜨렸다. 거대한 부동산 거품을 활용한 금융수탈은 미국에서 수많은 주택담보대출자들을 파산시킨 뒤 그 후과로 금융기관들을 연쇄 파산시키며 세계경제를 붕괴 직전까지 몰고 간 2008년 금융위기를 불러왔다.

 

자본가들이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기 위해 얼마나 강하게 또 주로 어떤 방법으로 수탈을 병행하는지, 그래서 그 후과를 어떻게 치르는지는 시대에 따라 달라져 왔다. 그래서 이 점이 자본주의 아래서 시대가 구분되게 하는 또 하나의 요인으로 작동한다.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역량의 성숙 정도


자본가계급의 착취와 억압에 저항하고 나아가 자본주의 자체를 철폐하고자 하는 노동자계급의 운동은 역설적으로 자본주의 자체의 산물이다. 특정 시기 자본주의 위기의 심화 정도, 착취와 수탈의 결합방식, 누적된 모순의 성격 등 자본주의의 전개 양상은 노동자운동의 전개 양상을 큰 틀에서 규정한다. 그러나 노동자운동은 자본주의의 단순한 반영물이 아니다.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계급의식, 그리고 특히 혁명적 역량이 얼마나 성숙해 있는가는, 국가가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정책의 범위와 강도에 영향을 미친다. 더욱 중요하게는 마침내 모순이 폭발하게 된 자본주의가 노동자·민중을 혹독하게 희생시켜 자신의 모순을 상당 정도 털어냄으로써 청춘의 몸으로 소생하여 또 다른 시대를 열어낼 수 있느냐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지금껏 살펴본 것처럼, 이윤율 저하 경향의 장기적 관철에 따라 시간이 지날수록 자본주의 체제에는 모순이 누적된다. 이에 맞서 국가가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기 위한 정책들을 추진한다. 그 정책들은 일정 기간 효과를 내지만, 내재하는 모순들 때문에 더 이상 작동하지 않거나 역효과가 극심해져 지속할 수 없게 된다. 누적된 모순은 마침내 전쟁과 대공황으로 폭발한다.

 

위기와 전쟁의 시대는 혁명의 시대를 낳는다. 전쟁과 대공황의 참혹한 파국은 노동자혁명을 향한 절박한 필요와 가능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자혁명이 저절로 실현되지는 않는다.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역량을 건설해 낼 때만, 이미 역사적 소명을 다한 자본주의가 끔찍한 야만을 통해 노동자계급과 인류를 희생시키면서 그 피를 머금고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는 걸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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