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자본주의가 만든 추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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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이것은 자본주의가 만든 추위다

혹한과 함께 찾아온 에너지 위기, 에너지산업 국유화로 맞서자

  • 고근형
  • 등록 2022.12.29 16:30
  • 조회수 610


1000-2.jpg사진: AP

 

이 추위의 이름은 기후위기이고, 자본주의이다. 


“어릴 때 알던 눈 내리는 날이 아니다.” 지난 크리스마스 전후 미국을 강타한 폭설과 혹한을 두고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 말이다. 미국 최저기온이 영하 50도를 기록하고 확인된 사망자만 최소 50명이다. 같은 시기, 한국에서도 영하 15도 안팎의 강추위와 함께 서해안에 60cm 수준의 폭설이 찾아왔다. 게다가 이번 추위는 벌써 수 주일째 계속되고 있다. 삼한사온이 웬 말인가. 이것은 예사 추위가 아니다. 마치 지난여름 폭우가 예사 장마가 아니었던 것처럼 말이다.


원인을 따져보자. 우선 서태평양 수온이 높아지는 라니냐가 3년째 계속되고 있다. 통상 라니냐가 발생하는 해 북반구의 겨울은 평년보다 추워진다. 이번 겨울 에너지 위기가 혹독하리라 전망했던 이유다. 그런데 엘니뇨와 라니냐 자체는 1만 년 넘게 반복되는 수온의 진동이라, 그 자체로 기후위기의 징후는 아니다. 따라서 라니냐만으로는 이 정도의 혹한과 강설을 설명할 수 없다.


진짜 문제는 북극의 이상고온이다. 극지방과 중위도 사이 상공에는 제트기류라는 강한 편서풍이 흐르면서 북극의 찬 공기를 가두어 놓는다. 그런데 북극 기온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강한 고기압이 형성되고 반대로 제트기류가 약해지면서 북극 공기가 제트기류를 남쪽으로 밀어내는 구간이 생긴다. 따라서 제트기류의 흐름은 구불구불한 형상을 하게 되는데, 크리스마스 전후에는 북미와 유럽 일부, 동아시아 지역에서 제트기류가 남쪽으로 내려왔다. 즉, 북극의 찬 공기가 미국과 한국에 직격으로 유입된 셈이다.


하필이면 이럴 때 북부 대서양과 한국 서해안은 따뜻하고 습한 상태였다. 북극의 찬 공기와 바다 위의 고온다습한 공기가 만나면서 눈 폭탄이 만들어졌다. 이른바 ‘폭탄 사이클론(bomb cyclone)’이 미국 동부를 휩쓸었는데 폭설과 혹한, 강풍을 동반한 겨울 태풍인 셈이다. 크리스마스 전 충청과 호남, 제주를 강타한 폭설도 마찬가지다. 북서쪽에서 내려온 공기가 서해안의 따뜻한 공기를 만나면서 수도권에는 혹한, 충청과 호남, 제주에는 폭설이 계속되었다. 겨울에 북극과 바다가 더워지면서 만들어진 눈과 추위. 이 추위의 이름은 기후위기이고, 자본주의이다. 


‘난방 빈곤’ 확대, 에너지 자본은 추위로 이윤을 쌓는다


기후위기가 혹한의 겨울을 만들었고, 혹한의 겨울은 에너지 위기를 심화하고 있다. 가뜩이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공급난에 시달리던 와중이다. 비교적 상황이 나았던 미국 기온이 영하 20~30도를 밑돌면서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이 얼고 가스 설비가 중단됐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23일 미국 천연가스 생산은 하루 만에 10%가 감소했는데, 10년 만에 최고의 감소 폭이다. 


반면 혹한으로 난방 수요가 급등하면서 값비싼 원유까지 끌어다 쓰는 사태가 빚어졌다. 12월 23일, 미국 휴스턴 주 전기료는 메가와트시(㎿h)당 3,700달러까지 올라 전날 최고치인 57달러보다 65배나 올랐다. 눈폭풍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많은 지역에서 전력가격은 메가와트시 당 최소 1천 달러를 기록했다. 전력을 끌어 쓰기 어려웠던 텍사스, 뉴잉글랜드에서 160만 가구가 난방 없이 크리스마스 혹한을 보냈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얼어 죽기도, 눈에 깔려 죽기도 했다.


에너지 위기에서 미국이 중요한 이유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의 미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믿었던 미국마저 에너지 위기가 닥치면서 유럽의 불안정성은 더욱 높아졌다. 그나마 EU 회원국들은 전쟁 이후 에너지 공급을 통제하면서 위기를 견뎌왔다. 심각한 위기 양상은 에너지 사유화가 진전된 영국에서 발생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에너지 가격이 몇 배로 뛰었습니다. 에너지 가격이 폭등한 상황에서 이렇게 강추위가 밀려오면 모두가 난방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BBC 기자의 말이다. 에너지 위기와 혹한이 겹치면서 ‘난방 빈곤’이 확대되고 있다. ‘난방 빈곤’이란 수입의 10% 이상을 난방비로 지출하는 상태를 말하는데, 영국 요,크대학은 2023년 1월까지 영국 국민의 3/4 정도가 난방 빈곤층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얼어 죽지 않으려면 빈곤해야 한다. 에너지 위기가 대중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우리를 얼려죽이기 전에 에너지 ‘위기 전가’에 맞서자


기후위기로 북극 공기가 한반도를 강타하면서 한국 민중의 난방 전력 사용도 역대 최고를 경신했다. 아니나 다를까, 정부는 난방수요 급등과 한전 적자 해소를 이유로 들며 전기요금 인상을 준비하고 있다. 「2023년 경제정책방향」에 따르면 2026년까지 전기요금을 인상해 한전과 가스공사 적자를 해소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진단이 틀렸다. 한전의 적자는 민중이 전기를 많이 써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민간 발전사가 한전에 비싼 가격에 전기를 판매했기 때문이다. 한전에 전기를 판매하는 재벌 민간발전사는 SK 3개, GS 2개, 포스코와 삼천리 각 1개 기업이다. 이들은 전력도매가격에 따라 전기를 판매하는데, 이 가격은 발전에서 마지막으로 쓰는 연료에 따라 정해진다. 이 연료가 통상 천연가스인데, 최근 에너지 위기로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했고 따라서 전력도매가격도 급등했다. 그런데 재벌 민간발전사들은 천연가스를 저렴하게 직수입하고 있다. 재벌이 전기를 싸게 만들어서 한전에는 비싸게 팔고 있다는 뜻이다. 상반기 7개 민간발전사의 영업이익은 1.9조, 4대 정유사의 영업이익은 12조다. 이들 영업이익의 합은 한전의 상반기 적자 14조와 맞먹는다.


전기요금 인상은 재벌의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 발생한 한전의 적자를 민중의 호주머니로 메우겠다는 뜻이다. ‘이윤의 사유화와 위기의 사회화’는 에너지 부문에서도 반복된다. 지금은 에너지 ‘위기 전가’에 맞설 때다. 한전 적자의 원인이 재벌의 에너지 사유화에 있다면, 우리는 에너지 사유화 자체를 멈추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재벌이 소유한 민간발전사를 국유화하고 분할된 에너지 공기업을 통합공기업으로 재편하고 노동자 민중이 통제해야 한다. 


물론 정부는 전기요금을 인상하면서도 ‘취약계층의 에너지 복지를 강화’하겠다고 하지만, 이것이 본질을 감추지는 못한다. 기후위기와 에너지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에너지는 ‘필요에 따라 생산하고 필요한 곳에 분배하는’ 원칙을 관철해야 하며, 이는 발전산업의 공적 소유를 전제할 때 가능하다. 무엇보다, 적절한 냉난방과 인간다운 삶에 필요한 에너지는 공적 책임으로 모두에게 보장해야 한다. 당면한 위기 역시 대기업 전기요금 특혜 폐지와 기업 전기요금 인상부터 시작해야지, 그렇지 않아도 고물가로 고통받는 가구의 전기요금을 인상할 일이 아니다.


기후위기가 계속되는 지금, 에너지를 둘러싼 싸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모든 위기의 부담을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하는 것이 자본의 본질이며 이는 에너지 위기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바로 지금 에너지 위기 전가에 맞서 싸워야 한다. 오는 2023년 4월, 세종시에서 정부에 맞서 에너지 사회화와 공공적 재생에너지 전환을 요구하는 투쟁이 예고되어 있다. 양보 없는 싸움을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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