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성평등한 금속노조 위해 피켓 든 노동자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온라인신문

[인터뷰] 성평등한 금속노조 위해 피켓 든 노동자

한국지엠비정규직지회 해고자 이준삼

  • 홍희자
  • 등록 2022.11.28 18:06
  • 조회수 834

올 4월, 금속노조 인천지부에서 지부장이 사무처 여성간부에 대한 언어성폭력을 저지른 사건이 있었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간부에게 성폭력을 행한 것이었다. 가해자는 정권 3개월의 징계를 받아 복귀했으나 가해자 분리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피해자는 가해자와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호소했으나 금속노조는 파티션을 치라고 했다. 이에 노조 사무처를 시작으로 곳곳에서 항의가 잇따라 금속노조는 외부에 사무실을 임대하여 가해자를 분리하겠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외부 사무실을 구하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많았다. 금속노조 비정규직 단위는 입장문을 냈고, 금속노조 조합원 500여 명도 연서명하여 문제 해결에 동참했다. 그러나 해당 성폭력 사건은 여전히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번 성폭력 사건은, 민주노조에서 평등하고 민주적인 동지적 관계 대신 차별적인 젠더의식, 위계에 의한 성폭력, 2차 피해 발생, 피해자 보호와 일상으로의 복귀를 방해하는 보수적이고 폭력적인 노조문화 등 여러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민주노조의 원칙을 바로 세우고 금속노조가 투쟁하는 조직으로, 노동자단결의 구심으로 다시 서기 위해서는 문제 해결과정에 보다 철저해야 할 것이다. 가해자에게 항의하고 피해자를 지지하는 실천을 앞장서서 해 온 한국지엠비정규직지회 해고자 이준삼 동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부장실 앞 일인시위는 언제부터 어떻게 진행해 오셨나요?


4월에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고, 6월에 징계(3개월 정권)가 결정되어 9월 중순에 징계가 끝났다. 징계가 끝나는 시점, 지부장이 출근하는 시점에 개인적으로라도 항의표시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일인시위를 시작했다. 주변 조합원들과 지회장에게 시위하겠다는 얘기는 했다. 그때부터 시간 날 때마다, 출근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시위를 했고 처음엔 혼자 하다가 차차 동의하는 조합원들이 같이 결합하게 되었다. 지부장이 사람들과 마주치는 게 껄끄러우니까 아예 한 시간 일찍 출근하는 경우도 많았다.

 

회사나 법원 등을 상대로 투쟁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일 것 같아요. 시위를 하면서 어떤 생각과 기분이 드시는지요?


사실 일인시위를 고민한 것은 6월 초부터였다. 중집에서 징계한다는 얘기 듣고 중집회의할 때 항의해야겠다 생각했는데, 회의일정을 잘 몰라서 그땐 하지 못했다. 지부장 정권기간 3개월 동안 시위할까 말까 고민이 참 많았다. 사측 상대로는 고민 없이 하면 되는데 이번 시위는 노조와의 관계, 사람 관계, 지회와의 관계가 있으니까. 나한테, 우리 비정규직지회에, 피해자에게 영향이 가니까 고민을 안 할 수 없었다. 이러다간 고민만 하다 끝날 것 같아 일부러 주변 사람들에게 ‘난 시위할 거다’라며 나를 다지기 위해, 석 달 전부터 계속 얘기했다. 그래 놓고 안 하면 손가락질받을 테니까. 내가 흔들리는 걸 그런 식으로 다잡으려 노력했다. 


지부가 우리 지회와 여태 함께 투쟁했는데 시위하면 우리 투쟁에 대한 지부의 결합력이 떨어질 수 있고 영향도 미칠 거라는 고민이 컸다. 그런데도 시위해야겠다고 생각한 결정적인 이유는, 성폭력 가해자가 인천지부를 대표할 수 없다, 무조건 문제를 제기해야겠다, 피해자와 아는 사이인데 내가 침묵하고 있으면, 지금까지 동지로 지내왔는데 배신이라고 생각할 거라고 봤기 때문이다. 동지를 위해, 해결은 안 되더라도 힘이 되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photo_2022-11-28 18.08.41.jpeg

 

시위에 대한 주변의 반응도 궁금합니다.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들과 탐탁잖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듯한데요.


지회 조합원들은 지지하는 분위기였다. 인천본부와 인천지부 사무실이 함께 있는데 그 앞에서 시위하니까 민주노총 간부나 단체 동지들이 내 앞을 지나가면서 예전과 달리 거리를 둔다거나 멀찍이 떨어져서 쳐다만 보기도 하고, 인천지부 안에서도 안 좋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몇 있었다. 그러나 “고생한다” “나라면 사퇴했을 것이다” “겨우 3개월이 뭐냐?”라며 지지하는 사람도 꽤 많았다.

 

이번에 비정규직지회에서 총회를 통해 지부장 사퇴 촉구안을 결의했다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인 총회 결정사항은 무엇인가요? 


인천지부 대의원인 조합원이 지회 총회에 현장안건으로 발의했다. 지회 입장문을 요약하면,  ‘지부장은 성폭력 가해자로 징계를 받았으나 이로써 피해자와 금속노조 조직에 대한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 없다. 즉, 자본가들에 맞서 싸우고 있는 금속노조는 성평등을 위한 실천에서도 자본을 압도해야 하며, 특히 조합원에 의해 선출된 임원의 경우 보다 높고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 지부장으로서 조직에 타격을 가한 점에 대해 책임져야 하기에 사퇴를 촉구한다. 지회 조합원이자 지부 임원으로 동반출마한 사무국장 또한 이 상황까지 이르게 된 데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에서 사퇴를 촉구한다’는 것이었다. 이와 더불어 개인적으로는 단순히 동반출마자여서만이 아니라 우리 비지회 출신 임원이기에 이번 성폭력 사건에 더 원칙적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해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미 징계가 끝났으니 우리 비지회의 결의는 강요할 수 없는 그저 촉구 수준일 뿐이라는 점이 안타까웠다.


금속노조 중집 회의에서 피켓팅한 것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세요. 함께한 동지들은 누군지, 어떤 요구와 내용으로 했는지, 그날 분위기는 어땠는지 등등.


photo_2022-11-28 18.08.47.jpeg

 

중집에서 가해자 분리조치로 외부사무실을 얻으라고 했다. 그런데 본래 징계 취지와 어긋나게, 조합원과 피해자의 시선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가해자를 우대하는 거대 사무실을 얻었다. 피 같은 조합비로 고가의 사무실을 얻었는데도 이후에 이것이 중집에서 어거지로 통과되었다. 이후 전국의 지역 조합원들이 많이 문제제기하고 항의하여 중집에서 재논의하기로 했다. 그냥 있으면 문제가 축소되어 지난 지부장 징계처럼 사무실 문제도 잘못 결정될 수 있겠다고 판단해서, 피해자와 소통하면서 대응했다. 


또 중집 성원들이 세부적인 내용(새 사무실 임대 절차, 얼마나 큰지 등)을 잘 모를 테니 호소문을 만들어서 중집 성원들에게 나눠주면서 피켓팅하기로 했다. 이 소식을 들은 비정규직대표자회의 성원 한 동지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겠다고 해서 연서명을 받기로 했는데 대표자만이 아니라 전국 금속노조 조합원의 연서명을 받으면 중집 성원들이 더 문제의 심각성 인식하겠다 생각해서 사나흘 동안 500여 명의 연서명을 받았다. 그동안 상황을 대충 들었던 사람들이 자세하게 글을 통해 알게 되는 계기가 되어 문제제기에 힘이 실렸던 것 같다. 금속노조 조합비와 금속노조 징계와 관련된 건이라 금속노조에만 한정해서 연서명을 받았다. 비정규 단위는 노조사무실도 없이 생계비 마련을 위해 애쓰며 투쟁한다. 그런데 성폭력 가해자에게 50여 평의 사무실을 임대해주기 위해 5천여만 원의 조합비를 쓴다는 것에 조합원들이 엄청나게 분노했다.


당일 중집회의 참가자들은, 지역에서도 문제제기를 받은 데다 연서명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고, 조합원들이 지켜보고 있었으니 결정을 신중하게 하지 않으면 문제의 소지가 있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이번에 얻은 큰 사무실을 빼고 임대료를 최소화해서 새 사무실 얻으라고 결정되었다. 금속노조 질서 안에서 나올 수 있는 최대한의 결정이었다고 본다. 애초에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 금속노조 스스로 징계를 그 정도밖에 못 했기에 마무리도 그 정도 선에서, 수습하는 수준에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지부장 사무실 앞 시위, 중집회의 피켓팅 외에 피해자를 지지하는 주변 동지들의 자발적인 실천은 어떤 것이 있었나요?


금속 중앙 사무처에서 먼저 시작했다. 텔레그램 개인 프로필 사진을 금속노조 근조의 의미로 검은색으로 바꾸었다. 중앙 사무처와 비지회 조합원들 외에 얼마나 널리 퍼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프로필을 바꾼 의미는 주변에 만나는 동지들에게 많이 얘기하긴 했다. 또 중앙 사무처 동지들은 책상에 항의문구를 적은 종이를 붙여놓았는데 지금도 여전히 붙어 있다.


photo_2022-11-28 18.08.57.jpeg

 

아직 대책위 등의 집단적인 움직임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큽니다. 앞으로도 피해자를 지지하는 실천을 계속해 나가실 계획인가요? 


대책위가 초반에 만들어졌으면 좋았을 텐데, 이젠 징계 기간이 끝나고 어쨌든 분리 조치도 이뤄졌으니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다룰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금속노조가 민주노조라고 하는데 노조 외부 일반 조직보다 규약, 규정 등이 훨씬 미흡하고 문제가 많다. 중집성원의 징계를 중집성원이 한다? 몇 년 동안 친분 있는 사람들끼리 원칙적으로 징계하기 쉽지 않다. 얼굴 붉힐 수밖에 없다. 징계위를 독립적으로 둘 수 있어야 한다. 중앙위 임원은 징계를 못 한다? 이게 어느 나라 법인가? 말도 안 된다.


노조의 관성이 있어서 일반 조합원 몇 명이 바꾸거나 깨트리는 건 힘들다. 그래도 이미 문제를 제기했고 앞으로도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다. 중앙위가 한두 달 뒤에 예정돼 있는데 그때 대응하려 하고, 더 높은 회의단위인 전국 대의원대회에서 징계절차나 규약, 규정 등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도록 알려내면서 대의원들을 동참시키려 한다. 


이번 성폭력 사건에 대해 금속노조 또는 인천지역 동지들 외에 전국의 많은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상황이나 문제점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인터뷰를 보게 될 여러 동지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우리가 흔히 뉴스에서 많이 접하는 회사 간부와 직원 간 성폭력 사건을 보면, 결국 높은 직책의 가해자는 경징계받고 피해자 직원은 고통에 시달리다 퇴직한다. 도덕성에서 우월해야 할 민주노조, 금속노조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중책을 맡은 간부와 조합원 상하관계에서의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권력자와의 싸움에서 결국 피해자만 힘들어서 그만두는 상황이라니! 징계절차도 노조 상층 간부들 중심으로 논의된다. 그 때문에 피해자와 소수 지지자들에게만 맡겨두면 문제가 안 풀린다. 금속노조에서 이런 사건이 비일비재한데, 결과는 피해자만 그만두는 것으로 끝난다. 소수에게만 맡길 게 아니라 다수의 조합원이 문제를 제기하고 함께 대응해야 문제가 원칙적으로 해결되고 노조 질서가 바로 세워진다. 지금부터라도 많이 관심 갖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동참하면 많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한다.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