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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노동자에겐 퇴직금 안 준다는 헌재, 구조적 성차별 못 박다

기사입력 2022.11.05 11:00 | 조회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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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위 ‘집안일’로 불리는 가사노동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가사노동은 그 양과 종류도 엄청나다. 가전으로 감당할 수 없을 때는 모친이나 아는 여성에게 의존하거나 사람을 부른다. 이런 일자리는 과거 가정부, 파출부란 이름으로 불렸고 여성노동자는 하녀처럼 일했다. 1990년대부터는 인력업체나 플랫폼자본을 통해 가사노동자가 공급된다. 그렇게 고용된 가사노동자의 규모는 약 60만 명이며, 그중 여성 비율은 98.4%다. 이러한 가사노동은 수많은 저임금 여성노동자들의 생계가 달린 일자리다.

     

     

    각종 가사노동 플랫폼 

     

    그런데 11월 2일 헌법재판소는 한 가사노동자가 ‘퇴직급여법 적용대상에서 가사노동자를 제외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제3조가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 ‘합헌’ 결정을 내렸다. 가사노동자 역시 다른 노동자들처럼 고용주에게 노동력을 파는 임금노동자고, 그러면 응당 퇴직금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가사노동자의 퇴직금은 꿍쳐도 상관없다는 이상한 법이 합헌이라고?

     

    자본가계급의 엘리트인 사법부 헌재 재판관들은 가사노동이 사적 공간에서 하는 노동이라는 특성을 고려해 이같이 판단했다고 한다. 법도 이상한데, 이를 합헌으로 본 헌재의 사유 역시 이상하다. 그러면 한번 따져 보자. 과연 헌재의 판단 근거대로라면 ‘사적’이지 않은 일터가 있는가? 자본주의는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와 그로부터 나오는 경영권을 신성시한다. 대부분의 일터는 개별자본가가 사적으로 소유한 공간이며 노동자는 그 공간에서 일한다. 그렇게 이루어지는 노동이라는 본질은 같다. 그런데 왜 가사노동자의 퇴직금만 차별해 이들의 노동권을 박탈하는 법이 합헌이란 말인가?

     

    여성의 가사노동과 여성 가사노동자

     

    자본가계급은 노동력 재생산에 꼭 필요한 가사노동을 노동계급 여성에 내맡겨 노동착취도를 높여왔다. 여성은 직장에서 일하고 집에 오면 주부, 아내, 어머니로서 다시 가사노동을 도맡아 이중삼중의 착취와 억압을 당한다. 자본은 성별 노동분업을 고착해 남성 우위의 가부장적 성차별을 강요했고, 가사노동의 사회화를 철저히 외면했다. 가사노동이 사회의 일자리로 만들어져도 이 자리는 다시 여성노동자로 채워졌다. 그리고 여기에 ‘성차별’은 당연한 듯 뒤를 따랐다.

     

    더구나 가사노동자는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차별과 착취를 당해왔다. 근로기준법은 제11조(적용 범위)에서 가사노동자를 제외한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이 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도 제3조(적용범위)에서 가사노동자를 제외한다. 근로기준법 제정 69년 만인 올해 6월 16일부터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가사노동자법)이 시행됐지만, 여전히 가사노동자의 권리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이는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가사노동자에게 적용한 방식도 아닐뿐더러, 고용노동부장관의 인증을 받은 플랫폼 자본, 개별자본에 고용된 가사노동자 일부만 법적 보호를 받게 했을 뿐이다.

     

    구조적 성차별 못 박은 헌재 결정

     

    사법부는 이번 판결로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법·제도의 형식적 평등조차 스스로 걷어찼다. 헌법 32조4항에도 ‘여자의 근로는 … 고용·임금 및 근로조건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적혀있다. 그러나 가사노동은 노동법 적용도 받을 수 없는 온전하지 못한, 하등의 노동이라니. 헌재는 가사노동에 대한 차별을 깨뜨려서는 안 될 전통과 원칙으로 삼았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정부의 행보에 발맞추어, 보란 듯이 구조적 성차별을 공고히 한 것이다.

     

    헌재는 수많은 가사노동자에게 빼앗긴 노동권을 되돌려줄 생각이 없다고 쐐기를 박았다. 대부분의 가사노동자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여성노동자 착취를 증대해 자본에 더 큰 이윤을 선사하는 결정이다. 또 저들은 ‘가사노동=여성노동’이란 등식으로 여성을 차별하고 저평가하는 성별 분업을 더욱 고착화했다. 가부장제적 억압을 꾀하고 남성우월주의의 성차별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재생산하는 행태이다.

     

    사진: 민주노총

     

    초과착취에 고통받는 여성노동자와 단결하자

     

    이번 결정을 ‘몇 년 집안일 봐주던 도우미 여사님이 퇴직금을 날렸다’고 읽거나 ‘집에 오는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퇴직금을 안 줘도 돼서 다행’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노동자의 노동권을 바라고 성차별을 포함한 차별과 억압에 반대하는 노동자라면, 가사노동자의 노동권을 위해 나서자. 그리고 무엇보다 삶에 필수적인 가사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이 이 차별적인 구조에 맞선 싸움의 주체가 되자. 가사노동이 이 사회구조로부터 차별당하고, 여성노동이 차별당해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에게 남성우월주의를 내면화할 것을 강요하면서 성별로 노동자를 분열시키는 데 휘둘리지 말고 우리가 빼앗긴 몫, 권리를 함께 되찾자.

     

    자본가계급과 국가기구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는 수단으로써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을 재생산한다. 그러나 사회적 가사노동을 책임져야 할 국가, 자본가계급의 책임 회피와 노동자의 분열, 성차별 강화를 용인해서는 안 된다. 가사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도 허락하지 않는 체제에 분노하고 초과착취에 수없이 고통받아온 여성노동자와 단결하자. 가사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고,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하라. 가사노동을 국가가 책임지고 사회화하도록 요구하자. 성별 노동분업, 여성 차별과 억압을 촘촘히 살피며 단결투쟁으로 맞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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