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924 기후정의행진에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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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924 기후정의행진에 다녀와서

편집자 주: <현장투쟁복원과 계급적연대실현을 위한 전국노동자모임> 소식지 2호에 실린 924 기후정의행진 참가 후기를 필자와 <전국모임>의 허락을 구해 온라인 신문에 게재합니다. 게재를 허락해주신 필자와 전국모임에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어릴 적에는 강원도에 계시는 할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아껴 쓰며 낭비하지 않고 사는 것을 보고 배우며 자랐다. 늘 파릇파릇한 풀냄새를 맡았고 맑게 흘러넘치는 개울물에 발을 담그며 놀았다.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는 부산에서 살게 되어 방학 때에만 강원도에 있는 할아버지 집에 갈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강원도를 갈 때마다 주변 환경이 변하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흘러넘치던 개울물은 점점 줄어들어 바닥이 보였고 풀이 우거졌던 곳은 점점 깎여 없어져 갔다. 어릴 적 내가 살았던 강원도 어느 동네는 이제 내가 알던 그런 곳이 아니었다. 온전하게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아껴 쓰고 낭비하지 않는 할아버지의 가르침뿐이었다. 왜 이렇게 변했을까? 아마도 시대가 변하면서 환경이 많이 파괴되었거니... 그렇게 생각했다.

 

가끔 유튜브를 보다가도 알 수 없는 알고리즘으로 환경에 관한 영상을 보곤 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당시 인간의 활동이 급격하게 줄자 살아나는 것은 자연이었다. 역시 인간이 가장 큰 환경파괴의 주범이다. 그렇다고 인간이 다 죽어 없어져야 한다는 그런 극단적인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일회용 사용을 줄입시다~', '커피 주문할 때 텀블러 사용부터 실천해 봅시다~' 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이 가장 흔하고 쉬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얘기하고 실천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더이상은 개인이 아껴 쓰고 산다고 해서 지구환경이 나아지는데 1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하루에도 수십 톤씩 산업폐기물을 쏟아내는데 내가 아낀다고 해서 무슨 소용인가? 이제는 정부와 기업 차원에서 환경문제를 신경을 쓰고 대책을 내놓도록 해야 한다. 9월 24일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하게 된 이유도 그런 것이다. 나 혼자 아끼며 사는 것보다 여러 명이 모여 목소리를 낸다면 그나마 세상에 알려지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해서 참여하게 되었다.

 

924 기후정의행진 하기 전 일주일 동안 울산의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공장 앞에서 기후정의 선전전을 진행했다. 먹고사는 게 바쁜 대공장의 현대인들은 환경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보였다. 출근할 때 신호등의 몇 초 남지 않은 시간 때문에 건널목을 뛰어야 했고 퇴근할 땐 마라톤 경기 하듯이 '준비... 시~작!' 하면 뛰어서 퇴근하기 바빠 보였다. 현대중공업만 봐도 끊임없이 자본의 공격이 밀려오고 매년 사람이 죽어 나가고 있는데 지금 환경이 대수인가 싶다.

 

 

하지만 현대중공업 앞바다에는 배를 만들고 난 자리에 남은 쇳가루와 용접 불똥이 둥둥 떠다니고 공기 중에는 도장스프레이 작업할 때 나오는 페인트가 바람을 타고 돌아다닌다. 이렇게 산업현장에서 셀 수 없을 정도의 오염물질이 나오는데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과연 이 문제를 얼마나 알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리고 인근에 살고 있는 지역주민들 또한 과연 괜찮은지도 말이다.

 

기후정의선전전을 대공장 앞에서 했던 것도 이런 이유다. 먹고살기 바쁜 것도 알고 충분히 이해하지만, 기후위기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환경오염의 주범 대공장들,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 또 그곳의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기후위기에 대해서 알아줬으면 했다. 그런 마음으로 선전전을 하면서 ‘노동조합으로 뭉쳐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회사에 요구한다면 그나마 개선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며, 과일박스에 '지금당장 기후위기'라는 문구를 적은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기후위기가 먼 미래가 아닌 지금 당장 실천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적었다. 당장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안주할 수 없음을 말하고 싶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나 죽을 때까지 크게 별일 없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딱히 관심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이제 태어나고 앞으로 살아갈 아이들은, 청소년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될지 인간이라면 충분히 걱정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924 기후정의행진 당일날 행진할 때 단상에서 한 시민이 이렇게 발언했다. “기성세대로써 부끄럽지 않기 위해 행진에 참가했다”고... 그렇다. 최소한 부끄러운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하는 것이다.

 

이유는 이뿐만 아니다. 기후재난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재난이 닥쳤을 때 항상 취약계층과 농민, 사회적 빈곤층이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일상생활을 되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폭우 침수로 인한 사망자가 급증했고, 10명 중 4명이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가뭄, 폭염, 장마, 태풍, 폭설이 닥칠 때는 장애인, 독거노인, 장애인들에게 피해가 집중됐다. 기후위기는 식량위기로 이어지고, 농민들의 생계와도 직결된다. 재난은 결코 가난한 사람과 부자들에게 평등하게 오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후위기는 재앙과도 같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특히 기후위기의 주범인 대공장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부 또한 마찬가지다. 위기가 닥치고 난 후 카메라 앞에 서 있을 것이 아니라 가장 먼저 앞장서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회사에 환경문제를 개선할 것을 요구하고 관철시키는 것은 상상에서만 가능한 것일까? 현실로 만들어 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까? 노동자들 또한 고민해야 한다. 아~ 왠지 “임금도 제대로 못 받는데 환경이 중요해?”라는 일부 조합원과 노동자들의 볼멘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 누군가는 얘기해야 한다. 핀잔과 피드백은 달게 받겠다.

 

내가 늙고 나이 들어 죽기 전에 환경이 나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의 투쟁으로 기후, 환경문제가 개선된다면,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었을 때 “예전에는 개울에 물이 없었지만 지금은 많이 흐른다”고 생각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산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기후위기는 이미 아이들에게 아껴 쓰고 낭비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이 소용없는 지경까지 와있다. 오염된 환경, 기후재난을 물려줄 수는 없다. 당장 노동자가 앞장서서 정부와 자본에 기후위기, 환경문제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행진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맙고 수고하셨다는 말씀 드리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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