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받는 여성에게 국적이란 없다. 클라이밍 선수 강제 귀국 조치 의혹 해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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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받는 여성에게 국적이란 없다. 클라이밍 선수 강제 귀국 조치 의혹 해명하라

신당역에서 살해된 여성노동자와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은 다르지 않다

  • 정은희
  • 등록 2022.10.19 16:44
  • 조회수 392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19일 서울 주한이란대사관 앞에서 ‘이란시위를 지지하는 한국시민모임’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이란 정부가 엘나즈 레카비 클라이밍 선수에 대한 강제 귀국 조치 의혹을 해명하고 시위대에 대한 탄압을 중단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한국 경찰은 이란대사관을 비호하며 기자회견을 지속해서 방해했고, 더구나 이란대사관 소속 차량이 주차를 위해 기자회견 장소를 가로질러야 한다는 이유로 기자회견을 중단시키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이란대사관 측은 애초 약속과는 다르게 기자회견 장소에 차를 주차하고 방해했습니다. 그들의 처사는 이란과 한국의 수많은 이들이 레카비 선수의 안전을 걱정하고 있는데도 그의 납치와 강제실종 의혹에 대해 아직도 해명하지 않고 있는 그들의 입장과 다르지 않았습니다.그러나 한국 활동가들의 거센 항의에 기자회견은 다시 진행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불꽃페미액션, 국제민주연대 등 한국인권시민사회단체들은 계속해서 레카비 선수의 강제 귀국 의혹에 대한 구체적인 해명과 탄압 중지를 강력하게 촉구했습니다. 아울러 기자회견에는 한국 고등학생도 참여하여 목소리를 높였으며, 한국 여성 활동가 4인은 머리카락을 자르고 이란 시위대에 대한 연대와 지지를 표현했습니다. 특히 기자회견에 참여한 이란 여성들은 현지에서 노동자들이 여성 억압에 맞선 시위에 연대하여 대대적으로 파업을 벌이고 있다는 고무적인 소식도 전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여성 억압하며 체제 유지한 이란 정권과 자본

 

이란 정권의 여성 억압은 단지 히잡 강제 착용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란의 공식 결혼 연령은 13세이며, 아버지의 허락이 있으면 더 어린 나이에도 결혼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란에서는 2021년 3월까지 한 해 동안 결혼한 10-14세 소녀의 수는 31,379명에 달합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전환요법은 여전히 만연하고, 이들은 채찍에서 사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처벌을 받고 있습니다. 임신중지의 권리 역시 사실상 전면 금지돼 있습니다. 2014년에는 히잡 착용을 거부했다가 9천 명이 구금됐고, 더구나 여전히 많은 여성 인권운동가가 투옥돼 있습니다.

 

히잡 강제 착용은 1980년대 이란 근본주의 이슬람정권이 헤게모니를 행사하고 사회 계층을 동원하기 위해 고안한 통제 조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근본주의화된 이슬람 정권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단적으로 이란 패션업계는 미디어를 통해 여성과 성소수자에게 가부장적인 이미지를 강요해 왔습니다. 여성의 몸에 특정한 의복 패턴을 상품으로 강요하는 것은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의 공통된 이데올로기입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실체는 이란에서 수십 년 동안 여성의 몸을 지배하고, 굴욕을 주고, 상품화하고, 허구적인 젠더 갈등을 심화하고, 계급적 요구를 주변화하는 지배계급의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란 지배체제 떠받친 미국, 인권을 말하지만 이란 민중 억압에 기여할 뿐

 

미국은 현재 이러한 이란을 인권의 이름으로 비판하지만, 이란의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를 지원했던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의 제국주의였습니다. 이란 세속화 팔레비 정권 시절 미국은 석유자원을 탐내며 그들을 지지했으며, 지금은 인권의 이름으로 이란을 제재하지만, 그의 피해는 고스란히 이란 여성과 민중에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50여 년 전 이란 민중을 억압하는 팔레비 2세가 독일을 방문했을 때 독일 학생들은 이에 저항했고 나아가 이 사건은 68운동의 도화선이 됐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국제연대는 너무나 부족합니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어제 배예주 동지의  “살해당한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에서 이제 레카비 차례인가!”라는 기사로 레카비 선수의 강제귀국 의혹을 규탄하고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또 한 명의 여성이 죽임당하도록 놔둘 수 없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여성억압에 맞선 국제연대는 이란 민중과 함께 우리의 권리 역시 키워나갈 것이라고 제안했습니다. 맞습니다.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고 살해된 마흐사 아미니와 신당역에서 살해된 여성노동자와 블랙 라이브즈 매터를 외치는 수많은 흑인여성들, 팔레스타인에서 고통당하는 여성들은 다르지 않습니다. 이란의 여성억압과 부당한 권력, 가로막힌 자유는 지구적인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에 억압되는 수많은 여성의 처지와 다를 게 없습니다. 여성을 살해하고, 억압하고, 착취하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에 국적이란 없습니다. 또 여성 억압은 모두에 대한 억압과 다르지 않습니다.

 

히잡을 쓰건 쓰지 않건 그것은 여성 자신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이란 정부와 함께 레카비 선수의 신변을 지키지 못한 한국 정부를 규탄합니다. 세계 모든 노동자가 단결해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가 강요하는 온갖 히잡을 벗어던지고 여성해방 사회를 위해 투쟁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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