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4일, 퇴진 집회 시작 전 국회 앞에서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이 주최해 ‘노동자들은 이미 비상계엄 상황이었다 - 윤석열 없는 세상 말하기’가 진행됐다.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이김춘택 사무장이 탄핵 이전에도 생지옥이었던 조선하청노동자의 노동과 삶에 대해, 그래서 우리는 탄핵을 딛고 노동현장과 생산현장으로 민주주의를 확대시켜가자고 이야기했다. 투쟁의 미디어 스튜디오 알에 올라간 투쟁의 목소리를 널리 알리고자 지면에 옮겨싣는다.
[발언전문]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기 위해서 저 멀리 거제에서 아침 5시에 출발해서 올라왔습니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사무장 이김춘택입니다. 투쟁!
여러분 요즘 야광봉 하나씩은 다 장만하셨죠? 저도 어제 조합원에게 야광봉 하나 받아서 열심히 흔들었습니다. 아이돌 그룹 세븐틴을 좋아해서 덕질하는 제 짝지는 세븐틴 야광봉, 응원봉을 사놓지 못한 걸 안타까워하면서 대신 당근마켓에서 또 다른 아이돌 그룹 NCT 응원봉을 사서 신나서 탄핵 집회에 나갔습니다.
다양한 모양과 빛깔의 야광봉을 들고 10대, 20대가 대거 참여하는 새로운 집회 모습이, K-POP이 흥겹게 울려퍼지는 축제와도 같은 집회가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참 다행스럽고 참 반가운 일입니다. 그만큼 윤석열의 비상계엄은 수많은 시민들의 일상을 깨뜨려버렸습니다. 덕후에게 마음껏 편히 덕질할 자유를 달라고 요구하는 거대한 외침이 지금 광장을 야광봉 불빛으로 넘실거리게 하고 있습니다. 모두들 윤석열이 하루빨리 탄핵되고 체포되고 구속돼서 12월 3일 밤 비상계엄 이전의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곧 그렇게 될 겁니다.
그런데 윤석열이 탄핵되고 구속되고 나서 다시 돌아간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지옥 같다면 어떻겠습니까? 윤석열이 탄핵되는 것만으로는, 그래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만으로는 생지옥 같은 현실이 변함없다면 어떻겠습니까? 거제에서 울산에서 목포에서 배를 만드는 조선소 하청 노동자의 처지가 그렇습니다. 저희도 매일 거리에서 목이 터져라 윤석열 탄핵을 외치고 있지만 윤석열이 탄핵된다 해도 조선소 하청 노동자가 다시 돌아갈 일상은 생지옥이나 다름 없습니다.
올해부터 조선업이 초호황입니다. 지난 3분기까지 그러니까 1월부터 9월까지 단 9개월 동안 현대중공업은 4,230억, 삼성중공업은 3,285억, 한화오션은 689억의 막대한 영업이익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그 수천억의 이익을 만들어낸 조선소 하청 노동자는 20년을 일해도 30년을 일해도 최저임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저임금에 고통 받고 있고 심지어 올해 들어 임금 체불까지 당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업 살인이라고 불리는 산재 사망 사고가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올해만 한화오션에서 노동자 7명이 목숨을 잃었고, 조선업 전체로는 21명이나 사망했습니다.
이런 현실을 바꾸고자 하청 노동자가 노동조합으로 뭉쳐서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하면 원청 조선소의 탄압이 뒤따릅니다. 그래서 지금 한화오션 하청 노동자는 이 추운 겨울에 천막도 치지 못하고 32일째 노숙농성을 하고 있고 25일째 단식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국회의원들이 농성장을 방문하기도 했지만 한화오션은 국회의원의 말도 들은 척, 만 척 안하무인입니다.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던 12월 3일 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는 침낭 하나로 겨울밤 추위를 견디다 비상계엄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화오션 하청 노동자에게 윤석열이 탄핵되고 다시 비상계엄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그 차디찬 노숙의 밤으로 돌아가는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한화오션 하청 노동자는 단순히 탄핵만 외칠 수 없습니다. 탄핵 이전의 삶 역시 생지옥이었기에 탄핵을 딛고 더 앞으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노동조합법 2조, 3조 개정 이른바 노란봉투법이라고 합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 3권을 한국사회 비정규직 노동자는 제대로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노동조합법을 고쳐서 비정규직 노동자도 노동 3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하려는데 윤석열은 두 번이나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그러므로 윤석열을 탄핵한다는 것은 그를 대통령에서 끌어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윤석열이 거부한 노동조합법 2조 3조 개정으로 나아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맞습니까?
윤석열이 탄핵된 뒤 국회에서 가장 먼저 통과시키는 법이 노란봉투법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도 이전에 윤석열과 국민의힘을 의식해서 만든 미흡한 내용이 아니라, 조선소 하청 노동자도, 자동차 판매 노동자도, 쿠팡 물류창고 노동자도, 퀵서비스 플랫폼 노동자도, 모든 노동자가 노동 3권을 누릴 수 있는 제대로 된 노란봉투법이 통과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윤석열을 탄핵시킨 보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한화오션 하청 노동자들은 헌법이 부여한 노동자의 권리를 찾고자 32일째 노숙농성하고 있고 25일째 단식투쟁하고 있습니다.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전에 서울에 올라와서 단식하고 오체투지도 하며 우리의 투쟁을 알리려 했지만 윤석열 탄핵을 외치는 함성 소리에 묻혀 계획을 취소하고 거제로 내려와야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윤석열이 탄핵되고 나면 이전보다 더 열심히 투쟁하려고 합니다. 탄핵의 함성 소리에 가려 잘 들리지 않던 투쟁하는 목소리에 앞으로 더 많은 관심과 연대가 필요합니다.
윤석열을 탄핵하고 구속해서 1987년 6월 항쟁이 만들어낸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회복하고 지키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에 그치지 않고 여전히 재벌의 독재, 자본의 독재가 강력한 노동 현장과 생산 현장으로 민주주의를 확대시켜 나갑시다. 윤석열 탄핵이 끝이 아니라 1987년에 형식을 갖추는 데 머물렀던 한국 사회의 진정한 민주화를 위한 시작이 될 수 있도록 노동자가 앞장서 투쟁합시다. 저희도 한화오션의 악랄한 노조 탄압에 맞서 끝까지 온 힘 다해 싸우겠습니다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