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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역 여성 노동자 살해 사건 4주기 추모 문화제 모습
2022년 9월 14일 저녁, 서울지하철 신당역에서 근무 중이던 여성 역무원이 살해당했다. 가해자는 같은 직장 사람이었고, 범행 장소는 피해자가 순찰 업무를 수행하던 역사 내 화장실이었다. 가해자는 수년 전부터 피해자를 스토킹했고, 공사는 2021년 10월에야 그를 직위해제했다. 가해자는 직위가 해제된 후에도 내부 전산망으로 피해자 개인정보에 접근해 범죄에 활용했다. 공사는 직장 내 괴롭힘을 방기했고, 노동자의 안전을 사법 절차에 위탁했다. 사건 이전, 그리고 사건 당시 사측과 노동조합의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피해자 보호조치는 작동하지 못했다. 서울지하철을 비롯한 일터에선 여전히 많은 성희롱,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신당역 젠더폭력 살해사건 이후 4년 – 여전히 미진한 조직적 해결
신당역 여성노동자 살해사건 이후, 서울교통공사 사측은 제도를 일부 보완했다. 다른 직원의 주소지 등 개인정보 검색을 차단했고,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예방지침 및 사건처리 매뉴얼이 개정되었다. 사측은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가해자 징계와 전 직원 특별 교육을 실시한다. 하지만 직장 내 젠더폭력을 조직 구조, 문화나 관습 등에 대한 반성의 계기로 삼지는 않는다. 사건은 가해자 개인의 예외적 행위로 다뤄지고, 이는 사용자의 책임을 축소하며 젠더폭력에 대한 조직적 논의와 개입을 가로막는다.
사건 이후 2인 1조가 주된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조차 사건 직후 “2인 1조 순찰 시스템을 추진하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2인 1조 근무제는 미완이다. 노동조합이 인력충원을 강하게 요구하여 2023년 말 역무인력 232명이 채용됐고, 2026년 4월에는 해당 인력이 정원에 반영되기도 했다. 그러나 연도별 정년퇴직자 증가, 휴직과 퇴사 등으로 장기 결원이 누적되고 있다. 2026년 8월 기준, 현재 2인 근무조는 214개로, 전체 1,064조의 20%에 불과하다. 하지만 서울시는 2인 1조 근무를 확충하기는커녕 ‘혁신 가이드라인’을 근거로 총 2,212명에 달하는 인력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 기준에 따른 2026년 감축 대상은 1,500명이나 된다.
과제는 2인 1조 근무 정착만이 아니다. 업무조 배치 및 역할에 관한 문제, 휴게실·샤워실 등 시설 구비 문제, 일터의 조직문화 문제 등이 그렇다. 일터의 위험은 ‘늦은 밤의 고립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사건으로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들이 위험이라고 느끼고 말해온 것을 위험으로 셈하지 않는 안전관리 체계를 다시 살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폭력과 괴롭힘을 일터에서 예방해야 할 위험으로 다루어야 한다. ILO 190호 협약은 그 대응 기준을 제시한다.
ILO 190호 협약이 말하는 것 – 피·가해 행위를 넘어, 젠더 기반 폭력을 일터의 유해위험요인으로
2019년, ILO 총회는 노동 세계(world of work)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괴롭힘 근절에 관한 190호 협약을 채택한다. 여기서 ‘노동 세계’는 물리적 일터뿐만이 아니라 출퇴근, 출장, 업무상 연락 등 일과 관련된 공간과 상황을 포괄한다. 폭력과 괴롭힘이 사업장 밖에서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노동자의 보호 문제에서 제외되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협약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젠더 기반 폭력을 사업주가 관리, 감축해야 할 유해위험요인으로 설정할 것
- 이를 위해 현장의 노동안전보건 체계에 괴롭힘과 폭력이 주요 의제로 편입될 수 있도록 하고, 노동자가 참여하는 위험성 평가를 통해 관리, 감축할 것
- 관련한 모든 조치의 개발, 점검 등 일련의 과정에 노동자(특히 여성노동자)의 참여를 보장할 것
- 규제의 출발점을 피해자의 사후 신고에서 사용자의 사전 예방 의무로 이동할 것
- 구체적인 피·가해 행위를 넘어 특정 성·젠더에 불균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행위까지 포괄할 것
- 고용 형태를 불문할 것. 출퇴근·숙소 등 장소를 포괄할 것
- ‘일터’뿐 아니라 가정폭력을 포함할 것. 피해자에게 노동시간 단축이나 조건 악화 없는 근무지 조정 등의 지원 조치를 시행할 것
이처럼 ILO 협약은 노동 세계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괴롭힘을 방지하고 대처하려면, 이들 폭력과 괴롭힘에 대한 대응을 산업안전관리 체계 안으로 통합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이때 산업안전관리 체계는 크게 세 가지의 기본적 권리, 즉 알 권리, 참여할 권리, 거부할 권리를 토대로 한다. 또한 노동 세계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괴롭힘이 사업장에서 관리·개선될 수 있는 ‘일터의 유해·위험 요인’으로 규정되기 위해서는, 이를 드러내고 바꿔내는 과정에 노동자들이 실제로 관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도 제시한다.
한편, 한국에서 노동자 안전보건과 관련한 권리는 주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에서 다루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법에 따른 권리를 활용해 폭력과 괴롭힘에 대응하기에 현 산안법은 그 내용도, 적용 범위도 매우 협소하고 부족하다. 특히 한국처럼 특수고용·다단계 하도급·플랫폼·프리랜서·5인 미만 사업장 등 고용형태나 사업장 규모에 따라 권리가 분절·제약된 노동자가 많은 곳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고용형태나 노동자 수 등과 관계없이, 모든 일하는 사람에게 다양한 노동안전보건 권리가 적용되어야 한다.
내용적으로도 추가·보완되어야 할 부분이 많다. 일례로 사업주가 취해야 할 안전·보건 조치 의무는 38조(안전조치)와 39조(보건조치)에서 포괄적으로 규정되고 있다. 해당 조문은 위험의 유형, 존재 장소, 건강장해의 원인을 종류별로 열거한 후 발생할 수 있는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할 의무를 사업주에게 부과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조항은 장시간 또는 야간노동, 휴식이 충분하지 않거나 강도 높은 노동, 직무스트레스 등에 의한 건강장해를 명시하고 있지 않다. 노동 세계에서 발생한 폭력과 괴롭힘이 유발하는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조치가 사업주가 취해야 하는 보건조치 의무로 규정되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장시간 노동, 야간작업을 포함한 교대작업 등 신체적, 정신적 피로로 인한 건강장해”, “업무 수행이나 이와 관련한 인적·물적 환경에 따른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장해” 등을 추가해야 한다.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조치 등을 다루는 산안법 41조 역시 마찬가지다. 해당 조항 역시 ‘근로자’만을 보호 대상으로 삼으며, ‘고객의 괴롭힘’만을 다룬다. 한편,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672조(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는 일부 특수고용노동자를 대상으로 산안법 제41조 제1항에 규정된 고객의 폭언 등에 관한 대응지침을 제공하고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하지만 특수고용노동자 유형에 따라 적용 내용이 다르며, 같은 조항 제2항의 조치(업무의 일시적 전환, 휴게시간 연장 등)는 아예 적용하지 않고 있다. 이에 폭언 등으로 인해 건강장해가 발생할 경우 휴식시간을 부여하거나 연장하고, 그 비용을 사업주가 책임지게 하거나, 필요할 경우 2인 1조 등을 위한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될 필요가 있다.
함께 가야 할 과제 - 남성의 얼굴을 한 성과평가 폐기하기, 조직 안에서 (정신) 질환 다루기
권리를 법에 명시함은 물론, 노동자가 그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게 만드는 노동조건을 바꾸어야 한다. 노동 세계에서 발생하는 젠더 기반 폭력과 괴롭힘은 조직적 문제다. 기저의 조직문화, 노동강도, 노동시간, 노무관계, 성희롱/성차별, 불안정한 고용구조, 실적 압박 등이 괴롭힘과 폭력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노동 세계의 폭력과 괴롭힘 근절을 이야기할 때, 성과 압박 폐기투쟁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고객 폭언) 그 말을 듣고 나서 바로 실장한테 전화를 했죠. 저 여기 도저히 이거 지금 작업이 안 될 것 같으니 업무 작업 중지하겠다고 그러면 거기서 작업 중지를 해줬으면 더 이상 크게 문제는 안 났을 거예요. (…) ‘내가 갈 테니까 우선 작업하고 계세요’ 하는 거예요. 작업을 중지시켜도 모자랄 판에. 그 말 듣고 진짜 아파트인데 베란다에서 뛰어내리려고 했었어요.” (방문 노동자 인터뷰 중)
해당 사업장 노동자들은 고객 등으로 인해 위협을 겪었을 때 작업을 중지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작업중지권을 활용하지 못했는데, 이는 실적과 연동된 고객만족도 평가를 잘 받지 못할 수 있다는 관리자의 압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실적평가 구조는, 노동자들이 무리한 요구를 받아도 거절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더라도 ‘긍정어’, ‘쿠션어’ 등을 사용하여 고객 기분을 해치지 않고 정중하게 거절하라고 교육받고 있었다. 고객만족도 평가점수는 노동자 개인/팀 실적과 밀접하게 연동되는데, 경쟁적인 실적 압박은 노동자들을 일상적으로 괴롭히고 있었다. 한 증권사 노동자 인터뷰를 보자.
“실적 체크를 하고. 나는 진짜 죽어라고 노력해도 실적이 당장 안 나오는데, 너는 노력도 안 하고 허구한 날 앉아 있고 밥은 목구멍에 넘어가느냐는 식으로 하고. 지점에서 먹지 말고 밖에 나가서라도 먹어라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아침마다 그렇게들 거의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하다 보니까 그게 되게 그런 거죠.”
이 사업장 노동자들은 매일 자신이 속한 지점의 등수를 확인해야 했고, 상사는 ‘영업 독려’라는 명분으로 모멸감을 유발했다. 저성과자 프로그램은 ‘마케팅 활성화’, ‘영업 추진’, ‘동기 부여’ 등의 이름으로 시행되고 있었다.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강압적인 캠페인으로 판매를 닦달했고, 그에 따르는 책임은 오롯이 노동자 몫이었다. 해당 연구는 이러한 성과 압박이 ‘죽자 살자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우선시하고, 생애주기 등으로 그럴 수 없으리라 여겨지는 사람에게는 특별한 ‘각오’ 혹은 ‘포기’를 요구하거나, 아예 배제했다는 점에서 남성중심적이라고 짚는다. 성과평가는 외견상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중립적 잣대를 표방한다. 그러나 진정 중립적인가? 당장 성별에 따라 임신과 육아, 가사와 돌봄노동 등의 무게는 엄연히 다르다. 등급별 인원이 미리 정해진 상대평가에서 누군가는 반드시 낮은 등급을 받아야 하고, 그 자리에 놓이는 것은 '죽자 살자' 일할 수 없는 사람이다. 성과 압박이 남성중심적인 이유다.
여성 영업직 노동자들은 “나 여자는 안 하려고 그랬는데”, “네가 여잔데 뭘 알아”라며 ‘증권맨’이 아닌 여성 영업직을 못 미더워하는 고객과, “치마 입은 새끼들”은 앞으로 안 뽑겠다는 회사 둘 다에게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며 성과를 올리기 위해 애써야 했다. 또한 임신·출산·육아 등 생애주기를 고려하지 않는 성과 압박에 ‘각오’나 ‘포기’의 대응을 취하기도 했다. 한 여성 노동자는 정해진 시간에 열리는 시장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기에, 임신·출산기 여성 노동자는 단축근무를 사용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짚었다.
이러한 사례들은 인력충원, 그리고 성과평가 폐기가 괴롭힘과 폭력의 근절을 위해 매우 중요함을 보여준다. 성과평가가 노동 세계에서의 폭력 및 괴롭힘의 토대가 될 수 있기에, 단협이나 산업안전보건위원회(산보위) 등을 통해 이를 폐기해 나가야 한다.
한편, 많은 경우 노동 세계의 폭력과 괴롭힘은 사건 조사, 피해자의 치유와 복귀, 가해자에 대한 조치 위주로 다뤄진다. 물론 그조차 되지 않는 사업장도 많다. 하지만 앞에서 짚은 것처럼, 노동 세계의 폭력과 괴롭힘은 구조적이고 조직적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개인적/집단적 (정신)질환은 그 결과로 나타난다. 그렇기에 일의 세계에서 발생한 노동자의 (정신)질환은, 문제를 조직적으로 다룰 필요를 함의한다. 현재의 업무 구조를 돌아보고, 재발 방지에 초점을 두어야 하는 이유다. 또한 노동자 한 명의 정신적 불건강 상태는 다른 동료 노동자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자살의 경우 그 정도가 더욱 크다. 위험성평가 등으로 정기 실태파악이 필요하고, 특히 자살 관련 고위험군에 대한 파악과 지원은 반드시 필요하다. 업무 스트레스를 완화하거나,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등의 조치가 우선 적용되어야 한다.
제도를 넘어 - 노동자들이 조직적으로 위험을 드러내고, 바꾸어 나가자
더 많은 이윤을 위해, ‘표준’의 준수를 정언명령으로 삼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 수많은 일터는 ‘표준, 정상성’이라는 기준을 노동자에게 강요한다. 이는 대체로 남성, 이성애자, 비장애인, 청장년층, 주류 민족 등을 상정한다. 그렇게 고착화된 성별 분업과 저임금 구조 속에서, '표준'에 부합하지 않는 여성을 비롯한 '비표준' 노동자들이 수행하는 노동은 저평가되고 가려져왔다. 그 결과, 이들이 경험하는 다른 노동의 양태와 그 안에 존재하는 위험은 사회적으로 뒤늦게 조명되거나 저평가되었다. 이런 위험은 △반복작업에 의한 근골격계질환 △과도한 감정노동 △실적 압박으로 인한 정신질환 △돌봄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염 △비표준 중량물 등 폭넓게 존재한다. 그리고 여성 및 소수자의 차이를 무시하는 노동환경은 일하는 여성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렇게 간과되고 비가시화된 위험을 ‘일터의 위험’으로 드러내고, 그 개선과 관리를 사업주의 의무로 규정해야 한다. 이때 모든 현장 활동이 그렇듯, 현장 노동자들이 평등하게 위험을 말할 수 있는 권리가 가장 중요하다. 특히 위험을 제대로 파악하고 예방하기 위해, 그동안 배제되어 온 사람들의 경험과 목소리를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이들은 폭력과 괴롭힘의 대상이 되기 쉬운 위치에 있는 동시에, 차별이나 폭력 등을 먼저 인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기획·준비·실행·개선 등 모든 단계에 적극 개입하고 관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현장권력’이라고 부르건, ‘일터 민주주의’라고 부르건, 노동자의 집단적 힘이 존재해야 비로소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 또한 그 집단적 힘은 여성과 소수자 노동자가 자신의 위험을 말하고 개선을 요구할 수 있을 때 온전히 발휘된다.
물론 여성과 소수자 노동자들이 안전한 일터를 위해 목소리 내는 과정은 여전히 힘들다.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들의 건강권 요구가 마치 남성 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일인 양 여겨지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젠더 관점으로 노동, 재해, 그리고 위험을 조명하는 일은, 자본주의에서 ‘쓸 만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몸이 어떻게 소외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이는 또한 기존의 ‘표준’에서 벗어난 모든 몸을 위한 일터의 대안을 노동운동이 제시하고, 이를 강조하며 싸워야 하는 이유를 더욱 분명히 보여준다. 노동조합은 여성과 소수자 노동자에게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싸움이 곧 모두에게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싸움이라는 관점으로 요구를 조직하고, 함께 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