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목록
-
[후기] 진짜 사장 서울시와 국가를 앉히는 돌봄 노동자 투쟁을 위해어느 순간부터 정말 많은 주체들이, ‘돌봄’이란 단어를 자기의 목적에 따라 활용하고 있다. 선거 공약집만 보더라도 돌봄과 관련한 말들은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이윤만을 추구하는 민간 기관이 주축이 된 시스템이, 복합적 요구를 가진 대상자를 위한 통합적 사례 관리 역량을 저하한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것이 돌봄 노동자들을 저임금과 불안정 노동의 굴레로 내모는 것은 물론이다. 누구에게나 돌봄은 필요하다지만, 돌봄 노동을 저평가하고 국가가 돌봄 체계를 충분히 구축하지 않는 현실은 개인, 특히 여성에게 헌신을 강요하거나 이를 포기하도록 선택을 강제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와 지자체는 공적 돌봄 시스템을 확충하기는커녕, 서울시사회서비스원(서사원) 등 기존의 공적 기관마저 해산시켰다. 그 결과, 돌봄 서비스의 공급·품질 관리·공공성 확보·현장 전문성 강화·민관 협력 조정 등에서 발생한 공백이 지속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유일했던 공적 돌봄 기관, 서울시사회서비스원 방문 노인 요양, 어린이집 등 아이 보육, 장애인활동지원 등에 대해 공적 돌봄을 제공하던 서사원이 2024년 강제 해산되었다. 4월 26일, 서울시의회는 “서울특별시 사회서비스원 설립 및 운영 지원 등에 대한 조례” 폐지를 의결했고, 5월 22일 서사원 이사회는 해산을 의결했다. 서사원 소속 수백 명의 돌봄 노동자들은 순식간에 해고자가 되었다. 해산 과정까지 서울시와 의회는 집요했다. 그들이 얘기하는 방만 경영의 핵심은 “월급제 노동자들이 병가를 자주 쓴다.”였다. 2022년 3월, 서사원 사측은 병가 사용을 문제 삼는 보도 자료를 냈다. 황정일 당시 대표는 “병가를 사용해도 60일까지 평균임금 100%가 보장되니 도덕적 해이가 일어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라는 말까지 사용하며, 70%로 삭감한 안을 강요했다. 서울시의회는 2023년, 서사원 운영 출연금 100억 원을 삭감했다. 월급제와 정규직이 문제라며 성과급제 도입과 기관 수탁운영 종료 등이 포함된 ‘혁신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서울시는 공적 기관의 돌봄 사례를 단순히 '1등급' 기준으로만 축소 집계하여 서사원 노동자들의 실적이 적다는 논리를 들이밀기도 했다. 민간 기관이 기피하는 사각지대의 수요자들을 돌봐야 했던 현장의 맥락은 그 과정에서 철저히 외면당했다. 돌봄 기관의 95% 이상이 수익과 이윤을 최우선으로 삼는 민간 기관이라는 사실은, 2인 1조 팀 근무는 물론 이들 기관이 돌봄 제공을 회피할 경우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방법조차 없게 만들고 있다. 김가희 외(2021)[1]는 공공부문 사회서비스원이 민간과 구분되는 특징으로 종사자 전문성 증진을 위한 체계화된 교육 제공 및 서비스 표준화, 중증 고난 이용자 대상 양질의 집중 돌봄 제공(1대 다 방식의 팀제 운영) 등을 지목하고 있다. 서울시에서 거의 유일하게 공적 돌봄을 제공했던 서사원의 역할도 이러한 특징을 띄고 있는데, 도전적 행동이나 일부 최중증 치매, 코로나19 감염 등 민간이 회피하는 경우 센터 차원으로 적극 개입해 왔던 게 그 예시였다. 공적 돌봄의 이름으로 조직된 노동조합은 현장의 실제적인 변화를 끌어내기도 했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현장직을 배제하고 진행된 사측의 위험성 평가에 문제를 제기했으며, 안전보건 매뉴얼이 돌봄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으로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일한’ 공적 기관이었기에, 서사원이 담당했던 돌봄 영역은 매우 협소했다. 서울시 국공립어린이집 1,838개소 중 서사원이 운영하던 어린이집은 2023년 12월 기준 고작 6개소, 0.3%에 불과했다. 서사원에서 일하다 예산 삭감으로 인해 2023년 해고당한 한 요양보호사는, 한 토론회에서 “아프면 해고될까 두려워하지 않고 병가를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아프면 다른 요양보호사가 대신 나와 주었습니다,”[2]라며 서사원에서 일했던 시기를 회고했다. 동시에 그녀는, 서사원을 “로또 같은 일자리”라고도 말하며, 공적 돌봄이 여전히 예외적인 상황으로 여겨지고 있음을 강조했다. 서사원 노동조합 및 단체로 구성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서사원 해산을 막기 위해 싸웠으나, 결국 막지 못했다. 서사원 강재 해산 이후 공대위는 서사원 재설립과 공공돌봄 확충을 위한 여러 활동을 진행했다. 윤석열 퇴진 국면 열린 광장에서, 서사원 해산 과정 규탄 및 돌봄의 공공성 확보를 촉구하는 서울시민 5,000여 명의 서명을 받기도 했다.[3] 돌봄과 관련한 다양한 주체들과 간담회를 이어오기도 했다. 그리고 서사원 강제 해산 2주기를 맞아, 서울시청 앞에서 “5.23 공공돌봄 선언대회”를 조직했다. 기관 복원만으로 그칠 수 없는 공적 돌봄 확보 투쟁 2026년 5월 23일, 서사원 해고 노동자, 돌봄 유관 노동자, 단체 활동가 등 150여 명이 모였다. 모여서 돌봄은 상품이 아니라고, 돌봄 노동자는 쓰고 버리는 소모품이 아니라고, 공공돌봄 확충하고 서울시가 책임져라고 외쳤다. 서사원에서 해고된 후 민간 기관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했던 한 노동자의 집회 발언을 일부 발췌한다. “서사원 문 닫고 지난 2년 동안, 민간 요양기관에서 일하면서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민간 시장은 더 좋아진 것도 없이, 그야말로 지옥 같았습니다. 월급제가 아니라 시급제로 일하니까, 돌보던 어르신이 병원에 입원하시면 당장 제 생계가 끊깁니다. 요양보호사 일하러 갔는데 이용자가 아닌 가족들의 일을 시키질 않나, 온 집안 대청소를 시키질 않나, 업무 범위를 넘는 무리한 요구를 해도 참아야 했습니다. 그러다 마음에 안 들면 예고도 없이 갑자기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 하며 서비스를 끊어버립니다. 2~3개월 동안 험한 꼴 당하며 잘린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우리를 사람으로 보기는 합니까? 그냥 쓰고 버리는 소모품 취급하고 고충이 있어도 해결이 안되는 게 지금의 민간 돌봄 현실입니다. 더 가슴 아픈 건 어르신들입니다. 민간 기관들은 돈 안 되고 서비스를 하기에 힘들고 어려운 어르신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대고 안 가려고 난리입니다. 서비스 선별 수용이니 돈이 안되거나, 혼자서 책임지기 어려운 고강도 악성 이용자라 거부니 하면서 차별당하는 어르신들이 갈 곳이 없습니다. 그분들이 지금도 서사원을 목 놓아 기다리고 계십니다. 돌봄은 이렇게 물건을 사고파는 상품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나이 들고 아프면 국가가, 사회가 책임지는 게 당연한 것 아닙니까? 멀쩡한 서사원 없애고 어르신들과 우리 노동자들을 사지로 내몬 서울시의 행태는 시민을 향한 폭력이었습니다.”[4] 6월 3일 지방선거 국면, 공대위는 정책 요구안을 토론하고 각 정당에 질의서를 보냈다.[5] 핵심 요구안은 다음과 같다. △서사원을 통합돌봄지원법에 따른 서울시의 '전문지원기관'으로 지정, 시군구별 돌봄 정책을 조정·지원을 담당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위상 강화 △돌봄 노동자의 완전 월급제 및 정규직화 △ 돌봄 노동자의 유급병가 확보 및 대체인력 지원, 노동안전보건 관련 조치 강화 △서울시가 위탁기관의 실질적 사용자로서 원청교섭에 나설 것 △서사원 재설립 및 체계 구축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참여 보장 여전히 과제가 많다. 서사원 재설립의 기미가 아직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설령 재설립되더라도, 민주당 정권은 그 위상을 축소하는 ‘타협안’을 제시할 가능성 역시 크다. 이미 문재인 정부 시절, 민주당은 사회서비스공단 설립 공약을 사회서비스원으로 축소시킨 전례가 있다. 그들은 사회서비스원법 입법 과정에서 지자체의 사회서비스원 설치 의무 규정을 삭제했을 뿐 아니라, 사회서비스원이 국공립 어린이집을 우선 위수탁 운영해야 한다는 규정도 삭제한 바 있다. 서사원 복원은 단순히 한 공공기관의 회복만으로 그칠 수 없다. 공적 돌봄이 필요한 수많은 수요자에게 가닿고, 이윤만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에 맞춰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돌봄 노동자들은 기관 사측이 아니라 진짜 사장 서울시, 국가를 상대로 교섭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서사원 해산 과정, 서사원 노동자들은 서울시의 결정 사항을 그저 읊어대는 서사원 사측과 무의미한 교섭을 지속해야 했다. 이러한 선례를 반복할 순 없다. 공적 돌봄 확충을 위한 우리의 절실하고 필요한 요구가 힘을 얻기 위해선, 돌봄 노동자 주체의 광범위하고 전면적인 조직이 필수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공적 돌봄의 요구를 내건 돌봄 노동자들이, 진짜 사장 서울시와 국가를 끌어앉힐 수 있는 투쟁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난하지만 차분하게, 꾸준히 조직화를 이어가자. 공적 돌봄 시스템을 직접 설계하고 정착해 가는 주체로서 노동자들을 만나며, 공적 돌봄의 깃발을 꽂아나가자. ------ [1] 김가희, 이상우, 강은나. 사회서비스원 종합재가센터 운영현황과 개선방안에 관한 탐색적 연구. 공공정책연구 제38권 3호. 2021 [2] 2024년 3.8여성파업 조직위원회. “지금, 여기, 여성노동자의 실태를 묻다.” 2024 [3] 서울시는 질질 끌다가 공청회를 진행했는데, 그들이 낸 계획에선 공공 돌봄 확대를 위한 계획과 전망은 없었다. [4] 5.23 공공돌봄 선언대회 보도자료 중 https://docs.google.com/document/d/1bzEX2BtHLa31P8-D_0JTf_kPKPPE_LQiwoUG03zzLUM/edit?tab=t.0 [5] 정의당을 제외하고 답변이 오지 않았다. /* 스크롤 여백만 주고, 화면에는 안 보이게 */ .ftn-target { display: inline-block; /* 줄바꿈 안 생김 */ width: 0; height: 0; scroll-margin-top: 200px; }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 name="_ftn1", name="_ftn2", name="_ftnref1" ... 전부 대상 document.querySelectorAll('a[name^="_ftn"]').forEach(function(a) { var idValue = a.getAttribute("name"); // 이미 같은 id의 요소가 있으면 또 만들지 않음 if (!document.getElementById(idValue)) { var span = document.createElement("span"); span.id = idValue; span.className = "ftn-target"; a.parentNode.insertBefore(span, a); } }); }); /* 본문 각주 번호 + 아래쪽 각주 번호 색 지정 */ a[href^="#_ftn"] sup, a[href^="#_ftnref"] sup { color: #BF202D; } /* 밑줄이 보기 싫으면 */ a[href^="#_ftn"], a[href^="#_ftnref"] { text-decoration: none; } /* 마우스 올렸을 때 살짝만 강조하고 싶으면 (선택) */ a[href^="#_ftn"]:hover, a[href^="#_ftnref"]:hover { text-decoration: underline; } /* 페이지 전체가 오른쪽으로 넘치지 않게 */ html, body { max-width: 100%; overflow-x: hidden; } /* 본문 영역 폭 강제 고정 + 긴 단어/문장도 줄바꿈 */ #bo_v_con, .bo_v_con, .cke_editable, article { max-width: 100%; overflow-wrap: break-word; word-wrap: break-word; /* 구형 브라우저용 */ } /* 워드에서 붙은 이미지/표가 화면 밖으로 안 나가게 */ #bo_v_con img, #bo_v_con table, .bo_v_con img, .bo_v_con table, .cke_editable img, .cke_editable table, article img, article table { max-width: 100% !important; height: auto; } /* 워드가 p, span에 폭을 박아놓은 경우 강제로 해제 */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cke_editable p[style*="width"], .cke_editable span[style*="width"], article p[style*="width"], article span[style*="width"] { width: auto !important; max-width: 100% !important; } /* 기본 blockquote 스타일 */ blockquote { border-left: 4px solid #c0392b; /* 사이트 분위기와 맞는 붉은 계열 */ padding: 12px 18px; margin: 20px 0; background: #fafafa; font-style: normal; color: #333; line-height: 1.6; } /* blockquote 안의 p 태그 정렬 */ blockquote p { margin: 0 0 10px 0; text-align: justify; } /* 마지막 p 태그 여백 제거 */ blockquote p:last-child { margin-bottom: 0; } -
[원청교섭 쟁취! 이재명 정부에 맞선 7월 총파업 조직하자! - Ⅲ] 2026년 7월 노동자 총파업, 물러설 수 없는 투쟁이다!'사회적 대화'는 자본과 정부의 질서 안에 노동자운동을 묶어두는 장치다. 이재명 정부는 한편에서는 ‘노동운동 열심히 하라’는 덕담과 함께 ‘대화’를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폭력 경찰을 투입해 자본에 맞서는 전투적 노동자들의 투쟁을 탄압한다. 노동자 운동 상층과 이재명 정부의 관계가 긴밀해지는 만큼, 절대다수 하층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의 생존권과 기본권은 억눌린다. 자본과 정부가 노동자를 가르려 한다면, 노동자는 총단결과 총파업으로 맞서야 한다. △원청교섭 쟁취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과 총고용 보장 △미국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과 제국주의 침략전쟁 반대 △차별금지법 쟁취 △물가임금연동제 도입 △청년고용 창출 등 요구를 건 2026년 7월 노동자 총파업은 물러설 수 없는 투쟁이다. 사진: 노동과 세계 1. 반노동 이재명 정부 - ‘사회적 대화’ 제의와 함께 벌어지는 거침없는 노동 탄압 이재명은 2024년 3월, 총선을 앞두고 한국노총을 방문했다. 그 자리에서 윤석열의 노동정책은 “반노동 그 자체”이며 “거꾸로 가는 노동 시계를 바로 잡을 것”이라고 했다. 이때 이재명이 언급한 윤석열의 반노동 정책은 ‘건설노조 탄압, 현행 주 52시간제를 주 69시간까지 연장하려는 시도, 노조법 2·3조 개정안 거부권 행사,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와 법 내용 왜곡’이었다. 당시 이재명은 “노동자의 안전한 삶이 곧 민생”이라고 말했고, 민주당은 “민생을 살리고, 노동 존중 사회를 만들기 위해 힘차게 전진하겠다”라며 노동자 대변인인 양 행세했다. 그러나 이재명의 ‘친노동’ 행세는 오래가지 않았다. 2025년 2월 20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된 윤석열의 첫 형사재판이 열린 날, 이재명은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을 방문했다. 이날 이재명은 현대자동차 사장 등에게 “기업 성장이 그 나라 경제성장의 전부다. 기업 성장을 통해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라며 노골적인 친자본 언사를 늘어놓았다. 이후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는 자본의 대변자로서의 본심을 드러냈다. 이재명 정부는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가 될 것”이며, ‘법과 정책이 금지하지 않는 행위는 모두 허용할 것’이라며 친자본 본색을 숨기지 않았다. 이재명은 연설 내내 ‘노동’은 단지 2번 언급했을 뿐이다. 반면 ‘성장’은 23번, ‘경제’는 12번, ‘기업’은 6번을 말하며 앞으로 어떤 길을 갈 것인지를 보여줬다. 이재명 집권 이후인 2025년 6월, 태안화력발전소 김충현 노동자가 중대재해로 사망했다. 이재명은 이에 대해 “사람보다 이윤이 앞서는 사회에서 안전은 가장 먼저 무너진다”라며 “기업의 책임 회피와 정부의 무관심 속에, 노동자의 생명은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충현 사망 책임자인 서부발전과 한전KPS 원청 대표는 검찰에 송치되지도 않았다. 더 안전한 일터를 위해 한전KPS 하청노동자를 직접 고용한다는 고 김충현 대책위원회와의 약속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고 김충현 노동자와 그 동료들의 원청공기업인 한전KPS는 법원의 불법파견 인정과 비정규직 노동자 직접고용 판결에 불복하며 항소하기까지 했다. 이재명 정부는 공공부문 기업들을 지배하고 있음에도 한전KPS의 항소 포기를 강제하기는커녕 자본의 이해를 철저히 대변했다. 2026년 5월 30일 고 김충현 노동자 1주기 추모대회 사진: 공공운수노조 2025년 7월, 이재명 정부 첫해 2026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고작 2.9%에 불과했다. 역대 정부 첫해 인상률 중 두 번째로 낮은 수치다. 이재명 정부는 반도체, 자동차, 조선, 방위산업 등 독점자본을 ‘전략산업’으로 격상시켜 천문학적인 재정을 지원하는 반면, 열악한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할 정부의 책임은 방기했다. 마찬가지로 노동부 장관과 민주당 대표 등이 장기투쟁 사업장들을 방문해 투쟁을 잠재웠을 뿐, 문제 해결을 위한 악질 자본가들에 대한 그 어떤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심지어 민주노조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윤석열 정부의 노동 탄압 수단인 노동조합 회계공시제도는 이재명 정부에서도 폐기하지 않았다. 이재명은 중대한 사건과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현란한 수사를 늘어놓는다. 그러나 아무리 그럴듯한 말을 앞세워도, 이재명 정부가 자본가계급의 이익과 부를 대변한다는 사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차이가 있다면 지배 방식뿐이다. 윤석열 정부가 노동자 민중 전반을 노골적으로 억압했다면, 이재명 정부는 더 교묘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노동자 민중을 분할하고 탄압한다. 이재명 정부의 허울뿐인 ‘노동 존중’을 떠받치는 것이 사회적 합의주의다. 2024년 총선에서 이재명의 민주당은 일부 개량주의 진보정당과 자유주의 시민사회를 동원해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을 만들었고, 진보당은 위성정당에 참여했다. 윤석열 정권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흡수한 민주당은 총선에서 압승했다. 윤석열 친위쿠데타에 맞선 투쟁과 대선을 경유하며, 민주당과 노동자 운동 상층의 밀착은 더욱 강화됐다. 민주노총 위원장이 이재명 지지 대선 방침을 제출했고, 진보당은 이재명 지지를 선언하며 대선에서 사퇴했다. 노동자 운동 일부와의 밀착을 끌어낸 민주당은 노동자 민중운동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지속하고자 한다. 이것은 이재명 집권 이후 ‘사회적 대화’로 표현된다. 이재명 정부는 노동자 운동 상층과 동반자적 관계를 형성하며 민주당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확산하려 한다. 반면 최저임금·비정규직·이주노동자,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등 절대다수 하층 노동자의 생존권과 노동기본권 확대는 말 잔치에 그칠 뿐이다. 또한 윤석열 친위쿠데타에 맞서 싸운 여성·성소수자·장애인 등 소수자의 생존권과 평등권은 외면하며 짓누른다. 그 많은 노동자 민중이 광장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외쳤음에도, 정부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을 반복할 뿐이다. 심지어 국무총리 김민석은 “동성애를 모든 인간이 택했을 때 인류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라는 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았으나, 이에 대해 사과도, 반성도 하지 않았다. 이렇듯 이재명 정부는 한편에서는 ‘노동운동 열심히 하라’는 덕담과 함께 노동자 민중운동 세력을 향해 ‘대화’를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폭력 경찰을 투입해 자본에 맞서는 전투적 노동자들의 투쟁을 탄압한다. 노동자 운동 상층과 이재명 정부의 관계가 긴밀해지는 만큼, 절대다수 하층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의 생존권과 기본권은 억눌린다. 또한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노동자 운동 상층 관료들에게 외면받으면 받을수록, 이재명 정부는 전투적으로 싸우는 노동자들을 혹독하게 탄압한다. 이런 조건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절박한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자본가들은 이런 노동자 운동 상층의 상태와 행보를 보며 투쟁의 장기화를 유도하고, 노동자들을 고사시키려 한다. 사회적 대화를 종용하는 이재명 정부 아래 서광석 열사가 목숨을 잃었다. BGF리테일은 자신이 원청 사용자임을 부정하며 화물연대와의 교섭을 모조리 거부했고, 폭력 경찰을 앞세워 무리한 대체 수송을 강행하다 결국 4월 20일 열사를 죽였다. 이런 폭력 경찰에 의한 참변은 우연이 아니다. 2026년 2월, 세종호텔 로비농성을 이재명 정부가 지휘하는 폭력 경찰이 침탈했고, 4월에는 지혜복 교사의 고공농성에 연대한 고진수 동지를 구속했다. 유예되고 또 유예된 택시월급제의 즉각 시행을 요구하며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고영기 동지가 고공에 오른 상황에서조차, 민주당은 택시자본가들을 위해 월급제 유예법안을 통과시켰다. 우리는 민주당 노무현 정권 당시 가장 많은 열사가 목숨을 잃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의 분할 지배에 흔들리는 노동자 운동의 현 상황은 노무현 정권 당시와 비슷하다. 노동자 운동이 이재명 정부에 대한 환상과 기대를 떨치고, 자본과 정부에 대한 독립성과 투쟁성을 복원해야 한다. 노동자 운동이 가난한 하층 노동자와 사회적 소수자의 기본권리를 위한 계급단결 투쟁을 조직할 때, 이재명 정부에 맞선 정치투쟁에 나설 때, 또 다른 노동자 민중의 희생을 막을 수 있다. 2. 2026년 노동자 투쟁의 핵심 - 원청교섭 쟁취 투쟁을 자본과 정부에 맞선 정치투쟁으로 이재명 정부는 노조법 2·3조 개정을 치적으로 포장한다. 그러나 이는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의 치적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수십 년간 쌓은 투쟁 성과와 판례를 반영한 결과이다. 개정 노조법 제2조 제2호는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해당 노동자의 근로조건 등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배력 또는 영향력이 있는 자”를 사용자로 규정했다. 그러나 이 규정은 원청자본가들에게 교섭 의무를 강제하지 못한다. 2026년 4월 24일 현재, 민주노총 산하 575개 노동조합이 원청자본에 교섭 요구 공문을 발송했다. 그러나 원청자본가들은 개정 노조법 제2조 제2호가 규정하는 하청노동자의 사용자가 아니라며 교섭을 거부하고 있다. 교섭노조 확정을 공고한 원청자본은 고작 21개에 불과하다. 노동자 정의를 확대하지 못한 점, ‘원청’을 ‘사용자’라고 명시하지 못한 점 등 개정 노조법 자체의 한계는 이미 드러났다. 원청자본가들은 이 한계를 활용해 교섭을 회피·거부하고 있으며, 노동위원회 역시 원청사용자성을 부정하고 있다. 이로써 개정 노조법 2조가 원청교섭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그럼에도 올해 투쟁 정세의 초점은 개정 노조법에 따른 하청노동자들의 원청교섭 쟁취 투쟁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수십 년 동안 투쟁한 성과인 노조법 개정 이후, 그 개정을 토대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도약할 수 있느냐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등 산별 연맹은 올해 원청교섭을 핵심 투쟁으로 결정했다. 또한 올해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원청교섭과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7월 총파업을 확정한 상황이다. 2026년 4월 24일 현재, 민주노총이 종합한 원청교섭 상황은 다음 표와 같다. 교섭 요구 공문을 발송한 575개 사업장 중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한 곳은 46개로 8%에 불과하다. 교섭노조를 확정 공고한 사업장은 21개로 3.7%에 불과하다. 원청자본가들은 하나로 단합해 교섭을 거부하며 2026년 노동자 투쟁에 대한 저지선을 치고 있다. 게다가, 고용노동부는 교섭 요구부터 교섭노조 확정 공고까지 약 45일에 달하는 복잡한 절차에 노동조합을 묶어놓고 자본가들의 원청교섭 무력화 책략을 지원하고 있다. 금속노조의 경우, 지난 3월 10일부로 69개 금속노조 산하 지회가 22개 원청자본을 상대로 교섭공문을 발송했다. 그중 교섭노조를 확정 공고한 사업장은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뿐이다. 금속노조 69개 지회 중 현대자동차그룹 산하 노조들이 약 80%를 차지한다. 그러나 현대자동차그룹은 4월 20일 대표이사 김영일 명의로 노조법 제2조 제2호에 따르면 자신은 교섭 요구 사업장 노동자의 사용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교섭에 응할 수 없음”을 금속노조에 통보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교섭 거부를 통보함으로써 금속노조 원청교섭 투쟁은 답보상태에 빠졌다. 이미 금속노조는 조선산업을 제외하면 개정 노조법 시행령 절차에 따른 쟁의권 확보가 어렵다고 예측하고 산하 지회 보충 교섭을 병행해 쟁의권을 확보한다는 방향을 세웠다. 원청자본의 교섭 해태와 거부에 따른 난관은 이미 예상됐던 일이다. 2026년 원청교섭 투쟁은 개정 노조법 자체의 허점과 교섭 창구 단일화 시행령의 반노동자적 본질 때문에, 법적 교섭 절차에 얽매여서는 쉽게 돌파할 수 없다. 강력한 총파업 없이 완고하게 교섭을 거부하는 원청자본의 책략을 돌파하기 어렵다는 것이 엄중한 현실이다. 올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원청교섭 투쟁에 대한 원청자본과 정부의 대응 전략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가능한 한 교섭을 거부한다. 둘째, 교섭을 거부할 수 없는 의제가 존재하는 노조는 교섭에 응하되, 교섭을 해당 의제만으로 한정해 비정규직 노조의 요구와 투쟁을 제한한다. 셋째, 교섭 단위를 분리하여 원청에 맞서 독자적 투쟁을 전개하려는 비정규직 노조들을 상대로, 자회사 등 중간 업체를 앞세워 노동·안전·보건 등 법이 강제하는 최소한의 요구를 협의한다. 넷째, 금속노조 등 상급단체 방침에 따라 공동투쟁·공동파업 가능성이 있는 사업장들에 대한 교섭을 완고하게 거부하며, 투쟁의 파급력에 따라 개별 교섭의 외양을 취한다. 원청자본과 정부의 전략을 분쇄하고 원청교섭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계급단결이 필수다. 올해 원청교섭 쟁취, 7월 총파업은 모든 노동자에게 막중한 투쟁이다. 산업 호황은 반도체와 방위산업 등 극히 일부 산업, 그것도 해당 산업 공급망 내 상위 독점기업에 한정됨에 따라 노동자계급 내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2025년 8월 기준, 노동자 상위 10%와 하위 10% 사이의 임금 격차는 월 임금 기준 5.52배에서 6.11배로 확대되었다. 중위 임금의 2/3 미만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는 시급 기준 329만 명으로 전년보다 14만 명 증가했고, 월급 기준 450만 명으로 37만 명 증가했다(한국노동사회연구소, 2025년 11월 30일). 일부 대기업에 한정된 이윤 축적은 노동자 내부의 분절과 격차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정부 주도로 본격화하는 노동개악에 대한 대응, 그리고 AI 도입 대응 역시 마찬가지다. 이재명 정부는 1월 청와대와 고용노동부·재정경제부·중소벤처기업부 등이 참여하는 범부처 ‘노동구조개혁 TF’를 출범하며 전체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노동개악에 나섰다. 언론에 따르면 노동구조개혁 TF가 주도하는 노동개악 추진 방향은 △기간제 비정규직 노동자 사용기한 3년 이상으로 연장 △직무·성과급제 확대 △전략산업 특별연장근로 확대 △지역 메가특구 노동시간 규제완화 등이다. 소위 ‘K자 양극화’로 일부 전략산업을 제외한 대부분 산업이 이윤 축적 위기를 겪는 지금, 원청자본은 정부 정책 방향을 지렛대로 구조조정을 본격화할 수밖에 없다. 경총과 한경협 등 자본가단체 역시 정부 노동시장 구조개편 논의에 발맞춰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파견허용 범위 확대,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 전환, 노동시간 규제 완화, 특별연장근로 확대와 규제 특례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AI 도입에 대한 이재명 정부 대응 역시 마찬가지다. 자본과 정부는 전 산업에 걸쳐 AI 기반 산업로봇, 협동로봇, 자율이동로봇, 자율운반로봇, 피지컬AI 등으로 모든 업종과 산업, 생산직과 사무직 일자리를 대체하려 한다. 이제 자본과 정부는 제조업 전반에 피지컬AI 도입을 본격화했다. 2026년 4월, 산업통상부는 ‘제조암묵지기반 AI모델개발사업’을 공고하고, 자동차·조선·철강·기계·전자·반도체·디스플레이·바이오·화학·방산·뿌리산업 등 10대 제조 분야에서 숙련노동자의 경험과 노하우, 곧 '암묵지'를 수집·정제해 AI가 학습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노동자가 오랜 시간 축적한 숙련과 판단력을 자본이 데이터로 수집해 사유화하고, 이를 노동자 대체와 노동 통제를 획기적으로 강화하려는 시도다. 정부와 자본은 노동자의 동의권, 보상권, 데이터 소유·통제권, 고용보장 방안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미 지식노동자들이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AI로 대체되고 있다. 향후 AI 도입이 노동자들의 투쟁 없이 자본가들의 의도대로 추진된다면, 수년 내 모든 산업에서 대량 해고, 노동강도 강화, 노동 통제 강화가 진행될 것이다. 그야말로 전체 노동자에 대한 대대적 공격이 펼쳐질 것이다. 1998년 IMF 경제위기 당시 정리해고 공세를 기억하자. 당시 자본은 이윤 축적의 위기 앞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리지 않고 대규모 정리해고를 강행했다. 자본은 간접고용 하청노동자와 기간제 직접고용 노동자들을 우선 해고한 후 정규직까지 정리해고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분할하며 결국 모든 노동자를 공격한 것이다. 지금 자본의 전략 또한 마찬가지다. 다만 이번에는 순차적으로 공장과 사업장을 폐쇄한 후 최첨단 자동화와 로봇 공장으로 재건축하면서, 우선 정규직의 고용은 보장하되 모든 비정규직을 정리해고하는 것이다. 그다음 소수화된 노조 정규직들의 노동강도와 통제를 강화하고 인원을 계속 축소하려는 게 자본의 전략이다. 또다시 패배하지 않는 길은 자본과 이재명 정부의 분할 전략에 맞선 노동자 총단결 대안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것이 2026년 원청교섭 투쟁, 그리고 모든 노동자의 생존권 쟁취를 위한 7월 총파업 투쟁의 막대한 중요성이다. 3. 7월 노동자 총파업 - 전체 노동자의 총단결·총파업으로 사회대변혁의 길을 열자 지금은 엄중한 시기다. 그러나 민주노총과 주요 산별노조 지도부 일부는 이재명 정부와 유대에 골몰한다. 6월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가시화하는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후보단일화 역시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민주당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기제다. 따라서 올해 민주노총 지도부가 이재명 정부와 자본에 맞서 실질적인 총파업을 조직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원청교섭 쟁취 △특고·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 등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확대 △미국·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과 제국주의 전쟁 반대 △차별금지법 쟁취 △물가임금연동제 도입 △청년고용 창출 등 노동자 민중의 절박한 요구 쟁취를 위한 총파업의 가능성이 닫혀 있다고 예단할 순 없다. 분명한 것은 자신의 절박한 요구를 쟁취하고자 원청교섭 투쟁에 나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7월 총파업 선봉에 서야 한다는 사실이다. 바로 민주노총 산하 원청교섭 사업장 노동자, 이재명 정부를 사용자로 둔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현대자동차그룹과 싸우는 금속노조 원청교섭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촉발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7·8·9월 3차례 총파업을 결의한 금속노조의 경우 6월 지자체 선거, 7월 총파업, 하계휴가, 8~9월 총파업, 민주노총 선거로 이어지는 흐름과 일정은 총파업의 원심력을 높이는 난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금속노조 안에서도 원청교섭에 나선 사업장과 그렇지 않은 사업장이 나뉘어 있고, 원청교섭을 요구하는 사내하청 노조와 그렇지 않은 정규직 노조가 나뉘어 있다. 또한 7월 총파업을 시작으로 8~9월 총파업을 조직할 계획과 준비 정도에서 금속노조 18만 조합원 내 상당한 온도 차이도 존재하는 상황이다. 결국 관건은 생존권과 고용 위기에 직면한 노동자들이 주도하는 원청교섭 투쟁을 전 사회적으로 확대하는 데 있다. 원청교섭 투쟁은 현장의 힘으로 가능하되, 특정 현장 노동자들의 힘만으로 돌파할 수 없다는 게 분명해졌다. 거의 모든 자본가가 하청노동자들의 교섭 요구를 거부하는 지금, 원청교섭 쟁취 요구를 들고 전체 자본가와 이재명 정부에 맞선 투쟁을 벌여야 한다. 심지어 “공공부문 모범사용자가 되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약속이 허구였음을 드러내듯, 공기업 중 교섭 요구를 공고한 기관은 두 곳에 불과하다. 민간 자본이건 공기업 자본이건, 자본가들은 합심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교섭을 거부하며 하청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부정하고 있다. 어느새 870만 명으로 폭증한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 하청노동자의 생존권과 총고용 보장을 위한 원청교섭 쟁취를 목표로 노동자 총단결·총파업의 길로 전진해야 한다. 올해 노동자 총파업의 요구는 전체 노동자의 요구를 대변한다. 그렇기에 이 투쟁은 더 단호할수록, 정치투쟁의 성격을 강화할수록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며, 절대다수 미조직 노동자들의 지지 속에 펼쳐질 수 있다. 사진: 노동과 세계 원청교섭 쟁취 투쟁은 BGF 자본에 맞선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투쟁을 시작으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금속산업 사업장, 공공부문 사업장, 대학 사업장 등 개별사업장 교섭을 넘어 공동투쟁·공동파업의 흐름으로 확장해야 길을 열 수 있다. 이것이 전국적 연대로 확장된 서광석 열사 투쟁이 보여준 교훈이다. 6월 발전 노동자 행진과 최저임금 투쟁은 총파업의 흐름을 형성하는 계기다. 6월 13일, 발전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공공재생에너지 확대! 발전노동자 총고용 보장! 2026 정의로운 전환 노동자 시민 대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고 김충현 노동자 사망에도 여전히 발전산업 다단계 하청구조를 유지하는 이재명 정부,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도 고용보장 대책은 없는 발전소 원청자본과 이재명 정부에 맞선 투쟁에 함께하자. 공공재생에너지 확대로 총고용 보장을 요구하는 발전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7월 총파업으로 가는 길을 다지자. 또한 6월 최저임금 투쟁 시기에는 870만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를 비롯한 모든 노동자에게 최저임금 적용과 노동자성 인정을 요구하며 일터기본법의 허구를 드러내고, 모든 노동자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 진짜 사장 책임 요구를 사회적으로 확대하자. 원청교섭을 거부하며 개정 노조법을 무력화하는 원청자본가들과 친자본·반노동 정책을 쏟아내는 이재명 정부에 맞서 △원청교섭 쟁취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과 총고용 보장 △미국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과 제국주의 침략전쟁 반대 △차별금지법 쟁취 △물가임금연동제 도입 △청년고용 창출 등 노동자 민중의 절박한 요구를 걸고 7월 총파업을 조직하기 위한 준비와 결의로서 아래를 제안한다. ▸ 모든 노동조합 내에서 ‘일터기본법’을 비롯한 이재명 정부의 가짜 노동권 확대정책, 모든 노동자 원청교섭권 보장은커녕 공공부문 악질사용자로 역할하는 이재명 정부를 규탄하는 목소리를 조직하자. ▸ 금속산업과 공공부문 원청교섭 비정규직 사업장들이 원청 대자본과 이재명 정부에 맞선 7월 총파업 투쟁에서 선봉에 서자. ▸ 원청교섭 사업장 지도부는 7월 총파업 조직화를 위한 현장 순회, 전체 조합원의 총파업 참여를 위한 교육·선전을 배치하자. ▸ 원청교섭 사업장들은 전체 조합원 임단투 결의대회를 열어 올해 임단투 승리와 원청교섭 쟁취를 위한 7월 총파업 참여를 결의하자.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 요구, 고용 보장 요구, 원청교섭 쟁취 요구를 분리하지 말고 하나의 투쟁으로 결합해야 한다. ▸ 원청교섭 사업장들은 업종과 산업별로 원청자본을 압박하는 공동투쟁 결의대회를 배치하고, 연대투쟁 확대 속에서 7월 총파업으로 가는 조직력과 투쟁력을 강화하자. ▸ 금속노조 임시대의원대회 교섭 방침 - “모든 단위 조직은 18만 공동 요구 중 '비정규직 고용과 원청교섭권 보장' 요구의 최소 쟁취 없이 의견 접근할 수 없음” - 을 반드시 사수하자. 이 방침은 원청교섭 투쟁을 일부 비정규직 사업장의 요구로 밀어내지 않고, 금속노조의 공동 투쟁으로 세우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 금속노조 원청교섭 사업장 중 현대차그룹 계열 서열 물류사·모듈 부품사·제철소·조선소 지회들에서 원하청 노동자 공동투쟁·공동파업을 조직하자. 원청 대자본은 다단계 하청 구조로 노동자를 분할하고 사용자 책임을 회피해 왔다. 이에 맞서 원하청 노동자가 공동 요구를 세우고 함께 투쟁해야 한다. ▸ 미국-이란 전쟁과 팔레스타인 학살 반대를 7월 총파업의 요구로 세우자. 전쟁은 노동자계급의 삶과 직결되어 있다. 팔레스타인 학살과 중동 전쟁 확대는 한국 노동자에게도 군비 증강, 물가 상승, 노동권 후퇴, 민주주의 억압으로 되돌아온다. ▸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폭등과 인플레이션 고통 전가에 맞서, 물가상승분을 임금에 자동 반영하는 물가임금연동제 도입과 실질임금 보장을 요구하자. ▸ 차별금지법 제정을 7월 총파업의 요구로 세우자. 차별금지법은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가로막는 차별, 혐오와 배제에 맞선 최소한의 평등권 요구다. 여성·성소수자·장애인·이주민·비정규직·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 등 모든 노동자의 권리를 함께 내걸고, 7월 총파업을 차별과 배제에 맞선 계급투쟁으로 확대하자. ▸ ‘쉬었음’ 청년과 은둔고립 청년의 증가는 개인의 의지 부족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만든 문제다. 공공부문부터 청년 일자리 창출, 생활임금 보장,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요구하자. ▸ 올해 노동자 총파업의 성과를 바탕으로 △비정규직 철폐 △특고·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 등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AI 도입에 대한 노동자 통제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모든 노동자 총고용 보장 △팔레스타인 학살과 제국주의 침략전쟁 중단 △차별금지법 쟁취 등 사회변혁을 위한 정치투쟁 전선을 열어가자. -
[후기] 현대차 진짜 사장 당장 나와! - 5월 28일 원청교섭 불응 현대차 규탄 금속노조 결의대회2026년 5월 28일, 강한 햇살이 내리쬐던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정문 앞에는 현대자동차를 원청으로 둔 금속노동자들이 한데 모였다. 노조법에 의거하여 원청인 현대자동차에게 교섭 공문을 발송했으나 교섭을 거부당한 현대자동차 남양·아산·울산 전주비정규직지회와 현대그린푸드 경기·울산·전주지회, 자동차판매연대 서울과 부산양산지회, 보안지회[1] 그리고 현대글로비스 광주·전주·울산지회[2]와 금속노조 울산지부 노동자들이 ‘원청교섭 불응 현대차 규탄 금속노조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인도에는 현대글로비스, 차도에는 현대자동차가 원청인 노동자들 약 700명의 노동자가 모였다. 인도는 현대글로비스를 실질적 사장으로 둔 글로비스 3개 지회 노동자들이 앉았다. 차도 쪽에는 현대차를 원청으로 둔 10개 지회가 자리했다. 하청노동자와 현대자동차 정규직, 민주노총 법률원, 울산지역 활동가, 외국어교육지회 이주노동자 등도 함께하며 2026년 원청교섭 투쟁의 열기를 올렸다. 정부와 자본은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노조 리스크가 커졌다’고 큰소린데, 현대차의 59년 역사는 진짜 사장으로서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몸집을 키우며 수많은 노동자의 고혈을 짜낸 역사다. 하청, 비정규직노동자의 투쟁으로 이제야 법적으로도 진짜 사장을 부를 수 있는 시간이 왔을 뿐이다. 노동자들은 어느 때보다 우렁찬 목소리로 “하청 뒤에 숨지 말고, 진짜 사장 직접 나와”, “금속노조 단결투쟁 원청교섭 쟁취하자”를 외쳤다. 이수기업 하청노동자 600일 거리에 내몬 사장님 사전 발언은 현대차 정문 앞 천막의 주인, 해고 600일을 넘기고 6월 2일 복직결의대회를 준비하는 이수기업 노동자들이었다. 안미숙 대표는 “6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현대차에게 정리해고를 책임지라고 요구해왔지만, 현대차는 단 한 번도 책임있는 자세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다. 대신 ‘취업 알선’ 따위를 운운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대공장 재벌의 부당노동행위를 눈감아주기에만 급급하다. 이것이 현대차 자본과 정권의 민낯이다”고 질책했다. 하지만 우리는 “현대차 자본을 움직이는 부속품이 아니라, 현대차를 지탱하는 당당한 노동자”라며 “저들의 오만을 꺾는 방법은 노동자의 강철 같은 총단결”임을 강조했다. “진짜 원청사용자성을 쟁취하자. 이수기업 해고 동지들도 끝까지 함께 싸우겠다”며 해고노동자로서 다부진 결의를 밝혔다. 7월 총파업의 결의를 보여주다 박상만 금속노조 위원장은 “금속노조에서 원청교섭을 요구한 전체 2만 1천 명의 조합원 중 무려 1만 6천 명이 현대차그룹사 소속이다. 그럼에도 현대차는 여전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듯 교섭을 거부하고 있다. 위원장으로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올해 원청교섭 쟁취를 요구 전면에 세우고 위원장의 명운을 걸겠다. 7월 15일 총파업 한 번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8월 총파업, 9월 총파업까지, 원청교섭을 쟁취할 때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선포했다. 최용규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장은 “작년 기준 사내 유보금이 189조면 그린푸드, 보안지회와 비정규직 노동자들, 심지어 2년짜리 청년노동자들 전부 다 정규직화시켜야 한다”며 “현대차가 그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지은 죄가 커서 줘야 할 게 너무 많으니 교섭에 못 나온다”, “7월 15일 원하청 파업을 반드시 성사시켜 그동안 하청노동자가 당했던 걸 모두 되갚아주자”고 강조했다. 샤워기 1대부터 수수료 책정까지 결정은 현대차 배윤자 현대그린푸드지회장은 “원청에서는 식당 개선공사 시 식당노동자의 동선, 작업환경 등에 관한 의견은 하나도 반영하지 않은 결과, 창문을 모두 없애 여름에 더위에 쓰러지는 노동자가 공사 전보다 훨씬 많아졌”음을 알렸다. “명촌식당은 여성 노동자가 십여 명인데 샤워기가 한 개밖에 없다. 몇 년 동안 샤워실 공사를 요구하는데 현대그린푸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수수방관하고, 원청은 모른 척”하는 현장을 고발하며 투쟁을 결의했다. 김선영 자동차판매연대지회장은 ‘현대차를 팔고, 입사부터 임금인 수수료, 퇴사까지 현대자동차가 직접 지배하고 결정하는데 특수고용노동자’인 문제를 지적했다. “정몽구부터 정의선까지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유린했고, 지금도 교섭을 거부하면서 조롱하듯 법을 무시하는 건 법을 지키지 않아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걸 알기 때문”이라며 “이재명 정부는 현대자동차 정의선을 엄중처벌하라”고 촉구했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장은 공장 내 금연구역 미준수에 출입을 금지시키는 현대차의 행태, 현대자동차보안지회장은 원청교섭 관련 지노위 심문회의에서 현대차의 어이없는 발뺌을 짚으며 규탄했다. 원청교섭 쟁취와 총고용 사수 투쟁이 향할 곳 김미옥 현대글로비스지회장은 “현대차 자본은 내년에 1공장과 42라인을 재건축이 실제 전 공장 구조조정의 시작”이라며 현대차의 현 상황에서 원청교섭 투쟁의 의미를 강조했다. 현대글로비스 7개 분회도 아이템 축소로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현대차 자본의 계획은 “디에프(DF, Dark Factory)247, 소프트웨어 중심 공장 추진임이 드러났다”며 이는 “현대차 공장 내 모든 비정규직, 서열과 부품사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고 정규직 일자리까지 축소해 노동자가 거의 없는 공장을 운영하겠다는 것”임을 밝혔다. “현대차그룹 노동자들의 피와 땀을 착취한 돈을 투자해서 우리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고용을 짓밟겠다는 자본을 용납할 수 없다”고 규탄했다. 이어서 “현재도 많은 노조가 현대차 원청으로부터 부당한 정리해고, 아이템 축소, 일상적 구조조정, 노조 탄압으로 고통을 받는 상황”에서 “인공지능과 로봇 공장을 확대해서 노동자를 다 죽이려는 현대차 자본에 맞서려면, 원하청 노동자와 부품서열 노동자들이 공동투쟁·공동파업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속노조 7월 총파업과 원청교섭 사업장 공동파업의 힘으로 현대차와 현대글로비스를 교섭 자리에 앉히자” 또한 “원청자본이 교섭에서 모든 노동자의 생존권과 총고용을 책임지도록 함께 투쟁하자”고 외쳤다. 현대글로비스 울산, 전주, 광주지회 노동자들은 조합원 약 1/3이 집회에 참여해 원청교섭 쟁취와 총고용 보장 투쟁의 의지를 드러내며 전체 금속노조 파업 시동의 기세를 높였다. 금속노조 7월 총파업, 확실한 시동 이날 금속노조 집회 참가자들은 저마다 진짜 사장 현대차에 대한 울분과 결의를 쏟아내며 7월 총파업 시동을 확실히 걸었다. 같은 날, 한국지엠하청 노동자들도 실질적 사용자인 한국지엠에 원청교섭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금속노조는 오랜만에 투쟁의 기세를 모으고 있다. 화물연대 CU투쟁에 이어 금속노조가 원청교섭 파업을 준비하며 진짜 사장 아래 신음하는 더 많은 이주·정주·플랫폼·특수노동자의 노동권 쟁취에 앞장서도록 분투하자. [각주] [1] 10개 지회, 1,675명이 현대차에 원청교섭을 요구했으나, 현대차 자본이 거부했다. 4차례 교섭을 열었으나, 사측은 참석하지 않았다. [2] 현대글로비스 3개 지회 1,292명은 현대글로비스에 원청교섭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 3차례 교섭을 열었으나, 이 역시 사측은 참석하지 않았다. -
[자료집] 화물연대 CU투쟁으로 보는 원청교섭 쟁취투쟁의 전망 - 화물연대 현장 노동자와 함께하는 집담회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고 말하던 화물 노동자들이 동료를 떠나보내야 했다 지난 4월 20일, 화물연대 조합원이자 한 명의 화물 노동자였던 서광석 동지가 CU 원청의 파업 대오 분쇄와 공권력의 탄압 속에 희생되었다. 서광석 열사가 사망한 당일, 고용노동부는 “노조법 제2조에 따른 교섭문제를 넘어선 상황”이라며 화물노동자를 ‘개인사업자’로 규정하고 화물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부정했다. 이는 화물노동자들의 쟁의행위를 ‘파업’이 아니라 ‘집단운송 거부’, ‘개인사업자들의 담합’이라고 규정하며 공정거래법을 동원해 화물노동자들을 탄압한 윤석열 정권과 하등 다르지 않은 입장이었다. 이재명 정부가 동지를 살려낼 수 없다면, 화물 노동자의 대답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교섭은 이루어졌지만 떠나간 열사는 살아 돌아올 수 없다. 교섭을 앞두고 끝의 끝까지 열사에 관한 사항을 쉽게 협의해주지 않아 조인식마저 미루게 만들었던 BGF리테일, 그리고 침묵 속에 있는 CU 원청을 비롯해 화물 노동자를 억압하려 드는 수많은 자본가들이 아직 남아 있다. 그 자본가들을 적극적으로 두둔하고 드는 이재명 정부도 있다. 이제 화물 노동자들의 투쟁은 어디를 향해 전진해야 할까? 열사 투쟁을 경과해오며 현장 화물 노동자들의 고민은 무엇일까. 함께 토론하고, 함께 싸우자! 5월 29일 금요일 저녁 19시. 세 명의 화물 노동자가 토론장에 모인다. 화물 노동자들의 정당한 투쟁에 연대해오고 함께 싸워왔던 많은 동지들이 참석해 더불어 논의해보자! 시간·장소: 2026년 5월 29일(금) 19시 민주노총 15층 (사전신청 및 온라인 참여 신청자 줌링크 발송) 주최: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서울지역위원회 ※발제자료를 아래에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
[성명] 더 많은 이윤을 위한 경영을 모든 노동현장에서 철폐하라5월 26일 오후 2시경, 서울 서소문 고가차로가 붕괴했다. 이로 인해 3명이 사망했고, 3명이 부상을 입었다. 참사로 인해 목숨을 잃은 분들의 명복을, 부상자들의 빠른 쾌유를 빈다. 유족들에도 추모와 위로의 마음을 보낸다. 언제까지 '예고된 인재'를 반복할 셈인가! 1994년, 동아건설의 부실시공 · 서울시의 관리감독 부실 · 틈새균열에 철판깔기 등 땜질 처방의 반복 · 교통통제 미비 등으로 성수대교가 붕괴했고, 32명이 사망했다. 1995년, 삼풍건설산업의 부실시공과 관리부실 · 예고된 붕괴에도 영업을 강행한 경영진 등으로 인해 삼풍백화점이 무너졌고, 502명이 사망했다. 성수대교 참사 이후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특별법)이 제정되었다지만, '광주학동 재개발 철거 건물 붕괴'(2021), '검단신도시 아파트 건설현장 붕괴'(2023), '울산화력발전소 철거 중 붕괴'(2025) 등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떨어짐 · 깔림 · 끼임 등으로 건설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는 일상다반사였다. 전조현상은 언제나 존재했다. 이것이 참사로 이어지지 않게 할 수 있는 기회는 많았다. 이번 서소문 고가차도 붕괴참사도 그렇다. 서울시는 2008년 서소문 고가차도 일부 구간에 미관을 이유로 철제 패널을 덮어씌웠다가, 감사원으로부터 균열과 노후 상태 파악이 어렵다며 개선을 요구받았다. 2019년 정밀안전진단 결과 'D'등급을 받을 당시에도, 이미 콘크리트 박락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교통체증 우려 등을 명목으로 부분적 보수만 하는 등 땜질 처방만 반복했다. 그리고 사고 당일 새벽, 철거작업 중 구조물이 주저앉아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비용 절감을 위한 부실시공'으로 인한 '예고된 인재'라는 기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언제까지 '예고된 인재'라는 말만 반복할 셈인가. 충분히 막을 수 있었지만, 언제나 비용과 공기단축 압박이 우선했기에 사고가 발생했다는 분석은 오래된 진실이다. 속도전에 따른 무리한 시공 ·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활용한 이윤축적 · 비용 절감을 위한 부실시공 및 관리감독 부실 등이 그 기저에 놓여있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중대재해 기업에 대한 징벌적 몰수를 요구한다 이번 서소문 참사에 대한 철저한 원인 조사 및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가 필요하다. 전국건설노동조합이 지적했듯, 해체계획서에 따른 시공이 이루어졌는지, 야간 및 휴일작업이 빈번하지는 않았는지 등을 포함해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또한 현장을 잘 아는 노동자들의 의견을 받아, 위험이 예고되거나 확인된 다른 현장에 대해서도 안전점검을 강화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현장의 위험을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위험이 예고되면 작업을 멈추고 대피할 수 있어야 한다. 부실시공 및 해체작업이 애초부터 가능하지 않도록, 이를 용인해왔던 다단계 하도급 구조, 공사기간 압박 등을 끊어내야 한다. 우리는 숱한 참사를 보았다.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인력을 줄이고, 안전조치를 생략하며, 위험업무를 하청과 재하청으로 떠넘기며 끝내 참사를 낳은 기업이 다시 이윤을 축적할 수 있게 용인하는 한 참사는 반복된다. 우리는 중대재해 기업의 이윤은 물론 기업 자체를 몰수하고, 노동자 민중의 통제 아래 공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이미 현행 중대재해처벌법 역시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중대재해를 발생하게 한 기업에 대해 손해액 5배 내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한다. 다시 한번 참사로 인해 사망한 노동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에게도 깊은 위로와 애도의 마음을 보낸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건설현장을 비롯해 모든 일터에서 노동자가 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2026년 5월 27일 사회주의를향한전진 -
스페인: 미등록 이주민 50만 합법화 - 투쟁은 계속된다지난 1월 27일 스페인 정부는 50만 명이 넘는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합법화 계획을 발표했다. 2025년 12월 31일 이전에 스페인에 도착했고, 최소 5개월 이상 스페인에 실제로 거주했으며 범죄 경력이 없는 이주민이 합법화 대상에 포함된다. 4월 15일 칙령이 승인됐고, 합법화 신청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연속혁명경향-제4인터내셔널’(CRP) 소속의 스페인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 ‘혁명적노동자경향’(CRT) 동지들에게 합법화 정책의 배경을 들었다. 사회당 주도 연립정부가 다음 선거에서 우파가 승리할 가능성에 대응하여, 좌파 내 ‘선거 기반’을 공고히 하려는 의도가 작용했다. 다른 측면으로 이 정책은 ‘이민자 단체들과 좌파 사회운동의 승리’라는 의미를 갖는데, 이민자 단체들과 좌파 사회운동은 ‘지금 당장 합법화(Regularización Ya)’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2021년부터 합법화 ‘입법 발의안’을 위해 약 70만 명의 서명과 900여 개 단체의 지지를 끌어냈다. 현재 ‘혁명적노동자경향’ 동지들은 합법화를 가로막는 수많은 장애물을 걷어내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서류 제출 기한 연장, 범죄경력 조회 면제, 그리고 서류 처리를 위한 인력 확충을 요구하며 노동자 시위를 조직하고 있다. 스페인 상황은 이주민에 대한 강력한 단속추방과 통제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여러 나라에 시사하는 점이 크다. 스페인 ‘혁명적노동자경향’의 기관지 <일간좌파>의 글 두 개를 소개한다. 이 동지들은 “권리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합법화 정책의 의미와 한계, 최근 상황을 알 수 있는 글이다. 특별 합법화: 수년간의 배제 정책 끝에 이주민 운동이 쟁취한 성과 (2026년 1월 28일) 수천 명의 이주민이 수년 동안 거리에서, 동네에서, 일터에서 요구해 온 끝에 스페인 정부가 한 걸음을 내딛었다. 행정상 미등록 상태인 약 70만 명에게 효력이 미칠 특별 합법화 조치가 예고되었다. 외국인법 시행령 개정에 관한 칙령을 국무회의에서 승인함으로써 시행될 이 정책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제도권의 관대한 시혜도 아니다. 이는 조직된 이주민 운동의 지속적 투쟁의 성과이며, 사람들을 비가시화하여 불안정 상태로 내모는 이주민 관리 체제에 맞선 오랜 투쟁이 직접 만들어 낸 성취다. 스페인사회노동당(PSOE)과 포데모스(Podemos) 사이의 합의가 수십 년 동안 쌓아 온 장벽에 생긴 하나의 균열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국경을 폐쇄하고, 이주 통제를 외주화하며, 이주민을 체계적으로 범죄자 취급하는 유럽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이미 이곳에서 생활하고 노동하고 경제의 모든 부문을 떠받치는 사람들을 행정적으로 인정한다는 결정은 늦었지만, 희망을 엿보게 해 준다. ‘지금 당장 합법화(Regularización Ya)’ 운동은 분명하게 주장한다. “합법화는 자선이 아니라 사회 정의다.” 이들은 오늘의 진전이 지금까지 회합과 제안과 조직화를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 온 활동의 직접적 결실이라고 자축한다. 이들의 활동은 수년간의 제도적 봉쇄를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다. ‘지금 당장 합법화’ 운동은 “합법화는 충분히 실현가능한 일이었고, 마침내 현실이 되었다”라고 강조하면서, 불확실하기만 한 의회의 셈법을 기다리지 않고 정부의 행동을 이끌어낸 것은 바로 민중의 압력이었음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정치적 논쟁이란 얼마나 잔혹한 것인지 칙령 승인 과정에서 다시 한번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우파인 인민당(PP)과 극우 정당 복스(Vox)는 경고하고 낙인 찍는 담론을 펴면서 반응했고, 인종주의라는 낡은 망령을 자극하면서 합법화는 커다란 위협이라고 주장했다. 놀랍지는 않다. 두 정당 모두 수년간 이주민을 표적으로 삼아 정치적 자본을 축적했으며, 이주민을 추방하고 구금 시설에 감금하고 기본권까지 체계적으로 부정하는 징벌적 정책을 옹호해 왔다. 그들의 목표는 정주민과 이주민이 공존하도록 환경을 개선하거나 이주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1등 시민과 2등 시민을 가르는 사회적 국경을 강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설명 없이 오늘의 성취를 역사적 전환점이라 주장한다면 이 또한 오류일 것이다. PSOE 정부마저도 오랫동안 “강경 노선”을 고수한 이력이 있다. 즉각적 강제 송환(약식 추방), 입국을 막기 위한 제3국과의 협정, 구금 시설 유지, 체류 자격 및 권리를 얻는 과정을 더욱 가혹하게 만든 법 개정 등이 그것이다. 여전히 심각하게 부당한 이주민 관리 체제가 특별 합법화와 공존하고 있으며, 생명과 존엄보다 통제와 안보를 우선시하는 유럽의 정책도 변하지 않았다. 정치적 권리나 노동권 같은 권리들은 얼마든지 박탈당할 수 있고, 합법화가 이 같은 권리를 자동으로 부여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주민이야말로 불안정화와 비정규 노동 때문에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이들이다. 따라서 오늘의 한 걸음은 중요하지만 그만큼 불충분하다. 중요한 이유는,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행정의 그늘에서 벗어나 노동 계약과 의료를 보장받고 덜 두려운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불충분한 이유는, 미등록 이주민을 구조적으로 양산하는 체제는 해체되지 않았으며, 동일한 배제의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이 합법화의 역사는 분명한 교훈을 준다. 권리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다. 조직된 이주민 운동이 없었다면, 운동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제도적 무관심에 끈질기게 저항하지 않았다면 이 칙령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 갈 길은 멀다. 규율을 목적으로 고안된 외국인법을 폐지하고, 구금 시설을 폐쇄하고, 인종주의적인 단속을 끝내고, 안전한 합법적 경로를 보장하고, 이미 우리 사회의 일부인 사람들을 온전히 인정하는 일이 남아 있다. 오늘, 부분적 승리를 축하한다. 내일, 투쟁은 계속된다. 다른 곳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단죄당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정의는 미완의 과제로 남기 때문이다. 원문: https://www.izquierdadiario.es/Regularizacion-extraordinaria-una-conquista-del-movimiento-migrante-despues-de-anos-de-politicas-de 50만 이주민 특별 합법화의 첫걸음이 관료적 장애물에 가로막히다 (2026년 4월 23일) 지난 4월 15일, 페드로 산체스 정부는 인종주의적인 제도로 인해 미등록 상태에 놓인 50만 명 이상의 이주민을 합법화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할 칙령을 승인했다. 신청서 제출 기한은 6월 30일로 빠듯하고, 혼란스러운 가운데 신청 절차가 시작되었다. 관청 앞에 늘어선 줄, 밤샘 대기, 방해물을 세우거나 아예 협조를 거부하는 시청, 무엇보다 이주민 운동이 막아내기 위해 투쟁해 온 문서, 바로 “취약성 증명서”가 혼란을 가중한다. 이번 조치는 위대한 사회적 진전으로 포장되었지만, 국가의 이주 관리 체제에 스며든 제도적 인종주의 때문에 또 하나의 장애물로 변질될 위기에 처했다. 신청서 제출이 시작된 4월 16일 이후 언론을 통해 퍼진 사진들은 거리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과 카스텔로·발렌시아·만레사·세비야·팔마 데 마요르카 등 전국의 도시에 늘어선 줄을 보여준다. 이전의 칙령 초안 중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았던 “취약성 증명서”를 구하는 줄이다. ‘지금 당장 합법화(Regularización Ya)’ 운동의 연대 단위들은 증명서 요건을 칙령에서 삭제하기 위해 투쟁했지만, 결국 정부가 포함시켰다. 칙령 본문 초안은 미등록 지위에 놓인 모든 사람이 취약한 상태에 있다고 추정했지만, 국가평의회가 이러한 추정에 반대하는 권고안을 내놓았고, 결국 증명서 제출 요건이 삽입되었다. 그 결과, 합법적 지위를 얻기 위해 수년간 기다려 온 사람들을 정면으로 강타하는 관료적 병목이 생겨났다. 사회 복지 담당 부서들은 마비 상태다. 사회복지사들은 취약성 보고서를 발급해야 한다는 사실을 4월 15일 칙령 공표 전까지 알지 못했으며, 아침에 출근하고 보니 이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고 비판한다. 이메일로 하달되는 지침은 분 단위로 바뀌었고, 직원들은 몰려드는 민원인들에게 무어라 답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이를테면 지난 4월 21일 수요일 오전, 바르셀로나의 이민자·이주자·난민 지원 서비스(SAIER)는 기나긴 줄에 압도되었고 사회 복지 제도가 구조적으로 붕괴했음을 다시 한번 여실히 드러냈다. 수백 명의 군중이 새벽부터 기다렸고, 몇몇 돌발 상황 때문에 몇 시간 동안 민원 접수가 중단되어 대기자의 상당수를 응대하지 못했다. 이것은 예외적인 사태가 전혀 아니며, 일상적으로 포화 상태인 사회 복지 현실을 반영한다. 절차를 예측 가능했음에도 시청의 인력 보강 등은 분명 불충분했고, 이주민들이 그 자체로 이미 겪고 있는 장벽과 제도적 폭력은 이렇게 지속된다. 한편, 마드리드에서는 칙령이 승인되기 한참 전에도 사회복지사 면담 예약은 6월부터나 가능했고, 이렇게 대기 명단이 길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정부가 정한 두 달 반 이내에 증명서를 발급받는 것이 불가능하다. 제도적 인종주의라는 말은 은유가 아니다. 그것은 잘못된 정보, 정치적 의지의 부재, (그리고 일부 경우에는) 행정 당국의 노골적인 인종주의적 태도와 마주하는 수천 명 이주민의 일상적 삶이라고 활동가들은 고발한다. 마드리드 시장 호세 루이스 마르티네스–알메이다는 벌써 이 기회를 틈타 정부를 공격했다. 그는 정부가 “엉터리 짓”을 하고 있다며 비난하고, 시 당국은 그 대가를 치를 생각이 없다고 경고했으며, 이주민을 범죄자 취급하는 메시지를 퍼뜨렸다. 명백한 위선이다. 그는 수년간 사회 복지 제도를 해체하여 최저 수준으로 방치해 온 장본인이면서, 이제 자신이 일조한 그 혼란의 뒤편에 숨어 있는 것이다. ‘온두라스 이주 여성 네트워크’의 카렌 로드리게스는 이토록 적대적인 정치 환경에서 취약성 증명서를 요구하는 것은, 합법화 정책 자체를 훼손하며, 수년 전부터 기다려 온 이주민들의 정신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경고한다. ‘지금 당장 합법화’ 운동의 일원이자 ‘능동적 가사노동자 협회(SEDOAC)’ 활동가인 실바나 카브레라는 들쭉날쭉한 기준과 신청 절차 지원을 거부하는 일부 지역 관청이 전진의 실질적 장애물이 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담은 협력 단체들에게 떠넘겨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 모든 혼란스러운 상황은 70만 명 넘는 서명에 힘입은 시민 사회의 압력과 투쟁에도 불구하고 심층 원인을 문제 삼지 않는 합법화 조치의 구조적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것은 바로 외국인법이다. 외국인법은 수천 명을 미등록으로 단죄하여 끌고 가서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정 감옥인 이주민 수용소를 매년 가득 채운다. 정부가 “성공적인 절차”와 기록적인 신청 건수를 이야기하는 동안, 활동가들은 미등록이라는 사실 자체가 이미 취약성의 한 형태임을, 그리고 그 어떤 관료적 절차도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일구기로 결정한 곳에서 권리를 지니고 생활하고 일하지 못하도록 막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외국인법을 폐지하지 않고 이주민 수용소를 해체하지 않는 한 스페인은 언제까지나 이주민에게 적대적인 땅으로 남을 것이다. 원문: https://www.izquierdadiario.es/La-regularizacion-extraordinaria-de-medio-millon-de-personas-migrantes-comienza-llena-de-trabas -
일상으로 스며든 극우와 자본의 민낯, 그리고 정치적 위선최근 온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스타벅스의 이른바 ‘탱크데이’ 사태는 단순한 기업 마케팅 부서의 실무적 일탈이나 ‘윤리적 감수성 부재’로 치부될 수 없는 중대한 사회적 징후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당일에 ‘탱크’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운 텀블러 할인 행사를 진행하고,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조롱하는 “책상을 탁 치니 억”이라는 망언을 마케팅 카피로 사용한 것은 우리 사회의 역사적 합의(노동자·민중의 역사적 투쟁성과)에 대한 도발이다. 이 사태는 단순히 자본이 돈벌이를 위해 선을 넘은 것을 뛰어넘는다. 첫째, 온라인 커뮤니티의 음지에 머물던 극우적 혐오 밈이 주류 사회와 일상으로 깊숙이 침투했다는 점. 둘째, 이러한 일상화의 배경에는 ‘멸공’ 등을 부르짖어 온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그간 행보가 만들어낸 조직 문화적 토양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 셋째, 이 참담한 비극을 오직 다가올 선거와 진영 결집을 위한 정쟁의 도구로 전락시킨 부르주아 정치권의 위선이다. 극우적 밈의 일상화와 주류화 과거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북한군의 폭동으로 매도하거나, 국가 폭력에 의한 희생자를 조롱하는 행위는 일베와 같은 극우 성향 커뮤니티 내부에서나 통용되는 그들만의 놀이(?)였다. 그러나 스타벅스 사태는 이러한 극우적 문화가 ‘트렌디한 밈’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대기업의 공식적인 업무까지도 침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신세계그룹의 자체 진상조사 결과에서 “고의성을 입증할 명확한 근거를 찾지 못했다.”거나 “AI에 물어본 문구”라는 식의 해명이 흘러나오는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더욱 잘 보여준다. 만약 이것이 일부 직원의 의도적인 ‘도그휘슬(Dog-whistling, 특정 집단만 알아들을 수 있는 은밀한 메시지)’이었다면 기업 내부에 극우적 가치관이 중심을 잡고 있다는 증거이며, 반대로 아무런 의도 없이 이루어진 일이라면 행사가 진행되기까지 여러 단계의 검토 과정에서 역사적 비극을 희화화하는 폭력성을 인지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뜻이 된다. 그게 어느 것이든 둘 다 노동자계급의 가치기준과는 거리가 먼 것일 뿐이다. 정용진 회장의 이념적 행보와 그 결과일 뿐이다 이러한 극우적 일상화가 대기업 내부에서 버젓이 통과될 수 있었던 배경은 신세계그룹 정용진 회장이 가지고 있는 극우적 사고방식 때문이다. 정 회장은 5월 26일 대국민 사과를 통해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다.”며 고개를 숙였으나 과연 그 말을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해당 부서 5명 중에 3명이 핸드폰을 제출하지 않았는데 저 조사가 사실인지는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오히려 제출한 2명의 핸드폰이 이후 경찰조사에서 문제되지 않도록 손봐 준 것은 아닐까? 정용진 회장이 이번 사태에 그나마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자본의 이윤 앞에 선 자본가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스타벅스코리아는 미국 스타벅스 본사와 콜옵션 조항이 있는데, 현재 이마트가 가지고 있는 지분 67.5%를 이마트(스타벅스 코리아)의 귀책사유로 인한 브랜드 명성의 훼손이 있을 경우 스타벅스 본사가 35%할인된 금액으로 이마트의 지분을 회수할 수 있는 조항이 있다. 정용진의 사과는 거센 불매운동과 주가 하락이라는 자본의 ‘손익계산’에 따른 위기탈출용 사과라는 것이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사과 발표에도 대중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그는 과거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멸공’ 논란을 일으키며 낡은 색깔론을 자극했고, 특정 정치적 진영에 편향된 행보를 가져갔다. 기업의 총수가 공공연하게 우편향적이고 배타적인 정치적 의사표현을 즐기는 상황에서, 그룹 산하 조직의 문화 역시 알게 모르게 그 눈높이에 맞춰지거나 보수화·우경화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최고 경영자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는 발언을 가볍게 사용하거나 표현의 자유 정도로 취급하는 조직에서, 실무진들이 민주화 역사를 다루는 태도 역시 가벼워지는 것은 필연적일 것이다. 그래서 이번 사태는 실무진뿐만 아니라 그러한 조직문화를 만든 정용진에게 최대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역사적 상흔을 정쟁의 도구로만 보는 부르주아 정치 우리를 더욱 분노하게 하는 것은, 이 사태를 대하는 정치권의 위선적인 태도다. 다가올 2026년 지방선거를 의식한 여야 정치권은 사태의 본질적인 원인인 ‘사회의 극우화’를 진단하고 치유하기보다는, 이를 상대 진영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삼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 진영은 이번 사태를 맹폭하며 자신들이 민주주의와 역사의 유일한 수호자인 양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심지어 7년 전 무신사의 유사한 광고 사태까지 다시 소환하며 여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분노는 선택적이다. 현실에서 하청 노동자들이 죽어 나가고 노란봉투법이 유명무실하게 되고 있는 상황 앞에서는 자본의 편을 들면서, 선거판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는 과거의 역사적 상징 앞에서는 투사로 돌변한다. 이들에게 광주와 87년의 피는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일 뿐인 것이다. 이와 상반되는 자세로 국민의 힘은 스타벅스 불매운동에 맞서 오히려 스타벅스 구매운동을 벌이며 극우와 결합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5월 26일 사과발표가 나자마자 민주당은 이를 진정성있는 사과라고 포장을 하고, 국민의 힘은 민주당의 공세에 어쩔 수 없이 한 사과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오월단체(5·18민주유공자유족회,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 5·18기념재단)에선 “정용진의 사과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한다”며 “진정한 반성과 책임 없는 형식적 사과는 상처받은 시민과 오월 영령들에 대한 또 다른 모욕이며 기만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5.18을 제대로 기리는 것은 노동자의 힘으로만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스타벅스 ‘탱크데이’ 사태는 이윤 창출이라는 명목 아래 극우적 혐오와 역사 왜곡마저 ‘노이즈 마케팅’으로 승인해 버리는 자본의 야만성, 그리고 총수의 그릇된 이념적 편향이 기업 문화를 어떻게 만들어 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또한 이를 구조적으로 바로잡을 의지와 능력 없이 정치적 계산에만 몰두하는 부르주아 정치권의 현실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 사태를 특정 기업의 제품을 불매하고 경영진을 해임하는 선에서 마무리 지어서는 안 된다. 온라인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이러한 혐오의 언어가 오프라인의 일상과 자본의 권력을 타고 번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제에 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노동자·민중의 숭고한 민주화 투쟁의 역사가 자본의 이윤을 위한 상품이나 정치인들의 선거용 도구로 모욕당하지 않도록 그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필요하다. -
삼성전자 파업을 노란봉투법 탓으로 돌리는 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비정규직노동자들의 각성삼성전자 파업을 노란봉투법 탓으로 돌리는 자들이 있다. 이는 사실관계부터 틀린, 의도적 왜곡이다. 그러나 이들이 노리는 것은 분명하다. “그 전엔 삼성전자 파업이 없었는데, 왜 지금 노조 파업이 생길까? 뭐라고 답변하시겠습니까?”_김성원 국민의힘 국회의원 “(2차 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그 답변은 일단 유보했으면 좋겠습니다”_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뭘 유보해요? 노란봉투법 때문에 그런 거지 그거 알면서 그럽니까? 그것 때문에 지금 성과급까지 논의 테이블에 올라온 것 아닙니까?”_김성원 국민의힘 국회의원 - 5월 1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 의도적 왜곡 김성원 얘기는 모두 틀렸다. 그전에 파업이 없었던 게 아니다. 2024년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의 파업이 있었는데, 이때 핵심 요구도 불투명한 성과급 개선과 투명한 보상 체계 확립이었다. 과거에는 임금·노동시간만 쟁의 대상이었으나,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이후 성과급과 경영 판단까지 파업 대상이 된 게 아니다. 성과급 보상은 대표적인 노동조건으로, 기존 노조법에서도 쟁의행위 대상이다. 2024년 삼성전자 파업 웹자보 지난 1월 대법원이 삼성전자의 성과급(OPI)은 퇴직금 산정의 기초가 되는 평균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지만, 평균임금에 해당하든 말든, 중요한 노동조건이기 때문에 당연히 합법 파업 대상에 포함된다. 물론 대법원 판단은 자본의 이해에 종속된 판단, 자본에 유리한 판단일 뿐이며, 성과급은 노동력의 대가로 분명 임금의 일부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쟁의 대상을 소폭 확대하긴 했다. △체불임금 청산 △해고자 복직 △부당노동행위 구제 등 ‘권리분쟁’ 사항을 노동쟁의 대상으로 포함했다. 노동쟁의 대상에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을 포함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결정이 노동쟁의 대상이 되려면 정리해고, 구조조정처럼 근로조건에 실질적·구체적 변동을 초래해야 한다는 제한을 덧붙였다. 노란봉투법 이후 모든 경영 판단이 파업 대상이 됐다는 주장은 과장과 왜곡일 뿐이다. 노란봉투법으로 자본가들이 손해배상을 할 수 없게 됐다는 주장도 거짓말이다. 자본가들은 여전히 △노동조합 내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정도 △손해에 대한 관여 정도 등으로 따져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으며, 이것이 노란봉투법의 큰 한계다. 더군다나 삼성전자 파업은 삼성전자 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노란봉투법의 주요 내용인 원청 사용자성 확대, 사용자 정의 확대와 관련이 없다. 그러나 이들에게 개정 노조법과 삼성전자 파업이 실제로 관련 있는지는 하등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점은, 거짓 선동으로 노동자를 공격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원청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들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국민의힘이 삼성전자 파업과 노란봉투법을 억지로 연관시키는 이유는 오랜 투쟁으로 쟁취한 노동자의 성과를 무력화시키기 위해서다. 이재명 정부보다 자신들이 자본의 이해를 더 철저히 보호할 수 있다는 정치적 공세를 펼 수도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이재명 정부의 태도는? 그렇다면 이재명 정부는 국민의힘과 본질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였는가? 김정관 장관은 정부 내에서 긴급조정권 발동을 가장 강력하게 주문했다. 이재명 역시 “노동권만큼 기업경영권도 존중되어야 한다”면서 자본의 피해자 코스프레에 힘을 싣고 긴급조정권 발동을 내비치며 노동자들을 압박했다. 이런 압박에 밀려 삼성전자 노조는 특별성과급 재원의 70%를 DS부문 전체에 배정하고, 30%는 메모리, 시스템 LSI(Large-Scale Integration), 파운드리 등 DS부문 산하 각 사업부에 사업부별 실적에 비례해 배정하라는 애초의 요구를 포기하고, 자본의 입장인 40% 대 60%를 수용했다. 노조는 애초부터 수많은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동일한 성과급을 지급하라는 요구를 꺼내지도 않았다.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와 권리를 대변할 생각이 없었다. 영업실적이 부진한 DX(스마트폰, TV, 가전제품) 부문의 성과급 요구도 배제했다. 사회적 고립과 정부의 압박에 밀린 노조는 DS 내부에서도 영업실적에 따른 격차를 최대한 벌리려는 자본의 의도를 뚫지 못했다. 노동자계급의 관점을 상실한 삼성전자 노조들의 전략 부재는 노동자들 사이의 극심한 분열과 갈등을 낳고 있으며 사회적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 이렇듯 이번 투쟁의 약점과 한계는 분명하지만, 삼성전자 파업을 노란봉투법과 엮으려는 시도나 긴급조정권 협박은 삼성전자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권리를 약화하려는 공격으로 국민의힘과 정부의 본질을 보여준다. 그림자가 아니다 노란봉투법 이전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원청을 상대로 끊임없이 투쟁했다. 노란봉투법이 생겼기 때문에 원청과 투쟁하는 게 전혀 아니다. 노란봉투법이 있건 없건, 하청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것은 원청이다. 노동부가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교섭 의제를 산업안전 문제로 축소하더라도, 수용할 이유가 전혀 없다. 노란봉투법 이전에도 그랬듯 말이다. SK하이닉스 하청 물류업체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피앤에스로지스지회는 4월 30일 하이닉스 청주공장 3캠퍼스 앞에서 “하청노동자는 그림자가 아니다! 여기 사람 있다! SK하이닉스! 대화 좀 합시다!”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연합뉴스 지회는 “사내 하청 노동자들도 원청과 함께 반도체 생산의 찬란한 성과를 만들어낸 주역”이라고 주장하며 직접적인 성과 차별 개선과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너무나 정당한 요구다. 삼성전자의 막대한 이윤은 노동자계급의 사회적 공동노동이 만든 사회적 부다. 삼성전자 정규직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가치사슬에 포함된 전 세계 모든 노동자의 사회적 공동노동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따라서 당연히 하청 노동자들도 분배를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동안 모든 정부는 어떠한 사회적 환수 방안도 없이 천문학적인 노동자 민중의 혈세를 삼성과 SK하이닉스에 투입했다. 2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반도체특별법 역시 △전력·용수·도로 등 기반시설 조성에 관한 정부 지원 의무화 △RE100 실행을 위한 신재생에너지 설비공급 및 설치비용 지원 △산업인프라 조성, 보조금 지급, 조세 감면 등 세제 지원, 예비타당성조사 신속처리 및 면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제야말로 노동자계급 주도로, 막대한 이윤을 환수하고 이를 노동자 민중을 위해 사용하기 위한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 반도체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의 잠재력 이번 파업 과정에서 반도체 하청·비정규직의 열악한 현실이 꽤 많이 알려졌다. 일부 보수언론은 하청 노동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삼성전자 정규직 파업을 비난하기 위해서 하청 노동자의 현실을 알렸다. 세정, 유지보수, 폐기물 처리와 같은 업무들이 하청 노동자에게 전가되었다.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는 1년짜리 소모품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청·비정규직에 대한 초과착취 없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거대한 이윤은 불가능하다. 지금 반도체 하청·비정규직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가진 자들도 이 점을 느끼고 있다. 국힘과 보수언론이 개정노조법과 삼성전자 파업을 연계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뜬금없지만, 더 큰 저항, 하청 노동자들의 저항을 최대한 차단하려는 계급적 목적이 깔려 있기에, 그들은 맹렬하게 거짓 이데올로기를 퍼붓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충분히 반격할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막대한 이윤은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투쟁의 명분과 자신감을 준다. 비록 지금 반도체 하청·비정규직의 노조 조직률은 대단히 낮고, 민주노총 소속 노조는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지만, 이번 삼성전자 파업은 수많은 하청 노동자에게 “이제는 우리도 싸워볼 만한 때가 됐다”라는 자각을 심어줄 것이다. 모두 합해 40만 명이 넘는 사내하청 노동자와 사외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뭉칠 수 있다면, 그 위력은 정규직들의 힘을 훨씬 뛰어넘을 것이다. 그 투쟁을 만들기 위해, 나아가 그 투쟁이 정규직 파업이 지녔던 약점과 한계를 뛰어넘어 전체 노동자의 단결로 나아갈 수 있도록 모든 힘을 쏟아붓자. -
[번역] 마르크스주의, 트랜스 해방, 그리고 젠더의 사회적 구성새로운 세대의 퀴어 활동가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다: 마르크스주의가 트랜스 및 퀴어 해방을 위한 전략이 될 수 있는가? 2020년은 미국 역사상 트랜스젠더 살해 사건이 가장 많았던 해였다. 미국 전역의 주 정부들은 현재 트랜스 청소년의 권리를 대폭 축소할지 여부를 논의 중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배계급 내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세력은 “트랜스젠더 문제”에 대해 손만 비비며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퀴어 활동가 청년층은 점점 더 부상하고 있다. 이들 청년들—그중 다수가 트랜스젠더이다—은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으며, 특히 흑인 트랜스젠더 여성들의 요구를 운동의 의제로 포함시키도록 이끌었다. 이를 위해 브룩클린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흑인 트랜스젠더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대규모 시위를 조직했다. 그러나 그들의 모든 진보적인 본능과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태동하는 의문에도 불구하고, 많은 젊은 퀴어 활동가들이 마르크스주의를 불신한다. 이는 주로 수십 년에 걸친 자본주의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방 캠페인의 결과다. 활동가들의 살해나 투옥 같은 극단적인 사례부터, 퀴어 권리의 일부 진전과 같이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특정 요구를 신자유주의에 편입시킨 방식에 이르기까지, 자본가 계급은 오랫동안 이데올로기로서 마르크스주의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마르크스주의의 지지자들을 스탈린주의와 연관시키며, 억압받는 집단의 해방 투쟁을 마르크스주의 운동과 분리시키려 해왔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비방 캠페인은 — 주로 스탈린주의의 영향으로 인한 — 공산주의 운동의 역사적 실패와 결합되어, 많은 활동가들로 하여금, 마르크스가 단지 자신의 경험 바깥을 바라볼 수 없었던 이성애자, 백인, 유럽인, 시스젠더 남성에 불과했기 때문에, 마르크스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마르크스를 의심하는 이들은 동성애 해방 문제에서 마르크스주의 단체들의 역사적 실패와 트랜스 해방 문제에서 일부 단체들의 현재의 실패를 모두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트랜스 해방 지지를 반대하고자 일부 소위 마르크스주의 단체들이 사용하는 논리를 분석해 보면, 그들이 마르크스주의자라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오히려 그들은 정체성과 욕망의 해방을 반대하는, 인종차별적이고 가부장적이며 억압적인 자본주의 국가 편에 서기 위해,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이 되는 철학적 원칙을 거부한 반동주의자들이다. 이러한 가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져서는 안 되며, 우리는 그들로부터 마르크스를 구출하고, 마르크스주의가 억압받는 자들을 위한 유일하게 진정한 해방 전략이라 주장해야 한다. 트랜스혐오적 “좌파”의 실패 이러한 마르크스주의의 왜곡을 반박하기 위해, 유감스럽게도 그들 중 일부와 논쟁을 벌여야 한다. 20세기 이래 자칭 좌파 내에서 게이 및 트랜스 해방을 반대하는 가장 큰 세력은 스탈린주의였다. 스탈린과 그의 동맹자들은 동성애 합법화와 같은 러시아 혁명의 수많은 사회적 성취를 배신했다. 스탈린과 스탈린주의는 보수적인 사회적 세력이 되어, 노동계급의 전체 부문이 제기한 요구들을 진정한 사회주의를 방해하는 소부르주아적 혼란으로 치부해버렸다. 이는 러시아, 쿠바, 그리고 20세기 수많은 변형된 노동자 국가들*에서의 반퀴어 정책으로 이어졌으며, 미국과 그 밖의 지역에서 공산당 내 퀴어 당원들을 제명하는 사태를 초래했다. 이러한 사회적 보수주의는 오늘날에도 많은 스탈린주의 분파들 사이에서 계속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이 기사에서 다루기에는 너무 심각한 정치적 문제들로 가득 찬 영국 공산당은, 2019년에 “‘성별 유동성’이라는 반동적 악몽”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발표했는데, 이 글은 트랜스젠더들과 우리의 동맹들이 “성별의 물질적 현실”을 부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글에서 그들이 성(sex)과 젠더(gender)가 동의어라고 주장한다(두 개념은 동의어가 아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1] 이것이 반反-트랜스 “좌파” 대다수의 주된 논리다. 하지만 트랜스혐오적인 “좌파”는 스탈린주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트랜스 해방을 가치 있는 투쟁으로 인정하지 않는 다양한 절충적인 성향의 집단들도 존재한다. 어떤 이들은 트랜스해방투쟁이 다른 투쟁들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킨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모든 억압을 무시하고 착취에만 집중하는 계급 환원주의적 전략을 함의한다. “젠더 이데올로기에 대한 사회주의적 비판”을 표방하는 블로그 Freer Lives와 같은 다른 이들은 더 나아가 트랜스 정체성이 근본적으로 부르주아적이라고 주장한다. Freer Lives가 2020년에 발표한 “모든 좌파는 여성 권리에 관하여 J.K. 롤링을 지지해야 한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주장했듯이, 젠더 이데올로기의 성차별주의에 맞서 여성을 옹호하는 롤링의 입장은, 실제로 오늘날의 세계에서 이 새로운 성차별주의를 이용해 여성 억압을 유지하려 해온 자본가 계급과 그 엘리트 하수인들의 이익과 대립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서 좌파-자유주의자들(left-liberals)과 극좌파들은 바리케이드의 잘못된 편에 서 있다. 안타깝게도, 퀴어성에 대한 이러한 사회적 보수주의는 20세기 일부 트로츠키주의 정당들 속으로도 스며들었다. 트로츠키주의자들 중에는 게이 해방 운동에 동참한 이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트로츠키의 제4인터내셔널 내 최대 정당인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은 스톤월 사건 전후로 급속히 성장하던 게이 권리 운동에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퀴어 민중들에 대해 매우 억압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쿠바의 카스트로가 이끄는 관료 체제에 무조건적인 정치적 지지를 보냈다. SWP는 오랫동안 공개적으로 퀴어임을 드러낸 사람들을 당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1976년, CWI(또 다른 트로츠키주의 경향)의 당원들은 팸플릿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진지한 사회주의자들은 “게이 해방”이 노동 운동에 독립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사회적 토대를 조금도 제공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할 것이다. 그 반대를 증명하기 위해 때때로 제시되는 온갖 기이한 이론과 감성적인 주장들은 순수한 학생 정치에 여전히 만연한 극심한 혼란과 전망 부재의 증상일 뿐이다. 이러한 사례들에서 우리는 퀴어 정체성에 대한 “이론적” 반대가 퀴어 민중들의 삶과 퀴어 해방 운동에 대한 정치적·물질적 반대로 빠르게 변화될 수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노동계급 내 퀴어 구성원들과 정치적 경향으로서 마르크스주의 사이의 분열을 야기하는 결과를 낳았는데, 왜냐하면 노동계급 내 퀴어 구성원들은 마르크스주의 정당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싸워줄 것이라고 항상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우리는 이 점에 대해 매우 명확해야 한다. 퀴어 및 트랜스 노동자에 대한 지지는 어떤 사회주의 단체에게 있어서도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요소여야 한다. 그러나 퀴어 및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러한 노선의 문제는 단순히 억압받는 집단의 해방 투쟁을 거부하는 것을 훨씬 넘어선다. 이 입장은 또한 변증법과 역사적 유물론 모두에 대한 중대한 거부를 의미한다. 즉, 트랜스젠더 해방을 거부하는 사회주의 운동의 세력들은 부르주아 도덕에 적응하며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토대마저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노선을 취하는 집단들은 사회 통제를 유지하려는 자본주의 국가의 편에 서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신체와 욕망이 온전히 발전하는 것을 계속 부정하는 사회의 가장 우익적인 세력들과 동맹을 맺고 있다. 이 집단들은 사실상 퀴어 해방 운동을 신자유주의에 넘겨주어, 운동이 포섭되도록 방치하고 국가에 대한 어떠한 도전도 제기하지 않고 있다. 이론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이 소위 좌파 집단들은 모든 좌파 정치의 근본적 목표인 인간 해방을 거부하고 있다. 그들은 역사의 잘못된 편에 서서 반동 세력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들은 우리의 동지가 아니며, 좌파들 속에서 패배시키고 사라지게 만들기 위한 측면에서만 그들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젠더는 사회적 구성물이다 젠더는, 이 트랜스혐오자들이 주장하듯이, 생물학적으로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젠더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다. 현대적 형태에서, 젠더는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현대적 형성에 이르게 된 역사적 과정이 있다. 예를 들어, 존 디에밀리오(John D’Emilio)가 『자본주의와 게이 정체성』(Capitalism and Gay Identity)에서 쓴 바와 같이, 게이와 레즈비언은 항상 존재해 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역사의 산물이며,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 등장했다. 그들의 출현은 자본주의의 관계와 연관되어 있다. 20세기 후반에 수많은 남성과 여성이 스스로를 게이(gay)라고 칭하고, 비슷한 성향의 남성과 여성으로 구성된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식하며, 그 정체성을 바탕으로 정치적으로 조직화할 수 있게 한 것은 바로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 더 구체적으로는 자유로운 노동 체제 덕분이었다.[2] 디에밀리오(D’Emilio)는 본질적으로 자본주의의 부상이 정체성(identity)의 발명에 물질적 조건을 제공했다고 주장한다. 생산이 가정 밖—공장 및 여타 작업장—으로 점점 더 이동함에 따라, 사람들은 가족 밖에서 삶을 꾸릴 자유를 점점 더 많이 얻게 되었다. 이것이 정체성의 부상으로 이어졌다. 그 이전에는 남성과 성관계를 갖는 남성이 있을 수는 있었지만, ‘게이’라는 정치적·개인적 범주는 존재하지 않았다. 젠더의 경우에도 유사한 과정을 볼 수 있다. 젠더화된 관계는 수천 년 동안 존재해 왔지만, 현재 이해되는 바와 같은 젠더의 구체화는 자본주의의 부상과 함께 일어났다. 많은 전(前)자본주의 문화는 성별에 대해 비이분법적인(nonbinary) 이해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유럽 식민주의자들에 의해 원주민 문화에서 특별히 말살됐다. 역사적으로 여성은 자본주의 생산 체계에서 매우 특정한 역할을 수행해 왔는데, 바로 전형적인 무급 재생산 노동을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관계에서 핵가족에 대한 현대적 이해가 등장했으며, 이는 젠더에 대한 이분법적 이해를 재확인하고 강화했다. 핵가족이라는 매우 귀중한 자본주의적 도구를 보호하기 위해, 이 이성애규범적 가족 단위에 도전하는 젠더 표현들은 억압당하고 가혹하게 처벌받았다. 실제로 젠더 구조는 항상 지배와 폭력의 기반 위에 있었다. 엥겔스가 『가족, 사유재산 및 국가의 기원』에서 쓴 바와 같이, [어머니]의 전복은 여성 성별의 세계사적 패배였다. 남성은 가정에서도 지휘권을 장악했고, 여성은 격하되어 노예 상태로 전락했으며, 남성의 정욕의 노예이자 단순히 산아도구로 전락했다. 여성의 이러한 격하된 지위는 … 점차 완화되고 미화되었으며, 때로는 더 온화한 형태로 포장되기도 했지만, 결코 폐지된 적은 없었다. 젠더의 형성 젠더 비규범성에 대한 억압은 문화의 거의 모든 요소에 스며들어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헤게모니적 이해를 형성했다. 이 과정은 “젠더 규율”(disciplining gender)이라고 불려왔다.[3] 이를 통해 우리는 젠더가 결코 생물학적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그것은 역사적 시기에 따라 변화하는 사회학적 범주이다. 영국 공산당의 횡설수설로 돌아가 보자면, 그들은 앞서 인용한 같은 기사에서 아래와 같이 썼다. (트랜스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이들은 성별이) 일종의 의학적 음모라고 주장한다. 즉, 출생 시 의사들이 모여서 의논한 뒤 당신에게 “젠더 역할(gender role)을 할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임산부 여러분: 20주 초음파 검사를 받을 때, 여러분은 아기가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 확인하기 위해 검사를 받는 것이 아니다(‘레드 파이트백’(Red Fightback)은 이렇게 말한다.)[4] 그건 전부 의학적 음모일 뿐이다! 그리고 아기가 태어나면, 그들이 아기를 검사하고 말한다, 남자아이라고, 또는 여자아이라고 —그것도 전부 의학적 음모다! 이런 것들(남자아이와 여자아이, 남성과 여성)은 실재하지 않는다 — 모르겠는가?? 간성(인터섹스) 아기들의 존재는 차치하고라도 — 그들은 자신들 주장의 전체적인 유사과학적 근거를 무너뜨릴까 봐 이 문제를 신중하게 회피하고 있지만 — 아기가 태어날 때 우리가 그들에게 정체성과 특성을 부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터무니없이 공상적인 입장이다. 갓 태어난 ‘남아’에게는 파란 담요를, ‘여아’에게는 분홍 담요를 사준다. 최근 잇따른 지독한 젠더-리빌(성별공개) 파티 사례만 봐도,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아이의 젠더에 얼마나 큰 의미가 부여되는지 알 수 있다. 이는 그 자체로 의학적 음모는 아니다 — 비록 우리가 간성인 사람들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아기의 동의 없이 규범적인 신체상을 강요하는 것은 분명히 의학적 음모이지만 — 오히려 출생 전부터 자아를 형성하기 시작하는 사회정치적 맥락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자칭 마르크스주의 단체가, 사회가 아이들에게 출생 시 젠더 역할을 부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상 현대 사회 전체를 외면하는 것이며,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적 분석을 거부하는 것이다. 게다가 젠더를 구성하는 요소의 상당 부분은 생물학적 성이 아니라 소위 ‘젠더 표지(gender markers)’에 있다. 예를 들어, 드레스는 여성적이고 정장은 남성적이다. 하지만 그것 또한 역사적으로 변하지 않는 상수는 아니다. 비교적 최근의 역사 속에서 하이힐이 남성의 것으로 여겨지거나 소년들이 종종 드레스를 입던 시절도 있었다. 시아라 크레민이 저서 『남성화된 여성: 크로스드레싱의 변증법』(Man-Made Woman: The Dialectics of Cross-Dressing)에서 설명하듯이, 서구화되거나 유럽적인 여성적 스타일의 즐거움은 그 무엇보다도 미학적이다. 우리는 차려입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는 비단 같은 원단, 반짝이는 것들, 그리고 생생한 색상을 즐긴다. 역사의 우연이 파란색을 남성적인 상징으로 만들었다. 남성에게 있어 면 양말은 좋고, 팬티스타킹은 나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비합리성이 제2의 본성이 되었다.[5] 무엇이 여성에게는 하이힐이, 남성에게는 부츠가 어울리도록 만들었을까? 과학적인 근거는 없다. 오히려 젠더는 사회적 지위와 다양한 젠더 표지들로 구성되며, 크레민의 말대로 “역사의 우연”에 의해 의미를 부여받는다. 그러나 젠더 자체가 사회적 구성물인 반면, 젠더화(gendering) 행위 자체는 매우 물질적인 과정이다. 특정 방식으로 젠더화된다는 것은 당신이 해야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 매우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젠더화에 저항하는 것은 종종 사회적 고립과 심지어 폭력에 직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모순은 트랜스 경험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요소이다. 젠더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개별화된 범주들의 집합이자, 억압과 종종 폭력까지 수반하는 매우 실체적이고 물질적인 과정이다. 이는 두 가지 결론으로 이어진다. 첫째, 젠더화 과정이 자본주의 체제의 일부이기 때문에, 개별화된 관점에서는 트랜스 해방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는 해방이 개인 단위의 과정(person-by-person process)이라고 주장하는 이 글 후반부에서 논의할 이들과는 대조적으로, 젠더화는 그 어떤 개인적인 행동이나 개인보다 더 큰 것이기 때문에, 해방은 반드시 집단적인 반자본주의 투쟁(mass anti-capitalist struggle)이어야 함을 의미한다. 둘째, “젠더의 물질적 현실”을 거부하는 것은 트랜스젠더들이 아니라, 오히려 젠더에 대한 비역사적인 생물학적 정의를 고수하며 젠더의 역사적 현실과 젠더화의 물질적 현실을 모두 거부하는 바로 이 “젠더 비판적 좌파들”이다. 영국 공산당과 그 일당이 음모론으로 치부하려는 것은 사실 자본주의 하에서 가장 쉽게 관찰되고 기록된 사회적 통제 과정 중 하나이다. 변증법적 젠더 이 혁명가 행세를 하는 트랜스혐오자들은 젠더의 역사적 현실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공인된 정치적 입장과 반동적인 정서 사이의 모순을 해결할 방법을 고집스럽게 찾으려 하면서 변증법 자체도 거부한다. 젠더가 생물학적으로 정해져 있어, 결코 변하지 않거나 새로운 형태를 취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근본적으로 비변증법적이다. 이는 출생 시 부여받은, 삶의 물질적 현실과 무관하게 결코 변할 수 없는 불변의 정체성을 전제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위에서부터(*역주: 신이나 어떤 초월적 존재로부터) 내려받은 존재라는 관점을 거부한다. 이러한 반反-트랜스 가짜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이려면, 젠더는 변할 수 없다는 그들의 노선에 동의해야만 한다. 하지만 설령 젠더가 생물학적이라는 그들의 잘못된 주장을 받아들인다 해도, 그것이 젠더가 변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예를 들어, 눈과 머리카락은 (대부분의)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눈동자와 머리카락 색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할 수 있으며, 사람들은 머리카락을 염색하거나 컬러 렌즈를 착용할 수도 있다(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한다!). 그들이 “머리카락 색깔의 물질적 현실”을 거부하는 것인가? 태어날 때 사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가 사고로 한쪽을 잃은 사람은 자신의 신체에 대한 물질적 현실을 배반하는 것인가? 변화하는 조건 때문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는 생물학적으로 미리 정해진 속성들은 수없이 많다. 그리고 설령 젠더를 생물학적 성별(Sex)과 동의어로 보는 과학적으로 부정확한 정의를 받아들인다 해도, 그렇다면 간성인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간성인 영아들에게 그들의 동의 없이 성별의 규범적 범주에 맞추기 위해 수술을 시행하는 의사들은, 이 간성인 아이들의 물질적 현실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소부르주아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젠더 거부 행위에 대해 그토록 분노하는 이 사회주의자들은, 왜 이러한 비동의적 성전환 수술에 대해서는 똑같이 분노하지 않는가? 이 모든 주장은 과학적으로 전혀 타당하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학적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진리’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젠더는 물질적 조건이나 개인의 신체적 속성을 초월하는 무엇이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를 정의하는 더 높은 차원의, 일종의 도덕적 진리여야 한다. 그러나 영원한 진리에 대한 이러한 믿음은 반反변증법적이며, 따라서 반反마르크스주의적이다. 엥겔스가 그의 기념비적인 저서 반뒤링에서 썼듯이, 우리는 따라서 도덕 세계에도 역사와 민족 간의 차이를 초월하는 영구적인 원리들이 있다는 구실을 들어, 어떤 도덕적 교리를 영구적이고 궁극적이며 영원히 불변하는 윤리 법칙으로서 우리에게 강요하려는 모든 시도를 거부한다. 우리는 반대로, 모든 도덕 이론은 궁극적으로 당시 사회의 경제적 조건의 산물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사회가 지금까지 계급 대립 속에서 움직여 왔듯이, 도덕은 언제나 계급의 도덕이었다. 그것은 지배 계급의 지배와 이익을 정당화해 왔거나, 억압받는 계급이 충분히 강력해진 이후로는 이러한 지배에 대한 피억압자의 분노와 미래의 이익을 대변해 왔다. 이 과정에서 인간 지식의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도덕에서도 전반적으로 진보가 있었다는 점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도덕적 교리를 “영원하고, 궁극적이며, 영원히 불변하는 윤리법”으로 믿는 것은 지배 계급의 도덕, 즉 노동계급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데 이용되는 도덕에 대한 묵인에 지나지 않는다. 이 소위 “젠더 이데올로기”에 맞선 전사들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우리를 억압하고 있는 부르주아 도덕에 좌파적인 위장을 제공해 주고 있다. 트랜스 마르크스주의의 향방은? 그렇다면, 마르크스주의 운동의 일부 세력이 퀴어와 트랜스 해방 투쟁을 항상 지지해 온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할 때, 반反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이 옳은 것일까? 우리 퀴어와 트랜스 사람들은 마르크스주의를 우리 해방과 양립할 수 없는 이론으로 치부하고 버려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호한 ‘아니오’이다. 우선, 마르크스주의 운동과 퀴어 해방 운동의 역사를 살펴보면, 퀴어 해방이라는 과제가 제시되었을 때 많은 마르크스주의 단체들이 이를 강력히 지지했음을 알 수 있다. 오스카 와일드가 퀴어라는 이유로 재판을 받았을 때 그를 변호한 것은 초기 공산주의자들이었다. 많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그렇게 하기 수십 년 전에 볼셰비키는 러시아에서 동성애를 합법화했다. 그리고 현재도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투쟁의 최전선에 서 있다. 이러한 단체들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결함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20세기와 21세기에 걸쳐 좌파의 상당 부분의 퇴보를 보여주고 있다. 이 점은 1970년대 아르헨티나의 동성애자 해방 전선 전 멤버였던 마르셀로 베니테스(Marcelo Benítez)가, ‘레프트 보이스(Left Voice)’의 아르헨티나 자매 사이트와의 인터뷰에서 지적한 바 있다. 1970년대 퀴어 마르크스주의자로서의 경험을 회고하며 그는 “나는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좌파와 갈등을 겪고 있었다. … 좌파 내에서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퀴어 문제와 관련하여 좌파 일부 세력의 실패를 바라볼 때 매우 비판적이어야 하지만, 그 실패를 마르크스주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스탈린주의자 및 기타 집단이 퀴어 해방 투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마르크스주의의 부재 때문이었다. 마르크스주의는 우리에게 해방을 위한 필수 조건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현재 운동 내의 잘못된 지도부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도구도 제공한다. 마르크스주의를 배반한 이들이 마르크스주의자라는 칭호를 차지하는 것을 허용하기보다는, 우리는 그들을 트랜스 배제적 급진 페미니스트들, 심지어 종교적 우파의 일부보다 나을 바 없는 존재로 규정하고 거부해야 한다. 영국 공산당은 그들의 모든 주장과 구호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와 레닌이 정의한 방식의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이러한 마르크스주의 왜곡자들은 이론적·정치적 영향력이나 지도력을 가져서는 안 된다. 마르크스가 저술하고 레닌과 트로츠키가 발전시킨 마르크스주의의 근본으로 돌아감으로써, 우리는 마르크스주의가 트랜스 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명확한 전략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트랜스 여성이자 레프트보이스의 브라질 자매 단체 회원인 버지니아 기첼(본 호의 다른 기사에서 인터뷰됨)의 말을 인용하자면, 분명히, [책 트랜스젠더 마르크스주의의 출간은] 삶의 모든 영역에 걸친 완전한 해방에 관심이 없으며 트랜스 해방 논의에 아무런 기여도 할 수 없는, 백인, 유럽인, 이성애자, 시스젠더 마르크스에 대한 관점에 반박한다. 혹은 마르크스가 여성 해방에 대한 해답으로 제시한 것이 단지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보장하기 위한 노동시장 진입뿐이었다는 관점에도 반박한다. 사실 러시아 혁명에서 마르크스주의 사상의 실현은 삶의 모든 영역을 변혁하려는 시도의 정점이었으며, 러시아는 임신중단을 합법화하고 동성애를 비범죄화하며 공공 구내식당, 세탁소, 어린이집을 보장한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이는 오늘날에도 많은 자본주의 민주주의 국가들이 제공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혁명기 러시아에서 벌어진 혁명과 반혁명의 과정은 또한 20세기 가장 중요한 지도자 중 한 명인 레온 트로츠키가 발전시킨 ‘연속혁명론’의 과학적 토대를 제공했다. 이것이 바로 나에게 있어 21세기를 위한 마르크스주의의 모습이다… 즉, 계급 투쟁은 권력 장악으로 끝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격화된다는 결론이다. 혁명은 해방의 과정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시작할 뿐이라는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은, 개인적 해방에 대한 포스트모던적 사상이나, 혁명이 자동적으로 해방을 가져올 것이니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는 계급 환원주의 단체들의 뻔한 주장보다 훨씬 더 명확한 트랜스 해방으로 가는 길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서만 우리는 이 전략을 트랜스 해방 과제에 어떻게 적용할지, 그리고 트랜스 해방 운동의 주도권을 위해 어떻게 투쟁할지 발견할 수 있다. 트랜스 해방 운동 지도부의 실패 조직화된 좌파의 상당 부분이 퀴어 해방 운동에 대한 주도권과 관심을 포기한 상황에서, 현재 이 운동의 지도부는 불균형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적이고 자유주의적이다. 이들은 계급 정치를 거부하고, 대신 정체성 중심적(identitarian)이고 개인주의적인 정치를 채택한다. 이 중 한 부류는 케이틀린 제너나 피트 부티지지 같은 인물들을 대두시키는 대표성 정치(representational politics)에 매몰되어 있다. 이런 인물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무기화하여 퀴어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자신들의 정치적 행보를 은폐한다. 또 다른 부류는 선거 정치에 지나치게 얽매여 있어, 트랜스 억압을 지속시키는 국가의 역할을 간과하고 있다. 이 세력은 진보 성향의 인사나 퀴어 및 트랜스젠더 인사들이 의회에 충분히 당선되기만 하면, 그들이 트랜스젠더 억압을 종식시킬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그러나 트랜스젠더 억압은 이 글의 다른 부분에서 다룬 모든 이유들로 인해, 자본주의 체제가 스스로를 유지하는 방식의 일부다. 이를 고려할 때, 트랜스젠더 억압은 단순히 법적인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이므로 국가가 이를 종식시킬 수는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반反트랜스 법안의 폐지와 트랜스 커뮤니티를 위한 중요한 개량을 위해 싸워서는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렇게 싸워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타협책을 자본주의의 현실을 바꾸는 것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트랜스 활동가들에게 민주당에 대한 믿음을 가지라고 권유하는 것에서부터 동화(assimilation)를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 것에 이르기까지, 퀴어 운동의 이러한 자유주의 지도자들은 일관되게 급진성을 약화시키는 세력이 되어 왔다. 트랜스 해방 운동의 또 다른 부류는 접근 방식은 더 급진적이지만 정치적으로는 마찬가지로 개량주의적이다. 보통 스스로를 급진주의자라고 칭하는 이 세력은, 마르크스주의와 모든 총체적·보편적 이데올로기의 가치를 모두 거부한다. 대신 그들은 퀴어 이론의 영향을 받은 전략을 따르는데, 이는 결국 해방 투쟁을 개인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다시 말해, 이 전략은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을 세상을 바꾸는 수단으로 본다. 이 전략의 핵심은, 트랜스혐오를 극복하는 길은 먼저 자신의 내면화된 편견을 인식하고 변화시킨 다음, 다른 이들도 그렇게 하도록 돕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 전략을 신봉하는 이들은 또한 정치 자체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는데, 동성 결혼 합법화와 같은 성과는 단지 동화주의에 불과하며, 현 체제 내에서 결혼이 주는 실질적 혜택과 무관하게 “체제”에 굴복하는 것일 뿐이므로, 어떤 개량도 싸워 얻을 가치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 전략은 체제에 어떻게 “저항”하거나 싸울지에 대한 많은 길을 제시하지만, 궁극적인 승리와 퀴어 해방으로 향하는 길은 제시하지 않는다. 그 결과는 아무런 진전도 없이 영원히 저항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틀 안에서, 중간적인 “승리”조차도 승리가 아니다. 왜냐하면 국가로부터 얻은 것은 무엇이든 쟁취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억압은 단순히 이데올로기적인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이기도 하다. 달리 말해, 트랜스젠더들이 심각한 억압에 직면하는 것은 단지 트랜스혐오자들 때문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가 그들을 착취하고 비하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트랜스젠더들의 물질적 조건을 바꾸기 위해서는 물질적 해결책이 필요하다. 대표성(representation)은 물질적 해결책이 아니다. 아무리 선의가 가득한 트랜스젠더라 해도 혼자서 자본주의 체제를 내부에서 바꿀 수는 없다. 실제로 “권력 구조를 내부에서 변화시키려는” 모든 시도는 거의 전적으로 실패로 돌아갔다. 우리는 흑인 대통령이 인종차별을 끝내지 못했고, 여성 부통령이 성차별을 끝내지 못했으며, 게이 CEO들이 동성애 혐오를 끝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목격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또다시 그 거짓말에 완전히 속아 넘어가야 하는가? “우리는 대표성 정치가 과거에 실패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자본의 홍보 담당자들은 우리가 이렇게 믿게 만들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입니다. 이제 트랜스 CEO가 더 많아지면 실제로 뭔가 달라질 것입니다.” 더 많은 트랜스 CEO를 고용하고 더 많은 트랜스 정치인을 선출함으로써 체제가 스스로 바로잡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패배가 확실한 내기이며, 현재 많은 주에서 역사적인 수준의 억압에 직면해 있는 트랜스 아이들을 버리는 행위다. 이는 매일 살해당하는 트랜스 여성들(대부분이 흑인 및 유색인종(brown)이다)을 버리는 것이다. 이는 자신들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은 세상에 억지로 적응해야 하는 트랜스 성노동자들과 논바이너리 사람들을 버리는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우리에게 인내심을 가지라고 말하려 하지만, 우리는 그 인내심이 희생자를 낳는다는 것을 이미 목격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정치를 단순히 거부할 수는 없다. 우리를 억압하는 자들은 조직화되어 있으니, 우리도 그래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단순히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몇 군데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억압을 종식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승리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승리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포스트모더니즘과 퀴어 이론은 승리가 가능하다는 전제를 거부하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는 이론이 아니다. 대신, 우리는 트랜스 및 퀴어 해방을 위한 투쟁에 마르크스주의적 접근을 채택해야 한다. 트랜스 해방에 대한 사회주의적 관점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트랜스젠더와 다른 특별하게 억압받는 집단을 해방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노동계급뿐임을 인식한다. 이는 어떤 도덕적 우월성 때문이 아니다. (거의 모든 퀴어들이 알고 있듯이, 노동계급 구성원들도 신념은 매우 반동적일 수 있다.) 이는 오직 노동계급만이 자본주의 체제를 무너뜨릴 전략적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움직이는 것은 노동계급, 오직 노동계급뿐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경제 전체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므로, 오직 그들만이 경제를 멈출 힘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는, 자본주의를 종식시키는 것이 트랜스 억압의 모든 사례도 즉각적으로 종식시킬 것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연속혁명 이론이 보여주듯이, 사회주의의 수립은 트랜스 해방을 위한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다. 그러나 우리가 “노동계급”이라고 말할 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분명히 강조하고 또 강조해야 한다. 오랫동안 노동계급은 안전모를 쓴 시스이성애자 백인 남성이라는 이미지로 그려져 왔다. 물론 그 남성들도 노동계급이지만, 웨이터와 성노동자, 교사, 택배 기사, 개인 비서, 그리고 온갖 직종에서 일하는 사람들, 즉 우리가 전통적으로 “노동계급”이라고 생각할 때 떠올리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람들 역시 노동계급이다. 게다가 미국의 노동계급은 인종적 측면은 물론 젠더와 성적지향의 측면에서도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해졌다. 트랜스젠더와 퀴어의 압도적 다수는 노동계급에 속한다. 따라서 우리가 “노동계급이 특히 더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킬 것”이라고 말할 때, 이는 백인 구세주들이 가난하고 억압받는 대중을 구하러 날아와 구원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가난하고 억압받는 대중이 스스로 일어나, 노동자로서의 자신의 지위를 활용하여, 스스로를 해방시킬 것이라는 의미다. 이 점을 보여주는 가장 훌륭한 사례 중 하나는 아르헨티나의 마디그라프(Madygraf) 공장에서 시스젠더 노동자들이 트랜스젠더 동료의 더 나은 근무 조건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던 사건이다. 그 파업은 마디그라프에서 진행 중이던 운동의 핵심적인 부분이었으며, 결국 노동자들은 공장을 점거했다. 오늘날까지도 그 공장은 노동자 소유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에 대해 공상적인 환상을 품고, 언젠가 노동계급이 트랜스포괄적인 혁명적 강령을 가지고 깨어날 것이라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트랜스 해방에 대한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가장 시급한 필요 중 하나를 매우 명확히 인식해야한다. 바로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지도력(leadership)이다. 이러한 지도력은 노동계급과 특히 억압받는 이들로부터 건설되어야 하는 전위당(vanguard party) 형태를 띠며, 이 당은 혁명의 순간을 위해 구체적으로 스스로를 준비해야 한다. 트로츠키의 말처럼, 혁명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된 당만이 수행할 수 있는 준비 작업이 승패를 가를 것이다. 물론 이는 당연히 전위당의 당원들이 혁명을 기다리며 한가롭게 손가락만 비비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의 작업장과 지역사회에서 투쟁에 참여하며, 끊임없이 반자본주의적 관점을 위해 싸우고, 운동이 억압받는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해야 한다. 트랜스 해방을 위한 투쟁은 자본주의를 종식시키기 위한 투쟁이다. 오직 자본주의의 몰락과 사회주의 사회의 도래만이 트랜스 민중들을 해방시키고 우리가 삶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할 것이다. 2021년 6월 6일 Left Voice에 게재된 기사를 번역함. 글쓴이: 시빌 데이비스 번역: 돌멩 [1] 성(sex)은 태어날 때 부여받는 생물학적 특성이다. 이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성을 대략 네 가지로 구분하는 것이다: 음경이 있는 사람, 질이 있는 사람, 둘 다 있는 사람, 그리고 둘 다 없는 사람이다. 반면 젠더(gender)는 개인적 정체성, 사회적 관계, 외모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더 복잡한 사회정치적 과정이다. 젠더를 결정하는 과정이 이토록 복잡하기 때문에, 사람이 될 수 있는 젠더의 수는 사실상 무한하다. [2] John D’Emilio, “Capitalism and Gay Identity,” in Powers of Desire: The Politics of Sexuality, ed. Ann Barr Snitow, Christine Stansell, and Sharon Thompson (New York: Aakar Books, 2009), 100–113. [3] John M. Sloop, Disciplining Gender: Rhetorics of Sex Identity in Contemporary U.S. Culture (Amherst: University of Massachusetts, 2004.) [4] 역주: 영국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조직을 표방하던 레드 파이트백은 2020년에 『마르크스주의와 트랜스 해방: 영국 좌파 내 트랜스혐오에 맞서다』라는 책을 썼다. 저자가 인용한 영국공산당의 구절은 레드 파이트백의 주장을 ‘의학적 음모’를 주장하는 것이라며 비꼬고 있다. 레드 파이트백은 현재는 조직 내부 균열로 해체된 것으로 보인다. [5] Ciara Cremin, Man Made Woman: The Dialectics of Cross-Dressing (London: Pluto Press, 2017). /* 스크롤 여백만 주고, 화면에는 안 보이게 */ .ftn-target { display: inline-block; /* 줄바꿈 안 생김 */ width: 0; height: 0; scroll-margin-top: 200px; }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 name="_ftn1", name="_ftn2", name="_ftnref1" ... 전부 대상 document.querySelectorAll('a[name^="_ftn"]').forEach(function(a) { var idValue = a.getAttribute("name"); // 이미 같은 id의 요소가 있으면 또 만들지 않음 if (!document.getElementById(idValue)) { var span = document.createElement("span"); span.id = idValue; span.className = "ftn-target"; a.parentNode.insertBefore(span, a); } }); }); /* 본문 각주 번호 + 아래쪽 각주 번호 색 지정 */ a[href^="#_ftn"] sup, a[href^="#_ftnref"] sup { color: #BF202D; } /* 밑줄이 보기 싫으면 */ a[href^="#_ftn"], a[href^="#_ftnref"] { text-decoration: none; } /* 마우스 올렸을 때 살짝만 강조하고 싶으면 (선택) */ a[href^="#_ftn"]:hover, a[href^="#_ftnref"]:hover { text-decoration: underline; } /* 페이지 전체가 오른쪽으로 넘치지 않게 */ html, body { max-width: 100%; overflow-x: hidden; } /* 본문 영역 폭 강제 고정 + 긴 단어/문장도 줄바꿈 */ #bo_v_con, .bo_v_con, .cke_editable, article { max-width: 100%; overflow-wrap: break-word; word-wrap: break-word; /* 구형 브라우저용 */ } /* 워드에서 붙은 이미지/표가 화면 밖으로 안 나가게 */ #bo_v_con img, #bo_v_con table, .bo_v_con img, .bo_v_con table, .cke_editable img, .cke_editable table, article img, article table { max-width: 100% !important; height: auto; } /* 워드가 p, span에 폭을 박아놓은 경우 강제로 해제 */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cke_editable p[style*="width"], .cke_editable span[style*="width"], article p[style*="width"], article span[style*="width"] { width: auto !important; max-width: 100% !important; } /* 기본 blockquote 스타일 */ blockquote { border-left: 4px solid #c0392b; /* 사이트 분위기와 맞는 붉은 계열 */ padding: 12px 18px; margin: 20px 0; background: #fafafa; font-style: normal; color: #333; line-height: 1.6; } /* blockquote 안의 p 태그 정렬 */ blockquote p { margin: 0 0 10px 0; text-align: justify; } /* 마지막 p 태그 여백 제거 */ blockquote p:last-child { margin-bottom: 0; } /* 본문 안 링크 스타일 */ #gpt-article a { color: #cc0000 !important; text-decoration: none !important; } #gpt-article a:hover { color: #990000 !important; } // https://로 시작하는 링크만 target="_blank" 적용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const links = document.querySelectorAll('#gpt-article a[href^="https://"]'); links.forEach(link => { link.setAttribute("target", "_blank"); link.setAttribute("rel", "noopener noreferrer"); }); }); -
[번역] ICE반대운동을 이끄는 디트로이트 ‘민중총회’디트로이트에서 수백 명이 모인 ‘민중 총회(People's Assembly)’가 결성되어 이민세관단속국(ICE)과 트럼프 행정부에 맞설 전략을 토론하고 행동에 나서고 있다. 이들이 보여 준 민주적·독립적인 자기조직화 모델은 다른 도시에서도 본받을 만한 유용한 사례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자 공동체 공격이 갈수록 거세지면서, 전국 각지의 주민들은 어떻게 이웃을 지켜낼지, 어떻게 ICE의 단속에 맞서 방어할지 자문하고 있다. 교사, 간호사, 동네 주민들은 ICE가 들이닥칠 때 어떻게 대응할지 논의하기 위해 위원회를 꾸리고 있다. 학생들은 반ICE 집회에서 ‘권리 알기’(Know Your Rights) 전단지를 돌린다. 시카고에서는 ICE가 학교에 진입하려 한다고 판단한 교사들이 그들의 출입을 금지했다. 시카고 교원 노조는 이민 단속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생추어리 팀(sanctuary teams)’을 만들어 ICE 대응 체계를 구축했으며,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학교 앞 집회 참여자들이 다 함께 학교로 걸어 들어가는 워크인(walk-in)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세인트루이스와 인디애나폴리스에서 댈러스와 LA에 이르기까지 대규모 반ICE 집회가 잇따랐다. 이런 저항과 항의 행동이 중요한 까닭은, 반동 정치가 아직 이 나라를 통째로 삼키지는 못했다는 분명한 신호이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끊임없는 행정 조치로 우리를 짓누르려 들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조직해 맞받아칠 길을 찾아내고 있다. 디트로이트에서는 수백 명이 모여 ICE에 어떻게 맞설지 논의하는 ‘민중 총회’(People’s Assembly)를 결성했다. 이 자리에는 이민자, 교사, 학생, 각계각층의 노동자, 다양한 좌파 그룹이 함께했다. 이들은 ICE를 어떻게 밀어낼 것인가를 두고 여러 전략을 토론한 끝에 행동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그 후로 수백 명이 계속 모여서 합의된 전략과 전술들을 민주적인 방식으로 실행에 옮기고 있다. 이 공동전선 성격의 총회는 자기조직화가 실제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사례다. 이 경험에서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총회의 민주적이고 독립적인 성격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좌파, 노동조합 운동, 공동체 세력이라는 서로 다른 경향을 하나로 묶는 일의 힘을 이해할 뿐 아니라, 그 힘이 지속되려면 운동이 스스로 힘을 통제해야 한다는 점까지 알고 있다. 우리는 민주당과 그들에게 종속된 제도권 비영리 단체 관료 및 노조 관료들의 포섭 전술을 경계하고 그에 맞서야 한다. 지금 토론 중인 핵심 사안 중 하나는 ICE와 트럼프 행정부에 맞설 구체적 전략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이다. 단속이 벌어질 때 활동가들을 신속하게 소집하는 대응 네트워크를 어떻게 꾸릴 것인가, 광범위한 정치 투쟁을 통해 예방에 주력할 것인가, 사람들이 자기 일터에서 조직될 수 있도록 어떻게 도울 것인가, 트럼프 행정부가 부추기는 공포의 문화와 서사에 맞서 선전과 정치 교육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등이 문제다. 이 총회의 인상적인 특징 중 하나는, 정치적으로 조율하여 여러 전략을 동시에 실행하기 위해 다수의 실행 그룹을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이는 토론 자체가 민주적이고 열려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ICE가 우리 공동체에서 누군가를 끌어내려 할 때 이에 맞서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모을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전술적으로는 유연하되, 민중의 저항과 대응을 지원하고 그 역량을 키우는 데 전략적으로 집중해야 한다. ICE를 감시하는 순찰대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ICE에 맞선 집단적 대응을 스스로 조직하는 노동자와 공동체 구성원들을 전략적으로 뒷받침하고 그들의 힘을 키워 주는 방향으로 우리의 노력을 쏟아야 한다. 이것의 한 예가 바로 교사들이 학교에서 만들고 있는 생추어리 팀이다. 교사들의 사례는 병원과 그 밖의 일터에도 널리 알려져야 한다. 이런 위원회를 어떤 모습으로 구성할 수 있고 또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에 관해서, 한 고등학교 교사와 한 임상의의 설명이 최근 『레프트보이스』에 실렸다. 또한 운동은 공동체가 ICE에 대한 집단적 대응을 함께 구체화할 수 있는 장소로서의 지역 총회(neighborhood assemblies)를 적극 홍보해야 한다. 단속이 벌어질 때 1선 방어선은 언제나 그 현장에 있는 사람들, 말하자면 이웃, 동료, 학교 직원, 병원 직원, 교회 신자들이다. ICE가 들이닥치면 우리 모두가 대응할 책임이 있다. 예를 들어 어느 식당이 단속을 앞두고 문을 걸어 잠그면, 이 식당은 함께 나서서 자신을 지지해 줄 공동체를 필요로 한다. “민중 총회”는 바로 이렇게 서로 다른 집단이 한자리에서 조율하는 장이 되어야 하며, 그래야만 ICE에 가장 큰 타격을 입고 그에 맞서 싸우는 이들의 요구를 더 광범위한 운동이 더 구체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다. 일부 학교와 병원 행정처는 본인이 미등록 이주민이거나 미등록 가족을 둔 학생을 지지한다고 나서기도 한다. 이 같은 노력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사장과 선출직 공직자들이 움직이기를 마냥 기다리거나 거기에 기댈 수 없다. 결국 학생, 환자, 이웃의 안전을 지키는 최전선은 다름 아닌 일선 직원들이다. 당신이 ICE의 표적이 될 위험이 있는 이들과 같은 일터에서 일한다면, 사장이 입을 열 때까지 기다리지 말자!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ICE가 문을 두드릴 때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우자. 동료들이 다 함께 입장을 밝히는 공동 성명을 작성하자. 다른 일터와 손을 맞잡고 민중 총회에 함께하자. 거듭 강조하지만, ICE를 밀어내고 우리 공동체를 안전하게 지키는 싸움은 여러 층위가 얽힌 투쟁이고, 전국 각지에서 시기와 장소에 따라 그 양상을 달리한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거리에서, 학교에서, 우리의 일터에서 대중 운동과 집단 행동이 펼쳐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전에 피하지 못했던 함정을 피하는 것도 중요하다. 절박한 마음이 짙어지고 당장 행동해야 한다는 압박이 거센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효율’을 극대화한다는 명목으로 토론을 건너뛰고 행정적 구조나 막후 조직을 세우고 싶은 유혹이 강하게 작용한다. 하지만 이런 발상이 놓치는 것은, 대중 총회와 노동자 위원회의 힘이 민주적 과정을 통해 쌓인 신뢰와 동의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이 길은 더디고 어수선할지도 모르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힘이 생겨나며, 이 힘이야말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운동의 주인이 되고 총회의 결정을 직접 실행하게 만드는 주체성의 토대가 된다. 따라서 활동가와 조직가들은 무엇이든 ‘시스템화’하려는 본능에 저항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구조나 절차 자체를 내다 버려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을 민주적 과정을 건너뛰기 위한 ‘지름길’로 써먹는 순간, 우리는 정작 위원회나 총회가 가진 잠재력의 발목을 잡게 된다. 우리는 새롭게 등장한 사람들을 진행 중인 운동에 끼워 넣을 부속품 정도로 여기는 본능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오히려 새로운 모임 자체를 활동가들이 참여하고 있는 하나의 독자적인 단위로 대해야 한다. 이민자를 향한 공격에 새로운 입법으로 응수하자는 압력도 만만치 않다. 이민자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다지기 위한 입법 조치는 분명 중요하다. 이민자를 지지한다고 자처하는 지방 정부와 주 정부는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보호 입법을 통과시키고 ICE에 맞서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런 입법 활동조차 없는 민주당 의원들에게 우리의 희망을 걸 수는 없다. 더 중요한 점은, 의원들에게 전화를 거는 방향으로 운동을 전환하는 순간 우리의 힘은 거리에서 멀어진다는 사실이다. 안타깝지만 ICE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위험에 처한 우리 이웃들도 다름 아닌 거리에 있다. 다시 말하건대 디트로이트 민중 총회의 사례는 전국 각지의 운동이 발전시켜 나가야 할 값진 경험이다. 계급 독립성을 위해 싸우는 자기조직화 단위들을 통해서만 우리는 운동을 강화할 수 있고 포섭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다. 2025년 2월 7일 Left Voice에 게재된 기사를 번역함. 글쓴이: Brian H. Silverstein and Tristan Taylor 번역: 강성윤 /* 스크롤 여백만 주고, 화면에는 안 보이게 */ .ftn-target { display: inline-block; /* 줄바꿈 안 생김 */ width: 0; height: 0; scroll-margin-top: 200px; }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 name="_ftn1", name="_ftn2", name="_ftnref1" ... 전부 대상 document.querySelectorAll('a[name^="_ftn"]').forEach(function(a) { var idValue = a.getAttribute("name"); // 이미 같은 id의 요소가 있으면 또 만들지 않음 if (!document.getElementById(idValue)) { var span = document.createElement("span"); span.id = idValue; span.className = "ftn-target"; a.parentNode.insertBefore(span, a); } }); }); /* 본문 각주 번호 + 아래쪽 각주 번호 색 지정 */ a[href^="#_ftn"] sup, a[href^="#_ftnref"] sup { color: #BF202D; } /* 밑줄이 보기 싫으면 */ a[href^="#_ftn"], a[href^="#_ftnref"] { text-decoration: none; } /* 마우스 올렸을 때 살짝만 강조하고 싶으면 (선택) */ a[href^="#_ftn"]:hover, a[href^="#_ftnref"]:hover { text-decoration: underline; } /* 페이지 전체가 오른쪽으로 넘치지 않게 */ html, body { max-width: 100%; overflow-x: hidden; } /* 본문 영역 폭 강제 고정 + 긴 단어/문장도 줄바꿈 */ #bo_v_con, .bo_v_con, .cke_editable, article { max-width: 100%; overflow-wrap: break-word; word-wrap: break-word; /* 구형 브라우저용 */ } /* 워드에서 붙은 이미지/표가 화면 밖으로 안 나가게 */ #bo_v_con img, #bo_v_con table, .bo_v_con img, .bo_v_con table, .cke_editable img, .cke_editable table, article img, article table { max-width: 100% !important; height: auto; } /* 워드가 p, span에 폭을 박아놓은 경우 강제로 해제 */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cke_editable p[style*="width"], .cke_editable span[style*="width"], article p[style*="width"], article span[style*="width"] { width: auto !important; max-width: 100% !important; } /* 기본 blockquote 스타일 */ blockquote { border-left: 4px solid #c0392b; /* 사이트 분위기와 맞는 붉은 계열 */ padding: 12px 18px; margin: 20px 0; background: #fafafa; font-style: normal; color: #333; line-height: 1.6; } /* blockquote 안의 p 태그 정렬 */ blockquote p { margin: 0 0 10px 0; text-align: justify; } /* 마지막 p 태그 여백 제거 */ blockquote p:last-child { margin-bottom: 0; } /* 본문 안 링크 스타일 */ #gpt-article a { color: #cc0000 !important; text-decoration: none !important; } #gpt-article a:hover { color: #990000 !important; } // https://로 시작하는 링크만 target="_blank" 적용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const links = document.querySelectorAll('#gpt-article a[href^="https://"]'); links.forEach(link => { link.setAttribute("target", "_blank"); link.setAttribute("rel", "noopener noreferrer");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