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목록
-
[이수기업 해고노동자 인터뷰] 6월 금속노조 전국순회투쟁단, 처음은 낯설었지만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만나고 배우는 과정이었다[인터뷰 정리 : 강진관] 향후 펼쳐질 정세에 대해, 노동자들에게서 상반된 감정과 생각을 확인하게 된다. 하나는 이재명이 ‘노동자가 존중받는 세상’을 말하면서 갖게 된 기대감이며, 다른 하나는 이재명이 ‘중도 보수’를 표방하며 자본과 기업의 성장을 우선이라고 말하는 데 대해 느끼는 불안감이다. 기대와 불안은 실재하지만, 어떤 것이 현실로 드러날지 결정짓는 것은 정부와 자본에 맞선 노동자의 계급투쟁이다. 노조법 2·3조 개정 투쟁 역시 마찬가지다. 온전한 형태로 개정될지, 아니면 졸속 처리되어 허점투성이 누더기로 전락할지는 노동자 투쟁에 달려있다. 금속노조는 6월 16부터 20일까지 “온전한 노조법 2·3조 개정! 모두의 노조할 권리 쟁취! 전국순회투쟁”을 진행했다. 원청 자본이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실제 사용자로서 책임 있게 교섭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투쟁이었다. 금속노조 전국순회투쟁단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발대식을 시작으로, 서울 국회까지 9개 지역 12개 사업장을 돌며 노조법 2·3조를 온전하게 개정하기 위한 투쟁을 호소했다. 이번 금속노조 전국순회투쟁에는 정리해고에 맞서 275일째 투쟁하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이수기업 해고자 동지들도 참가했다. 현대자동차 자본은 그간 비정규직 업체를 폐업하면 일하던 노동자들을 다른 업체로 전원 고용승계 해왔지만, 이수기업 노동자들은 모두 정리해고했다. 과거 다른 업체에서 일하다 불법파견 재판에서 패소한 현 이수기업 노동자들에게 끝까지 보복하고, 향후 이수기업 담당 공정에 대한 불법파견 시비를 원천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이수기업 노동자들에게, 현대차 자본의 정리해고에 맞선 고용승계 투쟁은 나날이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다. 이수기업 해고자 세 동지를 만나 난생처음 전국순회투쟁에 참여한 경험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들었다. [문] 이수기업 노동자들이 현대자동차의 정리해고에 맞서 고용승계 투쟁한 지는 얼마나 되었나요? · 김병선 : 정리해고 철회와 고용승계를 위한 이수 투쟁은 280일, 정리해고 275일, 천막 농성 75일을 맞았다. · 김종찬 : 처음 투쟁을 시작할 때는 고립감과 서러움을 느꼈다. 이후 말벌 동지들과 지역사회단체, 현대자동차 등 여러 동지의 연대에 힘입어 275일까지 왔다. · 권홍석 : 다른 투쟁사업장에 비해 아직은 짧은 기간이지만 정신없이 투쟁하며 달려온 275일이었다. [문] 이수기업 정리해고 철회, 고용승계 투쟁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무엇인가요? · 김종찬 : 처음 투쟁을 시작할 때, 모든 게 낯설었다. 여러 연대 동지와 만나서 대화하는 과정, 현대자동차 본관 정문 앞에 천막을 치는 과정이 기억에 남는다. 천막을 친 날 집회에서 현대자동차지부 수석부지부장이 이수기업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언에 희망이 생기기도 했다. 이번 금속노조 4박 5일 전국순회투쟁도 기억에 남는다. · 권홍석 : 현대자동차 본관 정문 앞에 천막을 치는 과정이 기억에 남는다. 3월 13일 처음 천막을 치는 거라서 기대감과 두려움도 있었다. 역시나 현대자동차 구사대의 침탈로 천막을 치지 못했다. 4월 18일 두 번째는 꼭 천막을 쳐야겠다는 오기가 생겼지만, 구사대 폭력이 갈수록 심해져서 희망이 점점 줄어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5월 20일 세 번째에는 연대하는 동지들과 모두의 강력한 의지로 천막을 쳤다. 자신감이 생기고 희망도 보였다. 현대자동차 구사대의 폭력에 맞서 투쟁하면서 말벌과 연대한 동지들이 많이 다쳐서 마음이 아팠던 게 기억으로 남아 있다. · 김병선 : 두 번째 천막을 치는 당시에 현대자동차 구사대의 폭력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일방적인 업체 폐업과 정리해고에 맞서 고용승계를 요구하는 우리의 정당한 투쟁을 폭력으로 탄압하는 것에 분노했던 때가 떠오른다. 투쟁하고 연대하면서 다른 투쟁사업장이 많다는 것을 알았고, 이수기업과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은 연대에 힘을 얻어 투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김종찬 동지 [문] 금속노조 전국순회투쟁에 세 동지가 참가했는데요. 출발할 때의 생각과 4박 5일 마쳤을 때의 생각은 어땠나요? · 권홍석 : 처음에 4박 5일 긴 시간 투쟁사업장을 순회한다는 게 부담이었다. 이런 경험이 처음이고 처음 보는 동지들과 만난다는 게 어색하기도 했다. 그런데 순회투쟁을 마칠 때는 더 많은 이수 동지가 함께 참여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 김종찬 : 처음 참가자를 결정할 때 누가 가야 하나 토론했다. 참여 희망자가 없어서 새로운 것을 알게 되고 경험할 것 같아서 간다고 했다. 처음에는 버스에 탄 동지들과 좀 서먹서먹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동지들과 한마음으로 비정규직 투쟁사업장을 돌면서 온전한 노조법 2·3조 개정에 대해 알리고 배우는 과정이었다. 참 뜻깊은 프로그램이었다. · 김병선 : 솔직히 처음 참여를 결심할 때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그냥 다른 지역 투쟁사업장은 어떤 식으로 투쟁하고 있을까, 궁금 반, 설렘 반, 기대 반으로 가볍게 출발했다. 그런데 4박 5일 순회투쟁 일정을 마치고 돌아올 때의 느낌은 노조법 2·3조가 온전히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노조법이란 게 노동자들을 절대 보호해 주지 못하고, 더 많은 해고자와 투쟁사업장이 생길 것 같았다. 여러 곳에서 투쟁하는 동지들이 우리 이수기업과 똑같다고 느꼈고, 하루빨리 투쟁에서 승리하여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 금속노조 전국순회투쟁에서 여러 지역과 사업장 노동자들을 만나면서 무엇을 느꼈나요? 순회 투쟁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은 경험은 무엇이었나요? · 권홍석 : 오랫동안 힘들게 투쟁하는 창원 현대위아 동지들의 모습, 출근하는 노동자들을 많이 접할 수 없어서 휑한 공장처럼 느껴졌던 광주 글로벌모터스, 많은 동지가 함께했던 광양 포스코가 기억에 남는다. 이곳에서는 선전전보다 집회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모든 투쟁사업장은 연대가 필요하고 절실해 보였다. 다른 지역 사업장은 지회가 있어서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이수기업은 지회가 없는 게 큰 차이를 느끼게 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때마침 거통고조선하청지회 김형수 지회장이 고공에서 내려오는 날, 기자회견과 집회에 참여해 기쁨을 함께할 수 있었던 때였다. 젊은 말벌 시민들의 연대와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 김종찬 : 처음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서진 동지들과 아침 선전전으로 순회를 시작했다. 서진은 앞으로도 갈 길이 멀겠다고 생각했다. 현대중공업이 서진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있을 소송에서도 꼭 이길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창원 현대위아 비정규직 동지들이 참 어려운 투쟁을 하고 있었다. 많은 도움과 연대가 필요함을 느꼈다. 이수기업 투쟁과 전국 비정규직 사업장 투쟁이 비슷한 점은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힘과 연대가 부족함이었다. 아직 자본의 힘이 크게 느껴져 비정규직 철폐 투쟁은 가야 할 길이 멀다고 생각했다. · 김병선 : 다른 지역 노동자들도 하나같이 힘들어 보였다. 원청과의 싸움이 얼마나 힘든지 동지들의 얼굴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현대제철, 현대차그룹 양재동 본사 등 모든 투쟁사업장 원청은 노동자의 요구가 담긴 공문 받기를 거부했고 어떤 책임도 지려 하지 않았다. 보안 경비들은 벽처럼 서서 우리를 가로막고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순회투쟁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는 건 한화오션 본사 앞에서 거통고조선하청지회. 김형수 지회장이 고공 철탑에서 땅을 밟는 순간이었다. 이수기업 해고자들도 그 자리에 함께했다는 것이 정말 뿌듯했다. [문] 현행 노조법 2·3조의 문제점은 무엇인가요? 노조법 2·3조의 온전한 개정이란 어떤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 권홍석 : 노동자 범위의 제한, 원청사용자성 불인정, 손해배상·가압류로 노조 활동을 탄압하는 게 지금 노조법의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노조법 2·3조 개정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만 절박한 문제이고,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덜 받는 게 문제로 보였다. 온전한 노조법 개정은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원청과 교섭하고 파업권을 보장받아 비정규직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다. 정당한 파업에 대한 터무니없는 손해배상을 막아서 노조할 권리가 탄압받지 않게 하는 것이다. · 김종찬 : 현행 노조법 개정 시도가 여러 번 있었는데, 윤석열 정권에서 무산되었다. 노조법 2조는 원청과의 교섭을 인정하지 않고, 3조는 손해배상으로 노동자의 재산까지 가압류해서 생계를 파탄내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노조 활동을 제한하는 것이다. 노동자에게 손해배상을 엄청나게 청구해서 자살하게 하고, 개인과 노조에 감당할 수 없는 배상액을 청구해서 고통을 주는 것, 손해배상을 산정할 때 청구액이 크면 노조와 개인이 해결하지 못하니 노조 탄압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측은 손해배상액을 전부 받지 않으면 배임에 걸린다고 하는 것도 문제이다. 노조법 2··3조의 온전한 개정이 절실한 이유는 개정 이후 하청 노동자, 해고자도 원청과 교섭할 권리를 가질 수 있고, 노동자의 정당한 파업을 불법파업으로 내모는 행위를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조법 2·3조 개정으로 특수고용, 플랫폼 등 모든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 김병선 : 지금의 노조법은 특수고용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등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쟁의행위 때 손해배상·가압류를 노조만이 아니라 개인한테 청구한다고 들었다. 온전한 노조법 2·3조 개정으로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 등 일하는 모두가 노동자로 인정되고 정당한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가압류를 원칙적으로 금지해야 한다. 또한 원청사용자성이 인정되어 원청이 하청 노동자들과 직접 교섭에 나와 책임지게 해야 한다. 권홍석 동지 [문] 온전한 노조법 2·3조 개정을 쟁취하려면 민주노총과 금속노조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 권홍석 : 금속노조가 8~9월 온전한 노조법 2·3조 개정을 목표로 7월 총파업을 할 계획이라고 들었다.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가 단결 투쟁해서 반드시 온전한 노조법 2·3조 개정을 통과시키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 김병선 : 노조법 개정이 곧 생존권이라는 인식을 대중화시켜야 한다. 조합원 교육을 통해 노조법 개정의 중요성도 알려야 한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가 언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선전전과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또한 투쟁의 힘으로 이재명 정부와 국회가 노조법 개정에 책임 있게 나서도록 압박해야 한다. · 김종찬 : 순회투쟁에서 간담회를 하고 교육을 받았다. 민주당이 미약한 노조법을 통과시키려고 한다고 들었다. 온전한 노조법 개정이 절실한 노동자만이 아니라 민주노총과 금속노조가 모든 노동자에게 노조법의 온전한 개정에 대해 알리고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7월에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등이 노조법 개정을 위한 총파업과 집회를 하고 국회 앞 1인 시위도 한다. 제일 좋은 방법은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을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투쟁으로 압박해서 노조법이 누더기로 개정되지 않도록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문] 금속노조 전국순회투쟁 과정에서 만나는 노동자들에게 ‘총파업 공동행동’(내란-극우세력 청산! 사회대변혁! 노동자세상 총파업 조직화 공동행동) 유인물 400부를 배포했는데요. 울산에서 출발할 때는 좀 난감해하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유인물을 배포해 보니까 어땠나요? · 권홍석 : 순회투쟁에서 피켓 선전전을 하는 일정에서는 어려움이 있었다. 현대중공업 출근 선전전, 현대위아 집회에서는 배포하기가 쉬웠다. 나머지 다른 사업장에서는 걸어서 출근하는 노동자들이 많지 않아서 배포할 수 없었다. · 김종찬 : 처음에는 유인물을 받아서 배포하는 게 좀 난감했다. 금속노조에서 주관하는 순회투쟁인데, 총파업 공동행동 유인물을 배포하는 게 성격과 맞는지, 잘못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후 순회 투쟁하면서 유인물을 직접 나눠주고, 금속노조에서 만든 유인물도 배포했다. 총파업 공동행동 유인물을 배포할 때 좀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 순회투쟁 일정에 참여하다 보니 유인물을 돌리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막상 순회투쟁에서 총파업 공동행동 유인물을 다 돌리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 김병선 : 솔직히 유인물 배포에 눈치를 많이 봤다. 현대중공업 정문 앞 퇴근 선전전에서는 금속노조 유인물을 배포하지 않아서 총파업 공동행동 유인물을 배포할 때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는 금속노조 유인물 배포가 있어서 같이 배포할 수 없었다. 창원 현대위아에서는 집회했기 때문에 총파업 공동행동 유인물을 배포했고 많은 노동자가 읽었다. 다른 곳은 간담회 때 유인물을 비치하는 장소가 있어서 물어보고 비치해 두었다. 김병선 동지 [문] 이수기업 투쟁에 대해 전국 노동자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 김병선 : 하청업체를 바꾸든, 하청 노동자들을 자르든, 이수기업 정리해고 사태 배후에는 원청 현대자동차가 있다. 현대자동차 구사대가 폭력을 휘둘렸지만, 이수기업 해고자들은 연대의 힘으로 본관 정문 앞에 천막을 설치했다. 전국 노동자들의 연대는 우리 이수기업 해고자들이 원청과 싸울 수 있는 큰 힘이 되었다. 앞으로도 현대자동차 원청이 이수기업 고용승계 문제를 책임지도록 적극적인 관심과 연대를 부탁한다. · 권홍석 : 금속노조 단위 사업장들이 연대 투쟁하는 게 효과 있고 힘을 받을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지금까지 연대와 지지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끝까지 투쟁을 이어갈 것이니, 현대차 자본의 부당한 정리해고에 대해 널리 알려 달라. 우리 이수기업도 전국에서 투쟁하는 사업장 동지들에게 적극 연대할 것이다. · 김종찬 : 우리가 순회투쟁에서 찾아갔던 곳은 비정규직 사업장과 해고사업장이었다. 우리 이수기업처럼 투쟁하는 사업장이었다. 지방에 있는 사업장은 투쟁하는 게 어렵다고 생각했다. 광주 글로벌모터스 노동자들이 어려운 투쟁을 하고 있었다. 전국 노동자에게 바라는 것은 여러 사업장을 돌아보며 서로 연대하고 투쟁할 여건을 함께 만들어 가면 좋겠다. 이수기업 투쟁이 275일째, 두 번째 여름을 맞았다. 처음에는 투쟁과 연대가 보이지 않아 힘들었다. 연대를 모으기 위해 우리 이수기업이 먼저 연대를 다녔다. 우리 투쟁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우리에게 연대하는 동지들을 조직하고 있다. 우리는 투쟁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할 것이다. 이수기업 정리해고 철회하고 고용승계 될 때까지 항상 지켜봐 주고 우리가 필요해서 요청할 때 적극적인 연대를 부탁한다. 전국의 소규모 노조에서 투쟁하는 동지들이 있는데, 이런 투쟁사업장에도 관심과 연대를 부탁드린다. [문] 이수기업 투쟁은 전국적인 관심과 연대를 받았다. 투쟁사업장에 말벌 동지들이 연대하고 있다. 이수기업도 중요한 투쟁 때마다 말벌 동지들이 연대하고 있다. 말벌 동지들에게 한 마디? · 김종찬 : 처음에 말벌을 알지 못했다. 말벌 동지들이 찾아왔을 때 너무 생소하게 느껴졌다. 한 명 두 명 말벌 동지들이 이수기업 정리해고 투쟁에 연대하고 함께하면서 알게 되어 좋았다. 자동차 정문에서 천막을 치려고 투쟁할 때, 많은 말벌 동지가 구사대 폭력을 당했을 때 참으로 가슴이 아프면서 고맙기도 했다. 그런데 말벌 동지들이 ‘우리는 이수기업 투쟁에 연대하는 게 좋아서 왔고, 같이 연대해서 기뻤기 때문에 우리가 다친 것에 너무 걱정하거나 미안해하지 말라’고 했다. 이 말에 고맙고 힘이 생겼다. 말벌 동지들이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먹고 자고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아무런 조건 없이 연대하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우리가 가는 길에 연대하고 함께 투쟁하면 고맙겠다. · 권홍석 : 투쟁사업장 연대가 쉽지 않을 것인데, 말벌 동지들이 항상 찾아와서 에너지 넘치게 함께 어울리고, 투쟁사업장 연대를 재미로 느끼고 즐기는 모습이 하나의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것이어서 신선해 보였다. 그로 인해 우리 투쟁 과정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이 되어 주어서 감사하다. 앞으로도 변함없는 연대를 바란다. · 김병선 : 처음에 말벌 동지들이 왔을 때, 우리 투쟁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집회에서 자신을 ‘논바이너리’라고 소개했을 때 생소하게 느껴졌다. 투쟁 과정에서 말벌 동지들과 계속 만나고 대화하면서, 말벌 동지의 주장에 공감하고 이해하게 되었고, 관심을 가지고 지지하게 되었다. 지금은 우리 노동자들이 성소수자 권리를 위해 함께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이수기업 투쟁이 전국에 알려지는 과정, 많은 연대를 조직하게 된 과정에 말벌 동지들의 큰 도움이 있었다. 이런 헌신적인 연대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이수기업 투쟁 승리할 때까지 함께 해주기를 바란다. 동지들 수고하셨습니다!
-
차별과 혐오를 넘어 인간다운 삶 쟁취하자! - 빵과장미 제4차 할말많 후기“여성, 성소수자, 노동자의 이름으로 하나 되자!” 지난 6월 13일 저녁, 세종호텔 농성장에서 변혁적여성운동네트워크 빵과장미(이하 빵과장미) 주관으로 ‘빵과장미 제4차 할말많’이 열렸다. ‘빵과장미 할말많’은 여성과 성소수자, 노동을 둘러싼 여러 문제를 함께 토론하는 자리로 지금껏 ‘왜 여성은 더 가난한가?’, ‘콜센터 여성 노동’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왔다. 13일에 열린 ‘빵과장미 제4차 할말많’은 ‘여성-성소수자 차별과 혐오깨기 할말많’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됐다. 1부는 ‘여성과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 할말많’이라는 제목으로 사례 발표, 현장 발표, 발제 순으로 이어졌다. 2부는 ‘차별과 혐오를 깨기 노동자 투쟁 할말많’이라는 제목으로 현장 발표, 사례 발표, 발제 순으로 진행됐다. “성차별 타파하고 인간다운 삶 쟁취하자” 1부의 사례 발표는 조선소,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보건의료노동조합, 성소수자 노동자, 장애여성 노동자, 사회복지시설, 한국 이주여성 노동자 등 7개 현장의 이야기로 꾸며졌다. 특히 남초 직장인 조선소에서는 여성 노동자가 입사 시작부터 차별을 겪은 것으로 드러났다.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변주현 동지는 울산 현대중공업 하청업체에 입사할 당시 거주지가 부산이었다. 그래서 기숙사를 사용할 수 있는지 사측에 물었더니 여성 기숙사는 아예 없다고 했다. 또 생각이 맞는 동료와 같이 몇 번 다니기라도 하면 '둘이 사귀냐?'는 추궁을 받기가 일쑤였다고 했다. 같은 일을 하는데도 여성 노동자는 남성 노동자보다 더 낮은 임금을 받고 더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전했다. 여성 노동자가 다수인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와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노동자들은 여성 일자리라는 이유로 여전히 저임금과 열악한 환경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통합콜센터 노동자들의 경우 최근 AI도입으로 일자리를 뺏기고 있는가 하면 AI도입으로 고객 불만이 커지면서 그 민원을 최전선에서 오롯이 감당하느라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병원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 가운데 대다수는 여전히 ‘아가씨’로 불리고 있었다. 성소수자 노동자들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폭력이나 위협, 괴롭힘을 당할까 봐 걱정돼서” 정체성을 드러내기를 꺼리고 있었다. 장애여성 노동자들은 성별과 장애로 이중 차별을 경험하고 있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다른 임금을 받았고, 성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있어야 하는가 하면 채용과 승진에서 기회조차 박탈당하기 일쑤라고 했다. 사회복지시설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로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렸다. 한 여성 노동자는 시설에서 장애인에게 이루어진 폭력 사실을 상급자에게 보고했다가 오히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고 과도한 징계를 받기까지 했다. 한국의 체류비자 제도는 인종차별에 기인하고 있어 한국 이주여성 노동자들은 이중, 삼중의 차별을 겪고 있다고 했다. 각종 행정과 지원체계가 미비하고 언어서비스도 제대로 제공받지 못해 정보 접근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가부장적 자본주의가 가진 여성, 이주민, 노동자 차별이데올로기와 배타성으로 인해 이주여성 노동자는 ‘저숙련 노동자’ 또는 ‘결혼이민자’라는 고정관념으로 차별받기 일쑤고, 존재 자체가 종종 배제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같은 현장의 이야기들은 빵과장미 회원 동지들이 ‘빵과장미 제4차 할말많’ 토론회 당일 이전에 조사하거나 직접 겪은 경험을 쓴 내용을 바탕으로 했다. 이어서 현장발표 순서에서는 ‘빵과장미 제4차 할말많’ 토론회가 열린 세종호텔 농성장에서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 김란희 동지의 이야기로 꾸며졌다. 1993년에 세종호텔에 입사한 김란희 동지는 그동안 일하며 겪은 성희롱과 남녀차별을 진솔하게 이야기했다. 발제 순서에서는 여성들이 겪는 이러한 여러 차별과 혐오의 원인을 짚었다. 발제를 맡은 홍희자 동지는 ‘여성과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 가부장적 자본주의가 원인제공자이자 주범이다’라는 제목의 발제문을 준비했다. 홍희자 동지는 “자본주의 사회는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에 따른 계급사회로, 노동자는 노동력을 판매해야만 살 수 있고 자본가계급은 이 이윤체제 유지를 위해 노동계급을 착취, 억압함과 동시에 노동력 재생산을 위해서도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태생적으로 착취와 억압, 차별, 혐오, 갈라치기를 본성으로 하지만 자본주의체제의 위기가 심화되면서 억압과 차별, 불평등과 저임금, 불안정성, 혐오와 폭력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그는 “노동자계급은, 여성 노동자와 성소수자는 단결이라는 무기를 더욱 강하게 움켜쥐어야 한다. 그것만이 자본주의 폭력으로부터 우리의 일상을 지키고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성차별 구조와 착취를 철폐할 때까지 함께 싸우자” 2부 첫 순서 현장 발표 시간은 실제로 힘을 모아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의 이야기로 꾸며졌다.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 이하나 동지와 함께 일하던 상담사 9명은 용역업체 변경을 이유로 계약종료 3일을 남겨두고 해고를 당했다. 이하나 동지와 서금호, 정순금 동지는 이러한 부당해고에 맞서 복직을 요구하며 투쟁을 벌였다. 투쟁 중에는 단식농성도 벌였는데 700여 명에 이르는 노동자와 시민들이 동조 단식을 이었다. 8개월의 투쟁 끝에 해고 노동자들은 복직을 이뤄냈다. 하지만 복직 후 마주한 콜센터의 노동환경은 여전히 열악했고, 저임금에 시달려야 하는 노동자들의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이에 이하나 동지는 또다시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자의 권리를 지킬 노동조합을 건설하기 위해 오늘도 분투하고 있다. 이하나 동지에 이어 지혜복 동지도 현장 발표에 참여했다. 지혜복 동지는 젠더차별(폭력)에 맞서 온 교육노동자들이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그는 지금도 젠더차별(폭력)에 맞서 투쟁하는 당사자이기도 하다. 지혜복 동지는 A학교 내에서 학생들 사이에 벌어진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려다 이를 무마하려는 학교 측에 의해 부당하게 전보발령을 받았다. 그리고 이에 맞서다 해임되었고 A학교 성폭력 사안 해결과 부당전보‧부당해임‧형사고발 철회를 위해 520일이 넘게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어서 사례 발표 시간은 KEC지회의 투쟁 사례,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투쟁 사례, 덕성 청소노동자들의 투쟁 사례, 성소수자 차별에 맞선 국내외 노동자들의 투쟁 사례로 꾸며졌다. 그리고 발제 순서는 ‘젠더평등을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운동을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배예주 동지가 준비했다. 배예주 동지는 “먹고살기도 어렵다고 요구를 낮추고 투쟁을 축소하거나 조합주의적 노동운동의 상태에 낙담해 투쟁의 가능성을 접어버린다면 저들의 공격 고삐만 당겨질 게 뻔하다. 노동자 일부 층위 또는 일부 문제점만 개선하려는 협소한 시각과 타협적 투쟁이 아닌 아래로부터 젠더평등과 노동의 권리, 사회변혁을 위해 싸우는 노동자투쟁의 실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노동자운동과 여성·성소수자 운동은 병렬적 목표가 아니라, 가부장적 자본주의 구조를 타파하기 위한 하나의 운동이어야 한다”고 전했고, “여성·성소수자 노동자가 주체로 나서서 실천가 연대로 운동을 확장하면서 노동자계급의 새로운 힘을 창출하자”고 말했다. 이어서 국제네트워크 빵과장미를 소개하는 영상을 함께 시청했다. 그리고 토론회가 열린 세종호텔 농성장에서 지금은 농성을 마무리한 거통고 농성장까지 행진을 하며 ‘빵과장미 제4차 할말많’ 토론회는 막을 내렸다. 30여 명으로 이루어진 행진 대오는 비를 맞으면서도 “가부장적 자본주의 철폐하고 여성해방, 노동해방 이루자!”, “너희는 갈라치지만 우리는 단결한다!”, “하나 된 힘으로 억압을 벗어던지자” 등의 구호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힘차게 외쳤다. ‘빵과장미 제4차 할말많’ 토론회를 함께한 참여자들은 생각처럼 현실이 쉽게 혹은 빠르게 변화하지 않는 데에 씁쓸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서로의 경험과 생각을 나누며 다시 힘을 모을 수 있었다. 다양한 문제와 고민, 실천 방법을 나누는 ‘빵과장미 할말많’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빵과장미 제4차 할말많’ 토론회 자료집은 빵과장미 다음카페 자료집 코너에서 볼 수 있다. https://cafe.daum.net/breadnroses/VTYl/11
-
[번역] 팔레스타인 해방과 연속혁명 3[편집자 주] 2023년 10월 이후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민중을 대량학살하고 있다. 히메나 베르가라의 이 글은 트로츠키의 연속혁명 이론에 입각해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계급적·국제주의적 전략을 제시한다. 본 번역은 글의 분량상 총 5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전편 읽기] 팔레스타인 해방과 연속혁명 1 팔레스타인 해방과 연속혁명 2 자브라 니콜라와 팔레스타인의 연속혁명 팔레스타인 해방투쟁에 초기부터 참여한 팔레스타인 공산주의자들은 제국주의와 시오니즘의 관계를 이론적으로 정교하게 설명하면서, 이 지역 노동자계급이 해방을 위한 투쟁을 주도해야 한다는 점을 규명했다. 자브라 니콜라는 1912년 하이파에서 태어났다. 그는 20대 초반인 1930년대 초 팔레스타인 공산당에 입당했다. 그는 일찍부터 스탈린주의 정책을 비판했고, 좌익반대파1)의 기치 아래 당내에서 계속 활동하던 소규모 반대파 트로츠키주의 그룹에 가까워졌다. 이 그룹은 이후 1940년에 유대인 트로츠키주의자 토니 클리프의 요청으로 혁명적 공산주의 동맹과 제4인터내셔널에 가입했다. 1) (편집자 주) 좌익반대파는 1923년부터 1927년까지 소련 공산당 내에서 레온 트로츠키가 주도한 정치적 경향으로, ‘연속혁명’ 이론에 입각해 국제적 혁명 전략을 강조하며 스탈린·지노비예프·카메네프의 당내 집권파(트로이카)에 맞서 싸웠다. 1927년 말, 주요 지도부가 당에서 축출되고 트로츠키는 추방당했다. 이후 1930년 국제좌익반대파(ILO)를 거쳐 1938년 제4인터내셔널 건설로 이어졌다. 니콜라는 제4인터내셔널 운동에 합류한 후, 아랍 혁명의 과제에 대한 전략적 대응을 수립하기 위해, ‘불균등 결합 발전 법칙’의 인식틀과 연속혁명 이론을 통해 팔레스타인 분쟁(palestinian conflict)을 이해하는 이론적 과제를 수행했다. 1944년 팔레스타인 영국 위임통치 당시 자브라 니콜라의 모습, 사진은 니콜라의 기자증 니콜라는 비록 미완성이지만 그의 가장 중요한 저서인 ‘아랍 국가와 아시아적 생산양식’ 서문에서, 중동의 사회구조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중동의 사회구조는 발전중인 내재적 역사 경향과 야만적 제국주의의 침투라는 거대한 외재적 힘이 충돌한 결과로, 팔레스타인의 경우 내재적 역사경향이 시온주의 식민화와 충돌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현재 중동 전역의 아랍 사회는 정치적, 사회적 위기를 겪고 있다. 이 위기는 종종 1967년의 패배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이야기된다. 그러나 이 위기는 이 전쟁이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존재하고 발전해 왔으며, 전쟁은 이 위기의 증상에 불과했다. 패배는 위기를 더 심화시키고, 선명하게 만들며, 드러냈을 뿐이다. 이 ‘위기’는 단지 경제 발전의 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저발전국들의 경제위기가 아니다. 이 ‘위기’는 단지 제국주의에 지배 받는 국가들의 정치적 위기도 아니다. 즉, 제국주의에 의해 만들어져, 여전히 재정적·군사적으로 유지·지원받아 잠재적 저항국들에 대한 채찍 역할을 하도록 의도된 식민주의적·팽창주의적 이웃 국가의 영구적 위협에 직면한 국가들이 겪는 단순한 정치위기도 아니다. 이 ‘위기’는 주로 이들 국가의 발전 과정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는 사회적 위기다. 이는 단순한 저발전의 경제위기도, 정치위기도 아닌, 전 세계적인 사회 위기이며, 이는 전통 아랍사회로부터 물려받은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특수성에서 비롯된 역사적 산물일 뿐만 아니라, 상당 부분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오랜, 그리고 여전히 존재하는 관계의 산물이다. 이 위기는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기반과, 그 위에 강제 부과된 외국 상부구조 사이 모순의 표현이다. 1967년 제3차 중동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확보한 영토(짙은 청록색이 전쟁 이전, 연한 청록색이 전쟁 이후). 이스라엘은 이집트, 시리아, 이라크, 사우디, 쿠웨이트, 레바논을 상대로 6일만에 승리를 거두고, 이집트로부터 가자지구와 시나이 반도를, 요르단으로부터 동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시리아로부터 골란고원을 점령한다. 니콜라는 아랍 세계에 대한 제국주의의 극심한 지배 - 팔레스타인의 경우 제국주의 거점인 이스라엘의 식민 지배와 결합된 - 와 지역 부르주아지의 약점과 종속성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를 이해함으로써, 제국주의와 시온주의의 멍에로부터 팔레스타인과 아랍의 해방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나 '민족 혁명'의 틀 안에서 실현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왜냐하면 토착 지배계급은 제국주의 세력에 전적으로 의존적이거나, 제국주의 세력 앞에서 극도로 약하기 때문이다. 니콜라에게 팔레스타인 민족해방의 주체는 농민과 동맹을 맺은 아랍 노동자계급이었다. 그는 “중동 혁명에 관한 테제 Theses on the Revolution in the Middle East”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랍의 혁명은 ‘민주주의 Democratic’ 민족혁명이나 부르주아 혁명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혁명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연속혁명으로만 가능하다. 노동자계급이 빈농의 지지를 받아 권력을 장악하고 사회주의적 조치를 시행하지 않는 한, 대중의 긴박한 경제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민족적 민주주의 과제도, 급속한 산업화도 이루어질 수 없다. 니콜라의 저술 전반에서 우리는 팔레스타인 해방을 아랍 세계의 사회주의 혁명과 함께 설명하려는 매우 분명한 시도를 볼 수 있으며, 제국주의가 강요한 국경을 넘어선 아랍 프롤레타리아의 잠재적인 강력한 단결에 대한 깊은 이해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팔레스타인 상황의 특수성을 이해하려는 매우 진지한 시도도 엿볼 수 있다. 제국주의의 중동 침투가 불균등 결합발전에 따라 다양한 사회구조를 만들어낸 것처럼, 팔레스타인 사회와 그 사회경제적 구조도 이스라엘 국가의 정착민 식민주의에 의해 형성되었다. 달 피토(Dal Fitto) 는 니콜라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주장한다. 신생 시온주의 사회는 팔레스타인 아랍 사회의 다양한 계급과 충돌했다. 시온주의는 유럽에서 자본, 기술적 해법, 근대적 지식을 가져왔다. (대개 시온주의 기금의 지원을 받은) 유대 자본은 단순히 토지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봉건적 요소를 점차 대체했고, 시온주의 법규는 아랍인에게 토지를 재판매하는 것을 금지했다. 재정적, 경제적 우위를 갖게 된 시온주의 자본주의 경제는 아랍 자본가계급의 형성을 차단했다. 아랍 농민들을 그들의 땅에서 추방하며 이들과 충돌한 시온주의는, 유대인 경제 부문에서 (강력한 팔레스타인인) 프롤레타리아트의 형성 또한 막았다. 아랍 부문의 자본주의 발전이 지연되고 방해받았기 때문에 농민들은(아랍 지식인들 또한) 영국 위임통치 행정부와 공공 서비스 분야를 제외하면 일자리를 찾기가 극도로 어려웠다. 시리아와 매우 유사한 조건에서 발전해 오던 아랍 팔레스타인의 사회경제적 구조는 시온주의 식민화로 완전히 왜곡되었다. 이러한 왜곡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좌) 1967년 6월 7일, 예루살렘 바위의 돔으로 진격하는 이스라엘군 (우) 제3차 중동전쟁의 결과로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를 포함한 팔레스타인 점령과 탄압은 더욱 극심해졌다. 엔조 달 피토는 니콜라의 사상을 해석한 그의 저서에서 이렇게 언급한다. 토지를 취득하고, 때로는 그 가치 이상으로 비싸게 토지를 구입하며, 연속적인 이민 물결로 유입된 유대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야 할 필요는 산업 부문에서 유대인에 대한 배타적 고용과, 아랍인에 대한 토지 판매 금지에 기반한 인종차별적 정책을 정당화했다. 이 정책은 농업 경제의 봉건적 구조를 약화시키는 한편, 일부 유대인 대기업들이 아랍인 노동자 고용을 금지함으로써 아랍인의 프롤레타리아화도 저지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봉건제는 자본주의 경제 구조의 발전 없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제구조는 강력한 아랍 정치 지도세력의 형성을 가로막았다. 니콜라가 보기에, 시온주의 식민화의 '왜곡'으로 인해, 명확히 구분된 계급사회로의 발전이 차단된 것은 팔레스타인 정치적 상부구조 구성에 중대한 결과를 가져왔다. 사회경제적 왜곡은 정치적 영역에도 반영되었다. 부르주아지, 프롤레타리아트, 농민은 정상적인 발전 경로를 밟지 못했기 때문에, 충분한 역량을 갖춘 정당과 지도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아랍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지도력은, 시온주의자들에게 토지를 팔아넘기며 계급으로서의 자신을 청산했음에도 불구하고, 토지 거래로 막대한 재정적 이익을 얻은 지주들의 손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니콜라가 보기에, 연속혁명의 논리를 적용할 때, 정착민 식민주의의 멍에 아래 있는 팔레스타인 사회구조의 취약성은 팔레스타인 노동자계급과 농민들이 민족해방 투쟁을 (아랍) 지역 차원으로 확대하여, 반제국주의와 사회주의 혁명 아래 아랍 노동자계급을 단결시키는 것을 필수적으로 만들었다. 만약 노동자와 피억압 대중이 자국 자본가계급의 족쇄를, 또한 많은 경우 독재 정부의 족쇄를 벗어 던진다면, 아랍 노동자계급의 '국경 없는' 연대야 말로 팔레스타인 대의에 물질적, 군사적, 정치적 지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니콜라의 분석은 급진적 민주주의 투쟁(즉, 팔레스타인 해방 문제)의 열기 속에서 만들어진 아랍 프롤레타리아의 반제국주의 동맹이라는 전략적 전망, 명백히 국제주의적인 전망을 대표한다. 무엇보다, 그는 이러한 단결을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과 연결시키며 그 전망을 확고히 견지했다. 팔레스타인 해방에 대한 그의 구상은, 항상 제국주의에 묶인, 또한 제국주의에 따른 착취와 억압에 묶인 부르주아 민족국가의 한계를 넘어 민족해방 문제를 창의적으로 사고함으로써, 국가적 틀을 초월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민족주의적 구상을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와 대치시켰다. 1936년 팔레스타인 대반란 당시 아부 고쉬(Abu Ghosh)에 모여 집회를 연 팔레스타인 노동자들 "5월 1일, 노동자들과 투사들에게 영광을!", 팔레스타인 노동총연맹, 1969년 레바논에서 발행 이러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는 아랍과 이스라엘 프롤레타리아 동맹의 중요성에 대한 니콜라의 이해로 더욱 강화되었다. 이것은 그의 관점(연속혁명의 관점)을 팔레스타인 공산당으로부터 분리시켰다. 팔레스타인 공산당은 그 기원부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좌파에 (당시에도 현재에도) 가해진 엄청난 민족주의적 압력에 굴복해왔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이러한 압력은 지역 내 반혁명 세력으로서 시온주의에 근거하며, 정도는 다르지만 아랍 민족주의나 근본주의 지도부로 구성된 반시온주의 저항세력으로부터도 기원한다. 이들은 노동자계급 해방의 전망도, 팔레스타인과 아랍 대중 해방의 전망도 제시하지 않는다. 니콜라에게 시온주의 국가의 사회경제적 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근본적이었다. 시온주의 국가는 다른 정착민 식민주의 국가와 달리 고도로 발달된 내부 계급 층위를 특징으로 하며, 명확히 구분된 프롤레타리아트, 중산층, 부르주아지가 존재한다. 여기에 더해 이스라엘은 국경 내에 거주하며 무권리 상태로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아랍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아파르트헤이트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는 제국주의 국가의 무기로 무장한 군대와, 팔레스타인 주민을 폭력으로 위협하고 팔레스타인 땅을 점령하기 위해 조직된 무장 민간인에 의해 강압적으로 존속하고 있다. 니콜라는 군사화된 이스라엘 사회의 파시즘적 특징과 시온주의의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이해했다. 하지만 달 피토가 설명하듯, 이스라엘 프롤레타리아트는 잠재적으로 혁명적인 세력이다. (이스라엘 프롤레타리아트는) 제국주의의 후견을 주변 아랍 세계와의 협력과 통합으로 대체한다면 얻을 것이 많다. 따라서 계급 분석은 아랍 팔레스타인 계급 구조의 단일한 내부 분화가 아니라, 중동 프롤레타리아의 다양한 부문 간 이해관계의 연대에 주목해야 한다. 니콜라가 볼 때, 계급 분석은 잠재적으로 이스라엘을 내부로부터 파괴할 수 있는, 이스라엘 국가 내부의 긴장을 밝혀내야 했다. 그러나 니콜라는 제국주의와 시오니즘에 대한 투쟁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프롤레타리아 간의 잠재적 동맹을 조건으로 한다고 보지 않았다. 그는 이스라엘 프롤레타리아가 식민지 국가의 사회적 기반이며, 그 안에서 발전하는 모든 혁명적 정치는 팔레스타인 민족자결권을 위한 투쟁을, 또한 이스라엘 노동계급과 시온주의의 완전한 단절을 수반한다는 점을 인식했다. 더욱이, 니콜라에게 팔레스타인 해방은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의 잠재적 동맹의 출현에 종속될 수 없었다. 팔레스타인 해방은 먼저 사회주의적 관점으로 이스라엘 국가를 해체하기 위한 아랍 프롤레타리아트의 단결을 거쳐야 했다. 이러한 단결을 통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프롤레타리아의) 동맹을 구축하고,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멍에로부터 (아랍) 지역 전체를 해방시키기 위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억압 민족이다. 이 지역에서 제국주의의 전초기지이자, 아랍 혁명에 대해 억압적이고 반혁명적인 역할을 하는 이스라엘이라는 시온주의 국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승리한 아랍 사회주의 혁명의 의미는 시온주의의 패배와 시온주의 국가의 전체 구조의 파괴, 중동에서 제국주의 지배와 영향력의 청산, 팔레스타인의 권리 회복을 의미한다. 1963년 니콜라는 1962년 이스라엘 공산당과 결별하며 등장한 반시온주의 단체인 마츠펜(Matzpen)에 합류했다. 니콜라는 이 단체의 정치적 이념을 형성하고, 팔레스타인 해방에 대한 강령적 접근에 연속적(permanent) 성격을 부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니콜라의 영향 아래, 이 젊은 조직은 시온주의 식민지화와 이스라엘 국가 수립 과정에서 소련의 책임에 대해 심도 있는 평가를 내렸다. 창립 초기에 마츠펜은 팔레스타인 연속혁명의 고유한 특성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했다. 또한 강령에서는 식민국가의 구조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시온주의와 단절해야 할 필요성, 시온주의적 세뇌에 맞선 투쟁에 기초한 아랍과 유대인 프롤레타리아의 동맹을 강조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혁명적 주체로써 아랍 프롤레타리아의 다양한 세력 간의 필수적인 지역적 동맹을 강조했다. 이는 제국주의의 멍에로부터 벗어나 사회주의 사회 건설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성격 규정이 니콜라나 마츠펜의 정치적 관점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2) 2) 우리는 니콜라의 이론적 관점과 마츠펜의 혁명적 조직으로서의 궤적 모두에 대해, 몇몇 지점에서 견해차가 있다. 마츠펜의 경우, 두 국가 해법에 명확히 반대하지 않는 등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강령에 있어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우리가 이 시점에서 그들의 정치적 관점과 강령, 특히 니콜라의 관점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전략적 나침반으로서 연속혁명 이론의 재확인이다. 유엔이 이스라엘 국가의 건국을 선언한 지 반세기가 넘었다. 그 이후 아랍 세계에서 여러 시기에 계급투쟁의 영웅적 사례들이 발생했고, 항상 팔레스타인 문제가 그 배경에 있었다. 팔레스타인 해방 투쟁을 배신한 아랍 민족주의의 부상과 새로운 근본주의 지도부의 등장을 통해, 니콜라의 사상과 연속혁명 이론은 부정적인 방식으로나마 입증되었다.
-
[주간 여성뉴스 브리핑] 돌봄노동 최저임금 차등지급? ‘표준임금제’로 필수노동에 대한 사회적 가치 인정해야1. 돌봄노동 최저임금 차등지급? ‘표준임금제’로 필수노동에 대한 사회적 가치 인정해야 요양보호사 등 한국 사회 필수 돌봄 노동자들이 저임금 등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노동계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은 공공운수노조·노조 사회서비스협의회가 6월 2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연 ‘사회복지·돌봄임금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토론회에서 제기됐다. 2026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최저임금위원회 논의가 한창인 가운데, 돌봄노동을 저평가하고 차별하려는 경영계의 시도는 올해도 계속됐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감정·정신·신체노동을 수반하는 복합노동적 성격을 지닌 돌봄노동의 직무 특성을 반영하는 정부 차원의 공인된 가치체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회필수노동인 데다, 앞으로 중요성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돌봄노동 직종에 대한 고용 안정성을 확보하자는 취지다. 사회복지·돌봄임금 결정을 비롯한 ‘사회서비스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을 위한 방안’으로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 김희라 지부장은 ▲민주적 의사결정을 담보하는 교섭 체계 구축 ▲당사자인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의 참여가 강화될 수 있는 체계 등을 제시했다. <참조 기사> https://www.kyeongin.com/article/1744375 2. 폐암 내몰리는 급식 노동자들, 학교급식법 개정 촉구 폐암 등 학교급식실 산업재해가 잇따르자 노동자들이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은 6월 24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정부에 급식실 폐암 사태 해결책 마련과 학교급식법 개정을 촉구했다. 2024년 말 기준 근로복지공단 자료에 따르면 169명 폐암 산재가 승인됐고, 노동자 13명이 사망했다. 그럼에도 학교 급식 노동자들의 폐암 발병은 개별 사례로 취급되고 있으며 정확한 산재 통계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조리흄 역시 직업성 유해인자로 지정되어 있지 않다. 인력 부족 문제도 해결이 시급하다. 학교 급식실은 인력이 부족한 탓에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해야 하는 구조다. 노조에 따르면 학교 급식실 전국 평균 신규채용 정원 미달률이 30%에 이르렀다. 특히 서울지역은 올 상반기 85% 미달률을 기록했다. 단시간 고강도 압축노동의 학교급식 환경을 바꿔달라는 노동자들의 호소는 학교급식법 개정 요구로 이어졌다. 개정안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급식 종사자 건강보장 책임 부여 △학교급식위원회의 1명당 식수인원과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시설 개보수 심의 △심의위원회에 학교급식 종사자 대표 참여 보장 등 교육청의 사용자로서의 의무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참조 기사> https://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8703 3. 보건의료노동자 30% 육아휴직 못써…“주4일제 도입해야” 사진출처: 연합뉴스 최근 3년 내 임신·출산 경험이 있는 보건의료노동자 10명 중 3명이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의료노조가 6월 24일 발표한 ‘2025년 보건의료노동자 정기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3년 내 임신·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 응답자 중 육아휴직 또는 노동시간 단축을 전혀 사용하지 못한 비율이 30%에 달했다. 이에 보건의료노조는 주 4일제 도입을 통해 지속가능한 근무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주4일제를 시범 운영 중인 연세세브란스병원에서는 퇴사율이 최대 8.8% 감소하고, 건강 상태, 삶의 만족도 등 여러 지표에서 긍정적 변화가 확인됐다. 이를 바탕으로 국립중앙의료원도 지난 6월부터 주4일제 시범사업에 착수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주4일제는 노동자의 장기 근속과 전문성 유지를 가능하게 하고, 이는 곧 환자가 받는 의료의 질로 이어진다”며 “정부와 각 병원 사업장이 주4일제 시범사업을 적극 검토하고 제도 도입을 위한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 실태조사는 보건의료노조가 있는 국립대병원, 사립대병원, 지방의료원, 민간중소병원, 특수목적공공병원, 정신·재활·요양기관 등 200개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보건의료노동자 4만 4,903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한 이유로는 인력 부족으로 인한 동료의 부담(24.2%)과 인사상 불이익 등 직장 내 분위기(21.1%) 등 비자발적인 요인이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참조 기사> https://www.nocutnews.co.kr/news/6359210?utm_source=naver&utm_medium=article&utm_campaign=20250624100804 4. ‘성소수자 혐오 발언’ 김민석 후보자, ‘차별금지법’ 질의 없는 여야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여야 그 누구도 ‘차별금지법’에 대해 질의하지 않았다. 민주당 김민석 후보자는 2023년 기독교행사에 참여해 “모든 인간이 동성애를 택했을 때 인류가 지속 가능하지 못하다”라고 혐오 발언을 했으며, 최근 외신기자간담회에서는 개신교계의 차별금지법 반대 입장을 “헌법적 권리”로 격상시켜 성소수자 혐오세력을 두둔했다. 국민의힘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기 때문에 질문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반면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의원들의 고의적 침묵은 작년 9월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그가 “차별금지법이 에이즈를 확산하고 공산주의 혁명에 이용할 우려가 있다”고 하자 “인권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며 크게 비판했던 모습과 대비된다. 민주노동당은 "인권과 평등이라는 헌법적 가치에 대한 검증은 철저히 배제됐다”고 비판했다. 진보당은 대선에서 침묵해오다가 뒤늦게서야 “반드시 추가 검증이 필요한 사안이었는데 그 누구도 묻지 않았다”고 논평했다. 김민석 후보자의 성소수자 혐오 발언에 대한 많은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한국성소수자연구회, 한국성소수자의료연구회, 한국성소수자·퀴어연구학회는 지난 23일 공동성명을 냈다 “동성애는 ‘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출생율의 관점에서도 허구다”라며 “지금 동성혼을 인정하고 있는 전 세계 39개국을 보라. 우리나라와 같은 유례없이 낮은 출생율을 찾아보기 어렵고, 동성혼 인정으로 출생율이 낮아졌다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그의 발언은 성소수자 이슈를 다양성의 존중과 보편적 인권이 아닌 도구적 관점으로 보는 반인륜적 논리다”라고 반박했다. 아울러 “자신이 믿는 종교적 신념을 위해, 다른 사회 구성원의 존재와 인권을 위협하고 부정하며 제한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라고 물으며 극우 개신교 입장을 비판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차제연)의 몽(활동명) 공동집행위원장은 26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어떤 부담도 지지 않고 사실상 누군가를 차별할 권리를 앞으로도 유지시켜 달라는 주장을 종교적 자유로 포장했다. 그리고 이를 헌법적 가치로 격상시킨, 아주 의도적인 발언”이라고 직격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불평등한 사회에서 더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를 향한 차별을 없애자는 노동자민중의 요구를 표현한다. 그러나 이번 인사청문회는 정치권에 기대할 게 없고, 아래로부터 차별과 불평등에 맞서는 목소리와 실천으로 차별금지법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보여주었다. <참조 기사> https://www.khan.co.kr/article/202506261716001 https://n.news.naver.com/article/469/0000873044?cds=news_edit 5. 라트비아, 트랜스젠더·논바이너리 언어 표현 차별 라트비아에서는 트랜스젠더와 논바이너리 성소수자의 권리가 여전히 높은 장벽에 막혀 있다. 최근 국가언어센터(State Language Centre)는 논바이너리 성정체성을 반영한 새로운 대명사나 문법적 성별 변화를 도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언어 정책은 단순한 문법 조정이 아니라, 인간의 정체성과 존엄을 표현하고 확인하며 보장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정부가 성소수자 권리 보장을 여전히 등한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성소수자 권리 단체들은 일제히 이번 결정을 비판했다. 라트비아는 동성 커플에 대한 등록 파트너십제도를 2024년 7월에 도입했지만, 여전히 입양이나 상속권 등 핵심적인 부분에서 차별이 유지되고 있다. 반면 성별 이분법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논바이너리나 트랜스젠더 등의 성소수자에 대한 법·제도적 보호장치는 전무하다. 법적 성별 변경은 성전환수술을 전제로 하며, 논바이너리에 대한 공식 인정은 아예 없다. 한 트랜스젠더 당사자는 “나는 내 이름, 나를 부르는 방식 하나가 존엄과 자아의 핵심이다”라고 강조했다. 언어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조건이자 권리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참조 기사> https://eng.lsm.lv/article/features/features/27.06.2025-transgender-and-nonbinary-latvians-face-a-struggle-for-recognition.a603650/ 6. 파키스탄 여성 의료 노동자들의 승리: 신드주 정부, 민영화 계획 철회 6월 12일 밤, 파키스탄 신드주에서 여성 의료 노동자들(Lady Health Workers, LHW)이 정부로부터 프로그램 민영화 계획 철회 확인을 받아냈다. 모든여성의료노동자프로그램노조(ALPU, All-Lady Health Workers Programme Union) 소속 수천 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카라치주 의회 앞에서 대규모 연좌시위를 벌였다. 주 예산안 상정을 하루 앞두고 이뤄진 이번 투쟁은 정부와의 협상에 결정적인 압력을 가했다. 시위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우리의 권리 없이는 예산도 없다!”라는 구호와 함께 5가지 핵심 요구 사항을 제시했다. 요구는 △모든 여성 의료 종사자(LHW)를 정규직화하라는 대법원 판결 이행, ▶ LHW 프로그램의 정부 상설 기구화, ▶ 법적 급여 구조와 연금 보장, ▶ 퇴직금 등 장기근속에 따른 복지 보장, ▶ 31,000여 명에 대한 정규직 임명 등이었다. ALPU는 대규모 경찰 투입에도 시위를 이어가며 단호히 대응했다. 시위의 규모와 결집력에 당황한 신드 보건부는 긴급 협상에 돌입했고, 결국 “LHW 프로그램을 민영화할 계획은 없다”라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아라인 ALPU 의장은 “이것은 단지 우리의 승리가 아니라, 자신의 존엄성과 노동권을 위해 싸우는 모든 파키스탄 여성의 승리”라고 선언했다. 신드주 인구는 약 5,500만 명이다. LHW 프로그램이 해체되었다면, 필수 보건의료체계 붕괴와 3만 명 이상의 생계 위협을 초래할 수 있었다. UNI(union network international 국제사무직노조연맹) 아시아태평양지부 아차리아는 이번 승리를 “조직된 여성 노동자들이 보여준 변혁적 힘”이라며 높이 평가했다. ALPU는 연금 복원, 조직 내 인사 체계 정비, 신규 채용과 관련한 주요 요구 사항들이 제대로 이행되는지를 지속해서 감시하고,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밝혔다. <참조 기사> https://uniglobalunion.org/news/alpu_pakistan/ 7. 남아프리카 경찰, 내부 성폭력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 열어 6월 24일, 약 500명에 이르는 경찰들이 남아프리카 프리토리아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들이 시위에 나선 것은 경찰 내부에서 벌어진 성폭력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그들은 지난 3월에 츠와네 경찰 훈련대학에서 일어난 성범죄에 연루된 고위 간부들의 즉각 정직, 독립 경찰 조사국(IPID)을 통한 해당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 전체 경찰 관리자와 훈련대학 직원에 대한 엄격한 검증 및 관리를 요구했다. 츠와네 경찰 훈련대학 성범죄 사건에서 한 강사는 훈련생을 사무실에 가두고, 성관계를 맺지 않으면 징계를 내리겠다고 협박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하지만 그는 두 달 만에 8,000랜드(약 70만 원)의 보석금으로 풀려났다. 게다가 그와 해당 사건에 연루된 자들이 여전히 학교에서 근무 중이다. 이에 남아프리카경찰및교도소인권노조(POPCRU)가 시위에 앞장섰고 남아프리카노동조합총연맹(COSATU), 남아프리카간호사민주조직(DENOSA) 등이 함께했다. POPCRU 모사디와마제 베로니카 모코콩 수석 부위원장은 “(해당 사건 외에) 익명의 훈련생들과 경찰관들로부터 성희롱 및 성폭행 신고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이 두려워서 신고조차 하지 못한다. 이 학생이 용기를 내어 고소한 것은 정말 다행”이라고 말했다. <참고 기사> https://groundup.org.za/article/police-officers-protest-against-rape-and-sexual-harassment-in-the-ranks/ [여성 뉴스 브리핑 X] http://x.com/Wo_newsbriefing
-
아주 치밀하지만, 허약한 덫 - 김영훈 노동부 장관 후보자 지명사진: 뉴시스 아주 치밀하지만, 허약한 덫 - 김영훈 노동부 장관 후보자 지명 노동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전 민주노총 위원장 김영훈은 첫 출근길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노동시장 분절화”라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비임금 노동자의 확산과 법 밖의 노동자 보호를 강조했다. 근로감독관들을 만나서는 “가짜 3.3 계약, 5인 미만 사업장 쪼개기 관행을 살펴야 한다”라고 얘기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을 비롯해 수많은 노동자가 오래전부터 외쳐 왔던 것이기에, 당연히 수긍할 수 있는 말이다. 이런 말들과 더불어 ‘민주노총 전 위원장’, ‘철도 노동자’란 김영훈의 타이틀은 다른 노동문제도 해결해 줄 수 있지 않느냐는 기대를 하게 만들기도 한다. 노동운동 지도자가 정부가 내준 자리를 꿰찬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예를 들어 70년대 원풍모방 노조위원장으로 이름을 날렸던 방용석은 김대중 정부 때 노동부 장관을 지냈는데 고졸에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철도·발전·가스 등 공공부문 노조 파업과 공무원노조 투쟁을 탄압했다. 공무원노조와 대화하기는커녕 무조건적인 설립 불허방침을 내세웠고 경찰 투입과 간부 체포를 밀어붙였다. 김영훈은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 김영훈은 “민주노총 위원장 시절과 현재 생각이 달라진 것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서 있는 자리가 달라지면 풍경이 달라진다”라는 말로 앞으로의 실제 행보가 어떨지 가늠케 했다. 저들도 느낀다 ‘가짜 3.3 계약’은 4대 보험 가입이나 퇴직금 지급 의무를 피하려고, 근로소득자인 ‘노동자’를 ‘사업소득자’로 위장해 사업소득세(3.3%)를 원천 징수하는 계약 형태인데, 이런 계약을 맺고 일하는 노동자들이 800만 명이나 된다는 통계가 있다. 최소한 수백만 명이다. 이들의 문제를 뺀 노동자 권리 보호는 어불성설이다. 이재명이 특고·플랫폼·프리랜서 등 ‘비임금 노동자’ 가운데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는 경우, ‘근로자 추정제도’로 근로자 오분류를 개선해 근로자성을 부여하고, 최저임금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힌 이유도 이 문제를 비껴갈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근로자 추정 원칙이란 특고, 플랫폼, 프리랜서 등에게 근로자성 분쟁이 발생할 때, 일단 이들을 근로자로 추정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인데, 불 보듯 뻔한 자본가들의 반발을 제어할 계획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보다 근로자성 추정을 하려면 기존 근로자 정의나 범위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럴 계획도 없다. 기존 대법원 판례 바탕으로 판정하겠다는 뜻인데, 이렇다면 근로자성을 아무리 추정해 봐야 특고, 플랫폼, 프리랜서 노동자 등은 아무도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가 이들의 분노를 컨트롤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당분간 한국의 계급투쟁은 기존 미조직 상태에 있던 비정규 불안정노동자층이 투쟁과 함께 자기 조직화에 나서고, 여기에 조직 노동자 운동이 영향을 받아 움직이는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열악한 미조직 노동자, 청년노동자들의 분노에 조응하기 위해, 민주노총은 조직 전반에서 관료주의와 조합주의를 청산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양극화를 거치며 극심해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열 상태를 계급 단결투쟁으로 극복하며, 새롭게 투쟁에 나서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와 요구를 중심으로 민주노조운동을 재구축해야 한다. 세계 자본주의의 전반적인 위기 심화에 따라 이재명 정부가 조직된 노동자들에 대한 전면적 공세를 펼칠 시점은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당분간 이재명 정부는 노조 관료층이 수용하는 범위 내에서 노동개악을 밀어붙이고, 노동자들의 역동적 투쟁을 봉쇄하는 전략을 쓰려고 할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조직된 노동운동을 극우 보수정당에 대한 견제 도구 정도로 활용하려 할 것이다. 이러한 전략이 체제 유지를 위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동운동 통제의 핵심은 바로 수많은 미조직 노동자, 불안정 노동자, 청년 노동자의 응축된 분노가 폭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느냐, 없느냐다. 윤석열 퇴진 국면에서도 이 노동자들이 지치지 않고 투쟁을 밀어붙였다. 억눌린 용수철이 크게 튀어 오르듯 아무런 권리도 없고,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는 수많은 가난한 노동자의 저항은 적절한 때를 만나면 아주 높게 솟구칠 수 있다. 윤석열 퇴진 투쟁 때 등장해 지금도 싸우고 있는 ‘말벌’들은 몇십 배, 몇백 배 규모로 확장될 수 있다. 그렇다면 저들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꼼수, 기만, 탄압 문재인 정부도 수많은 미조직 노동자의 열악한 처지를 거론하며 “노동기본권을 국제기준 수준으로 보장하겠다”라고 여러 차례 얘기했다. 하지만, 어떤 것도 바뀐 것은 없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온전한 노동3권은 기약 없이 미뤄지기만 했다. 문재인은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최저임금을 올리지 않으면 가난한 노동자들이 저항할 수 있고, 대폭 올리면 자본가들이 난리 칠 것 같으니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개악해서 가난한 노동자들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재벌과 원청사가 하청 노동자 적정임금 지급을 책임지도록 원청 사용자 책임을 법제화하는 대신 꼼수를 부렸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정책은 기껏해야 자회사나 무기계약직으로 비정규직의 형태만 바뀌는 기만적인 결과를 낳았다. 광주형 일자리 같은 부스러기를 가난한 노동자들과 청년층에 던져 주었을 뿐이었고, 톨게이트 투쟁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노동탄압은 멈추지 않았다. 조선산업 구조조정으로 수많은 노동자가 가차 없이 일터에서 쫓겨났다. 이 모든 일이 진행되는 동안 자본가들의 이윤은 철저히 보호됐다. 만약 민주노조운동이 문재인 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박근혜 퇴진 촛불로 움터 나왔던 광장의 에너지를 믿고 독자적으로 치고 나갔다면 볼품없는 것만을 움켜쥐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꼼수, 기만, 탄압이 문재인 정부가 가난한 노동자들, 불안정 노동자들을 통제했던 방식이다. 이재명 정부는 다르겠는가? 그렇다면, 노동운동이 가야 할 길도 명확하다. 꼼수에 속지 않고, 기만에 빠지지 않으며, 탄압에 멈추지 말아야 한다. 특히 저들이 대안을 내놓겠다고 하는 부분에서, 서로가 피할 수 없는 첫 번째 승부처에서, 즉 특수고용, 플랫폼, 5인 미만 사업장 부문에서 진짜 대안을 제시하며 대대적인 조직화와 투쟁에 나서는 것이다. 노동자성 인정, 근로기준법 완전 적용, 노조할 권리 보장, 사회보험 보장 등 노동자들이 모든 노동권을 누리면서 조직화와 투쟁에 나설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양의 탈 이러한 피할 수 없는 대결 앞에 놓인 김영훈의 역할은 무엇인가? 역대 민주당 정부는 노동자에게 한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탄압하면서도 자신을 ‘노동자의 친구’로 위장하려 했다. 그래야 노동자 투쟁으로부터 자본주의 체제를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위장 수단이 바로 일부 노동운동 지도자들을 포섭해, 양의 탈을 쓰도록 만드는 것이다. ‘민주노총 전 위원장까지 했던 사람이 참여한 정부는 결코 노동자의 적이 아니’라는 포장지는 얼마나 그럴싸한가? 노동운동 상층 지도자들이 자본가 정부와 자본가 정당에 포섭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포섭된 지도자들은 단호한 투쟁을 포기한 채 자본가 정부의 시혜에 의지하고, 자본가 정당의 중재와 협조에 기대는 노동운동을 요구할 것이다. 발톱 빠진 호랑이를 무서워할 늑대는 없다. 정부와 자본가들은 투쟁의 힘을 잃어버린 노동운동에 탄압의 몽둥이를 마음대로 휘두를 것이다. 양의 탈 뒤 늑대의 얼굴이 드러나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힘은 벌써 김영훈에게 화물연대가 파업하면 어떻게 할지를 묻고 있다. 김영훈의 대답은 예정되어 있다. 자본가들의 반발을 최소화하고 노동자들의 저항도 억눌러야 하는 김영훈이 ‘국가 경제를 생각해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라’는 것 외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이재명은 민주노조운동의 정치적 독자성이 그 어느 때보다 약해져 있는 지금, 민주노총 전 위원장이란 타이틀을 가지고 있고, 이미 오랫동안 민주당과 손발을 맞춰 온 김영훈을 투쟁에 나서는 노동자들을 달래고 압박할 최적의 인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를 도입한 노사정위원회에서 알 수 있듯, 사회적 대화기구는 노동자의 이름으로 노동개악을 관철하는 수단이었는데, 김영훈을 노동부 장관에 앉히는 것이 민주노총을 사회적 대화 기구로 끌어들일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계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타이틀만 빼면, 김영훈은 허약한 덫일 뿐이다. 아직 김영훈을 잘 모르는 노동자들도 많지만, 김영훈의 관료적 행태와 출세주의적 행동은 여러 번 드러난 적이 있다. 철도노조 위원장 시절, 그는 철도청의 공사 전환 과정에서 대대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용인하면서 2004년 12월 3일 파업 돌입 1시간을 앞두고 사측과 일방적으로 합의한 전력이 있다. 전기분야에는 자회사가 설립되고 운수분야엔 대규모의 비정규직이 채용되었으며, 인력 충원 없는 3조 2교대 전환으로 노동자들은 고통 속에 내몰렸다. 철도 해고자들이 철도공사 출범일인 2005년 1월 5일 대전청사 앞에서 격렬한 투쟁을 벌이고 있던 그 시간에, 김영훈은 신광순 공사 사장과 출범식장에서 화합의 케이크를 잘랐다. 정의당 노동본부장을 지내고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의당 비례대표로 출마까지 하고 나서, 아무런 사과조차 없이 2021년 민주당에 기어들어가 작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비례대표 20번을 맡는 등, 무책임하고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김영훈에 대한 환상은 거의 없다. 사진: 경남도의회 김영훈 같은 관료들이 자본가 세력으로부터의 정치적 독자성이라는 노동자운동의 근본 대의마저 손바닥 뒤집듯 뒤집고 버젓이 활동할 수 있는 이유는 정의당에 스며들어있던 정치노선 때문이다. 민주당의 왼쪽 날개 정도로 역할하며 기반을 마련하고, 노조 관료들과 출세주의자들을 마구잡이로 끌어들여 세를 부풀리는 야권연대 노선, 선거주의 노선의 반영이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민주노조운동은 광장의 에너지가 살아 있고, 이재명 정부가 자신의 말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압력을 거세게 받을 수밖에 없는 지금, 최대한 능동적 자세로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이 열린 국면에서 수많은 미조직·불안정 노동자, 청년·여성 노동자들의 자기 조직화와 대대적인 분출을 끌어내야 한다. 이재명 정부에 대한 지지와 의존은 이 소중한 과제에 다가서는 것조차 가로막는다. 자본가 정부의 공허한 약속, 화려한 말 잔치, 수백 번의 거짓말이 노동자의 현실을 바꾼 사례는 단 한 번도 없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우리는 ‘민주당 밀어주기 정치’의 결과를 수없이 봐왔다. ‘윤석열 정부로 돌아갈 수 없다’며 이재명 정부에 의존하고 그들을 밀어주는 한, 노동자운동은 거듭 민주당 정부의 디딤돌 역할로 남아 있을 것이고, 민주당 정부는 김영훈 같은 인물을 방패 삼아 노동자들을 저항을 억누를 것이다. 다른 길이 있다. 이재명 정부에 어떠한 신뢰도 주지 않으며 독립적인 투쟁에 나서는 길이다. 정부에 맞선 투쟁을 확대하며 모든 자본가 정당으로부터 단절해야 한다. 치밀하지만, 허약한 덫을 걷어내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노동자계급의 집단적인 투쟁을 조직하는 길이다. 자본주의를 고쳐 쓰려다 자본주의에 흡수되는 개량주의 정당이 아니라 노동해방을 열어가는 노동자 투쟁정당 건설을 위해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진실한 희망은 이 길에 있다.
-
40년이 흘렀지만, 그날의 정신은 언제나 노동자를 깨운다!농성인원을 점검하고,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투쟁결의를 모았다.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미싱에서 기름을 빼서, 재단 반에서 찾은 솜에 묻혀 횃불을 밝히고, 방을 뒤져다가 화염병을 만들었다. 모두 자신을 보호할 무기를 하나씩 찾아들고,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두려움 없이 싸울 것”을 결의했다. 조합원들이 힘들어할 때 간부들과 지도부는 몇 곱절 목소리를 높여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갈수록 허기져서 버틸 힘이 없었다. 모두들 태어나 처음으로 며칠씩 배를 곯고 속옷도 못 갈아입고 씻지도 못했다. (···) 물도 먹을 수 없고 화장실 물을 받아다가 사무실에서 쓰는 가스렌지에 물을 끓였다. 그 때 누군가 물을 끓이기 위해 넣은 옥수수가 퉁퉁 불어 먹어보니 먹을 만하다고 말했다. 많이 힘든 사람부터 먹기로 했다. 자신도 배고파 힘들면서도 동지를 먼저 챙기는 모습은 투쟁에서 만나는 소중한 동지애다. 쓰러지는 친구들이 나타나자 설탕물을 조금씩 타서 먹였다. (김준희, 대우어패럴 전 사무장, “같은 시대, 다른 이야기, 구로동맹파업의 주역들, 삶을 말하다”, 유경순 엮음, 메이데이, 86쪽) 40년 전인 1985년 6월, 구로동맹파업의 한 장면이다. 1985년 6월 24일, 서울 구로공단에서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연대파업이 시작됐다. 구로동맹파업은 노동자계급이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중심, 변혁운동의 주체임을 각인시켰다. 수많은 선진노동자를 배출시키며 노동자 정치적 발전을 추동했고, 87년 노동자대투쟁의 밑거름이 되었다. 구로공단은 1960년대 말 박정희 정권이 조성한 수출산업 공단 제1호 지역이었다. 노동자들은 주로 섬유, 봉제, 전자제품 공장에서 일했다. 1970년대 한국의 전체 수출액에서 구로공단의 생산품이 약 10%나 차지했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 관리직과의 차별 대우, 성희롱, 성폭력이 극심했다. 구로지역 사업장들의 임금 수준은 1인당 국민소득이 1,988달러, 즉 5인 가족 기준 1가구 평균이 70만 원이었던 그 당시에 월 10만 원 정도였다. 대우어패럴 노동자들은 기본 근무 10시간에 항상 2∼8시간의 잔업, 철야까지 월평균 80여 시간, 심지어 110시간의 초과근무를 해야 했다. 노동자들은 ‘공순이’, ‘공돌이’로 불리는 일하는 기계였을 뿐이었다. 비인간적인 노동조건을 강요받았다. 노동자가 200명이 훨씬 넘었는데 화장실은 남녀 한 칸씩만 있고, 그것도 붙어있는 데다가 문은 판자쪼가리로 안이 다 보이고, 잠그는 고리도 없고, 변은 넘쳐서 발 디딜 곳도 없어서 화장실 가는 게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김현옥, 선일섬유 전 위원장, “같은 시대, 다른 이야기, 구로동맹파업의 주역들, 삶을 말하다”, 유경순 엮음, 메이데이, 18쪽)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투쟁이 아니다 폭압을 이어가던 전두환 정권은 1983년 2월부터 12월까지 구속자 석방, 사면·복권, 제적생 복교, 대학 상주 경찰의 철수, 해직교수 복직 등의 정치적 유화조치를 단계적으로 실행했다. 집권 안정기에 들어섰다는 자신감, 탄압의 효력 감소, 1983년 11월 미국 대통령 레이건 방한을 대비한 분위기 조성 등이 그 이유였다. 군사정권의 유화조치는 민주화 투쟁이 다시 활성화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일시적으로 활동공간이 열리자, 저임금과 높은 노동강도에 고통받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최저생계비 확보와 노동악법 철폐 투쟁에 나섰다. 1983년 ‘민주노동운동자 블랙리스트철폐대책위원회’를 만들어 블랙리스트 철폐투쟁을 벌였고 1984년에는 ‘청계피복노조 합법성 쟁취’를 위한 격렬한 투쟁을 벌였다. 1984년 구로공단에도 민주노조가 연이어 결성됐다. 1984년 가리봉전자, 대우어패럴에 이어 효성물산에서도 7월 14일 여성노동자들이 모여 민주노조를 결성했다. 대우어패럴에 이어 대한마이크로, 가리봉전자, 선일섬유, 효성물산, 협진, 유니전 등에서 속속 민주노조가 결성됐다.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에서 배출된 노동자출신 활동가들과 학생출신 활동가들이 각 사업장에 들어가서 끈질기게 활동한 결과였다. 이 시기 구로공단 민주노조운동의 특징은 다양한 방식의 연대와 의식적 조직화에 있다. 연대 활동은 신생 노조로서 노조 운영을 위한 정보 교환과 자문이 필요하다는 요구에서 노조 간부들 간의 가벼운 교류로 시작됐으나 점차 노조 운동의 방향을 공유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노조 탄압 사례 발표를 통해 여러 노조의 조합원들이 비슷하게 탄압받은 경험을 공유하고 분노하면서 노동자로서의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탄압이 한 기업 차원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면서 공동 대처 방안을 찾았다. 노조 현판식 같은 기념행사나 문화 행사에 서로 번갈아 참여했다. 탈춤, 꽃꽂이, 연극 등 다양한 공동체 프로그램이 있었다. 숙박 교육에 참여한 조합원들은 공식적인 교육 일정이 끝나면 서로 간에 각자의 회사 이야기나 살아온 이야기를 하면서 밤을 지새우기도 했으며 이 과정에서 ‘너희 회사, 우리 회사’를 구분하지 않고 하나로 어울리게 됨으로써 노동자들의 일체감은 더욱 높아졌다. 다른 한편으로는 비공개로 여러 노조의 간부들이 참여하는 지역 소모임을 만들어 학습하면서 사회를 보는 눈을 넓혀가는 지역 활동도 전개했다. 이런 활동이 공동으로 싸울 수 있는 기초이자 토대였다. 소모임과 비공개조직에서 단련된 투사들, 노동자의 대의, 투쟁, 연대를 끊임없이 실어 나르며 선두에서 투쟁하는 선진 투사들이 있었기에 조합원들은 굴종이 아니라 투쟁을 선택할 수 있었다. 노동자 소모임 프로그램의 기본 틀은 다음과 같다. “[1단계 프로그램] 노동자의 현장과 생활에서 출발하는 토론 → 의식화에 초점 (예) ‘근로자를 가족처럼’, ‘공장 일을 내 일처럼’ 등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와 충효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토론과 교양 + 각 사업장 근로조건을 비교하고 토론 [2단계 프로그램] 우리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등의 사회문제를 둘러싼 토론 [3단계 프로그램] 노동운동사 및 정치경제학적 기초교양” 이런 소모임은 4~6명을 기본 단위로 하여 6~7개 정도가 비공개로 추진되었다. 대우어패럴 교선부장 김준희는 가리봉전자, 남성전기, 협진양행 노동자 5명으로 구성된 한 소모임에 참여했다. 소모임에서는 각 공장의 실태와 운동 상황이 토론되고 노동의 역사, 일하는 사람을 위한 경제지식, 어머니 등을 읽고 학습을 했으며 다른 사업장의 노동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노동자로서의 동질감을 형성해 갔다. 지역소모임을 통한 조직과 의식화는 새로운 노동운동가를 양성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또한 이들은 노조에서도 조합활동을 활성화시키는 데 역할을 했으며 나아가 노조 간의 지역연대 활동에 기초가 됐다. (유경순, 2007, 아름다운 연대 - 들불처럼 타오른 1985년 구로동맹파업, 메이데이) 지난 6월 15일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스튜디오R, 학생사회주의자연대가 함께 개최한 <구로동맹파업 40주년, 역사기행>에 강사로 참여한 대우어패를 전 사무장 강명자 동지는 기숙사가 일찍 소등해서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책을 읽었던 경험, 사업장을 뛰어넘어 연대했던 경험을 얘기하며 노동자들이 열심히 배우려 했고, 일상적으로 연대하려 했기 때문에 동맹파업이 가능했다고 얘기했다. 하루아침에 일어난 파업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문재훈 서울남부노동센터 소장도 강사로 참여했는데, 대우어패럴에 골방파(학습 중심)와 고고장파(조직화 중심)가 있었는데 이 둘이 하나로 힘을 모았기에 노동자들의 힘이 세졌다고 했다. 이론과 실천의 결합이 중요하다는 얘기였다. 파업의 도화선 동맹파업의 직접적 계기는 구로지역 민주노조 운동의 중심이었던 대우어패럴노조 간부 3인의 구속이었다. 6월 22일 오전 11시에 대우어패럴노조 김준용 위원장, 강명자 사무국장, 추재숙 여성부장이 연행·구속되고, 간부 8명이 불구속으로 입건됐다. 소식을 듣고 분노한 조합원들은 즉각 작업을 중단했다. 100여 명이 회사 총무과에 몰려가 고발 취소를 요구하며 오후 5시까지 농성을 벌였다. 이후 간부들은 밤을 새워 대책회의를 하고, 이튿날(23일) 대의원 전체가 모여 총파업을 결의했다. 대우어패럴 간부들이 구속되던 날인 토요일 안양에 있는 기독교 원로원에서는 구로공단의 효성물산노조, 선일섬유노조, 가리봉전자노조 간부와 조합원, 구로지역의 활동가와 해고노동자 150여 명이 합동교육을 받고 있었다. 대우어패럴노조 간부들이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노동자들은 대응책을 찾았다. 대우어패럴노조에 대한 탄압은 대우어패럴만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노조탄압의 첫 신호이기 때문에 자신들 모두에게 닥쳐올 문제라고 인식했다. 노동자들은 “70년대 선배 노동자들이 치열하게 잘 싸웠지만, 그러나 단위노동조합이 작업장별로 따로따로 싸우다가 1981년, 1982년 전두환 정권의 노조 탄압으로 모두 깨지는 결과를 가져왔다”라는 생각을 공유했다. 함께 연대투쟁으로 대우어패럴노동조합 탄압에 대응할 것을 모색하였다. 동맹파업의 시작 효성물산, 선일섬유, 가리봉전자 등 3개 노조는 6월 24일 오후 2시에 연대파업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효성물산·가리봉전자·세진전자·청계피복·선일섬유 노조가 공동으로 발표한 ‘노동조합 탄압저지 결사투쟁선언’은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대우 노동조합 탄압은 80년의 저 무시무시한 노동조합 탄압을 되새기게 한다. 현 정권은 70년대의 민주노조들을 하나씩 차례로 깨부숴버렸다. …80년 이후 5년간 우리는 노동자의 기본 권리를 한 치도 허용하지 않는 암담한 현실을 뚫고 일어섰다. 갖은 탄압과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민주노조의 전통을 이어온 우리가 물러설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번 대우 노조 파괴음모가 모든 민주노조에 대한 사형선고와 같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마당에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할 것인가? 임금인상조차도 못하는 노동조합으로 비굴하게 살아남을 건가? 가만히 앉아서 민주노조가 차례로 깨져나가길 기다리고 있을 건가? 우리는 그러한 어리석음을 두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는다. …민주노조 선진노동자들이여! 함께 일어나 싸우자! 천만 노동자의 동지애로서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6월 24일 오전 7시 반, 대우어패럴 조합원 350여 명이 관리자들의 방해를 뚫고 1공장 2층 생산과 작업실에 집결해 ‘우리의 결의문’을 낭독하고 파업농성에 돌입했다. 조합원들은 “노조간부 석방하라, 민주노조 탄압마라, 노동악법 개정하라, 집시법·언론기본법 폐지하라, 노동부장관 물러나라”를 소리 높여 외쳤다. 회사에서는 파업을 미리 예상한 듯 현장출입구에 관리자들이 모두 나와 서 있었고 평소 7시 30분에 열리는 현장 문이 7시 45분이 지나서야 열렸다. 50분에 각 현장별로 실시되는 국민체조가 끝나기를 기다려 각과 부위원장들은 작업대 위로 올라가 위원장이 부당하게 구속되었다는 것을 알리고 같이 싸우기를 호소했다. 각과 조합원들이 1과 현장으로 속속 모여들었고 노조사무실에서 대기하던 2공장 조합원들도 합세했다. 밀고 들어오는 도중에 저지하던 관리자와 격돌하여 조합원 전재선이 쇠파이프를 맞고 코를 병원에서 세 바늘 꿰매고 돌아오는 사태도 벌어졌다. 관리자들의 저지를 받아 미처 들어오지 못하고 쫓겨난 조합원도 수십 명이었다. 1과 현장에 모인 인원은 285명이었다. 조합원들은 먼저 미싱과 원단을 쌓아 출입구를 차단하고 대열을 정비한 후에 소리 높여 ‘결단가’를 불러 사기를 올렸다. (유경순, 2007, "아름다운 연대 - 들불처럼 타오른 1985년 구로동맹파업", 메이데이) 오후 2시가 되자 마주보는 건물에 있는 효성물산노조 조합원 400여 명이 대우어패럴 노동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파업에 동참했다. 같은 시각, 가리봉전자 구로공장과 독산공장 500여 명과 선일섬유 노동자들까지 농성을 시작했다. 동맹파업 첫날 4개 노조 조합원 1,300여 명이 파업에 참여했다. 3개 사업장 사측은 곧바로 물과 전기를 차단해버렸다. 경찰 150여 명은 신일섬유 농성장을 봉쇄했다. 효성물산과 대우어패럴은 서로 마주보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 효성물산의 조합원들이 2층 건물 베란다로 나가 “대우, 힘내라”고 외치기도 했고, 그 소리에 건너편 대우어패럴에서는 “효성 힘내라”고 외치며 투쟁을 전개했다. 효성물산의 조합원들은 취침 시간에도 대우어패럴에서 이상한 분위기가 느껴지면 모두 난간으로 나가 꽹과리 치면서 안부를 확인하였다. 가리봉전자에서는 사무장 윤혜련이 조합원들을 현장에 다 모이게 한 후 임시총회를 열고 대우어패럴의 노조 탄압을 알리는 선전물을 배포하고 같이 투쟁해야 할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조합원들이 공동 투쟁을 결의하고 바로 파업에 들어가면서 현장 곳곳에 바리케이드를 쳤다. 1985년 6월 25일 동아일보 6월 25일 남성전기노조 조합원 300여 명이 오후부터 농성을 시작했다. 세진전자노조 조합원 250여 명도 오후 5시 30분부터 11시까지 회사 운동장에서 지지농성을 했다. 롬코리아도 2층 식당에서 100여 명이 철야농성을 전개했다. 이렇게 연대투쟁은 하루 만에 7개 사업장으로 확산했다. 이날 구로공단과 주변 주택가 곳곳에는 ‘구로지역 20만 노동자여! 다함께 일어나 싸워나가자!’라는 제목의 유인물이 살포됐다. 구로지역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연합·노동운동탄압저지투쟁위원회·청계피복노조 명의의 유인물의 주요 내용은 “6월 26일 오후 8시 30분 가리봉오거리에 총집결해 ‘전두환 정권의 노동자 탄압을 규탄하는 궐기대회를 벌이자”라는 것이었다. 노동자들은 동맹파업을 하면서 다음과 같은 요구사항을 내세웠다. 개별 사업장의 요구를 뛰어넘는 전체 노동자의 요구, 경제적인 요구를 뛰어넘는 정치적인 요구를 제기했다. 1. 정부당국은 대우어패럴노동조합 위원장 김준용 동지를 비롯한 구속자 전원을 즉각 석방하라! 2. 정부당국은 민주노조운동을 짓밟는 모든 악법(집회시위법, 언론기본법, 노동악법 등)을 즉각 철폐하라! 3. 정부당국은 부당해고자 전원을 즉각 복직시켜라! 4. 정부당국은 정책적인 어용노조 설립을 즉각 중단하라! 5. 정부당국은 임금동결정책을 포기하고 최저생계비를 보장하라! 6. 민주노동조합 파괴에 앞장서 온 조철권 노동부장관은 즉각 물러가라! 악랄한 탄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은 투쟁의지 정부와 회사의 탄압은 악랄했다. 정부는 경찰을 동원해 사업장 주위와 구로공단 요소요소에 배치해 지원 연대를 차단하려 했고 회사 측은 농성장에 대한 단전 단수와 함께 음식물을 일절 들여보내지 않아 노동자들은 주린 배를 움켜잡고 투쟁해야 했다. 효성물산의 경우, 파업 시작 첫날 밖에서 빵과 음료 등을 넣어주었으나 그다음 날부터 경찰이 이를 막은 데 이어 전기와 수돗물까지 차단했으며 물이 안 나오니 화장실까지 막혀 농성 노동자들은 이중으로 고통을 겪어야 했다. 대우어패럴에서도 회사 측이 단전 단수와 함께 음식물 반입을 막았다. 3일째 되는 날에는 배가 고파 쓰린 배를 움켜쥔 조합원들 사이에 “지나가는 쥐라도 있으면 잡아먹고 싶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에도 노동자들이 계속 파업을 벌일 수 있었던 이유는 같이 싸우는 동료들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그 통탄할만한 농성반대 집회가 있고 나서 밖에 있는 조합원들을 퇴근시키더니 다시는 출근을 시키지 않았다. 그 일로 쟁의부장 박신자 동지가 온몸이 돌아가며 쓰러졌다. 병원에 가야 한다며 밖에 내보내려 했는데 쟁의부장은 “죽어도 여기서 죽겠다. 손을 따 달라”고 해서 모든 동료들이 달려들어 따고 주무르고, 농성장이 한바탕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렇지만 쟁의부장이 보여준 투쟁의지는 다른 동지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김현옥, 선일섬유 전 위원장, “같은 시대, 다른 이야기, 구로동맹파업의 주역들, 삶을 말하다”, 유경순 엮음, 메이데이, 35쪽)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투쟁은 다른 지역으로 계속 번져갔다. 삼성제약 조합원들도 농성과 점심 식사 거부로 지지를 표명했고, 저 멀리 경남 창원에 있는 (주)통일노조도 지지를 표명했고 연대투쟁을 조직했다. 농민운동 단체들도 성명을 발표하여 정권의 노조 탄압을 규탄하고 동맹파업 노동자들에게 지지를 표명하였다. 6월 27일, 대우어패럴에서는 회사에서 동원한 노동자 300여 명이 노조반대 농성을 했고, 가리봉전자에서는 새벽에 회사 관리자와 구사대들이 식당 문을 두드리고 욕을 하고 각목을 휘두르며 폭력적으로 파업을 방해했다. 6월 28일, 부흥사 조합원도 노동운동 탄압에 항의하여 동맹파업을 시작했다. 120여 명이 출근과 동시에 3층 작업장에서 구속노동자 석방을 요구하며 연대투쟁에 동참했다. 그러나 관리직 남성들이 쇠파이프와 몽둥이를 휘두르며 난입해 오후 4시 30분경 해산당하고 말았다. 회사는 해산 이후 공갈, 협박, 폭행으로 80여 명에게 사직서를 쓰게 하고 29일부터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다. 남성전자, 세진전자, 롬코리아 등의 지지 농성 투쟁도 이어졌다. 롬코리아는 대우어패럴의 파업을 알게 된 대의원들이 “우리가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되겠냐”라며 위원장에게 따져서 지지 투쟁을 시작했으며 조합원들은 근무시간이 끝나고 이틀 밤을 새우면서 지지 농성을 벌였다. 한편, 효성물산노조가 회사로부터 보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26일 밤 11시에 농성을 해산했으나 회사는 7월 3일까지 휴업공고를 냈다. 효성물산과 청계피복 조합원 100여 명은 27일 오후에 노동부장관 면담을 요구하며 노동부 중부지방사무소에서 농성을 벌였다. 그러나 강제해산을 당했고 물론 청계피복노조 사무장과 효성물산노조위원장 등 7명이 구속되고 말았다. 27일에 농성을 해산한 가리봉전자, 선일섬유 등에서도 농성을 주도했던 노동자들에 대한 보복 폭력이 난무했다. 6월 27일 음식 반입까지 가로막힌 가운데 탈진한 노동자들이 실려 나가고 남은 대우어패럴 농성자는 100명 남짓으로 줄었다. 그런데도 회사는 비조합원 300여 명을 강제 동원해 농성장 앞 운동장에서 4시간 동안 노조를 비방하는 구호를 외쳐대는 등 방해 책동에 열을 올렸다. 6월 29일 오전 8시경 대학생 18명이 빵과 우유, 의약품을 짊어지고 지붕을 타고 넘어 합류했다. 농성장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다급해진 회사는 깡패 500여 명과 사복경찰을 동원해 벽을 뚫고 진입했다. 해산 과정에서 구사대가 각목과 쇠파이프로 농성 노동자들을 폭행했으나 경찰은 이를 묵인하고 방관했다. 6월 29일 7시 즈음. 기상해서 출근 시간에 맞추어 창틀에 매달려 있는데 한일은행 담을 타고 학생들이 창문으로 들어왔다. 노동자들이 반가워서 몰려가 환호, 박수로 환영하고 학생대표의 인사말을 들었다. 그러나 채 인사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현장 벽이 부서지면서 관리자, 경비, 반대파들이 돌과 각목을 던지고 소화기를 뿜어대며 급습, 관리자 200여 명이 각목과 쇠파이프, 의자, 발길질 등으로 가릴 것 없이 농성자들을 구타하면서 머리채, 손발 아무데나 휘어잡고 기숙사 쪽으로 끌고 갔다. 회사 측의 폭력을 피해 20여 명이 창문으로 뛰어내리다 모두 잡혀 남부서로 연행, 회사로 다시 끌려와 기숙사에 갇혔다. 기숙사로 끌려간 농성자들은 한방에 5명씩 갇혀서 1인당 비조합원 3명에게 감시당하면서 갖은 모욕을 당했다. 11시 즈음 의사들이 들어와 진정제를 억지로 먹여서 농성자들은 잠이 들었다. 오후 2시 30분 즈음 이들은 깨어나 죽 한 그릇씩을 먹었다. 관리자들은 수시로 드나들며 “경찰서로 직행시켜야 한다”, “입에다 똥을 처넣어야 한다”는 등의 폭언과 협박을 함부로 했다. 그 이후 회사 측은 농성자들을 한 명씩 총무과에 끌고 가 부모까지 동원하여 강제로 사표를 쓰게 했다. (유경순, 2007, 아름다운 연대 - 들불처럼 타오른 1985년 구로동맹파업, 메이데이) 이처럼 6월 24일부터 4개 사업장으로 시작된 동맹파업은 6일 동안 굶주리면서 싸운 대우어패럴 노동자 80여 명이 강제 해산됨으로써 막을 내렸다. 농성을 풀었다가 신민당사에서 다시 농성을 벌이던 효성물산노조 조합원 36명도 30일 “신민당이 노동운동 탄압과 폭력 사태를 막기 위해 노력하겠다”라는 약속(성명 발표)을 받고 농성을 풀었다. 구로공단에 있는 5개 사업장에서 약 1,400명의 노동자가 동맹파업을 벌였고, 또 다른 5개 사업장에서 연대투쟁을 벌이는 등, 2,500여 명의 노동자가 투쟁에 참여했다. 투쟁 과정에서 구속 43명, 불구속 입건 38명, 구류 47명, 그리고 2,000여 명이 해고 및 강제사직으로 공장에서 쫓겨났다. 빛나는 의의와 함께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동맹파업인 구로동맹파업은 경제적 요구를 넘어 국가권력을 상대로 정치적 요구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정치투쟁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구로동맹파업은 이후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정치투쟁 조직이 출범하는 근거가 되었다. 빛나는 의의와 더불어 우리는 노동자들이 겪었던 고통, 지금도 겪고 있는 거대한 고통도 잊지 말아야 하고, 그 당시 활동가들의 반성도 눈여겨 돌아봐야 한다. "예전엔 블랙리스트에 걸려서 이 거리를 못 움직였는데, 지금은 돈이 없어서 이 거리를 못 움직여요. 이렇게 투어를 할 때 한번씩 와서 여러분들한테 인사를 하게 되네요. 역사적인 장소 산업민주화와 혁명의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여기만 오면 저는 슬퍼요. 제가 아직까지도 우리 대우어패럴 동지들 모임 회장을 맡고 있는데, 친구들과 동생들이 지금까지도 울면서 저한테 전화를 해요. 그때 열여덟 열아홉 되었을 때, 성폭력 당해서 결혼 해가지고도 말 못하고 고통스러워서 하는 동생들이 있어요. 지금까지도 노동조합 했다는 소리를 남편이고 아이들한테 못 한 사람들도 있고요. 실신하고 들쳐 엎는 상황에서도 자기의 소중한 부위를 만지는 걸 느낌으로 알 수 있잖아요. 성추행이잖아요. 지금 같으면 언론이나 연대싸움을 해서라도 떠들 수가 있는데, 그렇게 못한 게 너무도 한이 돼서 지금도 말 못하고 언니한테만 얘기한다고 울어요. 저도 그 얘기를 들으면 슬퍼서 울어요. 사람이 사람답고자 했던 행위가 하나의 인간으로 대접 못 받는 수치를 많이 남긴 거잖아요." (강명자 대우어패럴노조 전 사무장 발언, "지금도 노조했단 말 못한단 얘기 들으면, 슬퍼서 울어요", 연정, 오마이뉴스) 나를 포함해 노동운동에 뛰어든 학출 활동가들이 갖고 있던 지적인 허영과 오만, 가장 옳은 입장이라고 자처했던 독선, 노동자들을 대상화했던 순간들, 비민주성, 패권주의, 자신조차 추스르지 못하고 상처받은 노동자 동지들의 손을 놓아버린 약하고 무책임한 뒷모습···· 모든 것이 한꺼번에 떠오르며 부끄러움과 고통으로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서혜경, 전 가리봉전자 부위원장, “같은 시대, 다른 이야기, 구로동맹파업의 주역들, 삶을 말하다”, 유경순 엮음, 메이데이, 229쪽) 당시는 노동운동의 초기 단계였기 때문에 선진 투사들이 노동해방사회의 건설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활동한 것은 아니었고, 여러 정치적, 실천적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구로동맹파업을 신화적으로 기억해선 안 된다. 의의만이 아니라 한계까지도 곱씹어 전진해 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그럼에도 구로동맹파업의 의의는 조금도 약해지지 않는다. 당장의 실리에 집착하면서 노동자의 대의를 내팽개치는 조합주의, 관료주의에 맞서 구로동맹파업이 보여주었던 계급적 단결과 연대의 정신을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한다. 동맹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은 ’내 사업장만 살자‘는 조합주의를 넘어, ’옆 사업장이 깨지면 다음은 우리 차례‘라는 절박함으로 ’함께 싸워야 이긴다‘는 계급적 연대를 선택했다. 물과 전기가 끊긴 공장 안에서도, 밥 한 끼 없이 쓰러져 가는 와중에도 서로를 부축하며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싸웠다. 나의 투쟁과 당신의 투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끝까지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40년 전 구로동맹파업이 남긴 가장 빛나는 유산이자, 오늘의 비정규·미조직·청년·여성 노동자들의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바꿀 수 있는 무기다. 구로동맹파업 40주년, 그 정신은 영원히 살아있다.
-
민주당에는 성평등 DNA가 아니라 안희정, 오거돈, 박원순이 있다민주당에는 성평등 DNA가 있다고 한다. 지난 대선 공약에서 성평등이나 여성정책이 사라지자 간담회를 요청해 비공개로 만난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10개 여성단체 대표단에 민주당은 “부족해도 성평등 DNA가 있는 정당이니 기대를 접지 말아달라”라고 부탁했다. 현장에 있던 여성단체도 “민주당은 김대중 대통령 때부터 문재인 대통령 때까지 여성 정책을 활발하게 추진해 왔고, 지금도 중심에 있기 때문에 기대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렇게 보면 민주당에 있다는 성평등 DNA는 자타의 공인을 받은 셈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우리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초대 민주당 대통령인 김대중 정부 때부터 민주당의 DNA에 있던 것은 불안정 노동이었으며, 성차별과 성폭력이다. 그리고 그 희생자의 선두에 안희정, 오거돈, 박원순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있고, 그 대열에 혐오와 차별과 빈곤과 폭력에 고통당해온 수많은 노동자계급 여성이 있다. 사실 민주당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강행한 자본가 정당이며 이의 최대 희생자는 여성이었다. 초대 민주당 대통령인 김대중 정권은 정권교체를 이루며 자신의 정당성과 기반을 다지기 위해 이른바 ‘시민사회와의 협치’를 강조하는 ‘거버넌스’라는 이름으로 민주화운동 인사들을 대거 흡수했고, 여기에는 여성계 인사도 빠지지 않았다. 이 같은 조건에서 김대중 정권은 여성부를 설치하고 여성공천제도를 도입하는 한편, 남녀차별금지및구제에관한법 등을 제정하여 그동안 여성운동이 주장해 온 요구 일부를 수용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은 이와 동시에 신자유주의적 구조개악을 밀어붙이며 전 노동자계급의 생존권을 후퇴시켰고, 이는 특히 노동자계급 여성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김대중 정부가 노동자계급 여성에게 미친 주요 영향은 다음과 같다. 첫째, 김대중 정권이 강행한 공공부문 매각과 정리해고 및 파견제 도입 등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노동자계급 여성을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로 대거 밀어냈다. 대표적으로, 1998년 본격적으로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시작하면서 여성 임시/일용직 노동자는 57%에서 68.9%까지 증가*했을 만큼 여성 노동자에 대한 악영향은 강력했다. *정성미, <비정규직 여성근로자의 고용특징>, 한국노동연구원, 2005 둘째, 김대중 정권 시절 남녀고용평등법 전부 개정, 모자보건법 개정 등으로 도입된 일·가정 양립 정책은 신자유주의적 여성정책으로 임신·출산, 가사돌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은 방기한 채 여성 노동력을 시장화하기 위해 필요한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에 따라 여성 노동자들은 불안정한 고용조건 속에서 임신·출산, 가사돌봄이란 이중의 부담을 떠맡으며 저임금 일자리로 밀려나야 했다. 마지막으로 김대중 정권 시절 수립된 신자유주의적 여성노동·인구정책 기조는 이후 전 노동자계급에 대한 노동유연화를 촉진하는 기조로 활용됐다. 노무현 정부 시기인 2006년 8월 수립된 1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을 시작으로 ‘근로형태 유연화’가 출산장려정책의 주요 과제로 자리 잡았으며, 주요 정책 과제 중 하나인 ‘가족친화적 기업 지원’에서도 기준 항목에 불안정 노동을 심화하는 탄력적 근무제가 포함됐다. 이명박 정부는 저출산 정책으로 유연근무제를 추진했는데, 이는 사실 단시간노동제로서 신규채용을 단시간 일자리로 전환하고 직무를 단시간화하여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조치로 작용했다. 문재인 정권도 노동유연화 조치인 직무급제를 추진하며 내세운 명분 중 하나로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들었다. 즉, 민주당은 ‘여성’의 이름으로 노동유연화를 강행한 장본인이다. 민주당은 ‘여성’의 이름으로 노동유연화 강행한 장본인 최근 집권한 민주당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에도 유연근무제가 포함됐다. 이 대통령은 주4.5일제를 대표 공약으로 말하며, 40시간 법정 근로시간을 유지하되, 유연근무제를 통해 실질적 4.5일제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유연근무제가 노동자의 근무시간, 장소, 방식 등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게 한다는 장점을 지닌 것으로 선전되지만, 재택근로를 심화하며, 근로시간을 모호하게 하고, 여성에게는 일과 육아를 병행해야 한다는 압박을 강화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더구나 여성 2명 중 1명이 사실상 비정규직인 상황에서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의 고용조건을 더욱 불안정하게 하게 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반면 이재명의 공약에서 임신중지 건강보험 적용을 포함해, 지난 대선에서 약속했던 성·재생산 건강권 보장은 자취를 감췄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기간 국민의힘이 강행한 서울시사회서비스원 해체에 반대했지만, 이에 대해서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여성가족부가 성평등가족부로 전환한다고 하지만, 주요 여성정책은 일부 교제폭력 처벌 강화와 낮은 수준의 저출산 지원 정책일 뿐이다. 여성가족부를 부총리급 성평등부로 격상 및 강화,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비동의강간죄 제정, 민법상 ‘부성 우선주의’ 원칙 폐기 등 여성단체가 요구했던 주요 성평등 정책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성평등 DNA가 있는 정당이니 기대를 접지 말아달라”라고 한다. 또 “앞으로 여성단체들과 정책 논의 자리를 만들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입장은 여성운동을 기층운동으로부터 갈라치기 하고 포섭하려는 허구적인 거버넌스적 수사일 뿐 다수 노동자계급 여성의 이해와는 대립할 수밖에 없다. 이미 이재명 정부는 노동계에 사회적 대화를 강요하고 있으며, 노동계의 거간꾼 김영훈을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지명하여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에게 전가하고자 한다. 신자유주의적 성주류화 정책 이 점에서 우리는 주류 여성운동이 추구해 온 성주류화 정책*을 되돌아봐야 한다. 성주류화 정책은 1995년 북경에서 열린 제4차 세계여성대회에서 채택된 정책으로, 모든 정책과 제도, 프로그램에 성평등 관점을 통합하는 전략을 말한다. 국내 여성운동도 90년대 중반 이후 주요 전략으로 채택하고 김대중 정부 시기 거버넌스 노선과 맞물려 본격적인 제도화의 길을 밟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는 결국 주류 여성운동을 제도화시키고 관료화하여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해가 아닌 자본에 포섭되게 했다. 2001년 1월 당시 한국여성단체연합 스스로 “김대중 정부의 여성정책 3년에 대한 평가에서 우리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가지게 된다”며 “여성들의 정리해고, 비정규직화, 시간제 노동이 가속적으로 증가하여, 대표적으로 9개 은행의 명예퇴직 여성의 비율이 74.5~95.5%를 차지했다”고 평가했다는 점을 우리는 새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에 있는 여성단체 출신 여성 정치인들이 여성의 이름으로 개혁을 말하면서도 기껏해야 형식적인 역할만 한 채, 노동개악 법안에는 방관하며, 결과적으로는 다수의 여성과 적대하는 자기모순으로부터 우리는 이제 결별해야 한다. 가령 박원순 사건 때 성추행 피소 사실이 여성단체 인사를 거쳐 남인순 민주당 의원(전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을 통해 결국 박원순에게 전달됐다는 사실은 그들이 말하는 ‘거버넌스’의 민낯이다. *1995년 베이징 세계여성대회가 주창. 강남식, <한국 여성운동의 흐름과 쟁점>, <<기억과 전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4 **대표적으로 김대중 대통령 취임에 앞서 평민당에 합류한 이우정, 박영숙은 1세대 여성운동가로 각각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 대표, 부대표를 지냈으며, 초대 여성부장관으로 임명된 한명숙 의원도 여연 상임대표 출신이었다. 사실 성주류화 정책은 냉전 이후 유엔이 인권과 개발 의제를 중심으로 새로운 글로벌 어젠다를 구축하며 등장했지만, 동시에 불어닥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광풍에 자유롭지 못하거나 오히려 그 부속물로 작용했다. 중국 내적으로도 당시 장쩌민이 덩샤오핑 사후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개혁/개방 이미지를 확대하기 위해 세계여성대회를 유치했지만, 내부적으로는 개혁개방 정책에 따른 시장화에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집단은 여성이었으며, 이에 따라 성평등 수준은 계획경제 시기와 비교해 지체되거나 고용이나 임금 등 특정 분야에서는 오히려 후퇴됐다.* *권정임, <제5장 중국의 여성해방과 성 평등: 개혁개방 이전과 이후의 비교 연구>, <<동아시아 마르크스주의: 과거, 현재, 미래>>, 진인진, 2023 페미니즘 운동과 노동자운동의 동맹 가부장제와 결탁한 자본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자본가 정당, 민주당은 결코 여성의 권리를 보장할 수 없다. 이제까지 민주당 정부가 해 왔던 것처럼 이재명 정부도 성평등DNA는커녕 고용불안정과 구조적 성차별을 심화할 것이다. 여성의 권리가 보장되려면,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돼야 하고, 비동의강간죄가 도입되어야 하며, 임신중지에 건강보험이 적용돼야 하지만, 자본가계급은 이를 결코 원치 않는다. 자본가계급의 관심은 노동자계급의 단결이 아닌 분열이며, 안정적인 노동력 수급에 있다. 때문에 여성의 권리는 이러한 자본가계급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단결 투쟁을 통해서만 쟁취할 수 있다. 노동자로서 여성의 권리 역시 비정규직 철폐와 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대폭 인상 없이 보장되지 않으며, 이 또한 자본가계급과의 싸움을 우회할 수 없다. 때문에 페미니스트는 민주당이 아닌 노동자운동과 어깨를 걸어야 한다. 여성의 다수는 노동자계급이며, 노동자계급 여성은 일찍이 클라라 체트킨이 지적했듯이 자본주의 고유의 생산양식에 의해 차별받는다. 오늘도 여성의 허리끈을 죄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성평등한 사회를 위해,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투쟁을 위해, 이재명 정부와의 대결을 시작할 때다.
-
죽어야 할 것들이 살아남아 현실을 짓누른다 - 21대 대선이 드러낸 노동자계급의 과제이준석 약진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번 대선에서 가장 특징적인 점 중 하나는 총 득표율 8.34%를 기록한 이준석이 청년층으로부터 얻은 높은 지지다. 대선 지상파 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이준석은 20대 남성으로부터 37.2%로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그 다음이 36.9%를 얻은 김문수로 이준석과 비등하고, 이재명은 24.0%에 불과했다. 비상계엄 내란을 노동자 민중의 투쟁으로 진압한 후 벌어진 선거였다는 점에서, 또한 여성과 소수자들이 광장의 중요 주체였다는 점에서, 남성 청년층의 정치적 정서는 노동자 민중에게 고민을 던진다. 20대 남성 청년층은 불안정한 집단이다. 고용불안으로 비정규·플랫폼노동 진입이 일상화된 와중에, 병역의무라는 짐도 감당해야 한다. 이런 조건에서, 20대 청년 남성 다수는 청년 여성을 취업시장 경쟁자로 여기게 된다. 이런 청년층을 대상으로, 이준석은 '특정 집단'이 혜택을 독점한다는 선동으로 부상했다. ‘이 힘들고 불공정한 세상에서 자신만의 이익을 취하는 집단이 있다. 당신들이 힘든 이유는 바로 그들 때문이다!’ 해당 기득권 집단은 다음과 같다. 모두 힘든데 자신만의 권리를 주장하며 반문명적인 시위를 벌이는 장애인들, 이기적이게도 정년연장을 요구하며 좋은 일자리를 독점하려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 자신들에게만 유리한 국민연금 개악으로 젊은이들을 수탈하며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독점하는 중장년층, 그렇지 않아도 좁은 취업시장에서 남성에 대한 역차별로 불공정한 이익을 취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학교에서 테러에 가까운 난동을 부리는 페미니스트 집단 등등. 이번 대선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1호 공약으로 내건 이준석의 전략은 효과적이었다. 이준석의 선동은 ‘자신을 대변할 유일한 인물’을 찾았다는 20대 청년 남성들의 환호로 이어졌다. 보다 긴 국면에서 보자면, 이준석의 정치적 부상은 '조국 사태'로 상징되는 민주당 정권의 위선과 이중성에 대한 청년층의 분노가 누적된 결과였다. 물론 조국 사태 이후 곧바로 민주당에 대한 청년층의 지지가 급감한 것은 아니었다. 2020년 총선 당시 20대 남성의 47.7%가 여전히 민주당을 지지했다. 당시는 코로나19 유행이 본격화하던 국면으로, 문재인 정부는 초기 방역 성과를 앞세워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었고, 야당인 미래통합당은 황교안 대표 체제로 청년층에게 매력적인 대안이 되지 못했다. 다시 말해, 2020년 총선은 조국 사태 이후 부상하는 ‘공정성’ 담론을 정치적 대안으로까지 밀어올려 결집할 인물이 가시화되기 전 단계였던 셈이다. 사진: 뉴스1 이런 상황에서 2021년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은 공정성 담론이 그 정치적 표현을 획득하며 확장되는 계기였다. 이준석은 ‘여성할당제 폐지’와 ‘공천 자격시험제’ 등 공정경쟁 이데올로기,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를 전면에 내세워 등장했다. 이런 흐름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 윤석열이 대선후보로 부상하는 과정과도 궤를 같이 했다. 이준석은 민주당 정권의 위선과 부패를 토대로 급부상했고, 2022년 윤석열 집권 후에는 ‘기득권층과 싸우다 부당하게 쫓겨난 젊고 유능한 정치인’이라는 후광도 얻었다. ‘민주당의 실체를 드러낸 조국 사태의 이면으로서의 이준석’이라는 맥락은 1년 전 치러진 2024년 총선에서도 일관되게 드러난다. 2024년 총선의 특징 중 하나는, 윤석열 정권의 거듭된 패악질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결과한 조국혁신당 약진이었다. 2024년 총선에서 조국혁신당 비례대표 득표는 24.25%로 이준석의 개혁신당 3.61%의 근 7배에 달한다. 그런데도 총선출구조사 결과 20대 남성의 개혁신당 지지율은 16.7%로 조국혁신당의 17.9%1)와 비등할 정도로 이준석은 청년 남성들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었다.2) 1) 창당 초기, 조국혁신당은 ‘20대 지지율 0%’ 여론조사 결과에서 보이듯 청년층에게는 전혀 지지받지 못했다. ‘조국’은 청년들에게 불공정과 ‘내로남불’의 역겨운 상징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출구조사 결과로 드러나듯, 정권 심판론의 확대에 따라 20~30대 일부도 결국 조국혁신당을 지지했다. “2~30대 청년층이 최우선시하는 ‘공정 경쟁’의 원칙(이것은 비인간적 경쟁으로 고통받는 청년층이 가장 일그러진 형태로 자신의 고통을 표현한ᅠ것이다)을ᅠ훼손한 조국에게도 18~23%의 지지를 보낸 것은 놀랍기까지 하다.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에서 청년층이 경험하는 고통의 객관적 크기를 실감하게 한다.” 2) 조국혁신당의 독자 창당은 여러모로 민주당에 유리하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불공정과 이중성의 상징과도 같은 ‘조국’이 별도의 정당으로 등장한 상황은 민주당에 대한 청년층의 반감을 희석시켰고, 민주당의 ‘정권심판’ 호소력을 강화했을 공산이 높다. 21대 대선 출구조사 결과, 20대 남성 이준석 지지율 37.2%라는 결과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거칠게 분류하자면, 20대 남성 37.2%의 정서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이들은 비상계엄에 반대하고, 탄핵에도 찬성하나, 겉으로는 정의를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불공정한 민주당도 대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압도적 지지와 함께 출발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기대에 차 바라보았으나, 이제는 바로 그 민주당이 자신에게 고통을 안긴 주범이라고 여긴다. 계급투쟁의 정치, 그 부재가 낳은 우익포퓰리즘의 부상 특히, 여성 의제와 국민연금 의제의 경우 이준석이 지지자를 결집하는 주된 매개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먼저, 여성의제를 보자. 이준석의 극우 선동처럼 문재인 정부가 여성을 위해 남성을 역차별했는가? 물론 아니다. 문재인은 후보 시절 성별임금격차를 OECD 평균인 15%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으나, 여전히 한국은 29.3%(2023년)로 OECD 성별임금격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연평균 최저임금인상률은 7.2%로 역대 정부 중 뒤에서 두 번째였고, 심지어 박근혜 정부의 7.4%보다 낮았다. 일자리위원회를 설치하고, ‘일자리 상황판’을 요란하게 전시했지만, 자본 편에 선 문재인 정부는 여성에게건 남성에게건 양질의 일자리를 늘릴 수도 없었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 늘어난 것은 여성 고위공무원, 공기업 여성 임원들뿐이다. 문재인 정부는 2022년까지 여성 고위공무원 비율 10%, 여성 공공기관 임원 비율 20%를 달성한다는 ‘공공부문 여성 대표자 확대’를 내세웠고, 실제로 여성 대표자는 늘어났다. 그러나 더 많은 여성착취자와 여성억압자를 만드는 것이 어떤 평등을 담보할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페미니즘’을 앞세워 집권하고서도 박원순 등 성폭력 가해자를 감싸고 추모하며, 피해자에게 집단적 린치를 가하는 민주당의 위선은, ‘민주당식 페미니즘’에 대한 젊은 남성의 냉소를 확대했을 뿐이다. 이렇듯 민주당 정부는 남녀노동자 모두의 삶을 더 안정적이고 평등하게 만들기는커녕, 보수세력의 반페미니즘 혐오선동에 촉매를 제공했을 뿐이다. 즉, 계급투쟁으로 실질적 성평등을 쟁취해내지 못하는 한, ‘여성주의=고위직 할당제=불공정’ 선동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준석이 지지층을 결집하는 또 하나의 매개가 국민연금 개악이었다. 이준석은 ‘기득권 세대가 젊은 세대의 몫을 빼앗고 있다’는 프레임을 전면에 내세웠다. 3월 말 여론조사에 따르면, 3월 20일 국회를 통과한 ‘국민연금법 일부개정안’에 대한 청년층의 여론은 ‘반대’가 압도적이다. 18~29세에서는 반대가 63%, 30대에서는 반대가 58%를 기록했고 이준석은 대선에서 '구연금'과 '신연금' 분리운용 공약을 내세우며 청년세대를 결집했다. 국민연금을 매개로 한 이준석의 청년세대 결집, 이는 계급정치 부재가 낳은 우익포퓰리즘의 승리다. ‘더 내고 더 받는’ 연금을 지향하는 사민주의적 연금개혁론자들은 청년층의 반대 여론을 ‘연대의식 부재’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으나, 청년층이 3월 20일 국민연금법 일부개정안에 반대하는 이유는 그것이 실제로 개악이기 때문이다. 노동자 민중, 특히 청년노동자들은 더 많은 보험료를 부담할 여력이 없다. 2024년 하반기 국정감사에 따르면, 국민연금에 가입되어 있지 않거나 가입했어도 형편이 어려워 보험료를 못 내는 사람이 1,034만명에 달한다. 특히 청년층 사각지대 비중이 높다. 2020년 기준 18~34살 인구 중 연금 사각지대 비중은 55.7%에 이른다. 대안은 국민연금에 대한 자본의 부담을 늘리는 계급투쟁뿐이다. 압도적 저출생은 객관적 현실이며, 국민연금 문제는 저출생에서 파생된다. 국가와 자본은 연금제도 유지의 부담을 노동자계급에게 지우고자 한다. 자유주의 시민사회와 사민주의자들 역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노동자의 보험료율 인상에 동의하며 '더 많이 내고, 더 많이 받는' 국민연금으로의 재편을 지향한다. 민주노총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이 왜 보험료를 더 내야 하는가? 저출생과 저성장이 집약하는 체제의 위기도, 그 위기에서 파생하는 국민연금의 문제도 노동자 민중이 만든 것이 아니다. ‘더 내고 더 받는’ 국민연금 재편론은 그 의도가 무엇이건 한국 사회를 파탄시킨 자본의 책임을 면죄함은 물론, 보험료를 추가 부담할 여력조차 없는 노동자계급의 현실에 눈감는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인상되어야 하고, 지급개시연령은 낮추어져야 하며, 그 부담은 자본이 져야한다. 여성 의제와 국민연금 의제에서 드러나듯, 심화하는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도 계급투쟁의 정치라는 대안은 드러나지 않았고, 청년층의 불안과 위기감은 공정을 기치로 내건 우익포퓰리즘이라는 깃발 아래 결집했다. 그러나 공정성 담론과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는 현 위기에 대한 대안적 전망을 내놓을 수 없다. 그저 민주당의 정치, 계급협조주의 정치의 허점을 공략하는 반명제로 기능할 수 있을 뿐이다. 극우 선동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치료제는 계급투쟁의 정치다. 2017년 정의당의 몫은 어디로 갔는가 민주노동당-사회대전환연대회의 권영국 후보는 0.93%를 득표했다. 진보당 김재연 후보가 사퇴하고 이재명 지지 운동을 하는 상황에서 유일한 진보정당 후보로 완주했으나 예상보다 낮은 득표였다. 민주노동당, 과거의 정의당은 왜 위축되었을까? 잠시 2017년 대선 상황을 돌아보자. “동성애는 찬성이나 반대를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라고 봅니다. 성정체성은 말 그대로 정체성입니다. 저는 이성애자지만 성소수자의 인권과 자유가 존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이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2017년 대선 TV토론에서 심상정의 ‘마지막 1분’은 상당한 화제를 낳았다. 당시 민중당(현 진보당)은 통합진보당 해산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심상정을 내세운 정의당은 6.17%를 득표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2017년 대선에서, 정의당은 민주당 왼편에서 대안을 찾는 노동자 민중에게 분명 일정한 호소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일각이 주장하는 ‘성평등과 소수자 권리를 강조해 정의당이 지지기반을 잃었다’는 주장은 오류다. 성소수자의 권리를 지지하는 심상정의 발언이 2017년 대선에서 반향을 얻었듯, 이는 오히려 정의당의 지지를 확장하는 기제였다. 문제는 민주당 종속성이다. 2017년 대선 이후 정의당은 문재인 정부와의 관계에서 종속적 역할을 자처했다. 민주당의 위선을 여실히 드러낸 2019년 조국사태에서 정의당은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지지하며 민주당과 한배에 탔다. 당시 지형상 정의당은 조국 임명 여부에 관한 정치적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었고, 정의당의 동의는 청와대의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 강행으로 이어졌다. 조국사태에 대한 민주당의 분풀이에 지나지 않았던 2022년 ‘검수완박’에 대한 입장에서도, 정의당은 민주당을 지지했다. 이 과정 속에서 윤석열이 대선후보로 부상했고, ‘공정성’ 담론이 청년층을 휩쓸었다. 정의당은 민주당에 의존적인 행보 속에서도 '다당제 민주주의'와 ‘제3당’으로서의 가치를 호소했으나, 정작 정의당을 ‘좀 더 매운맛 민주당’으로 보는 대중에게는 설득력이 없었다. 2016년 돌풍을 일으킨 안철수의 ‘국민의당’, 2024년 ‘조국혁신당’ 등 이념과 조직 구성에서 민주당과 보다 유사한 제3세력이 등장할 때마다 정의당이 고전한 이유다. 결국 정의당은 2022년 대선 2.37% 득표에 이어 2024년 총선에서도 의석 확보 실패라는 참패를 겪었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서는 이준석, 금태섭과 손잡고 제3지대 정당을 만들자는 황당한 주장까지 난무했고, 비례대표 의원 류호정과 조성주 등은 실제로 이들과 당을 만들어 개혁신당으로까지 흘러 들어갔다. 또한 민주당과 적극적인 연대를 주장하던 세력은 탈당하여 사회민주당을 결성하고 총선에서 민주당과 연합했다. 당 주요 인사들이 전혀 통제받지 않고 ‘진보정치’와 하등 관계없이 행보할 수 있었다는 상황 자체가, 정의당의 이념과 조직 구성이 얼마나 노동자계급과 괴리되어 있었는지를, 그리고 당내 민주주의가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었는지를 드러낸다. 사진: 뉴스1 이런 점에서 정의당의 거듭되는 위축과 이준석의 약진은, 민주당으로부터 독립적인 노동자계급 정치운동 부재라는 하나의 원인에서 나온 두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권영국 후보의 의미와 한계 이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정의당보다 왼편의 세력, 즉 사회대전환연대회의 소속으로 출마해 완주했고, 34만 4,150표를 얻었다. 사회대전환연대회의가 민주당으로부터 독립적인 정치세력화를 표방했다는 점, 노동권 확대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등 권영국 후보가 제시한 공약이 큰 틀에서 진보적이라는 점, 권영국 후보가 투쟁현장을 찾으며 노동자계급과의 연대 의지를 드러낸 점은 노동자 계급정치 확대의 측면에서도 분명 의미있는 일이었다. 사진: 민주노동당 그러나 권영국 후보의 한계 또한 분명했다. 과거 정의당의 민주당 종속성과 함께, 사회대전환연대회의 내 일부 세력의 민주당 종속성 역시 문제였다. 노동자의 희생을 통한 기업살리기에 민주노총을 동원하려는 시도였던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안'을 문재인 정부와 손잡고 민주노총에 관철하고자 했던 세력이 버젓이 사회대전환연대회의에 포함된 상황은, ‘민주당과 독립적인 정치세력화’라는 후보의 의미를 퇴색시키기도 했다. 관련해서 살펴보자면, 4월 27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사회대전환연대회의 대선후보 경선에서 한상균 노동자계급정당건설추진준비위원회(노정추) 대표가 권영국 후보에게 큰 표차로 패배한 이유는, 그가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투쟁의 상징’으로서 자신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정추에 속한 사회적 합의주의 세력의 존재는 한상균의 상징성과 대표성을 크게 약화시켰고, 이는 한상균의 경선 패배로 이어졌다. 사회대전환연대회의가 ‘계급투쟁을 통한 정치세력화’를 지향하는 전투적 노동자들을 광범하게 결집하지 못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사회대전환연대회의 권영국 후보가 제시하는 공약 전반은 자본주의 안에서의 개혁, 그것도 불충분한 개혁에 머무르고 있으며 심화하는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인식 또한 결여하고 있었다. 그 결과, 최저 출생률과 최대 자살률이 상징하는 삶의 위기 앞에서도 자본주의 그 자체에 맞선 투쟁이 아니라 증세와 제도개혁을 통한 분배 확대를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불평등을 넘어 함께 사는 경제구조”라는 이름이 붙은 경제공약은 △지역공공은행 설립 △지역공공은행의 경영악화 중소기업에 대한 지분투자 △노동자의 부도위기 기업인수 지원 등을 명시하고 있다. 기간산업과 재벌을 국유화하고, 자본가의 경영권을 박탈하며, 노동자 민중이 산업을 통제하자는 투쟁 선동 대신 철저히 법체계 안의 주변적 조치를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경영악화 기업 지분투자, 부도기업 인수’ 등 공약에는 자본을 위한 경제체제 전반을 재편하겠다는 의지도, 이를 위해 노동자계급을 권력의 주체로 형성하겠다는 전략도 없다. 자본이 틀어쥔 기간산업은 그대로 두고, 파산기업 인수로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가? 권영국 후보의 경제 공약은 사민주의 경제정책의 기준으로 보아도 그 한계가 분명하다. ᅠ 마찬가지로, 권영국 후보가 제시하는 '전국민 일자리보장제' 역시 의회주의-개량주의 정치세력화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시장에서 만들어지지는 않지만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자리 창출'을 지향하는 권영국 후보의 일자리보장제는 자본주의적 생산과 대자본이라는 몸통은 그대로 두고, 대자본이 장악한 영역 밖에서 공공근로를 확대하자는 주장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아래 그림에서 드러나듯, 일자리보장제가 제시하는 일자리는 호황과 불황에 따라 이곳저곳을 떠도는 임시 비정규직 일자리일 뿐이다. 이런 제안에 해방적, 이행적 요소는 눈 씻고 찾아보아도 없다. 출처: http://www.redian.org/archive/153972 권영국 후보가 내건 일자리보장제도는 한때 유행하던 현대화폐이론가들의 논의를 차용한 것이다. 그 주요 이론가인 파블리나 체르네바(Pavlina R. Tcherneva)의 논의3)에 따르면, 일자리보장제도는 민간부문을 흡수하거나 침해하지 않는다. 즉, 현대화폐이론가들이 제안하는 일자리보장제도는 공공부문 확대 구상을 명시적으로 배제함은 물론, 일자리보장제도가 자본의 이윤을 침해하지 않음을 곳곳에서 장점으로 내세운다. 권영국 후보의 공약은 이 틀을 그대로 차용했는데, 생산과 산업에 대한 자본가의 권력을 하등 건드리지 않은 채 정부가 임시적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공약은 ‘그냥 자본주의 안에서 이대로 살자’는 이야기다. 3) 파블리나 R. 체르네바, 2021, 『일자리보장-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제안』 자본주의 자체에 문제제기 하지 않는 권영국 후보의 한계는, 노골적인 민족주의와 반생태적 내용으로 채워진 국방·통일·외교통상 공약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대중에게 무엇인가를 분배하기 위해서는 자본의 지불능력이 존재해야 한다는 사민주의의 본질적 한계가 반동적으로까지 드러난 대목이다. 석유·가스·희토류 등 러시아 극동 자원개발에 참여한다는 공약은 노골적 추출주의(extractivism)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기후정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특히 '러시아 북극항로 개척'으로 조선·물류산업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은, 북극항로 자체가 기후위기로 인한 해빙으로 열렸다는 점에서 기후재난을 이윤축적의 기회로 삼겠다는 반생태적 발상이다. 나아가 북극항로는 미·중·러 열강이 격돌하는 지정학적 투쟁 공간이라는 점에서, 제국주의 열강투쟁 격화라는 시대인식 자체를 결여하고 있다. 이런 시대인식의 부재는 ‘한국형 모병제 도입으로 30만 정예 강군 달성’이라는 공약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모병제는 전쟁의 시장화다. 필요한 것은 대대적 군축이지 모병제 도입이 아니며, 그 목적 또한 ‘정예 강군’ 육성이 아니다. 이것도 모자라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신경제구상'을 계승하겠다는 공약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민주당으로부터의 독립성은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의 출발이나,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의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계급투쟁의 정치를 향하여 “4월 29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는 이재명을 지지하자는 대선방침안이 제출되었고, 5월 15일과 5월 20일 중집에서도 마찬가지로 민주당을 지지하자는 주장과 진보정당 후보를 지지하자는 주장의 논쟁 끝에 대선방침 없이 대선을 치르기로 결정했다.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민주당을 지지하자는 주장이 거리낌 없이 나오는 상황이 말이나 되는가! … 민주노총의 민주당 지지가 처음은 아니다. 민주노총의 2010년 6·27 지방선거 방침은 민주당을 포함한 '반MB 단일후보 지지'였고, 2011년에는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로 성장한 민주노동당이 민주당계 정치세력과 함께 ‘통합진보당’을 창당했다. 2012년 총선에서도 민주노총의 선거방침은 민주당을 포함한 '반MB 단일후보 지지'였다. 민주노총의 이런 방침에 따라, 노동자계급은 민주당 정부의 노동탄압 주범들에게 투표해야 하는 신세로 내몰렸다.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 김영훈은 지금도 민주당 노동본부장 신분으로 민주노총을 기웃거리며 이런저런 협약의 도구로 쓰이고 있다.” 5월 27일,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이 발표한 성명이다. 대선 시기에도, 대선이 끝난 지금에도, 민주당과의 연대를 민주노총의 공식 노선으로 관철하려는 양경수 집행부의 파행적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조차 갖추지 못한 채 ‘국회 사회적 대화’ 관철을 위한 민주노총 중앙위원회 소집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재명 정부 역시 이에 조응해 노동운동 출신 거간꾼들을 정부 전면에 배치하고 있다. 6월 23일, 정부는 전 민주노총 위원장 김영훈을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위 성명에서도 언급했듯,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민주당 정부의 노동탄압 주범들에게 투표해야 하는 신세”로 내몬 핵심 인물이자, “민주당 노동본부장 신분으로 민주노총을 기웃거리며 이런저런 협약의 도구로 쓰이”는 인물이다. 김영훈이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 상황에 대해, 민주노총은 다음 입장을 냈다. “민주노총 위원장과 철도노조 위원장을 역임하며 한국 사회 노동현장의 현실과 과제를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 본다. … 시대적 과제를 깊이 인식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노동부 장관으로서의 소임을 충실히 이행할 것을 기대한다.” 사실상 환영 입장이다. 진작 민주노총에서 제명되었어야 했을 인물이 고용노동부 장관으로서 노동정책을 총괄하게 된 일이 정녕 환영할 일인가? 이재명은 광장의 눈치도 보지 않고 ‘중도보수’를 선언했고, 강경보수 인사들을 줄줄이 끌어들이며 선거를 치렀다. 당선 후 6월 13일에는 5대 재벌총수 및 6개 경제단체와 만나 자본가들의 민원을 들으며 “경제의 핵심은 바로 기업”이라고 강조하며, “정부와 기업이 함께 뛰는 원팀 정신”을 언급했다. “불필요한 규제들은 과감하게 정리”하겠다고 약속했으며, 재벌들에게 인사 추천을 요청하기도 했다. 또한, 최근 민주당은 연일 국민의힘과의 ‘협치’를 강조하고 있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 유임이 보여주듯 내란세력 청산 지체는 물론, 노조법 2·3조 개정을 비롯한 노동권 확대 입법이 미루어진다는 이야기다. 이러던 와중에 김영훈을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임명한 민주당의 행보는, 친자본 반노동 정책에 민주노총을 붙들어매겠다는 의도를 반영한다. 사진: 고용노동부 국정기획위원회 업무보고 (25.06.19.) 중 5월 29일, 한국은행은 2025년 경제성장률을 기존 전망치 1.5%(2월)에서 거의 반토막인 0.8%로 하향했다. 자본주의 위기 심화와 열강투쟁 격화에 따라, 한국 경제는 직격탄을 맞고 있다. 1분기 성장률은 2월 전망치(0.2%)보다 크게 밑돈 –0.2%에 불과했다. 관세전쟁 여파가 반영되지 않은 통계임에도, 침체 경향이 분명하다. 자본은 더 강한 노동개악을 주문할 수밖에 없고, 이재명 정부는 그 집행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조건에서 대선을 관통해 추진되는 민주당과의 연대는 노동개악을 노동자의 이름으로 승인하는 절차에 불과하다. 이미 6월 5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은 ‘고용유연성’을 의제로 사회적 대타협 방안을 모색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민주당과의 연대는 자본가 정치세력에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립성을 팔아넘기는 행위이자,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타고 발호하는 극우세력의 선동에 노동자 민중을 노출시키는 길이다. 민주당과 노동자계급의 ‘연대’, 죽어야 할 그것이 여전히 살아남아 현실을 짓누르고 있다. 사진: 한겨레 민주노총이 민주당에 대한 압력단체로 전락할 위기 앞에,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립은 유예할 수 없는 과제다. 그리고 이는 자본주의 체제가 강요하는 경계를 넘어 해방적 전망을 제시하고 이를 대중적으로 조직할 정치세력의 형성과 직결된 문제다. 격화하는 열강투쟁과 제국주의 전쟁위기, 기후재앙과 저출생, 자본주의의 총체적 위기가 현실화하는 지금, 노동자계급이 정치세력이 되는 길은 계급투쟁으로 대안을 만드는 정치세력화뿐이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문재인 정부에 노동자계급은 당하고 또 당했다. 이재명 정부에 대한 모든 환상과 결별하자. 국가와 자본에 맞선 계급투쟁 속에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 그 새로운 순환을 시작하자. 민주노조운동의 재구축과 새로운 정치세력화의 순환, 그 단초는 이미 우리 앞에 있다. ‘광장식 소개’에서 드러나듯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행위에서 시작해, 투쟁하는 노동자계급의 우군으로, 나아가 투쟁하는 노동자계급 자체로 발전해온 말벌 동지들, 다수가 미조직·불안정 노동자계급인 이 동지들과, 고통 속에서도 현장을 지켜온 조직노동자들의 유기적 결합을 추동하자. 그 결합이야 말로 새로운 순환을 개시할 열쇠다.
-
[주간 여성뉴스 브리핑] “차별금지법 제정 외면 말라” 1만 인의 목소리 새 정부에 전달1. “차별금지법 제정 외면 말라” 1만 인의 목소리 새 정부에 전달 한국에서는 여전히 성별, 장애, 출신지역, 성적지향 등에 따른 차별을 전반적으로 금지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았다. 2007년부터 여러 차례 법안이 발의됐지만, 정부와 국회는 일부 보수단체와 종교계의 반발을 이유로 법 제정 요구를 외면했다. 그런데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장기간 계류 중인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국정과제로 삼고 입법 로드맵을 마련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이하 제정연대)는 지난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이재명 정부,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시작합시다’라는 제목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새 정부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차별과 혐오와 선을 긋고 평등을 실현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제정연대 측은 이날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민 1만여 명의 서명을 대통령실에 전달했다. 앞서 제정연대는 지난달 23일부터 ‘새 정부 국정과제 요구 1만인 서명-새로운 민주주의는 차별금지법과 함께!’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이날 회견에서는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의 차별금지법 반대 발언 전력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박한희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활동가는 “김 후보자가 ‘모든 인간이 동성애를 택했을 때 인류가 지속 가능하지 못하다’라며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발언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며 “우리 사회의 지속을 위해서는 이성애가 보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혐오가 없어야 하는 것 아니냐. 언제까지 성소수자들은 영향력 있는 이들의 입에서 자신을 부정당하는 경험을 해야 하냐”라고 되물었다. 한편, A학교 성폭력사안・교과운영부조리 공익제보교사 부당전보철회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25일(수) 오후 5시 반에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차별금지법, 입법에서 변혁으로”라는 주제로 5회차 무지개학교 수업을 진행한다. 수업에서는 지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이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정신과 세부 내용을 입법을 넘어 변혁적 성소수자 운동의 관점에서 살펴볼 계획이다. <참조 기사> https://www.khan.co.kr/article/202506171433001 2. 인천여성노동자회, 고용평등상담실 복원 등 성평등 실행 체계 구축 촉구 민간고용평등상담실은 지난 24년 동안 고용차별과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들의 신속한 권리구제, 사건지원, 실질적 피해 회복을 지원해 왔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이를 폐쇄한 뒤 고용노동부 지청으로 넘긴 심층상담은 사실상 기능을 상실했다. 고용평등상담실 폐쇄에 맞서 여성 노동자들은 지난겨울 내내 4개월간 광화문 광장에서 부스를 설치하고 복원을 요구하며 16주 동안 서명을 받았고, 1만여 명의 시민이 이 싸움에 서명과 후원으로 응답했다. 임금차별타파주간을 맞아 5월 27일 열렸던 기자회견에서 박명숙 인천여성노동자회 회장은 새 정부를 향해 이렇게 외쳤다. “성평등 노동 실현은 선언이 아니라, 실행 체계를 만드는 일이다. 성평등 노동 추진체계를 법제화하고, 고용평등상담실 복원과 성인지적 산업안전 체계 구축을 새 정부는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성평등 노동을 위한 정책 집행력 확보, 고용평등상담실 복원, 성인지 산업안전 강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책무다. <참조 기사>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40920 3. 고령자 성별 임금 격차 더 높아…여성이 남성의 59% 수준 고령자 사이에서는 남녀의 임금 격차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2일, 한국고용정보원이 보고서 ‘고용보험DB를 활용한 연령계층별 노동이동 분석 기본연구’를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1963년 이전 출생자 중 2024년 6월 기준 임금노동자로 일하는 고령자는 272만 9,000명이었다. 이 중 75%는 60세 이후 취업했고, 75%는 중소규모 사업체를 다니고 있었으며, 53.%는 시간제로 일하고 있었다. 이들의 취업 분야는 생산자서비스업과 사회서비스업에 집중해 분포됐고, 현재 일자리 취득 당시 임금수준은 월 실질임금 184만 원 수준이었다. 그런데 남성 고령자는 226만 원, 여성 고령자는 133만 원으로,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59%에 불과했다. 전체적으로 고령자의 일자리는 연령이 높을수록 불안정하며 임금수준이 낮고, 고령자 내 성별 임금격차가 매우 크게 나타났다. 또한 현재 임금노동자인 1963년 이전 출생자 중 원래 직장에서 정년퇴직한 노동자는 9.5%가량인 26만 명에 불과했다. 정년퇴직 후 같은 직장에서 다시 일하기 시작한 비율, 즉 재고용 비율은 전체 정년퇴직자 중 37.5%로, 9만 4,000명에 그쳤다. 그런가 하면, 출산 이후 남녀 노동자의 소득 패턴에도 차이가 나타났다. 출산 남성의 연 보수총액은 해가 갈수록 매끈하게 증가했다. 반면 출산 여성의 연 보수총액은 원래 남성과 비교해도 평균적으로 낮았지만 출산한 해와 그다음 해까지 매우 낮게 유지되다가 3년 후에야 회복 국면에 들어섰다. <참조 기사> https://www.yna.co.kr/view/AKR20250620128200530?input=1195m 4. 인도 마드라스 고등법원, 동성 커플 ‘가족’으로 인정 인도 타밀나두 주의 마드라스 고등법원이 동성결혼 합법화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동성커플을 가족으로 인정하는 획기적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성별이분법에 근거한 정상 결혼제도 밖에서도 성소수자가 ‘가족’을 구성할 수 있다는 ‘선택된 가족’ 개념의 진일보한 판결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 판결은 한 여성이 자신의 여성 파트너가 부모로부터 폭행과 불법 구금을 당하면서 법원에 낸 인신보호청원(HCP)의 승인 과정에서 나왔다. 고등법원 판사인 L. 빅라마난은 “결혼이라는 법적 장치가 없더라도, 두 사람 사이에 진실하고 안정된 유대가 있다면 이는 가족으로 간주될 수 있다”며 “가족이라는 개념은 시대와 함께 진화하며, 더 이상 출산이나 전통적 결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헌법 제21조에 명시된 ‘삶의 권리’는 사랑하고, 선택한 사람과 함께 살 권리를 포함한다. 이제는 결혼을 넘어선 파트너십, 동거, 그리고 다른 형태의 공동체적 삶도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라고 판시했다. 첸나이의 인권 활동가인 라메쉬 쿠마르는 “이런 판결은 ‘법이 현실을 따라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다”며, “법정 밖의 가족도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라고 말했다. 성소수자이자 인도의 주요 인권단체인 피플포체인지(People for Change)에서 활동하는 소비크 사하는 “‘선택된 가족’ 개념은 가족으로부터 거부와 혐오·폭력을 당해온 성소수자에게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생존과 치유를 위한 삶의 방식이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덧붙여 “이 판결은 진전이지만, 솔직해지자”라면서 “체계적 구조 개혁이 뒤따르지 않는 한, 법적 판결만으로는 경찰의 행동을 바꿀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인도의 행정과 공권력은 여전히 가부장적이고, 계급 차별적이며, 이성애 중심적이다. 2018년 형법 377조(동성애 처벌)가 폐지된 후에도 많은 경찰이 LGBTQ 정체성을 범죄나 부도덕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번 판결이 사법부의 강력한 메시지이지만, 내무부와 경찰이 이를 제도화하고 실행하지 않는다면 변화는 느리고 고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참조 기사> https://www.newindianexpress.com/states/tamil-nadu/2025/Jun/04/same-sex-marriage-not-legalised-but-couples-could-form-a-family-madras-high-court https://www.washingtonblade.com/2025/06/17/madras-high-court-says-families-are-possible-outside-marriage/ 5. 영국 트랜스여성 수영 선수, 상의를 탈의하고 남성과 경기 영국의 한 수영 경기에서 여성으로 법적 성별을 정정한 트랜스젠더 여성 수영 선수가 대회 주최 측의 강압으로 “남성 부문” 출전을 통보받았다. 심지어 그가 상의를 탈의한 채 남성들과 수영해야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러자 경기 규칙 적용이 아니라, 성소수자의 정체성과 권리를 무시하는 명백한 차별한 사태라는 비판이 영국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일고 있다. 애초에 트랜스 여성 선수는 여성 부문에서 출전하길 원했다. 그러나 주최 측은 그가 법적으로 여성이더라도 “생물학적 남성”이라는 이유로 여성 부문 출전을 불허하고, 남성 부문에서 경쟁하도록 강요했다. 더 큰 충격을 준 내용은 그 과정에서 그가 여성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탑을 입고 경기에 나서려 했으나, 경기 규정상 남성 부문에서는 상의를 착용할 수 없다는 규정으로 인해 탑을 벗고 수영하게 된 점이다. 그는 “나는 여자다. 그런데 왜 남자들과 수영해야 하나? 모두 앞에서 상의를 벗고 수영해야 했던 건 굴욕적이었고, 내 정체성이 무시당한 기분이었다”라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러나 대회 주최 측은 선수의 호소와 사회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선수가 불편하거나 굴욕감을 느끼더라도 규칙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 주최 측의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규칙이 인권 위에 서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스포츠계는 ‘생물학적 성별’을 중심으로 통제하는 구조로 여성인 선수를 강제로 ‘남성화’시키며 개인의 신체적 자율성과 성정체성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 많은 트랜스젠더 운동선수들이 스포츠계에서 배제당하거나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 있다. 트랜스 여성 선수는 “나는 그저 나답게 수영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게 전부다”라고 말했다. 저들이 명분으로 내미는 공정성은 이분법적인 성별 규범, 배제와 혐오, 비과학적 기준일 뿐이다. <참조 기사> https://www.thepinknews.com/2025/06/17/trans-woman-swims-topless-male-category/ https://www.out.com/gay-athletes/trans-woman-swims-topless-england 6. 미국 연방대법원, 테네시주 트랜스젠더 의료 금지법 지지 … 헌법적 쟁점은 외면 지난 6월 18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테네시 주의 트랜스 미성년자 성별 확정 치료 금지법을 지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해당 법은 트랜스젠더 청소년이 의료적 전환 치료를 받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판결에 참여한 보수 성향 판사들은 해당 법이 성차별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법률이 트랜스젠더를 특정해 차별하고 있음에도 이를 부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트랜스젠더 관련 법률 전문 기자 에린 리드는 이번 판결이 평등권 침해 여부, 트랜스젠더의 법적 보호 지위 등 핵심 헌법적 문제를 회피했다고 지적했다. 테네시 법은 성별 불쾌감을 트랜스젠더에게만 해당하는 증상으로 정의한다. 이 법률은 시스젠더 청소년에게는 허용된 의료 서비스를 트랜스젠더에게는 금지하는 방식으로 차별을 제도화하고 있다. 따라서 이는 단순한 제한이 아닌, 트랜스젠더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담긴 조치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번 판결은 2019년부터 본격화된 우익 정치 세력의 전국적 반(anti)트랜스젠더 입법 흐름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2025년 한 해에만 115건의 반트랜스 법안이 통과됐다. 법안 대부분은 트랜스젠더 청소년의 성전환 치료, 공적 공간에서의 권리 제한 등을 목적으로 한다. 반면, 연방대법원 판결이 있던 날, 하급심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성정체성에 따른 여권 성별 표시 금지 조치를 위헌으로 판단하는 등 판결이 엇갈리고 있다. 앞으로 대법원 재심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처럼 트랜스젠더 권리 보장을 위한 법적 대응은 정치적 환경에 크게 좌우되며, 장기적인 법정 투쟁으로 이어지는 한계를 지닌다. 활동가들은 프라이드 먼스(pride month, 6월)을 맞아 스톤월 항쟁(Stonewall Riots)과 ACT-UP 등 과거 직접행동의 전통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진보적 운동 진영은 직장과 학교, 거리에서 트랜스젠더 권리를 위한 대중적·노동계급 중심의 실천을 강화해야 한다. 민주당과 같은 제도 정당에 의존해서는 근본적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https://www.leftvoice.org/scotus-ruling-against-gender-affirming-care-is-an-attack-on-democratic-rights/ 7. 미국 댈러스 카우보이스 치어리더의 임금 인상으로 드러난 여성 운동선수의 낮은 급여 수준 미국에서는 치어리더를 단순한 공연자가 아닌 ‘프로 운동선수’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미식축구단 리어리더들 가운데 대부분은 무용 스튜디오에서 훈련을 받고, 혹독한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소화하고 있다. 대표 동작인 킥라인과 점프-스플릿은 관절 부상을 초래해 수술까지 받는 경우도 있다. 또한 이들은 7월부터 시즌 종료까지 주 3~4회, 한 번에 2~3시간씩 연습하며, 모든 홈경기에서 공연한다. 연습만 주당 40시간씩 해야 하며, 여기에 각종 홍보 활동도 별도로 수행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임금수준은 너무 낮아 다수가 두세 개의 부업을 병행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최근 잡지 <피플(People)>과 OTT플랫폼인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아메리카스 스윗하츠(America’s Sweethearts)> 등을 통해 드러났다. 특히 <아메리카스 스윗하츠> 시즌 2 공개와 함께 나온 발표에 따르면 댈러스 카우보이스(Dallas Cowboys) 치어리더의 임금이 최근 400% 인상됐다. 이는 그동안 이들의 급여 수준이 얼마나 낮았는지를 반증한다. 전 치어리더 자다 맥클레인(Jada McLean)은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5년 차일 때 시간당 15달러(약 2만 8,000원)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번 임금 인상은 치어리더들 스스로가 수년간 함께 싸워온 성과다. 이에 대해 토론토 메트로폴리탄대 스포츠미래연구소 셰리 브래디시 소장은 “(치어리더들의 사례는) 여성 스포츠 전반에 걸친 성별 임금 격차의 일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치어리더뿐만 아니라 스포츠 전반에서 여성들이 다양한 역할에서 임금 차별을 겪고 있다. 이들의 여정은 다른 리그와 팀들과 유사하며, 더 공정하고 존중받는 보수를 받기 위한 투쟁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참고 기사> https://www.cbc.ca/news/world/dallas-cowboys-cheerleaders-pay-1.7565340 [여성 뉴스 브리핑 X] http://x.com/Wo_newsbriefing
-
제2회 대전퀴어문화축제, 윤석열 퇴진 광장 이후 퀴어가 다시 연 무지개 광장출처: 대전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지난 6월 대전 도심에서 제2회 대전퀴어문화축제(이하 ‘대전퀴퍼’)가 열렸다. ‘사랑이쥬 – 광장에 나와 너’라는 부제로 열린 이번 행사는 작년보다 많은 43개의 단체와 퀴어당사자와 엘라이들의 참여 속에 치러졌으며, 축제 당일에는 약 2,000명의 참가자가 도심을 행진했다. 오전 11시부터 부스 행사가 시작됐고, 오후 1시 개막식, 오후 4시 행진까지 일정이 이어졌다. 올해 퀴퍼는 기존 단체 중심의 참여를 넘어서 개인 조직위원들의 기획과 참여가 돋보였다. 또한 기업이나 대사관 등의 자본과 제국주의 침략에 책임이 있는 외부 후원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운영됐다. 조직위원회 성원들은 “내가 사는 도시에서 퀴퍼가 열린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대전퀴퍼를 또 다시 준비하게 되었다고 입을 모았다. 도심을 따라 이어진 행진 대오에는 무지개 현수막과 함께 “퀴어는 여기 있다”, “차별에 저항하자”, “차별금지법 제정하라”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참가자들은 단순한 문화행사를 넘어 스스로의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드러내며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의 광장에 나온 것에 기쁨을 표현했다. 누가 그들을 숨기라 했던가? 누가 살아도 되는 몸과 그렇지 못한 몸을 나눴던가? 광장은 우리의 것이자 모두의 공간이다. 오래도록 감춰져 왔던 퀴어들은 이제 광장에서 서로를 만나 함께 투쟁한다. 퀴어가 광장으로 나오는 것은 단지 개인의 용기가 아니라, 집단적 존재의 선언이다. 출처: 대전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시 낭독과 함께 울려퍼진 팔레스타인 해방 축제에서 무엇보다 빛났던 것은 자본주의 체제에 의해 억압당하고 차별받는 존재들의 연결이었다. 연대발언 중 팔레스타인평화연대의 주드 활동가는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사망한 팔레스타인 시인 레파트 알리라르의 시를 낭독하며 발언을 시작했다. “내가 죽어야 한다면 당신은 살아남아서 내 이야기를 전해다오. 내가 죽어야 한다면 내 이야기가 희망을 가져다 줄 수 있기를 그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기를.” 주드는 이 시를 통해 “팔레스타인과 성소수자의 현실은 외면당한 존재들의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팔레스타인의 학살은 단기간의 문제가 아니라 1948년 나크바 이후 수십 년간 이어져 온 구조적 폭력이라고 지적하며,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에 동조하고 있는 한국 정부의 방위산업 수출과 정치권의 침묵을 비판했다. 또한 그는 성소수자이자 트랜스젠더로서, “이 사회에서 성소수자가 죽음을 선택해야 하는 현실은 끝나야 한다”고 발언을 이어갔다. 차별금지법이 여전히 제정되지 못한 현실, 그리고 최근 정보통신법에서 ‘성적 지향’이 삭제된 상황을 지적하며 “얼마나 더 죽어야 우리의 인권이 보장되느냐”고 물었다. 발언 마지막에는 “퀴어로 산다는 것, 팔레스타인 사람으로 산다는 것, 누군가에겐 죽어도 되는 존재로 분류된다는 것—모두 같은 구조의 문제”라고 말하며 다음 구호로 마무리했다. “우리의 해방은 연결되어 있다! 함께 싸우고 함께 승리하자!” 출처: 대전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고 변희수 하사를 추모하며 행사 하루 전인 6월 6일, 대전퀴퍼조직위는 대전현충원 앞에서 고 변희수 하사를 추모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변 하사의 순직이 공식 인정된 지 1년이 되는 시점이었다. 퀴어 당사자이자 개인 조직위원으로 참여한 상이는 대전퀴퍼 현장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전했다. “우리는 땅에 존재하며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을 믿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자연스럽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살아갈 권리를 부정당해 죽음을 선택해야 하는 사회가 하루빨리 사라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올라 이야기하게 된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이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끝내 웃으며 사라지지 맙시다. 혐오와 차별 대신 사랑과 연대로 새로운 혁명의 시대에 함께 존재하자고 약속합시다.” 올해로 두 번째를 맞은 대전퀴어문화축제는 무지갯빛 춤과 웃음이 가득한 축제였지만, 동시에 퀴어의 존재를 지우려는 사회, 팔레스타인의 죽음을 ‘뉴스 한 줄’로 흘려보내는 사회, 존재할 권리를 선별하는 사회에 맞선 투쟁이기도 했다. 또한 고공농성중인 옵티칼지회 노동자들의 청문회 서명운동, 외압을 견딘 국가인권위원회 대전사무소 노동자들의 자발적 부스운영, 윤석열 퇴진 광장에서 활동한 기수들의 참여 등은 이번 대전퀴퍼가 여러 사회운동의 교차점이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조직된 노동자들의 참여는 저조했다. 퀴어 존재를 억압하고 차별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갈아엎기 위해선 노동자운동이 퀴어운동과 어깨를 걸고 싸워야 한다. 그런 점에서 대전퀴퍼의 외침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더 많은 노동자들이 함께 퀴어 해방의 깃발을 들고 거리로 나아가야 한다. 제2회 대전퀴어문화축제의 광장은 마무리되었으나 우리는 계속해서 광장에 나올 것이다. 우리의 존재로, 우리의 목소리로, 그리고 더는 외면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우리는 계속 연결될 것이다. 출처: 대전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